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정소연 (포스텍 화학공학과)보도일 2016. 7. 20

요 약
[우수상 수상작] 청년을, 국회로!
20대 총선에서 눈부신 활약을 한 청년들이지만, 청년을 위한 정책이 없다는 사실은 여전히 현 청년들은 정치와 매우 소극적인 관계에 놓여 있는 상황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계속된다면 가까운 미래에 우리나라의 모습은 어떻게 될까?
행복한 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청년이 행복해져야하고 이들이 행복하기 위해서 ‘청년 정치인’이 등장해야한다. 그렇다면 ‘청년 정치인’이 대한민국 국회에 등장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방안들이 있을까?
이에 대해 나라, 기성세대, 청년 3가지로 구분지어 각각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제안하고자 한다.
목 차
I. 머리말
II. 정치와 청년
1) 정치에 소극적이던 청년
2) 20대의 투표율이 눈부셨던 20대 총선
3) 하지만, 청년을 위한 정책은 없었다.
III. 청년이 정치로 나가야하는 이유
1) 정치와 멀어진 청년의 미래는?
2) 지금이 바로 청년들이 나서야 할 때
Ⅳ. 청년을, 국회로!
1) 나라에서 할 수 있는 일
2) 기성세대가 할 수 있는 일
3) 청년이 할 수 있는 일
Ⅴ. 맺음말
내 용
[2016 청년 에세이 우수상] 청년을, 국회로!
정소연 (포스텍 화학공학과)
Ⅰ. 머리말
휴학을 결정하고 난 뒤,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은 “왜, 무엇
때문에 휴학을 결정하게 된 거야?”였다. 그에 대한 나의
답은 나의 적성과 전공에 대한 불확실성, 바닥으로 떨어진 자존감 회복과 다양한 문화생활에 대한 갈증
등 나조차 신기할 정도로 다양했고 질문하는 사람에 따라 그 답이 모두 달랐다. 휴학에 대해 아버지와
상담을 했을 때에는 휴학을 하고 싶은 이유에 대해 2~3시간 넘게 이야기를 했고, 눈물까지 흘렸다. 하지만 그 긴 변명들은 허무할 정도로 간단히 한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었다.
“현재의 내가 행복하지 않아서”
나는 모든 사람들이 그렇듯 행복 하고 싶어 했고, 행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일단은 휴학을 결정한
것이었다. 휴학의 이유가 확실해 졌으니, 이제 내가 할 일은
행복해지는 방법을 찾는 것이었다. 내가 어떠한 사람인지, 어떤
일을 할 때 가장 행복한지를 알아보기 위해 여러 취미 학원에도 다녀보고, 쉬지 않고 놀아도 보고 새로운
단체에도 관심을 가져 보았으며 책과 같이 행복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생각들도 찾아보았다.
많은 이들이 내게 준 답은 행복은 그 때의 상황을 어떻게 받아 들이냐, 혹은 해석하느냐와
같은 나의 생각으로 결정할 수 있다는 아주 허무한 결론이었다. 그런데 이것으로 ‘나 자신의 행복’에
대한 결론을 내리려는 중 나에게 새로운 의문이 생겼다. 나의 생각만으로는 행복해 질 수 없는, 나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내가 불행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들에 부딪힌 것이다.
아르바이트를 열심히 했지만 월세를 내고 나니 돈이 부족한 상황이라든가 할머니를 간호하던 어머니마저 수술로 입원을 하게 되어 할머니께서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셨지만 아르바이트를 뺄 수 없는 상황 등이 있었다. 물론 이 상황이 잠깐의 순간이라면
‘나보다 더 힘든 사람도 있는데 힘내자!’라는 생각으로 나 자신을 위로 할 수도 있지만, 잠깐만의 상황이 아니라면 그 어떠한 생각도 위로가 되지 않고 나는 불행하다고 느끼게 될 것이다. 오랜 할머니의 병간호로 힘들어 하고 계신 어머니께 “엄마, 상황을
탓하는 한이 있더라도 사람을 탓하지는 말자, 지금 이 힘든 상황은 언젠가 지나갈 거야”라는 말로 위로를
한 적이 있다. 어떻게 보면 매우 무책임한 말일 수도 있지만, 행복은
생각하기에 달려있다는 생각대로라면 이 말이 그 때의 상황에서 내가 엄마에게 해 줄 수 있는 최선의 말이었다. 하지만
‘애초에 이러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을 수 있었다면‘이라는 생각이 계속해서 맴도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상황에
따라‘ 행복이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은 다시 말해 행복한 상황, 혹은 불행하지 않은 상황을 최대한 많이
만들어 주면 된다는 말인데, 그럼 이 상황은 누가 결정하고 보완할 수 있냐는 것이다.
