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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에세이, 미래전략연구를 통한 다양한 연구결과물

연구결과물

연구도서
[2016 청년 에세이 우수상] '한국 사회의 네오 홀로코스트, 혐오'
  • 저자
  • 오준수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 발행일
  • 2016.07.20
요 약

본 에세이는 최근 수없이 많은 혐오의 문제들을 겪고 있는 한국사회의 혐오의 원인과 해결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개인의 혐오 감정을 부정적인 루트를 통해 표출하는 과정에는, 개개인의 잠재된 분노와 스트레스가 원인으로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바로 그러한 측면에서 사회적 스트레스가 혐오라는 수단으로 ‘venting out’되지 않도록 ‘교육’과 ‘강화’라는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이를 위해 우리 모두는 혐오의 커뮤니케이션을 개선해야 하고 바람직한 소통의 패러다임을 재정의해야 할 것이다.

top

목 차

1. 에세이를 시작하면서


2. 누군가를 혐오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사회


3. 타자를 혐오할 수밖에 없는 이유
   1) 일반화, 그리고 방관
   2) 방향성을 상실한 잠재적 분노의 표출
   3) 무지로 인한 맹목적인 내면화


4. 병리적인 혐오 메커니즘 확산의 문제점
   1) 분열과 폭력
   2) 보이지 않는 고릴라


5. 혐오 문화로 물든 우리 사회의 패러다임을 전환하기 위해
   1) 정치: 고등학교 정치 교육 의무화
   2) 젠더: 초/중등 성교육 커리큘럼 개편
   3) 표현: 혐오 표현 방지를 위한 경고성 팝업 시스템


6. 에세이를 마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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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용
[2016 청년 에세이 우수상] '한국 사회의 네오 홀로코스트, 혐오'
오준수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1. 에세이를 시작하면서
1987년 이후 한국 사회를 지배해 온 강력한 지역주의를 처음으로 뒤흔든 지난 4.13 선거는 가장 역사적인 선거 중 하나로 평가받기에 충분했다. 여느 선거 유세 활동이 그랬듯이 후보자들은 더 많은 표와 지지자를 확보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는데 그 과정에서 한 가지 눈에 띈 것은 마이너리티, 즉 성소수자를 척결하겠다는 메시지였다. 일부 소수의 동성애 집단을 강력히 배척함으로써 그들을 혐오하는 다수의 지지자들을 끌어 모으기 위한 전략이었으리라 생각한다. 혐오의 메커니즘은 이렇게 우리 사회를 물들이고 있으며 혐오의 대상을 향한 사회적 홀로코스트는 매 순간 진행 중이다.


최근 한 대학 수업을 들으면서 필기했던 문구가 떠올랐다. 개인과 개인이 소통을 한다는 것은 곧 개인과 사회가 소통을 하는 것을 뜻한다는 내용이었다. 우리 사회는 복잡한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고 ‘나’라는 한 사람과 연결된 네트워크는 수십, 수백 개에 이르기 마련이다. 결국 한 사람과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발휘할 수 있는 영향력은 수십, 수백 배에 달하는 것이므로 ‘나’는 하나의 ‘사회’와 소통을 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이렇게 연결된 사회에서 소통, 특히 싫어하는 감정을 표출하는 네거티브 커뮤니케이션은 막중한 ‘표현의 책임’을 수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사회 곳곳에서 수없이 많은 무책임한 혐오 표현의 사례들을 접하게 된다. 행복한 한국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공공성과 시민의식의 시작은 혐오가 아닌 이해와 존중이다. 따라서 이 글이 우리 사회의 혐오 문제를 해결하고 더 나은 한국 사회를 이루는 것에 도움이 되길 바라면서 에세이를 시작한다.



