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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전문가 에세이] III-2. 이제 고정관념을 버리세요외 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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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빈, 이혜영, 조은하, 이라, 돌람한느보도일 2016.09.30

요 약

[이제 고정관념을 버리세요]

- 개인주의를 줄이고 공동체를 지향해야 하며, 외국인에 대한 따듯한 시선이 더욱 필요합니다.

- 다문화가정을 위한 한국어교육센터가 더 많이 필요합니다

- 다문화가정과 외국인에 대한 차별이 사라져야 합니다

- 노동 능력이 아직 있는 나이 많은 저학력 계층과 결혼 이주 여성들에게 안정적인 일자리를 제공해야 합니다

- 다문화가정이 공평하고 평등한 대우를 받고 사회 속에서 발전의 길을 찾을 수 있게 해주어야 합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시스템을 갖출 때]

- 자녀교육의 어려움

- 정규직과 계약직의 차별

- 다문화 일자리 사업

[꿀벌의 삶처럼]

- 행복은 서로 소통하며 안전한 생활이 있어야 한다

- 재물보다는 자녀들과 화목한 가정을 이루라

- 자연생태 곤충들의 비유로 한 행복한 사회

[느림과 여유, 그리고 행복탐험]

사회가 빠르게 글로벌화 되면서 우리 주변 사람들은 점차 다양한 배경과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로 바뀌어 간다. 그럼에도 우리는 본능적으로 구분을 하고, 분류를 하고, 우열을 정해 등수를 매긴다. 나도 그런 사회의 ‘열성적으로 바쁜’ 구성원으로 살아오지 않았을까? 그러나 이제는 그런 다양함을 존중하고 다름과 느림을 인정하는 움직임도 필요하지 않을까?

[다문화 사회에 열린 행복의 길들]

중국, 몽골, 일본에서 온 이주여성들은 외모적으로 한국 사람과 비슷하게 생겨서 일자리를 찾을 때 외모적으로 차별을 받진 않는다. 외모적으로 차별 받는 이주여성들은 아이들이 다 커서 시간 여유가 있어도 일자리 찾기가 쉽지 않다. 어느 공장은 사람을 못 찾고 있고, 어떤 사람은 일자리를 못 찾고 있으니, 모순적인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목 차

이제 고정관념을 버리세요 - 김빈(베트남)

더불어 살아가는 시스템을 갖출 때 - 이해영(중국)

꿀벌의 삶처럼 - 조은하(필리핀)

느림과 여유, 그리고 행복탐험 - 이라(몽골)

다문화 사회에 열린 행복의 길들 - 돌람한드(몽골)

내 용

[2016 전문가 에세이] III-2. 이제 고정관념을 버리세요외 4편

김빈, 이혜영, 조은하, 이라, 돌람한느

이제 고정관념을 버리세요.

김빈(베트남)

개인주의를 줄이고 공동체를 지향해야 하며, 외국인에 대한 따듯한 시선이 더욱 필요합니다.

예로부터 대략 2005년까지 한국은 자신들의 일상적인 언어습관 속에서 ‘커다란 민족국가’였습니다. 한국인들은 ‘우리’라는 표현을 아주 광범위하게 사용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 회사, 우리 거리, 우리 공원처럼……. 한국인들은 그렇게 공동체 의식이 아주 높았습니다. 언제나 민족 고유의 문화적 특색을 유지하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2005년 이후부터 외국인들이 물밀듯이 한국으로 몰려들자 한국인들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갑자기 엄청나게 불어난 이주민 숫자에 정부조차 제대로 된 대비책을 마련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한국에 온 외국인 부류는 다양합니다. 유학생, 대학원생, 일반노동자, 결혼이주여성, 특히 동남아에서 온 결혼이주여성들이 많은 수를 차지합니다. 베트남, 필리핀, 캄보디아…… 그리고 중국까지. 이 외국인 여성들과 한국인이 결혼한 가정을 한국사회에서는 다문화가정이라고 부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에 온 외국인들을 두 팔 벌려 환영하기도 하지만, 그 주변에는 또한 외국인들이 한국에 오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한국이 예전처럼 자기 민족 고유의 길을 따라 발전하기를 원합니다. 그들은 외국인들이 너무 많이 한국에 와서 자신들의 삶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치고 있고, 사회를 아주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고 잘못을 떠넘깁니다.

그런데 그들은 ‘만약 그 많은 수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없었다면 어느 누가 열악한 환경 속에 놓인 공장, 기업, 중공업 업체에서 험한 노동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외국인 노동자들도 월급을 받을 때 일정 부분을 떼어내어 한국 국세청에 세금을 납부합니다. 한국인이 아닌데도 세금을 납부하고 있기에, 외국인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호해줄 수 있는 구체적인 조직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음으로는 다문화가정의 신부들 문제입니다. 많은 한국인들이 외국인 신부들은 저학력이며, 오로지 돈을 좇아서 한국남자랑 결혼한 것이라고 무시합니다. 하지만 이런 신부들이 없었다면 누가 35세에서 40세, 심지어는 50세, 때로는 그 이상의 나이를 먹은 한국남자랑 결혼을 하겠습니까. 한국처럼 출산문제가 점점 더 심각해지는 나라에서 외국인 신부가 나이 많은 한국남자랑 결혼하지 않았다면 한국이 현재와 같은 인구수를 유지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바로 그러하기에 그저 앉아서 외국인 여성들을 비난할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생각부터 제대로 돌아보아야 합니다. 한국인들의 지적이 틀린 것만은 아니지만 그 신부들 또한 부모와 형제, 가족, 친척, 고향을 떠난 고통과 손해를 감수하고, 머나먼 한국에 와서 남편, 그리고 남편의 가족들과 함께 살고 있다는 사실, 게다가 모든 것이 낯설고 한국의 풍속과 관습에 적응하기가 아주 어렵다는 것을 이해해주어야 합니다. 때문에 한국인들도 역시 손을 모아서 그 신부들을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들이 한국생활에 어서 빨리 정착할 수 있도록, 낯선 나라에서 살면서 적응하기 어려운 부분을 조금씩 줄여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다문화가정을 위한 한국어교육센터가 더 많이 필요합니다

2016년 8월까지 대다수의 다문화가정은 아내와 남편, 자녀와 아빠 간의 나이 차이가 아주 심합니다. 남편의 나이가 띠동갑을 넘는 것이 일반적이고, 두 바퀴 띠동갑을 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들은 나이가 많을 뿐만 아니라, 저학력인지라 안정적인 직업에 높은 수입을 갖기 어렵습니다. 아주 장시간 동안 노동해야 할 뿐만 아니라 그 어떤 고생도 감내해야 합니다. 그런 까닭에 그들은 집에 오자마자 편히 쉬기만 바랄 뿐 자녀들의 학업에 관심을 기울일 겨를이 없습니다. 그런데 엄마 또한 학력이 높은 경우가 드물고, 대다수가 저학력인지라 한국어 공부에도 많은 시간이 소요됩니다. 하지만 경제적인 사정으로 인해 한국어 공부에 시간을 오래 투자하기 어렵습니다. 그들은 단지 일상생활에서 자주 통용되는 문장들을 배울 뿐입니다. 생계를 위해 그들은 식당에서, 음식점에서, 공장에서 근로자로 일합니다. 이런 종류의 일들은 수입이 적을 뿐더러, 자기 자신을 발전시킬 기회도 없습니다. 그러나 신부들에게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기에 여전히 그 일을 계속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빠와 엄마 모두가 가정의 생계 때문에 바쁘게 일하느라 다문화가정의 아이들은 한국가정의 아이들보다 손해를 꽤 많이 봅니다. 부모가 자녀교육에 관심을 기울일 여력이 없기에 공부에 열심인 아이들조차도 학교의 교과과정을 따라가기가 어렵고, 동급생들의 학업수준을 따라가기 어렵습니다. 바로 그러한 까닭에 다문화가정을 위한 보충수업 센터가 정말 필요합니다. 제가 아는 바로는 초등학생 대상 한 달 과외비가 한 과목에10만원에서 15만원입니다. 중학생 대상 한 달 과외비는 한 과목 30만원에서 50만원입니다. 고등학생 대상 과외비는 훨씬 더 비쌉니다. 경제사정이 어려운 다문화가정은 과외학원에 자신의 자녀를 보낼 엄두를 내지 못합니다. 한국처럼 천연자원이 부족한 나라에서 명문대학 졸업장을 받기 위해 공부하지 않고서는 높은 수입을 얻을 수 있는 안정적인 직업을 구하기 어렵습니다. 바로 그러하기에 정부와 교육부는 이런 상황에 처해 있는 다문화가정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실질적인 정책을 만들어야 합니다. 아이들에게 미래로 나아갈 길을 연결시켜주어야 합니다. 다문화가정의 아이들이 친구들의 학업수준을 따라가서, 자기 스스로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이를 통해 한국이 더욱 발전하고 부강해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문화가정과 외국인에 대한 차별이 사라져야 합니다

아주 많은 한국인들이 외국인들을 그동안 차별했고, 지금도 차별하고 있습니다. 어떤 지역에 외국인이 많이 살고 있으면, 한국인들은 그곳에 오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 지역이 안전하지 않은 곳이며, 아주 복잡한 문제들이 발생하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아예 외국인들과의 접촉을 피합니다. 한국 부모들은 자녀들이 다문화가정의 자녀들과 어울리거나 놀지 못하게 합니다.

