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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텍 박태준미래전략연구소에서 개최한
전국 대학생 및 대학원생 에세이 공모전의 수상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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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결과물

연구도서
[2015 청년 에세이 대상] 목소리를 내는 연습
  • 저자
  • 문숙진 (포스텍)
  • 발행일
  • 2015-09-01
요 약

2015 대학(원)생 에세이 공모전 대상


' 목소리를 내는 연습 '

        - 포스텍 문숙진


대상작 「목소리를 내는 연습」은 개성적이면서도 주체적인 발상과 그에 따른 문제 제기 과정이 새롭고도 흥미롭다. 이 글에 나오는 ‘목소리’라는 것은 사회 구조적 힘이나 메커니즘에 대해 반성적으로 사유하고 주체적으로 문제 제기해 나갈 수 있는 개별자들의 주체적인 힘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 논점에 비추어 우리 사회를 조명하고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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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준미래전략연구소에서는 전국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10년 내에 한국사회가 당면할 가장 중요한 이슈는?」 라는 주제로 공모전을 개최하였다. 국내 53개 대학을 비롯해 튀니지대학(튀니지), 튈버그대학(네덜란드), 하노이국립대(베트남) 등 해외대학에 유학하는 학생 등 57개 대학 138개팀 179명이 응모해 높은 호응도를 보였으며, 이중 대상 2편, 우수상 10편을 선정하였다.


top

목 차

1. 에세이를 쓰는 목적
2. 목소리를 내지 않는 우리 사회의 모습
3. 목소리를 내지 않는 사회의 부작용

1) 감시의 기능을 잃어버린 사회
2) 미성숙한 의식과 폭발하는 익명 플랫폼

4.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목소리를 내지 못할까?

1) 손익 계산
2) 미약한 내부 고발자 보호 시스템
3) 집단 트라우마

5.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소리를 내야만 하는 이유

1) 보호
2) 감시

6. 그렇다면 목소리를 내는 연습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시험문제 바꾸기
2) 목소리를 내는 것에 대한 장려와 보호

7. 맺는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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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용
[2015 청년 에세이 대상] 목소리를 내는 연습
문숙진 (포스텍)

1. 에세이를 쓰는 목적

학교에서, 연구실에서, 직장에서 사람들은 제 목소리를 내는 것을 어려워하며 살아간다. 떠오르는 말은 많지만 대부분은 속으로 꾹꾹 누르며 지낸다. 나 역시 그런 보통의 사람들 중 하나인데, 최근 몇 가지 경험들을 통해 목소리를 내는 것과 그 의미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생각이 많아질 때 마다 박태준학술정보관에서 지냈다. 일단 조용하고 집중되는 자리를 찾으면 그 동안 머리에 쌓여있던 생각들이 조각조각 쏟아져 나왔다. 한 번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을 때 마침 공고를 보았다. 내 생각을 정리하고 공유할 만한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글쓰기에 서투르지만, 바로 이 에세이 제목처럼 ‘목소리를 내는 연습’의 실천으로 생각하고 내가 얻은 사유의 결과물들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나는 어설퍼도 상관없으니 목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서 이 에세이를 쓰게 되었다. 목소리라는 단어가 참 애매하게 들리는데, 최대한 애매하여 넓은 의미들을 포함하는 것이 내가 원하는 목소리의 개념이다. 이 글에서는 말을 하는 것, 글을 쓰는 것, 행동을 하는 것, 우는 것 무엇이든 다른 이에게 나의 의사를 표출할 수 있는 모든 행위를 목소리를 내는 것으로 칭하고자 한다. 나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목소리를 내지 않는 사회이고, 그로 인한 부작용들이 무엇이 있는가를 생각했다. 또한 이러한 문제점이 왜 생기는지, 왜 사람들이 위험부담을 안고서라도 목소리를 내야만 하는지에 대한 이유와 우리 사회에서 제시할 수 있는 해결방안들을 생각했다.

 

2. 목소리를 내지 않는 우리 사회의 모습

지금은 수강생이 100명가량 되는 대학교 수업 시간이다. 수업시간 후반부로 갈수록 내용은 난해해지고, 교수님의 설명이 이해가 안가는 학생들이 반이 넘게 된다. 교수님은 중간 중간 질문의 기회를 주시지만 질문하는 학생들은 별로 없다. 궁금하지만 굳이 알고 싶지는 않아서 (?) 일수도 있고, 뭐든 간에 그냥 빨리 넘어갔으면 좋겠어 서 일수도 있다. 질문했다가 교수님과 다른 학생들에게 본인의 무지가 탄로날것이 두려워서 일수도 있고, 수업이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100여명의 눈총을 견딜 자신이 없어서 일수도 있다. 전자의 경우는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하는 것에 가깝다. 반면에 후자의 경우는 주변 눈치가 보여서 못하는 경우이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외부 요인의 눈치를 보며 웬만하면 나서지 않으려 하는 모습의 흔한 예이다.

훨씬 무거운 예시들도 많다. 이제는 많이 사라졌지만 대학원 생활의 뿌리 깊은 악습 중에 ‘랩비’라는 것이 있다. 대학원에서 학생들에게 일정수준의 인건비가 주어지면 그 중 일부를 다시 걷어가서 연구실 살림에 보태는 것이다. 학생들 회식용도로 가볍게 몇 만원 수준으로 걷는 것부터 십만 원 이상의 단위로 올라가 대학원생 인건비의 10% 이상을 걷는 경우까지 다양하다. 대학원 신입생들은 O.T등등을 통해 처음 대학원 생활지침 교육을 받을 때 대학원생의 인권 문제와 관련된 여러 사례들과 더불어 랩비를 걷는 것이 엄연히 금지된 것을 배우게 된다. 하지만 신입생 A는 연구실 생활 첫 월급을 받자마자 윤리적 갈등에 부딪힌다. 연구실 선배로부터 랩비를 내라는 소식을 들은 것이다. 이 연구실은 전통적으로 랩비를 걷어왔고 지금 신입생인 너를 제외한 모두 랩비를 내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이 신입생은 어떤 행동을 취할 수 있을까?