2. 누군가를 혐오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사회
우리 사회는 주류 집단과 비주류 집단으로 나뉜다. 다시 말하면 다수 집단과 소수 집단으로 구분된다고 말 할 수 있다. 그리고 사회 조직이 다양화, 다원화 되면서 수많은 집단은 서로 중첩되기도 하고 끊임없이 분화되기를 반복한다. 이렇게 사회 조직을 구성하고 유지하는 핵심은 ‘집단적 타자화’라고 볼 수 있다. 자신이 속하지 않은 집단을 지속적으로 타자화하고 자신과 같은 입장, 소속을 갖는 이들과 동질감을 형성함으로써 하나의 구조화된 'social frame'을 유지하는 것이다. 결국 거시적인 관점에서 우리 사회는 누군가를 배척하고 자기 자신으로부터 대립화해야만 자기 집단의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으며 집단의 안정적인 존속이 가능하다. <혐오의 시대-2015년, 혐오는 어떻게 문제적 정동이 되었는가>에서는 다수의 남성으로 구성된 사회 기득권 세력이 사회적 약자 집단과의 경계를 강화하기 위해 자연스레 그들을 혐오의 대상으로 삼는다고 말한다. 동시에 인터넷이라는 매체를 통한 혐오발화는 배타적인 공동체성과 결속력을 형성하기에 충분하다고 설명한다. 찰스 다윈이 진화론을 주장하면서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감정 중 하나로 혐오를 제시했던 것과 우리 사회가 필연적으로 공동체 결속력 강화를 위해 혐오감의 표출을 선택하는 것을 고려한다면 우리 모두는 정말 ‘누군가를 혐오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존재들일지도 모른다.


혐오라는 것이 단순히 불쾌감을 유발해서, 혹은 그저 폭력적인 감정이라서 문제시되는 것은 아니다. 사실 ‘분노’라는 감정 내지는 특정 대상을 ‘싫어하는’ 마음 자체는, ‘좋아하는’ 감정만큼이나 중요하다 못해 필수불가결한 인간의 심리다. 하지만 타당한 근거와 논리가 배제된 막연한 혐오감 표출은 결코 표현의 자유라는 명목 아래 합리화될 수 없다. 개인의 혐오 감정 자체는 분명 인간다움을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이지만 커뮤니케이션으로 가득 찬 이 사회에서 감정을 전달하는 일련의 프로세스는 많은 조건과 전제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인터넷과 SNS를 통해 최근 며칠 사이에도 나 역시 여성혐오, 남성혐오, 장애인 조롱, 지역-정치 연계 혐오 등 셀 수 없이 많은 글들에 노출되었다. 지금도 SNS 상에서는 며칠 전 강남역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을 ‘여성 혐오’ 살인으로 정의할 것인지에 관한 혐오의 공론화가 진행 중이다.


이렇게 가시적으로 드러난 사건 외에도 우리 사회는 혐오를 기반으로 한 크고 작은 논쟁들을 반복한다. 그 과정에서 결코 이해되지 않는 것은 ‘왜 여성성과 남성성, 그 밖에 정치 성향이 집단적 혐오와 증오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지’다. 자유와 존엄성이라는 가치 하에 여자라는 이유로, 혹은 남자라는 이유로 증오를 사야할 이유는 결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혐오발화가 우리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즉 누군가를 혐오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3. 타자를 혐오할 수밖에 없는 이유


1) 일반화, 그리고 방관
대상을 향한 지독한 일반화는 바로 혐오 논리의 기저를 이룬다. 일부 사건을 전체의 속성으로 성급하게 확대하는 것은 곧 대상을 향한 혐오 선동을 이끌기에 충분하다. 동시에 대상에 대한 일반화는 또 다른 이들의 방관자적인 태도와 맞물려 더욱 심오한 갈등의 상황을 형성한다. 즉, 누군가는 특정 개인의 문제를 집단 전체의 문제로 치부하며 일반화하는데 전념하지만, 그 외에 많은 이들은 문제 자체를 공론화한 이를 멸시하고 외면해 버린다. 예컨대 여성 혐오 살인, 여성 성폭력, 성소수자 증오 같은 문제들에 대해 핏대를 세우며 집단적 증오심을 선동하는 이들이 있는 반면, ‘나는 아닌데’, 혹은 ‘남자가 모두 다 그런 건 아닌데’라는 식으로 방관하고 도리어 증오 선동에 반하는 이들이 지나치게 예민하다며 무시해버리기까지 한다. 혐오 선동은 이렇게 무관심하고 방관자적인 태도를 보이는 불특정 다수 집단에 의해 더 강력한 추진력을 얻는 셈이다. 이는 어쩌면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일지 모른다. 상대 집단에 대해서는 완고한 일반화적 논리를 적용하지만 자기 집단에 대해서는 관대하고 또 한편으로는 방관자적인 태도를 보이는 이중적 모습이 우리 사회의 모순이자 혐오 확산의 촉매제인 것이다.


