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서기슬 (카이스트)보도일 2015-09-01

요 약
2015 대학(원)생 에세이 공모전 우수작
' 인문학의 부름을 기다리고 있는 기술들을 위해 ' - 하이테크 인문학 의 필요성과 육성 방안
- 카이스트 서기슬
기술의 진보 속도는 대중의 상상력보다 빠르다. 본 에세이는 과학적 상상력을 자극하고, 과학 기술과 사회 현안의 관계에 대해 고민할 수 있도록 하는 학문적 대안으로서, ‘하이테크 인문학’이라는 개념을 제안하고 그 육성 방안에 대해 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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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준미래전략연구소에서는 전국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10년 내에 한국사회가 당면할 가장 중요한 이슈는?」라는 주제로 공모전을 개최하였다. 국내 53개 대학을 비롯해 튀니지대학(튀니지), 튈버그대학(네덜란드), 하노이국립대(베트남) 등 해외대학에 유학하는 학생 등 57개 대학 138개팀 179명이 응모해 높은 호응도를 보였으며, 이중 대상 2편, 우수상 10편을 선정하였다.
목 차
기술 발전의‘ 가속 요인’과 느린 인문학
진정한 하이테크 인문학의 의미와 그 육성 방안
내 용
[2015 청년 에세이 우수작] 인문학의 부름을 기다리고 있는 기술들을 위해
서기슬 (카이스트)
기술의 진보 속도는
대중의 상상력보다 빠르다. 수년 전만해도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던 기술들이 실제 상품이 되어 우리 가까이에
다가와 있다. 여러 사례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스마트 폰 보급 이후 확산된 모바일 라이프의 변화이다.
최근에 2008년에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왔던 글이 다시금 화제가 된 적이 있다.
"휴대폰은 적어도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라는 제목의 글이다. 이 글이 다시금 화제가 된 이유는, 내용보다도 댓글의 반응 때문이다. 그 글에서는 7mm 이하의 초슬림화, 고화질 카메라, 네비게이션, 게임, 무선 인터넷, 4인치 이상 크기의 액정 화면과 터치스크린 등 스마트폰의
미래를 거의 정확하게 예측하고 있었다. 하지만 댓글의 반응은 냉담을 넘어서 비아냥거림을 담고 있었다. “누가 만들고 누가 사냐?”,“몇
십 년은 기다려야 할 듯”,“007을 많이 본 듯” 등 글쓴이를
바보 같다는 듯 지적하는 댓글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휴대폰의 발전에 관한 대부분 기술은 그로부터 2-3년 후에 모두 상용화가 되었다. 그렇기에 2015년이 되어서 그 글과 댓글 반응이 인터넷 상에서 다시금 화제가 된 것이다.
지금에 와서는 글쓴이와 댓글을 달던 사람들 중 누가 더 바보 같았는지가 분명해졌다. 이것은
대중의 상상력보다 기술의 발전 속도가 훨씬 빠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희망사항과 상상 속에만
있던 기술들이 갑자기 이내 현실화 된다. 그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바로
그 ‘상상력’이라는 부분에 돌이켜 볼 필요가 있다. 오랜 시간 과학 기술에 영감을 가져다 주었던 것이야말로
바로 그 상상력이다. 그런데 사람들의 상상력이 기술 발전 만큼도 따라가지 못한다면 창의와 창조적 과학은
먼 일이 될 것이다. 물론 전문 과학인들의 개별 연구는, 대중이
받아들이는 기술 변화나 그에 관한 상상력보다 훨씬 앞서 있을 것이다. 그런 전문 과학인들 덕분에 연구는
지속되고 신기술은 계속 발명된다. 세계적인 단위에서 연구 성과를 보자면 확실히 기술은 상상력과 함께
진보하고 있다. 하지만 과연 현재 대학민국의 과학계 전체를 보자면, 우리
사회는 정말로 창의와 상상력을 권장하고 있을까? 현재의 교육은 우리 모두의 상상력이 날개를 펼칠 수
있도록 이끌어주고 있는가? 현재의 시스템은 과학인들이 더욱 기술 진보에 대해 선진적으로 고민하고 상상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는가? 이에 대한 성찰과 문제 제기가 이 글의 주제이다.