앞의 예시들은 모두 가상의 예시들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오히려 더 비현실적일 정도로 심각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 최근 전남의 한 연구소에서 25억 첨단장비로 연구소 원장의 명절 선물용 참기름을 짠 것이 밝혀져 뉴스가 떠들썩했다. 연구기자재의 이러한 황당한 유용은 무려 4년간이나 계속되었다. 게다가 이 원장은 지난 4년간 실험기자재를 납품 받는 것처럼 속여 6천여만 원의 참깨와 포장용 상자를 사는 등 연구비를 횡령한 혐의도 받았다. 연구소 원장이 이러한 행위를 4년간이나 모두에게 비밀을 유지하며 홀로 진행했을 리는 없다. 지시를 받고, 원재료를 사고, 기름을 짜고, 포장을 하는 과정을 지켜보거나 참여한 연구원들이 많았을 것이다. 또한 연구기관이니 분명히 연구비 횡령이나 유용에 대해 감사가 있었을 텐데 4년간이나 보고도 못 본 척, 들어도 못 들은 척 넘어간 감사시스템 관련 위원들도 있었을 것이다. 상식 선에서 생각해도 분명히 문제가 있는 행위이므로 연구소 조직원들 역시 이것이 옳지 않은 행위임을 자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다만 여기서 깊이 생각해보아야 할 점은 이 행위가 4년간이나 지속되어왔다는 것이다. 4년간이나 아무도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라고 말하지 못하고 이러한 행위가 지속되어 왔던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조직원 개개인의 도덕성을 탓할 문제가 아니라, 어렸을 때부터의 교육과 조직문화가 복잡하게 얽힌 문제이다. 어떻게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지 못하게 되는 지와 이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에세이 후반부에 서술하고자 한다.

 

3. 목소리를 내지 않는 사회의 부작용

1) 감시의 기능을 잃어버린 사회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는 말이 있다. 한 명 두 명 입을 다물고 진실을 숨기게 되면 정말 바로잡아야 할 때가 와도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올해 초는 서울대 강교수 성추행 관련기사로 연일 뜨거웠다. 직접 피해를 입은 사람, 목격한 사람, 동료 교수들, 졸업생들 모두 힘을 합쳐서 어떤 일들이 있었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밝히고자 했다. 알려지는 사실들은 놀라웠고, 이 뉴스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서울대 교수가 버젓이 그런 일들을 했는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여론에 힘이 실리자 많은 이들이 더욱더 용기를 내서 각자의 경험과 생각을 주장했다.

강교수가 어떤 일을 했고 얼마나 잘못했는지를 떠나서, 이 사건의 전반적인 흐름을 보면 목소리를 내는 것의 한 가지 기능을 알 수 있다. 목소리를 내는 것은 그 자체로 강력한 감시와 자정의 기능을 한다. 피해를 입은 사람은 피해를 입었다고, 목격한 사람은 목격했다고 말함으로써 잘못을 지적하는 것이다. 이 사건을 보면 수많은 피해사례가 쌓여서 공개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피해사실을 증언하는 피해자 중에는 몇 년 전의 일을 증언하는 사람도 있다. 학생들이 이 교수를 대할 때의 행동강령까지 만들어 피할 정도인데 어떻게 이 사건이 이제야 드러났는지 한 번 생각해보아야 한다.

이 사건은 서울대학교 교내 게시판의 한 글로 인해 공개되었다. 참다 못한 누군가가 먼저 용기를 낸 것이다. 그가 행동하기 이전까지는, 심지어 피해자도, 강교수의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말하지 못했다. 게시판의 누군가가 목소리를 내지 않았더라면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피해자는 계속 생겨났을 것이다. 다들 ‘내 일은 아니니까’, ‘나만 참으면 돼’ 혹은 다양한 여러 이유로 먼저 목소리 내기를 꺼려할 것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갈수록 이 교수의 사회적 지위는 더욱 견고해져 피해자들이 함부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악순환이 계속 되었을 것이다. 불이익을 감수하고서 그 교수에게 ‘당신의 행동은 잘못되었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점점 찾기 힘들어질 것이므로 그 교수가 본인의 잘못을 인지할 가능성 또한 점점 줄어든다. 이렇듯 목소리를 내지 않는 것은 감시의 기능을 잃어버리는 것이고, 이것은 쉽게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감시의 기능을 잃어버린 사회에서는 다들 쉽게 보고도 못 본 척 들어도 못 들은 척 하게 된다. 내 일만 아니라면 그렇게 하는 것이 차라리 편하게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엄청나게 잘못된 일도 버젓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불이익이 무서워 다들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고 하지만, 이는 자신이 피해자가 되었을 때 모두가 외면하는 상황과 다를 바가 없다. 1955년 발간된 <그들은 자신들이 자유롭다고 생각했다(They Thought They Were Free)>라는 책에 인용된 시 중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나치가 공산주의자들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 그들이 사회민주당원들을 가두었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사회민주당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 그들이 노동조합원들을 덮쳤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 그들이 유태인들에게 왔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유태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나에게 닥쳤을 때는,

나를 위해 말해 줄 이들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 Martin Niemoller

목소리를 내지 않아 감시의 기능을 잃어버린 사회는 누구에게도 안전한 사회가 아닌 것이다.

2) 미성숙한 의식과 폭발하는 익명 플랫폼

목소리를 내는 연습이 되지 않은 미성숙한 상태에서 익명의 공간이 늘어나는 것은 부작용의 위험이 많다. 현실에서 개인의 행동에는 항상 책임이 따르는데, 이 때 인터넷상의 익명 커뮤니티를 책임이 없어도 되는 자유의 공간처럼 느끼게 되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그 공간에서는 어떤 말과 행동을 해도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므로 사회의 도덕과 가치규범 등을 쉽게 어기기 때문이다. 익명 커뮤니티의 순기능을 제대로 이해하고 활용하는 사람이라면 문제가 없겠지만, 이를 개인의 폭력성과 파괴성을 아무 제약 없이 분출할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부작용의 위험은 훨씬 커진다.

