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본 제프리, 진카이, 야마구치 히데코보도일 2016.09.30

요 약
[젊은 세대의 개인 중심과 공익캠페인]
광고와 홍보를 통해 가정이 최우선이었던 한국의 문화적, 사회적 뿌리를 되찾는 것이다. 한국이 최빈국에서 선진국으로 변화할 수 있었던 건 교육과 근면정신을 중요시하던 굳건한 가족단위의 사회 덕분이었다. 지난 5~60년 동안, 그리고 그 이전의 긴 역사를 통해 한국은 역경을 극복할 역량이 충분하고 강하며, 회복력 있는 나라임을 보여주었다. 한국인들 또한 문제가 있을 때 명확한 길이 보이면 함께 뭉쳐서 헤쳐 나가는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구동존이(求同存異)의 ‘인지 공동체’를 건립하면]
한국(인)과 북한/조선(인), 그리고 중국인인 중국 조선족이 바로 그것이다. 이 세 집단 사이에도 ‘동질성’과 ‘이질성’이 교착하고 있다. 특히 현재의 남북관계가 한 치의 양보도 없는 대결 국면에 처해 있는 것을 고려하면 더욱 더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어쩌면 현재의 상황은 이런 사유를 가능케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만일 이 세 가지 신분 정체성 표식 사이에 서로 충분한 ‘동질성 인식’이 부재하게 된다면 지역 전체의 ‘인지’와 ‘정체성’ 문제를 어떻게 토론할 수 있을까?
[행복한 공동체로 나아가는 희망]
한국의 교육열이 높은 이유가 일류대학에 들어가면 대기업에 들어가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여유가 없는 가정은 사교육비도 못 쓰고 부모가 바쁘게 일을 하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신경 쓸 시간도 여유도 매우 부족하다. 그러므로 교육을 못 시키면 계속 가난하게 살아야 하는 악순환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인생 역전의 희망을 어떻게 가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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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텍 박태준미래전략연구소는 2016년 실사구시적인 미래전략연구 주제의 하나로서 ‘더 행복한 한국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가장 중요한 과제가 무엇인가’를 선정하였으며, 토박이 한국인이 아닌 분들의 목소리를 경청해보는 것이 더 객관적이고 효과적일 수 있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한국에 대해 잘 알고 있는 필자들은 ‘한국사회의 행복문제’를 어떤 시각으로 읽어내고, 이에 대해 어떤 대안을 갖고 있을까요?
<21개국 36인이 참여한 에세이를 엮어 '대한민국 행복지도' 미래전략연구총서(4)으로 발간되었습니다.
→ 미래전략연구총서4 '대한민국 행복지도' 도서보기
목 차
젊은 세대의 개인 중심과 공익캠페인 - 본 제프리(미국)
구동존이(求同存異)의 ‘인지 공동체’를 건립하면 - 진카이(중국)
행복한 공동체로 나아가는 희망 - 야마구치 히데코(일본)
내 용
[2016 전문가 에세이] II-3. 젊은 세대의 개인 중심과 공익캠페인외 2편
본 제프리, 진카이, 야마구치 히데코
젊은 세대의 개인 중심과 공익캠페인
본 제프리(미국)
지난 5~60년간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에서 선진국의 대열에 오르는 비약적인 성장을 이룩했다. ‘한강의 기적’으로 잘 알려진 한국은 한국전쟁 이후 전례 없는 성장을 기록하며 아시아에서 네 번째, 세계에서 열한 번째 경제대국이 될 수 있었다. 국제 원조 수혜국에서 공여국이 되었으며 G20의 회원국으로 전 세계에 소프트파워를 통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한국은 항상 많은 도전을 해왔고 아무리 힘든 상황도 극복해 냈다. 1960~70년대에 정부는 국민들과 힘을 합쳐 사회기반 시설을 건설했고 경제성장과 성공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토대가 될 산업기반을 마련했다. 이로 인해 삼성, LG, 현대 등 정부의 지원을 받은 가족 경영 기업, 대일청구권자금으로 시작한 POSCO 등 공기업들이 성장했고, 이들은 현재 세계적인 브랜드가 되었다.
같은 시기에 한국은 최고 수준의 교육제도를 확립해 대학을 설립하고, 고급 인력 육성에 매진했다. 높은 학력수준으로 잘 알려진 한국인들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하면 된다’라는 도전정신과 근면성으로 오늘날의 한국을 만들었다.
1980년대에 한국인들은 광주민주화운동 등 매우 고통스러운 역사적 격동의 시기를 경험했고, 그 뒤의 격렬한 시위와 정부의 탄압이 가득했던 시절을 극복해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그 시기에 한국인들이 의지와 힘, 희생으로 변화를 이끌어냈고, 그로 인해 한국이 1990년대에 더욱 민주적인 사회로 나아가기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1989년에 처음 한국에 발을 디딘 후 20년간 이곳에 거주하며 일을 한 외국인으로서 나는 많은 변화와 도전을 극복해나가는 한국의 모습을 직접 목격했다. 김영삼 대통령의 부정부패 척결 노력과 금융실명제부터 이명박 대통령의 ‘747정책’까지, 더 나은 한국을 위한 야심찬 노력들이 줄을 이었다. 세계적 위상이 높아진 한국은 1988년 서울올림픽, 2002년 월드컵, 2011년 세계 육상선수권 대회, 2012년 여수 엑스포와 G20정상회의 등 저명한 세계적 행사를 성공리에 개최했다. 2018년에는 2010년과 2014년에 걸친 두 차례의 시도 끝에 ‘하면 된다’의 정신을 보여주며 평창동계올림픽을 개최하게 된다.
아마도 최근 한국이 직면했던 가장 큰 위기는 1997~1998년 IMF사태가 아니었을까. 당시 한국은 원화가치 급락과 유동성 부족으로 큰 어려움을 겪었다. 이 시기에 한국은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약 600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지원받았을 뿐만 아니라, 보다 개방된 시장을 형성하기 위해 매우 까다로운 구조 변화를 시행했다. 여러 모로 힘든 시기였다. 하지만 한국은 다시 회복력을 과시하여 몇 년 사이에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부채를 갚았으며 결과적으로는 더욱 발전하게 됐다.