그들은 다문화가정을 무시합니다. 다문화가정은 저학력에다 경제수준이 낮아서 함께 어울릴 수 없는 부류라고 여깁니다. 그들은 그렇게 자기 멋대로 다문화가정의 사람들을 무시하고 아주 낮게 평가합니다. 이것이 참으로 서글픈 현실입니다. 반드시 사라져야 할 문제라고 비판 받아 마땅한 모습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지방정부에서부터 중앙정부까지, 그리고 모든 매스컴과 신문방송의 계도운동이 결합되어야 합니다. 사회가 나날이 더 행복해지려면 그 사회는 반드시 평등한 조건 속에서 서로 화합하고, 사람과 사람 간의, 부자들과 평범한 사람들 간의, 한국인과 외국인 간의 따뜻한 시선과 포용이 필요합니다. 극단적인 생각들, 계급 갈등, 피부색에 따른 인종 차별이 최대한 없어져야 하고, 한국인과 외국인들 모두가 자신의 삶이 안전하고 평화롭고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노동 능력이 아직 있는 나이 많은 저학력 계층과 결혼 이주 여성들에게 안정적인 일자리를 제공해야 합니다

남편이자 아빠는 한 집안의 기둥입니다. 가정이라는 한 배를 안정적으로 운행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들이 가정 경제를 안정적으로 꾸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들의 책임은 참으로 큽니다. 바로 그러하기에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하고 그 일을 유지하는 것은 그들의 아주 커다란 책무입니다. 졸업장이나 높은 전문지식이 필요 없는 직종일지라도, 공사장이나 공장, 광산업 등 열악한 작업장 역시도 정부의 관심 아래 월급이 안정적으로 지급될 수 있도록 하고, 편안하고 안전한 환경이 보장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그들이 언제나 안정적인 직업을 오래도록 안전하게 가질 수 있을지 관심을 기울여주어야 합니다. 퇴직한 노인들이 여전히 일할 능력이 있다면, 만약 그들이 나라와 사회에 공헌하고자 한다면, 그들을 받아줄 수 있는 기업이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아주 오랜 세월 동안 노동을 한 숙련된 경험자이기 일을 잘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결혼이주여성 역시 대다수는 가정의 수입이 적기에 그저 집안 일만 하면서 남편의 월급만 기다리고 있다면 가족의 하루하루 생계만 겨우 유지될 뿐 여유를 갖기 어렵고 저축하기도 어렵습니다. 만약 자녀가 많은 가정이라면 가난 속에 빠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게다가 다문화가정은 남편의 나이가 많아서 십 년 또는 십오 년, 이십 년 후에는 60세 이상이 됩니다. 그때 어떤 회사나 공장이 그들을 받아들여서 일을 시킬까요. 가정의 기둥이 일할 곳이 없다면 가정경제의 부담은 고스란히 아내의 어깨를 짓누르게 됩니다. 더구나 결혼이주여성은 전문 지식이 없고, 한국어 소통의 한계가 있어서, 어떻게 직장 환경에 적응할 수 있을지, 어떻게 자신에게 알맞은 직업을 찾을 수 있을지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런 부분이 관계당국자들이 깊게 신경을 써주어야 할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다문화가정이 먹고 사는 문제에 어떤 어려움에 직면해 있는지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수입이 적은 가정, 사회 속에서 어려움에 직면한 가정에 대해 회사가 이들을 노동자로 받아들이는 노력을 더 해야 합니다. 사회 속의 예비인력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노동자 계층을 위한 일들을 많이 만들어내고, 안정적인 수입을 위한 안정적인 일자리를 가질 수 있게 도와주어야 합니다.

다문화가정이 공평하고 평등한 대우를 받고 사회 속에서 발전의 길을 찾을 수 있게 해주어야 합니다. 다문화가정의 운명을 그저 받아들이고, 물질 결핍의 생활고를 그저 견디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남편이자 아빠는 가정의 기둥인데 가정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내이자 엄마는 외국인 신부로서 한국어와 한국문화에 대해 공부해야 함에도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지 않고, 한국에 살면서도 자기 고향의 문화를 유지하면서 남편의 가족들과 화합하지 않고, 불필요한 오해를 아무렇지 않게 만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수의 다문화가정은 사회 속에서, 일 속에서 자발적으로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남자들은 가정경제를 안정적으로 담보하고 나날이 좀 더 부유해지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아내는 외국인 신부로서 밤낮없이 한국어와 한국문화, 한국인의 삶의 방식에 대해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어떻게든 하루빨리 한국가정의 생활방식에 적응하기 위해, 사회에 화합하기 위해, 남편 가족의 안정뿐만 아니라 사회 속의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기 위해 항상 노력하고 있습니다. 경찰, 변호사, 교사 또는 경영업종, 서비스, 은행, 의료, 식당, 음식점……. 이러한 일들은 안정적인 수입뿐만 아니라 다문화가정의 여성들이 일속에서 자신의 능력과 전문적인 기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과 접촉할 기회를 얻을 수 있으며 자녀들이 보고 따라 배울 수 있는 거울이 됩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미래의 이상향이 되어 자녀가 따라 배우고자 노력하게 만들고 한국어 실력을 안정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게 만듭니다. 엄마는 직장 업무를 통해 전문 분야를 갈고 닦고 연마하면서 한국어 구사능력도 점점 더 발전하게 됩니다. 이러한 부분은 재고될 만하고, 장려할 만합니다. 그들이 나날이 높이 발전할 수 있고, 더 나아가서는 한국인들이 다문화가정에 대해 갖고 있는 좋지 않은 생각을 조금이나마 지울 수 있게 합니다.

‘다문화가정은 업무의 전문성이 낮고, 어려운 경제 상황에 처해 있다’라는 고정관념이 사라지는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천편일률적 사고를 지우고 다문화가정도 유복한 가정들이 꽤 있고, 안정적인 삶을 행복하게 누리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해야 합니다.

정부와 국회, 한국인들이 다같이 협력해서 불필요한 편견을 지우고 필요한 부분들을 격려하고, 존중하고, 발전시킨다면 머지않은 미래에 한국은 더욱더 부강과 번영을 누리는 행복한 나라가 될 것입니다. 한국은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꿈꾸는 나라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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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살아가는 시스템을 갖출 때

이해영(중국)

행복의 사전적인 의미는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함 또는 그러한 상태를 표현하는 말’이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란 말이 있듯이 개인의 행복이 있기에 세상이 행복한 것이다. 역으로 안정된 세상이 있어야 개인의 행복도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만족과 기쁨의 기준은 개인마다 다르다. 그러나 같은 사회제도권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고 있기에 개인의 행복한 삶은 그 주변의 구성원을 포함한 모든 구성원들의 삶과 관련돼 있다.

그래서 가장 가까운 내 주변에 있는 문제들을 나누고, 이 문제들을 혼자서가 아닌 같은 대한민국에 살아가는 사람들과 함께 논의해보려고 한다. 내가 나누려고 하는 문제는 크게 세 가지로 자녀교육, 생계와 관련된 취업문제, 다문화일자리문제이다.

