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솔튼 그리트 윌리엄, 응우엔 응옥 뚜이옌, 오동고 프란시스, 치미 왕모보도일 2016.09.30

요 약
[경쟁과 자전거]
네덜란드에는 스카이(서울대, 연세대, 고려대)와 같은 개념은 존재하지 않고, 한 사람의 능력이 그 사람의 학업 성취도로 판가름되지도 않는다.
한국인들의 마음가짐은 성공에 집중되어 있다. 이것은 모든 한국인들에게 적용되는 거대한 공식이다.
모든 사람에게 성공을 위한 길이 하나뿐이라면 사람들은 당연히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무엇이든 다 하려 할 것이다.
[“정신 없는”에서“여유 있는”으로]
베트남 사회에서 갈망하고 있는 민주주의는 한국 사회도 가지고 있다.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사람과 사람 간의 진정한 의사소통이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한다. 진정한 의사소통이 이루어지는 사회는 강자가 약자의 목소리를 들어줄 줄 아는 사회이다. 의사소통이 잘된 사회가 행복한 사회라고 생각한다.
[협력 교육과 다문화 교육]
아프리카의 많은 학교들은 무조건 공부만이 성공의 길이라고 가르치지 않고, 각자의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아가도록 교육한다. 운동을 좋아하고 즐기는 사람이면 그것을 중심으로 교육을 받거나 스스로 노력해서 나중에 그것이 취미이자 직업이 된다. 사람들의 성격과 재능은 각인각색이다. 타인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이 거기서 행복감을 느낄리가 만무하다.
[부탄과 한국, 행복과 문화]
부탄은 여전히 집단주의 문화를 유지하고 있다. 반면에, 한국은 집단주의 문화의 특징을 거의 상실한 것 같다. 개인주의 문화 아래서 사람들이 불행하다는 뜻은 아니다. 한국의 경우를 보면, 현대 한국사회는 사람들이 개인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면서 한편으로는 가족의 동의없이 개인이 혼자 결정하고 행동하는 것이 때로는 사회적 문제아로 취급되기도 하는 등 두 가지 다른 가치가 충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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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텍 박태준미래전략연구소는 2016년 실사구시적인 미래전략연구 주제의 하나로서 ‘더 행복한 한국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가장 중요한 과제가 무엇인가’를 선정하였으며, 토박이 한국인이 아닌 분들의 목소리를 경청해보는 것이 더 객관적이고 효과적일 수 있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한국에 대해 잘 알고 있는 필자들은 ‘한국사회의 행복문제’를 어떤 시각으로 읽어내고, 이에 대해 어떤 대안을 갖고 있을까요?
<21개국 36인이 참여한 에세이를 엮어 '대한민국 행복지도' 미래전략연구총서(4)으로 발간되었습니다.
→ 미래전략연구총서4 '대한민국 행복지도' 도서보기
목 차
경쟁과 자전거 - 솔튼 그리트 윌리엄(네덜란드)
“정신 없는”에서“여유 있는”으로 - 응우엔 응옥 뚜이옌(베트남)
협력 교육과 다문화 교육 - 오동고 프란시스(케냐)
부탄과 한국, 행복과 문화 - 치미 왕모(부탄)
내 용
[2016 전문가 에세이] I-3. 경쟁과 자전거외 3편
솔튼 그리트 윌리엄, 응우엔 응옥 뚜이옌, 오동고 프란시스, 치미 왕모
경쟁과 자전거
- 솔튼 그리트 윌리엄(네덜란드)
서구 사회에서 태어나, 서구와는 완전히 다른 한국사회에 적응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낯설었던 동양을 처음 접했던 건 2006년 홍콩에서 였다. 비행기를 환승하려고 여덟 시간 정도 대기하며 홍콩을 구경하게 되었다. 비록 이것이 아시아의 온전한 면모를 접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겠으나 그때가 내가 처음으로 서양 문화와는 정말로 달랐던 동양 문화를 직접 접했던 때였다. 이후 호주 여행 중 여러 한국 사람들과 만나게 되면서 한국에 대한 관심이 싹트게 됐다.
한국과 한국 문화에 대한 나의 관심은 그렇게 사람들과의 작은 만남에서 시작되었다. 처음 나의 관심은 이국적인 것들에 대한 이끌림 이었기에 딱히 외국어를 공부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다가 2007년 한국학을 공부하게 되었다. 당시 우리 반에는 나를 포함 총 6명의 학생이 있었다. 그때 이후 많은 일이 있었고 운 좋게도 공부와 휴식 등으로 여러 차례 한국을 방문할 기회가 생겼다. 한국을 방문하고 한국에 관해 공부해가며 자연히 한국 사람들과 어울리고 한국사회에 대해 점점 더 많이 알게 되었다.
한국에 머무는 동안 매운 한국 음식을 먹고 한국사회에 적응하면서 네덜란드와 한국에 존재하는 몇 가지 차이점을 분명히 알게 됐다. 그 중 첫 번째는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미 익히 알고 있을 텐데, 개인적으로 가장 시급하게 해결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가장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일 것이다. 바로 한국 아이들의 행복에 관한 문제이다.
2014년 한국에 다시 돌아와 행복과 안녕에 관한 수업을 들었던 적이 있다. 어느 날 그 수업에서 아이들의 행복에 관하여 다루었다. 그즈음 한국 아이들의 행복 지수에 관한 보도가 있었다. OECD 국가 중 한국 아이들의 행복 지수가 최하위권을 기록했다는 내용이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2007년 UNICEF 발간보고서나 그 후 발표된 여러 보고서에 따르면 네덜란드 아이들의 행복 지수는 전 세계 최상위까지는 아니더라도 상당한 상위권에 속했다.
OECD 회원국 아동의 행복 지수를 조사한 그 보고서는 물질적 안녕(Material Well-being), 건강 및 안전(Health and Safety), 교육적 안녕 (Educational Well-being), 가족 및 교우 관계(Family and Peer Relationships), 행동 및 위험요소(Behavior and Risks), 주관적 안녕(Subjective Well-being) 등 여섯 가지 기준을 토대로 각국 아이들의 행복지수를 측정했다. 이 여섯 가지 하위 범주는 아이들의 행복과 안녕을 담보하는 데 있어서 주요 공통분모이다.
여섯 가지 하위 범주 중 네덜란드 아이들과 한국 아이들 간 가장 큰 차이점은 ‘교육적 안녕’ 범주에서 나타났다. 간단히 말해, 네덜란드 아이들은 내가 여태껏 만난 그 어떤 한국 학생보다 짧은 시간을 학교에서 보낸다. 가혹한 듯 보이는 한국의 교육 방식은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대학교와 대학원까지도 계속 이어진다. 내 동기들에게는 밤늦게까지 공부하거나 밤샘 공부를 하는 것은 어쩌다 한 번 있는 일 이라기보다는 거의 일상에 가까운 일이다. 어린 시절 나는 운 좋게도 도시의 바쁜 일상과는 거리가 먼 작은 시골 마을에서 자랐다. 덕분에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에 양질의 교육을 받으면서도 친구들과 마음껏 뛰놀며 유년기와 소년기에 필요한 성장을 할 수 있었다.
