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최 진 덕교수 (한국학중앙연구원)보도일 2014년 2월

요 약
청암은 식민지와 분단, 전쟁과 빈곤으로 얼룩진 우리 현대사의 비극 한복판에서 滅私奉公의 정신으로 일관하는 가운데 거대한 성취를 이룸으로써 현대사의 비극을 극복하고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그는 우리 현대사의 비극의 현장을 떠난 적이 없다.
그는 비극을 극복하기 위해 전쟁터에서 혹은 기업일선에서 잠시도 쉬지 않고 목숨 걸고 국가와 민족을 위한 有爲의 行事에 몰두했다. 그렇다면 청암은 無爲自然을 숭상한다고 알려진 老莊의 道家와는 정반대 인물이라 할 수 있다. 그 자신 일본의 거물 양명학자 야스오까로부터 각별한 知遇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양명학이나 선불교 혹은 道家에 관심을 보인 적이 거의 없다.
그런데도 청암을 노장적 맥락에서 이해해보고자 하는 것은, 노장철학은 無爲와 有爲, 自然과 人間을 둘로 나눈 다음, 유위를 부정하고 무위를 긍정하며, 인간을 부정하고 자연을 긍정하는 낭만적 이원론이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오늘날 많은 학자들은 아직도 노장철학을 낭만적 이원론 정도로 오해하고 있는데, 이런 오해는 시급히 청산된 필요가 있다. 청암이 단호하게 부정했던 조선시대를 지배한 주자학이 바로 그런 낭만적 이원론이었다.
실은 노장철학은 역사와 문명을 만드는 인간의 작위에 대해 다른 어떤 철학보다도 적극적이다. 중국의 역대 개혁가들 가운데 노장불교와 친화적이지 아니한 사람은 거의 없다. <老子>에 대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주석서는 <韓非子> 속에 있다. 무위자연은 인간의 작위를 부정하고 자연세계 혹은 내면세계로의 퇴행을 노래하는 낭만적 이원론이 아니라, 무위와 유위, 자연과 인간, 마음 안과 밖을 가리지 않고 주어진 모든 것에 대한 긍정을 의미한다.
주어진 모든 것을 긍정할 줄 아는 무위자연의 마음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我執과 偏見, 그리고 이기적 탐욕에서 벗어난 해맑은 마음이 필요하다. 이 해맑은 마음은 목숨까지 포함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할 때 비로소 도달된다. 청암은 스스로 無에 대해 말한 적이 없지만 그가 가진 해맑은 마음의 저 無야말로 그가 군인과 기업인으로서 역사 안에서 이룩한 모든 有의 원천일 것이다. 老子는 “有生於無”라 했다. 또 “知者不言”이라 했다. 無를 말하지 아니한 자야말로 無를 가장 잘 아는 자일지 모른다. 청암만큼 無所有에 철저한 사람은 없었다.
決死의 覺悟로 다져질 때 마음을 저절로 해맑아진다. 청암의 결사적인 애국심과 사명감은 그의 마음을 자신도 모르게 해맑게 해주었다. 누구라도 자신의 일에 沒入하는 순간에는, 그 일이 무슨 일이건 관계없이, 그의 마음은 해맑아진다. 몰입이 해탈이고 구원이다. 청암의 해맑은 마음은, 우리 현대사의 비극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는 가운데, 흡사 투명한 거울이 주위의 사물들을 있는 그대로 비추어 주는 것처럼, 우리 현대사의 비극을 惹起한 근본 문제뿐만 아니라 그 문제의 해결책까지 있는 그대로 비추어줄 수 있었떤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문제와 해결책을 있는 그대로 비추어주는 능력이 바로 智慧이다. 또한 더 나아가 生死까지 초극한 그 해맑은 마음으로부터 어떤 상황에서건 겁먹거나 당황하지 않고 목표로 했던 사업을 추진하는 힘 즉 勇氣가 나오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청암의 해맑은 마음의 無로부터 지혜와 용기라는 有爲의 작용이 나온다. 그리고 지혜와 용기라는 유위의 작용으로부터 유위의 사업이 성취된다. 다시 말해 “有生於無”인 것이다. 해맑은 마음의 無로부터 나오는 청암의 모든 有爲의 활동은 有無가 交易하는 變化의 세계를 넘어 不變의 이상세계를 추구하는 그런 활동이 전혀 아니었다.
