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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청년 에세이 우수상] '행복은 안전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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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고나윤 (인하대학교 정치외교학과)보도일 2016.07.20

요 약

행복의 가치는 자신의 삶에 대한 만족감을 기본으로 한다.

행복감은 또한 안전한 삶에 대한 평가를 통해 각 개인이 느끼는 만족감도 결합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사회 공통체 속에서의 생활을 필연으로 하는 인간들에게 안전은 행복을 담보하는 기준이다. 공동체 속에서 인간은 다른 사람의 아픔을 공유하고, 다른 사람의 고통을 감각하며, 다른 사람의 행복도 공유하는 사회적 행복지수를 형성하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따라서 안전하고 건강한 사회 공동체가 형성될때 개인의 행복의 질도 높아진다.

목 차

세월호의 기억

우리사회의 안전 불감증

안전하지 못한 사회와 행복

재난 안전에 대한 대응

건강한 공동체

다시 가족으로 돌아와서

내 용

[2016 청년 에세이 우수상] '행복은 안전순 입니다'

고나윤 (인하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세월호의 기억

“운동화 찾아 가려고. 그거 줘.”

“담담하게 말하는 엄마의 말이 더욱 가슴을 미어지게 했습니다. 저는 세탁소를 운영하는 사람입니다. 이웃집 단골손님의 고등학생 딸아이가 수학여행 갔다 온 후에 찾아가겠다고 맡겨놓은 운동화의 주인이 끝내 모습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며칠 후 아무도 쉽게 꺼내지 못하고 인사말조차 건네기 어려웠던 그 이웃집 사람이 운동화를 찾으러 왔습니다.”

세탁소에 맡긴 딸아이의 운동화를 찾으려왔다는 내용의 사연이 방송에서 흘러나왔다. 세월호 희생자의 부모가 딸의 마지막 유품이 된 운동화를 찾으러 세탁소에 온 이야기가 라디오 진행자를 통해 전달되었고, 그 진행자는 끝내 울먹이고 있었다.

“꺼윽 끄윽”

슬픈 사연은 차마 다음 구절조차 아버지의 울음에 잠겨 내 귀에 들려오지 않았다. 사연을 듣던 순간 운전을 하던 아버지는 눈물을 흘리며 소리 내 울었다. 내가 본 아버지의 최초의 울음이었다. 당황스러웠다. 나 역시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사연에 잠시 울먹해 있던 터였다. 그 틈을 비집고 아버지의 울음이 흘러나왔다.

아버지의 통곡과도 같은 소리가 이어졌고, 끝내 우리 집 차는 갓길에 비상등을 켜고 섰다. 골목을 찾아 안전한 곳에 주차를 하고 아버지는 차에서 내려 잠시 하늘을 보았다. 그리고 슬픈 사연을 되새김하듯 아버지의 긴 호흡은 이어졌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업으로 하는 아버지에게 그 슬픈 사연은 심장 깊은 곳을 두드리기에 충분했던 것 같다. 나 역시 고등학생으로서 그 사연을 듣는 동안 충분히 끌어 오르는 분노와 슬픔이 주체할 수 없었기에 그냥 아버지의 등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언제나 듬직했던 아버지의 등은 가파른 산비탈에 굽어 자란 소나무처럼 말라 있었고, 흐느낌은 그 말라비틀어진 소나무가 거센 바람에 흔들리듯 들썩였다.

하교하는 나를 태우러 왔던 아버지는 뜻하지 않은 라디오 사연에 무장 해제되고 다리가 풀리고 말았다. 그리고 항상 듬직했던 아빠의 뒷모습은 끝내 어두운 골목에 주저앉은 중년의 모습으로 기억된다.

우리사회의 안전 불감증

세월호의 참사 앞에 많은 사람들이 비통해했다. 모두들 깊은 한숨과 몇몇 사람들을 표적삼아 그들에게 저주의 말을 퍼부었다. 그러한 비통함으로 인해 축제 행사는 취소되었고, 소비가 줄어들면서 경제가 위축되기도 했다.

“저런 쳐 죽일 놈”

등교 시간이 늦을까봐 잡아탄 택시 기사는 TV를 통해 세월호 뉴스를 보고 있었다. 운전하면서 흘끗흘끗 TV를 보는 기사는 선장과 선원들에 대해 저주의 말을 퍼부어댔다. 그러면서 정지선을 넘어서고, 신호가 채 끝나기도 전에 급출발을 했다.

