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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청년 에세이 우수작] 시대 변화에 따른 대학 개혁의 필요성과 구체화 방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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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지섭 (서울대학교)보도일 2015-09-01

요 약

2015 대학(원)생 에세이 공모전 우수작

' 시대 변화에 따른 대학 개혁의 필요성과 구체화 방안 '

- 서울대학교 김지섭

대학문제는 우리 사회의 여러 문제들을 복합적으로 엮고 있는 연결고리이기도 하다. 대학문제가 청년실업, 부의 세습과 같은 경제문제들과 1차적으로 연관될 뿐만 아니라, 대학이 바로 서지 못한다면 입시 과열이나 공교육 붕괴, 국민적 가치의 부재 등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가치까지 위협받을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대학 문제를 해결하는 것만으로도 사회를 이롭게 하는 다양한 개선책들을 제시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본 에세이는 현재 우리나라의 대학교의 근본적인 문제들의 원인을 규정하고, 최근까지 논란이 되고 있는 여러 대학 개혁 방안들과 관련하여 구체적으로 어떤 방향으로 대학 개혁이 이뤄져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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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준미래전략연구소에서는 전국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10년 내에 한국사회가 당면할 가장 중요한 이슈는?」라는 주제로 공모전을 개최하였다. 국내 53개 대학을 비롯해 튀니지대학(튀니지), 튈버그대학(네덜란드), 하노이국립대(베트남) 등 해외대학에 유학하는 학생 등 57개 대학 138개팀 179명이 응모해 높은 호응도를 보였으며, 이중 대상 2편, 우수상 10편을 선정하였다.

목 차

10년 내에 한국사회가 당면할 가장 중요한 이슈는‘ 대학 개혁’이다

대중적 교육기관으로 부상한 대학이 새로운 역할을 해내지 못하고 있다.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만큼의, 필요한 교육을 제공하는 대학

과감한 대학 개혁과 대학의 서열화가 아닌 다양화

내 용

[2015 청년 에세이 우수작] 시대 변화에 따른 대학 개혁의 필요성과 구체화 방안

김지섭 (서울대학교)

10년 내에 한국사회가 당면할 가장 중요한 이슈는 ‘대학 개혁’이다.

우리나라가 믿을 것은 ‘사람’ 밖에 없다고 한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좁은 땅덩이 위에서 남북으로 갈려 강대국들 틈바구니에 끼어있는 나라, 그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그러나 그러한 현실 속에서 그간 우리나라가

일궈낸 기적 같은 행보들을 보면 그것은 사람의 힘이었다고 할밖엔 다른 어떤 설명도 부족한 듯하다. 우린

스스로 우리나라에 대해 좋고 나쁜 많은 이야기들을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이 똑똑하다는 사실에는 아마 모든 사람이 동의할 것이다. 그렇기에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혼란과 불확실의 시대에 우리가 믿을

수 있는, 믿어야만 할 최우선의 가치는 바로 사람이다.

대학을 둘러싼 갈등이 끊임없이 세간을 시끄럽게 만드는 이유도

바로 그런 까닭이 아닐까. 세계 경기는 침체되고 있고 새로운 지식과 정보들이 세상을 움직이고 있다. 믿을 거라곤 사람 밖에 없는 우리나라에서 미래 인재인 대학생들을 어떻게 교육시키느냐의 문제는 사소한 개별사항이

아니라 국가의 미래가 걸린 일이 되는 셈이다. 변화하는 세상에 맞춰 분명 대학은 변화해야 한다. 이것은 국가의 사활이 걸린 문제이고, 따라서 대학을 개혁하는 문제는

우리나라의 향후 10년 이내에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대학문제는 우리 사회의 여러 문제들을 복합적으로 엮고 있는

연결고리이기도 하다. 대학문제가 청년실업, 부의 세습과 같은

경제문제들과 1차적으로 연관될 뿐만 아니라, 대학이 바로

서지 못한다면 입시 과열이나 공교육 붕괴, 국민적 가치의 부재 등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가치까지 위협받을