청암의 모든 유위의 활동은 興亡盛衰가 죽끓듯하는 역사세계, 그것도 식민지와 분단, 전쟁과 빈곤으로 얼룩진 우리 현대사의 처참한 비극의 현장을 잠시도 떠나지 않았다. 그의 활동은 우리 현대사의 비극 속에서 그 비극을 극복하고자 하는 활동, 다시 말해 역사의 진흙탕 속에서 그 진흙탕을 극복하고자 하는 활동이었다. 그래서 역사의 진흙탕을 넘어 역사를 불변의 영원한 이상 혹은 超역사적인 목적에로 강제로 끌고가려 드는 좌익 이상주의자들의 허울 좋은 도덕적 활동과는 정반대였다. 좌익 이상주의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군인이 되어 국토방위에 앞장 선 것도, 기업인이 되어 포항제철을 세운 것도, 그 자체로서는 도덕적인 善도 아니고 사회적 正義도 아니기에, 결코 칭송받을 만한 일이 아니다.
군인과 기업인은 역사의 진흙탕 속에서만 필요한 자들이다. 만약 역사의 종말에 하늘나라가 도래한다면 군인도, 기업인도 필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청암은 군인이자 기업인이었으면서도 그의 마음은 해맑음을 잃지 않았다. 그의 모든 유위의 활동은 역사의 진흙탕 속의 사건이었지만 그 뿌리에는 그의 해맑은 마음이 있었고, 그는 유위의 활동을 할 때면 그 활동이 목적 자체인 것처럼 여기면서 언제나 아무 私心 없이 오직 그 활동 자체에만 목숨을 걸고 몰입했다.
그렇다면 그의 모든 유위의 활동은 자신 이외의 다른 어떤 초월적 이상 혹은 불변의 목적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 자신이 바로 목적 자체인 활동 즉 無目的的 활동으로서의 遊戱 외에 다른 것이 아닐 것이다. 또한 그런 활동이야말로 역사의 진흙탕 속에서 진흙을 가지고 도자기를 빚어내듯ㅇ리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는 참된 의미의 예술(art)활동일 것이다. 영일만과 광양만의 거대한 제철소 자체가 이미 위대한 예술작품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하지만 청암의 유희 혹은 청암의 예술은 식민지와 분단, 전쟁과 빈곤으로 얼룩진 우리 현대사의 비극을 떠나지 않기에 늘 悲壯美를 지니고 있었다. 그의 유희 혹은 그의 예술은 비장한 유희 혹은 비장한 예술일 수밖에 없었다. 우리 역사를 돌이켜 보고 청암 이하 초창기 인물들의 피땀을 생각해보면 포항제철 곳곳에서 그런 비장미를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 현대사의 비극 속에서 국가를 세우고 포항제철을 세운 그의 비장한 유희, 그의 비장한 예술은 물론 청암 혼자만은 것은 아니었다. 수많은 사나이들이 그를 따라 그와 함께 목숨을 걸고 유희하면서 새로운 역사 창조에 동참했다. 청암과 그를 따르던 사나이들의 목숨을 건 창조적 유희는 우리 민족사에서 雄渾한 氣象이 넘치던 삼국시대 이래 실로 천 오백년만에 다시 보는 壯觀이었다.
좌익 이상주의에 찌들어 있는 이 나라 지식인들은 철저히 외면하고 있지만 그 壯觀을 철학적으로 다시 吟味해볼 필요가 있다. 마치 조선조처럼 좌익 이상주의가 지식인사회를 휩쓸고 있는 지금, 우리 역사는 다시금 조선조 오백년 주자학의 왕국으로 退行해버릴 염려가 있다. 조선조는 雄渾한 氣象을 철저히 상실함으로써 두 차례의 외침을 허용하고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수백년을 遲遲不進하다가 결국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우리 현대사의 비극을 낳은 주범 조선조의 역사를 우리는 절대 반복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은 청암이 우리에게 남긴 가르침이기도 하다.
목 차
1. 머리말
2. 인간의 욕망과 대립, 투쟁, 갈등, 그리고 국가의 의미
3. 사고파는 행위의 위대함, 그리고 기업과 근대사회의 출현
4. 근대국가와 일본의 근대화
5. 우리 현대사의 비극과 박태준의 실용주의적 애국
6. 주자학에서 실용주의로의 정신사적 전환과 박태준
7. 우리 현대사의 부름에 대한 박태준의 응답
8. 결사의 각오로 다져진 사명감 혹은 “선구적 결단,” 그리고 무
9. 조상의 혈세, 제철보국, 그리고 우향우 정신
10. 자주관리
11. 박태준과 정약용
내 용
박태준과 그의 정신, 그리고 포스코의 길
최 진 덕교수 (한국학중앙연구원)
첨부파일(PDF) 참고.
2013TJ박태준_리더십_최진덕(포스텍박태준미래전략연구소).pdf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