실제로 다양한 인터넷 커뮤니티들과 페이스북ㆍ트위터를 포함한 소설네트워크 등 어떠한 조건도 없이 익명으로 활동할 수 있는 매체들이 폭발하면서 우리는 그 부작용들을 항상 보고 있다. 특히 극단적인 성격을 가진 일부 커뮤니티들은 이러한 부작용들을 잘 보여준다. 과도하게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글들, 자신과 다른 의견은 수용하지 않고 말 하지 못하게끔 원천 봉쇄하거나 마녀사냥 하는 모습을 대표 예로 들 수 있다. 특히 그들은 이러한 내용들을 대체로 개그라는 형식을 통해서 쓴다. 개그라는 소재는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사람들의 생각에 스며들기 쉬운 도구이다. 웃으면서 물든다고 아직 뚜렷이 자기의 생각이 없는 상태에서 인터넷의 여론을 보다 보면 올바르지 않은 생각임을 알면서도 자연스럽게 선동될 가능성이 높다. ‘어휴 한심한 놈들ㅋㅋ’ 하면서 웃다가도 자기도 모르게 물들게 되는 것이다. 개그의 소재 자체가 너무나 자극적이고 충격적이기 때문에 이러한 커뮤니티 회원들은 좀 더 자극적이고 좀 더 선동적인 개념들을 끊임없이 만들어낸다. 또한 집단의 성격을 나타내는 은어와 유행어가 끊임없이 만들어진다. 그 결과 이러한 커뮤니티의 문화를 말해주는 공동의 목소리가 만들어진다. 이 공동의 목소리는 매우 파괴적이다. 예를 들어 세월호 사건과 관련하여 차마 상상하지도 못할 말들을 뱉으며 ‘드립’이라며 웃는다던가, 특정 연예인을 함께 물어뜯어 공격하기도 한다. 공동의 목소리가 한 사람을 지목하여 비난하기 시작하면 개인의 신상을 턴다던가 협박을 하는 등 범죄적 행위까지도 서슴지 않고 행해진다. 미성숙한 의식이 완전한 익명 플랫폼을 만났을 때 얼마나 파괴적이고 위험한 목소리들로 바뀔 수 있는지 보여주는 예시이다.

과학과 IT기술의 발달은 매우 빠르고, 우리 사회에 새로운 소통의 창구를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있다. 하지만 소통의 창구가 제 역할을 하려면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먼저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책임질 수 있는 자기 목소리를 내는 연습이 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지금 일부 인터넷 익명 커뮤니티들의 반사회적 행동이 도를 넘으면서 국가의 제재가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하지만 커뮤니티들을 없앤다고 해도 또 다른 익명의 플랫폼은 계속 나올 것이기 때문에 이는 부작용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따라서 이 문제의 근본적 해결방법은 커뮤니티 자체를 규제하는 것이 아니라 이용자들의 의식 수준을 개선시키는 데 있다. 앞으로 10, 20년 뒤의 한국 사회를 생각한다면 지금의 어린 학생들이 현실에서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도록 연습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생각을 누르고 살다가 익명 커뮤니티에서 파괴적으로 분출시키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충분히 목소리를 내고 책임지는 것을 자연스럽게 느끼게끔 만들어야 한다. 익명의 플랫폼은 끊임없이 나올 것이고, 이 공간들에서 아무리 익명이라도 사회적 책임을 가지고 발언하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어린 학생들이 현실에서 자신의 생각을 펼치게끔 연습시킬 수 있는지는 6. 1)시험문제 바꾸기에서 다룰 것이다.

 

4.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목소리를 내지 못할까?

1) 손익 계산

목소리를 내기 전, 사람들은 먼저 계산을 하게 된다. 내가 목소리를 냄으로써 얻는 이익과 그로 인해 오는 손해를 생각해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교수가 연구비를 유용하여 본인 개인 컴퓨터를 사는 것을 보았다면 이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계산과정이 일어날 수 있다.

i. 교수님께 직접 말한다. “교수님, 연구비를 유용하여 개인 컴퓨터를 사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 적어도 이 학생이 있는 동안은 해당 교수가 대놓고 연구비를 유용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이 학생은 교수에게 찍힐 가능성이 매우 높다. 연구실 생활이 힘들어 질 수 있고 심하게는 연구실에서 나가게 되거나 교수의 실력행사로 인해 관련 분야에서 매장 당할 수 있다.

ii. 학내 기관에 제보한다.

→ 규정에 따라 교수는 합당한 처벌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내부 고발자가 있었다는 것을 교수가 알게 되면 그 때부터 연구실 학생 전체의 생활이 힘들어 질 수 있다. 교수가 학생들을 배신자 혹은 잠재적 배신자로 생각할 수 있고 만약 제보자가 밝혀질 경우 연구실 생활의 지속이 심각하게 어려워질 것이다.

iii. 못 본 것으로 한다.

→ 해당 교수는 컴퓨터를 잘 쓸 것이고, 연구실은 평소와 다름없이 돌아갈 것 이다. ‘이건 옳지 않은데…’라는 양심의 가책이 있을 수 있지만 시간이 감에           따라 이 불편한 감정은 빠르게 잊혀질 것이다. 나의 일상에도 큰 변화가 없을 것이고 평소처럼 하던 일을 하면서 지내면 된다.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처럼 단순한 예를 생각해 보아도 얻는 것 보다 잃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많은 집단에서 잘못된 것을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는 행위 자체가 마치 배신이나 하극상, 그 이상의 나쁜 행동인 것처럼 금기 시 되고 있다. 집단의 책임자가 나서서 그런 분위기를 조장하는 경우도 있고, 집단 구성원들이 미리 겁을 먹고 알아서 조심하는 경우도 있다. 윗선에서 비리를 저지르고 이를 고발했을 때 강력한 불이익을 줄 것을 암시하는 경우 역시 있을 수 있다. 어떤 이유던 간에 이러한 분위기는 쉽게 내부 고발자에 대한 보복성 행위들로 이어진다. 지적 받은 사람이 잘못을 시정하는 것과는 별개로 제보자에 대한 분풀이와 불이익이 거리낌 없이 공개적으로 일어나는 것이다. 이를 목격한 주변인들은 공포를 느끼게 되고 잘못된 것을 지적하는 것을 더욱 조심하게 된다. 이러한 악순환은 집단의 구성원들로 하여금 ‘내가 나서봤자 나만 피해를 입을 뿐 바뀌는 건 없다’고 느끼게 할 만큼 견고해진다. 그 결과 사람들은 점점 목소리를 내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2) 미약한 내부 고발자 보호 시스템

