국가재건최고회의와 대한중석을 거쳐 종합제철건설사업추진위원장을 맡고, 영일만에 포항종합제철을 세우기까지.
- 196134세
육군본부 경력관리기구 위원으로 근무 중 5ㆍ16발발, 5월16일 아침부터 계엄사령부 요원 근무.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비서실장, 재정경제위원회 상공담당 최고위원. 구라파통상사절단장으로 유럽 방문, 산업실태 시찰.

구라파 통상사절단을 인솔하고 베를린장벽 앞에 선 박태준 (1961년) - 196235세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 수립에 참여, 무연탄 개발을 통한 국토녹화사업 적극 건의.
- 196437세
박정희의 강력한 요청으로 미국 유학 포기 후 일본 특사로 홋카이도에서 규슈까지 일본 전역 10개월간 순방. 야스오카와 초면, 대한중석 사장으로 발령(12월8일).
- 196538세
황경노, 노중열, 홍건유 등 대한중석 합류, 대한중석 1년 만에 흑자체제로 전환. 가와사키제철소 사장 청와대로 초청, 박정희가 피츠버그를 방문해 코퍼스사 포이 회장과 종합제철 건설에 대한 의사 교환(5월26일).
- 196740세
종합제철건설사업추진위원장에 임명.

포항종합제철 건설을 경축하는 포항시민들 (1967년 10월) - 196841세
‘포항종합제철주식회사’사명 확정(영문 약자표기 ‘POSCO’) 및 유네스코회관에서 창립식(4월1일) 개최, 초대 사장 취임. 영일만에 건설사무소(롬멜하우스) 개설. 공장부지 조성공사 착수. 사원주택단지 매입 및 건설 착공.

공사현장을 둘러보려고 롬멜하우스를 나서는 박태준과 박정희(첫줄 맨 오른쪽), 1968년 11월 12일 - 197043세
대일청구권자금 전용의 하와이 구상 실현(1969년), 박정희가 설비구매에 관한 재량권 위임(종이마패).

박정희 대통령의 친필 서명, 종이마패 (1970년 2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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