물론 현재의 교육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 성패를 따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누군가의 잘함과 잘못을 따지자는 것도 이
글이 목적하는 바는 아니다. 다만 이 글에서는 과학적 상상력을 자극하고, 과학 기술과 사회 현안의 관계에 대해 고민할 수 있도록 하는 학문적 대안으로서, ‘하이테크 인문학’이라는 개념을 제안하고 그 육성 방안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
기술 발전의 ‘가속 요인’과 느린 인문학
하이테크 인문학에 대해
얘기하기 전에, 먼저 왜 우리에게 인문학적 성찰이 중요해졌는지를 먼저 얘기할 필요가 있다. 첫째로는 과학과 기술의 발전 속도가 점점 가속화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과학과
기술의 빠른 발전은 사람들의 삶의 양식을 변화시킴으로써, 여러 혼란 및 사회 문제를 낳기도 한다. 그에 따라 새로운 인문학적 성찰이 요구되는 것이다. 둘 째 이유는
우리 사회가 경공업 중공업 시기를 모두 거쳐서, 과학과 기술의 혁신이 실생활 가까이 침투하는 융합 사회에
접어들었다는 데에 있다. 즉, 과학과 기술의 발전이 속도만
빨라진 것이 아니라, 그 방향 또한 인간의 삶을 직접 변화시키는 쪽으로 더 많이 변화했다는 것이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사회적 고찰은 역사적으로 여러 시대에 걸쳐 지속되어 왔다. 주로는 기술 윤리, 과학의 중립성 등 여러 이름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런데 현재에는
정보 기술을 넘어선 융합 기술들이 인간의 삶에 침투함으로써, 우리의 소통 방식을 송두리째 바꿔 놓고
있다. 그 뿐만 아니라 정체성에 대한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에
대해 물음을 던지고 답하기 위해 훨씬 더 과학 기술과 밀접한 새로운 인문학이 요구되는 것이다.
기술 발전의 ‘가속
요인’에 해당하는 핵심 기술들은 근 몇 년 사이에 빠르게 발전했고, 현대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가고
있다. 이 때문에 우리의 상상의 속도가 더욱 더 앞서 나가야 함이 필요해진 것이다. 이를 ‘특이점’에 가까워졌다고 표현하는 미래학자들도 있고, ICT 산업
단계를 넘어 융합형 창조 사회로 접어들었다고 표현하는 이들도 있다. 기술의 발전 속도에 대해 대중적으로도
유명한 사례는 바로 ‘무어의 법칙’,‘황의 법칙’으로 얘기되었던 메모리반도체의 발전 속도이다. 그 외에도 여러 기술 분야마다 각자의 발전 대한 정량적 지표를 갖고 있다. 하지만
미래 사회를 위해선 더 이상 직선적이고 정량적인 성과 지표만 중요한 것은 아니다. 기술의 속성이 얼마나
다른 기술에 파급 효과를 주는지에 대한 정성적인 분석 또한 중요할 것이다.
그 새로운 분석을 위한
사고의 틀로서 기술 발전의 ‘가속 요인’과 ‘감속 요인’을 구분해서 볼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수년 전부터 가속 요인이 뚜렷하게 관찰되고 있다. 공학의 분야를
크게 둘로 나누자면, ‘목표 중심’의 기술을 제공하고 연구하는 분야가 있고, ‘도구적인’ 기술을 제공하고 연구하는 분야가 있다. 목표 중심의
기술이란 말 그대로 특정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것이다. 위성을 발사 한다거나, 자동차를 어떻게 하면 더 효율화시키고 빠르게 할 것인가 등에 대한 것이다. 특정
분야의 문제 해결과 성과를 위한 기술이 바로 목표 중심의 기술이다.