네덜란드와 한국 아이들 간의 또다른 뚜렷한 차이는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아이들이 어깨에 짊어져야 하는 학업의 무게이다. 한국에서 지내면서 한국의 대학 입시에 관해 알게 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한국에서 대학 입시는 매우 중요한 시험이라 시험 당일에는 아이들이 외부 소음 때문에 시험에 집중하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항공기 운항이 제한된다. 스스로 만족하고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며 사회의 기준에 맞추기 위해 이러한 시험을 두 번, 세 번 보는 학생들도 수없이 많다. 반면에 네덜란드는 학업성취도에 대한 학생들의 부담감이 상대적으로 낮다. 네덜란드 학생들은 많은 자유를 누리며 스트레스를 거의 받지 않는다.
네덜란드 아이들은 12세(한국 나이 13세)에 고등학교 입학시험을 친다. 그리고 이 시험이 이들이 향후 다니게 될 고등학교의 수준을 결정한다. 고등학교의 수준에 따라 아이들의 대학 입학 가능성도 거의 정해진다. 물론 예외 는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처음 들어간 고등학교를 다니며 이에 맞는 일자리를 구하거나 학업을 해나간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네덜란드 학생들에게는 반드시 대학에 가야 한다는 부담감이나 기대치가 부여되지 않는다. 네덜란드에 있는 여러 대학이 그 수준에 따라 나눠지지 않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네덜란드에는 스카이(서울대, 연세대, 고려대)와 같은 개념은 존재하지 않고, 한 사람의 능력이 그 사람의 학업 성취도로 판가름되지도 않는다.
한국 교육 체제의 문제에는 많은 학생들이 고등학교 시절에 외국으로 유학을 간다는 점도 있다. 외국 고등학교가 더 좋아 보인다는 이유도 있겠으나 외국 고등학교가 전형적인 한국 고등학교보다 덜 엄격하고 학생들에게 요구하는 것이 적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러한 문제를 보다 큰 그림으로 본다면 ‘경쟁’이라는 한 단어로 귀결되는 듯하다. 한국인들의 마음가짐은 성공에 집중되어 있다. 이것은 모든 한국인들에게 적용되는 거대한 공식이다.
모든 사람에게 성공을 위한 길이 하나뿐이라면 사람들은 당연히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무엇이든 다 하려 할 것이다. 아이들의 경우, 그 길은 간단하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좋은 학점을 유지하고, 영어 실력을 키우고, 대기업 입사를 위해 최대한 많은 자격증을 따는 것이다. 한국사회의 사정이 이렇다 보니 심지어 대기업 인터뷰 준비를 도와 주는 학원도 있다. 인터뷰 때 진부하지 않은 참신한 답변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느끼는 가장 큰 모순이다. 성공을 위해 모두가 같은 길을 가야 하는 사회는 모두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를 부과하기 마련이다. 이 스트레스는 특히 어린 청소년들에게 더욱 가혹할 것이다.
현재도 한국인들은 성공이 뜻하는 것과 행복해지는 것을 동일시하는 전통적 사고방식에서 거의 변화가 없는 것 같다. 이것은 한국과 네덜란드 의 가장 큰 차이점으로 보인다. 한국이 경제적으로 부강해진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 19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가난한 상태에서 전통 형식의 낡은 가옥에 살았지만, 지금은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이 부유해 졌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인들의 마음은 좋은 직장을 구해서 돈을 더 많이 버는 데 치중해 있다. 네덜란드의 경우, 물론 좋은 직장을 구하는 것이 삶의 중요한 요소이긴 한데, 누군가 대학에 갈 의향이 없거나 능력이 없어서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다른 직업 경로를 택하거나 노동을 한다고 해서 스스로를 창피해 하거나 체면이 구겨졌다고 생각하는 경우는 없다.
사랑하는 사람을 부양할 수 있고 다른 것들에서 삶의 행복을 찾을 수 있다면 학교에서 1등을 하기 위해 친구들과 경쟁할 필요도, 대기업에 입사하기 위해 더 많은 자격증을 딸 필요도 없는 것이다. 네덜란드에서도 예외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한국만큼 치열하지는 않다.
한국의 ‘경쟁’은 학교생활 중 학생들 사이에 뿐 아니라 한국사회에 만연한 듯하다. 이 글을 쓰며 한글을 사용하는 것을 지양하려 했지만, 이 단어를 대체할 만한 좋은 영어 표현을 찾지 못했는데, 바로 ‘눈치’라는 단어이다. 한국인들은 경쟁이 너무 치열한 사회에 살아가다 보니 항상 다른 사람은 무얼 어떻게 하는지에 관심을 가지고 끊임없이 자신을 타인과 비교한다. 일각에서는 경쟁을 통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을 끌어낼 수 있기 때문에 경쟁은 좋은 것이라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경쟁은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직장에서, 학교에서, 심지어 살고 있는 동네에서조차 자신이 하는 모든 일들이 타인의 관심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한국은 공동체의식이 매우 강한 것 같다. 물론 여기에는 좋은 점이 많다. 하지만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야 하고, 이를 피하는 것도 어렵다면, 매우 스트레스 받는 일이 될 것이다. 내가 대학원에서 경험한 것을 예로 들자면, 행사가 있을 때마다 한국 학생들은 모든 행사에 참석하곤 했다. 그 이유를 물어보니, 불참하는 것이 본인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치고 심지어 학점에도 나쁜 영향을 미칠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 했다. 학생들이 주말에 교수님과 등산을 하거나 저녁식사를 같이 하자는 연락을 받는다는 얘기를 듣기도 했다. 저녁식사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네덜란드인인 나에게 이는 정말 이상한 일이다. 네덜란드의 경우, 학생들과 교수 사이에는 두 사람의 관계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일정한 거리가 유지된다. 교수님에게 전화를 걸거나 카카오 메시지라도 보내는 것은 상대방이 이에 응할 수 있는지 모르는 상황에서는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상대방의 자유시간을 빼앗아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이메일을 보내거나 주중 회의 때 만나서 말씀을 드리는 것이 훨씬 더 공손한 방식일 것이 다. 나의 한국인 친구들은 그것이 한국인들에게는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했지만, 나는 아직 이러한 방식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행사에 참석하지 않는 것이 학점에 나쁜 영향을 끼칠 거라는 얘기를 듣지 않았다면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 것이다. 행사에 반드시 참석해야 하는 것이 스트레스 요인이 된다고 생각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필수 의무도 아닌 행사에 참석하지 않는 것이 학점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걸 알았을 때, 나는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 학생들이 학교와 학원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며 스트레스를 받는 것 외에 한국 학생들의 행복을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것은, 학생들이 가족과 함께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부모님과의 유대를 돈독하게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학생들은 매일 학교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다 보니 부모님 얼굴을 뵙고 함께 오붓한 시간을 보낼 기회가 거의 없다. 네덜란드의 경우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비교적 일찍 끝나는 편이다. 학생들은 집에서 가족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며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서로 대화를 나눌 수 있다.