1. 자녀교육의 어려움

‘개천에서 용 난다’라는 말은 이제 옛말이 되었다고 한다. 할아버지의 재력과 어머니의 정보력이 자녀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말이 있듯이 부의 대물림, 학벌세습이 현실이 되었다.

교육은 당연히 누려야 할 평등한 권리인데 이러한 교육기관조차도 부모의 재력에 따라 크게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또한 다양하고 세분화되어 있는 교육구조는 다소 정보에 어두운 다문화가정의 학부모를 고민에 빠지게 만든다. 예를 들면, 같은 동에 사는 이웃집이 자녀 교육 때문에 집까지 팔고 목동으로 세를 얻어 이사를 갔다. 그런데 나는 큰아이의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어머님, 집에서 미리 조금만 준비했으면 외고 같은 데 보냈으면 좋았을 걸요”라는 전화를 받았을 때도 무덤덤했다. 공부는 자녀가 알아서 노력하고 열심히 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큰아이가 고2가 돼서야 그 앞의 어떤 선택들이 입시 때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알게 되었다. 적어도 나와 같은 학부모들이 이런 실수를 범하지 않았으면 한다. 현재 학부모 교육이나 연수가 많지만, 대부분 맞벌이가정의 학부모가 참석하기 어려운 시간대에 진행되므로, 야간이나 주말에 진행하거나 온라인교육이 필요하다.

복잡한 입시제도가 자녀교육에 초래하는 또 하나의 어려움이 있다. 입시설명회를 여러 번 다녀와도 책자만 쌓여갈 뿐, 정보는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정시와 수시, 게다가 수시까지 학생부종합, 학생부교과, 논술전형 등등으로 나뉘어 있었다. 또 대학마다 각각 다른 입시기준……. 그리고 그 전형에 지원하기 위해 중학교부터 준비해 고등학교를 가서 3년간 관리해 대학입시준비까지 이어진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따라서 고1부터 교과목과 비교과를 넘나드는 활동의 전반적인 것을 전략적으로 해왔어야 했다. 이쯤이면 입시컨설팅이 왜 그리 인기인지 알 것 같다. 반면 중국의 입시제도는 정시 한가지다. 2000년도까지만 해도 대학 졸업 후 국가에서 취업까지 배정해주어 취업고민이 적었다.

요즘 학교마다 진로교육, 진학특강을 진행하고 있는 것은 희망적이다. 아이들의 희망직종 1위가 공무원, 건물주 등이 아니었으면 한다. 아이들에게 다양한 진로에 대한 드넓은 시야를 키워주는 것이 시급하다. 입시를 위한 공부가 아니라 먼 인생목표와 가치관을 가지고, 가슴을 뛰게 하는 직업을 정하고, 그것을 위해 관심 있는 대학과 학과에 갈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회성이 아닌 체계적인 진로교육이 절실해 보인다.

2. 정규직과 계약직의 차별

평생 계약직으로 전전긍긍하며 직장을 옮겨 다니면 생활이 안정적일 수 없고 따라서 심리적 불안과 긴장이 지속되기 마련이다. 계약 만료일이 되어 갈 때마다 재계약 여부에 대한 불안감에 시달린다. 여기저기 옮겨 다니기 때문에 제대로 경력을 인정받기 힘들고 나이가 들어서도 신입 아래에서 일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기본적인 삶의 요소가 보장되지 않는데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을까?

더 큰 문제는 계약직과 정규직 그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둘 사이의 차별문제다. 호봉제에 따른 직급상승과 각종 수당을 받는 정규직에 반해, 계약직은 그렇지 않다. 대표적 예로 1년 계약이 아닌 10개월 계약, 혹은 2년 이상 근무 시 정규직 전환을 해야 하는 것 때문에 일자리를 잃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렇게 되면 계약직의 실업급여도 국가에서 고스란히 떠안게 되는 재정적 부담도 생기게 된다. 그리고 실적 위주의 경쟁체계 속에서 번거롭고 하찮은 일들은 계약직이 하게 되므로, 업무의 범위와 내용이 불명확하다. 그러므로 제도적으로 대안이 필요하다.

3. 다문화일자리사업

2006년 슈퍼볼 최고 선수 하인스 워드(어머니가 한국인)가 한국을 방문하면서 대한민국 안의 혼혈인들에 대한 차별과 배타적 민족주의가 없어져야 한다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다문화사업이 대두되었다. 2006년 2월 다문화가족지원법이 시행되고 다문화가족지원센터 설립 및 통번역 지원에 대한 조항 등이 제정되었다. 그 조항에 따라 여기저기서 다문화사업을 하면서 언론에는 다문화가정에 김치 전달, 자전거 증정 등의 기사가 부각되었다. 물론 역차별이라는 논란도 불거졌지만, 어느덧 십여 년이 지나갔다.

그러한 법규와 기부활동이 다문화가정의 피부에 닿는 정도는 어떠할까? 언론매체에서 보도되는 혜택을 받은 다문화가정은 소수이고 일회성 지원에 불과하다. 그래서 다문화가정지원을 위해 정부에서 예산을 받아 사업을 진행하는 다문화가족지원센터가 생기긴 했지만, 일반인들이 다문화사업 예산이 “퍼주기 식”이라고 말한 것에 반해 실제적으로 예산의 70%는 센터 직원의 인건비로 지출되고 있다.(다문화가족지원센터 운영지침 예산규정항목 참조)

센터 직원은 통번역지원사 언어권별 1명씩, 이중언어강사 1명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선주민(한국인)이다. 급여를 보면 통번역지원사는 사업 시작인 2009년 80만 원대, 선주민 신입은 초봉이 150만 원 정도이다. 그리고 호봉제인 선주민 직원과 달리 통번역지원사는 2012년까지 급여가 한 번도 오른 적이 없었다. 그 후 반복적인 의견제시에도 불구하고 현재 사업 8년차 통번역지원사의 급여는 120만 원밖에 되지 않는다.

현재까지 통번역지원사와 이중언어강사 등 다문화관련 인력은 1기부터 지속적으로 양성되고 배출되었다. 몇 년차가 되어도 급여가 한 푼도 오르지 않고 다른 비전도 보이지 않는 일자리에서 사명감과 보람 하나만으로 계속 일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런 사람도 없진 않겠지만, 대부분 3년차 이상이 되면 생계부담으로 그만두게 된다. 물론 그 일자리사업으로 취업한 이주여성들은 모두 대졸 이상 학력과 서류심사, 필기시험, 면접 등 채용조건에 부합한다. 최대 6개월, 900시간의 오프라인교육을 이수하고 평가시험까지 통과한 사람들이며, 취업 후에도 지속적인 연수를 받고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2016년 교육청 소속 이중언어강사로 불리던 일자리가 갑자기 다문화언어강사로 명칭이 바뀌었고, 대학교를 막 졸업한 중국어를 전공한 한국인 이중언어강사 사업이 생겨났다. 더구나 채용된 중국어전공자인 한국인 이중언어강사는 학교와 직접 계약을 하는 시간강사로 주 5일 중 2일 반(半) 또는 오전만 근무하며, 수업과 통번역 업무 두 가지만 한다. 그러나 주당 19~22시수에 기타 업무까지 하는 다문화언어강사는 종일근무제로 일한다. 업무는 다문화가정 학생 생활지도 및 한국어 수업, 선주민 학생 중국어동아리 아침 수업, 다문화이해수업, 방과 후 교육활동 지원, 행사 지원, 교육장소 청결 유지 등 계약서에 13가지나 나열되어 있으며 ‘학교는 강사를 기타 학교 순환근무를 지시할 수 있고, 소속기관 외의 다문화교육 관련 업무를 지원하도록 지시할 수 있다’는 조항에 ‘소속기관장이 지정하는 기타 업무 수행’이라는 불분명한 조항까지 있어 마치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는 알파고와 같은 존재가 된 것이다.

또한 근무일도 275일로 명시되던 계약조항이 2016년 365일로 바뀌면서 방학 중에도 근무하고 별도의 수당도 전혀 없다.

물론 공직에서는 법적으로 명확하게 급수별 급여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선주민과 똑같이 대우를 해주고 있다. 업무대상만 외국인을 위한 업무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기타 취업전선에서는 호봉제도 없이 몇 년을 근무해도 1년씩 재계약으로 이어가는 시스템 때문에 자격요건을 갖춘, 대한민국의 2세를 키우고 있는 또 하나의 이주민 가장을 힘들게 한다. 양성사업도 좋지만 이제는 양성된 인력들을 어떻게 역량발휘를 시키고 우리 사회의 약자가 아닌 평범한 이웃으로 살아가게 할지가 과제이다.