2) 방향성을 상실한 잠재적 분노의 표출
현재 대한민국은 소득의 양극화, 경제 성장률의 지속적인 하락, 심각한 청년 실업, 가정 내 교육비 지출 부담 등의 경제적 문제들에 직면해 있다. 매슬로우의 욕구 5단계 중 안전의 욕구, 특히 재정적인 안정이 보장되지 못하는 상태에 이르렀다. 따라서 상위 욕구인 애정, 존경, 자아실현의 욕구까지 도달하지 못하는 것이 대다수 사람들의 현실이다. 요즘 대학생들만 보아도 극심한 취업난의 문제로 인해 ‘사명’과 ‘업’을 찾기보다는 ‘직장’을 찾고 있는 것이 대다수다. 경제적 불안정의 문제는 20대부터 30대, 40대, 그리고 그 이후에 이르기까지 모든 연령층을 대상으로 포괄하고 있으며 당장의 단기적이고 효과적인 해결책을 찾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이처럼 출구가 없는 폐쇄 공간에서 사람들은 적절한 스트레스의 배출구를 찾지 못해 ‘상대적 약자’에게 모든 분노와 증오를 쏟아낸다. 일종의 ‘Stress displacement’로, 이런 잠재적 스트레스는 물리적인 가학의 형태 혹은 공격적인 발화의 형태로 표출된다. 전자의 경우 올해 들어 특히 이슈화 되었던 아동학대 케이스가 해당되며 후자가 바로 혐오성 표현의 확산이라고 볼 수 있다.


거시적으로 본다면 우리 사회의 혐오 문화는 타자화를 통한 자기 집단의 결속력과 유대감 강화라고 볼 수 있지만 미시적인 시각에서 개개인의 혐오 표출은 잠재적으로 누적된 스트레스와 분노에서 기인한다. 사회적으로 이들의 분노를 배출시킬 제도적인 장치가 마련되어 있지 않고, 점점 누적되는 스트레스로 이 사회 전체는 과열에 이르렀다. 분노 표출의 대상을 찾지 못한 대중은 더럽고 불쾌한 사물을 일부 집단과 결부시킴으로써 혐오의 수사학을 만들어내며 지속적으로 이를 사유한다. 결국 상호간의 증오와 대립은 또 다시 새로운 스트레스와 분노를 낳으며 ‘스트레스-혐오’ 사이의 악순환은 반복되는 것이다.


3) 무지로 인한 맹목적인 내면화
스트레스가 혐오 문화 확산에 대한 직접적인 원인을 제시한다면, ‘무지로 인한 무조건적인 내면화’는 2차적인 혐오 확산의 과정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혐오는 동조와 유대를 기반으로 급속하게 확산된다.


특정 대상을 타자화하는 과정에서 자신과 비슷한 입장을 취하는 이와 결속을 다지고 서로간의 연계성을 공고히 하는 과정이 혐오 문화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상당수의 사회 구성원들은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한 채 혐오를 주도하는 집단에 흡수되고 만다. 이른바 ‘분위기에 휩쓸려’, 혹은 ‘혐오를 주동하는 권력 집단에 참여함으로써 단지 소속감과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고 싶을 때’가 바로 무지로 인한 혐오 사례에 해당한다. 때문에 이는 대부분 청소년을 비롯한 젊은 청년들이 혐오 문화에 가담하는 이유에 해당된다. 왜 여성성과 남성성이 상호간 혐오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지, 혹은 왜 개개인의 정치 성향의 차이가 몇몇 혐오성 발화의 원인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의문을 갖지 않는다. 단지 인터넷을 매개로 한 가상 집단에 소속된다는 것, 그리고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누군가를 비하하고 우롱하는 일에 가담한다는 것이 그들에겐 꽤나 자극적인 재밋거리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들을 바탕으로 혐오의 확산과 증오 선동이 초래하는 사회적 폐해는 다음과 같다.