한국 학생들뿐 아니라 한국의 직장인들도 마찬가지이다. 밤늦게까지 일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고 퇴근 후 동료와 함께 저녁을 먹는 것도 일종의 필수사항처럼 여겨진다. 내가 어렸을 때, 우리 식구는 저녁 6시경이면 저녁식사를 함께 하고, 8시경이면 함께 차를 마시곤 했다. 그렇게 하루에 있었던 일을 서로 이야기하는 가운데 가족으로서 유대감이 형성되곤 했다. 물론, 이는 내 개인적 경험으로, 네덜란드 가정이 모두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도시에 살지 않는 사람들의 경우, 삶의 방식, 특히 저녁시간의 삶의 방식은 상대적으로 더 여유롭고 때로는 약간 지루하기까지 하다. 평일 저녁에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게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대부분의 가정은 최소한 저녁식사라도 같이 하게 된다.
한국사회의 모습은 낮과 밤의 구분도 없고 주말도 없이 일주일 내내 24 시간 깨어 있는 것 같다. 아버지들은 회사에서 밤늦게까지 일하고, 자녀들은 하루 종일 학교에 있다. 맞벌이 가정인 경우에는 아이들은 할머니 할아버지의 손에 맡겨지는 경우가 많다. 바쁜 한국사회의 특징을 고려할 때 왜 이러한 상황이 생기는지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아직도 내 한국인 친구가 했던 말을 기억한다. 그 친구는 자기가 어렸을 때 주중에는 한 번도 아버지의 얼굴을 뵌 적이 없고 어린 시절에 아버지와 관련된 가장 좋았던 기억은 함께 한강에서 공 던지기를 했던 것이라고 했다. 서로 너무나 바빴던 나머지 함께 오붓한 시간을 보낼 여유가 없었다는 사실에 대해 나는 정말 안됐다고 생각했었다.
한국이 현재의 학교와 교육 체제를 지금과는 조금 다르게 스트레스를 덜 받는 체제로 변모 시킴으로써 아이들이 아이다움을 잃지 않고 더 즐겁고 걱정 없이 어린 시절을 보내도록 해줄 수는 없을까? 아이들이 방과 후 바로 집으로 갈 수 있도록 학원이 아예 없어졌으면 좋겠지만, 이를 위해선 한국인들의 사고방식이 바뀌는게 더 급선무라고 생각한다. 한국사회에서는 경쟁이 너무 치열해 스스로 느끼거나 판단하기에 최고 인생을 만들려면 매 순간 최고가 되어야 하고 가능한 많은 자격증을 따야 한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아이들이 어른들의 ‘성공’ 욕구의 영향을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이들이 보다 여유롭고 근심 없이 자랄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조선시대 이래로 ‘좋은 교육’은 한국에서 가장 중요시되는 것 중 하나였다. 그러한 마음가짐은 오늘날의 한국사회에도 면면히 유지되고 있는 것 같다. 좋은 대학에 입학하여 졸업하는 것이 여전히 성공을 위한 주요 방편으로 여겨지고, 대학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사회적 편견이 작용한다. 그래서 교육 체제의 변화도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한국인들의 마음가짐에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큰 변화가 생기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올바른 태도를 지니고 있다면 분명히 가능한 일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한국사회를 보다 좀 더 행복한 사회로 만드는 것에 대한 나의 두 번째 제안은 첫 번째 제안보다는 개인적인 성격을 띤다. 이 글을 쓰면서 나의 모국 네덜란드가 작은 나라이며 대부분의 한국 독자들은 네덜란드를 잘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따라서 네덜란드에 대해서 잠깐 소개하도록 하겠다.
‘저지대 국가(Low Country)’라고도 알려져 있는 네덜란드는 한국과는 아주 대조적이다. 네덜란드에는 산이 거의 없고 면적도 한국보다 작다. 네덜란드의 면적은 한국의 절반밖에 안 되며 인구는 1천700만명을 조금 넘는다. 누군가 네덜란드에 관해서 농담을 한다면, 네덜란드에는 자전거 수가 사람 수보다 많다고 말할지 모른다. 땅이 좁고 평지가 많다 보니 사람들이 자전거를 많이 타는 편이다. 예를 들어, 자전거로 15킬로미터 거리를 등교하는 것은 네덜란드 학생들에게는 매우 평범한 일이다. 네덜란드 사람들이 자전거를 얼마나 좋아하는지는 학생들의 생활방식을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대학 시절에 나는 다른 도시에 살아서 학교에 가려면 기차를 타야 했다. 나는 매일 아침 기차역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서 다른 500여 대 정도의 자전거 옆에 내 자전거를 안전하게 묶어둔 뒤 기차를 타고 학교에 가곤 했다. 학교 가까운 기차역에 내리면 나의 또다른 자전거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곳에는 내 자전거 말고도 1천여 대의 자전거가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고, 나는 내 자전거를 찾아서 학교까지 타고 갔다. 네덜란드는 거의 일년 내내 비가 오고 우중충한 날씨가 이어지지만 우리는 날씨에 관계없이 자전거를 이용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심지어 강풍이 불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한국에 온 지는 2년이 조금 넘었다. 한국에서 자전거를 탄 지는 1 년 반 정도 되었다. 그동안 나는 몇 번이나 거의 죽을 뻔한 고비를 넘겼다. 자전거도로가 끊겨서 어쩌다 보니 갑자기 차선에 들어가 있거나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최소한의 배려를 하지 않은 탓이었다. 물론 서울은 자전거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도시가 아니기에 크게 놀라울 일은 아니다. 내가 한국에서 처음 자전거를 탈 때보다는 여건이 많이 개선되었고 자전거도로가 여기저기 생겨나기도 했다.
그러나 아직도 출발지에서 도착지까지 온전히 자전거로 이동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취미로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은 작은 하천이나 한강변의 자전거도로에서 자전거를 타는데, 교통수단으로서 자전거는 아직도 생소한 개념인 듯하다.
자전거도로와 보행자도로가 다른 색상으로 구분되어 있는 것도 정말 독특하다. 우리 동네의 경우 자전거도로는 분홍색으로, 보행자도로는 녹색으로 구분되어 있다. 하지만 자전거도로라는 개념이 최근에 생긴 것이다 보니, 대부분의 보행자들은 자전거도로와 보행자도로를 구분하지 않는다. 이렇다 보니 맞은편이나 뒤에서 오는 자전거에 길을 양보해주는 일도 거의 없다. 자전거 광인 나에게 이는 정말이지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런 불만이 다소 어리석어 보이는 이유를 알 수 있다. 네덜란드는 산이 거의 없고 평지가 많은 나라이지만 한국은 산이 많기에 전국을 잇는 자전거도로를 만들기란 매우 어려울 것이다.