행복이란 개인의 만족감에서 보면 지극히 주관적인 것으로 경제수준이나 학벌과 상관없이 우리 마음속의 작은 저울에 의해 좌우될 수도 있다. 하지만 기본적인 생활이 되도록 해주는 안정된 사회적 시스템이 갖춰져야 개인의 행복이 있을 수 있다. 좀 더 행복한 우리의 대한민국을 위하여 다문화가정의 목소리에도 좀 더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고 ‘우리는 하나’라는 마음으로 함께 문제를 풀어나가는 화합의 삶을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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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의 삶처럼

조은하(필리핀)

행복은 서로 소통하며 안전한 생활이 있어야 한다

행복한 한국사회로 가려면 제일 중요한 과제가 무엇인지 주변의 여러 지인들에게 질문을 해보았다.

정권이 바뀌어야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30대 중증장애인 남성), 30대 직업여성에게는 급여는 그대로 받되 근무시간을 단축시켜 주어야 행복한 가정을 이끌어갈 수 있으며 가정이 행복하면 이 사회는 자동으로 행복해질 것이다(30대 여성), 청년 실업자가 없게끔 일자리를 마련해 준다면 행복한 사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30대 남성).

편견을 버리고 생각을 바꾸면 행복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요(40대 여성), 서로 신뢰하며 정치, 경제, 사회, 문화, 환경 등 다양한 분야가 서로 원할하게 소통이 된다면 행복한 사회가 이루어질 것이다(40대 남성).

먼저 개인이 행복해야 가정이 행복하고 가정이 행복하면 사회도 자연적으로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50대 남성), 고액권 즉 50,000원 짜리가 없어지고 불법자금이 없는 사회가 되어야 행복할 수 있다(50대 여성).

서로 믿고 사랑하고 배려하며 협동한다면 이 사회는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다(60대 여성), 불법자금과 불로소득자가 없어지고 서로 소통하고 신뢰한다면 행복한 사회가 될 수 있다(60대 남성).

위의 답변들은 개인의 살아온 환경이나 가치관의 차이는 있겠지만 내 주위에 있는 여러 한국인 각자의 의견이다. 이런 답변을 통해서 행복은 한 가지로 절대적일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필리핀인인 나의 짧은 한국살이 경험으로는 행복한 사회를 위한 정확한 답을 내리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최근에 본 <몬스터>라는 드라마를 통해 정권이 바뀌어야 행복한 사회가 될 수 있다는 것과 고액권 50,000원짜리가 없어져야 한다는 의견들이 이해가 되었다. 행복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헤쳐 나가야 할 숙제들이 많이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드라마에서 재벌들의 치열한 경쟁과 욕심은 하늘을 뚫고도 남음이었다. 오직 돈을 벌기 위해 가족이나 친척들도 상관하지 않고, 온갖 추악한 음모와 살인을 일삼고, 탈세와 불법을 일삼았다. 등장인물로 나온 재벌가와 고위 정치인이 함께 손발을 맞춰 불법을 저지르는 것이 끝이 없었다. 국민의 안전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고, 부정한 방법으로 시민들을 속이는 모습이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 그 드라마처럼 부패한 재벌, 정치인들이 계속 활개를 친다면 제2의 세월호 같은 재난사고가 계속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패한 고위 정치인들이나 재벌들에게 반성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몬스터> 같은 드라마가 만들어졌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정권이 바뀐다고 행복한 사회가 된다는 보장은 없다. 뛰어난 사람은 많아도 완벽한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한 가지를 승리할 수 있는 사람은 있더라도, 모든 일에서 승리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고위 정치인들이나 재벌들은 경제를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행복은 경제발전이나 재물이 많은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행복은 서로 소통하며 화목하는 것에 있다는 걸 명심하고, 국민의 안전을 생각하면서 경제발전은 부드럽게, 재난사고에는 신속하고 빠르게 처리하는 정책이 만들어졌으면 한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라는 말이 있다. 고위 정치인과 재벌들이 정직하고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서로 소통하고, 신뢰하며, 화목하고 안전한 관계를 이룬다면, 안전하고 행복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재물보다는 자녀들과 화목한 가정을 이루라

내가 태어난 필리핀에는 출산장려정책이나 미혼모보호를 위한 기관들도 없다. 하지만 5~7명의 자녀들을 부담 없이 낳는 편이다. 경제적인 어려움에도 아무런 근심 걱정도 하지 않는다.

남편에게 의지하기보다는 혼자 힘으로 자녀양육과 함께 경제문제를 해결하는 엄마들도 많이 있다. 그런 가운데도 가정은 화목하고 행복지수는 높다. 자녀들도 서로 경쟁하거나 크게 싸우지 않고 자연환경과 더불어 유연성 있게 잘 지내는 편이다. 엄마 혼자서 경제문제를 해결하면서도 많은 신경을 쓰지 않아도 서로 의지하며 사랑하는 자녀들로 자라난다.

나는 필리핀보다 훨씬 더 경제가 발전된 한국에서 한국인 남편과 한 가정을 이루었다. 9년의 세월 동안 남편과 사랑의 열매로 5명의 자녀를 낳았다. 보물과 같은 자녀들을 얻은 것도 행복한데, 여러 출산장려정책이 우리 가족들을 더욱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주변 친지들은 좋은 시선으로 보지 않았다. “몸이 불편하고 나이가 많은 남편과 어떻게 가정을 감당하며 이끌어 가려고 하는지 모르겠다”며 자녀들을 키우는 것을 큰 부담과 짐으로 생각하고 염려하는 분들이 많았다.

처음에는 이런 친지들의 걱정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나서 학년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그 걱정들이 나와 내 가족들을 위한 것임을 깨달았다. 동생들을 챙기고 서로 도와가면서 함께 생활했던 것은 어디에 가고 없어져 버렸다. 학년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아이들은 이기적으로 변해 서로 이겨내지 못해 안달이었다.

5명의 자녀를 두고 있는 엄마의 소견으로는 이런 현상의 원인이 경쟁하는 교육환경, 대중매체의 드라마, 스마트폰 영상물 등에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자녀들이 계속 이렇게 자란다면 부모들의 마음이 상하고 정신적 스트레스가 끝이 없을 것 같다.

자녀들을 많이 낳아도 부담 없이 키울 수 있는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출산장려금도 중요하지만, 어린이집의 교육환경과 학교 교육도 많이 바뀌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문과 지식을 넓히는 교육도 필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기적인 생활을 버리기 위해서 스마트폰이나 최신 전자장비 사용을 절제하고, 폐쇄된 실내 공간에서보다는 자연환경과 더불어 생산적이며 효율적으로 지식과 지혜가 함께 자라나는 교육환경을 만드는 거다. 아울러 서로 배려하고 화목하며 신뢰하는 생활습관을 가르쳐 나간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부모와 교육기관이 하나가 되어 어렸을 때 다양한 분야를 제공하여 주어 그 중 자신이 분야를 찾았을 때 그 능력을 기를 수 있도록 해주고, 학생들의 각자 특성을 존중해 주며 경쟁 위주의 학습이 아니라 서로 차별 없이 하나의 공동체가 되어 경쟁이 필요 없는 교육이 이루어졌으면 한다. 교육기관의 교육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자녀들에게는 부모의 가정교육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경쟁보다는 서로 배려하고, 화목하며, 안전하고, 행복한 생활이 중요하다고 가르쳐야 할 것이다.

많은 돈을 벌어 자녀들에게 물려주어야 행복할 수 있다는 생각은 버려야 할 것이다. 오히려 돈이 가정불화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한국 재벌가들의 재산권 분쟁에 관한 소식을 대중매체를 통하여 볼 수 있었다. 수백억, 수천억 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더 갖고 싶어서 서로 싸우는 것을 보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도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 나는 이런 성경 구절이 필리핀에서 생활할 때는 절실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사회의 생활환경에서는 자녀들과 화목하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 꼭 필요한 성경구절인 것 같다. 특히 자녀들에게 화목하고 행복한 가정으로 이끌어가고 싶은 부모의 마음이 깊이 새겨지도록 실천에 옮겨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해진다.