4. 병리적인 혐오 메커니즘 확산의 문제점


1) 분열과 폭력
현재 한국 사회에서는 이념, 젠더, 소득, 인종 그리고 그 밖에 많은 평가의 잣대들을 기준으로 타 집단을 향한 혐오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이런 혐오 표출을 기반으로 하는 사회 분열과 대립, 갈등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것일지 모른다. 한국 사회는 어느 순간부터 더 빠른 성장과 압도적인 경쟁을 추구하기 보다는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지향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남을 이기는 경쟁 위주의 학습이 아니라 협력과 공존의 교육 방식을 강조하는 최근의 공교육 커리큘럼 변화만을 봐도 그렇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2004년부터 매년 발표되는 ‘SBS 미래한국리포트’ 역시 행복, 소통, 공존 등의 가치를 다루며 ‘함께 추구하기’를 앞으로 한국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혐오로 인한 사회 분열은 결국 우리가 추구하는 궁극적인 협력 가치에 대립되는, 매우 상충적인 결과를 낳게 된다. 보다 더 거시적으로 바라본다면, 복지의 다각화와 사회 양극화 해결의 과제까지 안고 있는 한국 사회에 이 같이 폭력적인 갈등과 분열은 필시 악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렇게 사회 조직은 분열을 거쳐 극심한 폭력성 발휘 단계에 이르게 된다. 집단 속에 존재할 때, 더욱이 인터넷과 같은 가상의 공간에서 익명성이 철저히 보장되는 한, 개인은 주체할 수 없는 폭력성을 발휘하게 된다. 바로 이것이 인터넷 익명 커뮤니티를 통해 혐오성 발언이 확산되는 이유이자, 너무나도 손쉽게 특정 대상을 폄하하고 조롱, 비하할 수 있게 하는 일종의 촉매제가 되는 것이다.


2) 보이지 않는 고릴라
‘보이지 않는 고릴라’는 하버드 대학교의 인지 심리학자인 대니얼 사이먼스(Daniel Simons)와 크리스토퍼 차브리스(Christopher Chabris)의 실험을 통해 알려졌으며 현재까지 인간의 인지 오류에 관한 연구들에서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는 개념이다. 쉽게 말해서 인간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을 보며 그 결과 지각-인지 과정에서의 오류로 인해 왜곡된 정보를 진실로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선택적 인지의 문제점은 사회에서 발생하는 모든 갈등의 원천에 대한 해석을 제공한다.
대부분의 상호 갈등은 ‘사건의 발생 → 선택적 인지 및 차별적 정보 수용 → 인지 오류 → 상이한 관점과 입장 채택 → 갈등’이라는 큰 틀 속에서 발생한다. 때문에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은 간단하게도 사건을 바라보는 다른 색의 안경을 낌으로써 다양한 시각과 관점을 내면화하는 것이다. 사실, 세계를 바라보는 각자의 ‘색안경’을 아예 제거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각자의 고유한 가치관과 자아를 통해 형성된 일련의 인지 프로세스(즉, 색안경) 없이 살아가는 것은 가치 판단을 하지 않는 기계와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이렇게 세상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색의 안경을 바꿔 끼는 행위를 통해 갈등과 해결을 반복하면서 하나의 사회는 대립과 합일을 거치며 성장할 수 있다.


하지만 관용과 이해를 거부하는 혐오의 경우 편협한 시각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자신이 유일하게 받아들이고 싶은 정보에 대해서만 내면화한다. 즉, 눈으로는 보았지만 사실은 본 게 아닌 ‘보이지 않는 고릴라’ 실험처럼 되어 버리는 것이다. 따라서 혐오로 가득 찬 사회는 대상을 바라보는 다각적인 시선들을 일찍이 제거해버리고 자기 자신이 믿는 것 이외의 것들은 모두 그릇된 것이라며 확신해버리는, 왜곡된, 그리고 배타적인 공간이 될 수밖에 없다. 결국 소통과 이해가 불가능한 배타적 사회는 절대 발전할 수 없다.



5. 혐오 문화로 물든 우리 사회의 패러다임을 전환하기 위해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혐오 패러다임을 해결하기 위해 대표적으로 ‘정치’와 ‘젠더’라는 키워드를 선정했고 두 가지 분야에서의 구체적인 해결 방안을 제시하려고 한다. 더 나아가 오늘날 혐오 문화 형성의 가장 중요한 매체이자 수단이 되는 인터넷에서의 해결방안까지 도출해 보았다.