지난 50년간 다사다난한 일을 겪으며 한국은 경제성장과 성과를 이루어냈다. 그러나 세계 여느 선진국과 마찬가지로 그것은 쉽게 이룬 것이 아니었으며, 그로 인해 더 행복하고 번영한 사회로 나아가는 데 여러 가지 부작용이 생겨났다. 나는 20여 년의 한국생활을 바탕으로 현재 한국이 직면한 현안들을 평가한 후 가장 시급한 도전 과제에 대해 아래와 같은 분석을 해보았다.
낮은 출산율
가장 먼저 떠오르는 문제는 한국의 저출산과 고령화 사회로의 진입이다. 2014년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한국의 출생률은 1.19로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다. 지금처럼 저출산과 고령화가 계속되면 현재 5천만여 명인 한국의 인구는 계속 감소할 것이며, 2750년에는 멸종될지도 모른다.
한국사회에서 저출산의 주요 원인은 초혼 연령 상승과 양육비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이다. 이런 문제를 직면한 나라가 한국만은 아니지만 현재 한국은 적당한 해결책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밀레니엄 세대라 불리는 한국의 젊은 세대는 확고한 자신들만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듯하다. 이들은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는 것을 뒤로 미루는 경향이 있다. 부모와 함께, 또는 혼자 사는 기간이 길어지고, 자신의 일을 중요시하며,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나갈 수 있는 독립성과 자유를 추구한다.
한국은 자녀 양육비가 매우 높은 편이다. 특히 수능시험에 대한 스트레스와 압박이 과도한 사회 분위기 때문에 아이들 교육 비용이 더 많이 든다. 부모가 자녀의 성공을 위해 사교육에 큰돈을 쏟아 부어 경쟁력을 높여줘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의 젊은 세대는 그럴 수 있는 방법도 의지도 없기 때문에 결혼과 가정을 꾸리는 일을 미루거나 아예 포기해버린다.
정부는 유연근무제 및 양육비의 부분 또는 전액 지원, 심지어는 출산장려금제도 등 다양한 방법으로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하지만 자신들에게 중점을 두고 있는 젊은 밀레니엄 세대는 끄덕도 하지 않는다. 이 상황은 공동체 중심의 사회에서 개인 중심의 사회로 변화하고 있는 한국이 직면한 큰 난제이다.
한 가지 떠오르는 해결책은 국가 주도하에 장기적으로 진행하는 공익캠페인이다. 광고와 홍보를 통해 가정이 최우선이었던 한국의 문화적, 사회적 뿌리를 되찾는 것이다. 한국이 최빈국에서 선진국으로 변화할 수 있었던 건 교육과 근면정신을 중요시하던 굳건한 가족단위의 사회 덕분이었다. 당시에는 필요에 의해 가족에 중점을 두었지만, 한국 성장의 근본이 된 가족은 현재에도 공익캠페인을 추진하는 데 탄탄한 기반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근본적으로 현재의 인구수와 경제성장률을 유지해 한국의 성공을 지속시키고 이를 토대로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는 현재 정부의 노력과 결합해 그러한 공익캠페인이 많은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게 해야 할 것이다. 공익캠페인을 통해 가족의 가치, 아이들이 사회에 가져다주는 가치와 기쁨을 공유할 수 있다면 궁극적으로는 긍정적인 영향을 어느 정도 끼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높은 청년 실업률
현재 한국이 직면하고 있는 또 하나의 중차대한 문제는 높은 청년 실업률이다. 대학 졸업생들이 많은 지금 아르바이트나 인턴쉽 외에 일자리가 없다는 사실은 매우 비관적이다. 특히 한국의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밀레니엄 세대에게 이는 중요한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통계청에 의하면 2016년 5월에 9.7%였던 한국의 청년 실업률이 6월에는 10.3%로 상승했다.
신입사원을 고용하기 꺼리는 회사들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한국정부는 임금피크제를 중심으로 한 노동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이론상으로 이 제도는 청년층에게는 일자리를, 정년퇴임할 나이가 가까워지는 기성세대에게는 임금을 줄이는 대신 고용안정을 보장한다. 전문가들은 기업들이 상위 10%의 임금을 받는 직원들의 임금인상률을 1% 삭감하면 6만여 개의 청년 일자리가 창출될 수 있다고 분석한다. 이는 확실한 사회적 이득이다.
정년퇴임 시기를 연장하는 대신 퇴직연령대에 가까운 직원들의 임금을 삭감하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면 기업들은 잉여금을 활용해 창의적인 젊은 층을 고용하게 되며 보다 적은 금액으로 정년에 가까운 근로자를 유지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되면 실적이 낮은 직원들을 해고하는 일도 보다 쉬워져 생산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이론상으로 한국 정부는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지만,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방법을 계획하려는 노력이 있어야만 가능하다고 생각된다. 기업뿐만 아니라 퇴직 연령대의 직원들과 일자리를 찾는 젊은 층을 보호하는 법적 제도와 적절한 대응이 뒷받침되어야 임금피크제의 운영이 가능할 것이다.
청년 실업률에 대한 또 하나의 해결책은 중소기업과 창업에 대한 지속적인 개발과 지원이다. 한국인 직원 7~8명을 고용하는 소상공인으로서 나는 중소기업에 대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지원이 더욱 확대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바로 이곳에 미래 경제성장의 원동력이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서울글로벌센터와 서울글로벌창업센터는 현재까지 많은 지원을 해주었으며, 중앙정부 및 지방정부에서도 이러한 노력을 더욱 확대하여 대학을 졸업한 청년들에게 더 많은 기회와 일자리를 제공해야 할 것이다.
전통 풍습의 쇠퇴
마지막으로 내가 충격적으로 느낀 한국의 문제는 요즘 젊은 세대가 공공장소에서 행동하는 양식과 태도에 관한 것이다. 수백 년 간 유교사상과 계급제도로 이루어진 사회였던 한국에서 노년층을 대하는 젊은 세대의 태도는 점점 무례해지고 있으며 이로 인해 갈등과 싸움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 이는 내가 한국에서 지내는 동안 목격한 전통 풍습의 쇠퇴와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이런 세태는 자리싸움이 일어나는 지하철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교통약자석이 따로 마련되어 있지만, 일반좌석의 경우에는 서서 가기 불편한 노년층과 그들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 젊은이들 사이에 종종 갈등이 일어난다.