“오! 주여”

나는 택시를 타면서 기도를 해야 했다. 안전하게 목적지에 도착하고 나서야 긴 한숨을 내쉬었다. 선장을 욕하면서 자신을 되돌아보지 못하는 택시기사의 행동에 화가 났다. 자신의 불안한 운전은 괜찮은 것인가, “당신 할 일이나 제대로 하세요.” 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지만 소녀의 가냘픈 외침은 아무 반응 없이 거스름돈과 함께 사라졌다.

하긴 노래방시설이 된 관광버스에서 음주가무를 즐기는 행동은 또 어떠한가? 휘황찬란하고 번쩍이는 노래방시설을 한 관광버스를 적어도 수십 대는 보았다. 관광버스에 노래방 시설을 하는 곳이 주변에 있기에 목격한 광경이다.

당연히 관광버스에 노래방 시설을 하는 업자도 주변에 있다. 노래방시설은 불법이기에 백 만 원이 넘는 과태료가 관광버스 기사에게는 부과되지만 노래방시설을 하는 사람에게는 아무런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인지 그 노래방업주는 외제차를 3대나 굴리는 사람이다. 처자식까지 모두 외제차를 몰고 다닐 정도로 관광버스 노래방 시설은 대박 아이템이었다고 한다. 심지어 스쿨버스에도 노래방시설을 하는 것을 보았다.

“저런 쳐 죽일 놈.”

버스에 노래방 시설을 하러온 관광버스 기사의 입에서도 똑같은 이야기가 나왔다. 세월호 참사를 TV로 보면서 지나가는 사람이 다 들릴 정도로 욕을 해대고 있었다. 아! 저런 사람들이 관광버스를 운전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아찔했다.

“당신 미쳤어요.”

“한 잔 밖에 안했어.”

방금 주차장에서 나온 10층 부엌가구 대리점 사장은 화물차량을 몰고 다닌다. 그 사람과 같은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 사람의 아내는 술 냄새가 풍기는 엘리베이터 안 공기를 공유하는 나를 보며 남편을 책망한다. 아찔한 상황이다. 한잔을 마셨으니 음주운전을 해도 된다는 것인지, 아니면 내가 그 사람을 경찰에 신고하지 말라는 무언의 압박인지 당황스럽다.

아버지였다면 분명 경찰을 불렀을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여학생으로서 이 사회에 존재하는 무언의 폭력적 사회 분위기 속에서 용기를 내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저 사람의 범죄를 목격한 사람은 지금 나뿐이다. 엘리베이터 안은 3사람이 있고, 주차장에 차를 세운 것을 본 것은 나뿐이다. 물론 cctv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할지라도, 저 사람의 완전범죄를 놓고 나의 눈동자는 흔들린다. 아버지는 그 현장을 목격하고 112에 신고했음을 나는 안다. 하지만 나는 그들과 맞설 용기가 아직은 많이 필요하다.

“우리차도 선팅해요. 여름철에 햇빛이 그대로 들어온단 말 이예요.”

아파트 주차장에서 본 거의 모든 차들은 짙게 선팅이 되어 있다. 차가 클수록 더 선팅이 짙은 경향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밖에서 차안을 들여다볼 수 없기에 한정된 공간이지만 사생활도 보장될 것 같기도 했다. 간혹 차에서 거울을 보고 화장을 고치던 습관을 생각해 보면 선팅을 하면 어느 정도 외부노출을 차단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에게 차에 선팅을 하면 어떻겠느냐고 여쭤본 적이 있다.

“선팅을 하면 안전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선팅이 되어 있으면 앞차의 앞차를 볼 수가 없다. 신호등에서 생각해 봐라. 신호가 바뀌었는지를 앞차의 유리창을 통해서 확인해야 하는 경우도 있는데 선팅이 되어있다면 시야를 가리는 경우가 많다. 더구나 운전자 입장에서는 외부 환경에 적절한 대응을 할 수가 없다.”

아버지의 모범답안이 응답으로 돌아왔다. 모두들 그렇게 한다. 불법인줄 알면서도 그렇게 하는 사람도 있고, 불법인줄 조차 모르는 사람들도 있다. 남들이 그렇게 하는데 뭐 어때 하는 분위기가 주차장과 차량을 점령하고 있다.

안전하지 못한 사회와 행복

행복의 가치는 자신의 삶에 대한 만족감을 기본으로 한다. 행복감은 또한 안전한 삶에 대한 평가를 통해 각 개인이 느끼는 만족감도 결합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루 일과를 끝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때 느끼는 안도감과, 집안의 안온한 분위기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인간의 삶을 지탱하는 가치로서 존재한다.