앞서의 손익 계산 과정이 개인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메커니즘 이라면, 사회 시스템 자체에도 문제가 존재한다. 내부 고발자를 보호하는 시스템이 아직 미약해서 어떤 식으로든 제보자가 불이익을 받는 것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부 고발이란 조직의 일원 이거나 한 때 조직에 속해있었던 사람이 내부의 부정한 행위를 폭로하는 것을 말한다. 내부 고발을 통해서 긍정적인 자정작용이 일어날 수 있지만, 제보자에게는 항상 불이익 위험이 존재하기 때문에 제보하기까지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제보자가 겪는 불이익의 형태는 매우 다양하다. 제보자가 공동체의 공익을 해치는 존재처럼 인식되기도 하고, 고발 받은 사람이 힘닿는 데까지 제보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진풍경(?)이 펼쳐지기도 한다. 2014년에 23세의 한 용기 있는 청년이 외교부 부서의 업무추진비 유용을 밝힌 일을 예로 들 수 있다. 이 청년은 국민권익위원회에 외교부 해당 부서의 비리를 제보했고, 조사결과 해당 부서가 총 57차례에 걸쳐 1400만원의 업무추진비를 유용한 것이 밝혀졌다. 그런데 이후에 비리를 감시하는 역할의 외교부 감사관실에서 오히려 직원들을 감싸주는 황당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제보자가 개인적 앙심을 품고 제보를 했다며 제보 의도를 왜곡하고, 제보자의 새로운 근무지에 별도의 공문을 보내서 근무태도에 대한 징계를 요청한 것이다. 이렇듯 아직 제보자가 겪는 불이익은 공개적이고 마치 당연한 것인 양 일어난다. 제보자에 대한 보복성 행위를 막기 위한 장치들이 있지만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다. 국가에서 내부 고발자를 보호하고자 여러 가지 법을 제정하고 있지만 이처럼 아직 분명히 부족한 점들이 많다.

2002년 타임지 표지에는 세 명의 올해의 인물이 등장했다. 38억 달러에 달하는 월드컴의 회계 비리를 폭로한 신시아 쿠퍼, 9.11테러 전후의 FBI의 잘못들과 이를 감추고 왜곡하려는 이들을 통렬히 비판한 FBI요원 콜린 롤리, 엔론의 7억 달러의 회계비리를 폭로한 셰런 왓킨스가 그 주인공들이다. 당당하고 굳센 모습으로 표지를 장식한 그들을 통해 내부 고발을 장려하고 그들의 용기를 칭송하는 사회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반면에 부끄럽게도 아직 우리나라에서 제보자들이 언론에 나온다 하면 제보자가 죄인인 양 위축되거나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 주로 등장한다. 심지어는 제보자들의 제보 이후의 고통 받는 삶이 영화나 다큐멘터리로 나오는 경우도 많다. 가장 최근 대한항공의 박창진 사무장이 얼굴과 실명을 공개하고 결연한 의지를 말한 것이 그나마 많이 발전한 모습이다. 개인의 용기와 의지만을 장려할 것이 아니라, 보복성 행위에 대한 징벌을 강화하고 제보자를 보호하는 장치를 확립하는 등 시스템도 함께 진화해야 한다.

3) 집단 트라우마

우리나라는 집단의식이 강한 만큼 집단 트라우마에 사로잡힐 위험이 크다. 작년 우리나라의 세월호 사건은 국민들의 마음에 깊은 슬픔과 상처를 남겼다. 작년에는 안타깝게 떠난 어린 학생들과 희생자들을 다들 진심으로 추모하고 남은 이들을 돕고자 하는 움직임이 많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시간이 1년 남짓 지나자 세월호라는 단어 자체가 금기시되기 시작했다. 세월호 얘기를 꺼내는 것은 ‘지겹다’, ‘언제까지 세월호 타령만 하느냐’ 등의 부정적인 반응을 불러 일으켰다. 물론 1년이 넘게 같은 주제가 뉴스와 커뮤니티를 도배해서 정말 지겹게 느껴진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 생각에 세월호라는 주제가 금기 시 되는 것에는 다른 이유가 있는 것 같았다.