1) 정치: 고등학교 정치 교육 의무화
정치적 성향과 소신을 기반으로 한 대립과 갈등은 한국사회가 근대적 민주화를 거치면서 꾸준히 심화되어 왔다고 보여 진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치 참여’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국민들의 지대한 정치적 관심과 시민의식을 기반으로 하며 이는 국가 시스템이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더 나아가 장기적으로 발전하기 위한 필수조건이 된다. 대한민국은 이미 80년대에 격동적인 정치적 변혁을 겪었으며 현대 민주주의를 확립하는 과정에서 정치 참여의 문제들에 직면하기도 했다. 그렇게 개개인이 자신의 정치적 목소리를 내는 과정에서 극단적인 이념의 갈등과 합리적 논의의 부재라는 폐해가 발생하기도 했다. 더욱이 남북한의 분단 상황은 극단적 이데올로기의 형성이라는 과정에 일조했고, 결과적으로 이데올로기 스펙트럼의 양 끝이 비대하게 커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쩌면 상대 이념을 향한 혐오의 메커니즘은 마땅히 생길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으로 제안하는 것은 바로 정규 공교육 과정에서의 정치 교육 의무화다.


유구한 시민역량 육성의 역사를 지니는 독일은 1976년 ‘보이텔스 바흐 협약(Beuttellsbach Konsens)’을 체결함으로써 정치교육의 최소조건을 확정했다. 이데올로기 갈등을 최소화하고자 했던 독일의 ‘사회적 대타협’은 세 가지 원칙을 바탕으로 한다. 첫 번째는 ‘강제성 금지’원칙으로 어떤 방식으로도 정치 견해를 배우는 자에게 강압적으로 주입시킬 수 없다는 내용이다. 학습자의 능동적이고 독립적인 사고, 주체적인 정치 견해 확립을 보장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두 번째는 ‘논쟁성 유지’원칙이다. 일방적인 주입식 강압의 폐단을 제거하기 위해 서로 다른 견해 사이에 충분한 논의와 토론을 장려하는 것이다. 동시에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는 정치적으로 상이한 견해가 발생한 배경과 이론에 대해 중립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세 번째는 ‘정치적 행위 능력 강화’원칙이다. 이는 자신과 사회의 이해관계에 따라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즉 학생은 사회 속에서 구성되는 자신의 삶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이해관계, 그리고 정치적 행위와 가치관을 모두 통찰해야 하는 것이다.


이 세 가지 원칙을 바탕으로 하는 정치/시민 교육은 정치를 향한 시민 참여도를 높이며 신뢰와 관용, 협력과 연대라는 가치를 강화한다. 그 밖에도 프랑스는 1985년부터 초/중학교에서 시민교육 교과목을 설치했으며 영국도 마찬가지로 2002년부터 중학교 과정에서 시민교육을 필수교과로 지정했다. 현재 우리나라는 고등학교 커리큘럼 상, 시민교육과 정치 참여 카테고리를 ‘사회’라는 과목에서 분리시켜 필수교과목으로 지정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보이텔스 바흐 협약의 원칙을 참고하여 학생들이 주체적으로 자신과 사회의 관계성에 대해 탐구하고 바로 그 이해관계에 따라 타당한 정치적 가치관을 형성할 수 있도록, 그리고 그것이 민주적인 절차 안에서 다른 학생들과 충분한 토의를 거칠 수 있도록 교과목 시간을 할당해야 한다. 더구나 고등학교에서 문/이과 구분의 필요성이 사라지는 이 시점에서 ‘정치 교육’은 계열에 상관없이 모든 청소년을 위한 ‘올바른 시민역량 육성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자리매김해야 하는 것이다. 시민교육을 포함하는 고등학교 정치 참여 교육은 사회와 정치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균형 잡힌 시각을 제공함으로써 이데올로기에 대한 다각적인 사고력을 증진시킬 것이고 이념적 혐오와 증오 문제를 점차적으로 해결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2) 젠더: 초/중등 성교육 커리큘럼 개편
소위 ‘여혐’ 혹은 ‘남혐’ 같은 용어는 오늘날의 혐오라는 키워드를 설명하기에 충분할 만큼, 과할정도로 남용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성소수자를 향한 혐오는 이미 오래전부터 진행되어 왔고 성별을 향한 거센 혐오는 유독 최근 들어 심각해지고 있다. 나는 성과 관련된 혐오주의 문제의 경우, 성에 대한 가치관이 형성되고 전반적인 성 관념이 확립되는 연령인 초등학교 고학년~중학교 시기에서 해결될 수 있다고 본다. 일반적으로 실시되는 보편적인 성교육 커리큘럼이 단지 아이들의 2차 성징과 같은 신체적 변화에만 초점을 둘 것이 아니라 남성과 여성이 지니는 관념의 차이, 동성애를 바라보는 시각, 그 밖에 사회적으로 이슈화되는 성 문제들을 다룸으로써 교육이 사회문제와 유리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소수자 관련 문제는 사회적으로 굉장히 예민한 문제로 취급된다. ‘인권’이라는 범주의 담론에서 상당히 위태로운 외줄타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예컨대 일반 대중들이 성소수자들에 대해 강력한 혐오의 표시를 보이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퀴어 문화 축제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동성애를 외치는 그들이 해당 축제에서 입는 옷은 대중에게 상당한 거부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객관적으로 나는 이 얘기를 하고 싶다. 대부분의 동성애자들은 다수의 이성애자와 동일한 수준의 사회적 존중과 평등, 그리고 공존을 요구하는 반면 동성애 운동에서 만큼은 유독 ‘우리’라는 배타적 조직력과 성 정체성을 강조한다. 동시에 소수자적 속성과 섹슈얼리티의 차이를 강하게 부각시키는데 이는 결국 동성애라는 성 정체성의 경계를 본인들이 스스로 강화하고 재생산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성소수자 집단과 이에 반대하는 다수 집단은 결코 ‘한 쪽으로 치우칠 것 없이’ 양쪽 모두 동일한 무게의 책임과 바람직한 행동 규범이 요구된다. 일련의 성교육 시스템은 이 같이 중립적이고 다각적인 시각을 제시하길 바라는 입장이다. 더 나아가, 유독 ‘남자’와 ‘여자’에 대한 성 고정관념이 강하게 형성되고, ‘남자다운 것은 어떤 것이다’ 혹은 ‘여자다운 것은 어떤 것이다’라는 암묵적인 담론이 확산되는 것도 십대 초중반 시기다. 이와 함께 성소수자 집단을 향한 입장을 개인적으로 어떻게 내면화할 것인지 정해지지 않은 시기이기도 하다.


