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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전문가 에세이] III-1. ‘다름’의 가치들이 빚어내는 ‘다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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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링크이주민통번역협동조합보도일 2016.09.30

요 약

이 글은 ‘행복 한국사회’를 주제로 링크이주민통번역협동조합(이하 링크) 임원진 5명이 세 차례에 걸쳐 나눈 대담을 정리한 것이다.

링크이주민통번역협동조합은 통번역 전문 역량을 갖춘 이주민들이 직접 출자하고 운영하는 전국 최초의 이주민 주도형 직원협동조합이다. 2016년 3월 창립총회 후 4월 출범식을 열고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하였으며, 8월말 현재 13명의 정조합원과 30명의 예비조합원이 이주민을 위한 공익적 통번역 지원과 함께 지자체, 의료기관, 연구기관, 일반기업 등의 의뢰에 따른 전문 통번역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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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텍 박태준미래전략연구소는 2016년 실사구시적인 미래전략연구 주제의 하나로서 ‘더 행복한 한국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가장 중요한 과제가 무엇인가’를 선정하였으며, 토박이 한국인이 아닌 분들의 목소리를 경청해보는 것이 더 객관적이고 효과적일 수 있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한국에 대해 잘 알고 있는 필자들은 ‘한국사회의 행복문제’를 어떤 시각으로 읽어내고, 이에 대해 어떤 대안을 갖고 있을까요?

<21개국 36인이 참여한 에세이를 엮어 '대한민국 행복지도' 미래전략연구총서(4)으로 발간되었습니다.

→ 미래전략연구총서4 '대한민국 행복지도' 도서보기

목 차

‘다름’의 가치들이 빚어내는 ‘다양성’

- 링크이주민통번역협동조합

구성원: 남인선(중국. 난런샨), 이하연(베트남. 레티화이), 이수연(네팔. 꾸마리구룽), 산타테레시타벨라데마낭안(필리핀), 한아름(협동조합 이사)

이 글은 ‘행복 한국사회’를 주제로 링크이주민통번역협동조합(이하 링크) 임원진 5명이 세 차례에 걸쳐 나눈 대담을 정리한 것이다.

링크이주민통번역협동조합은 통번역 전문 역량을 갖춘 이주민들이 직접 출자하고 운영하는 전국 최초의 이주민 주도형 직원협동조합이다. 2016년 3월 창립총회 후 4월 출범식을 열고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하였으며, 8월말 현재 13명의 정조합원과 30명의 예비조합원이 이주민을 위한 공익적 통번역 지원과 함께 지자체, 의료기관, 연구기관, 일반기업 등의 의뢰에 따른 전문 통번역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내 용

[2016 전문가 에세이] III-1. ‘다름’의 가치들이 빚어내는 ‘다양성’

링크이주민통번역협동조합

링크이주민통번역협동조합

아름 오늘부터 링크이주민통번역협동조합(이하 링크) 임원 여러분들과 3번에 걸쳐 ‘행복 한국사회’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눠보려고 합니다. 저희 협동조합에 이런 질문이 온 것은 이주민, 그 중에서도 결혼이주여성의 시선으로 바라본 한국사회와 행복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자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결혼이주민으로서 한국사회에서 살아온 경험을 통해 한국사회가 좀 더 행복해지기 위해 풀어야 할 과제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 또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행복한 한국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한 해법에 대해서도 함께 궁리해 보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수연 그런데 행복에 대한 각자의 생각이 다를 것 같아요. 행복한 한국사회를 말하려면 먼저 행복에 대한 생각부터 짚어봐야 하지 않을까요?

인선 저는 행복을 생활 속의 만족과 기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려면 우선은 경제적인 토대가 있어야 한다고 봐요. 어린 시절에는 친구들과 콩 한 쪽을 나눠먹으면서도 행복할 수 있었지만, 나이가 들고 철이 들면서 특히 내 가정을 꾸리고 부터는 가족들의 생활과 아이들의 미래를 책임져야 하는 만큼 아무래도 물질적인 부분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더라고요.

그런 의미에서 한국은 기회의 땅이었어요. 저는 중국 심양의 코리아타운이라고 할 수 있는 서탑 지역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한국문화를 접할 기회가 많았습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비춰지는 한국은 정말 천국 같았어요.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 저희 어머니께서 한국에 일을 하러 가신 적이 있는데, 그때 어머니 말씀이 한국은 참 깨끗하고 살기 좋은 곳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도 어른이 되면 한국에 가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요.