최근 <영화로 만나는 치유의 심리학 (김준기 지음)>이라는 책을 읽었다. 내용 중 실화를 바탕으로 한 <위 아 마셜>이라는 영화를 소개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내게는 이것이 세월호 사건이 금기시되는 이유를 꼭 잘 설명하고 있다고 느껴졌다. 트라우마를 경험한 사람에게는 그 트라우마를 떠올리게 하는 ‘트라우마 트리거(trigger)’가 남는다. 자동차 사고로 가족을 잃은 사람이 큰 경적소리만 들려도 화들짝 놀라는 것, 추락사고를 목격한 사람이 누군가 높은 곳에 있는 것만 보아도 아찔해 하는 것, 성폭행 피해 여성이 남편과의 잠자리가 불쾌해져 피하게 되는 것 모두 트라우마 트리거의 예이다. 트라우마로 인한 상처가 깊을수록 사람들은 트라우마 트리거가 되는 모든 것들을 피하게 된다. 그래야지만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다. <위 아 마셜>에서는 헌팅턴 도시의 자랑이자 자부심인 ‘선더링 허드’라는 대학 미식축구 팀이 나온다. 그런데 이 팀에 비행기 사고가 나서 하루아침에 선더링 허드 팀원 대부분이 사망하는 일이 발생한다. 선더링 허드의 소속 대학은 물론 헌팅턴 도시 주민 전체가 큰 상실감과 고통에 빠진다. 사랑 받는 팀이자 도시의 자랑이었던 미식축구팀이 한 순간에 사라지면서 도시 전체에 트라우마가 남은 것이다. 그 때부터 이 도시에서는 선더링 허드에 관련된 모든 주제가 금기 시 된다. 선더링 허드와 관련된 주제들이 아픈 기억을 떠올리는 트라우마 트리거가 되어 다들 이를 피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을 ‘집단 트라우마’라고 한다. 영화에서는 트라우마가 남지 않은 잭 렌겔이라는 외부 인사를 코치로 임명하여 다 함께 집단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과정을 그린다. 살아남은 선더링 허드 팀원들과 마을 사람들 모두 처음에는 계속 팀을 재건하는 것을 고사 하지만, 결국 잭 렌겔의 노력을 통해 사람들 모두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선더링 허드 재건에 성공한다. 재건된 선더링 허드는 20년이 지나 우승까지 하는 명문 팀으로 거듭나서, 더 이상 트라우마 트리거가 아니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세월호는 그 자체로 강력한 트라우마였다. 세월호를 언급하는 것은 굳이 불편하고 아픈 기억을 꺼내는 것처럼 느껴졌다. 작년은 전체적인 슬픔이 너무 커서 어딜 가나 애도의 물결이 넘쳤다. 하지만 그 애도의 열기가 조금 가라앉자 많은 사람들이 세월호와 관련된 모든 것들을 금기시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세월호 얘기를 꺼내는 사람, 공론화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과한 것처럼 더 이상 목소리를 내지 못하게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하지만 이 집단 트라우마를 해결하고 앞으로 유사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게 하려면 트라우마 트리거를 피해서는 안 된다. 끊임없이 얘기하고 관련 주제가 언론에 계속 등장 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비록 직접 어떤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이 목소리를 내는 것을 비난하는 분위기를 형성해서는 안 된다. 불편해도, 해결이 될 때 까지는 관련 주제에 대해 목소리를 내서 정면 돌파 해야지만 트라우마를 치유할 수 있고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비단 세월호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강력한 공동체 의식은 사람들을 집단 트라우마에 취약하게 했다. 그 결과 굵직한 사건들이 있을 때마다 잠깐 온 국민이 들끓었다가 금새 트리거가 되는 모든 것들로부터 도망치는 현상이 일어났다. 불편한 주제가 조금만 오래 지속되어도 ‘아직도 그 얘기냐’하며 주제에 대한 깊은 토론 자체를 봉쇄하는 것이다. 그 결과 관련된 얘기를 꺼내는 것 자체가 금지되는 분위기가 형성된다. 이러한 성질은 쉽게 ‘타인에 대한 무관심 + 자극적인 흥미거리를 찾는 본능’ 과 합쳐진다. 그 결과 확 끓어올랐다가 금새 잊고 다른 주제를 찾는 냄비근성에 비유되기도 한다. 이는 우리 사회의 의식이 성장하려면 반드시 해결해야 할 부분이다. 좀 더 성숙한 사회가 되려면 집단 트라우마가 발생했을 때 이에 대한 목소리를 냄으로써 정면 돌파하거나, 적어도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을 막는 분위기를 형성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5.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소리를 내야만 하는 이유

목소리를 내는 것의 가장 큰 기능은 보호와 감시이다. 보호는 목소리를 냄으로써 자기 스스로를 주변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감시는 부정한 행위가 누군가에 의해 알려질 것을 의식하여 너도나도 함께 조심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1) 보호

보호의 가장 큰 의미는 스스로를 부당함으로부터 지키는 것이다. 당신이 아닌 것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라는 것을 주변인들이 알게 되면, 그들은 적어도 당신 앞에서는 조심하게 된다. 처음에야 좀 불편하겠지만 어떠한 집단이건 본인이 속한 곳에서 스스로를 지킬 수 있다는 것은 많은 의미를 갖는다. 사람은 평생을 살면서 많은 집단에 속하게 되고 각각의 상황에 따라 여러 어려움을 겪는다. 우리는 어떤 문제들이 발생할 지 예측 할 수 없으며, 일이 다 해결되기 전까지는 최선의 해결방법이 무엇인지도 알 수 없다. 이 때 문제들에 대한 제일 효과적인 예방법이자 해결책이 바로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처음부터 ‘저는 개인적 신념이 있어서 술을 안마십니다.’라고 확고히 말하고 이에 책임을 지는 행동을 보여주면, 아무리 회식자리라도 도를 지나친 음주강요는 불가하게 된다. ‘저는 키가 작은 것이 콤플렉스라 키로 놀리는 것 별로 안 좋아해요’라고 웃으면서 한 번쯤 얘기하면 이를 들은 사람들은 키로 놀리는 것을 조심하게 된다. 뇌물이나 비리에 엄격한 잣대를 대는 사람임을 주변에 알리면 주변인들은 이 사람에게 함부로 부정한 방법으로 접근하는 것을 조심하게 될 것이다. 스스로를 지키는 것은 결국 자신이 해야 할 일이고, 거창한 대의나 호소가 없더라도 목소리를 내는 행동만으로 이는 많은 부분 예방할 수 있다.

예전에 읽은 책 중 아직도 기억나는 부분이 있다. 2차 세계대전 중 민간 유대인 마을을 습격하여 어른아이 할 것 없이 일렬로 세워놓고 차례로 총을 쏴 죽일 것을 명령 받은 한 부대가 있었다. 부대장은 대원들 중 이 일을 하기를 원치 않는 사람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나는 ‘보복이 두려워서라도 누가 안 한다고 하겠나’생각했는데 놀랍게도 적지 않은 수의 대원들이 저는 할 수 없다고 총살을 집행하는 대열에서 이탈했다. 이것은 상황 상 어쩔 수 없었다고 주장하는 대부분의 나치전범들의 말과는 전혀 반대되는 것이었다. 전쟁에 참여한 많은 이들은 총살과 고문 등을 직접 수행하고 평생을 끔찍한 죄책감과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전쟁 당시에는 상부명령에 따라 가해자가 되었지만 결국 이로 인해 평생을 고통 받는 피해자가 되는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 총살 대열에서 이탈한 군인들은 용기 내서 양심의 목소리를 냄으로써 평생의 죄책감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한 것이다. 많은 이들이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이런 사람들이 존재하는 이상 ‘상황 상 나는 말할 수 없었다.’는 말은 변명이 되고 마는 것이다.