수 있다. 대학문제가 우리 사회에 끼치는 영향은 현재 70퍼센트를

웃돌고 있는 높은 대학진학률과 비례하여 막대할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우리는 대학 문제를 해결하는 것만으로도

사회를 이롭게 하는 다양한 개선책들을 제시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필자는 서울대학교에 재학 중인 대학생으로서 본 에세이를 통해

현재 우리나라의 대학교의 근본적인 문제들의 원인을 규정하고, 최근까지 논란이 되고 있는 여러 대학 개혁

방안들과 관련하여 구체적으로 어떤 방향으로 대학 개혁이 이뤄져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대중적 교육기관으로 부상한 대학이 새로운 역할을 해내지 못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대학이 갖고 있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를 누구나

공감할 부정적인 교육의 형태로 ‘개인과 사회가 필요로 하지 않는 지식들을 배우기 위해 시간과 노력과 돈을 투자해야 하는 것’으로 규정해보자.

아직도 이슈가 되고 있는 사안들인 건국대 학과 통폐합과 중앙대

이사장의 학교 개혁도 전부 이런 취지의 문제의식에서 제기되었다. 기존의 학과 시스템과 대학 구조가 변화된

시대와 사회 구조에 맞지 않고, 새롭게 필요되는 지식들을 가르치기 위해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제기에는 항상 학문적 보수주의의 반대가 뒤따르고 위의 두 사례 역시 그러한 갈등 속에서 내홍을

겪고 있다. 반대하는 주장은 학문이란 사회 변화에 상관없이 불변적으로 추구되어야 할 가치가 있다는 것으로서, 요즘과 같이 급변하는 세태에는 더욱 더 근본 원리를 탐구하는 기초학문 연구가 필요하다는 내용이다. 대학 개혁에 반대하는 관점에서 볼 때는 현재 대학에서 가르치는 모든 것들이 여전히 개인과 사회가 필요로 하는

지식들인 셈이다.

양측 주장에 모두 타당성이 있기에 이 대립은 아직도 팽팽하게

이어지는 중이고, 그 갈등 현안의 세부사항에 대해 우리가 옳고 그름을 말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우리가 시각을 넓히고 시대에 따라 변화해온 역사성을 고려한다면 우린 좀 더 큰 그림을 볼 수 있다. 분명한 사실은 대학이 끊임없이 변화해왔고, 또 앞으로도 그래야 한다는

것이다. 공학의 태동기인 100년 전쯤에는 그 전까지 학문의

전당으로서 학문 연구만을 목표로 했던 대학교에서 공학기술을 가르치기 시작하는 변화를 수용했고, 당시로서

그것이 얼마나 큰 변혁이었을지는 요즘의 대학 문제와 비교도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전에는 또

대학교가 학문 연구가 아니라 성직자 양성을 위한 교육기관이었을 때도 있었고, 대학은 중세 이후로 끊임없이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며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학문 연구 기관으로서 현행 대학시스템이 완벽하고, 시대와 사회에

상관없이 현행대로 유지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지나친 독단이 될 수 있음이 분명해 보인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대학에 요구되는 변화는 무엇인가? 가장 단순하고도 중요한 것은 새롭게 생겨나는 지식과 학문들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새로운 학과 개설이라는 비교적 사소한 변화를 통해 어느정도 해결될 수 있었고, 대학들은 각기 여러 종류의 신생학과를 개설하여 이러한 지식의 수요를 충족시켰다. 하지만 사회 변화가 지속됨에 따라 이러한 단편적인 변화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근본적인 문제들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중 가장 큰 변화는 바로 대학진학률의 변화에서 기인한다. 처음 우리나라에 대학교가 설립되었을 당시에는, 대학교는 소수 엘리트를

위한 교육기관일 수밖에 없었다. 대학교 수 자체가 많지 않았고 대학생은 사회에서 극소수에 해당했기 때문이다. 대학교에서 가르치는 내용은 국민 대다수가 알아야 할 보편적이고 대중적인 지식이어야 할 필요가 없었고, 상대적인 전문성으로 따지자면 현재의 대학원들보다 더 전문적인 성격을 띄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렇게 대학교는 전문적인 추가공부가 필요한 소수의 사회구성원을 가르치기 위한 교육기관으로 처음 자리 잡았던

것이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우리나라가 발전함에 따라 대학진학률

계속 높아져 한때 일시적으로 80퍼센트를 넘겨 현재까지도 70퍼센트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이제 더 이상 대학교는 소수 엘리트를 위한 교육기관이 아니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4년제 대학교들은 학문적 보수주의에

입각하여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학과 구분과 학풍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모든 4년제 대학교가 비슷한 학과구분과 수업내용들을 갖고 있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자.