도구적인 기술은 목표
중심의 기술과 달리, 좀 더 다른 기술을 돕는 기술이다. 이를테면
프로그래밍 언어의 발전, 특정 소재나 연료 전지의 발전, 통신
및 네트워크 기술의 확산 등, 이런 것들은 목표 중심의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는 것을 돕는 도구적인 것들이다. 물론 '목표 중심'과
'도구성'이 온전히 상호 배타적으로 분리되는 것은 개념이
아니며, 대부분의 경우 목표 중심의 연구가 도구적 요소의 발전을 견인해오기도 했다. 다만 이렇게 기술의 속성을 구분해서 보는 관점은 기술의 발전 속도가 계속해서 가속되리라는 예측을 좀 더 다양한
각도에서 가능하게 한다. 이를테면 중공업 시대에 활발했던 자동차 연구의 상당수는, 전기 자동차의 출현으로 불필요해졌다. 화석 연료 엔진의 연비에 대한
연구나 트랜스미션에 대한 연구는 전기 자동차 세대에게는 무용한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건축 토목분야의
특정 자재 효율성 및 비용 절감에 대한 연구들은, 상대적으로 다른 인류 기술의 혁신 속도를 크게 증가시키지는
못할 것이다. 그런 특정 분야의 연구들은 상대적으로 한정된 영역의 문제 해결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인공지능의 기반이
되는 딥러닝 알고리즘은 거의 모든 산업 영역에 순차적으로 영향을 줄 것이다. 이는 2차 산업에서 사회가 마주했던 혁신과는 다른 종류의 것이다. 최근에
이런 도구적 기술들, 당장 큰 부가가치를 낼 수 있는 것은 아닐지 모르지만 인류 전반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도구적인 기술에 대한 연구가 이전보다 훨씬 활발해지고 있다.
기술 발전이 특정 가속도를
갖고 있다면, 그에 관한 사회적 문제의 발생도 같은 속도로 따라갈 것이다. 그를 위한 사회 합의나 제도적 해결 또한 같은 속도로 따라 가야만 할 것이다.
동시에‘가속 요인’에 해당하는 기술들의 발전이 두드러질수록 그에 맞는 새로운 형태의 인문학을 필요로 할 것이다. 빠른 변화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인간과 속도에 충격을 줄 수 있고, 환경, 윤리, 제도의 문제 등에 새로운 문제제기를 가져 올 때문이다. 그럴수록 한 사회가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인문학적 기반이 중요해진다.
또한 앞서 기술의 발전
속도뿐 만 아니라, 그 방향도 유심히 보아야 한다. 기술
혁신은 시간이 지날수록 좀 더 인간의 삶에 긴밀하게 침투하고,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고 있다. 이는 중공업 발전 시대에 체감하던 것보다 더 구체적인 변화로 다가온다. 그
만큼 수반하여 발생하는 문제 또한 더욱 다양해진다.
가장 염려되는 문제는
바로 ‘인문학의 느린 발전 속도’이다. 상상력이야말로 인문학과 과학이 공유하는 힘인데, 기술을 바라보는 인문학의 논제들은 사회 변화를 쉽게 따라가지 못하는 듯하다.
인문학자야말로 미래적이어야 하고, 인간과 기술의 본질에 대해 고민해주어야 하는데, 철학적 문제가 풀리지 않은 수많은 담론들이 현실의 위기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아주 단편적으로는, 스마트미디어가 출현하고, 매체가 변화하면서 발생한 문제들이 있다. 인간의 소통 방식이 더욱이
컴퓨터로 매개되면서 많은 변화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미 이전의 법규나 제도로 통제하기 어려운 현상들이
발생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시가 바로 온라인 게임 혹은 가상 세계에 대한 것이다. 지난 수년 간 일어났던 온라인 게임 규제와 그에 대한 정책적 논의들을 보자면,
'게임이란 인간에게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가 대단히 미흡하며 이에 대한 철학적 문제가 그리
단순한 게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전 세계의 게임 산업 규모와 수많은 게임 인구에 비해선 명확한
이론적 근거가 부족한 현실이다.
