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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에세이, 미래전략연구를 통한 다양한 연구결과물

연구결과물

연구도서
[2016 청년 에세이 우수상] '신뢰사회, 信나서 新난 대한민국'
  • 저자
  • 이경재, 함나얀, 방준식(숭실대학교 법학과)
  • 발행일
  • 2016.07.20
요 약

본 에세이를는 우리사회에서 신뢰가 부족한 그 원인과 신뢰를 다시 두텁게 할 방법에 대해 논하고 있다.

우리는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서로 의지하며 신뢰할 때 불안으로부터 벋어나 안정을 느낀다. 따라서 행복한 한국사회를 위해서는 사회구성원 간의 신뢰수준이 개선되어야 한다.
신뢰는 개인들이 서로 유대감을 가지고 결속력 있게 하며 이를 통해 불안감에서 벗어나 안정될 수 있게 한다. 따라서 사람들에게는 예측 가능한 사회가 필요하다. 즉 사회적 자본, 그 중 신뢰의 수준이 개선되어야만 사람들은 안정된 사회에서 살 수가 있다. 신뢰는 사람들을 불안으로부터 벗어나 만족스러운 삶을 살 수 있게 하며 이러한 구성원들로 이루어진 사회는 행복한 사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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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차

0. 들어가며 


1. 신뢰의 정체(正體)와 의미, 그 기능 

  1.1 신뢰의 정체(正體)  
     1.1.1 신뢰의 유형 
     1.1.2 신뢰의 정의 
     1.1.3 신뢰와 예측가능성 
     1.1.4 예측가능성과 법적안정성

  1.2 신뢰의 기능 
  1.3 불신의 시작 


2. 불신사회의 풍경-사법부에 대한 불신을 중심으로


3. 불신사회의 종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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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용
[2016 청년 에세이 우수상] '신뢰사회, 信나서 新난 대한민국'
이경재, 함나얀, 방준식(숭실대학교 법학과)

들어가며
우리는 불안의 시대에 살고 있다. 최근 일어난 ‘묻지마’ 범죄로 인한 사회불안, 청년들이 자신의 진로와 꿈을 이룰 수 있는지, 혹은 적성에 맞건 그렇지 않건 일자리는 얻을 수 있는지 알 수 없는 불안, 직장인들이 비정규직에서 벗어나 정규직 일자리를 가질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고용불안. 적어도 안심이라도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우리는 불안 속에서 방황하면서 내면까지 점점 황폐화해진다. 높아지는 자살률과 늘어나는 생계형 범죄가 이 사실을 증명한다 . 우리가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어렴풋이나마 예측가능한 일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불안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점점 불안의 심연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 의하면 인간이 느끼는 불안이 과도할 경우 불안장애, 공황장애, 우울증 등의 정신질환이 일어난다고 분석했다. 프로이트는 ‘불안이 억압을 낳는다.’고 결론 지었다.  요컨대 바로 불안이 정신건강을 악화시키고 이는 불행을 낳는다는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그 말인즉슨 인간은 타인과 평생을 상호작용하며 살아간다는 뜻이다. 그러한 관계 속에서 서로 의지하며 신뢰할 때 인간은 불안으로부터 벋어나 안정을 느낀다. 이렇게 구축된 신뢰는 사회적 자본으로서 공동체의 행복과 번영의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따라서 행복한 한국사회를 위해서는 사회구성원 간의 신뢰수준이 개선되어야 한다. 우리는 이 에세이를 통해 우리사회에서 신뢰가 부족한 그 원인과 신뢰를 다시 두텁게 할 방법을 살펴보고자 한다.