대학진학률이 폭발적으로 상승하기 이전인 1990년까지, 당시의

대학 진학률은 30퍼센트 수준이었다. 불과 십여 년 만에

대학진학률이 두 배 넘게 증가한 것인데, 만약 대학들이 생겨난 이유가 사회가 필요로 하는 새로운 지식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었다면 신생대학들은 기존 대학교들의 학과구분이나 수업내용들을 그대로 벤치마킹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수요에 맞는 교육을 했어야

할 것이다. 현재 모든 4년제 대학교가 수십 년 전과 비슷하게

기초학문인 인문대학과 자연과학대학을 운영하며 전공생들을 배출하고 있는데, 그것이 과연 사회와 시대의

수요에 따른 변화였을까? 학문 연구는 반드시 이뤄져야 하고, 전문

종사자가 필요하다. 그런데 그것이 90년대 이전과 비교하여

정확하게 두 배 이상의 수가 필요해진 것이어서 다시 그 수를 줄여서는 안 되는 것인지, 과연 우리나라에

그토록 많은 프랑스문학 연구자, 스페인 문학 연구자, 수학자, 물리학자 등이 필요해서 그것들을 단순한 교양과목이 아닌 전공과목으로 가르쳐야 할 필요성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면밀히 살펴봐야 하는 것이다.

학과구분 뿐만 아니라 현행 대학교의 학풍과 수업수준 자체도

그것이 과연 대중적인 교육기관으로서 걸맞은 것인지 의심해볼 문제이다. 각 대학의 교수들은 일반적으로

명문대 출신에 해외유학경험까지 있는 학자들로 구성된다. 그들은 학문이 요구하는 절대적인 기준에 따라

수업내용과 커리큘럼을 구성하게 되는데, 대학진학률이 급격하게 높아짐에 따라 그 기준을 따라가기 버거운

학생들이 생겨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내가 대학교에 입학한 2010년

당시 입학요구 성적이 하위권인 대학교의 컷트라인은 수능시험 7등급 수준이었다. 수학 과목으로 치자면 당시 7등급은 100점 만점에 30점이었고, 객관식

문항을 고려하면 ‘잘 찍으면 받을 점수’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런 점수를 받은 학생이 대학교에

진학하고 수학을 전공하고 있는 상황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극단적인 예이지만 무분별하게 높아진

대학진학률 아래에서 얼마나 부적절한 교육이 이뤄질 수 있는지 우리는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전공수업

뿐만 아니라 교양수업도 마찬가지이다. 일반적인 의미에서 교양이라 함은 학문적인 지식과는 구별되는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가치를 일컬을 텐데, 대학의 모든 수업의 교수자는 학문종사자들이고, 따라서 대학의 모든 수업들은 여전히 소수 엘리트들에게나 필요할 강한 학문적 성향을 띄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서 대학진학률이 높다는 사실 자체를 문제

삼으며 대학 진학률을 낮춰야 한다는 목소리들도 존재한다. 그런 방식으로도 해결의 방향을 잡을 수 있겠지만, 나는 위에서 밝힌 바와 같이 우리나라의 미래는 ‘사람’에 달렸고, 따라서

한국사회의 이러한 높은 교육열과 대학진학률은 반드시 없어져야하는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우리나라의 발전을 도모할만한 강점이라고

보고 있다. 그렇다면 결론은 대학을 시대와 사회의 요구에 맞게 개혁해야 한다는 것이다.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만큼의, 필요한 교육을 제공하는 대학