한국의 사례로 보자면
게임은 오랜 시간 소위 '음비게법', 음반, 비디오물 및 게임에 관한 법률로 규제되어 왔다. 여기에서 게임은
음반 및 비디오물과 유사 취급을 받는 것이다. 영화와 유사한 등급 관리나 심의 체계의 적용을 받았다. 그런데 음반을 구입하듯 게임의 하드카피를 CD로 구입하는 시대는
순식간에(역사적이라고 보면 정말 순식간이라고 할 만큼 짧은 시간에) 지나가버렸다. 그리고 게임은 단지 상호작용성이 있는 스토리텔링 매체라는 지점을 넘어서기 시작했다. 온라인으로 초국가적으로 연결되며, 수많은 사용자들이 상호소통하는
구조를 만들어버렸다. 그 안에서 경제 활동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범죄가
발생하기 시작했고, 그 순작용과 역작용을 진지하게 논의하기 이전에 이미 성장하는 세대의 대다수가 그
안에 빠져 들었다. 이후 한국 사회는 청소년 보호법, 게임산업진흥법
등을 통해 게임에 관한 제도적 틀을 마련하고자 하였지만, 다시 게임은 모바일로 번져 나가고 새로운 양태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게임 및 가상 세계의
발전과 그에 관한 사회적 문제 전후 맥락을 살펴보자면, 정말로 이 사회의 지도층들이 새로운 미디어에
대해서 '모른다'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여기서 모른다는 것은 단순히 미지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 아니라, 모호함이
제대로 정의되거나 합의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부나 국회는 게임을 규제하고자 할 때에 규제 근거 문제에
부딪히고, 표현의 자유 및 개인의 행복권 등 여러 반대 근거에 마주하게 된다. 정책 입안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게임 제작자들도, 게임이 하나의 매체로서 어떤 역할을 하고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주도적으로 주장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무엇을 비판하고 무엇을 논의해야 하는 지에 찬반논의는 당장의 현안 위주로만 제기되어 왔다. 그렇기에 표현의 자유로서의 게임, 가상 공간에서의 소유권 개념, 중독 물질로의 정의 등 여러 문제들이 빠르게 일단락되지 못하고 오랜 시간 표류했다. 많은 문제들이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국내에서만 수 백만
명 이상이 매 달 경험하고 있는 게임 세계에 대한 문제도 아직 쉽지 않은데, 더 새로운 자극 매체가
출현한다면 어떻게 될까. 만약 인간의 뇌와 호르몬 분비 기관을 자극하여 마약에 가까운 쾌락과 환각을
제공하는 전자기기가 출현하게 된다면, 우리는 어떠한 철학적 고민으로 무엇을 답할 수 있을 것인가? 혹은 또 전혀 새로운 엔터테인먼트 수단이 등장하게 된다면 어떨까. 사람들은
잘 모르는 것은 막연하게 두려워하며 금지시키고자 한다. 하지만 기술과 서비스는 대중의 호응을 얻는다면
규제하는 힘을 넘어서서 빠르게 확산된다. 그런 현상은 이미 역사를 통해 여러 차례 확인했다. 미리 준비하고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혹은 새로운 기술을 쉽게
규제하고 거부하는 사회는 전세계적 경쟁에서 도태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앞서 언급한 쾌락 장치는
소설적이고 극단적인 예이지만, 이미 드론(소형 무인기), 핀테크(금융 관련 신흥 기술) 등
최근 각광 받고 있는 산업 분야에서, 여러 정부 정책들은 갈피를 잡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무분별한 규제가 국가 기술 발전의 ‘감속 요인’으로 꼽히기도 한다.
신기술의 출현은 개별적인
문제를 동반할 것이고 그에 대한 그 사례는 점차 늘어날 것이다. 가장 부가가치를 내는 산업은 더 이상
2차 산업에 머물러 있지 않고, 이제는 3차 산업을 넘어서서 인간의 삶과 다양한 접점 가까이에 있다. 이를테면
무인 자동차 시스템이 보급되기 시작했다고 가정해보자. 미국에서는 이미 특정 지역에서 무인 자동차가 시운전에
성공했다고 한다. 그런데 무인 자동차만이 상호 통신과 통제에 의해 주행하는 고속도로에서 (상대적으로 불완전하고 위험한)인간의 수동 주행은 금지시켜야 할 것인가? 과연 이 때에 인간의 의지보다 시스템의 효용을 우선하여 수동 주행을 금지시키는 것은 옳은가? 규제하고 허용할 때에 그 기준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이러한 수천, 수만 개의 인문학적 질문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기술
발전 속도의 감속 요인 중 가장 주요한 것은, 법적인 규제 혹은 해당 사회의 반발이다. 물론 기술 발전을 위해 생체나 인간에 관한 연구까지 모두 쉽게 가능하도록 개방해줄 수는 없다. 다만 무엇이 인간 본연을 위해, 더욱 인간을 이롭게 하는 일인지
