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 영상
  • 연구결과물
  • E-카다로그
  • 발전기금
  • HOME
  • 연구소소식
  • 최근동향
  • 인쇄
  • 글자크기
  • 확대
  • 초기화
  • 축소

게시판 List
포스코 기획 [천하위공의 길 - 박태준의 애국정신과 일류주의] 박정희 대통령 특명 수임… ‘짧은 인생 영원 조국에’ 바치다
등록일 : 2014-12-11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3054

포스코 기획[천하위공의 길 - 박태준의 애국정신과 일류주의] 박정희 대통령 특명 수임… ‘짧은 인생 영원 조국에’ 바치다

   

                      포스코 신문  2014-12-11



지일·용일·극일 몸소 실천… 고난에 도전하며 삶의 길 개척

1965년부터 박정희 대통령 특명따라 종합제철 프로젝트 주도

“무엇이든 첫째 되자”… 고로 짓기도 전에 ‘세계 일등’ 독려

통일 실마리 잡으려 팔순 넘어서도 북한에 제철소 건설 꿈


12월 13일, 박태준 명예회장이 타계한 지 3주기를 맞는다. ‘짧은 인생을 영원 조국에’. 그는 이 좌우명처럼 일생을 조국에 바치며 불같이 살다가 우리 곁을 떠났다. 군인으로서, 경제인으로서, 교육자로서, 정치인으로서 치열하게 살다 간 박 명예회장은 우리 사회에 큰 울림을 남겼다. 시대가 암울하고 길이 보이지 않을 때마다 찾는 선각자로서, 위대한 경제인으로서 애국애민의 삶을 살다 간 박태준 명예회장을 기리며 이 글을 게재한다.



1953년 여름 한국전쟁이 휴전으로 멈추는 즈음에 멀쩡히 살아남은 한 청년장교가 자신의 영혼에다 조각칼로 파듯이 좌우명을 새겼다. ‘짧은 인생을 영원 조국에’, ‘절대적 절망은 없다’. 1977년 5월 조업과 건설을 동시에 감당해 나가는 영일만 포항제철에서 절박한 목소리로 외치는 한 아버지가 있었다. “우리 세대는 다음 세대를 위해 순교자적으로 희생하는 세대다.” 바로 그가 박태준이었다. 그리고 그는 도무지 낡을 줄 모르는 그 좌우명, 그 신념으로 삶의 길을 개척하면서 다른 쪽으로 벗어나지 않는 일생을 완주했다.


시대적 고난과 천하위공의 손거울

고난은 인간의 성격을 창조한다. 도전형과 체념형이다. 문제적 인간은 도전형이다. 도전형은 다시 선(善)과 악(惡)으로 갈린다. 만델라와 히틀러는 서로 대척점에 위치한다. 공통점은 도전의지다. 박태준은 고난에 도전하며 선으로 나아간 전형이다.

1927년 동해안 최남단 갯마을에서 태어난 박태준은 6세 때 부친이 생업을 잡고 있던 일본으로 건너갔다. 유소년시절은 몸을 키우고 지식을 늘리는 그만큼 ‘조센징’이라 불리는 쓰라린 모욕에 시달려야 했다. 모욕이 그에게는 의식의 씨앗이었다. 그 씨앗은 무엇이든지 일등을 해야 차별을 덜 당한다는 방어의식과 저항의식으로 발아하여 시나브로 애국정신과 일류의식으로 성장한다. 광복이 되어 와세다대 기계공학과를 중퇴하고 가족과 함께 귀향해서 군문으로 들어설 때, 그는 부모 앞에 뜻을 밝힌다. “건국에는 건군이 있어야 합니다.” 이 한마디는 되찾은 나라를 위해 살겠다는 도전의지를 응축한 말이었다. 육사 6기생, 이 태릉에서 그는 십여 년 뒤부터 필생의 정신적 동반자가 되는 스승과 만난다. 열 살 손위 박정희다.

