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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텍 박태준미래전략연구소에서 개최한
전국 대학생 및 대학원생 에세이 공모전의 수상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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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결과물

연구도서
[2019 청년 에세이 대상]인공지능이 바꿀 미래? 인간이 바꿀 미래!
  • 저자
  • 이유림(경희대)
  • 발행일
  • 2019-11-30
요 약

인공지능이 두려운 이유는 인공지능에 의해 야기될 사회 혼란 때문이다. 일자리 변화, 노동 시장에서 소외된 '무용계층' 쓸모없는 계층의 발생, 빈익빈 부익부의 심화 등, 이러한 원망과 두려움 속에 글이 시작된다. 인공지능에 대해 하나도 모르는 상태에서 인공지능에게 대체 당하기엔 인간으로서의 자존심이 있지 않은가?


인공지능의 정의와 개발 의의를 하나씩 되짚어 보며 과연 인공지능을 어떠한 존재로 바라봐야 할까?

인공지능은 분명 명확한 목표가 있을 때나 데이터를 처리할 때는 효과적으로 작동하지만, 세상엔 그렇지 않은 상황이 더욱 많다. 인공지능이 가져올 사회 많은 분야 - 직업, 윤리, 교육 등 인공지능을 공부할수록 인공지능이 나아갈 길은 결국 인공지능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에 달려있음을 절실히 깨닫게 된다. 머지 않은 미래, 인공지능 덕분에 높은 워라밸을 실현할 수 있게 됐을때 우리는 인간에게 더 많은 업무를 쥐여주는 것이 아니라 지금보다 적극적으로 오픈 AI를 운영하여 잘못된 방향으로 인공지능이 개발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기술 혁명 속에서 오늘날 우리가 내리는 수많은 결정은 미래 세대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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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차

들어가며

인공지능은 도대체 누구?

지금은 유연한 사고 방식이 필요할 때

인간을 인간답게 해주는 인공지능

인공지능이 벌어들일 16조 달러, 어디에 써야 할까

인간다움 추구, 인공지능 윤리성 확보의 열쇠

인공지능이 함께하는 미래

작은 틈이 일으킬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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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용
[2019 청년 에세이 대상]인공지능이 바꿀 미래? 인간이 바꿀 미래!
이유림(경희대)

들어가며


나는 인공지능이 싫다. 아니, 솔직히 털어놓자면 인공지능이 무섭다. 인공지능을 생각하면 좋은 감정보다도 인공지능이 반란을 일으키는 수많은 SF 영화가 먼저 떠오르기 때문이다. 공학도가 이런 이야기를 한다고 많은 사람이 비웃겠지만, 인공지능의 발전을 지켜볼 때 같이 오는 찝찝함을 쉽게 떨쳐낼 수가 없다. 인공지능이 두려운 두 번째 이유는 인공지능에 의해 야기될 사회 혼란 때문이다. 인공지능이 수많은 일자리를 대체할 것이며 그에 따라 아주 많은 수의 사람들이 생계를 잃을 것이다. 당연히 빈익빈 부익부도 심화될 것이다. 어떤 사람은 그것이 사회 발전이라고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직업의 변화는 당연하며 한 직업이 없어지는 대신 다른 직업이 생겨난다고 주장할 것이다.

나는 그런 이들에게 묻고 싶다.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도래하며 사라질 택배기사, 버스 운전사 등의 단순노동자는 과연 어떤 직업을 가질 수 있는지 말이다. 과거와 달리 사라지는 직업과 새로 생겨날 직업 간의 교육 격차는 너무나도 크다. 『사피엔스』의 저자로 유명한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인공지능으로 인해 노동 시장에서 소외된 이들을 ‘무용(無用)계급’, 즉 쓸모없는 계층이라 칭했다. 유발 하라리 외 7명, 「초예측 세계 석학 8인에게 인류의 미래를 묻다」, 오노 가즈모토 엮음, 웅진지식하우스, 2019, pp 41~43.