나도 노년층이 자리를 양보 받아야 할 맹목적인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당연히 예의는 갖추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서 있기 불편한 노인에게나 임산부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은 상식적인 일이다. 하지만 지하철에서는 임산부들이 서 있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예전의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타인에 대한 배려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런 부분에서 한국의 젊은 세대가 변화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또 다른 문제는 한때 존경받고 그에 마땅한 대우를 받던 교사들에 대한 태도가 점점 바뀌고 있다는 사실이다. 요즘 학생들은 선생님을 업신여기는 언행을 하는 경향이 있는데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의 결여는 때로는 폭력적이고 무례한 행동으로 이어진다. 앞서 말했듯이 한국의 성장과 성공은 교육을 토대로 이루어졌다. 어느 나라에서든 나라의 미래를 형성할 학생들은 존경심을 가지고 선생님을 대해야 한다.
앞에서와 마찬가지로 이런 부분도 정부가 주도하는 공익캠페인이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캠페인을 통해 무엇이 옳고 그름을 알리고 과거 한국의 젊은 세대들의 장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매우 엄격하긴 했겠지만 과거에는 현재의 젊은 세대가 배울 점과 교훈들이 많다. 또한 나는 좋은 교육은 가정에서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선생님과 함께 아이를 어릴 적부터 교육하는 주체는 부모이기 때문에 부모를 대상으로 한 공익캠페인을 펼쳐야 한다. 부모는 아이들에게 어른들과 선생님을 공경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이것이 올바른 행동이라는 것을 인지시켜야 한다.
이러한 공익캠페인을 효과적으로 시행하려면 장기적으로 모든 소통방법을 활용해야 한다. 종합적인 캠페인을 위해서 교사를 대상으로 아이들은 도움을 필요로 하고 제대로 교육받아야 하는 존재임을 알려야 한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의 교육과정과 특별수업을 통해 예절과 올바른 행동을 가르쳐야 한다. 올바른 가정교육과 잘 설계된 학교수업이 이루어져야만 이러한 교육의 영향이 한국사회에 확산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5~60년 동안, 그리고 그 이전의 긴 역사를 통해 한국은 역경을 극복할 역량이 충분하고 강하며, 회복력 있는 나라임을 보여주었다. 한국인들 또한 문제가 있을 때 명확한 길이 보이면 함께 뭉쳐서 헤쳐 나가는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한 가지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오늘날 한국이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어떻게 공익캠페인을 진행하느냐 하는 것이다. 이것이 한국의 주요 문제를 해결할 유일한 방법은 아니지만 지속적인 캠페인을 통해 미래의 한국사회를 효과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 한국이 직면한 문제든 미래에 대응해야 할 문제든, 나는 높은 학력과 능력이 있는 한국인들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역경을 극복하며 적절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하면 된다’ 정신은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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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동존이(求同存異)의 ‘인지 공동체’를 건립하면
진카이(중국)
나는 한국에서 공부하고 일하고 생활한 지 이미 12년이 넘었다. 중국인들의 전통적인 습속에 따르면 12년은 한 윤(輪)으로,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십이지(十二支)지가 한 바퀴 도는 시간이라 할 수 있다. 이제 지난 12년의 세월 속에 내 신변에서 발생했고, 내가 직접 경험하고 관찰했던 갖가지 일들을 전면적으로, 그리고 이성적으로 회고하면서, 이를 통해 앞으로의 세월을 더 아름답게 할 수 있는 어떤 수확을 기대해볼 수 있는 때가 된 것 같다. 바로 이런 시점에 나는 포스텍 박태준미래전략연구소의 요청으로 재한(在韓) 외국인의 시각에서 한국사회의 발전이 직면한 문제와 도전에 관해 토론하고, 아울러 보다 행복한 미래의 모습을 구상해볼 수 있는 계기를 갖게 되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것이 대단히 필요하고 중요한 의미를 갖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첫째, 장기간 한국에 거주하는 있는 외국인의 시각에서 볼 때, 자신이 12년 동안 살았던 한국사회는 많든 적든 일종의 가치 공유의 감정을 제공한다. 둘째, 한국에서 교학과 연구에 종사하고 있는 국제 관계학 학자로서 내가 자주 사유하는 문제 가운데 하나는 결국 한국이라는 국가와 민족의 지역적 지위를 어떻게 고찰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한국사회의 발전이 시종 어쩔 수 없이 심각한 수준으로 외부 요소의 직접적 혹은 간접적 영향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 나는 지역적 차원에서 한국사회의 미래발전에 대한 초보적 탐구를 시도하고자 한다.
이 글에는 두 가지 중요한 키워드가 들어 있다. 첫째는 ‘인지(認知)’다. 이 용어를 생각하게 된 것은 이전에 내가 한국 아산정책연구원에서 주관하는 한중(韓中) 청년학자 포럼에 참가했을 때, 직접 참여했던 토론의 주제가 바로 “한국과 중국 사이에 인지공동체가 존재하는가?”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 키워드는 ‘국가와 민족의 지위’다. 어쩌면 한국의 지연(地緣)정치 상황은 하나의 공인된 곤경으로서 지역적 제한으로 인한 변화가 심하고, 이로 인해 국가(강대국들에 대한 외교를 예로 들 수 있음)와 민족(대북정책을 예로 들 수 있음)의 지위 설정이 함께 변화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한국사회에 피할 수 없이 직접적 혹은 간접적 영향을 미치게 되고, 때로는 이러한 영향이 부정적이거나 심지어 위험할 수도 있다.
상술한 관점에 관해 두 부분으로 나누어 간단하게 논술하고자 한다. 첫 번째 부분은 내가 한국에서 공부하고 일하고 생활하는 동안 보고 들은 것들, 특히 ‘깊이 느낀 바가 있는’ 것들을 ‘두 가지 시각’에서 회고하고 정리하는 것이다. 두 번째 부분은 두 가지 ‘키워드’의 상호관계와 상호작용에 대한 탐구를 통해 이 글의 중심 논점을 도출해내는 것이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지역구도에 기초하여 한국의 국가 및 사회는 자국의 ‘인지’와 ‘지위 설정’ 문제에 대해 한국사회의 장기적인 발전에 아주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한국은 다른 지역이나 국가들과 더불어 공동으로 ‘포용성’을 지닌 ‘인지공동체’를 수립해야 할 필요가 있다.
‘동질성’에서 ‘이질성’으로: 한 외국인의 시각
나는 2004년에 우한(武漢)대학에서 국제관계학을 전공하여 석사학위 과정을 밟던 도중에 석사교환학생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에 오게 되었다. 중국인이 아주 오랫동안 ‘남조선’이라고 불렀고, 지금은 대단히 우호적인 이웃나라가 된 한국에 처음 도착했을 때, 나를 포함하여 함께 온 중국 학생들은 하나같이 눈앞에 펼쳐진 낯선 풍경 속에 겉으로 드러나진 않았지만 어떤 친숙한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단지 처음에는 이를 분명하고 구체적으로 묘사할 수 없었을 뿐이다. 한 번은 우연한 기회에 한국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허심탄회하게 중국의 대학입시제도에 관해 토론하게 되었다.