화목한 가정이 되기 위해서는 서로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가산이 적어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크게 부하고 번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찐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이런 성경 구절처럼, 많은 재물이나 물질적인 풍요보다 마음의 평안과 화목이 더 중요하고, 진수성찬이나 좋은 음식을 먹는 것보다 사랑이 넘치는 관계가 더 중요하고, 배부르게 먹는 것보다 화목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

마른 떡 한 조각만 있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화목해지는 것은 아니다. 가족 간의 이해와 사랑이 있어야 화목할 수 있다. 서로를 이해하기 때문에 비록 마른 떡 한 조각이지만 나누어 먹을 수 있고, 서로를 위해 양보할 수 있다.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도 다투게 되는 경우는 서로 마음이 통하지 않고,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이다.

서로 이해한다는 것은 자기 중심, 자기 생각, 자기 세계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을 내 안으로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 보고, 나의 세계와 다른 사람의 세계가 어울릴 때 가능하다. 사람은 다른 짐승들과 달리 상대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상대에게 같은 감정을 느끼는 동감의 수준보다 상대를 이해하는 수준에 이를 수가 있어야 한다.

자녀들에게 많은 재산을 물려주는 것보다 자립심을 길러주라. 자립심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이웃 친지들과 서로 배려하며 화목하게 지내는 것이다. 배려와 화목한 생활을 하면 행복한 사회는 자동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자연생태 곤충들의 비유로 한 행복한 사회

나는 꿀벌을 오랫동안 길러온 한국인 남편을 만나 남편과 함께 꿀벌 관리하는 일을 해왔다. 꿀벌과 함께 생활을 하다 보니 자연생태계와 곤충의 삶을 다음과 같이 이해할 수 있었다.

거미의 삶을 살펴보자. 거미는 거미줄을 쳐두고 걸린 곤충들의 체액을 빨아 먹고 산다. 나는 걸린 놈만 먹는다. 그러니까 걸린 놈이 잘못이다 하고 살아갈 것이다.

개미의 삶을 살펴보자. 개미는 열심히 땀 흘리며 자기만을 위해 산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자기만을 위하여 열심히 사는 셈이다. 꿀벌의 삶을 살펴보자. 꿀벌은 꽃에서 꿀을 모으면서 자신들에게도 행복을 주고, 꽃들에게 수분(수정) 역할을 해서 열매를 맺게 해주어 꽃에게도 행복을 준다.

그래서 자연생태계가 아름답게 유지해 나갈 수 있도록 해준다. 또한 꿀을 모아 자기가 먹기도 하지만, 저장해 놓았다가 인간에게 주기도 한다.

인간 사회에도 세 부류의 곤충과 같은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꿀벌처럼 나도 행복하면서 남들도 행복하게 해주는 일을 하는 것이야말로 참된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건강학자가 ‘기쁨과 감사하는 마음으로 남들에게 베풀고 행복하게 해 준 것으로 몸 안에 좋은 세포가 만들어져 건강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남들을 먼저 행복하게 해주는 배려정신, 예를 들어 힘들고 어려운 이웃에게 기쁨과 감사하는 마음으로 배려해서 행복한 생활을 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고 생각해 보라. 그 이웃은 그 은혜에 감사하며 좋은 기운을 자신도 모르게 전파해 줄 것이다. 그 기운은 다시 돌아온다.

하지만 거미처럼 이웃의 행복을 무시하고 자기 혼자만의 행복을 추구할 때, 마땅히 행하거나 지켜야 할 도리가 무너져 결국 서로에게 두려움과 무서움을 줄 것이다. 또한 남이 잘되는 것을 미워하여 스스로 외롭고 쓸쓸해져 공포에 빠지게 된다. 결국 모두가 다 불행의 수렁에 빠져들고 말 것이다.

개미처럼 자기만을 위하여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이 많이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과 어울리거나 사귀지 아니하고, 도움을 받지 못하여 외톨이가 되고 마는 것이다. 이것 역시 계속되면 외로움의 수렁에 빠져 불행하게 될 것이다.

‘기쁨과 행복은 함께 나누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행복은 혼자에게 있지 않고, 꿀벌의 삶처럼 서로 소통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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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과 여유, 그리고 행복탐험

이라(몽골)

모르는 분한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한국어를 모국어로 생각하지만 여전히 한국생활이 낯설다며 한번 만나고 싶다고 한다. 청바지에 하늘색 셔츠를 입은 50대 후반의 한 부인이 찾아왔다. 그녀는 젊었을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30년 가까이 미국에서 살았던 이야기로 시작했다. 한국으로 귀국한 지 두 달 되었는데, 사람들은 그대로이지만 문물이 너무 많이 바뀌어 마치 낯선 외국에 온 것 같단다.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외국인이나 교포를 상대로 자원봉사를 하다 보면 외국에 오래 사시다 노년을 고국에서 보내고 싶어 귀국하신 분들을 가끔 만나게 된다. 이분들이 가장 먼저 하시는 말씀이 한국사회의 빠른 ‘속도’가 편하긴 한데 따라가기에 벅차고 숨차다는 것이다. 언제 어디서나 무엇이든지 빠르게 해야 하는 것이 힘이 든단다. 처음 한국에 와서 전화와 인터넷을 설치하려고 연락했더니 그날 바로 와서 32인치 LCD-TV를 무상으로 주면서까지 설치해주는 것에 놀랐고, 24시간 음식배달을 번개같은 속도로 해주는 세상이 있는가 싶고, 총알배송이나 퀵 서비스라는 것도, 동네 마트에서 장본 걸 집까지 배달해주는 것도 경이롭기까지 했다고 한다.

자정이 다 된 시간에도 도심의 지하철역 앞에 젊은이들이 가득한 게 아직도 신기하다고 하면서, 그 중 반 이상은 앞을 보고 걷는 게 아니라 핸드폰을 보면서 걷더라는 얘기에는 나도 미소를 띠지 않을 수 없었다.

다른 행사에서 뵌 비슷한 연세의 다른 분도 거의 비슷한 말씀을 하신다. 사회 모든 부분이 효율 지향적이고 빨라야 하는 게 때론 피곤하다는 얘기다. ‘미국 서부 완전일주’란 이름의 패키지여행을 갔는데 열흘 남짓 되는 기간에 그 긴 캘리포니아 주의 북쪽부터 서쪽까지의 거의 모든 관광지를 매일 이른 아침부터 저녁까지 계속 이동하며 ‘빨리빨리’ 보고 지나가야 하는, 그런 부담감이란다. 나이가 들면서 천천히 느긋하게 살고 싶은데, 그런 목소리를 들어주는 사람들이 없다는 것이다. 옆에 계신 한 분이 거든다. 서남아시아 국가에서 사업을 하시는데 그 나라에는 관청에 서류를 발급받으러 가면 가끔 인터넷이 안 된단다. 언제 되냐고 물어보면 자기네들도 모른다고 대답한다. 오후에 가서 다시 허탕을 치고, 다음날 오전에 갔더니 이제 인터넷은 되는데 프린터 잉크가 떨어졌다고 서류 발급이 안 된다면서 아무도 미안해하지 않는다. 더 놀라운 점은 그 이유를 들어야 하는 민원인들도 아무 불평 없이 되돌아 나간다는 것. 그분만이 한두 번 큰 소리로 불평을 했더니, 들려오는 얘기가, “저 사람 한국인이래.” 이렇게 뭐든지 시간이 걸리는 그 나라 사람들에게 그게 불편하냐고 물어보면 뭐라고 얘기할까? 살짝 웃으며 대답을 하지만 정답은 ‘아니다’란다.

나는 한국에서 생활한 지 벌써 13년이 되었다. 빠르고 비효율이 용납되지 않는 일상에 익숙해졌다. 인터넷과 컴퓨터, 그리고 스마트폰이 인간의 의사소통 구조와 방식을 바꿔가고 있는 세상이다. 사회가 빠르게 글로벌화 되면서 우리 주변 사람들은 점차 다양한 배경과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로 바뀌어 간다. 그럼에도 우리는 본능적으로 구분을 하고, 분류를 하고, 우열을 정해 등수를 매긴다. 나도 그런 사회의 ‘열성적으로 바쁜’ 구성원으로 살아오지 않았을까? 그러나 이제는 그런 다양함을 존중하고 다름과 느림을 인정하는 움직임도 필요하지 않을까?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의 가장 큰 희생자는 이삼십 년 직장생활의 막바지에 접어든 중년 사회인이지 않을까 싶다.