철학적으로 윤리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기술 급변 시대에,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인문학이 무엇인지 모두가 함께 이해하고 공감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기술의 고도화되고
그 속도가 급변한다면, 그에 대한 문제를 풀기 위한 하이테크 인문학이 더욱 필요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의 인문학의
연구 속도와 적용은 여전히 느리다. 실제 문제를 해결하는 사회과학자들이나 행정가들 이전에, 인문학자들은 가장 먼저 과학과 기술에 관한 가치적 윤리적 문제를 고민해주어야 한다. 먼저 고민하는 것, 그것이 인문학의 힘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철학자나 과학자를 탓할 것이 아니라 수많은 과학계와 정치권 리더들의 ‘철학 없음’이 비판 받아야 할
일이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문화와 여건도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기술과
관련된 사회 현안 각론의 문제들은 그 구체적인 공통점을 갖고 있다. 바로 활발한 인문학적 문제제기와
토론토의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인문학자들이 처한 문제
중의 하나는, 기술의 너무 빠른 발전과 보급으로 인해, 기술에
대한 체험과 지식 자체가 진입 장벽 너머에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아는 저명한 인문학자들이 모두 새로운
기술의 최전선에 있는 얼리어답터는 아니다. 인문학자들이 자신의 전공도 아닌 각 과학 분과 지식에 능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즉, 주류의 인문학자들은 기술에 대해 제대로
적응하거나 논의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로 인해 기술에 대한 인문학적 제안들이 부족해지는 동안, 사회 현상에 대한 해석과 이해는 반성의 힘을 잃어간다. 더불어 활용, 규제 등의 실질적 문제들은 무지와 미지 위에 표류한다. 앞서 언급한
게임 및 가상 세계는 아주 단편적인 예일 뿐이다. 인간의 삶에 영향을 주는 다른 수많은 기술들이 아직
제대로 이름이 불리어지지 않은 상태로, 인문학의 부름을 기다리고 있다.
여기에서 자연스럽게
하이테크 인문학이 갖춰야 할 요소와, 하이테크 인문학자들이 지녀야 할 소양이 드러난다. 하이테크 인문학자는 그 누구보다 얼리어답터이며 새로운 기술의 체험자여야 한다.
그리고 하이테크 인문학이란 기술의 발전 속도보다 앞서서 미래를 상상하고 그에 대한 문제를 고민하는 학문이다. 더불어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실제 사회적 가치나 제도의 문제까지 다가가서는 일이다. 그리하여 하이테크 인문학의 통찰이 교육과 정책을 제안으로 연결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진정한 하이테크 인문학의 의미와 그 육성
방안
그렇다면 이 시대에
필요한 진정한 하이테크 인문학의 요소와 성격은, 어떻게 구체적으로 정의해볼 수 있을까. 먼저 첫 번째로 하이테크 인문학은 분석 및 연구의 대상을 인간과 관련된 첨단 기술로 하는 인문학이다. 그렇기에 앞서 예시로 들었던 매체, 상호작용에 관한 것들뿐 만 아니라, 인간에 대한 생명, 의료, 화학
분야까지 포함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환경 문제를 포함하여 인간의 삶에 영향 미칠 수 있는 모든 과학과
기술의 영역을 다루어야 하니, 결국은 수학 같은 기초 분야를 제외하고는 모두 포괄적으로 하이테크 인문학의
논의 대상일 것이다. 다만 모든 과학 분야라고 하지 않고 ‘인간과 관련된 첨단 기술’이라고 정의하는
것은, 당장 지향해야 할 접점이 어디인지를 구체적으로 적시하는 효과가 있다.
둘째로 하이테크 인문학은
방법론과 분석 틀은 철학을 기반으로 하고, 연구 문제는 심리학, 커뮤니케이션, 사회학, 정치학, 법학에
이르는 다양한 분야를 관통해야 할 것이다. 철학을 기반으로 한다고 함은, 비평과 논리 분석, 그리고 가치 이론을 중심으로 무엇이 우리 사회에
더 중요하고 필요한지 논의한다는 것이다. 개별 기술들이 사회 구성원들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그것이 어떤 가치로서 작용하는지를 연구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철학적
관념과 사상을 기본 바탕으로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경제학이나 사회학의 정량적 분석 연구까지 이끌어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하이테크 인문학이다.