 얼마나 잔인한 표현인가. 이미 흐르기 시작한 변화의 물살을 내가 어찌할 수도 없겠지만 이런 방향으로 물살을 튼 사람들에 대한 원망이 자꾸만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바로 이러한 원망과 두려움 속에 이 글은 시작되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인공지능에 대해 하나도 모르는 상태에서 인공지능에게 대체 당하기엔 인간으로서의 자존심이 있지 않은가? 이 글에서는 인공지능의 정의와 개발 의의를 하나하나 되짚어 보며 과연 인공지능을 어떠한 존재로 바라봐야 하는지 생각해볼 것이다. 인공지능이 바꿀 미래를 상상하는 것도 기술 개발의 원동력이지만, 올바른 방향성으로 그 목표에 도달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바람직하게 인공지능이 자리 잡은 사회가 되기까지 수많은 논의가 필요할 것인데 이 글에서 그중 일부를 다루겠다. 모든 내용은 평화로운 미래를 희망하는 나의 개인적 주관이 가득 반영되었으며 이것이 나와 같은 걱정을 하는 세상의 수많은 겁쟁이들에게 조금의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글을 시작하겠다.





인공지능은 도대체 누구?



가장 먼저 인공지능이 도대체 무엇인지부터 알아보자. 인공지능이란 단어가 처음 사용된 것은 1956년, 존 매카시에 의해서다. 이 단어의 제시와는 무관하게 인공지능의 개념에 대한 논의는 쭉 있었는데 ‘컴퓨터를 마치 인간의 두뇌처럼 만들어서 인간의 일을 대신시킬 수는 없을까?’라는 의문이 인공지능 개발의 근원이라 할 수 있다. 기술력 부족으로 잠시 주춤했던 인공지능 연구는 딥러닝 기술의 발전으로 3차 AI붐이 일며 폭발적으로 발전하며 현재로 이르렀다. 사실 나도 초등학생 때 인공지능이 개발되길 염원했다. 개학 전날 밤 울면서 밀린 일기를 쓸 때 특히나. 그토록 간절했던 바람이 현실화되고 있는 지금, 왜 나는 두려움에 빠졌을까. 아무래도 가장 큰 이유는 인공지능을 과연 기계로만 바라볼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 때문이다. (고백하자면 나는 안드로이드가 자아를 갖게 되며 벌어지는 일을 다룬 게임 ‘디트로이트 : 비컴 휴먼’을 플레이하면서 안드로이드를 구하기 위해 인간을 쏘기까지 한 사람이라 더욱 자신이 없다.)

다소 우스꽝스럽게 얘기해왔지만, 사실 인공지능 학자들 사이에서도 인공지능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는 꽤 뜨거운 감자다. 크게 ‘약한 인공지능파’와 ‘강한 인공지능파’로 나뉘는데 그에 따라 가장 예민한 쟁점인 인공지능이 스스로 사고할 수 있을지와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의견도 갈린다. ‘약한 인공지능파’는 인공지능은 인간의 지능을 흉내 냈을 뿐 실질적인 지성은 가지지 못하므로 결국 도구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강한 인공지능파’의 궁극적인 목표는 훨씬 높은 자유도를 가지고 인간과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작업을 수행하는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것이다.

두 의견을 하나하나 뜯어보자. 먼저 ‘약한 인공지능파’의 주장대로 인공지능은 인간의 도구에 불과할까. 그렇다면 인공지능의 윤리에 대해 이토록 논란이 많지는 않을 것이다. 생각해보자. 아무도 식칼에게는 ‘사람을 찌르면 안돼. 넌 식재료만 썰어야 한단다!’라고 가르쳐주지 않는다. 더 나아가 식칼에게 이런 가르침을 주지 않은 식칼 제조회사를 탓하는 이도 아무도 없다. 이와 비교했을 때, 확실히 인공지능을 단순한 도구로 치부하기에는 특수성이 존재한다. 인간 수준으로 인간의 업무를 스스로 완벽히 수행하길 바라나 여전히 도구에 불과하다는 주장도 조금은 모순이 있어 보인다. 강한 인공지능은 어떨까. 강한 인공지능의 실현 가능성은 차치하고, 그 주장만 살펴보자.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결국 인공지능은 인간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존재가 될 것이다. 강한 인공지능이 발전할수록 인간의 존재가치를 위협할 것이고 분명 더 깊은 혼란을 초래할 것이다. 이쯤 되면 우리는 어떠한 시각으로 인공지능을 정의해야 할지 의문이 생길 것이다.