6·25전쟁을 맞아 박태준은 철원에서 서울까지 밀리는 사나흘 동안에 동료 중대장 12명 중 10명을 잃은 구사일생 중대장으로서 포항까지 후퇴했다가 거꾸로 청진까지 북진하건만 중공군에 되밀려 1·4후퇴 일원이 된다. 휴전 직후에는 육군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한다. 당시 군대는 부패했다. 그러나 그는 ‘딸깍발이’로 이름난 대령이었다. 일절 부정부패와 타협하지 않았다. 용납하지도 않았다. 그 소문이 박정희의 고막을 건드리고, 거사를 획책하는 그가 1960년 부산군수기지사령부 사령관으로 부임하면서 박태준을 인사참모로 발탁한다. 무수한 술잔에 시대적 고뇌를 담은 나날들, 그렇게 함께한 여섯 달 남짓. 부산 시절이 두 사람을 완전한 신뢰와 조국근대화의 순정한 이념으로 단단히 묶어준다.

5·16정부에서 상공담당 최고위원을 역임하고 1965년부터 박정희의 특명에 따라 종합제철 프로젝트에 깊숙이 관여하던 박태준은 1967년 가을에, 마치 5000년 대물림의 절대빈곤 극복을 목메게 기다려온 우리 역사가 어떤 필연에 의해 성사시킨 일처럼, 종합제철 대임을 맡는다. 이때 박태준의 정신세계는 ‘천하위공(天下爲公)’으로 확장돼 있었다. 식민지, 분단, 혼돈, 전쟁, 재분단, 폐허, 부패, 빈곤. 이것들이 불혹(不惑) 박태준의 나이테였다. 그러나 그는 저주받은 것 같은 나라를 체념해버리는 절망과 허무, 퇴폐와 좌절로 미끄러지지 않았다. 박정희와 어깨를 겯고 정반대 방향으로 나아갔다. 미래의 나이테를 희망과 풍요의 목록으로 채우려는 그의 도전의지에서 천하위공은 정신적 기반이었다.

천하위공이란 ‘천하가 모두 공적인 것이 된다’, ‘천하는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 된다’는 뜻이다. 『예기(禮記)』 예운(禮運)편에 나오는 말이다. 중국 신해혁명을 이끈 쑨원(孫文)이 소중히 간직했다. 박태준이 “교육은 천하의 공업(公業)”이라 선언한 때는 1978년 9월이다. 하지만 그는 대한중석 사장(1965~1967)으로서 남몰래 대학 설립을 꿈꾼 때부터 천하위공을 가슴에 보듬고 있었다. 요즘 한국사회는 복지씨름이 한창인데, 포스코가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선구적으로 다 실행한 사원주택제도, 장학제도, 복지제도, 녹화제도 그리고 학교들, 포스텍, 방사광가속기 등은 천하위공을 실천한 그의 모범 사례들이다.

아담 스미스가 ‘보이지 않는 손’을 찍어냈다. 인간사회는 때로 그 손을 혐오도 하지만 시장체제의 쇄신을 관철하면서 자본주의를 선호하고 있다. 기존 자본주의를 뜯어고쳐야 한다는 불만이 팽배할 때는 전면에다 긴 거울을 세운다. 거울에 비친 자본주의의 전신을 살피며 수술 방법을 궁구하는 것이다. 그 거울의 이름을 근대 서양은 ‘사회주의’라 지었다. 그러나 동양에는 까마득한 옛날부터 청동으로 만든 ‘천하위공’ 손거울이 있었다. 인간의 선의(善意)를 신뢰하고 선양(煽揚)하는, 깨지지 않는 그 손거울을 박태준은 영혼의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박태준의 일본관과 일류주의

포스코에도 절명의 위기가 딱 한 번 있었다. 1969년 2월, KISA(한국에 종합제철을 짓겠다는 서방 5개국 8개사 컨소시엄)가 차관제공 약속을 저버리기로 결정한 때였다. 자본주의 메커니즘의 비정한 법칙에 따라 갓 태어난 포스코는 사라져야 했지만, 대일청구권자금 전용에 대한 착상과 재가, 박태준과 박정희의 그 합심이 영일만 모래벌판에 아기무덤으로 남을 뻔했던 포스코를 신의 한 수처럼 회생시켰다.