동포라고는 해도 중국에서 한국 비자 받기가 몹시 어려운데, 회사생활을 하다 파견근무로 한국에 올 기회가 생겼습니다. 공항에 발을 딛는 순간, 어머니 말씀대로 한국은 정말 깨끗한 곳임을 실감했습니다. 하늘도 중국에서 보던 회색이 아니라 파란색이었고, 공기도 맑고, 길가도 꽃들로 장식되어 있었어요. 흰 양말을 신어도 하루 종일 까매지지 않을 정도였으니까요. (일동 웃음) 그땐 정말이지 한국에서 계속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테스 저도 어릴 때 너무 가난해서 무조건 해외로 나가서 돈을 벌어서 가족을 부양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저뿐만 아니라 제 주위의 필리핀 사람들 대부분이 해외로 일하러 나가는 게 꿈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고 필리핀에서 보낸 어린 시절이 불행했던 것도 아니고 필리핀 사람들이 불행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지만,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아이들이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필리핀 사람들은 내 아이나 조카들의 교육을 위해서, 또 고생하신 부모님의 노후를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드리고 싶어서 해외로 이주노동을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저는 대학교 다닐 때 필리핀에 어학연수 온 남편에게 영어 과외를 해주다 사랑에 빠지는 바람에, 이주노동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결혼이주를 하게 되었지만요. (웃음)

저도 처음 결혼해서 한국에 왔을 때는 무조건 한국이 필리핀보다 좋았습니다. 시설도 그렇고, 교통도 그렇고, 환경도 좋았고요. 필리핀과 비교하면 한국은 생활이 몹시 편리하고 안전한 사회입니다. 빈부격차에서 상대적인 불평등과 예외적인 상황들은 있지만, 심각한 수준의 절대적 빈곤찾아보기 어렵지요. 여전히 부족한 점들이 많겠지만 한국사회는 사회구성원의 행복을 키우는 방향으로 애써왔고, 구성원 역시 자기만의 행복이 아니라 이주민을 포함한 사회 전체의 행복을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한국에서 사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한국 사람들은 별로 행복해 보이지가 않아요. 처음에는 왜 한국 사람들은 경제적으로 더 못 사는 필리핀 사람들보다 잘 웃지 않고 자유롭게 행동하지 못하는지 이해가 잘 안 되었어요. 그런데 여기서 20년쯤 살다 보니까 이해가 되는 부분이 있어요. 한국 사람들은 쉽게 만족하지 않고, 스스로 만족감을 표현하는 데도 인색해요. 너무 완벽한 목표를 세우고, 계속 목표를 향해 달리면서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이나 만족을 누리지 못하는 것 같아요. 한국사회의 ‘빨리 빨리’가 빠른 경제적 성장과 민주화에 도움이 되었겠지만, 충분히 풍요롭고 행복을 표현해도 좋을 것 같은 지금도 뭔가 더 높은 곳을 향해 달리고만 있는 것 같아요.

필리핀 사람들이 갖고 있는 공통적인 태도 중에 ‘해피 고 럭키(Happy! Go, Lucky!)’라는 것이 있어요. 어떤 사람은 필리핀 사람들이 깊게 생각하지 않고 게으르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작은 것에도 쉽게 기뻐하고 만족감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태도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한국에서는 행복이 표현해선 안 되는 비밀인가요? 기쁘고 즐거운 마음, 나의 행복을 편하게 표현하고 또 주위 사람들과도 나눌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말이죠.

아름 듣다 보니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한국 속담이 생각납니다. 남이 잘 되면 속이 상한다는 말인데, 사촌은 아예 타인도 아니고 가까운 친척인데도 누군가에게 좋은 일이 생기면 함께 기뻐하고 축하해주기보다, 나에게 좋은 일이 생기지 않은 것을 속상해하고, 내가 못 가진 것을 가진 사람을 시기하고 미워하기까지 하는 마음이 있는 것 같아요. 물론 다른 문화권에도 비슷한 속담이 있겠지만, 많은 한국인들이 물질적 풍요를 누리면서도 행복하다고 느끼지 못하는 데에는 상대적 박탈감이 중요한 요인인 것 같아요. 그리고 행복에 대한 자신만의 기준을 갖지 못하고, 늘 남과 비교하고 남보다 잘나야 한다는 생각을 강박관념처럼 갖는 것도 문제인 것 같고요.