2015년에 친구와 나는 대전에서 전주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기로 했던 적이 있다. 우리는 한국에 산이 많다는 점을 몰랐고, 우리의 생각보다 자전거 여행이 어려울 것이란 것도 예상하지 못했다. 대전을 출발한 뒤 우리의 판단이 잘못된 것이었다는 걸 깨닫는 데는 불과 20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자전거 여행을 강행하기로 했고, 결국 산을 몇 번 오르고 고속도로를 몇 번 지난 끝에 10시간 만에 겨우 전주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를 계기로 한국은 자전거 여행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좋은 일도 생겼다. 한국의 경치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자동차로 빨리 지나가는 것보다 자전거로 천천히 여행을 하면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 고속도로를 따라 자전거도로가 생기면 자전거 애호가들과 한국을 찾은 관광객들이 자전거를 타고 전국을 둘러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한국에 살기 시작한 이래 최근 몇 년간 자전거 사용자 수가 엄청나게 증가했다. 주말이면 우리 동네는 산에서 자전거를 타려는 사람들로 붐빈다. 한국의 자전거도로가 조금만 개선되어 사람들이 외곽에서도 자유롭게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된다면, 자전거 타기를 즐기는 사람들의 삶이 크게 개선될 뿐만 아니라, 정신없이 바쁜 도시의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일종의 치유적인 효과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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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없는”에서“여유 있는”으로
- 응우엔 응옥 뚜이옌(베트남)
내가 중학생인 20세기 말에 한국 드라마가 베트남 텔레비전에 나오기 시작했다. 첫 출현부터 지금까지 한국 드라마에 대한 베트남 사람들의 애정은 그칠 줄 모른다. 한국 드라마가 출현하기 전까지 많은 베트남 중부 지방 사람들에게는 한국이 60~70년대의 가난한 한국이고 베트남 전쟁에 끔찍한 참전군을 파병한 나라인 것으로 기억하고 인식했다. 그러나 처음에는 드라마로, 나중에 와서는 K-pop, 예능프로그램 등으로 이제 많은 베트남 사람들에게 한국은 경제적으로 발전한 나라이고 반짝이는 나라가 되었다.
한류, 한국 기업들의 투자 등 갖가지 이유로 베트남 사회에서 한국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 대학교들에서의 한국학, 한국어학 전공 분야들도 점점 인기가 많아졌다. 베트남 대학생들이 진학하러 한국으로 유학을 갔다. 이와 병행한 것은 한국 남성과 결혼한 추이였다. 한국 남성과 결혼한 베트남 여성들이 한국으로 이주를 했다. 한국은 여러 가지 이유로 많은 베트남 사람들에게 단기적, 장기적으로 체류하는 나라가 되었다.
나는 학부생 시절에 한국 문화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마음으로 한국학을 전공으로 선택했다. 공부하면서 베트남에 찾아온 한국 대학생들, 한국 시민단체들과 교류하면서 한국이 더 이상 내가 공부하는 교재들이나 텔레비전에 나타난 나라가 아니고 내가 만나고 친해져 가는 한국 사람들의 나라가 되어 갔다. 나도 한국에 유학을 가고 싶었다. 2008년에 비정부기구에 대해 공부하고자 한국에 유학을 다녀왔다.
그리고 2014년에 한 베트남 대학교의 한국어 강사로서 한국어학을 공부하러 다시 한국에 들어왔다. 한국에 살면서 만난 사람도 많아지고 다양해졌다. 덕분에 한국에 대해서도 많이 알게 되었다. 그런데 알면 알수록 한국을 오히려 더 모르게 되었다. 2015년 4월 16일 오후 10시, 혼자서 시청 쪽 철벽과 광화문 쪽 철벽 사이의 텅 빈 거리에 서 있으면서 양쪽에서 세월호 사건 행진이 경찰과 경찰 버스로 막힌 사람들의 고통스럽고 분노 어린 외침을 듣는 순간, 한국은 나에게 불안하고 불행한 나라가 되어 버렸다. 그때의 딱 일년 전 시점으로 돌아간다.
2014년 4월 16일 오후 10시경, 하루의 공부가 끝나고 친한 베트남 친구하고 채팅하다가 점심 때 SNS에서 살짝 봤던 기울어진 세월호 선박이 참혹한 사건의 주인공이 되었다. 기가 막혀 정신없이 전자 신문들을 뒤져 세월호 뉴스를 찾아 읽었다. 읽을수록 가슴이 뭉클해졌다. 공황 상태에 빠졌던 내겐 같이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는데 마침내 룸메이트가 연구실에서 돌아왔다. 그러나 룸메이트와의 대화는 길지 못했 다. “네, 저도 뉴스를 봤어요. 참 불쌍하네요.” 다였다. 설마하면서도 충격적인 일이었다. 그렇게 룸메이트와의 세월호 대화는 다음날 잠깐 뿐이었다. 이 사건에 대한 룸메이트의 태도가 진도 바닷물처럼 차가웠다. 나는 그렇게 느꼈다. 그러나 룸메이트만 그렇게 반응하는 것이 아니었다. 세월호 사건이 일어난 며칠 후 수업 시간에 교실에 찾아갔을 때, 한국 친구들의 반응이 어떠한지 혹시 나와 이러한 공포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는지 등 여러 가지로 궁금하면서 기대도 되었다. 그러나 그렇게 해준 친구는 없었다. 반 친구들은 세월호 사건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어 보였다. 내 관찰과 내 느낌이 틀렸으면 했다. 그러나 세월호 사건이 어마어마하게 참혹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살아있는 많은 한국 사람들에게는 이 사건이 한 교통 사고에 불과했다. 자기 삶에 바빠서 세월호 사건과 같은 것에 많은 신경을 쓰지 못했다. 바빠서 남의 삶을 배려하지 못하는 것이다.
한국사회는 참 바쁘다. 베트남에 있었을 때 가끔 아는 한국 사람들이 놀러 오면 너무나 기뻐서 종일 챙겨주곤 했다. 그래서 2008년에 한국 유학을 왔을 때 나와 친한 사람들이 끊임없이 나한테 찾아올 줄 알았다. 그러나 아니었다. 아주 친한 사람 하고도 일 년에 한두 번밖에 만나지 못했다. 내가 찾아가지 않은 이상은 나를 보러 찾아오지 않는 사람도 많았다. 이러한 점에서 한국과 베트남이 너무나 다르다. 베트남에서도 사람들은 바쁘다고들 한다. 그러나 한국에서 사람들은 그냥 바쁘다고 하지 않고 “정신없이 바쁘다”고들 한다. “아이고, 정신이 너무 없었다.” “정신 없어서 만나주지 못했어. 미안해!” “정신이 없어서 답장이 이렇게 늦었습니다.” 한국은 정신 없는 사회가 되었다.
한국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악착같이 일하는 것 같다. 사람들의 근면한 노동 덕분에 한국이 오늘날처럼 경제적으로 강국이 될 수 있는 것을 부정 할 순 없다. 그러나 사람들이 온갖 일에 몰두하는 것을 봐서 한국 사람들이 일을 잘 조직하고 잘 처리하는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정신없이” 일하는 습관으로 한국 사람들은 흔히 일할 때 일에 참여하는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모른다. 급하게 부탁하고 도움을 받은 후에 “고맙다”는 커녕 “잘 받았습니다”와 같은 예의상의 말도 해주지 않고 사라지는 게 한국인의 일하는 스타일이다. 어느 날 태국 친구가 지친 목소리로 나에게 얘기했다.
나는 태국 친구의 말을 잘 이해할 수 있었다. 도움을 청했던 그 한국 사람들에게 나중에 물어보면 “미안해요. 정신이 없어서 그랬어요.”라고 대답을 하곤 한다.
한국 사람들은 정신없이 빙빙 도는 삶 때문에 점점 자기 일에만 집중하고 남을 배려할 줄 모르게 되었다. 서울에서 지하철을 타면 이 사실을 늘 확인할 수 있다. 지하철을 타는 이들 중에서 자기 핸드폰에 시선을 주지 않는 사람을 찾기가 어렵다. 사람과 대면하는 대신에 핸드폰 화면하고 대면한다. 앉아 있는 한 한국 젊은이가 핸드폰 게임에 빠져 자기 앞에 힘들게 서 있는 노인을 못 보거나 못 본 척한다.