예전 같은 평생직장의 개념은 이미 사라져버린 냉정한 일터에서 그들은 매일 경쟁하고 새로운 아이템을 찾아내고 만들고, 영업하고, 쉼 없이 정신적 육체적 노동을 해가며 살아간다. 요즘은 사람들이 너무나 똑똑해서 그런지, 인터넷 등으로 정보를 접할 기회가 너무 많아서인지, 유능한 직원으로 인정받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아침마다 넥타이 매고 출근해 늦게까지 전화와 E-mail 등으로 바쁘게 일하고 퇴근해도 핸드폰으로 보내오는 메시지가 평안한 저녁시간을 쉬이 허락해주지 않는다. 일주일만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쉬었으면 좋겠다는 직장인의 꿈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 쉬고 싶은 기간이 석 달이 되고 반 년, 일 년이 된다. 얼마 전 만난 어느 회사의 임원이 토로하기를, 그동안 꼬박 수십 년을 일했으니 육 개월이나 일 년쯤 모든 것에서 놓여나 편히 좀 쉬어봤으면 좋겠다면서 그게 아니면 은퇴를 해도 괜찮을 것 같다고도 했다. 내가 은퇴를 하면 뭘 하고 싶으냐고 물어보니, 우선 E-mail 계정을 없애고 핸드폰도 없애서 30년 넘게 만들어진 모든 사회적인 관계를 없애고 가까운 친구들 몇 명과는 집 전화를 사용해 연락하거나 E-mail을 써야 하면 PC방에 가겠다고 한다. 그래도 휴대폰이 없으면 불편해서 어찌 사냐고 물어보니, 조금 불편하더라도 휴대폰이 없는 삶이 그립다고 한다. 바위든 산이든 오랜 기간이 지나면 비바람에 닳고 닳아서 뾰족한 것은 뭉툭해지고 직선이 곡선이 된다고 하는데, 일을 오래하느라 뇌와 몸을 너무 많이 써서 그만 쉴 때가 되었다고 이해하면 맞을 듯싶다.

나는 바쁜 일정에 치이면 가끔 오래 전 몽골에서 살았던 기억들이 따뜻한 느낌으로 떠오르곤 한다. 한국에 와서 처음 들었던 생소한 단어 ‘스트레스(stress)’가 존재하지 않았던, 아니 스트레스를 인식할 사회적 정서 자체가 없었던 시절이었다. 사람이 살면서 힘들기도 하고 기쁠 때도 슬플 때도 있을 터, 한국에서는 인생이란 이름의 여행에서 당연히 겪는 어려움, 피할 수 없는 작은 슬픔, 개인차가 있지만 각자가 느끼는 작고 큰 노여움 같은 감정들을 스트레스라는 말로 뭉뚱그려 표현하는가 보다 싶었다. 몽골에서 온 지인들에게 물어봐도 한국에 오기 전에는 들어본 적도 없다고들 했다. 그때 사회주의 체제의 몽골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가 가지는 넘치는 자유와 역동적인 삶의 에너지도 없고 개인의 자유가 제한되는 부적절한 정치·경제 체제였지만, 거의 전 국민이 완전 고용 하에 배급제도가 적용된 상태에서 삶의 변화가 거의 없었다.

1980년대 들어 러시아와 동유럽으로부터의 원조가 줄어들고 사회주의를 대신해 시장경제체제가 도입되었으나 낯선 경제체제로의 적응이 늦어져서 최근 들어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당시에는 정부가 존재하는 한 굶어 죽을 위험도 거의 없었고, 잘 사는 사람과 못 사는 사람들 간의 생활수준 차이가 그리 많지 않았다. 불가피한 빈부의 차이는 존재했지만, 인터넷도 없고 민영 신문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일반 국민이 그걸 느끼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열심히 일하고 능력을 발휘해도 그만큼 삶의 질이 나아지지 않는 현실로 인해 갑갑함은 본질적으로 내재되어 있을망정, 무한경쟁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없었다. 학생들은 아침에 학교에 가면 수업 시작 전에 다들 복도에 모여 “정직하게 살고, 공부 열심히 하고, 이웃을 돕고, 국가에 충성하고” 등의 구호를 다같이 외운 다음에야 수업을 시작하던 시절이었다.

피아노학원이나 태권도학원도 없었고, 영어유치원이나 수학학원도 없었다. 이런 학창시절을 보내면서 이른바 스트레스라는 개념은 형성될 수가 없었으리라.

한국에 와서 처음 해본 직장생활, 지방의회 활동, 사회단체 활동, 그리고 고3 학부모를 거치면서 이젠 스트레스가 뭔지 설명할 수 있다. 어쩌면 ‘아주 잘’ 설명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방학숙제 한다고 건초 묶음 만들고 땅다람쥐를 잡으러 산과 초원을 쏘다니면서 껌을 씹고는 싶은데 미국 달러 전용 상점에서만 팔아서 소나무 송진을 모아다 껌처럼 씹고 다니던 몽골생활도 즐거운 시절이긴 했지만, 한국에서의 바쁜 생활도 경쟁, 스트레스, 긴장이 “지나치지만” 않으면 나름대로 재미가 있고 해볼 만한 생활이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해야 그것들이 ‘지나치지 않을’ 수 있을까? 우선, 물질적 행복을 지향해야 하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어릴 때부터 남들보다 공부를 잘해 더 좋은 대학교, 더 좋은 직장에 들어가야 하고, 더 큰 집에서 더 비싼 차를 타고 다녀야 행복하다는 강박관념을 심어주지 않아야 한다. 아시아 최대, 세계 최초 등 뭐든지 순위를 매기고 줄 세우는 것이 오늘날의 한국을 만드는 큰 힘이 되었을 테지만, 이제는 도리어 그것이 한국인과 한국사회를 불행하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 아이의 학습능력이나 적성, 흥미 분야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명문 대학에만 들어가야 한다고 다그치는 것, 남의 평가나 남과의 비교를 의식하면서 살아가도록 우리 아이들에게 잘못 가르치는 것은

물질적 행복을 지향하라는 강박관념을 심어주는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인구에 회자되는 한국 부모의 교육열과 청소년 자살률 세계 최고 수준, 이 관계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호기심’은 인간이 가진 가장 강력한 추진력이다. 참되고 올바른 행복이란 어떤 것일까에 대한 ‘호기심’이 지금 한국사회에는 절실히 필요해 보인다. 주변의 올바르지 않은 조언과 조악한 대중심리에 휩쓸려가다 보면 결국 행복하지 않은 삶을 살게 된다. 만인이 합심해 모든 곳에서 서열을 매기고 위아래를 평가하는 풍조를 이제는 고쳐 나가야 한다. 누군가 말했듯이 우리는 발전하려고 태어난 것이 아니라, 행복해지려고 태어난 소중한 존재들이다. 내 것은 맞고 상대방은 언제라도 틀릴 수 있다는 교만한 생각도 조금만 버리자. 인터넷에 올라오는 댓글 중 부정적인 댓글이 몇 퍼센트인가? 보다 밝은 사회를 위한 ‘네티즌 운동’ 같은 변화 운동이 필요할 것이다. 정치판이든 인터넷 댓글이든 남에게 책임을 묻고 비난하는 일이 흔해졌다. 남을 비난해서 내가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사회구성원 다수의 부정적인 시각은 사회 자체와 그 속에 담긴 문화를 부정적으로 만든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은 우리의 후대들이 살아가야 할 곳이다. 내 자식부터 남의 좋은 점을 인정하고 칭찬하는 습관을 키워주고 싶다.

전 세계에 230개가 넘는 국가가 있고, 코카콜라가 판매되는 나라는 199개국이라고 한다. 대한민국은 경제규모 순위로는 세계 10위권이다. 1960년대 초까지 아프리카 소말리아보다 못 살던 나라가 경제지표로만 보면 당당한 선진국이다. 그럼에도 국민들의 행복지수는 OECD 국가들 중 계속 하위권이다. ‘빛나는 조상의 얼을 오늘에 되살려야 한다’라는 오래 전 <국민교육헌장>의 소명은 크게 이루었으니 이제는 그것을 내려놓고 우리 자신의 작은 행복을 위해 조금은 노력해보자. 한강의 기적을 일궈낸 우리의 근면성과 역동성은 너무나도 칭찬받아야 하지만, 이제 조금만 느리게 살고, 효율에 대한 끝없는 질주에서 조금만 벗어나고, 조금만 여유를 가지고 쉬어 보면 어떨까? 물질적인 행복도 물론 중요하지만, 평안한 마음에서 오는 행복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행복의 문은 찾는 자에게 더 크게 보인다. 내가 찾고 지향하는 행복의패러다임을 조금 바꿔볼 수 없을까?