일제식민지 배상금이 포스코의 종잣돈이다. 포항 1기를 착공하는 박태준에게 그것은 모든 구성원이 꼭 무장해야 하는 칼날 같은 윤리였다. “조상의 혈세로 짓는 제철소다. 실패하면 우향우 해서 영일만에 빠져 죽자. 제철보국을 우리 인생의 신조로 삼자.” 그의 호소는 가슴과 가슴을 타고 번져나갔다. 조상의 혈세는 민족주의를 자극했다. 우향우는 애국주의를 고양했다. 둘은 제철보국 이념에 자양분이 되었다.

어떤 애국인가? 제철보국에 담은 박태준의 그 국가는 어떤 국가인가? 이것이 중요하다. 간단한 자료가 있다. 1971년 4월, 첫 쇳물이 나오려면 아직 26개월이나 더 일해야 하는 그때, 사보 《쇳물》 창간호가 나왔다. 뒤표지, 거기, 그의 외마디 외침이 만년필로 적혀 있다. “무엇이든지 첫째가 됩시다!” 고로를 짓기도 전에 그러나 임직원들에게 세계 일등을 요구하고 독려한 박태준은 애국심과 일류의식을 갖춘 그들과 더불어 초심의 맹세 그대로 25년 만에 포스코를 세계일류로 우뚝 세운다. 포스텍(포항공대)도 그렇게 만든다. 그의 애국이란 일류국가에 도달하는 것, 포스코나 포스텍이 보여주듯 총체적인 일류국가에 도달하는 것이었다.

1970년대 일본은 철강뿐 아니라 총체적인 일류국가였다. 그때 일본 철강사들의 지도를 받는 포스코로서는 일본을 넘어야 세계일류에 올라설 수 있었다. ‘조센징’이란 차별과 모욕이 의식의 씨앗이 되었던 박태준에게 그것은 물러설 수 없는 과제였다. 극일을 못하면 포스코가 세계일류 반열에 오를 수 없고, 이것이 안 되면 조국은 일류국가에 도달할 수 없다. 이 엄청난 장벽 앞에서 그는 침착하고 치밀하고 집요했다. 명확한 전략이 있었다. 3단계 일본관(日本觀)을 피력했다. 먼저 일본을 알아야 한다(知日), 그래서 일본을 활용해야 한다(用日), 그리고 일본을 극복해야 한다(克日). 지일-용일-극일, 이 전략이었다. 상대도 알아챘다. 일본 최장수 총리를 지낸 나카소네는 “일본에서 하나라도 더 한국에 도움이 되는 것을 가져가려는 박 선생의 애국심”에 감동했고, 미쓰비시상사 회장을 지낸 미우라 료헤이는 “우리가 비즈니스를 위해 한국을 연구하는 것처럼 박 회장은 일본을 연구하는 전략가”라고 간파했다. 포스코에서 극일 목표를 성취하여 세계일류에 도달한 박태준.

그래서 평전 『박태준』을 쓴 이대환 작가는 이렇게 평가한다. <생존의 길을 찾아 일본으로 들어간 아버지의 뒤를 좇아 현해탄을 건너갔던 수많은 식민지 아이들 가운데, 사춘기를 벗어난 무렵에 해방된 고향으로 돌아와 빈곤에 허덕이는 신생독립국의 어른으로 성장한 다음, 유소년기에 어쩔 수 없이 익혔던 일본어와 일본문화로써 가장 훌륭하고 가장 탁월하게 조국에 이바지한 인물은 박태준이다. 신학문을 배우러 일본유학을 했던 청년학도를 포함시켜도 결론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박태준의 비원을 풀어줄 이들은?