한국 젊은이들도 현재와 미래를 위해 정신 없고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한국사회의 현실이 그들에게 그러한 보장을 해주지 못하고 있다. 양극화 사회, 강자와 약자의 차별화 사회에서 많은 한국 젊은이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나에게 한국어를 가르쳐주신 한 한국 선생님이 한번은 나를 보고 “한국 사람 얼굴이 베트남 사람 얼굴처럼 밝지 못하고 아주 어둡다”고 했다. 한국어 교수님은 수업시간에 말했다. “우리 세대가 젊었을 때 열심히 일해서 오늘날처럼 성공할 수 있게 되었는데 우리 자식 세대는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부모님 세대보다 더 잘 나갈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후 세대가 전 세대보다 잘 나가지 못한다는 것이 한국의 현실입니다”라고.
계층화된 한국사회에서 약자한테 희망이 잘 보이지 않는다. 상사와 부하 직원, 고용자와 피고용자, 정규직과 비정규직, 부자와 빈자, 선배와 후배, 지도 교수와 지도 학생 등의 관계가 쉽게 인권침해의 관계가 되기도 한다. 강자의 권위 아래서 잘 살기 위해 약자가 언제나 강자의 눈치를 보면서 움직인다. 강자의 지시가 타당하든 타당하지 않든 무조건 따르고 절대로 자기의 의견을 강자 앞에서 제시하지 않는다.
강자가 기분이 좋아서 칭찬해주면 약자는 그것을 복으로 받아 그날 하루 기쁘고 행복하다. 강 자가 기분이 나빠서 야단치면 약자는 계속 불안하고 불행해 한다. 이렇게 계층화된 한국사회에서 약자의 삶의 모든 의미는 강자의 손에 있게 된다. “그렇게 살 필요가 없어요. 자신의 기분이 남의 기분으로 좌지우지될 필요가 없어요.” 하는 내 위로의 말에 조금 전 지도 교수에게 혼났던 한국 친구가 슬프게, “선생님이 한국을 몰라서 그렇게 말하겠죠. 지도 교수님과의 관계가 저의 졸업논문, 저의 인생을 결정할 수 있거든요”라고 대답했다.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눈 후에야 나는 친구의 상황을 이해하게 되었다.
친구는 서울 강북의 한 동네에서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못한 중산층 미만의 집안에서 자랐다. 친구가 다녔던 대학에도 다 고만고만한 지역에서 오는 학생들만 있어서 서로의 차이를 몰랐었다. 석사 공부도 같은 대학에서 했는데 학회를 다니면서 더 공부할 마음이 생겨 이렇게 큰 곳에 나왔다고 한다. 여기에 오니까 너무나 잘 살고 걱정 없는 사람들밖에 안 보인다고 한다. “제가 엄청 천재가 아닌 이상 환경도 좋고 영어도 잘하고 유학도 다녀온 사람들보다 잘하기는 힘들어요. 그래서 우울해요”라고 친구가 털어놓았다.
한국의 현실을 보니까 다시 베트남을 돌아본다. 베트남은 개발도상국이기 때문에 한국과 비하면 당연히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지 못하다. 그러나 베트남 사회 안에서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아직은 여유가 있어 보인다. 윗사람과 아랫사람 사이가 한국처럼 딱딱하고 차가운 관계는 아니다. 한국의 사회관계 안에서는 사람들이 서로 직위로 호칭한다. “김 대리님, 박 사장님, 이 교수님” 등. 그러나 베트남에서는 주로 나이 차이를 고려해서 가족 안에서 사용하는 호칭들로 서로 부른다. 가령, 사장이 남성이고 나보다 나이가 열 살 내외로 많으면 내가 사장을 “오빠/형”으로 부를 수 있다. 만약 사장의 나이가 내 아버지 나이 정도가 되면 사장을 “삼촌”이라 부를 수 있다. 호칭 문화가 이렇게 되기 때문인지 사람들 관계가 직위 때문에 멀어지지는 않는 느낌을 준다고 생각한다. 덕분에 권력 있는 사람과 권력 없는 사람의 관계가 한국처럼 각박하지 않다.
한국은 행복한 사회인가? 이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서 고려대학교 민족 문화연구원에서 구축해낸 코퍼스 분석 도구1를 한번 이용해 봤다.
사이트에 들어가서 “단어 빈도 차트”에서 검색창에 “행복”이라는 키워드를 넣어서 분석 결과를 요구했다.
코퍼스 분석 결과에서 추려낸 위의 도식을 통해서 2000년부터 2013년까지 한국 신문들에서 “행복”이라는 단어가 나타나는 빈도가 어떻게 되는지를 알 수 있다. 2000년과 2013년 사이에 신문에서 “행복”의 출현 빈도가 갈수록 높아지는데 특히 2012년과 2013년 사이에 급격하게 올랐다.
이는 한국사회 안에서 “행복”에 관한 요구가 급격히 높아졌음을 뜻한다. 한국 사람들이 왜 갑자기 2013년에 “행복”을 그렇게 갈망하는지를 알아보고자 다시 코퍼스 도구를 활용해서 2013년에 한국 신문들에서 “행복”과 함께 높은 빈도로 출현한 공기어들을 검색해 봤다.
결과는 다음과 같다.
1 http://corpus.korea.ac.kr/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에서 구축한 코퍼스는 대규모의 신문 자료를 기 반으로 한 언어, 사회, 문화적 변화 추이를 밝히고자 시작된 [물결 21] 사업의 일환으로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신문(이상 가나다순)의 기사를 수집/가공한 언어 자원이다.
2013년 12월 한국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가 “국민 행복 시대”를 키워드로 18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국민”뿐만 아니라 “행복”에 관한 이야기에 “기금, 주택, 연금, 사람, 삶” 등의 공기어도 높은 빈도로 출현했다. 일상생활에서 가장 기본적인 것인 ‘기금, 주택, 연금’ 등에서 만족해야 사람들이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국민 행복 시대’의 약속이 안타깝게도 세월호 사건으로 일찍 꺾이고 말았다. 아직도 세월호 선박과 실종자 9명이 진도 바다 속에서 인양 되지 못한 가운데 정부와 사회에서도 세월호 유가족의 목소리를 잘 들어 주지 않고 있다.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한국 시민들도 끊임없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베트남 사회에서 갈망하고 있는 민주주의는 한국 사회도 가지고 있다.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사람과 사람 간의 진정한 의사소통이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한다. 진정한 의사소통이 이루어지는 사회는 강자가 약자의 목소리를 들어줄 줄 아는 사회이다. 의사소통이 잘된 사회가 행복한 사회라고 생각한다. 한국이 이렇게 진정한 민주주의 나라가 되려면 더이상 “정신없이 바쁘게”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 정신을 차릴 수 있도록 천천히 살며 주변 사람들과 대화하고 내가 아닌 남의 이야기를 들어줄 필요가 있다. 그래야 2015년 4월 16일 밤에 시청과 광화문 사이에 세워졌던 철벽과 같은 괴물이 무너지고 더 행복한 나라를 위해 목소리를 높인 사람들이 합류해서 한국이 촛불 빛으로 반짝이는 나라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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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력 교육과 다문화 교육
- 오동고 프란시스(케냐)
현재 한국은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려는 중이다. 국제적 측면에서 살펴 보면 경제력과 군사력이 강하다. 하지만 한국의 행복지수는 개발도상국가와 비교해 보아도 밑바닥에 있다. 이유는 무엇일까? 정답은 딱히 하나만 있지 않다. 사람마다 한국사회를 읽어내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한국에 6년째 살고 있다. 한국어를 배워왔지만 부족한 편이다. 그런 내가 이 글을 쓰는 까닭은, 한국인들이 좀 더 행복한 대한민국을 만들어갈 수 있다는 자부심과 자신감을 가지고 지금 걷고 있는 길보다 더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희망하기 때문이다.