1. 신뢰의 정체(正體)와 의미, 그 기능
1.1 신뢰의 정체(正體)
1.1.1 신뢰의 유형
백지상태에서부터 신뢰에 대해 살펴보기 위해 ‘신뢰’보다 친숙한 낱말 ‘믿음’으로 치환하고 생각을 시작해보자.
‘믿음’, ‘믿는다.’는 말은 무엇을 뜻할까? 가장 먼저 ‘교회’가 떠오른다. 종교적인 맥락에서의 믿음, 즉 ‘신앙’이다. 신앙의 대상은 일반적으로 신, 절대적인 존재, 또는 선지자, 깨달은 자이다. 대표적으로 크리스트교와 이슬람에서는 하느님/하나님을, 불교에서는 붓다를 신앙의 대상으로 한다. 그렇다면 이들을 ‘믿는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단지 그들이 존재하다는 사실을 믿는 걸까? 그저 절대적인 존재가 있다는 걸 믿기 위해 긴 경전을 쓰고 통일된 제례의식을 거행하고 기도를 하는 것일까? 이러한 종교행위는 신앙의 대상인 절대적 존재에 닿기 위한 행위이고 그렇게 닿음으로써 내게 무언가 얻음이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우주의 원리나 기원을 설명하기 위해 종교를 가지건, 개인적인 행운이나 복을 빌기 위해 종교를 가지건 결국 내게 소득(所得), 즉 ‘얻는 바’의 산출을 위해 믿음을 투입하는 것이다. 결국 종교적 맥락에서의 믿음은 믿음의 대상이 나에게 어떤 형태로든 작용을 해줄 것으로 기대하는 행위이다.
또 다른 믿음의 유형으로 정서적인 의지가 있다. 친한 친구, 가족, 연인, 은사 등 우리가 정서적으로 의지하는 타인에게 자신의 고민이나 어려움을 터놓는다. 정서적으로 의지한다는 것은 상대방이 해결책이나 조언, 정서적 안정을 제공해줄 것이라는 기대이다. 이 유형도 이전과 마찬가지로 내가 믿음을 투입해서 소득을 얻는 행위이다.
마지막으로 약속/계약에서의 믿음이 있다. 이전의 유형들보다 실질적이고 관습과 실정법에 의해 구속력을 가진다. 당사자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바를 제공하기 위해 이 관계를 맺은 것이고, 이러한 믿음은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하는 바를 권리와 의무로써 충실히 이행하도록 의무를 부여한다.



1.1.2 신뢰의 정의
이상의 세 유형을 살펴본 결과 하나로 관통하는 것이 있다. 종교적으로 믿건, 정서적으로 의지하건, 구속력 있는 계약을 맺건, 결국은 내가 믿음을 투입하고 상대방으로부터 소득을 기대한다는 구조가 일관되게 드러난다. 따라서 신뢰란 ‘상대방을 믿음으로써 소득이 돌아오기를 기대하는 행위’로 정리할 수 있다.


1.1.3 신뢰와 예측가능성
이쯤에서 신뢰와 관련하여 필자들의 전공인 법학에서 신뢰가 어떻게 인식되고 기능하는지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신뢰와 관련된 가장 명확한 법은 아마 ‘신의성실의 원칙’일 것이다. 대다수의 대륙법계 국가에서는 신의성실의 원칙(이하 “신의칙”)을 보편적인 법의 원칙으로 명시함으로써 그 법원성과 지위가 확고하다.  영미법계 국가에서도- 비록 법전에는 명시되어있지 않지만- 신의칙을 보편적 사회법칙으로 인정하는 판례가 오랫동안 누적되어왔고,  현대에 이르러서는 신의칙을 명시적으로 인정하자는 법학계의 논의가 이루어졌다. 
법학에서 신의칙은 ‘의무를 진 자는 그 의무를 충실히 이행해야 한다.’는 강한 명령이다.
이것이 의무의 이행이라는 엄격한 의미이기 때문에 사용된 표현이나 어조가 강력한데, 이를 제쳐두고 내용만 본다면 우리가 앞서 살펴본 신뢰의 기능과 의미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단지‘권리’는 ‘믿음’으로, ‘의무’는 ‘기대’로 누그러진 강세와 표현으로 치환되었을 뿐 그 기능과 구조는 동일하다.
앞서 살펴본 신뢰의 유형과 신의칙이 사회 전반에 적용되는 일반원칙임을 종합해보면, 신뢰와 그 기대에 따른 소득은 인과관계를 보인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그리고 신뢰와 기대에 따른 소득이 인과성을 가진다는 것은 결국 신뢰에서부터 기대와 소득에 이르기까지의 흐름이며, 이 흐름은 예측 가능하다.