행복의 반대개념을 슬픔으로 단순화 해 본다면, 그 정점에는 눈물을 흘리는 상황이 있을 것이다. 사회가 안전하지 못해서 재난이 발생하고 그에 따른 고통을 전 국민이 공유하는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면 그 사회와 공동체는 결코 행복지수가 높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전쟁, 화재, 침몰 등등의 재난상황은 결국 행복의 대척점에 서 있는 사회적 재앙들임을 생각해 볼 때 공동체 속에서 느끼는 행복감이 결코 한 인간의 삶에 만만치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사회에서 발생한 안전하지 못한 사회의 결과 나타난 국민들과 공동체 속에서의 불행은 대표적인 사건으로도,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사고, 세월호, 대구지하철참사 등등이 있다. 외국의 경우에도 911테러,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폭발, 여러 차례의 화산과 지진활동 등이 행복감과 밀접한 연관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재난은 공통적으로 재난의 현장에 있던 직접적인 피해자뿐만 아니라, 그 사건을 목격하거나 인지한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깊은 트라우마를 남긴다.

정신적 피해뿐만 아니라 경제적 피해도 실질적으로 존재한다.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폭발이 발생한 후에 관광객들이 감소하고, 그에 따라 지역경제에 타격을 가하면서, 주변 지역을 초토화 시키는 상황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생각해보면, 재난으로 인해 발생하는 피해는 실질적으로 눈에 보이는 것 이상임은 분명하다.

안전에 대한 관심은 이제 관심을 넘어 국민의 권리라는 개념으로 확장되고 있다. 소비자가 상품을 구입할 때 기본적으로 ‘안전하게 소비할 권리’라는 것도 그러한 확장성에서 등장한 것이다. 최근 우리사회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피해는 안전한 소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증언하고 있다.

일상생활에 깊숙이 침투한 인터넷도 마찬가지다. 사회적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는 대표적 도구인 인터넷을 통해 우리는 안전하지 못함을 접하기도 한다. 보이스피싱과 파밍 등의 공격을 받는 경우가 흔하고, 컴퓨터 바이러스로 인한 불편함은 인터넷이 안전하지 못함을 나타내는 증거들이다. 또한 스팸메일과 같은 무분별한 마케팅으로 인해 인터넷 메일을 활용하는 과정에서 무의미한 시간 낭비도 자주 빚어지고 있다. 안전한 인터넷 환경이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주택역시 안전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집을 꾸미기 위해 사용하는 소비재들 중에서 인간의 안전과 건강을 위협하는 물질들이 존재한다. 안전이 검증되지 않은 화학약품들이 유통되고 있으며, 그것을 사용한 사람들에게 안전함을 보장하지 못하고 있다. 새집 증후군과 같이 화학물질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품들이 주택 안에서 안전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경우다.

음식은 또한 어떠한가? 우리의 식탁에 오르는 음식은 공동체의 집약이다. 농부가 재배한 쌀은 안전하고 안심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은 농약에서 비롯된다. 농부가 생산한 1차 산물은 유통과정에서 포장지 제조업자와 교통과 물류를 거치고, 시장에서 거래되면서 최종 소비자에게 전달된다. 그 과정에서 안전함은 보장되어 있는지에 의문을 제기하는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 유통기한은 최소한도의 안전장치인데, 그것을 넘어서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하고, 통조림에 보관된 식품에서는 이물질이 검출되기도 한다. 가공식품의 변질로 인해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에 대한 불안감은 먹을 것에 대한 불안감으로 이어진다.

재난 안전에 대한 대응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는 과정은 결국 정부라는 큰 틀에서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그간 우리나라의 안전에 대한 대응은 사회재난에 대해서는 안전행정부가 담당하고 있었고, 자연재해에 대해서는 소방 방재청이 담당하는 이원화 체제였다. 2014년 발생한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이원화 되어 있던 재난대응체제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만들었다. 2014년 11월 시행한 정부조직법 개정안에 따라 재난안전을 총괄하는 부처로 국무총리 직속의 ‘국민 안전처’를 신설이 그것이다. 재난 대응기관으로서 국민 안전처는 국가적 재난관리에 대응하는 재안 안전 총괄부서로서 설립되었으며, 재난에 대해 종합적이고 신속한 대응 및 수습체계를 마련하기 위해 설치되었다.

재난안전의 대응 체계는 재난 발생 시 기본적으로 해당 유관기관이 담당하고, 각 지자체별로 재난안전 대책본부를 운용하여, 소규모 재해의 복구를 담당하고 있다. 소형 재난안전은 각 지자체가 대응하되, 대응 재난 발생 시에는 중앙 재난안전 대책본부를 구성하도록 하고 있다. 대형 재난에 대응하기 위해 국무총리가 지휘하며, 재난이 발생하였을 경우 초기의 대응 및 지휘를 비롯하여 재난상황 전파 및 수습 등을 위한 총괄적인 담당을 하게 되는 구조이다.