한국 학교에 가면 학생들끼리 아주 치열한 경쟁 태도를 발휘하고 있다. 경쟁적인 환경이 있으면 누구나 혼자서 일을 할 때보다 더 열심히 일을 하게 된다. 한 사람의 힘이 타인의 구동력이 되고 결국 한 사람으로부터사회를 거쳐서 나라를 발전시킨다. 그러나 경쟁에는 건전한 경쟁과 건전하지 못한 경쟁이 있다.
건전한 경쟁은 남들과 원만히 협력한다. 서로를 도우며 무슨 일이 있어도 옆에 친구가 있어서 절망하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 학교에서는 서로 협력하기보다 혼자서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의 모습이 비일비재하다.
혼자서만 공부하다가 어려운 문제와 부딪히게 되면 스트레스를 받아서 부모님 몰래 담배나 술에 손을 대기도 한다. 이렇게 되면 학교생활이 힘들어질뿐더러 건강까지 해로워진다. 젊은이들은 나라의 미래이기 때문에 그들이 애초부터 스트레스를 받으며 성장한다면 유망한 나라의 미래를 기대하기 어렵다. 내 생각은, 한국 부모님들이 자식들에게 성공은 꼭 좋은 대학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학술적이지 않은 또 다른 길을 통해서도 가능하다고 확실히 알려주어야 한다.
케냐를 비롯해서 아프리카 나라들의 교육수준은 아직 한국만큼 높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행복지수는 상당히 높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서양 또는 아시아의 첨단 과학기술을 부러워한다. 반면에 서양 또는 아시아인들은 아프리카인들의 행복감을 갖고 싶어한다. 아프리카의 많은 학교들은 무조건 공부만이 성공의 길이라고 가르치지 않고, 각자의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아가도록 교육한다. 운동을 좋아하고 즐기는 사람이면 그것을 중심으로 교육을 받거나 스스로 노력해서 나중에 그것이 취미이자 직업이 된다. 아프리카에서는 꼭 모든 사람들이 대학교육을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에선 조기교육으로 인해 방학이든 아니든 학생들이 매일 학원을 다니고 노는 시간도 없고 부모님과 함께 지내는 시간마저 부족하다. 결국은 학생들이 자신의 인생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사는 게 아니라 부모님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마음에 불편함을 가지고 사는 것이다.
사람들의 성격과 재능은 각인각색이다. 타인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이 거기서 행복감을 느낄리가 만무하다. 신발을 신는 것과 마찬가지다. 작거나 크거나 자신의 발과 맞지 않는 신발을 신고 아무리 천천히 걸어봐야 불편함을 느끼기 십상이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코는 눈의 역할을 할 수가 없고 입도 눈의 역할을 할 수 없다. 우리 몸에 서도 자연적으로 각각 기관에게 주어진 역할이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부모님들도 자기 자식에게 자기 의견만을 강요하기보다는 자식이 성장하는 데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이며 그것을 얻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을 가르쳐줘야 한다. 즉, 자신의 적성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많은 경험을 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한국사회는 전 세계에서 가장 남의 시선이나 평가를 의식하는 사회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이웃집 사람이 좋은 차를 사면 나도 꼭 비슷하거나 좀 더 좋은 차를 사려고 욕심을 부리게 된다. 이럴 때 나의 수입과 맞지 않는 욕심을 부리면 빚으로 인해 가정 문제까지 일으키게 된다. 이러한 경향은 교육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학부모들은 자신의 자녀가 남들보다 더 나은 성적을 받도록 하기 위해 과도한 사교육을 강요하게 되고, 거기에 내몰린 학생들은 심할 경우 자살충동을 느끼게 된다. 한국 부모들이 열심히 공부하라고 자녀들에게 강조하는 것은 좋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녀들이 적성에 맞는 분야를 찾아가도록 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교사들이나 교수들이 성적을 따져서 학생의 모든 능력을 평가하는 것은 나쁜 습관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대학교를 졸업하지 않아도 성공의 절정을 이루는 사람들도 많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학생만의 문제가 아니라 부모의 문제, 학교의 문제이기도 하다.
학생들이 만약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에게 옳은 교육을 받았더라면 이러한 교육환경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부모님들이 자식들에게 ‘성공’이란 개념을 잘 설명해줘야 할 것 같다. 성공적인 학교생활이란 학교에 가서 죽을 듯이 혼자서 공부만 하는 게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친구들과 같이 공부하기도 하고 같이 놀기도 하는 것 아닐까?
지구촌이란 말을 쓰기 시작한 지 오랜 세월이 흘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한국인들은 이 말의 개념만 알지 실현하려는 노력은 아직 부족해 보인다. 한국 여러 곳곳을 돌아다니다 보면 다문화가족 및 다양한 나라에서 온 외국인들을 만날 수 있다. 한국의 수많은 외국인들은 나라가 다를 뿐만 아니라, 백인, 흑인, 아시아인 등 인종도 다르다.
아마도 한국문화는 아직 보수적인 문화라 다른 나라의 생활방식, 특히 아프리카 및 흑인에 대한 인식에는 한계가 뚜렷한 것 같다. 한국 초등학교에 가면, 공개적으로 어린 아이들이 흑인 학생이나 흑인 선생님을 놀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들은 너무 어리기 때문에 잘못했다고 화를 내기도 어렵다. 예전에 두세 살처럼 보이는 아이를 안고 있는 한국 엄마와 같이 엘리베이터를 탄 적이 있었다. 그런데 재밌으면서도 놀라웠던 건, 그 아이가 나를 보고서 엄마에게 “엄마, 저 원숭이” 하면서 울려고 했다는 거다. 그랬더니 엄마가 창피해서 아이한테 “아니, 원숭이 아니고 아프리카 사람이야”라고 했다. 나는 엄마가 미안해 할까봐 못 들은 척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아이가 말을 순진하게 해서 너무 웃겼다. 그 사건 이후 한국인 들이 흑인이나 아프리카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요새는 많이 변해가고 있지만 한국 TV를 보면, 아프리카 또는 흑인에 대해 이미지가 안 좋은 것들이 많이 나온다. 내전, 가뭄으로 인해 굶어 죽는 아이들과 말라 비틀어진 동식물, 맨발로 돌아다니는 마사이족 등이 그렇다. 좋은 부분보다는 좋지 않은 부분을 더 자주 보여준다. 결국 그런 방송을 통해 한국인들의 마음속에 아프리카의 이미지가 부정적인 것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이건 아프리카뿐만 아니라 인도, 필리핀 등과 같은 개발도상국들에게도 해당된다.