지금은 유연한 사고 방식이 필요한 때



오카모토 유이치로는 그의 책 「인공지능의 마지막 공부」 오카모토 유이치로, 「인공지능의 마지막 공부」, 유노북스, 2019.

에서 대머리 역설을 통해 두 의견 대립을 비판했다. 대머리 역설이란 ‘머리카락이 몇 가닥 남았을 때부터 대머리라 할 수 있을지’에 대한 문제이다. 예컨대 남은 머리카락이 100개 이하일 때 대머리라고 해보자. 머리카락이 101개인 사람은 대머리가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102개인 사람은? 단 몇 올 차이로 대머리와 비(非) 대머리를 구분 지을 수는 없다. 이렇듯 개수로 따지면 문제가 생기는 상황이 있다. 이때는 개수가 아닌 ‘정도’의 문제로 생각해야 하는데 인공지능을 정의하는 상황이 이에 해당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는 인공지능에 대해 생각할 때 ‘0이냐 100이냐’ 같은 극단적인 발상을 그만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공지능이 인간처럼 생각할 수 있다(100%)거나 생각할 수 없다(0%)로만 결론짓는 일은 생산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추가로 저자는 ‘생각하다’라는 관점에 있어서 인간과 인공지능의 차이는 정도의 문제라고 받아들이는 유연한 태도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러한 태도는 인공지능과 인간의 공동작업이 활발히 요구됨에 따라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오카모토 유이치로가 제시한 유연한 태도는 인공지능이 도구인지 아닌지에 대한 논의에도 확대 적용될 수 있다. 약한 인공지능과 강한 인공지능으로 나눈 기저에는 인간 영역에 대한 방어 욕구가 깔려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대다수의 인공지능 학자들은 약한 인공지능을 주장하고, 인공지능은 인간의 도구일 뿐이라며 강력한 상하관계로 선을 그었다. 맞다. 현재로서 강한 인공지능의 개발 가능성은 현저히 낮다. 그러나 0%는 아니다. 닉 보스트롬은 초지능 등장 시나리오를 제시한 그의 저서 『슈퍼인텔리전스』에서 인공지능 전문가 중 75%가 30년 이내에 인간 수준의 기계 지능이 개발될 것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얘기했다. 그는 추후 다른 인터뷰 《보이스》 2018년 5월호

에서 딥러닝 기술이 비약적인 진보를 이룸에 따라 초지능이 도래할 시기가 당초 예상보다 훨씬 빨라졌다고 답변했다. 이처럼 인공지능이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속도로 발전하며 그 활용범위의 끝을 알 수 없는 상황인데, 1차원적인 시각에서 인공지능의 도구 여부로 논쟁하는 것은 비생산적일뿐더러 위험하다.

닉 보스트롬은 기술 혁명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단언컨대 인간이 하는 일 중 기술 혁명만큼 깊고 광범위한 결과를 초래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기술 혁명은 인간의 삶을 바꾸고, 수십억 명의 생활에 영향을 미친다. 그 결과는 수천 년까지는 아니어도 수백 년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Nanoethics and Technological Revolutions: A Précis”, Nanotechnology Perceptions: A Review of

Ultraprecision Engineering and Nanotechnology, Vol. 2 (1b), May Issue (2006). 

 이를 통해 우리는 보다 고차원적인 논의가 필요함을 알 수 있다. 인공지능 현실화의 초석을 닦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올바른 선택을 하지 않으면 우리 세대는 물론이고 향후 수백 년이 혼돈 속으로 빠질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강한 인공지능을 불가능한 기술이라고 단정 짓고 외면할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대비책이 필요하다. 이에 대해서는 인공지능의 개발자와 사용자로 나누어 차후에 더 자세히 이야기해보겠다.