우리는 이런 제도 하에서의 경쟁이 얼마나 격렬하고 잔혹 한지(사실 여러 해 전에는 중국에서 대학입시를 통해 순조롭게 대학에 들어갈 수 있는 학생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매우 낮았다)를 얘기했고, 이런 한담의 자리에서 우리는 처음으로 한국 학생들의 입을 통해 이른바 ‘SKY’라는 용어와 함께 한국에도 중국과 유사한 대학입시제도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국의 학부모들이 자녀들의 순조로운 대학입학시험 통과를 위해 종교시설을 찾아가 향을 피우고 절을 올린다는 사실도 처음으로 이해하게 되었고, 한국사회에 보편적으로 눈이 휘둥그레지고 혀를 내두르게 될 정도로 심한 과외 공부 현상이 있다는 사실도 처음으로 듣게 되었다. 너무 놀란 나머지 나는 약간의 위안과 친근함마저 느낄 수 있었다. 요컨대 두 나라, 두 사회 사이에 공통된 부분이 적지 않았던 것이다.
사실 당시 학생이었던 우리로서는 한국사회에 대한 이해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한국사회에는 중국사회와 다른 점이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예컨대 한국사회에서의 ‘집단’ 관념은 중국사회에 비해 훨씬 더 중요하게 느껴진다. 사회학 용어를 차용하여 말하자면 이는 일종의 ‘신분정체성(identity)’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집단’ 현상은 사회 각 계층에 분포한 무수한 사회단체와 각종 형식의 집단활동에 그대로 재현될 뿐만 아니라, 한국 민중의 어떤 ‘동질성(convergence)’을 추구하는 집단행위의 방식에도 재현되고 있는 것 같다.
여기서 현실생활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작은 실례를 들어본다. 한국에서 여러 해를 지낸 뒤 나는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한국 친구들에게 왜 나이가 좀 드신 한국의 아주머니들은 똑같은 스타일로 파마머리를 하느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이렇다 할 대답을 하지 못하는 친구도 있고 간단히 대답해주는 친구도 있었다. 한국사회에서는 나이가 든 아주머니들은 그 나이가 되면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 친구의 대답이었다. 문제의 핵심은 수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는데 왜 굳이 그 양상이 서로 달라야 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이가 든 아주머니들은 자연스럽게 같은 형태의 파마머리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사회 전체에 보다 깊이 있는 합리적 이해가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부인할 수 없는 것은 어떤 분야에서 이러한 행동적인 ‘동질성’ 추구 현상이 한국사회에서는 대단히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그 뒤로 이어진 국제관계학 연구 과정에서 나는 점차 ‘동질성’을 지향하는 한국사회가 사실은 국가와 민족의 인지 및 지위 설정에 있어서 다중적인 ‘이질성(divergency)’을 추구하는 곤경에 직면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예컨대 한국과 강대국(중국이나 미국)들의 관계는 한국사회가 다른 나라들에 대한 ‘인지’와 ‘동질성’ 문제에 있어서 어느 정도의 분화를 체현하고 있다. 사드 문제가 하나의 참고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최근에 한 택시 기사와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나이가 대략 50세 전후인 이 한국 아저씨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면서 사드 문제가 한국사회를 분열과 대립으로 몰아 가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을 좋아하고 지지하는 사람들은 사드 배치를 환영하는 반면, 미국을 싫어하고 심지어 반대하는 사람들은 사드 배치를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드 문제를 이처럼 단순하게 분석해서는 안 되겠지만, 이 아저씨의 언사는 이처럼 중대한 문제에 있어서, 특히 외부 강대국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한국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이질화’의 곤경을 어느 정도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이러한 현실은 한국의 내정과 외교에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고, 어느 정도 한국사회를 분열의 길로 몰아 가고 있다. 이것은 한국사회의 안정과 발전에 대해 영향을 미칠 수밖에 수 없을 것이다.
물론 ‘동질화’와 ‘이질화’가 상호 교착된 현상은 다른 지역이나 국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단지 특수한 지연정치 환경 때문에 한국사회에서 비교적 쉽게 그러한 교착과 갈등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동질화와 이질화의 상호 교착을 설명할 수 있는 또 다른 사례가 바로 한(韓, 조선)민족의 정체성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동일 민족이면서도 정치적 현실로 인해 동북아 지역에서 세 가지 서로 다른 신분 정체성 표식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한국(인)과 북한/조선(인), 그리고 중국인인 중국 조선족이 바로 그것이다. 이 세 집단 사이에도 ‘동질성’과 ‘이질성’이 교착하고 있다. 특히 현재의 남북관계가 한 치의 양보도 없는 대결 국면에 처해 있는 것을 고려하면 더욱 더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어쩌면 현재의 상황은 이런 사유를 가능케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만일 이 세 가지 신분 정체성 표식 사이에 서로 충분한 ‘동질성 인식’이 부재하게 된다면 지역 전체의 ‘인지’와 ‘정체성’ 문제를 어떻게 토론할 수 있을까? 사실, 이에 대한 해답은 아주 간단할지도 모른다. 근본적인 원인을 따지자면 중국의 속담에서 말하는 것처럼 멀리 있는 가족이 가까이 있는 이웃만 못하기 때문이다.
지역 내에 튼튼한 공통인식을 형성하지 못하면 외부적 요소가 너무나 쉽게 그 지역 정세의 발전에 영향을 미치게 되고, 심지어 주도적으로 통제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런 형세에서 때로는 그 지역의 국가와 사회의 ‘수익’과 ‘곤경’(심지어‘피해’)은 상대적이거나 서로가 서로를 동반하는 양태를 보이게 된다.
‘인지의 갈등’: 친구인가 동반자인가 맹우(盟友)인가?