사회는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새로운 지식과 수요가 계속해서

생겨난다.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 수는 점점 늘어나 보편적인 교육기관이 되었는데, 대학이 그 모든 변화에 빠르게 발맞추고 미래를 예측하기까지 하여 학과를 수시로 개편하면서 새로운 지식을 전달해주기는

힘들어 보인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여 가장 이상적인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선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

‘자유전공’과 같은 학과 형태가 그에 대한 일종의 해답이

될 수 있다. 필자 역시 서울대학교의 자유전공학부에 재학 중인데, 이곳은

학과 전체가 150명이나 되는 큰 학과이다. 이곳에서 학생들은

다양한 수업들과 전공들에 대해 알아본 뒤 자신의 전공을 결정한다. 이 과정에서 장래가 촉망되고 사회의

수요가 예측되는 전공들은 많은 선택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기존의 학문 연구를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인원은 지정 학과별로 선발하여 충원하고, 그것을 제외한 나머지는 자유전공의 형태로 선발하여

스스로 사회의 수요를 찾아 본인에게 필요한 교육을 받을 수 있게끔 하는 것이다.

현재 자유전공 시스템은 일부 대학에서, 그것도 일부 전공에 대해서만 선택권을 갖도록 시행되고 있다. 우리나라에

서울대학교를 포함한 몇 개 대학에 시범적으로 도입되었기 때문인데, 이에 대한 평가가 긍정적일 경우 자유전공

시스템은 더욱 확대될 필요가 있다. 높은 대학진학률 아래에서,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은 더 이상 과거처럼 특정 학문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싶어 하는 학자 지망생이 아니라 사회의 다양한 분야에서 일할 다양한 인재들이다. 그런 학생들에게 고등학교 때까지의 경험만을 바탕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평생 진로를 결정할 전공을 선택하게

하고, 그 전공과 연관된 지식들만을 집중적으로 공부하게 하는 것은 보편적인 교육기관으로서 부적절하다. 고도화되고 복잡해진 사회에 따라, 학생들은 대학을 다니며 다양한

전공과 직업에 대해 경험을 쌓고 자신에게 필요한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공부할 수 있어야 될 것이다.

자유전공 시스템이 모든 대학과 모든 전공으로 확대되어 적용된다면

대학과 연관된 아주 중요한 문제인 입시와 관련해서도 아주 긍정적인 변화를 유도할 수 있다. 입시가 과열되는

원인 중 하나는 고등학교 졸업 당시의 성적만으로 평생의 직업이 결정될 수 있는 구조적인 문제 때문이다. 특정

직업, 예를 들어 인기 있는 직업인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만점에 가까운 내신 성적과 수능 점수를 받아야

하고, 그런 구조 하에서는 경쟁이 과열될 수밖에 없다. 그런

방식을 채택하지 않고, 대학에 자유전공의 형태로 입학한 뒤 다른 ‘생산적인’ 경쟁을 통해 직업과 진로가

결정되게 한다면 우리 사회의 소모적인 입시 경쟁 문제에 긍정적인 변화를 줄 수 있다.

이러한 확대된 ‘자유전공’ 시스템의 도입이 필자가 주장하는

첫 번째 개혁방향이라고 한다면, 그것과 연계되는 두 번째 개혁안은 대학 수업에 ‘외부주체 참여’하게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대중적인 교육기관인 대학교에서 학문종사자인 대학교수들에 의해서만 수업이

진행되는 것의 문제점에 대해서 위에 지적한 바가 있다. 그렇다면 학문을 전문적으로 연구할 일부 대학교를

제외하고는 기업이나 개인 등 외부 주체가 적극적으로 대학에 참여하여 학문적인 틀에서 벗어난 다양한 교육을 실시하자는 것이다. 기업이 참여하는 방식은 성균관 대학교의 반도체 관련 학과가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반도체 관련 공학 지식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고, 이런 형태의 지식을

정해진 커리큘럼으로 고정시키고 실무와 동떨어진 학문종사자가 가르친다면 그것은 굉장히 비효율적인 일이다. 이렇듯

사회에서 필요되는 새로운 지식들을 가장 잘 가르칠 수 있는 방법은 그 사회 주체가 직접 교육에 참여하는 것이다.