하연 저는 비교가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경제적으로나 일에 있어서나 자신의 목표를 갖고 노력하는 가운데 주변 사람들과 비교를 통해 자신이 이룬 것을 돌아보고, 좀 더 나은 삶을 향해 나아가는 자세는 개인의 발전을 위해서도 좋지 않을까요? 이만하면 충분하다고 쉽게 만족해버린다면 발전이 없을 것 같아요. 물론 욕심을 지나치게 부리면 안 되겠지요. 자신의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목표를 세우고, 너무 격차가 많이 나는 사람들과 자신의 상황을 비교하면 오히려 스트레스만 받고 역효과가 날 수 있으니까, 자신의 능력에 맞는 목표를 세워야겠지요.

제 경우도, 함께 일하는 선배와 동료들을 보면서 한국어 실력이나 통번역 분야의 전문성을 더 키워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자기발전에 도움이 됩니다. 또 두 아이의 엄마로서, 아이 또래의 주변 가정들과 비교해서 크게 모자람 없이 아이들을 교육시키고 미래도 준비해가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한국사회에서 이주민으로서 사는 우리는 한국에서 태어난 사람들과 비교해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습니다. 저와 같은 이주여성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이주민으로서 자신이 가진 장점을 발전시켜 나가야지 한국어가 부족하다든지 하는 단점만 의식하면서 고개 숙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또 모든 것이 낯설고 어려운 초기에야 가장 가까운 사람인 남편을 의지하기 마련이지만, 언제까지나 남편에게만 의지하지 말고 스스로 일어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주여성들이 한국으로 결혼이민을 할 때 상대적으로 가난한 친정에 경제적인 보탬을 주고 싶어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삶의 자리를 옮겨 한국에서 가정을 꾸린 이상 한국에서의 삶과 자기 가정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이주여성들의 남편과 시가족이 이주여성들에 대해 ‘돈 때문에 시집왔고, 돈만 벌면 가출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주변에서 보게 되면, 이주여성 스스로가 여러 가지 이유로 한국에서 자기 삶의 중심을 잡지 못한 경우도 많다는 점을 알게 됩니다. 가족끼리 서로를 믿지 못하고 의심하는 상황을 맞지 않으려면, 이주여성 스스로가 한국에서 자기 삶의 중심을 잡고 실력을 키워야 합니다. 자기 능력으로 경제활동을 하게 되면, 내 가정에도 보탬이 되고 크게는 아니라도 친정에도 당당하게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수연 제 주변에도 고향에서보다 경제적으로 잘 살고 싶다는 생각으로 한국으로 온 이주여성들의 경우, 생활환경이 기대에 못 미치면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고향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 네팔을 보면 한 마을에 몇 사람은 해외로 이주노동을 가거나 결혼이민을 한 사람들이 있어요. 해외에서 어렵게 번 돈으로 고향의 가족들에게 송금을 하는데, 한국의 물가나 이주민으로서 사는 어려움을 알지 못한 채로 보내주는 돈을 받기만 하는 사람들은 점점 더 많은 것을 원하게 되는 것 같아요. 옆 마을에 누구는 땅을 사고, 집도 새로 지었는데 우리 집은 그렇지 못하다거나, 뒷집에 누가 아이폰을 샀는데 나도 갖고 싶다거나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좀 더 보탬이 되고 싶은 마음이 들다가도 한편으론 여기 상황도 모르고 쉽게 하는 말들에 속이 상하기도 합니다. 결국 어디에서 살든 자신의 환경에 적응하고, 만족할 수 있어야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주민의 경우 처음에 어떤 기대를 품고 왔든지 지금 한국에서 살고 있는 이상, 한국에서의 삶에 얼마나 잘 적응하고 한국사회에서 자신의 자리를 스스로 만들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행복과 불행이 갈린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낯선 환경에서 말도 통하지 않고,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을 새로 배우고 익혀 나가는 것이 무척 힘들었습니다. 생활방식이나 문화적으로 고향에서의 방식과 여기 방식이 달라서 생기는 어려움들이 많았지요. 예를 들면, 어른을 공경하는 마음은 같아도 그걸 표현하는 방식이 다르고, 명절이나 제사 때 너무 형식적인 부분들을 강요하거나 같은 가족인데도 무조건 여성은 기다리고 참고 보살펴야 한다는 부분들이 잘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가족이나 친척, 심지어 친하지 않은 사이인데도 개인적인 일들에 대한 간섭과 참견이 좀 심한 것 같아요. 제가 이주민이라서 더 그런지 모르겠지만, 지하철에서 처음 보는 사람이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부터 시작해서 아이는 있느냐, 왜 아이를 안 낳느냐, 남편은 뭐하냐, 월급은 얼마냐까지 아무렇지도 않게 물어보는데, 정말 황당해서 말이 안 나오더군요. 나와 다른 타인의 삶의 방식을 존중하는 태도, 그건 기본적인 예의라고 생각하는데, 한국사회에는 아직 기본예의조차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은 것 같습니다.