우선 ‘인지’의 개념에 있어서 우리는 아주 쉽게 ‘인지 공동체’를 연상할 수 있을 것이다. 나도 현재 동아시아 지역에 확실히 ‘소리 없이 모든 것을 적시는 가랑비(潤物細無聲: 두보의 시 「춘야희우春夜喜雨」의 한 구절)’ 같은 공동체가 결여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인지 공동체’를 구축할 필요는 있는 것일까? 중국의 국제관계 전문가인 위창선(喩常森; 중산대학 아태연구원 교수)은 인지주의의 주요 해석 도구인 ‘인지 공동체’는 어떤 영역에서 사람들에게 보편적으로 인정을 받는 지식 집단이라고 규정하면서, 그 집단은 그 지식의 권위와 국가의 경계를 뛰어넘는 인터넷이라는 마당에 의지하여 정부정책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구조주의적 관점에서 출발하여 ‘인지 공동체’를 구축하는 과정 자체가 자신과 타인에 대한 ‘인지’에서 ‘동질성 인식’에 이르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생산되는 정부정책에 대한 영향은 반대로 서로 간의 동질성 인식을 촉진하는 기제로 작용하게 된다. 예를 들어, 역사상 중국 명나라와 조선의 시사(詩詞) 문인들이나 양국의 사신들 사이에 수립된 ‘시부(詩賦)외교’ 집단 역시 하나의 특수한 ‘인지 공동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현재의 국제관계에서 전개되는 ‘공공 외교’ 혹은 ‘민간 외교’ 역시 공동의 인식을 찾고 실천할 수 있는 중요한 통로가 될 것이다. 장기적으로 볼 때 ‘인지 공동체’를 수립하는 것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감화되는 상호 인지와 인정, 동질성 인식의 과정이자 일종의 증량적(incremental)인 변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장차 이러한 ‘인지 공동체’가 생산하게 되는 정책적 영향력은 실질적(substantual)인 성격을 갖게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중국인 학자로서 나는 당연히 한중 양국 사이의 ‘인지’와 ‘동질성 인식’이라는 문제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
따라서 나는 이 부분에 관한 토론에서 먼저 구상중인 ‘인지 공동체’를 사례로 삼아 간단한 논술을 추가하고자 한다.
객관적으로 말해서 한중 두 나라의 관계는 ‘인지 공동체’의 수립 단계까지는 아직 요원한 상태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현실 속에서 양국의 현·당대 교류의 역사가 그다지 오래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1992년을 기점으로 계산하자면 겨우 20여년에 불과하다. 간단히 말해서 양국의 외교관계 수립을 촉진했던 주요 요소는 공통된 인지와 정치관념, 신앙 등이 아니었다. 중국과 한국의 국교 수립은 지연정치에서 고려해야 할 요소들을 제외하면, 어느 정도 세계정세와 지역정세의 변화가 가져오게 되는 이익의 추진력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예컨대 경제적 교류에 대한 요구 같은 것들이다. 하지만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양국의 교류 과정에서 많든 적든 양국에게 공존하는 어떤 문화인지상의 공통점이 크게 강조되거나 암시되었다는 사실이다. 유가문화를 기초로 한 윤리도덕과 사회규범(두 나라 모두 완전하고 전형적이거나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유가치국 모델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을 그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확실히 중국의 일부 학자들도 전통 유가를 새롭게 부활시켜 현행 중국의 정치체제와 부합시킬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고, 한국도 정치적으로는 서양의 민주주의 체제를 실행하고 있지만 이와 동시에 사회규범과 가정윤리 영역에서는 수많은 유가전통의 흔적을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현재 양국은 완전히 유가의 문화전통을 기초로 하는 인지의 공동체를 수립하는 것이 그다지 가능하지 않은 상태이고, 그저 교류 과정에서 서로에게 존재하는 공동의 요소들과 관찰하고, 발견하고, 탐색하고, 연구하면서 이러한 요소들을 어떻게 보다 폭넓은 상호운동 과정에서 보다 적극적인 작용을 발휘할 수 있게 할까 하는 점을 탐구하는 단계에 불과하다. 다만 상호 교류의 과정에서 형성된 새로운 공통인식과 제도, 관례, 심지어 공통의 이해에 도달한 부분들이 공통인식의 기초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역사와 현실에 기초하여 중국과 한국을 포함한 지역과 국가들은 서로에 대한 인지와 지위 설정을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현실 지연정치 요소들의 개입으로 인해 특히 한국은 자기 지역 내에서의 자체적인 지위 설정 문제를 대하면서 또 하나의 연속적인 ‘곤경’에 빠지는 것 같다. 하지만 때로는 외부 요소가 저항할 수 없을 정도로 강대하고 ‘안전’과 ‘생존’ 등 국운에 관련된 문제들이 절박하긴 하지만 나는 줄곧 ‘인지’가 ‘인동(認同: 동질성의 인식과 인정)’을 결정하고, ‘인동’은 ‘이질성’의 추구가 아니라 ‘동질성’의 추구 쪽으로 방향을 결정하게 된다고 생각해 왔다.
이런 논리에 따라 한국 지연정치의 곤경 및 여기서 발생하는 한국의 외교와 국내 사회(경제와 민생) 발전의 불안전성은 많든 적든, 공개적이든 잠재적이든 간에 자연스럽게 다른 나라들(예컨대 중국이나 미국)과 자국에 대한 한국의 ‘인지혼란(epidemic entanglement)’의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인지혼란’이란 무엇인가? 간단히 말해서 이중, 심지어 다중의 인지가 서로 중첩되고 얽혀 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강대국들에 대한 한국의 외교를 예로 들어보자. 외교 영역에서의 이른바 ‘친미(親美)’ 혹은 ‘친중(親中)’은 일종의 표상일 뿐이지만, 그 심층에는 여전히 ‘인지’의 문제가 감춰져 있다. 결국 친밀한 친구의 자세와 태도로 ‘오만하게’ 미국이 이끄는 ‘주류세계’에 설 것인가 아니면 지속적으로 굴기하고 있는 중국의 ‘매력 공세’ 하에서 동반자의 자세와 태도로(외부적 요소가 배제된) 새로운 동아시아 질서의 구축에 참여할 것인가, 아니면 이웃 작은 나라의 신분으로 ‘비굴하게’ 이른바 새로운 ‘화이(華夷)시스템’으로 회귀할 것인가 하는 것이 한국이 갖는 ‘인지혼란’이다. 어느 정도 이 몇 가지, 심지어 이보다 더 많은 양상의 자국에 대한 ‘인지’와 ‘지위 설정’이 한국사회에서 기복과 승패를 반복하면서 존재할 것이고, 한국사회에 일정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또한 항시적으로 위정자들의 정책결정 과정에도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를 바탕으로 한국사회의 응집력과 구심력에도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때로는 피해를 가져올 수도 있다.) 이와 동시에 이러한 과정이 반대로 한국에 대한 다른 나라들의 ‘(새로운) 인식’과 ‘(새로운) 지위 설정’에도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다시 사드 문제를 예로 들자면, 한국의 행동에 대해 중국인과 미국인 모두 암암리에 “너희는 도대체 우리의 친구인가 동반자인가 아니면 맹우인가?” 하는 질의를 던지게 될 것이다.
