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대한민국의 역사는 수많은 시련을 극복하고 새로운 영광을 창조해 온 고난의 여정이었다. 식민지배와 분단, 전쟁과 폐허, 절대빈곤과 부정부패를 겪었으며, 산업화와 민주화가 대립하고 반목하는 과정과 소모적인 이념 갈등도 지나야 했다. 세기말에는 국가부도 직전의 외환위기까지 맞았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이러한 시련을 딛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탄생한 신생독립국 가운데 유일하게 산업화와 민주화를 함께 이루어 냈다. 이를 바탕으로 경제와 민주주의, 문화와 과학기술의 선진화를 이루고 평화통일을 준비할 역량을 갖추게 되었다.
청암 박태준 선생은 젊은 시절 민족의 비극을 온몸으로 겪었으며, 모든 것이 부족했던 1960년대 박정희 대통령의 부름을 받아 조국 근대화를 위해 자신의 삶을 바쳤다. 노년에 이르러서는 외환위기의 수습에도 헌신하였다.
2011년 12월 13일, 향년 84세로 선생이 서거하자 국내외 여러 언론은 그의 생애 앞에 ‘영웅’, ‘거인’, ‘거목’이라는 헌사를 바쳤다. 이는 동시대 사람들이 선생에게 드린 마지막이자 빛나는 영예였다.
그러나 이러한 헌사가 오히려 선생의 삶을 몇 가지 공적으로만 기억하게 하는 것은 아닌지 경계해야 한다. 영웅의 죽음은 흔히 공적의 상징으로만 남고, 그가 지녔던 정신과 신념은 점차 잊히기 쉽다. 한 인물을 우상화하거나 신화적인 존재로만 기억한다면, 그의 삶이 오늘날 우리에게 던지는 의미와 정신적 유산을 온전히 계승하기 어렵다.
박태준 선생은 ‘짧은 인생을 영원한 조국에’라는 신념의 나침반을 따라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자신의 길을 걸었다. 그의 일생은 나라를 향한 순애(殉愛)와 운명적 사명감으로 제철보국과 교육보국의 이상을 실현한 길이었다.
제철보국의 신념은 아무것도 없던 불모지에 포스코를 세우고 세계적인 철강기업으로 성장시킴으로써 대한민국 산업화의 견인차를 만드는 위업으로 이어졌다. 교육보국의 뜻은 14개의 유치원과 초·중·고등학교를 모범적인 배움의 전당으로 일구고, 마침내 대한민국 최초의 연구중심대학 POSTECH을 설립하여 세계적인 대학으로 성장시키는 성취로 이어졌다. 이는 대한민국 산업과 교육의 새로운 지평을 연 역사적 실천이었다.
선생의 관심과 사유는 경제와 교육, 과학기술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정치와 국방, 문화와 국제관계, 통일 문제에 이르기까지 국가와 사회의 미래를 깊이 사색하고 탐구하며, 현실에 뿌리를 둔 실사구시의 미래전략을 구상하고 실천하였다. 또한 개인적인 물욕과 유혹을 스스로 경계하고 배격하며, 대한민국을 일류국가로 만들겠다는 염원을 향해 흔들림 없이 나아갔다.
그처럼 무거운 시대적 책임을 짊어지고 한평생을 완주하며 새로운 시대를 열고 공동체의 발전과 행복을 위해 헌신한 선생을 몇 가지 공적으로만 기억하는 것은 큰 결례이다. 동시에 이는 우리 사회가 소중한 정신적 유산을 잃어버리는 일이기도 하다.
이에 POSTECH은 포스코가 추진해 온 ‘청암 박태준 추모사업’을 계승하고 발전시키기 위하여 박태준미래전략연구소를 설립한다.
박태준미래전략연구소는 선생의 생애와 사상, 리더십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집대성하여 이를 교육적으로 활용하고 사회적으로 확산할 것이다. 국내외 학계 및 교육계와의 교류와 협력을 확대하고, 선생이 깊은 관심을 기울였던 다양한 분야에 대한 연구를 활성화할 것이다. 또한 그 성과를 사회와 공유함으로써 대한민국과 인류의 미래를 위한 새로운 전략과 담론을 창출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자 한다.
박태준미래전략연구소는 오늘의 엄정한 출발점에서 선생을 존경하고 흠모하는 모든 분의 뜻을 모아, 선생의 정신과 명성에 걸맞은 시대정신의 개척자가 될 것을 천명한다.
2013년 2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