국민 안전처는 재난 유형별로 안전관리 책임기관을 구성하고 있으며, 주된 대응기관은 소방 방재청, 환경부, 해양경찰청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재난 상황에서 인적피해에 대응하는 기관으로 보건복지부 등이 유관기관으로 참여하고 있다.

세월호를 계기로 재난대응을 위한 신속한 조처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통합적인 관리체계가 이루어진 것은 시기는 늦었지만 필요한 조치였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재난에서 발생하는 물질적 피해가 아닌 정신적 피해에 대한 대응을 위한 대책이 빠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대규모의 재난 이후 사회에서 발생하는 국민적 외상 후 스트레스 같은 점에 대한 대응책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PTSD)에 대해서는 재난 이후의 복구에 관심을 두고 있으며, 이에 대한 진단으로 1997년 Posttraumatic Diagnostic Scale(PDS)이라는 척도로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의 Edna B. Foa가 개발한 외상 후 스트레스 증상을 평가하는 자기 보고식 도구를 통해 평가하는 기준이 마련되어 있다.

재난 이후에 겪게 되는 스트레스 장애는 실제적이며, 구체적인 증후를 보이는 것이 분명하고 이에 대해서 진단법도 제시되어 있지만, 이러한 국민적 충격에 대한 매뉴얼을 국민 안전처에서는 제시하고 있지 않고 있다.

물리적 피해 이상으로 전 국민들이 겪게 되는 심각한 정신적 후유증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해 보이는 대목이다. 국민들이 실제 생활에서 경험하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생각보다 광범위하며, 이것이 우리가 사는 삶의 질, 즉 행복감에 미치는 영향도 무시 못 할 만큼 크다는 사실을 생각해 볼 때 반드시 필요한 대응책이다.

국민 안전처를 통해 이루어지는 대응은 물리적 피해와 재난의 직접적인 당사자에 대한 대응을 기본으로 하고 있기에 재난 발생에 대비한 정신건강 평가 체제가 준비되어 있지 않다. 또한 지속적인 관리에 대한 준비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재난 발생 시 일시적인 평가도구에 지나지 않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재난에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은 생존자 및 그 가족뿐만 아니라, 관련 업무 종사자와 국민전체의 심리적 불안에 대한 대응 방법이 준비되어 있지 않기에 이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현재까지 연구된 바로는 지역사회 내에서의 소속감과 공동체 의식을 통해 재난에 대한 지역사회의 회복력을 향상시키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재난에 대한 대응에서는 공동체의 소속감과 공동체에서 유지되는 유대감이 외상 후 스트레스 증상을 완화하거나 치유하는데 효과를 보이는 것을 알 수 있으며, 결과적으로 우리사회 전체의 공동체 의식이 심리적 치유에도 유용하며, 이러한 공동체의 질서 속에서 심리적 안정감을 가져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진 자료는 원본 PDF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자료출처 : http://torrensresilience.org/images/pdfs/toolkit/tritoolkit.pdf

건강한 공동체

사회 속에서 생활을 필연으로 가진 인간들에게 안전은 행복을 담보하는 기준이다. 건강한 사회의 척도는 얼마나 안전하게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인가로 판가름 난다는 평가는 그래서 유효하다.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물품들이 사회공동체가 이루어낸 산물들로 구성되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물 한 모금, 마시는 공기마저도 실제로는 사회공동체 속에서 이루어진다. 내가 들이키는 생수병에 담긴 물은 수원지의 주변 환경과 그 주변 사람들의 생활에 영향을 받을 것이며, 생수통을 제조한 사람들의 화학물질 사용도가 또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병뚜껑과 라벨을 제조하는 과정, 물을 용기에 담는 과정, 그리고 유통과정까지 거치는 사회적 관계를 통해 내 손에 쥐어진다. 공기 역시 우리가 사는 곳의 위치와, 아랫집 혹은 윗집에서 내뿜는 공기속의 물질을 통해 영향을 받으며,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이동하거나 거리를 나서는 순간 주변 공동체에서 이루어진 공기의 질에 영향을 받는다.

감정도 마찬가지다. 인터넷이나 TV등의 대중매체를 통해 전달되는 소식들은 우리의 마음속에 물결을 일으키고, 이것은 우리의 정신감응을 불러온다. 사회에서 태어나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과, 가본적조차 없는 곳에서 벌어진 무수한 일들이 우리의 정신건강에 직, 간접 영향을 끼치고 있다.