그에 비해 오늘날의 성교육은 성의 본질과 굉장히 괴리된 지점이 많아 보인다. 성(gender)에 대한 본질적이고 균형 잡힌 사고가 이루어져야 성별이 다른 개인들을 이해할 수 있고 자신의 성에 대해 통찰할 수 있으며, 신체적 성(sex)의 차이와 변화에 올바르게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쉽게 말해서 초등학생들에게서 주로 나타나는 ‘파란색은 남자 색, 핑크색은 여자 색’같은 관념을 예로 들어보자. 지금의 성교육은 어린 아이들을 향해 남자와 여자의 생물학적인 성만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교육이 과연 아이들의 성 차별적인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확장된 사고로 유도하는데 실질적인 도움이 될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왜 이 사회는 남자에게 파란색을 부여하고 여자에게 핑크색을 부여하는지, 왜 이러한 이분법적 구분이 결국 사회적으로 무의미한지, 더 나아가 남자가 핑크색, 여자가 파란색을 취할 수 있으며 동시에 제 3의 노란색을 선택하는 이도 존재한다는 열린 사고를 심어주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젠더를 기반으로 하는 혐오는 기존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성적 역할에 대한 반발 심리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공적 생산 영역에서의 남성과 여성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사적 공간에서 가사 노동을 하는 남성, 그리고 공적 공간에서 전문적 생산 활동을 하는 여성은 과거에 비해 확연히 증가했다. 결국 이는 전통적인 성 권력 체계의 ‘prototype'에 위배되는 현상인 셈이다. 다시 말하자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공고히 형성된 남성-여성의 분업 시스템이 최근 현대 사회에서 무너지고 있으며 이것이 한편으로는 성별을 향한 증오, 혐오 심리를 조장하는데 기여했다고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초등학교~중학교 시기는 성에 대한 인식론이 강하게 형성되는 연령대에 해당한다. 더불어 생물학적 성만큼 사회적 성에 대한 교육이 필요함도 언급했다. 젠더를 향한 혐오 발화가 남성과 여성의 다양한 사회적 상호작용, 그리고 기존의 위계적인 성 권력 체계의 붕괴에서 기인한다는 것을 고려할 때 사회적 담론들을 아우르도록 초/중등 성교육을 개편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3) 표현: 혐오 표현 방지를 위한 경고성 팝업 시스템
앞서 언급했다시피 감정 차원의 혐오, 다시 말해 분노와 기피라는 감정은 사실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가장 본질적인 속성에 해당하기 때문에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것이며 이를 억압하는 일은 해서도 안 되며 할 수도 없다.