한국 대학교에 유학 중인 외국인 학생들도 여러 가지 불편함을 느끼고 있다. 예를 들어 평소에는 한국인 학생들과 같이 지내고 공부해야 하는데 실제로는 그러지 않고 외국인 학생들끼리 또는 한국인 학생들끼리만 어울리는 경우가 많다. 설상가상으로 어떤 학교에 가면 외국인 학생들을 위한 연구실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 많은 학교들이 그렇다. 이러한 상황을 그대로 방치하게 되면, 한국인 학생들과 외국인 학생들이 서로 의사소통을 잘 하지 않게 되고 외국인 학생이 한국문화를 배우기 어려워진다. 물론 누구나 외국에 가서 공부하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인종차별로 의심받을 만한 행동을 보여주거나 외국인을 배척하는 공동체는 외국인의 마음 속에 한국에 대한 부정적인 추억을 남기게 한다.
좀 더 행복한 한국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면, 나는 우선 한국 미디어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한국사회에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젊든 늙든 상관없이 스마트폰을 갖고 있어서 손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한국 부모들은 한국의 교육문제에 대한 해법뿐만 아니라 타 인종 특히, 흑인에 대한 올바른 시선도 자녀들에게 가르쳐줘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학교에서도 교과서나 다른 교구들에 아프리카나 흑인에 대해 긍정적으로 설명된 정보가 많으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학생들이 아프리카의 사진을 자주 접하다 보면 더 친근감을 느끼게 되고 나중에 직접 흑인을 만나도 낯설지 않게 된다. 이러한 정보를 가장 많이 제공할 수 있는 건 미디어다. 그리고 한국정부가 인종차별과 관련된 사건을 줄이기 위한 법을 강화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한국기업전문부서를 보면 직원으로 고용된 외국인의 숫자가 매우 낮다. 한국에 유학 온 학생들도 공부를 마치고 나면 일자리를 구하다가 실패하는 경우가 비일비재다. 그런 인재들은 결국 자기 나라로 돌아가거나 한국에 더 있기 원하는 경우에는 공장으로 들어 가기도 한다. 이들 중에는 국비 장학생들도 있고 기업 장학금을 통해서 온 학생들도 있다.
한국 대학들이 국제화 이미지를 보이려고 외국인 학생들을 유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처럼, 한국 기업들도 비슷한 노력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글로벌 기업이라고 홍보하기 위해 외국인들이 있는 사진을 내세우지만, 정작 회사 안에서는 외국인 직원을 찾아보기 어렵다.
정부나 기업이 한국에 온 외국인 유학생들에 대한 투자가 헛되지 않도록 능력 있는 유학생들에게 취업의 문을 열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한국 기업은 우수한 외국인 유학생 유치를 통해 한층 더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고 향후 국가 간의 외교적 가교 역할도 기대할 수 있다. 교육문제의 해법, 다문화문제의 해법, 그 속에는 분명히 좀 더 행복한 한국사회로 나아갈 길이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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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탄과 한국, 행복과 문화
- 치미 왕모(부탄)
한국은 경제개발이 진행 중인 많은 아시아 국가들의 모델이다. 단기간에 빠른 성장을 이룬 국가의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한국이다. 반면에, 부탄은 한국의 현재 위치에 도달하려면 아직 갈 길이 먼 개발도상국이다.
그런데 부탄은 “정부는 국민총생산(GNP)보다 국민총행복(GNH)에 더 가치를 둘 것”이라는 네 번째 왕의 발표가 있은 후부터 국제적으로 이목을 끌기 시작하여 ‘전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 또는 ‘마지막 지상낙원’ 등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나는 그 같은 수식어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지만 부탄사람들이 한국 사람들보다 삶에 대한 만족도가 높다고는 생각하는 편이다. 여기서는 다섯 가지 관점에서 어떻게 하면 한국인들이 좀 더 행복해질 수 있을지를 요약적으로 제안하려 한다.
첫째, 가족 대 직장
먼저, 인생에서 가족과 직업/경제적 성취에 가치를 부여하는 방식에 따라 두 나라를 비교해보려 한다. 부탄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과의 원만한 관계를 매우 소중하게 여기며 관계를 잘 유지하기 위해 애쓴다. 부탄에서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일보다 가족과 친구를 우선시한다. 예를 들면, 이웃과 안면을 트고 소통하며 지내는 것이 부탄에서는 상당히 흔한 일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집주인만이 같은 빌딩에 살고 있는 세입자들을 아는 정도에 불과하다.
한국에 있을 때 필자와 왕래하고 지냈던 한국 사람들은 대부분 이웃이 누군지 모를 뿐만 아니라 학창 시절의 친구들과도 연락하지 않고 지냈다. 부탄 사람들은 여전히 가족과 사람 사이의 관계 위주로 살고 있는 데 반해 한국 사람들은 경제적인 성공과 직업적 성취를 위해 가족과 보내는 시간을 희생한다.
부탄 사람들은 보통 20대 후반에 결혼해서 가정을 꾸린다. 경제적 사정에 개의치 않고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결혼하는 것이 부탄에서는 아주 흔한 일이다. 필자는 한국의 삼십대 미혼들에게 그 나이에 혼자 사는 삶이 어떤지 물어본 적이 있다. 대답은 대부분 돈과 관련되어 있었다. 삼십대 미혼 남자에게서 들은 가장 일반적인 대답은 “아내에게 집과 차를 사줄 수 있을 만큼 충분한 돈이 있으면 결혼할 수 있다.”였다. “대기업에 근무하면 결혼하기가 더 쉽다.”는 대답도 종종 들었다. 한국에서는 가정을 꾸리는 일이 항상 돈이나 직업과 관련되어 있다. 인생에서 만족감을 느끼려면 가족과 직업적 성취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가끔은 돈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 자신에게 상기시켜줘야 하지 않을까.
둘째, 정부의 역할
부탄 사람들은 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왕과 왕족을 존경한다. 부탄 정부는 안정감 있고 안전하며 평화로운 환경을 국민들에게 제공하는 데 큰 역할을 하며 결과적으로 부탄이 행복한 나라가 되는 데 기여한다. 행복한 국민은 행복한 나라를 만들고 국민을 행복하게 하는 건 정부의 책임이다. 부탄에서는 모든 국민이 교육과 공공 의료서비스, 기타 공공 서비스 등을 무상으로 누릴 권리를 갖는다. 이러한 정책은 국민의 경제적 부담을 덜고 심리적 안정감을 증진시키기 때문에 사람들의 복지와 행복이 자연스럽게 향상된다.
한국 사람들은 부탄 사람들보다 일에서 받는 스트레스의 강도가 훨씬 크다. 일례로, 한국 회사에서는 하루 휴가를 내는 것조차 굉장히 힘들다. 직장인들은 동료 혹은 상사와의 술자리에 빠질 수 없고 상사가 사무실을 떠나기 전에 먼저 퇴근할 수도 없다. 부탄에서는 퇴근 시간이 되면 회사 건물이 문을 닫기 때문에 모두 집에 간다. 집에 일이 있거나 개인적인 문제가 있을 때 휴가를 내는 것도 어렵지 않다. 한국 직장인들이 가장 부담스러워 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회식’이다. ‘회식’은 퇴근 후 함께 저녁을 먹으면서 술을 마신다는 뜻인데, 이는 종종 늦은 시간까지 이어진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술 마시는 게 문제라는 생각을 갖고는 있지만 동료들과의 술자리는 의무로 받아들인다.