박정희 통치시대에 한국근대화는 마치 산업화와 민주화가 동일한 역사 무대에 공존할 수 없다는 것처럼 반목과 갈등의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모순 시대였다. 그러나 고희(古稀)의 박태준은 모순 시대가 아니라 ‘상보(相補) 시대’였다는 견해에 동의했다. 산업화와 민주화가 대립하는 가운데 상보하면서 함께 발전하고 함께 성장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1997년 늦가을 외환위기사태 속에서 펼쳐진 대통령선거를 통해 “산업화세력과 민주화세력의 화해, 영남과 호남의 화합”을 외칠 수 있었다. 그것은 50년 만의 수평적 정권교체에 이바지하고 그해 12월 5일 김대중 후보를 박정희 대통령 생가로 안내하여 두 지도자에게 늦어진 화해 자리를 마련해준다. 또한 그는 “독재의 사슬도 기억케 하고, 빈곤의 사슬도 기억케 하라”는 가르침도 남긴다.

2010년 1월, 83세 박태준. 하노이국립대학 강연에서 쩌렁쩌렁 일갈했다. “한 나라가 일어서는 과정에 가장 중요한 전제조건은 지도층이 부패하지 않고 올바른 비전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자기 경험과 실천의 지혜였다. 그는 천하위공에 근거한 애국과 일류주의로 헤쳐 나아갔다. 고투의 길, 그러나 공동체의 영광을 창조하는 길이었다. 자연의 섭리가 그에게 종점을 알려주는 무렵부터 동시대인들이 이심전심 뒤늦게 어떤 진실을 깨달은 것처럼 그를 ‘영웅’이라 불렀다. 늙은 영웅은 영혼에 맺힌 말을 미처 세상에 다 내놓지 못했다. 눈가에 이슬로 맺히던 그의 말을 가슴속에 구슬로 간직한 이가 없지는 않다.

포스코 대성공에 바친 박태준의 공로가 아무리 적어도 1퍼센트는 될 것이라고 인정한 국가가 그에게 포스코 주식에서 공로주로 1퍼센트만 줬더라면, 그는 수천억 원을 소유한 재벌급 대부호로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공로주를 바라지도 않았고 한 주도 받지 않았다. 포스코가 늘 세계일류이기를 희원할 따름이었다.

박태준은 팔순을 넘어서도 통일의 실마리를 잡으려 했다. 원산 어디쯤에 종합제철소를 포스코 자금과 기술로 짓고 싶었다. “기술자야 인민군대서 차출해 포항, 광양에 데려다가 훈련시켜야지. 자금? 포스코 신인도면 은행이 줄을 서. 왜 평양이 문을 못 여나? 내가 지팡이라도 짚고 갈 건데. 제철소뿐인가? 근대화 교과서가 다 있어. 여기, 여기 말이야.” 오른손 검지로 이마를 쿡쿡 찌르는 노인이 아이처럼 흥분했다.

천하위공, 그 머나먼 길을 애국정신·일류주의 두 발로 사심 없이 완주한 노인의 염원이 아직은 이 땅에 비원(悲願)으로 남아 있다. 산업화세력과 민주화세력의 화해, 영남과 호남의 정치적 화합도 그렇다. 이 비원들을 진실로 받들어 실현에 앞장서야 하는 이들은 누구인가?


<박태준미래전략연구소 제공>


▶ 박정희 대통령께 임무완수를 보고하는 박태준 회장 - 1992년 10월 3일 당시 박태준 회장이 박정희 대통령 묘소에서 ‘임무완수’를 보고하고 있다. 4반세기(1968.4~1992.10) 제철대역사 준공 다음날인 이날 국립서울현충원 박정희 대통령 묘소에서 박 회장은 “각하의 명을 받아 25년 만에 제철입국의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했음을 각하의 영전에 보고합니다”라고 했다.
 


[출처]

https://blog.naver.com/sooji2/220214555540

첨부파일 첨부파일 :
게시판 List
이전글 [동아일보] 박태준 “한국, 동아시아 리더 교육기관 세워야” - 2014-12-10
다음글 [포스코신문] 뉴스종합 '박태준미래전략연구소' 21세기 이끌 ‘미래리더십’ 모색 - 2014.1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