이 글 전반에 걸쳐 문제시 하고 있는 것은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 사적 차원의 혐오를 타인에게 ‘공적으로’ 표출하며, 개인적 불쾌감을 타인이 공유하고 이에 동조하도록 이끄는 과정이다. 그래서 지금껏 혐오의 표현이 갖는 책임의 무게에 대해 지속적으로 논해온 것이다. 이 같은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사실 지속적인 교육이 가장 바람직하지만 결과적으로 교육이라는 해결책이 미처 닿지 못하는 영역에 있어서는 또 다른 대안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이를 위해, 현재 대부분의 검색 포탈들이 사용하고 있는 ‘자살 방지 시스템’에서 아이디어를 차용해왔다.
네이버, 다음, 야후 등의 검색 엔진 사이트에서 검색창에 ‘자살’ 관련 문구를 입력하면 자살방지 상담전화 핫라인을 비롯해 생명의 소중함을 강조하는 메시지를 볼 수 있다. 이 시스템은 구글에서 처음 고안되었고 2007년 우리나라 보건복지부와 한국자살예방협회에서 추진한 온라인 생명사랑 캠페인의 일환으로 국내 6개 포탈에서 시작되었다. 자살과 관련하여 지정된 35가지의 금칙어에 검색 단어나 문구가 해당되는 경우 자동으로 상담전화와 격려 문구가 보이는 방식이다. 때문에 인터넷상에서 혐오 표현의 발화에 따라 강력한 경고 문구 팝업창이 뜰 수 있다면 하나의 해결책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는 일종의 ‘강화(reinforcement)’ 작용으로서, 격려와 보상이 긍정적 강화인 것에 반해 경고와 자극은 부정적 강화에 해당한다. 불쾌한 감정의 유발과 정서 훼손이라는 측면에서 정신적으로 유해한 혐오 발화의 문제는 부정적 강화 시스템으로 해결하는 것이 옳다. 더 나아가 증오를 선동하는 언어가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제약 없이 허용되는 것은 오히려 타인의 인권과 존엄성을 침해하는 경우다. 실제로 유럽인권재판소와 자유권위원회는 증오를 선동하는 표현들(가령 반유대주의와 반이슬람주의를 표방하는 문구와 용어들)에 대해서 표현의 규제를 선언했고 이와 함께 혐오 감정의 표출을 제한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 아님을 주장했다. 타인을 향한 혐오 발언은 ‘표현의 자유로서 보호할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판결을 고려해볼 때, 인터넷상에서 남용되는 증오와 혐오 발화를 무제한 허용하거나 방관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혐오 발화에 대한 경고성 각인이 요구되는 것이다.


 “언어는 힘이다.” 환경 및 인권 현장운동가인 리베카 솔닛의 말처럼 사회 권력 체계에 의해 암묵적으로 통용되는 일련의 혐오성 언어는 가공할 힘을 가지며 동시에 개개인의 자아와 사회적 도덕성을 파괴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다.
학술자료 <온라인상의 여성 혐오 표현>에서는 온라인상에서 통용되는 여성 혐오 용어에 대해 심층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 밖에도 인터넷 공간에서는 여성 혐오를 다시금 혐오하는 표현(이는 남성 혐오라고 불리기도 한다.), 지역주의를 비꼬는 혐오 표현, 정치 성향을 조롱하고 특정인을 극심하게 모욕하는 표현들로 가득하다. 따라서 이 단어들을 선별하여 금칙어로 지정하고 검색 엔진 및 온라인 게시물 댓글 기입란에 해당 단어가 등록될 경우 혐오성 발언의 폐해를 인식시키는 경고 문구를 팝업창으로 띄우는 것이다. 물론 단어 자체의 기입을 제한하거나 온라인 활동에 제약을 가하는 일은 결코 있을 수 없으며 팝업창 역시 자체적으로 닫기가 가능하다. 하지만 이 같은 사소한 경고성 각인은 분명 온라인 발화 패러다임에 변화를 가져오리라 생각한다.