인간을 인간답게 해주는 인공지능



인공지능이 바꿔 놓을 미래의 모습을 논하기 전에 우리는 인간의 존재 의의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는 인공지능이 범람하는 시대에서 오롯이 인간성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 절차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유발 하라리는 인공지능의 발전에 따라 경제·군사적, 나아가서는 정치적으로까지 가치를 잃은 ‘무용(無用)계급’의 대거 등장을 경고했다. 그 말은 인간의 존재 의의는 노동에 있다는 것일까?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가치이며 사람들은 노동을 통해 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많은 사람이 간과하는 것이 있다. 바로 ‘인간의 가치 = 노동’은 아니라는 점이다. 노동은 인간으로서의 존재가치를 온전히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필요한 것이지 궁극적인 도달점이 아니다. 그러나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많은 이들은 노동에서 본인의 가치를 증명하고자 한다. 취업 여부로 인생의 성공 여부를 나누고 이로 인해 여러 사회문제도 발생하고 있다. 일례로 서울대 보라매병원 연구팀의 조사를 들 수 있다. 연구팀은 4년제 대졸 취준생 7명 중 1명은 취업 스트레스로 인해 극단적 선택을 생각한 적이 있다고 답했으며, 이들 중 약 40%는 우울증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참 안타까운 현실이다.

우리는 왜 이토록 노동에 집착할까. 노동을 통해 얻고자 하는 상위 가치를 생각해보면 금방 답을 알 수 있다. 바로 본인의 행복이다. 나는 이것이 인공지능과 인간을 구분하는 결정적인 기준이라고 생각한다. 앞서 여러 번 얘기했듯, 인공지능은 인간의 업무를 대신 수행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인공지능이 스스로 사고할 수 있든 없든 간에 그들의 업무는 인간의 업무를 대신하는 것으로 인공지능 본인의 행복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반면 인간의 모든 선택과 행동은 그들의 행복으로 귀결된다. 객관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라도 주관적인 측면에서 본인에게 행복을 가져다준다면, 인간은 자기 파괴적인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 그만큼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이 본인의 존재가치를 유지하게 하는 강력한 원동력이다. 

그렇기에 인공지능은 오히려 인간을 인간답게 해줄 수 있다. 인공지능이 단순 노동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켜주고 각자의 가치관에 따른 행복을 좇을 여유를 마련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단순 노동을 하지 않거나 데이터 처리를 인공지능에게 맡기면 인간은 이전보다 짧게 근무해도 같은 수준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모든 직장인의 꿈, 워라밸 상승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퇴근 이후의 삶을 개인의 행복을 이루는데 투자하여 훨씬 심적인 여유가 있는 삶이 될 수 있다.

사실 개인의 행복을 추구함으로써 인간다움을 유지하는 것은 개인의 자존감을 지켜주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프랑스의 대표 경제학자이자 사상가인 다니엘 코엔은 인간은 어떤 의미에서는 그 자체로 ‘최종 완제품’이라 하였다. 따라서 목표가 명확하지 않고 모호할 때는 오히려 인간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인공지능은 분명 명확한 목표가 있을 때나 데이터를 처리할 때는 효과적으로 작동하지만, 세상엔 그렇지 않은 상황이 더욱 많다. 또한, 바둑에 특성화된 알파고 등과 같이 인공지능은 범용성이 적다. 한 분야에 특화된 채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결국, 인공지능이 보편화 될 미래에도 노동 시장에서 인간의 존재는 계속 중요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인공지능을 일자리를 빼앗는 적으로 여길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을 이롭게 해주는 존재로 바라봐야 할 것이며 이 속에서 늘 인간다움을 잊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인공지능이 벌어들일 16조 달러, 어디에 써야 할까