이성과 상식이 있는 사람이 그 반대로 이성과 상식이 없는 사람을 이기기는 불가능하다. 전자의 말을 후자가 절대로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이동한다는 개념이 앞의 공간을 잡아당겨 내 뒤로 보내는 것이 아니라 내 앞에 계속 빈 공간을 만들어 그곳으로 떨어짐으로써 전진한다고 설명하면 틀린 것일까? 몇 백 년 전 사람들이 가졌던 사실과 진리에 대한 개념이 지금에 와서 보면 틀린 부분이 많듯이, 빛과 같은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는 현대사회에서 우리가 지금 굳게 믿고 있는 행복의 진실과 실상은 몇 백 년 후도 아닌 10~20년 후에 보면 아주 틀린 것이 되어버릴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13년 전 한국에 처음 왔을 때 나는 작은 두려움과 호기심으로 핸드폰, 비상금, 집 주소가 쓰인 메모장을 들고 내가 사는 동네 탐험을 시작했다. 처음 며칠 동안 아침이면 운동화를 신고 집 옆의 도로를 따라 한 방향으로 두 시간, 다시 돌아오는 데 두 시간, 그 다음날은 다른 방향으로 바꾸어 걸어보았다. 그렇게 나만의 지도를 만들어가면서 동네를 익혀갔다. 첫째 날, 혹시나 시장이나 가게들이 줄지어 있는 상가라도 볼까 싶었는데 한두 시간을 걸어 봐도 점점 건물이 사라지고 트럭들이 다니는 황무지 같은 풍경만 연속되었다. 실망감과 함께 다시 두 시간을 걸어 집으로 왔다. 잘못된 방향이었나 보다. 발에 물집이 생겼지만 그러고도 며칠 동안 도보여행을 계속했다. 운동화를 신고 하루에 몇 시간씩 나만의 지도를 만들어가던 그 동네에서 나는 지금도 살고 있다. 새로운 문화와 새로운 언어의 장벽을 호기심으로 넘어낸 그해 가을을 잊지 못하는 내가 어느덧 한국에서 13번째 가을을 맞는다.

행복을 찾아가는 길도 나의 13년 전 지도 만들기 탐험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굽이 높은 구두는 잠시 놔두고 운동화를 갖춰 신고 행복탐험을 해보자. 빌딩 가득한 도시만 있다고 생각한 곳에 차로 몇 시간을 가도 언제 끝이 나올까 싶은 초원이 나올지 혹시 아는가? 현대인, 도시인이 아닌 자유로운 자연인의 마음을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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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과 여유, 그리고 행복탐험

돌람한드(몽골)

1.

몽골에서 한국으로 이주하여 생활한 지 12년이라는 시간이 흘렸다. 그동안의 시간을 뒤돌아보면 한국 사람들의 생각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예전엔 결혼이주여성이라고 하면, “한국 어떠냐?”“고향 가고 싶지 않냐?” 등으로 대화를 나누었는데 지금은 조금 다르다. “한국말 잘한다,”“한국사람 다 되었네.”“한국에서 계속 살아” 등의 대화를 나눈다.

스스로도 내가 적응을 잘하고 잘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이렇게 적응하고 생활을 잘하기까지는 주변 환경과 한국사회가 큰 도움을 주었다. 이주여성이 한국 생활에 잘 적응하고 아이들도 잘 키우고 잘 살 수 있도록 정부에서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다문화센터나 민간단체에서는 다문화 관련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이주여성들이 한국말을 배울 수 있도록 방문 선생님도 파견한다. 하지만 정보를 몰라서 또는 못 찾아서 도움을 받지 못하고 어려움을 겪는 분들도 있다. 이것을 해결하고 앞으로 다함께 행복하게 살아갈 길을 찾는 것이 우리의 또 하나의 숙제이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정보통신이 발전된 정보화 사회다. 이런 사회에서 국민들이 필요한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 각 기관마다 인터넷 사이트나 홈페이지가 다 있지만 필요한 정보를 얻으려면 하나하나씩 사이트에 접속해서 찾아야 한다는 불편한 점이 있다. 이것을 하나로 묶어 더 쉽게 한 곳에서 검색해서 볼 수 있는 사이트나 프로그램이 있다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든다. 정보통신 분야에서 매년 새로운 것이 개발되어 이젠 인터넷으로 모든 것이 가능할 정도가 된 우리 사회에서 그런 프로그램을 얼마든지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사이트를 만들기 위해 정부가 관심을 갖고 전문가들이 아이디어를 모은다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요즘엔 일자리를 위해 정부에서 여러 가지 정책을 세우고 취업할 때 필요한 지식을 배울 수 있게 지원을 한다. 고용센터를 통해 교육도 받고 자격증도 취득할 수 있게 하고 있다. 그런데 이상한 현상이다. 사업장에는 일할 사람을 찾는 구인 광고들이 너무나 많지만 정작 일할 사람은 없다고 하는데, 반면에 사회에는 일을 하고 싶은데 일자리를 찾기 어렵다는 사람들이 널려 있다. 구인·구직의 연결고리가 하나로 되어 있지 않다는 뜻이다. 이것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

이주여성들은 강사로 일하거나 센터에서 계약제로 일하는 경우가 흔하다. 서울시에서 몇 년 동안 결혼이민자 대상으로 취업 박람회를 여러 차례 개최했다. 그러나 사무적인 일이나 통번역, 의료 코디네이터 등 한국어 실력이 어느 정도 있어야 취업 가능한 일자리가 대부분이었다. 채용하고자 하는 대상 국가도 다양하지 않았다.

물론 이주여성들 중 한국말을 잘하는 이들도 많지만 초기 입국자는 한국어 능력이 채용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취업 박람회 폭을 넓게 잡아 여러 기관들과 협력해 더 많은 일자리를 제공하면, 더 많은 사업장에서 필요한 사람을 찾고 더 많은 사람들이 찾던 일자리를 갖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산업인력공단을 통해 속옷 공장에 현장 통역을 나갈 때 경영자 한 분이 이렇게 말했다. “현재 직원들 중에 한국 사람이 많지 않다. 40~50대 아줌마 몇 명인데, 한국의 젊은 사람들은 공장에서 일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외국인 근로자들을 고용하게 되는데, 그들은 일을 잘할 때쯤 되면 근로계약 만료로 본국에 돌아가야 한다. 한 이주여성 분이 일을 했었는데 아이가 너무 어려서 계속 일하기 어려워 그만둔 적도 있었다.”그분은 이주여성들이 한국에서 계속 생활하고 살면서 공장에서 일하면, 일 잘하는 분들을 승진시키기도 하며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싶어 했다. 앞으로 공장을 이끌어갈 사람들이 이주여성들이라고도 했다. 이주여성 중에는 아이들이 커서 시간적 여유가 있는 이들도 많다.

내가 아는 필리핀인 한 분은 공장에서 일하고 싶은데 아직까지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알바를 하면서 다닌다. 한 번은 구직 사이트를 통해서 이주여성을 고용한다는 공장에 전화를 한 적이 있었다. 담당자가 면접 보러 오라고 해서 금요일에 면접 보고 월요일부터 공장으로 출근하기로 했다. 월요일 공장으로 나갔다. 그런데 담당자가 다른 직원들과 얼굴이 좀 달라서 고용하기 어렵다고 돌려보냈다. 중국, 몽골, 일본에서 온 이주여성들은 외모적으로 한국 사람과 비슷하게 생겨서 일자리를 찾을 때 외모적으로 차별을 받진 않는다. 외모적으로 차별 받는 이주여성들은 아이들이 다 커서 시간 여유가 있어도 일자리 찾기가 쉽지 않다. 어느 공장은 사람을 못 찾고 있고, 어떤 사람은 일자리를 못 찾고 있으니, 모순적인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산업인력공단, 중소기업중앙회, 여성개발인력센터, 서울시 등 여러 기관들이 따로따로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보다는 하나로 협력해서 다양한 종류에 일자리를 제공하는 취업 박람회를 열면 더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고 더 많은 사업장이 필요한 사람을 채용할 수 있을 것이다.