어느 집단이건 혼자서 목소리를 내는 것은 많은 용기와 부담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불가능하거나, 혼자만의 용기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보호의 개념은 모두가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되어 ‘모두가 모두를 보호’하는 감시로 이어질 수 있다.

2) 감시

목소리를 내는 것의 또 다른 기능으로 ‘감시’가 있다. 집단에 문제점이 보이면 이를 해결하기 위해 자정작용을 거쳐야 한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집단의 자정 작용에는 상부 명령을 받아 해결하는 top-down 방식보다 구성원 개개인을 열린 감시자로써 두고 그들의 목소리가 자유롭게 나오게끔 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소수의 상부 인원이 집단 전체를 구석구석 돌아보기 어렵고, 대부분 부정한 행위를 할 때 상부에는 들키지 않도록 조심하기 때문이다. 부하직원들은 대체로 상사로부터 부정한 행위를 하게끔 명령을 받아 수행하는 입장에 놓이므로 실상을 훨씬 잘 알 수밖에 없다. 따라서 소수의 인원에게 감시자의 역할을 줄 것이 아니라 집단 구성원 전체가 감시자가 되도록 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다만 이 과정에서 집단 구성원이 이후 보복이나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보호하는 시스템이 잘 갖추어져야만 감시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

또한 자정작용에 top-down 방식이라는 것이 애초에 문제가 있다. 명령을 내리는 top 에 문제의 원인이 있는 것이라면 명령을 받는 입장에서는 해결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최근 우리나라 공군참모총장이 비리 의혹을 받자 헌병대를 동원하여 내부 고발자를 색출하는 일이 있었다. 참모총장은 공군 각 부대로 지휘서신을 내려 보내 ‘발본색원’, ‘유언비어를 퍼뜨린 사람을 찾아내 엄단’ 등의 표현을 쓰며 자신의 비리를 제보한 제보자를 색출하려 했다. 본인의 비리 의혹이 참인지 거짓인지 밝혀지기도 전에 제보자를 찾아서 엄단하겠다는 이러한 태도는 애초에 ‘제보’, 즉 내부 감시의 기능을 없애겠다는 것과 다름없는 행위이다. 제보자가 아무리 괘씸하다고 해도 국가를 위해 쓰여야 할 헌병대를 개인의 앙심을 푸는데 쓰다니 코미디가 따로 없다. 이렇듯 집단의 자정작용에 있어 문제의 원인이 top에 있는 경우 위와 같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만약 구성원 개개인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훨씬 자유롭고 그 이후가 철저히 보호받는 시스템이 있다면 내부 고발이 신경 쓰여서라도 부정한 행위들이 한층 줄어들 것이다.

플라톤이 남긴 말 중에 “정치에 참여하지 않는 가장 큰 벌은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들에게 지배당하는 것이다.”라는 것이 있다. 내게는 이것이 개개인들이 끊임없이 본인의 목소리를 내서 감시의 기능을 활성화 시켜야 한다는 것으로 들린다.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 곧 목소리를 내는 것이고,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의견이 있다면 이로부터 감시를 받는 정치인들은 올바르게 행동하도록 노력하게 될 것이다. 감시가 없다고 느껴지는 순간, 본인이 어떤 잘못을 해도 문제가 없을 것으로 안전하게 여겨지는 순간, 그 집단은 부패가 시작되는 것이다.

 

6. 그렇다면 목소리를 내는 연습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시험문제 바꾸기

어린 시절의 올바른 교육은 정말 중요하다. 유년기부터 청년시절까지 받은 교육으로 형성된 가치관은 성인이 되면 거의 비가역적으로 굳어져 평생의 사고방식을 좌우한다. 올바른 목소리를 내려면 일단 청소년 시절에 깊이 생각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그래야지만 성년이 되었을 때 각자의 성숙한 생각들을 사회적 책임을 바탕으로 하여 현실에 옮길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교육은 학생들을 생각하도록 훈련시키는 것보다는 외우는데 능숙해지도록 훈련시키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 대학교 동기들과 맥주한잔 하면서 몇 번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내가 생각한 해결책은 매우 간단했다. 시험문제를 바꾸면 되는 것이다. 내가 대학에 들어가서 제일 인상 깊었던 것 중 하나가 시험문제가 이전과는 판이하게 다르다는 것이었다. 공부하는 학생들에게는, 특히나 우리나라처럼 높은 성적을 받아 명문대학에 들어가는 것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곳에서는 무슨 답을 쓰건 간에 높은 성적을 얻는 것이 목표가 된다. 우연히 찍어서 맞았어도 성적만 좋으면 문제가 없는 것이다. 공부를 잘 하는 것과 요령이 좋은 것은 별개인데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공부를 잘한다는 학생들 중 아는 것은 겉껍질뿐이지만 요령이 좋은 학생들의 비율이 적지 않다. 그 결과 배우는 과목을 깊이 이해하고 탐구하려던 학생들도 결국엔 진이 빠져서 ‘언어영역 지문 1분 만에 이해하기’ 따위의 인터넷 강의를 듣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가 생기는 근본적인 원인은 시험문제에 있다. 내가 공부하던 중고등학교 때는 너무 익숙해서 몰랐지만, 중고등학교의 시험문제는 스킬(요령)이 없으면 절대 제시간에 다 풀 수가 없다. 과외를 하면서 학생들 문제를 풀어보니 그러한 문제 30개를 50분 내에 푼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그런 시험 스타일을 가지고 학생이 깊이 생각하며 문제에 대해 고찰하기를 바라는 것은 억지였다. 성적이 좋은 학생들은 애초에 문제 유형을 외워서 문제를 보자마자 기계적으로 빠르게 답을 낼 수 있는 학생들로 채워졌다. 이러한 현상의 결과 학생들은 공부를 할 때도 딱히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 그냥 통째로 외우면 되는 것이다.