인공지능이 인간다움을 상승시켜주는 존재임은 맞지만, 그로 인해 발생하는 수많은 사회 혼란에 당위성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인공지능이 야기할 문제점에 대해 생각해보고 대비책 또한 미리 준비할 필요가 있다. 가장 첫 번째 문제는 심화될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다. 세계 1위 글로벌 컨설팅업체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는 2030년까지 인공지능이 세계 경제에 약 16조 달러를 이바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신희강, “2030년 데이터·AI 경제 규모 16조 달러...혁신 생태계 조성해야”, 『아주경제』, 2019.01.16

https://www.ajunews.com/view/20190116095345172

 완전히 새로운 거대 파이가 생겨나는 것이지만 만인의 파이는 아니다. 파바로티 효과(*세계적으로 유명한 테너 가수 파바로티 수준으로 최고가 아니라면 음반이 팔리지 않는다는 승자 독식 효과)에 따라 상위 1%가 생겨나는 부를 독점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해결하고 인공지능으로 인한 사회 혼란을 줄이기 위해서 우리는 의식적으로 이 부를 재분배해야 한다. 재분배된 부가 사용되어야 하는 가장 중요한 곳은 바로 교육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선 이전과 다른 내용의 교육이 필요하다. 첫 번째는, 인공지능 개발 교육이다. 아무리 뛰어난 인공지능이라도 결국은 인간이 개발하는 것이기에 인공지능 개발 교육에 투자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는 빠르게 발전하는 인공지능 시장과 비교했을 때 인재가 턱없이 부족하다.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SPRi)가 발간한 ‘인공지능두뇌지수(AI Brain Index) 핵심인재 분석과 의미’ 보고서에 의하면 세계 AI 전문가 상위 500명 가운데 한국인은 고작 7명에 불과하다고 발표했다. 서희현, “AI 강조하는데 국내 전문가는 고작 7명에 머물러”, 『아웃소싱타임스』, 2019.10.14

http://www.outsourcing.co.kr/news/articleView.html?idxno=86025

 또한, 2022년까지 약 7000명의 국내 인공지능 분야 연구자가 부족하다고 발표했다. 따라서 우리나라는 적극적으로 인공지능 개발 교육에 투자할 필요가 있다. 이때 중요한 것은 근본에 집중하는 장기적 투자이다. 우리나라는 반도체, 스마트폰 등 최첨단 기술의 강국임에도 기초과학 및 소재 등의 원천 기술에 대한 투자가 부족했다. 이 때문에 올해 여름 일본의 수출 규체에 그토록 시끄러울 수밖에 없었다. 똑같은 실수가 반복되지 않도록 근본적인 연구 및 교육에 장기적으로 투자해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뒤이어 자세히 얘기할 윤리 교육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부의 재분배로 해야 할 두 번째 교육은 디지털 문맹 퇴치이다. 디지털 문맹이란 정보 및 통신 기술을 사용하여 정보를 검색, 평가, 생성 및 통신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이들을 말한다. 이때 정보를 단순히 인식하는 것을 넘어 적극적으로 재편할 수 있어야 한다. 빠르게 정보화 시대로 넘어오며 고령층을 중심으로 많은 디지털 문맹이 생겨났다. 디지털 문맹률이 높은 사회는 분열되기 마련이다. 정보에서의 소외가 사회에서의 소외를 유발하여 계층 간의 갈등이 일어나고, 넘쳐나는 정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해 가짜 뉴스에 현혹되는 이들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4차 산업 혁명 시대에서 디지털 문맹은 인공지능 사용 여부로까지 확장될 것이다. 이는 더욱 강한 정보 및 사회로부터의 소외, 강력한 사회 분열을 의미한다. 따라서 우리는 재분배된 부로 디지털 문맹 퇴치에 힘써야 할 것이다. 또한, 디지털 문맹에게 기술에 관해 교육하는 것은 처음 말했던 새로 생겨날 직업과 사라질 직업 간의 교육 격차를 줄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일 것이다.




인간다움 추구, 인공지능 윤리성 확보의 열쇠



인공지능의 윤리에 대한 문제도 갈 길이 멀다. 가장 흔한 자율 주행 자동차를 예로 들어보자. 자율 주행 자동차는 ‘많은 수의 보행자 vs 주인인 운전자’ 중 누구의 안전을 택해야 할까. 강한 인공지능파 입장에서는 사고를 막기 위해 둘 중 하나를 희생해야 한다면 ‘인공지능 본인(자율 주행 자동차) vs 운전자’ 중 누구를 택할 것인지의 문제도 있겠다. 이러한 문제는 인간에게 적용했을 때조차 아직 명확한 답을 찾지 못했다. 그렇지만 한 가지 희망은 있다. 바로 인간다움을 유지하는 것이다.