“예측가능성(predictability)”은 본래 철학용어이다. 사건 A와 B가 인과관계에 있다고 했을 때 원인이 되는 사건 A에 의한 결과인 사건 B는 ‘예측가능’하다. 예를 들어 “풍선을 바늘로 찔렀더니 풍선이 터졌다.”라는 사건이 있을 때 이는 “풍선을 바늘로 찔렀다.”는 사건과 “풍선이 터졌다.”는 사건으로 분리할 수 있다. 
별개의 두 사건 사이에 인과관계가 성립하려면, 풍선 안의 기압과 바깥의 기압이 다르고, 기압이 서로 다른 두 계(system)가 이어지면 기압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공기가 이동한다는 사실을 보여야 한다. 이렇게 “어떤 조건을 나타내는 개별 사실에 관한 문장”  과 자연의 일반법칙으로 풍선이 터진 사건을 설명하면 이 설명은 타당한 참인 설명이다. 그리고 설명이 참이기 때문에 이 사건은 인과적인 사건인것이다.  여기서 “풍선을 바늘로 찔렀다.”라는 개별 사실과 “풍선이 터졌다.”라는 결과를 이어주는 것, 그럼으로써 인과관계가 성립한다고 증명하는 것은 바로 기압 차이에 따른 공기에 이동에 관한 자연법칙이다. 즉 보편적으로 성립하고 몇 번이고 반복해도 똑같은 결과가 나오는 법칙이 인과관계를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개별 사건에 대해서 보편적 법칙에 의해 결과가 예측 가능한 것이다.


1.1.4 예측가능성과 법적안정성
인과성과 이에 수반하는 예측가능성이 자연과학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역사와 사회과학에서도 제한적일 수 있지만 똑같이 인과성과 예측가능성이 성립하는 경우가 있다. 더군다나 인간사회에서도 완벽하지는 않지만 자연과학에서와 같은 보편적 법칙이 있다. 그것은 바로 ‘법’이다. 인간사회에서도 어떤 사건이 일어났을 때 법을 적용해서 그 사건이 합법인지 불법인지, 범죄인지 아닌지를 증명해낼 수 있다. 이 때, 사건과 그 사건의 결과로서의 합법 여부는 인과관계에 있다. 예를 들어 폭행사건에 대하여, ‘한 사람이 길을 가고 있었다.’, ‘괴한이 행인에게 몰래 다가갔다’, ‘괴한은 행인의 복부에 발길질을 했다’, ‘행인은 전치 2주의 상해를 입었다’ 와 같은 개별 사건을 파악하고 이와 관련된 법률, 즉 형법을 적용해 그 사건이 범죄이며 처벌대상이라는 결론이 도출된다. 


요컨대 형법이라는 법칙에 의해 괴한이 행인을 폭행한 사건과 괴한이 범죄를 저질렀으며 처벌대상임은 인과에 의해 필연적인 것이다.
법적안정성이란 법이 안정적으로 기능하고 작용하는 것을 말한다.  예측가능성이 유효하기 위해서는 설명에 적용되는 법칙이 보편적이고 일관되어야 하듯, 법적안정성이 유효하기 위해서는 사안에 대한 법적 해석, 즉 판결에 적용되는 법률이 보편적이고 일관되어야 한다.
법률이 보편적이고 일관적이라는 말은 법이 적용되어야 하는 모두에게 쉽고 명확하게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법에 무언가를 해야 하거나 하지 말아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면, 그것을 사람들에게 명확하게 알려야 하며 이를 사람들이 알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사람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도 모른 체 기소되거나 벌금을 무는 등 처벌받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뿐만 아니라, 만약 어떤 권리나 혜택이 누군__ cm가에게 부여된 경우에 그 권리를 주장하고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그러한 권리와 혜택이 부여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한다. 권리와 혜택의 부여가 일정한 기준에 의해, 그 기준에 부합하는 모든 당사자들에게 보편적이고 일관적으로 부여되어야 하고 이에 따라 법률에 의해 권리와 혜택을 누리는 것이 보장되어야 한다. 즉 해당 법률에의 접근이 가능해야 한다.