이 고민을 하던 시기에 ‘청년정책연구소’라는 단체를 알게 되었고 2주라는 짧은 시간동안 연구원으로
활동하며 청년들을 대상으로 청년 가치관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하는 일을 돕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설문조사
결과를 보며 행복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나와 비슷한 나이대의 청년들이 겪고 있는 고민들을 통계적 수치로 알 수 있었고, 이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청년들의
고민은 사회문제와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었으며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행복한 환경, 즉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었다. 또한 행복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하지만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은 방법이 바로 ‘내게 필요한 정책에 관심을 가지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이번 에세이에서 앞서 말한 ‘행복은 그 상황을 내가 어떻게 받아 들이냐에 달려있다‘라는 식의 감성적인 글은 쓰지 않을 것이다. 이런 글은 힘든 순간에 다시 한 번 힘을 낼 수 있도록 도와줄 수는 있지만,
이는 피로를 잠시 잊게 해주는 자양강장제일 뿐 이후에 비슷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을 때 다시 한 번 무너지게 만든다. 보다 현실적이고 근본적인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환경이, 사회가 바뀌어야한다.
2016 포스텍 박태준미래전략연구소에서 실시한 “행복한 사회가 되기 위해 가장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는 무엇인가 ?”의 조사 결과 또한 20대가 생각하는 행복을 방해하는 요인들이 ‘상황’들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일반 시민이 심각하게 인식한 “일자리 창출과 저출산.고령화 문제”,포스텍 학생이 심각하게 인식한 “시민의식과 부정부패”
그리고 모두 중요한 과제로 생각한 “소득 불균형, 양극화 문제” 이 세 가지 문제 모두 매 총선, 대선마다 후보자들이 해결하겠다고 외쳤던 분야이다. 이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바로 ‘새로운 정책’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동시에 여전히 국민들이 이에 대해 문제점을 느낀다는 점에서 아직도 해결책을
찾지 못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나는 기존의 정치권이 해결하지 못한 이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영웅이 ‘청년들’이라고 말하고자 한다.
이번 에세이를 통해 정치와 청년이 현재 어떠한 상태에 놓여있는지를 확인하고, 이들이 왜 서로
소극적인 관계가 되었는지, 청년들이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면 사회가 어떻게 행복해 질 수 있는지를
분석하여 대한민국이 행복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는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Ⅱ. 정치와 청년
1) 정치에 소극적이던 청년
‘정치’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술에 취한 아저씨들이다. 자신이 지지하는
당에 대해 비판의 말을 듣고 화가 난 한 아저씨로 인해 술자리가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던 상황이 내가 정치를 처음 접하게 된 모습이기 때문이다. 조금 더 자란 뒤 뉴스를 통해 본 정치인들의 모습도 그와 다를 바 없었다.
9시 뉴스 속 대머리 아저씨들이 국회에서 서로에게 욕을 하고, 신발을 내던지는 장면에 한숨
쉬시는 아버지를 통해 정치는 여당과 야당이 서로 누가 더 서로를 잘 헐뜯나 대결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이러한
영향 때문인지 나는 ‘정치’라는 단어를 들으면 늙은 아저씨들밖에 생각나지 않았고 젊은 사람들과는 별개의 이야기로만 여기고 있었다. 청년인 우리가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는 ‘투표’밖에 없다 생각하였다. 이는 나 하나만의 생각은 아니었다.