사실 앞에서 제기한 문제의 핵심은 한국인들 스스로 자신들을 어떻게 보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자국의 상황을 한국인들이 어떻게 ‘인지’하고 어떻게 ‘지위 설정’을 하는지가 관건인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지역구도의 시각에서 문제를 바라보자. 중국과 미국, 한국 세 나라의 관계를 예로 들자면, 지금의 곤경은 이 세 나라의 불안정한 삼각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첫째, 경제무역 분야에 있어서 한국은 거의 저항이 불가능할 정도로 중국의 거대한 시장과 비즈니스 기회를 지향할 뿐만 아니라 이를 매우 중시하고 있다.
이는 하나의 실선(實線)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안보 문제에 있어서 한국은 한·미 군사동맹을 굳세게 믿고 의지하고 있다. 이 역시 실선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볼 때 중미관계의 불확실성 혹은 경쟁관계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이는 점선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이 얼마나 견고하고 ‘분명하게’ 자신의 지위를 설정하든 간에 중국과 미국의 상호신뢰 부족과 심지어 경쟁 및 대항 국면은 장차 이 불안정한 삼각관계 안에서 한국의 지위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따라서 다변화되는 지역구도와 정세 하에서 한국사회가 이처럼 중대한 ‘인지’와 ‘지위 설정’의 문제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 하는 것이 좀 더 깊이 있게 연구하고 논의되어야 할 문제일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중간 강국’으로서의 외교가 한국사회의 장기적인 꿈이자 동시에 어느 정도 지역구도의 곤경에서 탈피할 수 있는 외교적 구상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자기 지역에 대한 한국의 ‘인지’ 및 ‘지위 설정’, 그리고 다른 지역 및 국가들과의 상호 ‘인지’ 내지 ‘지위 설정’이 여전히 피할 수 없는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어쩌면 한국 민중의 눈에는 한국과 외부의 일부 강대국들 사이에 엄연한 차이가 존재할 것이다. 때문에 ‘인지’ 내지 ‘동질성 인식’은 억지로 강요할 수 있는 것이 못된다. 게다가 ‘인지’, 심지어 ‘동질성 인식’이 확보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반드시 필연적인 ‘동질성’ 추구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예컨대 나는 《외교학자(The Doplomat)》라는 잡지에 글을 발표하여 한자 및 한자문화에 관해 설명하면서 한국사회에 모종의 ‘애증이 교차하는’ 정서가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 바 있다. 사실 이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아니다. 거시적인 시각으로 볼 때, 근대화의 과정에서 적지 않은 고통과 굴욕을 경험한 민족으로서, 특히 지역 정세가 끊임없이 변화하는 상황에서 독립을 성취하고 경제 기적과 정치 및 사회의 전환을 실현한 한국에게는 지역 내에서의 자신의 지위를 설정하고 해석하는 일이 정치 지도자들과 사회 전체에 정말로 가볍게 실천할 수 있는 역사적 과제로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동아시아의 미로 같은 정국에 처해 있는 한국 사회는 자신을 구할 방법이 없는 것일까? ‘인지혼란’이 장기적으로 한국의 내정과 외교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피할 수는 없을까? 한국사회의 장기적인 정치적안정의 추구가 이러한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는 것일까?
나는 여기서 터무니없이 ‘인지’와 ‘동질성 인식’을 강조하거나 ‘인지공동체’의 수립이 문제 해결의 유일한 해법임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인지’의 중요성을 설명하려는 것뿐이다. 처음에는 ‘인지’의 결여로 인한 손실을 실감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나중에는 감당하기 어려운 피해가 닥칠 수도 있다. 이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도 아니다. ‘인지’ 상의 미세한 차이가 자연스러운 변화와 발전을 거치면, 특히 외부적인 요소들이 개입되면, 사회와 외교상에 나타나게 되는 후과(後果)는 상상과 예측을 초월하는 수준으로 확대될 수 있다. 바로 이런 판단에 기초하여 나는 시종 희미하게나마 한국의 사드 시스템 배치 결정을 둘러싸고 중국과 한국 사이에 펼쳐지고 있는 분쟁에도 실제로는 보다 심층적인 상호 ‘인지’의 괴리가 존재하고 있음을 감지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근심이지만 그 영향은 대단히 크고 깊을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나는 복잡한 동아시아의 역사와 현실에 기초하여 어떠한 유형의 독단적 ‘천하 통일’도 이미 성취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중국을 포함한 어떤 지역이나 국가도 이런 불합리한 ‘동질성 추구’에 반대해야 할 것이라고 단언한다. 하지만 어떤 지역이나 국가든지 공통의 ‘인지’를 찾고 서로 ‘동질성 인식’의 실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공통의 역사문화 전통의 재건이라는 협애한 개념으로 이해되어서는 안 되고, 보다 광범위하고 포용적이며 훨씬 더 전방위적이고 종합적이고 다차원적인 상호작용 및 상호신뢰의 과정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포용적이고 미래지향적이며 ‘동질성을 추구하지만 이질적인 것들도 병존할 수 있는(求同存異)’‘인지 공동체’를 건립하는 것이 아마도 동아시아 지역과 국가들의 지도자들과 민중, 사회 전체가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장기적인 과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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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공동체로 나아가는 희망
야마구치 히데코(일본)
행복한 삶이 무엇인가를 생각할 때 비로소 가족이나 사회에서 인정받고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여 어느 정도 안정된 생활을 하면서 자녀들의 미래에도 희망이 보이는 것이 아닐까 싶다.
한국은 빈부 차이가 너무 심하다. 한국2만기업연구소의 2016년 상반기 100대기업 등기임원 및 직원 평균 월급은 약 600만 원이었다. 반면 중소기업 직원 평균 월급은 약 250만 원대라고 한다. 월급부터 큰 차이가 난다. 미국에서는 운송업도 힘든 만큼 월급도 많은데 한국에서는 많은 월급을 받을 수 있는 직종이 많지 않다.