나는 나름 공부를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대학에 와서 처음으로 서술형 시험문제를 풀어보니 도대체 풀 수가 없었다. 시험문제는 나의 생각을 묻고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처럼 공부했던 나는 당연히 시험공부 과정에서 ‘나의 생각’을 해 본적이 없었고 그 결과 평균에 한참 못 미치는 점수를 받았다. 이러한 경험으로 나는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 학생들은 높은 점수를 받는 것이 목표이므로, 시험문제가 어떤 스타일로 나오느냐에 따라 그에 맞는 공부를 하게 된다. 외우는 것이 중요한 시험문제라면 외워서 공부하게 되고, 사고하는 것을 필요로 하는 시험문제가 나온다면 공부할 때 사고하게 된다. 공부할 때 이미 시험문제가 어떻게 나올지를 의식하면서 공부하기 때문에 문제 스타일에 따라 공부하는 방법 자체가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시험문제를 어떻게 내냐에 따라 학생이 생각을 하게끔 훈련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학부 과정 동안 학생의 깊은 생각을 요구하는 시험문제들을 여러 번 보았고, 그에 따라 나뿐 아니라 주변 친구들 모두 ‘나의 생각’을 깊이 하고 표현하는 훈련을 할 수 있었다.

목소리를 내려면 그 전에 ‘나의 생각’을 생각하는 훈련부터 되어야 한다. 자기 의견을 깊이 생각하는 그 훈련은 바로 중고등학교시절에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데 지금의 시험문제들은 최대한 생각을 안하고 미리 외워서 기계적으로 풀어야지만 점수가 잘 나오게끔 되어있다. 목소리를 내는 연습의 첫걸음으로 중고등학교의 시험 문제가 바뀌어야 한다. 물론 처음부터 통째로 서술형 문제로 바꾸는 것은 어렵다. 아직 우리사회는 좋은 점수를 얻어 지옥의 입시제도를 통과하는 것이 너무 중요하므로, 점수를 매기기 어려운 서술형 문제를 함부로 도입하기에는 문제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100점 만점의 객관식 시험문제에 보너스 5점의 서술형 문제를 넣는 것은 가능하다고 본다.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들은 5점도 충분히 중요하므로 시험공부를 할 때 보너스 문제에서 요구하는 것을 의식하며 공부 할 것이다. 보너스 문제가 학생의 생각에 따라 나온 논리, 창의성에 따라 점수를 준다면 학생들은 점차 공부할 때 외우는 것 외에도 ‘생각하는 것’의 존재를 의식하게 될 것이다. 작은 첫걸음이지만 이런 식으로 점차 중고등학교의 시험문제를 바꾸어 나가면 학생들로 하여금 생각을 깊이하고, 정리하는 연습을 시킬 수 있을 것이다. 목소리를 내기 전에 개인의 가치관에 기반 한 생각들을 정리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따라서 목소리를 내는 연습에 있어 중고등학교의 시험문제를 바꾸는 것은 중요한 첫 단추가 될 것이다.

2) 목소리를 내는 것에 대한 장려와 보호

목소리를 내는 것은 거창하게 시작할 필요가 없다. 시험문제를 통해서 생각하는 연습을 시킨 후, 생각이 들면 드는 대로 표현하기 시작하면 된다. 학교나 대학에서는 학생들의 질문을 장려해야 한다. 엉뚱한 소리를 하더라도 무안을 주지 말고 일단 들어보고 논리에 맞는다면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기관 차원에서 나서서 목소리 내는 것을 장려할 수도 있다. 특히 나는 학부 시절 동안 우리 학교의 상담센터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상담센터라 하면 보통 큰 문제가 있을 때나 찾는 어려운 공간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 학교의 상담센터는 정말 편안한 열린 공간이었다. 어떤 말이어도 상관없으니 편하게 와서 얘기하다 가면 된다고 대학교 입학 초기부터 교육을 받았다. 학교는 상담센터를 통해서 학생들이 자유롭게 각자의 주제로 목소리를 내게끔 장려했다. 그러다 보니 많은 학생들이 사소한 고민부터 중대한 문제들까지 어렵지 않게 가서 상담을 받았다. 얼마나 학생들이 편하게 이용하느냐면 내가 아는 남학생들 상당수가 대체 왜 여자 친구가 생기지 않는지 상담을 받았다. 상담 받는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지만, 어쨌든 고민을 말하고 함께 생각해 본다는 데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는 것이었다. 이외에도 음주 문제, 게임 중독, 수업 성적, 우울증과 강박증 등등 많은 학생들이 각자의 주제로 목소리를 냈다. 대화를 통해서 학생들은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을 받았다. 성추행 신고 등 학생이 혼자 엄두를 내지 못하는 부분도 일단 용기를 내서 말하면 많은 도움을 제공했다. 학생에 대한 완전한 익명을 보장하고 제보한 학생을 보호하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기관으로써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주었다. 이렇듯 기관차원에서 학생들이 자유로이 목소리를 내는 것을 장려하는 방안도 건강한 사회를 유지하는 데 있어 상당히 효과적이고 발전될 가능성이 많은 방법이다.