사실 ‘인공지능의 윤리’라고 표현은 하지만, 실제 윤리적이어야 하는 것은 그 이면에 있는 개발자와 사용자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인공지능의 윤리’라고 표현하며 은근슬쩍 도덕적 책임을 인공지능에게 전가하고 있었다. 냉정하게 살펴보면 딥러닝 기술이 적용되며 인공지능이 독자적으로 알고리즘을 형성한다고는 하나 그 출발점은 알고리즘 전문가이다. 알고리즘 전문가의 윤리에 뿌리를 두고 있으므로 그의 윤리성이 상당히 중요하다. 차후에는 인공지능에게 데이터를 제공하는 사용자의 윤리성이 인공지능의 윤리성을 결정할 것이다.

이때 윤리성에 대한 논란이 생길 수 있다. 전문가인 윤리학자들도 무엇이 윤리적인지에 대한 의견이 나뉘는데 하물며 77억 지구인에게 일률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윤리 잣대가 과연 존재할지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여기서 다시 한번 인간다움의 중요성이 등장한다. 인공지능에게 적용되어야 할 윤리에 대한 논의는 학문적인 차원도 중요하지만 직접 맞닿아 있는 영역, 즉 일반적인 보통 사람들의 윤리성이 관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특정 국가나 집단을 대변하기보다는 인류 보편적인 가치를 담아야 하는데 이는 개개인이 인간다움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가치를 생각해보면 쉽게 도출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인공지능을 대할 때 우리는 인간다움을 유지하여 인류 보편적인 가치에 따라 개발 혹은 사용해야 한다.




인공지능이 함께하는 미래



위 두 가지를 지킨다면 인공지능의 개발은 우리의 삶을 훨씬 이롭게 해줄 것이다. 미래에는 딥러닝을 기반으로 더욱 독립적이고 발전된 인공지능이 등장할 것이다. 100% 강한 인공지능까진 아니어도 이에 준하는 수준의 인공지능이 개발될지도 모른다. 최첨단 기술을 개발하는 기업들 대부분이 인공지능을 일상에까지 적용시키기 위해 개발에 격차를 가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복잡한 환경에서 사용자를 이해하고 필요한 서비스를 선제적으로 제공하는 것이 AI기술의 핵심’이라 밝히며 인공지능 개발 로드맵을 밝혔다. 이를 통해 인공지능이 어떤 수준까지 발전하든 간에 현재보다 더 넓은 영역에서 높은 확률로 인공지능이 사용될 것임을 알 수 있다. 결국, 인간과 인공지능이 공존하는 시대가 올 것이다. 이러한 시대가 오면 흔히들 인공지능이 단순 노동을 담당하고, 인간은 창의적인 영역을 맡을 것이라고 한다. 이에 관한 얘기는 충분히 많기에 나는 다른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내가 생각하는 인공지능의 장점은 그들은 걱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글을 처음부터 읽은 사람이라면, 첫 문단에서 바로 내가 얼마나 걱정이 많은 사람인지 금방 눈치챘을 것이다. 나는 닥치지 않은 미래를 걱정하며 많은 시간을 허비하곤 한다. 방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경우의 수를 따져 가장 합리적인 결정을 제시하는 인공지능은 나를 비롯한 많은 걱정쟁이의 근심을 덜어줄 것이다. 단순한 문제에 대해 고민할 시간을 덜어줄 것이고 이 시간은 더 인간적인 차원의 고민에 투자할 수 있을 것이다.