내 주변 친구들부터도 주된 대화 주제로 우리들의 미래나 대한민국 현실에 대한 한탄은 간혹 하지만 정치 이야기를 하거나 대한민국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려 하는 사람은 없었다. 마치 정치는 청년들 사이에서의 암묵적 금지어 같은 존재로
자리 잡고 있었다. 왜 그렇게 된 것인지 궁금증이 들어 주변 친구들에게 ‘친구와의 대화 도중 정치 이야기를
하면 어떤 기분이 들 것 같냐’는 질문을 해 보았다. 이에 당황스럽고 불편할 것 같다고 대답하는 친구들이
대부분이었다. 그 불편한 감정은 무엇 때문에 오는 것인지에 대한 대답은 모두 같았다.
“나랑 성향 혹은 지지하는 당이 다를까봐”
그렇다면 이 친구들은 그들과 다른 취미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에도 불편함을 느낄까? 이에
대한 대답은 “나의 취미를 무시하며 자신의 취미가 더 낫다고 주장할 때에는 불편할 것이다“였다.
나와 내 친구들이 나누었던 대화를 통해 내가 느낀 것은 한국 정치는 결과가 아닌 과정에서 큰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거였다. 한국의 정치인들이 보여주고 있는 정치의 모습은 나의 주장 너의 주장 혹은 정답인 정책, 오답인 정책 이 둘로 이분화 한 것이었다.
여기에 ‘일간베스트’ 등 정책이 아닌 특정 인물, 지역감정이 섞여 있는 모습으로 한 집단을
깎아 내리는 행위를 자신의 정치색을 표출하는 행위로 여기게 만드는 소셜 네트워크가 형성된 것 또한 청년들 사이에서 정치를 더욱 회피하게 만드는
데에 매우 큰 영향력을 끼쳤다. 이는 정치가 이분화 된 것이라는 생각에 더욱 확신을 갖도록 만들고 소위
나와 정치색이 다른 사람에게는 어떠한 모욕을 주어도 되는 것이구나 혹은 정치색이 다른 사람으로부터 저러한 대우를 받게 되겠구나라는 불안감을 심어줄
것이다. 이같은 영향으로 대다수의 청년들은 지지당을 가지려 하지 않고 있고, 있다 하더라도 숨기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2) 20대의 투표율이 눈부셨던 20대
총선
하지만 올해 4월 13일, 20대 총선에서 청년들이 달라졌다. 이번 총선은 나에게도 매우 새로웠던
것이, 대한민국 사회와는 동떨어져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치, 사회문제에
무관심했던 나의 친구들이 이번 총선에 매우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나의 룸메이트는 선거
일주일 전부터 정책과 전과 기록 등 후보자에 대한 모든 정보를 제공하는 휴대폰 어플까지 추천하며 선거를 장려했고,
부재자투표 기간에 투표를 하지 못했다며 투표를 하기 위해 학기 중임에도 불구하고 포항에서 서울까지 올라온 친구도 있었다. 이 외에도 카카오톡의 단체 톡방은 너나할 것 없이 투표이야기로 떠들썩했고, 덕분에
나도 총선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투표에 참여할 수 있었다. 중앙선거위원회의 투표 분석 결과를 보니 사전투표에서
20대의 투표율이 가장 높은 15.97%를 기록함은 물론이고
20대 전반 투표율이 지방선거 세 차례에서 38.3%→45.8%→51.4%로
크게 높아졌다. 총선 두 차례에서도 32.9%→45.4%, 대선
두 차례에서도 51.1%→71.1%로 견줄 수조차 없을 정도로 크게 올랐다. 19대 총선과 20대 총선을 견주어 봐도 20대 이하는 36.1→55.4%로 +19.3%포인트, 30대는 47.1→59.6%로 +12.5%포인트로
50대는 67.4→65.4%로 -2.0%포인트, 60대 이상은 76.9→72.8%로
-4.1%포인트로 오히려 투표율이 떨어진 것과 달리 20대,30대의 투표율을 매우 큰 폭으로 증가했다.
그런데 20대의 투표율이 이렇게 높아진 원인은 후보자들의 실속 있는 정책이 아닌 유권자들의
분노였다.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들에게 지배당한다는 것이다”라는 플라톤의
말이 통한 것이다. 내 주변부터도 이 정책이 좋아서, 혹은
이 후보자가 마음에 들어서 투표를 하는 친구보다는 무언가를 막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투표를 하려는 친구들이 많았다.