내년 3월부터 초등학교 1~2학년 학생들 대상으로 ‘숙제 없는 학교’ 정책을 시행한다고 한다. 학부모로서 나는 무척 반가웠다. 우리 둘째가 초등학교 1학년인데 한글을 다 못 떼고 학교에 들어갔다. 좋은 담임선생님을 만나서 열심히 공부하며 친구들을 잘 따라가고 있다. 나는 한국에 와서 ‘선행학습’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 몽골에는 선행학습이라는 것이 없다. 한국에는 선행학습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학부모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선행학습을 한다고 해서 아이가 공부를 잘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공부를 잘하는 방법은 선행학습이 아니라 복습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은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부터 아이들이 학원을 다니는 등 너무 바쁘게 하루를 보낸다. 수업이 끝난 뒤 학교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은 손가락으로 뽑을 만큼 적다. 학교 공부가 끝나면 친구들이랑 뛰어놀며 스트레스를 풀고 새로운 에너지도 얻어야 하는데 아이들한테 그럴 시간이 없다는 게 너무 놀랍다. 중·고등학생들이 학교 끝나고 학원가서 밤 11시는 되어야 집에 들어온다는 얘기를 듣고 너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중·고등학교는 수업도 늦게 끝나고 의무적으로 동아리 활동도 해야 한다고 했다. 우리 집 아이들이 중·고등학생이 되어서 학교 갔다 학원 끝나고 밤 11시 집에 돌아올 걸 생각하면 눈앞이 캄캄하다.

부모들이 아이를 키울 때 학비가 많이 들어서 힘들다며 아이를 한두 명밖에 낳지 않는 경향이 있다. 정부에서 아이를 낳으면 양육비를 지원하고 임산부한테 진료비도 지원한다지만, 이 정책이 출산율을 늘리는 데 크게 효과를 얻지 못하는 원인이 다름 아닌 학비인 것 같다.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갈 때부터 부모의 의지에 따라 여유 시간 없이 뭔가에 쫓기는 생활을 하다 보면 고학년에 올라가 부모의 말을 듣지 않는 경우가 생긴다고 한다. 누구든 이런 말을 한 번쯤 들어보았을 거다. “그 학생은 공부도 잘하고 부모님 말도 잘 듣는 착한 아이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부모님 말도 잘 안 듣고 공부도 안 하더라.” 이것은 어렸을 때부터 마음의 여유, 시간의 여유 없이 살다가 지쳐서 나온 문제이다. 이런 학생이 더 많이 늘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부모가 무엇을 해야 할까?

어렸을 때부터 너무 많은 것을 시키지 않아야 한다. 사람이 아무리 많은 것을 배워도 마음에 병이 생기면 오래 가지 못한다. 마음이 건강한 사람은 얼마든지 무엇이든 배울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어른들이 바뀌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 아이들 학교생활이 즐거워진다.

인터넷에서 우연히 서울 강남의 어느 초등학교에 다니는 학생의 방학 일정표를 보았을 때 나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새벽 5시 30분부터 밤 11시까지의 일정이 짜여 있었다. ‘이건 진짜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의 잘못일까, 사회의 잘못일까? 답은 어디에 있을까?

이주여성들은 고등학교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몽골에는 고등학교, 일반학교, 직업학교만 있다. 한국의 고등학교는 자율형, 사립고,일반고, 특목고, 자공고, 마이스터고, 외국어고, 특성화고 등등 아주 다양하다. 중학교 3학년을 자녀로 둔 다문화 어머니들의 고민이 깊어진다. 다문화가정 부부들 중 남편이 나이가 많고 아이들 교육에 대해 잘 모르는 경우에는 아내한테 알아서 하라고 한다. 아내도 잘 모르면 아이가 혼자서 결정해야 한다. 물론 학생 자신의 생각이 우선이지만 부모와 상의하고 선택하는 게 좋은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 어떤 고등학교를 선택해 가느냐에 따라 자녀의 진로가 결정될 수 있기 때문에, 중학교 다닐 때 잘 알아보고 본인에 맞는 학교를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안타깝게도 이주여성들 중에는 한국 교육에 대해서 모르는 경우가 많다. 아는 것이 힘이라는 말이 있다. 교육에 대한 생각과 지식의 폭을 넓혀야 한다. 그래야 아이와 대화하면서 아이가 본인에게 맞는 진로를 선택할 수 있게 도울 수 있다.

한국 엄마들은 아이가 직업고등학교에 가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대화를 통해서 느꼈다. 난 생각이 좀 다르다. 자녀가 공부 쪽으로 가는 것을 바라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을까. 부모는 누구나 아이가 좋은 대학교 가고 좋은 직장 다니길 바란다.

하지만 현실은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일반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직업도 없이 알바하거나 막노동하는 것보다, 직업고등학교를 졸업해 직장에 다니면서 전문대학교를 다닐 수도 있다. 뉴스에서 대학생 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는 것을 들었다. 원인이 무얼까? 구인 광고를 보면 대학 졸업 이상 조건을 자주 볼 수 있다.

다문화가정에 대한 편견을 가진 이도 있지만, 편견 없이 바라봐주는 이들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다문화가정을 특수한 존재로 취급하지 말고 선주민과 이주민이 어울려 소통하는 기회가 늘어났으면 한다. 요즘엔 학생들 대상으로 다문화문화 이해 교육을 많이 한다. 어느 학교에서 ‘다문화 이해’ 수업 시간에 방송으로 다문화 아이들만 모이라고 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전반적으로 좋은 방향으로 달라지고 있지만 간혹 그런 학교도 있다. 다문화 이해 수업의 목표는 서로 잘 소통하고 잘 이해하고 잘 어울려 사는 것이다. 다문화가정 학생만 따라 불러서 교육을 시키거나 프로그램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다문화 교육을 할 때 그 나라 문화를 알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국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소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문화 수업을 하면 전통의상을 입고 음식을 소개하곤 한다. 실제로는 한국 사람들과 똑같이 생활하는 가정이 대부분이다. 나라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몽골에서 온 이주여성의 가정은 한국의 일반 가정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다. 몽골이라고 하면 다 전통의 집 게르에 살고 말 잘 타는 걸로 알고 있지만 몽골의 도시 생활은 한국의 도시 생활과 똑같다.

나는 몽골문화 수업을 할 때, 특히 나이 어린 학생들의 수업에 들어갈 때는 처음부터 전통 의상을 입히지 않는다. 첫 인상이 중요하기에 처음부터 다르다는 생각을 주는 것은 좋지 않다. 나는 너희들과 다를 것이 없고 몽골에서는 이렇게 저렇게 생활했지만 한국에서는 너희들과 똑같이 산다는 것을 더 알리고 싶어 한다. 방송에서 유럽 사람들이 나오면 ‘글로벌’이라고 하고 아시아 사람들이 나오면 ‘다문화’라고 할 때가 있다. 명백한 차별이다. 같은 외국 사람인데 왜 이렇게 말할까? 이것도 동일하게 해야 한다.

한국 속담에 ‘뿌린 만큼 거둔다’는 말이 있다.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온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주여성들이 처음엔 한국말도 모르고 아는 게 별로 없어서 힘들어 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한국말을 배우고 생활하면서 하나둘씩 해결된다. 어느 누구든 다른 나라에 가서 살면 적응 기간이 필요하다.

한국 엄마들이랑 스스럼없이 지내다 보면 좋은 분들이 많다. 아이들 교육에 관심이 많고 정보도 많이 알고 있어서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어 공부도 당연히 해야 하지만, 이주여성 본인 스스로 외국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거리를 두지 않아야 한다. 한국말이 조금 서툴러도 먼저 다가가 서로 알게 되면 좋은 인연이 될 수 있다.

내 아이들을 위해서 당연히 엄마가 먼저 움직이며 노력해야 한다. 본인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에 도전하여, 비록 한국 엄마들과는 언어와 문화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실패와 역경을 두려워하지 않고 계속 전진해 나가는 씩씩한 모습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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