한국의 교육열이 높은 이유가 일류대학에 들어가면 대기업에 들어가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여유가 없는 가정은 사교육비도 못 쓰고 부모가 바쁘게 일을 하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신경 쓸 시간도 여유도 매우 부족하다. 그러므로 교육을 못 시키면 계속 가난하게 살아야 하는 악순환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인생 역전의 희망을 어떻게 가질 수 있을까?
성공마인드를 배우며
우리 주변에는 초등학교밖에 안 나와도 대기업 대표가 된 사람도 있고 고등학교까지 꼴찌였던 학생이 뭔가 계기가 있어서 분발해 전교 1등도 되고 일류대학에 진학을 한 사례도 있다.
그런 롤모델이 될 만한 사람의 사례를 발굴하고 경제적인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각자가 연구해야 한다. 누구나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는데 그런 생각도 안 하고 살고 있다.
생활을 개선하는 데 있어서 무엇보다 의식교육이 중요하다. 어렸을 때부터 비전 강의를 듣게 하고 자신의 목표를 일찍 세우게 하고 목표를 향해 매진할 수 있는 환경을 가정과 학교가 함께 만들어 줘야 한다. 글쓰기를 통해 감정을 표출하는 방법과 독서를 통한 인간 이해력 기르기, 그리고 발표능력 향상을 위해 개별지도가 필요하다.
학급 인원수가 적어지고 있어서 교사가 개별지도를 하면 좋겠다. 잘하는 학생에게만 맞춰서 수업을 진행하면 대다수가 따라가지 못하고 학업에 흥미를 읽고 만다.
마을공동체의 필요성
온 국민이 더불어 사는 마인드를 갖게끔 지역별로 마을공동체가 활성화되면 좋겠다. 퇴직한 교사들이 지역봉사로 생활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방과 후 공부를 가르치거나, 밤늦게까지 일하는 부모를 대신해 노부부가 같이 밥을 먹거나, 가족이 아니지만 가족처럼 지낼 수 있는 심정공동체가 형성되면 얼마나 큰 힘이 될지 모른다. 육아환경을 개선하려면 마을공동 체가 확산되어서 소규모 모임 안에서 육아, 살림, 교육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생활을 공유하는 문화가 정착되어야 할 것이다. 세대 차이, 성별 차이, 생활수준 차이 등의 격차를 메울 수 있는 어울림의 창을 마련해서 어려움을 공유하고 서로 극복할 수 있는 방향을 모임 안에서 찾을 수 있다면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이중 언어 교육으로 우뇌 회로를 열어
다문화가정 자녀들의 문제 중에 엄마가 말수가 적어서 아이들이 한국어를 배울 때 지장이 생기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엄마의 나라 언어를 배워야 엄마와의 소통이 잘 되고 자존감을 높일 수 있다는 논문이 수없이 발표되었다. 아이들은 엄마와의 관계가 좋아야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학습에도 집중할 수 있다. 엄마가 영어권에서 온 사람이라면 시댁이나 남편도 모국어를 적극적으로 가르치라고 할 텐데 한국보다 뒤떨어진 나라라고 생각할 때 그들이 한국어만 가르쳐주길 원한다.
뇌 연구자의 주장으로는, 아이들은 0세부터 8세까지는 뇌가 스펀지처럼 정보를 흡수할 수 있어서 몇 개 국어를 동시에 들어도 구별할 수 있다고 한다.
모차르트가 천재가 된 것도 음악가였던 아버지를 따라 어렸을 때부터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고 여러 나라 언어를 접함으로써 직감뇌인 우뇌 회로가 열려서 라고 한다.
정서적인 면이나 능력 배양 면에서 볼 때 2개 국어를 들으면서 자라는 것이 아이의 미래에 있어서도 큰 이득인데, 이런 내용들을 좀 더 대중들에게 알리고 잠재능력을 끌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초등학교 저학년 때 세계명작을 읽게 하고 넓은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 게임만 하는 즉흥적인 재미로 사는 청소년들이 많아지고 있어서 장차 그들이 인품을 갖추지 못하는 어른이 될까봐 걱정이다. 유럽에서는 악기 하나를 다루는 게 중류 기준이다. 문화예술을 감상하고 고운 심성을 배양하는 것에도 교육의 목적을 두면 좋겠다.
인권교육의 강화
한국은 인권에 대한 교육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어린아이에게 지속적인 폭력을 가해서 죽이고 암매장하는 범인이 부모였다는 사건들이 이어지고 있어서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었다. 왜 죽을 때까지 맞아야 하는지. 누구나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보호를 받고 평등하게 대우를 받아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것을 밥 먹듯이 복창해야 한다. 마치 범인에게 수갑을 채울 때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고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다’고 경찰이 알려야 할 의무가 있듯이 어릴 때부터 누구나 신체적, 언어적, 정신적인 폭력을 내가 받아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의식 속에 깊게 심어주어야 한다.
1948년 12월 10일 유엔총회 때 유엔 가입국 58개국 중 50개국이 찬성해 채택된 세계인권선언을 한국에 온 지 20년 넘어서야 접하게 됐는데, 인권에 관한 교육이 서양에 비해서 뒤떨어져 있다고 본다. 어렸을 때부터 누구나 나에게 손을 댈 수 없고 맞게 되면 도망가거나 이웃에게 알리고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교육을 의무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프랑스에서 살던 한국인 유학생 부부를 동사무소에서 찾아와 2주 동안 휴가를 즐길 수 있는 돈을 주고 갔다고 한다. 시민의 권리를 외국인 학생에게도 보장해준다는 것에 놀랐다. 인권보장에 관해서 외국사례도 많이 연구하여 한국의 법에 적응하면 좋겠다.
독립심과 성인된 자각을
한국사회는 부모가 자녀의 인생에 간섭하여 진학, 취직, 결혼에 큰 영향을 끼친다. 어렸을 때부터 자립심을 키우고 뭐든지 스스로 알아서 할 수 있게 하는 교육이 필요하지 않을까.
일본에서는 ‘자신의 일은 자신이 스스로 하라’, ‘남에게 폐를 끼치지 말라.’ 이 두 가지를 취학 전부터 철저히 교육하므로 거의 평생 동안 이 문구가 머리를 떠나지 않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에서는 취직하게 되면 부모님께 매월 생활비를 드린다. 성인식은 공휴일이다. 관공서가 크게 행사해주고 여자들은 전통옷을 입는데 보통 부모가 이날을 위해서 백만 엔 이상 하는 기모노를 만들어 준다. 그만큼 심적으로 성인이 됐다는 자각을 가지게 하는 국민적인 행사다. 그 행사에 나가면 성인이 됐다는 기쁨과 동시에 각오를 새로이 하게 된다.