이것은 또한 이전에는 사회가 요구하는 틀 안에 자신을 끼워 맞추기 위해 스펙 쌓기 바빴던 청년들이 다양화된 미디어, 각종 사회활동들을 접하면서 사회가 잘못된 틀을 가지고 있음을 자각하고 이를 해결해 줄 것을 정치권에 요구할
수 있게 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20대들의 움직임의 결과는 생각보다 놀라웠다.
“12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인천지역의 역대 선거 중 가장 낮은 투표율을 보인 18대(42.5%)총선의 경우 총 12석
중 10석을 여권 후보가 차지했다. 반면에 높은 투표율을
보인 17대(57.4%)총선의 경우 야권 후보가 9석을 차지했다. 결과적으로 투표율 상승을 견인한 20~30대의 투표 참여에 따라 여야의 희비가 엇갈렸다. 이 같은 현상은
이번 4.13총선에서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라는 한 기자의
예측대로 이번 총선을 통해 다수당이 바뀌었다. 이는 서울, 경기도
중심지역과 부산, 천안 등 젊은 층이 많은 도시에서 더불언 민주당이 큰 우세를 차지하게 된 결과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3) 하지만, 청년을 위한 정책은 없었다.
이처럼 이번 선거를 결정하는데 20대와 30대의
투표 참여 증가가 중요한 변수였음에도 불구하고 청년을 위한 정책과 청년 정치인은 외면 받고 있었다. 친구가
추천해준 어플을 이용해 ‘나에게 도움이 될 만한’ 공약들을 찾아보았지만, 그 어느 것도 눈에 들어오는
것이 없었다. 대부분이 노인문제나 농어촌 문제 등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고 있다는 전망 속에서 후보자들의 전망 또한 고령화 추세에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내가 눈여겨 볼 수 있었던 것은 청년 일자리 정책이었다. 청년을 위한 공약은 ‘일자리‘뿐이었지만
그마저도 청년의 요구가 반영되지 않은, 숫자 놀이의 공약이었다. 우리들이
원하는 것은 ’일하고 싶은 일자리‘가 늘어나는 것이었지만, 각 정당들의 공약속의 일자리는 말 그대로
’일하는 자리‘였다. 청년들, 즉 우리가 원하는 것은 단기적으로
진행하는 취업 지원 제도나 교육보다는 안전한 양질의 일자리이다. 우리나라가 정말 일자리가 부족한 것은
아니다. 자취 초반에 내가 매일 거울 보듯이 봤던 ’알바천국‘ 어플에는 맥도날드 배달원 모집 공고가
하루에도 수 십 건씩 올라왔고 내려갈 줄을 몰랐다. 이 외에도 생각보다 다양한 일자리들이 많이 있었다. 하지만 그 당시 서울로 올라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돈이 급했던 나조차도 일자리를 고르고 있었다. 나뿐만이 아니라 수많은 취준생들 또한 계속해서 취업을 준비하는 상태로 남아있는 이유는 바로 자신이 원하는 일자리를
갖지 못해서일 것이다. 이는 지나가는 취준생 한 명만 붙잡고 잠깐 대화를 나누어 봐도 알 수 있는 답일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청년희망아카데미의 확대나 공공부문 일자리 70만개
창출 등의 공약들은 청년들의 고충을 모르는 옆집 할아버지도 던질 수 있는 조언이다. 우리는 일자리가 늘어난 그래프를 보고 싶은 것이 아니라
내 앞에 주어질, 내가 만족할 수 있는 일자리를 만나보고 싶은 것이다.
이 외에도 ‘청년’이라는 단어가 들어갔지만 ‘청년’을 위한 내용은 없는 공약, 아예 ‘청년’은
배제되어 있는 공약 등 현재 우리나라의 정치에는 청년들의 비중이 너무도 작았다.
Ⅲ. 청년이 정치로 나가야하는 이유
1) 정치와 멀어진 청년의 미래는?