수많은 기업들이 ‘대학 졸업자가 업무능력을 갖추지 못해 새로 교육시켜야 한다’는 이야기들을 한다. 이런

방식을 택하면 그러한 학업과 현실의 괴리를 획기적으로 줄여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직업과 관련된 수업뿐만 아니라 교양수업도 마찬가지이다. 세상엔 대학교수들 말고도 훌륭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고, 그들로부터

다양한 가르침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훌륭한 소설가가 진행하는 글쓰기 수업이나, 현직 기자가 진행하는 시사 수업 등은 학문적인 교양수업만큼이나 의미있는 배움이 될 수 있고, 그런 것들이 바로 대중적이고 보편화된 교육기관에 필요한 수업들이다.

대학으로의 외부주체 개입은 학문적 보수주의자들의 반대로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그러한 갈등을 절충시킬 수 있도록 학문연구를 위한 학문적 학풍의 대학들은 따로 구분하여

사회에서의 필수적인 역할을 맡길 필요가 있다. 하지만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대학교와 대학생의 수는

갑작스럽게 증가했으며, 모든 대학에서 보수적인 학문연구가 이뤄져야할 필요는 없는 것이고, 따라서 대학들을 구분하여 일부 대학에는 위와 같은 방식으로 적극적으로 외부주체의 개입을 통해 대중화를 이룰

필요가 있는 것이다.

외부주체의 개입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다면 대학 문제 중 가장

핵심적인 문제의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게 된다. 바로 취업, 공급과

수요, 경쟁과 같은 문제들이다. 성균관대학교의 반도체학과의

경우처럼, 기업이 수업 주체로 참여한다면 기업과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재 간의 컨택이 이뤄질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이러한 시스템이 이상적인 형태로 자리 잡는다면, 기업은

더 이상 기업이 원하는 업무능력을 갖춘 인력을 힘들게 찾을 필요 없이 기업이 진행하는 수업들을 훌륭하게 이수한 수강생들을 찾으면 된다. 학생 입장에선 힘들여 자신이 기업에 필요한 인재임을 어필하거나 꾸며낼 필요 없이 자신이 원하는 수업을 열심히

듣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현행 시스템 하에서는 대학에 갇혀 공부는 공부대로 했으나 사회에 나가보니

아무도 그 지식과 능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경우가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이런 구조 하에서는 그와 같은

문제가 혁신적으로 개선된다.

대학 내에서의 경쟁 역시 이런 공급과 수요의 원칙에 따라

생산적인 경쟁이 될 수 있게 해야 한다. 사회의 수요를 덮어놓고 대학 내에서의 학점으로 서열을 가릴

것이 아니라, 외부 주체가 개설한 강좌에서 받는 성적을 통해 자신이 직접적으로 사회에 나갔을 때 그

분야에서 경쟁력이 있는지 없는지, 자신이 사회가 필요로 하지 않는 초과 노동력은 아닌지 피부로 느끼며

공부하게 하는 것이다. 촉망받는 분야 중 하나인 컴퓨터 공학을 예로 들어보자면, 전망이 좋기 때문에 많은 수의 학생들이 과도하게 컴퓨터 전공 수업에 몰릴 수가 있다. 그러나 그 중에 적성과 재능을 보이는 학생들 중에 사회가 필요로 하는 수 만큼만이 강의 교수자로부터 컨택을

받게 될 것이고, 다른 학생들은 그 분야에 계속 도전할지 아니면 자신의 적성과 사회의 수요에 맞는 다른

분야에 도전할지 현실적인 판단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위에서 설명한 첫 번째 개혁방향 ‘자유전공’ 시스템의 도입, 두 번째 개혁방향 ‘외부주체 참여’와 더불어 마지막으로 제시할 개혁안은 ‘졸업 제도 철폐’이다. 이것은 다소 극단적인 주장이고 갑작스럽게 도입되기에는 수많은 부작용과 시행착오가 예상되기에 10년보다도 더 오랜 시간을 갖고 조심스럽게 도입되어야 할 변화인 것은 맞지만,