한국에서도 성인식에 모두 참여하도록 국가적인 규모로 개최하고 법 준수의 의무, 자신과 타인에 대한 책임을 일깨우도록 하면 좋겠다.
결혼문화도 바뀌어야 한다. 성대하게 출발해도 이혼하는 가정들이 많으니까 시작은 미약해도 갈수록 물질도 관계도 튼튼해질 수 있도록 간소화 시키고 내실 있고 신성한 언약식 개념으로 하면 좋을 것이다.
관광대국으로 경제부흥
한국처럼 계절마다 다른 아름다운 풍경이 있고 역사적인 문화배경이 있고 IT강국의 장점을 살려서 기술적으로도 새로운 재미를 찾을 수 있는 나라는, 지역별로 관광 사업을 활성화 시켜서 해외에서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하고 관광대국으로 경제부흥을 일으키면 좋겠다. 한국 거주 외국인이 120만 명이 넘으니 각 나라 언어와 문화를 아는 사람이 중간 역할을 잘 하면 관광객 유치뿐만 아니라 사업적으로도 좋은 아이템을 발굴하고 경제적으로도 동반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이 관광대국이 되기 위해서는 걸림돌이 있다. 쓰레기 처리가 큰 문제다. 캐나다에 이민 가서 오래 살다가 가족을 만나러 한국에 온 사람이 거리에서 풍기는 쓰레기 냄새를 맡고 “빈민촌 냄새가 난다”고 말했다고 한다. 서울의 강남지역에서는 발효액을 이용해서 냄새를 없애는 대책을 철저히 세우고 있는데 지역별로 차이가 나는 것 같다. 음식물 쓰레기 처리, 분리수거도 철저히 해야 한다. 쓰레기와 담배꽁초 등 어린이도 청년도 어른도 다 길가에 버리는 것에 대해서 가책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많다. 50m마다 쓰레기통을 비치해야 한다는가 하는 법을 규정하고, 길가에 쓰레기를 버리지 않고 쓰레기통에 버리도록 어릴 때부터 교육을 잘해야 한다. 환경문제를 배우고 토론하고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성숙한 시민의식을 길러줘야 하는 것이다.
무의도라는 섬에 놀러 갔더니 화장실 두 곳에 손을 씻는 수도조차 없었다. 휴지가 비치되어 있지 않은 곳도 많다. 관광지를 개발하고 찾아오는 사람을 지역경제에 도움을 주는 고마운 손님으로서 환영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면 좋겠다.
온 마을 주민이 정성을 다하는 만큼 사람들이 찾아올 것이다.
일본은 지방자치제가 발달되어 있어서 어디에 가든 지역별로 관광 사업이 잘 되고 있다. 지역 특산품을 홍보하고 축제 이벤트나 관광루트 개발 등 총괄해서 주력하고 있어서 어느 지역에 가든 만족할 수 있다. 그리고 길가에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이 없다.
계몽예술활동
갈수록 살벌해지는 사회분위기를 바꾸기 위해서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문화예술단을 구성하고 영상, 방송, 노래 등에 힐링 되는 내용을 담아 특별히 활동하면 좋겠다. 태교음악처럼 마음이 편해지는 음악을 만들거나, 건전한 생각을 갖게 하여 소통을 잘 할 수 있는 긍정적인 가사를 아름다운 멜로디에 실어서 만드는 거다. 말하자면 공익광고처럼 공익성이 있는 계몽예술활동을 전개해보면 좋겠다.
인간의 자유만을 중심으로 하면 윤리적으로 문제가 되는 가사나 드라마가 사회에 만연하고 그것이 모르는 사이에 사람들을 세뇌한다. 학교에 교과서가 있듯 모범적인 기준을 갖춘 창조물을 만드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다.
마을공동체가 마을 미디어를 활성화시켜서 마을 구성원인 여러 지방 출신자, 여러 국가 출신자. 남녀, 부부, 연장자와 연소자, 경영자와 근로자 등 갈등요소가 생기는 내용을 전문가 상담으로 풀어나가면 문제가 해소되거나 축소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국가 중재 역할
미래의 지도자는 겸손하고 사람들 말을 잘 경청하고 포용력을 갖고 중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가 간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유엔이 중재할 수 있는 역량을 가져야 할 것이다.
옛날 왕 옆에 자문할 수 있는 영통인이 존재했던 것이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 인간 사회를 좀 더 입체적으로 영적인 영역까지 보면서 국가가 가야 할 방향을 지도자에게 제시할 수 있는 능력자가 존재했다.
유엔에 종교인, 철학교수, 문학인 등으로 구성된, 지상의 여러 상황을 입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자문 집단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을 들은 적이 있다.
유엔에 모여 있는 각 나라 대표들은 결국 자신의 국익을 넘어설 수 없으니 경기에 심판이 필요하듯이 중재능력이 있는 단체를 세워야 한다는 의견이다. 남북 간 소통의 창이 닫혀 있는 한 더 이상의 진전은 없다. 유엔이 중재역할을 하고 북한 도발의 목적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고 협의해 나갈 수밖에 없지 않는가.
인간성 회복
인간의 핵심, 가정과 사회의 핵심은 이타적인 사랑과 신뢰이다. 이것을 회복하지 못하면 결코 행복을 찾을 수 없다.
가족 간의 대화도 빈약하다. 마음의 양식을 서로 주고 받아야 하는데 몸에게만 양식을 주고 있다. 인간의 존엄성을 다시 한 번 깊게 마음에 새기고 무한한 능력을 가진 존재로서 서로 존경하는 마음으로 대하고 각자가 가지고 있는 세계를 소통으로 공유하고 내가 꼭 이겨야 한다는 욕심보다 다 같이 잘 되야 한다는 공동체 성장을 우선시할 수 있는 인격을 가지는 것이 한국사회 발전의 열쇠라고 생각한다. 친척이 땅을 사면 배 아파할 것이 아니고 우선 성공을 축하해주고 어떻게 하면 성공할 수 있는지 경청하고 모방하고 배워야 한다. 남이 떨어져야만 자기가 올라갈 수 있다는 약육강식의 부정적인 사고를 버리고 온 국민이 한국의 미래를 위해서 공익을 추구해 나가는 공인이라는 자각심을 갖고 행복한 가정과 사회를 함께 꾸려나가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