20대 총선에서 눈부신 활약을 한 청년들이지만, 청년을 위한 정책이 없다는 사실은 여전히 현
청년들은 정치와 매우 소극적인 관계에 놓여 있는 상황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계속된다면 가까운
미래에 우리나라의 모습은 어떻게 될까?
가장 가까운 미래부터 본다면 청년들은 정치인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투표하는 국민의 모습’을 가지고 있지 않은 계층으로 분류되어 앞으로
더욱더 소외될 것이다.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가보면, 정치에 무관심한 청년들이 기성세대가 될 것이다. 젊을 때 정치에 관심 없던 이가 나이가 달라졌다고 갑자기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될까? 청년이었던 시절 보았던 이분법적인 정치의 모습이 기성세대가 된다고 다른 모습으로 변해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그들 사이에서 금지어였던 정치가 어느 순간 주된 대화 주제로 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물론 사회에 나가 여러 가지 법정 분쟁에 놓이거나 세금과 같은 국민의 의무를 접하면서 정치에 대해 생각을 하는
때가 오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현 정치에 대한 불신과 분노만 더 크게 할 뿐이지 ‘제대로
된 정치’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가질 수 없는 상태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이것은 ‘관심’이
아니라 ‘분노’인 것이다. 이것이 20대 총선처럼 투표의
권리를 이용하여 표출되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이러한 분노가 정치에 대한 무기력으로 이어져 버린다면 현 총선에서 20대들이
소외된 것처럼 계속해서 국가에서 소외된 계층으로 남아버리게 되고 대한민국은 아무런 요구도 없이 분노만 하고 있는 국민들이 사는 나라로 남게 될
수도 있다.
현 청년들이 기성세대가 되는 것도 문제이지만, 이러한 모습의 기성세대를 보고 자랄 새로운
청년 계층 또한 이들의 영향을 피해갈 수는 없다. 생각해보면 현 기성세대들은 우리나라의 근현대 역사의
살아있는 증인들이며 우리나라의 역사를 바꾼 여러 혁명들을 만들어 낸 것이 바로 그들의 청년시절 모습인 것이다. 그들은
정치권의 부정부패에 대해 큰 분노를 품고 있었고 이러한 그들의 영향을 받은 것이 지금 우리의 모습이다. 즉, 한 국토 위에서 기존 세대의 영향은 피할 수 없는 만남인 것이고 현재의 청년들이 미래의 청년들에게 줄 영향
또한 불가항력적인 것이다. 그 모습이 어떠한 형태가 될지는 모르지만 정치에 무관심한 이 모습이 그대로
이어진다면 정치는 일부 계층들만이 하던 왕권 시대의 모습으로 돌아갈지도 모른다.
이 같은 나의 예측은 매우 비약적인 논리로 보일지 모르지만 나는 다음과 같은 비유를 통해 내가 우려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집을 짓고 싶어 하는 한 건축가가 있었다. 그 건축가는 크기가 각기 다른
기둥들로 집을 지을 기반을 다졌고 그 위에 한 층, 두 층 집을 쌓아 나갔다. 그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짓고 있는 집이 곧 이 세상에서 최고의 집이 될 것이라 큰소리를 치고 다녔다. 그러던 중 건축가는 그 중 가장 큰 기둥에 약간의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을 발견했고 이를 사람들이 발견하기 전에
얼른 페인트로 그 금을 가려버렸다. 매년 층을 높이기에만 바빴던 건축가가 틈틈이 보수공사를 한 것은
눈에 보이는 큰 기둥뿐이었고 그 사이 그의 시야에서 소외되었던 작은 기둥에 수많은 금이 갔고 결국 작은 기둥이 무너지면서 그 집은 모두 무너져
내려 버렸다.
내게 현 정치권은 건축가이고 큰 기둥과 작은 기둥은 각각 노인 세대와 청년 세대였다. 현제
우리 사회의 모습은 여러 계층들이 하나의 기둥이 되어 만들어진 국가에서 가장 눈에 띄는, 자신들의 불만을
호소하는 계층만을 위하고 있다. 결국 ‘가장 가늘고 약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지 않는 계층은 소외되어 버렸고, 그 계층이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상황에 있는 것이다.