개개인이 목소리를 내도록 장려하는 것과 동시에, 자유로운 목소리 내기가 가능하도록 보호 장치도 충분히 갖춰져야 한다. 보호 장치는 매우 중요하다. 만약 목소리를 내는 것이 불이익으로 이어진다면 앞서 논한 모든 것들이 불가능하게 된다. 보호 장치가 확립되어야지만 불이익의 두려움 없이 옳은 것은 옳다,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각자의 생각을 자유로이 말할 수 있게 된다. 내부 고발자의 경우를 예로 들 수 있다. 앞서 논했듯이 내부 고발자는 다양한 불이익의 위험에 노출되기 쉽다. 심지어는 고발당한 사람이 오히려 제보자를 죄인으로 만드는 경우가 허다하다. 개인의 사익을 위해서 제보했다거나, 본인에게 앙심을 품고 복수하기 위한 목적이라는 등등이 흔히 고발당한 사람이 펼치는 주장이다. 그런데 어떤 식으로 제보자의 목적을 왜곡한다고 한들 고발당한 사람이 부정한 행동을 했음은 변하지 않는다. 따라서 결과적으로 조직의 썩은 살을 도려내고 치유시키는 이러한 자정 과정은 제도적으로 보호받아야 한다. 그래야지만 회사 돈이 새는 것, 세금이 개인의 이익에 쓰이는 것, 추가 피해자가 생기는 것 등등의 부작용들을 없앨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정말로 제보자가 불순한 목적이 있어 고발했다면 그는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으면 된다. 제보자가 없는 사실을 만들어가며 무고한 사람을 모함한 것이라면 당연히 무고죄로 처벌 받으면 된다. 결백한 사람을 모함하는 경우가 아닌 이상, 제보자의 목적이 무엇이건 간에 고발당한 사람의 부정한 행동은 덮어질 수 없다. 따라서 해당 조직은 오히려 더 많은 이들이 잘못을 지적할 용기를 낼 수 있도록 장려해야 하는 것이다. 이렇듯 전체의 공익을 위한 자정작용이라는 내부고발의 본 목적을 살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제보자에 대한 보호 장치가 확립되어야 한다.

어느 집단이던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자정작용을 해 나가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구성원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건강한 집단을 만드는데 매우 효율적인 방법임은 자명한 사실이다. 이를 위해서는 구성원 개개인이 불이익의 두려움 없이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잘못을 지적당한 사람이 제보자를 알게 되면 당연히 앙심이 남게 된다. 따라서 보복성 행위를 제한하는 법을 만든다고 해도 일단 제보자 보호를 위한 가장 안전한 방법은 완전한 익명 제보이다. 이 때 제보 후 사건 검증 단계에서도 지적을 받은 당사자가 제보자를 알 수 없도록 되어야 완전한 익명 제보라고 할 수 있다. 부득이하게 사건 검증 단계에서 제보자가 드러나는 경우라면 사건의 검증부터 해결까지의 단계를 최소화 시켜야 한다. 그래야지만 사건 검증 기간 동안 현장에서 제보자가 받는 불이익이 최소화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가 해결된 이후에 만약 고발당한 사람이 제보자를 알게 되었을 경우, 보복성 행위가 이루어지지 않도록 제보자에 대한 강력한 보호조치가 있어야 할 것이다. 제보자의 완전한 익명성은 쉽게 무고한 사람을 모함하는 데 악용될 소지가 있는데, 이것은 또한 무고죄의 처벌 강화를 통해 보완해야 할 것이다.

최근 서울 소재의 한 중학교에서 학교폭력 근절을 위한 대책으로 ‘친구명찰’ 이라는 것을 도입했다. 학교폭력을 목격했을 때 명찰을 누르면 라디오 주파수를 이용한 무선 알림을 통해 담당 교사에게 신고가 접수되는 시스템이다. 이 때 신고자의 보복성 피해를 막기 위해 교사만이 식별 가능한 코드로 신고가 접수된다. 처음에는 장난 신고가 많았으나 장난 신고 시 벌점을 주는 식으로 규제하자 실제 학교폭력 근절에 효과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중학교에서 시범적으로 시행하는 제도이지만 사회에서도 고려해 볼 법한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신고 절차가 간단하며, 제보자의 익명이 확실히 보장되어 2차 피해를 예방하고, 익명 제보를 악용하는 경우 크게 처벌하는 일련의 과정은 본받아도 좋을 시스템이라고 생각한다.

 

7. 맺는 말

'10년 내에 한국사회가 당면할 가장 중요한 이슈는 무엇이며,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는 주제에 내가 내린 답은 이렇다. 국가의 빠른 성장을 감당할 수 있는 ‘사회적 청렴과 도덕성’이 문제가 될 것이고, 이는 목소리를 내는 것의 순기능인 보호와 감시로 해결해야 한다.

우리 사회는 아직 자유롭게 목소리를 낼 만큼 개개인에 대한 보호제도가 완벽하지 않다. 군 내부 비리 제보에 참모총장이 나서서 제보자를 색출하는 실정이다. 이렇듯 내부 감시를 봉쇄하는 집단은 곧 집단의 자정작용 저하 및 부패로 이어지게 된다. 이러한 집단이 많아질수록 사회의 청렴은 빠르게 망가진다. 개개인 역시 본인의 생각을 구체화하고 밖으로 끄집어내는데 미성숙한 부분이 많다. 인터넷 커뮤니티나 소설 네트워크 등 익명 플랫폼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데 이 도구들의 순기능이 무색할 정도로 욕설, 비방, 선동 글이 난무한다. 화두에 오르면 누구나 쉽게 마녀사냥을 하고, 믿을 수 없을 만큼 비도덕적인 글을 개그라며 웃어넘긴다. 내가 이 에세이를 통해서 주장하고 싶었던 것은 그러므로 연습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목소리를 내는 연습이 되어서 사회 구성원 개개인이 본인의 가치관에 따라 깊이 생각하고 말할 줄 알게 되고, 부당한 행위들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고 주변을 감시할 수 있게 된다면 그것이 바로 성숙한 시민의식이고 도덕성이며, 사회적 청렴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가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몇 위를 했느니, 성장속도가 어떻다느니 뉴스가 많지만 결국 사회적 청렴과 도덕성이 받쳐주지 않으면 모래성일 뿐이다. 이에 대한 인지와 노력이 있어야지만 건강하고 행복한 사회가 될 수 있다. 목소리를 내는 것을 장려하는 사회가 되어 시민 스스로가 자신을 보호할 수 있고 수많은 집단에서 부정행위에 대한 올바른 감시와 자정이 이루어진다면 우리가 원하는 건강하고 행복한 사회에 한층 가까워 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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