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체 서울와이어보도일 2020-12-13
“성공의 결과는 또 다른 모험의 시작” 박태준 포스코 설립자 9주기
1973년 포항제철소 첫 출선의 감격과 기쁨 속
박태준 설립자만 근심과 걱정어린 표정 눈길
“쇳물은 나왔지만, 어려운 수요산업에 미래 걱정”
리더라면 기뿜의 순가에서 조차 미래를 내다봐야
눈 앞의 치적에만 일희일비 하는 현 상황에 교훈
[서울와이어 채명석 기자] 1973년 6월 8일 오전 10시 30분. 청암 박태준 포스코 설립자는 이낙선 상공부 장관과 함께 불을 붙이 1.8m 길이 화입봉을 포항제철소 제1고로 풍구 속으로 들이 밀었다. 화입식은 고로에 생명을 불어넣는 의미있는 행사다. 제촐소를 착공한 지 38개월 19일 만의 일이다.
철광석을 녹여 쇳물을 만들기에 적합한 화씨 2300도까지 고로가 가열되려면 보통 19시간에서 21시간이 걸린다. 청암을 비롯한 포스코 임직원들은 너나할 것 없이 첫 아이의 출산을 기다리는 식구들처럼 잠을 이루지 못하고 초조하게 시간을 기다렸다.
다음날인 6월 9일 오전 5시 30분부터 수 백명의 포스코 임직원들이 역사적인 순간을 고대하며 고로의 주상으로 몰려들었다. 청암은 오저 7시에 주상 위로 올라왔다, 30분 후, 고로의 구멍이 펑하고 뚫리자 첫 굉음이 울렸고, 오렌지색 섬광이 쇳물 구멍에서 허공으로 3~4M 치솟는 듯하더니 불꽃이 서서히 사라졌다. 그리고 천천이 용암같이 벌겋고 뜨거운 쇳물이 흘러나왔다.
“와 드디어 나왔다. 만세! 만세!”
누군가가 외쳤고, 모두들 목청이 터저라고 만세를 부르며 팔을 치켜들었다. 찬란한 불똥이 허공으로 휘날렸고 시뻘겋고 뜨거운 쇳물이 도랑으로 힘차게 쏟아져 내렸다. 포스코 임직원들에게는 금모다 소중한 쇳물이자, 고로의 출선은 포철의 새 시대를 여는 서막이었다.
그 날의 역사적인 순간은 포스코가 촬영한 한 장의 사진을 통해 엿볼 수 있다. 그런데, 출선 당시에 찍힌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상한 점을 찾을 수 있다. 그것은 사진 속에 나타나 있는 청암의 표정이 다른 사람들과는 매우 달라보인다는 점이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감동에 젖어 만세를 부르고 있는데 그는 왠지 모르게 자제하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
서갑경 미국 하와이대학교 명예교수가 청암과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해 지난 2011년 발간한 ‘철강왕 박태준 경영이야기’에 본인이 털어놓은 사연이 언급되어 있다. 다음은 책에서 언급한 내용이다.
◆“흘러나오는 쇳물, 기뻤지만 시작에 불과”
“박 회장님, 사진 속의 모습이 왜 이렇게 긴장되어 보입니까? 마치 고로의 출선을 기뻐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1995년 8월 5일 늦은 오후, 필자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있었던 인터뷰에서 박태준에게 물었다.
“사진 속의 제 표정을 정확히도 보셨군요.”
그는 멋쩍다는 듯이 대답했다.
“많은 사람들이 환호하는 가운데 제 모습은 행복해 보이지요.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혼란스러웠던 제 감정을 눈치채셨을 겁니다.”
박태준은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 18층에서 금문교에 걸려 있는 태양을 지그시 응시하며 조용히 그날 그 자리에서 느꼈던 감정을 토로했다.
“많은 사람들이 포철이 실패할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어코 쇳물을 만들어냈기에 그 순간은 정말 기쁨에 넘쳤어요. 하지만 마음 한구석은 여전히 무거웠습니다. 여기서 나오는 쇳물을 정말 사용할 수 있는 건지, 그리고 우리가 만든 철강제품을 팔 수 있을 건지 갑자기 걱정되었던 것이지요. 1973년에는 거의 모든 세계 철강업체들이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유가가 하룻밤 거의 세 배나 뛰었기 때문에 건설, 자동차, 조선, 화학 및 중장비산업을 포함한 많은 기업들이 아주 어려웠지요. 그래서 포철의 장래를 매우 걱정했던 것입니다.”
그는 사진을 다시 집어들더니 말을 계속 이어갔다.
“흘러나오는 쇳물을 보니 정말 기뻤지만, 그것은 단지 시작에 불과했어요. 우리나라에 앞서 제철소를 지으려고 했던 많은 나라들도 중간에서 어쩔 수 없이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으니까요. 당시 철강산업의 역사를 보면 알 수 있는 일입니다. 우리는 경험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하루하루가 새로운 도전이었고, 그래서 저는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겁니다.”
박태준은 곧 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저는 자신이 있었지요. 제1기 공사를 예정보다 한 달 빨리 완공시켜 건설비용을 절약했기 때문입니다. 공정계획을 잘 세운 덕분에 톤당 건설비가 287달러에 불과했습니다. 1970년대 후반에 건설했던 대만의 CSC제철소와 신일본제철의 오끼시마 제철소는 톤당 건설비가 600달러나 되었으니까요.”
그는 당시 상황을 회상하면서 자세히 설명했다.
“이로 인해 우리는 유리하게 경쟁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신규업체였기 때문에 수요자들에게 우리 제품의 품질을 입증해 보여야만 했습니다. 당시 우리는 뛰어난 명성도 없었고, 사실상 일을 해나가면서 많은 것을 배워야만 했지요. 그 무렵 저는 우리의 생산능력을 완전히 가동할 수 있었을지도 걱정이었습니다.”
출선 당시에 찍은 그 유명한 사진은 박태준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드디어 출선했다는 기쁨의 순간에서조차도 그는 앞으로 해나가야 할 일을 미리 내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 모로 보나 출선은 길고도 험난한 먼 여행에서 첫발을 내디딘 것에 불과했다.
◆대한민국 미래를 걱정하는 리더는 누구?
대한민국은 잠잠했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만으로 충격적이었지만, 정치‧사회적 갈등까지 심화‧확산하면서 더 많은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가운데 각 부문에서 리더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과연 그들의 역할에 충실했는지에 대해 의문을 던지는 이들이 많다.
소통의 의지는 버리고, 각자의 반쪽자리 경험과 지식만을 들이대며 이들의 주장을 지지하는 여론만을 부추기고, 상대방을 적폐로 몰아세우기만 할 뿐이다. 지금 시행한 뭔가가 10년, 20년 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고찰 없이 과거 10년, 20년 전의 행위만을 따져 현재를 비판할 뿐이다. 아니 수 많은 이들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걱정하지만, 그들의 우려와 걱정이 이 나라 전체의 운명을 담고 있지 않다고 여기는 이들이 많다. 그들은 과연 첫 쇳물을 바라보는 청암의 걱정하는 표정, 표정 뒤에 숨어있는 근심과 걱정을 이해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12월 13일은 청암이 별세한 날이다. 올해는 9주기를 맞는다. 군인이자, 기업가, 정치인으로 평생을 대한민국 번영에 바친 그는 “절대적 절망은 없다”고 했다. 하지만 그의 바람과 달리 한국 사회는 절대적 절망에 빠질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출처 : 서울와이어(http://www.seoulwir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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