청년들은 미래에 우리 사회를 이끌어 나갈 힘이라고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청년들 또한 우리
사회를 이루고 있는 하나의 구성원이다. 그 어떠한 구성원도 소외되어도 되는 구성원은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소외되어 있는 계층이 바로 청년인 것이 우리의 현주소이다.
2) 지금이 바로 청년들이 나서야 할 때
20대 총선에 대해 분석한 글들 중 눈에 띄는 글이 있었다.
“ 이전 총선에서 2030 유권자는 약 1,500만
명으로 전체 유권자의 35.7%를 차지했다. 그럼ㅇ도 불구하고
20대 총선 당선자 중 2030세대는 단 3명뿐이었다. 심지어 20대는
단 한명도 없었다. 청년의 문제를 직접 느끼고 통감할 수 있는 2030세대
정치인은 사실상 없다고 봐도 무방한 현실이다.”
이 글은 내가 이 에세이를 써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만들어 준 글이기도 하다. 처음 이 글을
접했을 때, ‘20대 국회의원이 단 한명도 없는 것은 당연한
거 아닌가?‘라고 생각하는 내 자신의 모습에 흠칫 놀랐다. 무의식중에서도
정치는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으로 치부하고 나로부터 멀리 떨어뜨리려 하고 있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를
대표하는 사람도 없는 현 정치에서 나는 누구에게 나의 고충을 알아 달라고 했던 걸까?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던데 10년도 더 전에 이미 사회로 나갔던 현 기성세대가 현재 청년들이 맞고 있는 사회를 온전히
다 이해해 주기를 바라는 것은 매우 부질없는 바람이었다.’진료는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라는 말처럼
청년을 위한 정치는 청년에게 맡겨야 했던 것이다.
청년들이 정치에 소외된 이유가 낮은 투표율 때문이라는 것은 대부분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년의 투표율이 계속 낮았던 이유는 이를 변화시킬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서였다.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정치에 굳이 참여하기 위해 노력할 이유가 없었다. 정치에 소외된 것이 우리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 인식하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다양한 케이블 방송들이 등장하고, 자신들이 맞이한 어려움이 사회에 있다는 것을 인식한 청년들은 18대
총선에서부터 꾸준히 변화해 오고 있었고 드디어 20대 총선에서 그들의 힘을 세상에 보여주었다. 정치권에서 드디어 청년들을 향한 조명이 켜졌고, 이제 우리가 원하는
것을 세상에 알릴 수 있는 날이 온 것이다. 조명 아래 모두가 집중하고 있는 이 상황에서 우리가 서로
다른 목소리로 난장판인 모습을 보이게 된다면 ‘역시 어린것들은’이라는 비판과 핀잔의 목소리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청년들의 목소리를 올바르게 대변하고, 선진 정치를
선도해나갈 수 있는 인재가 필요하고 그 인재가 바로 청년 정치인이라고 생각한다.
Ⅳ. 청년을, 국회로!
행복한 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청년이 행복해져야하고 이들이 행복하기 위해서 ‘청년 정치인’이 등장해야한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주장이었다. 그렇다면 ‘청년 정치인’이 대한민국 국회에 등장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방안들이 있을까?
나는 이에 대해 나라, 기성세대, 청년 3가지로 구분지어 각각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제안하고자 한다.
1) 나라에서 할 수 있는 일
청년들이 국회로 나아갈 수 있도록 가장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곳이 바로 국가일 것이다. 우선
국회의원 출마의 벽을 낮추는 일이 가장 기본이 되어야 할 것이다. 현재 국회의원 출마 자격 중에 나이제한은
만 25세 이상이며 그 외에 청년이 총선에 출마할 수 없도록 만드는 조건들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청년 정치인 후보조차 제대로 찾아볼 수 없던 이유는 당 내의 분위기와 재정문제 등의
환경적 요인이 크다.