1.2 신뢰의 기능
앞서 살펴본 바에 따라 인간이 불안하지 않기 위해서는 예측 가능한 사회가 필요하다. 또한 예측 가능한 사회에는 신뢰가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이러한 신뢰가 사람 혹은 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알기위해 사회적 자본이라는 개념을 통해 이해해보자. ‘사회적 자본’의 정의는 단어를 사용하는 상황이나 목적에 따라 달라지는데 보편적으로 “사회 구성원들이 힘을 합쳐 공동 목표를 효율적으로 추구할 수 있게 하는 자본”을 뜻한다. 

따라서 구성원들은 그 공동의 목표에 달성하기 위한 토대가 몇 가지 있는데, ‘제도’, ‘규범’, ‘네트워크’, ‘신뢰’ 등이 그 예이다. 이는 물적 자본 및 인적자본과 더불어 국가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자본이다.
사회적 자본을 강조해온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이를 ‘계약과 같이 공식적인 방식을 통하기 보다는 비공식적으로 개인의 자발적인 의사에 따라 공동목표를 위한 집단행동을 할 수 있게하는 원동력’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사회적 자본의 핵심은 신뢰이며 사회적 자본이 잘 형성되어 있는 나라일수록 국민 간 신뢰가 높고 이를 지탱해주는 법제도가 잘 구축되어 있어 거래비용이 적고 효율성은 높아진다. 이에 따라 생산성은 높아진다.  즉 견고한 사회적 자본인 신뢰는 개인 간의 결속을 강화해 집단행동이 가능하게 한다. 그리고 이것이 국가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사회적 자본은 개인의 삶에도 영향을 끼치는데, 사회적자본지수가 높을수록 인당 GDP와 삶에 대한 만족도는 증가한다.  한국의 경우 사회적 자본의 요소 중에서도 특히 신뢰가 비교적 빈약하다.

 <표> 원본 PDF 파일 참고

*일반화 된 신뢰(generalized trust)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믿을 만 하다.”는 문장에 대한
긍정적 답변의 수를 백분율로 표시한 것이다.
**신뢰 간 차이(trust gap)은 제6차 세계가치관조사(6th wave of the World Value Survey)를 참고해 가족에의 신뢰와 타인에의 신뢰 간 차이를 표시한 것이다.
<표1> 개별 국가 내 일반적 신뢰와 신뢰 간 차이


위의 표를 살펴보면 9개 국가 중 우리나라 일반적 신뢰가 두 번째로 낮다. 또한 신뢰 간 차이는 4번째로 높다.  이를 통해 전반적으로 우리 사회에서 신뢰가 빈약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신뢰의 수준이 높을수록 GDP는 물론 삶에 대한 만족도 역시 증가한다. 하지만 지금은 신뢰가 낮은 수준이며, 따라서 행복한 사회를 이루기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들이 서로를 향한 신뢰를 높이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1.3 불신의 시작
그렇다면 한국인의 신뢰 수준이 떨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앞서 신뢰를 ‘타인에 대한 믿음’과 더불어 ‘그로인해 자신이 얻을 것이라 생각하는 기대이익’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믿음을 바탕으로 기대한 결과나 이익이 결여될 때 신뢰는 무너진다. 
대한민국 사회는 국민의 기대와 예측에 실망을 가져다주어 이에 따라 대한민국 국민들의 신뢰를 잃게 된 것이다. 이러한 실망은 국민이 국가와 기업, 작게는 국민들 서로가 불신하게 되는 지경에 이르게 했다.
우선 대한민국 국민들은 사법부와 입법부에 대한 불신이 크다. 법은 시민사회에서 정당하게 시민의 권리, 신체, 재산을 보호해주는 중요한 수단이다. 하지만 사법부의 동 사안에 대한 판결이 다른 점과 지역 국회의원의 국회에서 지역을 대표하는 것이 아닌 소속 정당의 이익이나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만 목소리를 내 법을 제정하고 자신이 내건 공약들을 이행하지않은 점 등을 통해 국민의 신뢰는 약해지고 있다.
이에 대해 ‘이코노미스트’의 한국특파원으로 있던 다니엘 튜더는 그의 저서 『익숙한 절망, 불편한 희망』에서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를 비판하며 한국의 정치를 ‘유아적 정치’라고 지적했다.