직장인들의 근무 환경 전반을 향상시키기 위해 한국 정부가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서는 방법도 있다. 근무 환경을 개선하는 정책을 개발하고 현장에 적용한다면 한국 국민의 상당수를 좀 더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 것이다. 가족과 저녁식사를 함께 하기 위해 집에 갈 수 있는 것은 일과 사생활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셋째, 학생의 생활
우리는 젖먹이 때부터 끊임없이 학습하고 정보를 수집한다. 어른으로서 독립된 인간이 되기 위해서 우리는 교육을 통해 지식을 습득한다. 그런데 한국의 학생들은 정규 수업과 방과 후 수업을 통해 지나치게 많은 교육을 받는다. 나는 학교에서 또는 학원에서 이루어지는 과잉 교육이 초래하는 문제점을 짚지 않을 수 없다.
나는 한국의 몇몇 초등학생에게 영어를 가르친 경험이 있다.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아이들의 일과가 아침 7시에 시작해서 밤 11 시에 끝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의 거의 모든 학생들의 일과가 그들과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부탄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부탄 학생들의 생활은 한국 학생들과 모든 면에서 완전히 반대다. 대부분의 한국 학생들은 또래들 간의 경쟁과 자식들의 좋은 성적을 바라는 부모가 안겨주는 부담에 시달린다.
나는 한국의 몇몇 초등학교에서 부탄의 문화를 소개한 적이 있다. 부탄에서는 ‘학원’이 금지되어 있다고 말했을 때, 아이들이 충격 받던 모습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한국의 학교와 학부모는 아이들이 조금 더 행복해질 수 있게 학생들의 스트레스를 덜어주는 데 우선순위를 둬야 한 다고 생각한다.
넷째, 문화
문화는 사람들 삶의 큰 부분을 형성한다. 따라서 인간이 얼마나 행복하 고 만족하느냐 하는 데도 문화가 영향을 미친다.
다른 나라에서 볼 때 한국과 부탄은 개인보다는 집단 또는 공동체의 필요를 중시하는 ‘집단주의 문화’ 범주에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집단주의 사회에서는 가족과 공동체가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심지어는 자기 자신보다 더 우선시되기도 한다. 하지만 문화는 시간과 더불어 변화하는 법이다. 사람도 문화와 더불어 바뀐다.
7년간의 한국 생활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온 나는 이미 부탄을 떠나기 전과 같은 사람이 아니었다. 부탄 사람들은 가족들이 필요로 할 때만 가족에게 돌아가는 게 아니라 근무 시간이 끝나면 바로 집으로 간다. 부탄은 여전히 집단주의 문화를 유지하고 있다. 반면에, 한국은 집단주의 문화의 특징을 거의 상실한 것 같다. 개인주의 문화 아래서 사람들이 불행하다는 뜻은 아니다. 한국의 경우를 보면, 현대 한국사회는 사람들이 개인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면서 한편으로는 가족의 동의없이 개인이 혼자 결정하고 행동하는 것이 때로는 사회적 문제아로 취급되기도 하는 등 두 가지 다른 가치가 충돌하고 있다.
과거에는 부탄 인구의 대다수가 불교도였다. 현재는 부탄인구 중 70퍼 센트가 불교도이고 힌두교도가 30퍼센트를 차지한다. 내가 불교를 언급 하는 이유는, 불교라는 종교가 신자들을 물질과 금전 획득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인에게 불교도가 되라는 제안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나는 여기서 한국과 부탄이 이미 공유하고는 있으나 한국에서는 숨겨져 있는 일부의 중요한 가치를 말하고자 한다.
우리는 행복이 외부 조건이 아니라 우리 자신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그러나 한국 사람들은 기분 변화의 원인을 다른 사람이나 외부 상황에서 찾는 경향이 있다. 기분이 우울할 때 가방이나 립스틱을 사는 것으로 기분전환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스스로가 감정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지금 한국은 문화의 과도기에서 제대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가족과 친구처럼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고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도움이 되는 역할을 함으로써 한국인들은 인생을 더 즐겁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다섯째, 물질주의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
패션과 유행은 우리가 실제 느끼는 것보다 우리가 어떻게 느껴야 하는 지에 영향을 준다. 이 같은 현상은 사회 구성원으로부터 따돌림 받고 싶지 않는 심리 때문에 발생한다. 만혼, 쇼핑, 성형수술 등은 물질주의에 물 든 한국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예이다.
한국 사람들이 늦게 결혼하는 이유는 그저 아이를 양육하는 데 드는 비용이 비싸기 때문만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돈도 더 많이 벌고 사회적 위치도 높이길 바라기 때문인 듯싶다. 한국은 또한 쇼핑하기 쉬운 훌륭한 온오프라인 환경을 갖추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꼭 필요한 것을 산다기보다 필요한 것 이상으로 많이 산다. 이런 분위기에서 원하는 것을 살 수 없을 때 사람들이 느끼는 행복감은 줄어들기 마련이다.
나는 100개국 이상의 국가에서 온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봤지만 외모에 가장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한국인이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한국에서 성형수술은 아주 흔하며 한국문화 속에 깊숙이 배어 있다. 심지어 부모들이 여학생들에게 공부를 시키기 위한 동기부여 차원에서 성형수술 카드를 사용하기도 한다. 부탄 사람들은 이런 현상을 이해하기 어려울 뿐 만 아니라 당혹감마저 느낀다.
행복과 복지에 대한 연구는 지난 10년간 점점 정교해졌다. 부탄에서 사용되는 국민총행복 개념은 다른 국가가 볼 때 오해의 소지가 다분하다. 다른 국가들은 부탄 정부가 국민총행복 개념을 수단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부탄 국민들이 행복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부탄 국민들의 삶은 국민총행복 개념이 소개되기 전이나 후나 똑같다. 국민총행복 개념은 부탄 사람들의 행복 수준을 단기간에 향상시킬 목적으로 고안된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실제로는 모든 부탄 국민들이 행복해지기 위해서 국민총행복 개념을 인식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모든 면에서 한국식 삶의 방식을 설명하는 단어인 ‘빨리빨리’는 ‘더 빨리’ 혹은 ‘서두르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이미 가지고 있는 것에 감사하기 위해서라도 잠시 멈춰 서서 한숨을 돌린 후 무엇이 인간을 진정으로 행복하게 만드는지 생각해봐야 할 시점을 맞이한 것 같다. 현재의 한국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는다면, 한국의 미래세대를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부탄처럼 작은 개발도상국에서 한국과 같은 선진국에 보내는 메시지는 ‘행복’이 단지 돈과 연관된 것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행복은 경제적 안녕 그 이상의 것이다. 행복의 외적 원천이 바로 불행의 뿌리일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따라서 검소한 생활이야말로 바로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삶으로 이끄는 지름길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