자연재해나 범죄 분석 등에 인공지능이 활용되면 이전보다 안전한 사회가 될 수 있다. 올해 초 금융감독원과 IBK 기업은행은 인공지능을 활용해 보이스피싱을 적발하는 앱을 개발했다. 해당 앱은 금감원이 수집한 8천여 개의 보이스피싱 사례 속 단어, 발화 패턴, 문맥 등을 인공지능이 머신러닝하여 사기 여부를 탐지하는 방식이다. 현재 탐지율은 약 90%인데 작년 보이스피싱 규모가 4440억 원임을 생각해보면 인공지능이 개발된 게 참으로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작은 틈이 일으킬 기적



인공지능에 대한 두려움과 원망에서 출발한 글이었으나, 인공지능을 공부할수록 인공지능이 나아갈 길은 결국 인공지능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에 달려있음을 절실히 깨달았다. 그렇기에 인공지능 기술엔 앞서 얘기한 여러 단점과 논의해야 할 과제가 있지만, 이를 두렵단 이유로 단순히 비난하거나 외면하는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 글이 나와 비슷한 많은 겁쟁이가 인공지능 기술을 직시하고 옳지 못한 방향으로의 개발엔 쓴소리를 아끼지 않으며, 사용자로서 인공지능을 올바르게 이용하기 위해선 어떤 태도가 필요할지 스스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이 글은 30년 경력의 나무 의사 우종영의 책 「나는 나무에게 인생을 배웠다」에 나오는 한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마무리하고 싶다.

저자는 오늘날의 치열한 사회를 ‘녹화(綠化) 사업으로 이루어 낸 근대 숲’에 비유했다. 우리나라는 과거 전투적인 녹화(綠化) 사업을 통해 전쟁으로 폐허가 된 민둥산을 울창한 숲으로 되살려냈다. 이런 산을 보며 저자는 ‘헐벗은 산이 다시 푸르러진 것은 다행이지만 하늘을 향해 치솟은 나무들을 볼 때면 측은한 마음이 든다. 가지를 마음껏 뻗기는커녕 숨 쉴 여유조차 없는 공간에서 나무들은 생존을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부족한 햇볕을 조금이라도 더 받기 위해 그저 위로만 치솟듯 자라는 것이다.’라고 이야기하였다. 또한, 생존만을 위해 경쟁하는 숲의 말로는 죽음이라 하였다. 햇볕이 바닥까지 닿지 않아 새로운 싹이 트지 않고, 공존하는 곤충들이 살아갈 공간이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이러한 숲을 ‘겉으론 완벽해 보일지 몰라도 결국 희망이 없는 불임의 땅과 다르지 않다’고 표현했다. 우종영, 「나는 나무에게 인생을 배웠다 : 세상에서 가장 나이 많고 지혜로운 철학자」, 한성수 엮음, 메이븐, 2019.



저자가 묘사한 사회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인공지능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전세계인들은 막대한 부를 얻고, 단순 노동에서 해방되는 등의 번영을 누릴 것이지만 더 치열한 경쟁 속에 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한 경쟁을 잠시 멈추고 땅 아래까지 햇볕이 도달할 수 있도록 ‘작은 틈’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 ‘작은 틈’은 무엇일까. 사소하게는 인공지능 덕분에 높은 워라밸을 실현할 수 있게 됐을 때, 더 많은 업무를 쥐여주는 것이 아니라 퇴근하도록 하는 것일 수 있다. 더 높은 차원에서의 ‘작은 틈’엔 부의 재분배를 통한 교육 또는 지금보다 적극적으로 오픈 AI를 운영하여 잘못된 방향으로 인공지능이 개발되지 않도록 경계하는 것이 있겠다. 혹은 특허 제도를 통해 기술 개발에 시차를 늘려 인공지능 개발 속도를 늦출 수도 있다. 이러한 작은 틈으로 인해 기술 발전 속도는 더뎌질 수 있으나, 사회 혼란은 줄어들 것이기에 충분히 투자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미리 얘기한 바와 기술 혁명 속에서 오늘날 우리가 내리는 수많은 결정은 미래 세대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인공지능의 성격을 약이나 강으로 구분 짓는 것은 본질을 흐리게 하여 개발 방향성을 흔들 것이다. 우리는 보다 생산적이고, 안전하고, 올바른 결정을 내려 이로운 방향으로 인공지능을 인도할 책임이 있으므로 유연한 태도로 인공지능을 개발 및 사용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윤리성 또한 늘 같이 논의되어야 할 것이며 이때 모두가 본인의 인간다움을 추구하며 작은 틈을 잊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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