아름 결혼하지 않은 삼십대 여성으로서 명절은 한국에서 나고 자란 제게도 마냥 편하기만 한 자리가 아닌데요, 개인의 삶에서 정말 중요한 문제인 결혼이나 출산에 대해 누구보다 제 자신이 많은 생각과 고민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 년에 한두 번 만나는 친척들이 너무 쉽게 제 인생에 참견하는 이야기를 듣는 것은 정말 고역입니다. 제 남동생은 일반기업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퇴사를 결심하고 서른이 넘어서 공무원이 되었는데요,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몇 년 동안 친척들 만나는 자리를 되도록 피하는 눈치였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취업난이 심각한 요즘 같은 때 취직을 못했다고 사회관계가 단절되는 현실을 납득하기 어렵지만,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학업, 취업, 소득 등에 있어서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일정한 기준에 못 미친다는 생각에 괴로워하고 심지어 목숨을 끊기도 합니다.

OECD 가입국 중에서 한국이 10년 넘게 자살률 1위를 기록하고, 어린이와 청소년의 행복지수와 출산율이 꼴찌를 면치 못하는 것도 이런 사정과 무관치 않아 보입니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현재의 행복을 미루고 장시간의 노동을 견디는 가장들, 맞벌이에 자녀 교육까지 책임져야 하는 주부들, 수면시간까지 줄여가며 대입만을 준비하는 청소년들, 비싼 등록금 내고 대학 졸업장을 따도 학자금 대출을 갚을 수 있는 직장에 취업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인 청년들, 국민소득은 3만 달러를 바라본다는데 폐지 줍는 노인들이 도시의 거리를 배회하는 한국을 과연 행복한 사회라고 할 수 있을까요?

오죽하면 ‘헬조선’이라는 신조어가 생겼을까요. 좀 더 나은 삶을 위해 이 땅을 찾는 이주민들이 늘고 있는 한편에서는, 더 나은 미래를 꿈꿀 수 없는 절망 속에서 한국을 떠나고 싶어 하는 젊은이들과 극단적인 선택으로 삶을 포기하는 이들이 공존하는 것이 지금 한국의 현실인 것 같습니다.

저는 한국사회의 불행이 경제 성장을 위해 개발과 경쟁만을 앞세우면서 그런 시절에 다양한 삶의 가치들에 관심을 두지 못한 데서 기인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개인마다 능력과 개성이 다른데도, ‘다름’은 존중되지 않고, ‘잘 살아보자’는 유일한 목표를 향해 달리는 무한경쟁에서 옆 사람을 돌아볼 여유가 있을 수 없지요. 경쟁에서 밀려난 사람에게 재기의 기회가 잘 주어지지도 않을뿐더러, 실패의 원인을 개인의 무능으로 돌리는 인식이 팽배한 탓에 실패를 경험한 사람은 격려와 응원이 아니라 무시와 조롱의 대상이 되기 십상입니다. 더 큰 문제는 경쟁과 성과 중심의 인식이 한국사회 구성원들에게 내면화되어 있기 때문에, 작은 실패에도 쉽게 절망하고 자존감이 상하고 낮아진 것으로 인한 모멸감을 자기보다 더 약한 사람을 향한 폭력으로 분풀이하는 경향이 위험수위를 넘고 있다는 것입니다.