궁극적으로 대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두 가지 개혁방향을 제대로 뒷받침하기 위해서 이 세 번째 개혁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 문제의식의 배경은 ‘졸업’ 자체가 위에서 열거한 수많은 문제들이 해결되지 못하게 하는 방해요소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모든 대학교의 졸업규정은 굉장히 복잡하고 까다로운 편이다. 그것은 학교가 학생에게 ‘이러한 방향으로 이만큼의 공부를 해야 한다’라고 강요하는 장치라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전국민의 70퍼센트 이상이 교육받는 대중적인 교육기관으로서

대학교는 학생들에게 그런 요구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학문적인 연구를 위해서는 정해진 커리큘럼과

‘학사 학위’에 해당하는 지식의 정도를 규정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학문종사자가 아닌 국민 대다수가

교육받는 대학교라면, 궁극적으로는 그런 낡은 규정을 버리고 각자가 자신에게 필요한 만큼의 교육을 받는

방식으로 나아가야할 것이다. 자신이 금융권에 일할 사람이라면, 수학을

전공으로 선택하여 모든 졸업 커리큘럼을 이수할 것이 아니라, 경제학 수업과 수학 수업 중에 필요한 수업들을

적절히 선택하여 듣고 능력을 갖췄다면, 예를 들면 강의 주체로 참여한 금융기업으로부터 실무 제의를 받았다면

당장 학교를 떠나 일을 해보는 것이 이상적인 구조일 것이다. 새로운 사회에는 다양한 직업들에 다양한

지식들이 요구되고 있고, 대학교가 학문적인 기준을 바탕으로 정하고 있는 졸업규정들은 결국 점점 변화의

걸림돌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졸업이 없다는 것은 학교를 금방 떠날 수 있는 것뿐만 아니라

학교에 돌아올 수 있는 것도 의미한다. 자신이 업무능력을 갖춰 일을 해보았으나 만약 더 많은 교육의

필요성을 느낀다면? 아니면 자신이 하던 일을 그만두고 다른 분야의 일을 시작하기 위해 교육이 필요하다면? 그런 경우는 현대사회에서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고 앞으로는 더 많아질 것이다.

새로운 지식이 축적되는 속도에 따라 사람은 한참 전에 공부한 지식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새로운 지식의 습득이 이뤄져야 하고, 노령화와 사회 변화에 따라 직업을 바꿀 필요성도 계속해서 증대되기 때문이다.

요즘 대학들은 그런 세태에 대비해 복수전공과 같은 제도를 도입하며 대학생들의 공부량을 더욱 늘리고만 있으며, 대학생들은 4년안에 평생에 필요한 모든 지식들을 쑤셔넣느라 점점

불평이 많아지고 있는 것이다. 졸업이라는 제도는 근본적으로 대학공부를 4년으로 제한하여 그 이전과 이후를 학업과 직업으로 구분해버리고 있기 때문에, 당장은

10년 내에는 아니더라도 궁극적으로 대학시스템은 졸업 제도를 훨씬 유연하게 바꾸는 방향으로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

과감한 대학 개혁과 대학의 서열화가 아닌 다양화

현재 우리나라의 대학들은 모두 비슷한 교육시스템을 가진 채

서열화 되어 있다. 비슷한 대학구조와 서열화는 깊은 연관을 가진 문제인데, 왜냐하면 대학들이 과감하게 개혁을 시도하는 데에 어려움을 갖는 이유 중 하나가 현재의 서열에서 밀려날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고, 또 모든 학교가 특색 없이 천편일률적인 교육을 시행하고 있기 때문에 학교의 특성과

학생의 취향에 따른 선택 없이 일차원적인 서열화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교육이 필요하다. 우리는 용기와 지혜를 갖고 대학들을 개혁해야 하며 서로 다른 방향으로 개혁된 대학들은 서로 다른 이념을 갖고

사회가 필요로 하는 다양한 인재들을 양성해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미래는 ‘사람’에 달려있고, 그 사람들을 잘 교육해낸다면 우리나라의 미래는 언제나 밝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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