이러한 하이테크 인문학이
기존의 과학 정책 연구나, 기술 사회학 등과 가장 구분되는 지점은 바로, 윤리, 가치, 사상에
좀 더 집중한다는 것이다. 정책 연구는 현재에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지만, 현안의 문제에 집중할 뿐, 10년 이상을 내다보는 본질적인 학문적
접근이 쉽지 않다. 정책 연구의 목적과 성취는 당장 닥친 문제를 원활하게 해결해나가는 데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미래적인 관점에서 특정한 기술이 우리 사회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분석하기 위해선, 정책 연구 이전 단계에서 고민하는 인문학이 필요한 것이다. 물론
결과적으로는 하이테크 인문학은 정책 연구 등과 활발하게 연계될 것이다. 다만 그 지향점과 주요 산출물이
당장의 정책 대안보다는 장기적 안목의 가치 이론이나 비판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이테크 인문학은 기존의
순수 인문학과도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어야 한다. 순수 인문학 전공자들은 기존의 이론을 기반으로, 비평 혹은 평론에 그치는 식으로 기술 문제에 접근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한
주류 인문학을 따라가면 관념적인 논의에 그치거나, 기존의 학자들이 제시한 이론에 따라 평론하는 데에
몰두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순수 인문학에서는 그 사상사적 맥락에 따라 현상을 통찰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하이테크 인문학은 순수 인문학과 차별적인 지점을 지향해야할 것이다. 훨씬
더 개별 현상 중심으로 분석하고 미래를 전망할 수 있는 새로운 틀을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이테크 인문학의 주체인 하이테크 인문학자들은 단지 문헌 속에서 비평을 거듭하는 사람이 아니다. 하이테크
인문학자는 직접 기술을 체험하거나 개발하는 사람들이어야 한다. MIT에서는 이미 ‘로봇 윤리’에 관한
서적이 출판되었고, MIT Media Lab을 중심으로 로봇 윤리에 대해 토론하는 학술 모임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고 한다. 이 때에 그 구성원들은 단지 순수 인문학자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컴퓨터 공학자, 심리학자, 인공지능
연구자 등 다양한 스펙트럼을 갖고 있다. 순수 인문학이 이론과 비평을 좀 더 목적으로 한다면, 하이테크 인문학은 기술의 최전선에 ‘참여’하고 토론한다 데에 차별점이 있을 것이다.
진정한 하이테크 인문학이‘왜’
이런 고민이 중요해졌는지를 다시금 상기해보면, ‘어떻게’ 연구되어야 하는가는 쉽게 생각할 수 있다. 현대 사회의 산업 발전은 2차 산업에서 3차 산업을 넘어서, 소비자와 다양한 접점에서 만나는 융합 산업으로
다양화 되었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하이테크 인문학의 방법과 양상은 ‘융합’지향적이어야 할 것이다. 여기서 융합이라고 함은, 이공계 내에서도 학문과 학문을 연결하고
넘나들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고, 궁극적으로는 인문과 과학의 소통을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어떻게 이러한 ‘융합’을 이끌어낼 수 있는지는 뒷부분에서 좀 더 상세하게 다루도록 하겠다.
하이테크 인문학의 육성
방안에 대한 구체적 논의 이전에, 하이테크 인문학이 육성될 경우 찾아오는 기대 효과에 대해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목적하는 이상적인 결과를 먼저 상정하는 것이, 구체적
방안 마련을 더욱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이테크 인문학이 활성화된다면
가장 크게 다가 올 효과는 ‘지적 생태계의 활성화’이다. 개별적인 문제에 대한 대안적 성찰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욱 큰 파급 효과는 과학계 전체에 미칠 비판과 토론의 힘일 것이다.
인문학의 힘은 당장 결론을 내리는 데에 있기보다는, 문제를 제기하고 토론하는 데에 있다. 또한 그러한 과정을 이끌어내는 데에 있다. 인문학적 담론을 사회적
합의로 연결시키고 그것을 제도나 지원 정책까지 이어 나가기 위해서, 인문학자들은 계속해서 ‘잠정적인
결론’을 시도할 것이다. 그 과정 자체가 과학과 인문 양쪽의 상상력과 관점에 자극을 줄 것이다.
또한 실제로 하이테크
인문학자들이 양성된다면, 그들이 담당하는 더 중요한 기능은 이공계인들에 대한 교육이 될 것이다. 틀에 박힌 생각 속에 갇힌 이공계인들에게 새로운 상상력을 불어 넣는 역할인 것이다. 그리고 실제 정책과 제도를 만드는 이 사회 지도층에 있는 리더들에게 방향을 제시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하이테크 인문학이 제 가치를 다하는 역할일 것이다.