공감하는 능력을 가진 인간이기에 가능한 상황들이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공유하고, 다른 사람의 고통을 감각하며, 다른 사람의 행복도 공유하는 사회적 행복지수를 형성하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있다.

그래서 건강한 공동체가 필요하다. 건강한 삶의 공동체는 눈에 보이는 것만이 아니라, 인간의 심리상태에도 영향을 끼친다. 알게 모르게 스며드는 다양한 인식들로 우리는 공동체가 행복한 것인지, 아닌지를 분별해 내고 있다. 사회적 행복지수는 그래서 중요하다. 개인이 엮인 네트워크를 고려해볼 때 사회적 공동체의 행복이 결국 개인의 행복과 결부되기 때문이다.

다시 가족으로 돌아와서

어느 시인은 자신을 키운 것은 ‘8할 이상이 바람’이라고 했다. 8할 이상의 바람은 실제로 사회라는 공동체가 만들어내는 바람을 이야기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를 구성하는 모습, 나의 존재의 바탕은 사실 절반이상의 결핍을 채우는 과정일 것이기에 그러하다.

그 공동체의 출발점은 가족이다. 내게도 3대에 이어지는 건강한 행복의 원천인 가족이 있다. 할아버지는 90이 다 되신 연세에도 매일 밝은 기운으로 세상을 보는 힘을 자랑하시려는 듯 꼿꼿이 앉은 자세로 동생과 장기를 세 시간 이상 두신다. 80대 중반인 할머니는 바쁜 우리가족을 위해 가끔은 새벽에 우리 집 앞에 따끈한 온기가 남아있는 곰국을 가져다 놓고 가신다.

곰국이 문 앞에 놓여있는 날은 어머니, 아버지의 표정은 어둡다. 아니 죄인이 조선시대 형벌인 칼을 쓰고 있는 표정이 된다는 것이 더욱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할머니가 끓여다 주신 곰국은 그래서 내겐 언제나 희뿌연 국물처럼 뿌연 맛이다. 대학입시를 치르던 날도 내가 대학에 입학하던 날도 할머니는 곰국을 끓여다 놓으셨던 것 같다.

그런데 그 곰국을 보면 짠하다. 마음속의 짠함은 혹은 철마다 집 앞에 놓인 오이, 배추, 양파와 같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텃밭에서 가꾼 농작물이 쌓여 있을 때도 마찬가지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미안하다고 하고, 어머니 아버지는 안타깝다는데 모두가 한자리에 만나면 이웃사람 대하듯 또 데면데면하다.

차로 10여분 거리에 사실 수 있도록 집도 마련해 드린 부모님인데 자꾸만 죄를 지은 느낌이라고 하고, 김치며, 멸치 볶음까지도 할머니 음식 솜씨로 버티는데 할머니 할아버지는 미안하다고 하신다. 당신들은 많이 배우진 못하셨어도 아버지를 대학교와 대학원까지 뒷바라지 하셨는데, 그래도 또 남들보다 못해줬다는 것도 객관적 사실과 결코 부합하지 않는다.

이렇게 무덤덤하게 보이는 가족 내의 행복은 서로에 대한 깊은 신뢰와 안전을 보장하는 시스템을 통해 3대에 걸친 튼튼한 울타리로 작용한다.

그렇게 구성된 가족은 또 다른 공동체인 가족들과 만나 사회의 공동체를 이루어낸다. 사회라는 공동체는 때로는 가족과 같은 힘의 원천이 되기도 하고, 슬픔과 고통을 함께 공유하는 공동체가 되기도 한다.

공동체의 삶이 행복해질 때 우리사회 전체의 행복의 질은 더 높아지고 건강해지는 것은 자명하다. 행복의 양을 측정할 수 있다면, 사회 전체의 총량이 커질수록 개인의 행복한 삶도 더욱 커질 것이다. 공동체 사회가 행복해야 만이 개인의 삶도 함께 높아진다. 사실 우리는 남의 고통도 함께 공감하는 성향도 함께 지니고 있다.

세월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았다. 하지만 우리라는 사회의 공동체에서 비록 겉으로 표현하지 않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 불행에 안타까워했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도 모두가 그것에는 공감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겉으로 표현되지는 않았다 해도 공동체 속에서 우리는 그 고통을 치유해내는 따스함이 있음을 기억하고, 손을 내밀어 함께 함을 느끼는 호모사피엔스 사피엔스들을 바라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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