정치인들은 눈에 보이는 유권자의 표를 얻기 위해 유권자를 어린이 대하듯이 감세나 과도한 경제지원 등과 같은 포퓰리즘의 공약을 내건다. 또한 구체적인 공약을 제시하기 보다는 희망, 꿈, 소통, 미래 등의 슬로건을 강조한다. 현실과 동떨어지고 실행가능성 또한 낮은 그들의 공약들은 국민들의 신뢰를 얻기에는 역부족인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이 만드는 법 역시 국민의 불신을 야기하는데 충분하다. 결국 국민을 보호하고 국민의 이익을 증진시켜줘야 할 법이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는 법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이를 만들고 판단하는 주체인 기관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대한민국 소비자들은 국내 기업의 물건들을 해외 온라인 시장을 통해 ‘직구’한다. 직구는 직접 구매의 준말인데, 대행업체가 구매한 것을 사는 것이 아닌 소비자가 스스로 필요한 물건을 사서 유통비용을 줄이는 것이다. 국내 제조사들이 내수시장과 수출시장에 서로 다른 가격정책을 시행하고 있어서, 수요가 더 큰 해외 수출시장에는 내수시장보다 낮은 가격에 상품을 출시한다. 같은 상품이어도 국내 소비자는 더 비싼 값을 내고 구입해야하는 것이다.
게다가 제조사에서부터 소비자에 까지 이르는 유통과정에서도 유통마진이 추가되어 결과적으로 소비자에게 제시되는 상품의 가격은 훨씬 비싸진다. 
이에 대한 저항으로 소비자들은인터넷을 이용해 해외 쇼핑몰에서 직접 상품을 구입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해외직구의 시작이다. 우리나라에서 만든 물건을 다른 나라를 거쳐서 구입하는 것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인가?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우리나라에서 만든 물건을 외국에 보내는 운송비용, 해외시장에서의 유통마진 등을 총합하면 어째서 국내에서 사는 것보다 저렴할 수 있는지 납득하기가 어렵다. 자유 시장경제라면 기업은 소비자에게 최대한 원가절감, 비용절감을 해서 가격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다. 결국 동일한 상품이 국내와 해외에서의 가격이 다르다는 것은 자유 시장경제의 원리를 기업 스스로가 어기는 행위이다. 여기서 소비자들은 더 이상 기업을 신뢰할 수가 없다.



2. 불신사회의 풍경-사법부에 대한 불신을 중심으로
사람들은 판사를 더 이상 믿지 않는다. 판사가 내리는 판결과 형량이 비합리적이라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성범죄나 뇌물수수 등의 부패범죄, 재벌총수나 고위 임원이 아랫사람 혹은 비교적 지위가 낫은 사람들에게 폭력을 휘두르거나 폭언을 저지른 사건. 이러한 사건들은 발생 자체만으로도 대다수의 시민들이 끓는 분노를 느낀다.