6. 에세이를 마치면서
한번은 폴란드를 여행한 적이 있다. 물론 많은 것들을 보았지만 슬로바키아와 인접한 남부의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가 남긴 인상은 너무나 강렬했다. 붉은색 벽돌로 지어진 (이제는 전시관으로 쓰이는)가스실과 스산한 교수대를 보면서 수많은 유대인들이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목숨을 잃었을, 바로 그 시대의 모습을 상상했다. 순혈주의와 민족주의를 외치던 당시 독일의 나치 정권은 순수 독일 혈통이 아닌 유대인 집단을 철저하게 분리시켰다. 소위 ‘정상 집단’에 속하지 못했던 유대인, 동성애자, 장애인은 대량 학살의 핵심 대상이었다. 오늘날의 한국 사회는 이런 물리적인 홀로코스트가 아니라 ‘소통의 홀로코스트’에 직면해 있다. 가치관이 다른 누군가를 정상 집단에서 철저히 배제시키고 비정상적 존재로 규정지어 버리는 이 시대의 ‘낙인’은, 유대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가차 없이 목숨을 앗아갔던 홀로코스트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공동체 내에서의 낙인과 매장, 이를 통해 도달하는 지독한 혐오의 메커니즘은 우리 사회를 더욱 불행하고 암담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한국 사회는 최근 수없이 많은 혐오의 문제들을 겪어왔다. 개인의 혐오 감정을 부정적인 루트를 통해 표출하는 과정에는, 개개인의 잠재된 분노와 스트레스가 원인으로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사실 복잡하게 얽힌 사회 공동체에서 모든 구성원들이 스트레스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완전히 불가능하다. 결국 우리 손에서 이 사회의 스트레스를 완벽히 차단할 수 있는 방법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것이 그릇된 방법으로 배출됨으로써 혐오 표현을 지속적으로 양산하고 제 2의, 제 3의 피해자들을 만들어내지 않도록 하기 위한 방법은 충분히 생각해 볼 수 있다. 바로 그러한 측면에서 사회적 스트레스가 혐오라는 수단으로 ‘venting out’되지 않도록 ‘교육’과 ‘강화’라는 해결책을 도출해 보았다. 그리고 어쩌면 한국 사회의 잠재적 분노와 스트레스의 원천 자체를 서서히 해결해 나가는 방법이 가장 중요할지 모른다. 다만 현재 우리가 직면한 혐오라는 키워드는 다시금 사회적 분노와 스트레스를 2차적으로 재생산하기에 이르렀고 결국 우리는 혐오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한국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 원인에 도달할 수 없는 상황에 있는 것이다. 그만큼 혐오 문제는 현재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갈등을 형성하는 핵심적 패러다임이며 반드시 이를 해결해야만 더 나은, 더 행복한 한국 사회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이해와 존중, 관용과 책임은 우리가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시민의식이자 사회적 가치에 해당한다. 이를 위해 우리 모두는 혐오의 커뮤니케이션을 개선해야 하고 바람직한 소통의 패러다임을 재정의해야 할 것이다.



* 참고자료
1. 김수아, “온라인상의 여성 혐오 표현”, 한국여성연구소, 페미니즘 연구 제15권 제2호, 2015.10, 279-317(39pages)
2. 손희정, “혐오의 시대-2015년, 혐오는 어떻게 문화적 정동이 되었는가”, 도서출판여이연, 여/성이론 통권 제 32호, 2015.5, 12-42(31pages)
3. 이주영, “혐오표현에 대한 국제인권법적 고찰-증오선동을 중심으로”, 대한국제법학회, 국제법학회논총 60(3), 2015.9, 195-227(33pages)
4. 정인경, “타자화를 넘어, 서로 다른 두 주체의 소통을 전망하다: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 숙명여자대학교 아시아여성연구소, 아시아여성연구 2015년 제54권 2호, 2015.11, 219-227(9pages)
5. 리베카 솔닛,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김명남 옮김, 창비(2015), p189
6. “선거운동이 남긴 성소수자 혐오”, 경향신문, 2016년 4월 25일자
7. “한국판 ‘보이텔스바흐 협약’을”, 한국일보, 2009년 3월 30일자
8. 제 12차 미래한국리포트 <한국사회 재설계 공공성 그리고 착한성장사회> 보고서5. 공공성과 시민성 회복을 위한 제언(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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