테스 자존감과 자존심은 다른 것이지요? 제 생각에 한국 사람들은, 한국이 넘버원이어야 한다는 자존심이 너무 강한 것 같아요. 필리핀 출신 이주여성인 이자스민 씨가 국회의원일 때, 다른 국회의원들과 마찬가지로 잘한 일도 있고 잘못한 일도 있을 텐데, 그를 비난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단지 그가 이주민이라는 이유로 그를 미워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았습니다. 아니, 그냥 외국인도 아니고 한국보다 못하는 나라인 필리핀에서 온 여자가 왜 ‘우리나라’ 국회의원을 하느냐, 한국말도 제대로 못하는데 무슨 국회의원이냐, 심지어는 남편도 죽었는데 필리핀으로 돌아가라는 말까지 있더군요. 이자스민 씨는 한국 국적을 취득했고, 한국에서 아이를 낳아 기르고 있는 엄마로서 다양한 활동을 하다가 인지도를 얻어서 이주 배경 사회구성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역할로 국회의원이 된 건데, 그게 그렇게나 많은 욕을 먹어야 하는 건지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물론 이자스민 씨가 국회의원직에 있을 때 한국사회와 이주민을 위해 좀 더 많은 역할을 해주었으면, 귀중한 기회를 얻은 만큼 최선을 다해 훌륭한 롤모델이 되어 주었으면 하는 기대에 비추어 아쉬운 점도 있지만, 이제는 우리들이 뒤를 이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 제가 정치를 하겠다는 말은 아니니 오해는 마세요. (일동 웃음)제가 한국에 온 것이 올해로 23년째인데요, 어느덧 필리핀에서 산 시간보다 한국에서 살아온 세월이 더 길어졌지만 아직도 한국사회가 저를 온전히 한국 사람으로 받아들인다는 느낌은 못 받아요.

외모가 다르니까 어딜 가도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묻고, 어쩌다 한국 사람이라고 대꾸하면 농담하지 말라는 식입니다. 국적은 한국으로 바꾸었지만 부모님이 주신 이름은 간직하고 싶어 개명하지 않았는데, 어딜 가나 왜 이렇게 이름이 기냐, 불편하지 않냐, 왜 한국이름으로 안 바꾸냐고 물어요. 링크가 협동조합을 만들고 등록하는 과정에서도 구청에서 이사장인 제 이름을 잘못 기재하는 바람에 재발급 받으러 갔는데, 구청의 행정 실수마저도 제 이름이 긴 탓을 해요. (웃음) 지금은 마음의 여유가 생겨 웃고 넘기지만, 이제 막 한국생활을 시작하는 이주민들에게는 이런 사소한 일들이 높은 벽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한국사회가 이주민을 받아들인 지 2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이주민을 받아들을 준비가 안 된 것 같다고 할까, 이주민과 어떻게 더불어 살아가야 할지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일손이 부족해서 이주노동자들을 받아들였지만 이주노동자는 회사를 마음대로 옮길 수 없다고 엄연한 차별을 인정하는 법이 그대로이고, 한때 결혼하는 10쌍 중 1쌍이 국제결혼이었을 정도로 결혼이주여성들이 많이 들어왔고 그 아이들이 한국 국민으로 자라고 있음에도 ‘다문화가정’이라는 말이 오히려 구분과 낙인의 상징이 되어버렸지요. 물론 과거에 비하면 정말 많이 나아졌지만, 아직도 차별은 남아 있고 외환위기(IMF사태) 때나 요즘처럼 경제가 어려워지면 외국인혐오 같은 게 더 심해지는 것 같아요.

인선 중국 동포인 저는 한국에서 다른 나라 출신의 이주민들보다도 더 심한 편견을 경험했을 때 큰 충격을 받았어요. 주변 사람들이 제 말투를듣고 조선족이라 얕본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말을 하기가 두렵고, 사람들과 관계 맺기가 무서워서 결혼하고 몇 년간은 거의 집에만 틀어박혀 살았어요. 한국이 살기는 좋지만, 어떻게 적응해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그래서 어딜 가도 조선족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열심히 한국어를 배우고 익혔습니다.

이제는 어디서건 두려움 없이 말할 정도가 되었지만, 사회적 편견 때문에 여전히 아이 또래 학부모들이나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제가 중국 출신이라는 말을 쉽게 못합니다. 혹시라도 아이들한테 좋지 않은 영향을 줄까봐 두려워서요. (눈물) 중국 출신이라도 한족은 특별한 편견 없이 대하는 것 같은데 조선족이라고 하면 마치 사기꾼, 살인자, 인신매매범 같은 범죄자들의 집단처럼 보는 시선이 느껴집니다. 조선족을 조롱하는 개그 프로그램이나, 범죄사건의 피의자가 조선족임을 부각시키는 뉴스도 불편하지만, 특히 인터넷 댓글은 조선족에 대해 안 좋은 얘기들이 너무 많아서 혹시라도 아이들이 볼까봐 전전긍긍합니다. 한국사회는 조선족을 같은 동포라고 하지만 더 차별적인 태도로 대하는 것 같습니다. 재미동포나 재일동포는 한국 입출국도 자유로운데, 재중동포는 비자 받는 것부터가 어려우니 동포들 간에도 차별이 있지요.