이에 대해 나라에서는 청년 정치인 후보를 의무적으로 출마시키게 하는 할당제를 부여하거나 20대
혹은 30대 후보자들에게는 출마 지원금 제공 등의 지원을 해 줄 수 있을 것이다. 혹은 굳이 국회 자리를 마련하지 않더라도
청년들로 구성된 자문위원단을 하나의 국가 부서로 개설하여 청년들을 위한 정책을 고안하고 제의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선생님이 되기 위해 교육학과를 나오는 것 처럼 국회의원이 될 수 있는 과를 개설하는 방법 또한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을 청년들이 알 수 있도록 끊임없이 국가는 청년들에게 보여주며 ‘내가 정치에 무관심하지만, 정치는 나에게 무관심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어야한다.
2) 기성세대가 할 수 있는 일
기성 세대들이 정치이야기를 하는 모습이라
하면 대부분 술에 취해, 자신이 지지하는 당이 최고라며 자신과 다른 당을 지지하는 사람을 향해 언성을
높이는 아저씨들의 모습이 대표적이다. 이를 보고자란 청년들은 타산지석의 자세로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라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가 본받지 말아야 할 자세는 나와 다른 생각을 가졌다는 사실에 언성을 높이는 모습에서
그쳐야하지만, 우리는 ‘나는 정치색을 가지지 말아야지’라는 결론으로 가버리는 것이 문제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청년들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기성세대가 정치색에 물들어있지 않고
개인의 생각을 펼칠 수 있도록 열린 대화의 자리를 청년들과 많이 가져줄 수 있어야 한다. 또한 그들이
청년이었을 때에 겪었던 정치에 대한 불신을 더 이상은 청년들이 느끼지 않도록 기성세대부터 정치에 관심을 가지며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 바람직한 기성세대의 모습은 청년들이 정치에 더욱 관심을 가지고 자신들의 목소리로 국가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해 줄 것이다.
3) 청년이 할 수 있는 일
청년이 국회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가장 중요한 방안은 역시 청년에게 있다. 현재 자신들의
위치와 문제점을 알게 되었고, 나라에 청년들의 힘을 보여주었으니 이제는 청년들이 직접 국회로 나아가야
한다.
국회로 나아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든 되지 않든 우리가 나아갈 준비가 되어있음을 알려야 하고 기회가 주어졌을 때 그 기회를 잡을
수 있도록 청년들 스스로 뭉쳐 준비해야한다. 지금부터라도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는 연습을 하고 지금 옆에
있는 친구들과 대한민국의 미래에 대해 먼저 이야기를 꺼내 보는 것 또한 청년이 국회로 나아갈 수 있는 좋은 환경을 조성하는 데에 큰 힘이 될 것이다.
Ⅴ. 맺음말
네이버 국어사전에서는 정치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 나라를 다스리는 일. 국가의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며 행사하는 활동으로, 국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상호 간의 이해를 조정하며, 사회
질서를 바로잡는 따위의 역할을 한다.’
즉, ‘행복한 국가’를 이루자는 공통된 목표를 가지고 서로 상반된 주장만을 할 수는 없는
것이 정치이지만, 대한민국에서 정치하는 모습이라며 보이는 풍경은 상대편의 주장은 항상 틀렸으므로 깎아
내려야 하는 것이며 국가가 아닌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바쁜 모습이었다.
“‘행복한 한국사회’로 가기 위해 가장 중요한 과제는 무엇이며,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에 대한 나의 답은 다음과 같다.
“청년이 행복해져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청년들이 국회로 나아가야 한다.”
청년들은 대한민국의 미래이자 희망이다. 이들이 날개를 펴기도 전에 사회라는 새창 속에 가둬버린다면
대한민국은 고인 물속으로 가라앉을 수밖에 없다. 이들이 제외된 정치는 더욱 튼튼한 새장이 될 수밖에
없다.
새장 안의 세상이 전부인줄 알았던 청년들이 이제 새장 밖을 바라보고 있다. 정치권을 향해
소리치고 있는 청년들의 외침에 정치가 답하지 않으면 그들의 분노가 또 어떠한 결과를 불러일으킬지는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을 것이다.
이들이 정치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로 잡아 정치인들을 ‘나의 세금 먹는 하마’로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이를 해결하는 데에 도움을 주는 사람’으로 볼 수 있는 대한민국이 된다면, 대한민국은 지금까지는 상상할
수 없던 곳을 향해 나아가게 될 것이고 그 방향의 목적지는 바로 행복한 사회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