하이테크 인문학의 연구
대상은 다양할 것이다. 앞서 예를 든 것과 같이 게임 및 가상현실이라는 상호작용 매체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 무인 자동차에 관한 이슈들, 로봇 윤리에 대한 고민들, 생명과학 윤리처럼 수도 없이 나열할 수 있다. 이 때에 다양한 대중
저술과 토론, 강연들을 통해 지적 생태계를 마련하는 것 또한 하이테크 인문학자의 주요한 역할이 될 것이다. 즉, 하이테크 인문학의 진정한 힘은, 섣불리 특정 문제에 대해 결론 내리고자 하는 데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지식과
관점을 개방하고 공유하는 데에서 올 것이다.
그러한 하이테크 인문학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길 수 있다면, 그 육성 방안은 자연스럽게 구체화된다. 하이테크 인문학 육성 방안은 2개의 방침과, 3개의 계통으로 마련해볼 수 있다. 2개의 방침은 ‘융합’그리고
‘개방 및 공유’이고, 3개의 계통은 첫 째 연구 지원, 둘
째 전문 인력 양성, 셋 째 교육 체계 정립이다.
먼저 융합에 대해선
앞서 미처 언급하지 못한 부분을 구체적으로 보자면, 물적 융합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융합적 인간을
육성하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2010년대 초반부터 대학민국의 여러 대학교들이 융합학과 및 융합
연구에 많은 연구비를 지원했다. 하지만 융합학과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곳에서, 정말로 교수 및 연구진들 사이의 화학적 결합을 이끌어낸 곳은 무척 드물다. 이미
각자의 세계에서 공고한 연구 영역을 지녀 온 이들이, 자신의 손에 있는 것들을 내려놓고 벽을 허물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비유적인 표현을 제외하고 아주 현실을 얘기하자면, 대부분의
학자들은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논문을 쓰고 연구 실적을 내기 쉽지 않다. 그러니 융합이니
화학적 결합은 요원한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결과적
융합이나 물적 융합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융합형 인간을 육성하는 데에 집중해야 한다. 해외에는 이공계 출신의 인문계 석사, 혹은 인문계 출신의 이공계
석사 비중이 우리보다 높고, 그들의 이력 자체를 우대하기도 한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그릇된 순혈주의 혹은 가시적 성과를 중요시하는 관점이, 실제 융합형 인재들의 성장에 보탬이
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렇기에 하이테크 인문학 육성을 위해선,
하나의 전공을 지닌 사람이 다른 분야를 폭 넓게 경험하도록 하도록 지원해야 한다. 적극적인
복수 학위 제도 등을 통해 한 사람 안에서의 융합적 역량을 여러 방면에서 개발하는 것도 방법이다. 이미
각자의 세계를 구축한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융합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은 여러 반례로 보았기 때문이다. 한
사람 안에서의 화학 작용이 새로움을 창출하는 융합적 인재상을 만들어내는 것, 그것이 하이테크 인문학의
주요한 지향점 중 하나일 것이다.
두 번째 방침인 개방
및 공유는, 연구의 성과물을 무엇으로 보는가에 대한 것이다. 현재
학계에서 인정하는 대부분의 연구 성과는, 논문, 특허 등의
정량적인 지표로 산출할 수 있는 것들이다. 하지만 하이테크 인문학의 궁극적 목적이 지적 생태계의 조성인
이상, 대중 저서, 강연,
교류 프로그램, 혹은 공동 출판이나 전시 등의 프로젝트까지, 다방면의 개방 및 공유 활동을 모두 연구 성과로 인정하고 투자하는 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 더 많은 사람을 인문학적 성찰과 토론에 참여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기존의
대부분 연구 지원 사업은, 특정한 방법론을 거쳐 저널 리뷰 프로세스를 밟은 결과들만을 성과로 인정하고
투자한다. 이런 방식으로는 하이테크 인문학의 본래 목적에 부합하지 못할 것이다. 또한 논문과 특허 위주의 성과 산출 방식은, 앞서 나가는 ‘상상력’을
지원한다는 취지에도 부합하기 어렵다. 물론 ‘과학’의 본래 의미로서 기존의 합리적 프로세스를 거친 결과물들도
개별 분야에서는 여전히 중요하지만, 하이테크 인문학에서는 기존에 없던 것에 대한 도전이나 논제 제기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두 가지 방침을 숙지한다면
3개의 계통 중 첫 번째인 연구 지원에 대한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먼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연구 성과물을 좀 더 유연하고 개방적으로 보고 투자해야 한다는 점이 분명해지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과정’ 자체에서 창의성을 담아낼 수 있는 연구 프로젝트를 지원해야 할 것이다. 하이테크 인문학의 연구 지원은 연구자들이 최대한 다양한 사람들이 토론 및 협업하고, 폭 넓게 여러 분야를 체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그 결과물은
논문뿐 만 아니라 대중 저서 등의 파급력이 더 높은 산출물이어야 할 것이다. 대중 저술 창작 지원이나, 포럼, 강의 개발 등에 더 많이 투자하는 식으로 연구 지원을 계속해나가야
할 것이다.