가난해서 돈 벌러 온다며 무시하는 것은 물론이고 국적이 중국이라는 이유로 무슨 매국노처럼 대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결혼해서 한국 국적을 받고 내 나라라고 생각하며 10년을 살았지만 조선족에 대한 여전한 차별, 편견을 느낄 때면 정말 여기가 내가 있을 곳이 맞는지 혼란스럽습니다.

하연 언니가 동포여서 어려서부터 한국어와 중국어를 할 수 있어서 좋았겠다고 생각했는데, 동포에 대한 편견 때문에 그런 어려움이 있는 줄은 미처 몰랐어요. 하지만 어렵더라도 아이들이 엄마의 출신국 때문에 위축되는 일이 없도록 좀 더 힘을 냈으면 좋겠어요. 저는 아이들이 친구나 선생님 앞에서 엄마가 베트남 출신이라고 말하고, 그래서 베트남어도 할 수 있다고 말할 때 정말 행복하거든요.

사실 지금 유치원에 다니는 큰 아이가 처음에는 베트남어 배우는 걸 싫어했어요. 베트남식 이름도 지어줬는데 그 이름으로 부르면 대답도 안하려고 하고요. 아이가 ‘나는 한국에서 태어났는데 왜 베트남 사람이냐, 엄마는 베트남 사람인데 왜 한국에 왔냐’고 따지기도 했지요. 하지만 지금은 학원 친구가 ‘너희 엄마는 외국 사람이네’라고 놀리듯이 말해도, 딸은 ‘그래서 나는 한국말도 할 줄 알고 베트남말도 할 줄 안다’고 당당하게 이야기할 정도가 되었어요. 얼마 전 급한 일로 베트남 환자 분 통역을 하러 병원에 갈 일이 있었는데, 아이를 맡길 데가 없어서 같이 데려가서 통역을 진행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아이가 그 이야기를 유치원 친구들과 선생님께 자랑했다고 하더라구요. 우리 엄마는 한국말과 베트남말을 할 수 있어서 병원에 가서 통역도 하고 다른 사람을 도와준다고요.

테스 우리 아이들이 ‘우리 엄마는 외국에서 왔어, 이주여성이야’라는 얘기를 숨길 필요도 없고,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는 날이 어서 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처음에는 제가 아들 학교에 가는 것이 아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까봐 걱정했는데, 아들은 엄마가 학교에 오는 게 더 좋다고 하더라고요. 자기는 엄마 아들이고 아빠보다 엄마를 더 닮았다고 하면서요. 남편도 아들이 혹시 왕따 같은 걸 당하지 않을까 걱정하는데, 아들이 상관없다고 하길래 앞으로는 더 자신 있고 당당하게 자신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게 행동하라고 격려해줬어요.

이주 배경을 가진 아이들이 한국사회에서 당당하게 살아가려면, 이주여성들의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이주 정책은 이주민에 대해서도 이주노동자, 결혼이주민, 유학생, 난민, 미등록 이주민 등으로 카테고리를 나누고 따로 분리하는 방식을 취하는 것 같아요. 다른 이주민에 비해 결혼이민자들에게 상대적으로 많은 예산을 지원하는 것도 불공평하지만, 다문화가정만 따로 분리해서 의료비나 보육료, 급식비 같은 것을 주는 방식은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아이 급식비를 못 낼 정도로 가난한 것도 아닌데, 단지 다문화가정이라는 이유로 우리 아이만 따로 무료급식 대상이 되는 것을 저는 원치 않아요. 다문화가족에 대한 일방적인 지원이 오히려 다른 사회구성원들에게 반감을 불러일으키고, 아이에게도 자기는 뭔가 부족한 집의 아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도 문제고, 이주여성들이 뭔가를 자꾸 받기만 하는 데 익숙해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듭니다. 저는 링크가 만들어지기 전까지 링크의 모법인인 ‘(사)이주민과 함께’에서 20년 가까이 자원봉사활동을 하면서 필리핀 출신의 이주노동자를 도왔는데, 받아서 좋은 것보다 줄 수 있는 기쁨이 더 크기 때문이었어요. 이주여성들이 자신이 가진 능력을 인정받고, 펼칠 수 있다면 한국사회에도 훨씬 힘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김치 담그기나 합동결혼식은 이제 정말 그만해도 되지 않을까요? 그보다 중요한 건 이주여성들이 한국사회의 당당한 구성원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응원하는 것입니다. 이주여성에게 필요한 것은 공짜 상품권이 아니라 성장과 교육의 기회입니다. 기초 위주의 한국어 교육, 일방적인 사회통합교육, 이주여성의 욕구나 적성과는 무관한 한국요리조리사 보조 같은 취업교육 말고 실질적인 사회참여의 기회를 열어주는 정책이 필요합니다. 이를테면 한국의 대학으로 편입하는 유학생들을 위한 어학코스처럼, 이주여성들이 출신국에서 취득한 학력이나 자격 등을 일정하게 인정해주고, 한국사회에서도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연결과정을 마련한다든지, 금융이나 부동산처럼 한국생활에 필요한 생활정보에 대한 접근을 좀 더 쉽게 하는 서비스들이 생기면 좋겠어요.

인선 링크가 이주여성들의 힘으로 협동조합을 설립하는 도전을 할 때도, 공익재단에서 창업을 위한 실무교육과 창업지원금을 받은 것이 큰 힘이 되었잖아요? 그래서 저도 협동조합 회계세무라는 낯선 분야에 도전하게 되었고, 힘든 과정이었지만 노력의 결실로 부가가치세 환급을 받았을 땐 정말 뿌듯했습니다. 링크의 협동조합 출범을 보도한 TV뉴스에 제가 나오는 걸 보고 주변사람들도 알아봐주고, 특히 아이가 엄마를 자랑스러워 할 때도 참 기뻤고요.

하연 저희 아이도 제가 TV에 나왔다고 어린이집에 가서 자랑을 했다던데. (일동 웃음) 정말이지 아이들이 엄마의 출신국이 어디라는 것 때문에 위축되지 않을 수 있어야 행복한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엄마들도 계속 노력해야겠지만, 학교에서도 다문화가정의 아이들이 밝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교과서 속의 차별적인 내용을 수정하고, 영어처럼 엄마나라 언어들을 좀 더 폭넓게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좋겠어요. 지금도 방과후수업으로 이중언어교실이나 다문화수업이 있기는 하지만, 좀 더 포괄적으로 정규 교육과정에 다양성과 인권에 대한 교육이 포함되기를 바랍니다.

수연 저도 링크에서 일하면서 한국사회에 제 자리가 생겼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물론 부족한 점이 많지만 앞으로 계속 보완해가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협동조합에 출자를 하고, 임원으로 참여한다는 것은 분명 쉽지 않은 도전이었지만, 도전하는 모습을 좋게 봐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관심도 많이 받게 되고 앞으로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사회에서 큰 역할을 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뭔가 할 수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이고, 다른 이주민들도 좀 더 인정받을 수 있도록 제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도 생각하게 됩니다.

테스 저도 처음 링크이주민통번역협동조합의 이사장직을 맡아달라고 했을 때는 과연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지만, 지금은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고 씩씩하게 자신을 성장시켜가는 동료들과 함께 하기를 참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좀 더 행복한 한국사회를 위해서는 이주민들 스스로의 노력도 필요하겠지요? 한국사회가 이주민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해주기를 바라는 만큼, 이주민들 스스로 자신의 정체성을 당당하게 여기며 자신이 갖고 있는 ‘다름’에서 가치를 발견하고 성장시켜가는 노력이 중요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링크 조합원 중에서 이사장인 제 한국어 실력이 제일 부족한데, 앞으로는 더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 (일동 웃음)

아름 ‘차이’를 ‘차별’의 근거로 삼는 대신, ‘차이’에서 ‘다름’의 가치를 발견하고 그걸 성장시킨 ‘다양성’의 풍요로움이 한국사회를 좀 더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링크가 협동조합으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 2016년도 얼마 남지 않았네요. 새해에는 한국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자신만의 가치를 발견하고 서로의 ‘다름’ 속에서 행복할 수 있기를 기원하며, 내년에는 새해 덕담으로 “부자 되세요!”나 “대박나세요!” 대신, “당신다운 삶을 응원합니다!”라고 말해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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