둘째로 전문 인력 양성에
대한 부분은, 융합적 역량을 기를 수 있는 지원책과 유인책 중심이어야 할 것이다. 이공계-인문계 혹은 인문계-이공계로, 학,석, 박사 과정을
교차하여 학습한 사람을 우대하거나, 기존에 인문계 출신자들의 이공계 학업을 지원하는 식이어야 할 것이다. 인문학자들은 더 이상 문헌 속에만 머물러선 안 된다. 기술의 최전선에
있는 얼리어답터이자, 실제 개발에 뛰어 들어 기술을 고민하는 인문학자가 진정한 하이테크 인문학자라 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선 인력 양성의 지원 방식 또한 인문과 과학을 넘나들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기존의 과학인 중에서 인문사회 계의 지식을 습득하고, 교류할
수 있는 지원책도 동시에 마련되어야 한다. 앞서 강조한 바와 같이, 진정한
융합은 한 사람 내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그 사람이 융합형 인간이 될 때에 힘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로 교육 체계 정립에
대한 부분은, 인문계와 이공계에 있는 학∙석∙박사 과정 학생들이
함께 수업을 듣고 토론 토의할 수 있는 토양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물론 단지 개별적인 수업이나 일시적인
강연보다는, 체계적인 커리큘럼이 협동과정이나 학제로서 자리 잡는 것이 훨씬 좋을 것이다. 기반 과목으로는 다양한 인문학과 공학 개론을 강의하고, 공통의 인문학적
방법론으로 개별적인 공학에 적용시킬 수 있는 심화 과목들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교육 체계 정립에서
더욱 중요한 부분은 커뮤니케이션 능력에 대한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 이공계 교육은, 토론, 글쓰기, 발표
등의 커뮤니케이션 능력 육성에 미흡함이 지적되고 있다. 융합형 인간일수록 전공 지식이 풍부할 뿐만 아니라, 말하기와 글쓰기에 있어서 보다 적극적인 소통을 시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전방위로 토론하고, 파급력 높은 산출물을 낼 수 있는 인재로 성장할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전체의 글을
정리하며 강조하고 싶은 점은, 하이테크 인문학은 상아탑이 아닌 ‘현장’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진입 장벽을 낮추고 모두가 접하고 논의하고 토론할 수 있는 담론이 필요하다.
가능한 많은 이공계 연구자들이 하이테크 인문학을 접하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지원책 및
육성 방안이 실행된다면 대한민국 이공계는 풍성한 지적 생태계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세계적 수준의 융합 인재를 배출해내는 산실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하이테크 인문학은 시대적
부름이다. 사회는 계속해서 급변할 것이다. 그 와중에 인문학적
성찰이 함께한다면 앞으로 더 많은 실제적인 문제가 닥쳤을 때에, 기술을 수용하고 동시에 법적으로 규제하거나
육성하는 방안들이 신속하게 마련될 수 있다. 그로 인해 국가 전체적인 기술 개발 경쟁력 또한 향상될
수 있을 것이다.
인류로서 살아가면서
수많은 기술들이 인간에게 어떤 의미가 되는지를 스스로 아는 것은 개개인의 삶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다. 계속해서
새로운 미래를 대응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선 과학과 기술의 의미에 대해 학계만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이 모두 함께 성찰해볼 기회를 갖는 토양이 필요하다. 하이테크 인문학이 우리 모두에게
주는 의미는 거기에 있을 것이다. 아직 미지의 상태에 놓인 수많은 기술들이, 인문학의 부름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