그런데 그 끓는 분노에 기름을 들이붓는 경우가 있다. 법원이 시민들을 분노케 한 이들에게 아예 범죄사실 자체가 없다거나, 사건의 무거움에 비해 터무니없는 형이 선고되는 경우다.
예시로 금융회사의 기초자산 대량 매도 행위가 시세조종 행위 즉, 사기적 부정거래 행위 여부에 관한 두 사건에 대하여 대법원이 다른 잣대로 판결한 사례가 있다.  투자자가 주가연계증권(ELS) 수익금을 지급 받기 전에 금융회사의 대량 주식 매도로 손해를 본 사건에대하여, 하나는 ‘시세조종’  이고 다른 하나는 ‘시세조종‘이 아니다 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러한 법원의 상충된 결과에 따라 일반 투자자들에게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지적이 존재한다.
또한 지적장애를 가진 13세 여아를 성 매수 한 남성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사건에 대해서 한 곳에서는 청구 기각을, 다른 재판부에서는 원고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후자의 경우성 매수를 한 다수의 남성 중 6명이 기소됐지만 실제 징역형을 받은 건 1명뿐이고 나머지는 집행유예 혹은 벌금형을 선고 받았다.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대하여 법원은 성매매를 한 여아가 ’자발적 행위자에 속하며 정신적 장애로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상태로 인정될 수 없다‘며 청구를 기각하였다. 반면에 같은 법원에서 이뤄진 같은 사안에 행해진 다른 소송에서는 반대의 결과가 나왔는데, 법원은 원고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법원은 해당 여아가 ’만 13세 이하의 청소년일 뿐만 아니라 그 지능지수 등에 비추어 성적자기 결정권을 행사할 능력이 부족하다고 판단‘된다고 하였다. 이러한 상충된 결과가 나오면 사람들이 알고리즘을 통해 특정 사건에 대해 기대하고 예측하던 결과가 무너지게 되고 알고리즘 자체에 대한 불신이 생기며 그러한 행위가 사회에 적용되면 불안을 가중시키고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
물론 무죄판결 또는 낮은 형량의 이유가 사실관계의 증거가 불충분하기 때문이라면 그 판결은 합당하다. 사실관계가 드러나지 않았는데 그저 "이 놈이 나쁜 놈이다!"라는 격정에 휘말려 판결을 내린다면 이야말로 법의 예측가능성을 해치는 일이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피고인이 깊이 반성하고 있기에" 등의 말로 나타나는 판사의 정성 판단이다. 법은 그것을 집행하는 이에게 해석에 대한 재량을 일정부분 허용한다. "일정부분"의 재량임을 잊고 '재량'만 되새기면 앞서 말했듯 순간의 격정에 휘말려 법의 예측가능성을 해치는 일이 일어날 것이다. 
법의 집행에서 재량이 일정부분 허용된다는 것은 사회구성원이 일반적으로 의지하는 '일반의지(volonté générale)'  안에서 가능하다는 뜻이다.
법이 시민에게 적용되는 사법의 과정에서 시민의 일반의지가 적용될 수 있을까? 원칙적으로는 시민이 입법부를 구성하고 입법부에서 법의 제정하기 때문에 법이 만들어질 때에 일반 의지가 깃든다. 그런데 그 법 자체가 법관에게 재량을 부여하기 때문에 일반의지가 왜곡되 거나 배제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그렇다면 사법 과정에도 일반의지가 적용되면 될 텐데 지금의 제도로서는 일반의지가 사법 과정에 참여할 자리가 막혀있다. 
시민은 그저 법정에 앉아 구경만 할 수 있다. 판결은 철저히 판사가 단독으로 행한다. 결국 '판사가 같은 시민으로서 일반의지를 공유한다.'는 믿음과 기대 말고는 시민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다행히 지구 저편 다른 나라에서는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한 역사가 있다. 우리는 그들이 한 일을 참고해서 우리 실정에 맞게 적용하는 방법을 논하려 한다.
영연방과 미국의 사법제도를 '영미법계'로 통칭한다. 영미법계의 특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 '선례구속의 원칙(stare decisis)'과 '배심원제(jury trial)'를 대표로 들 수 있다.

선례구속성의 원칙이란 같거나 비슷한 사건에 대해 관련된 판례가 이미 존재한다면, 그 판례가 법원(法源)으로서 구속력을 갖는다는 원칙이다. 선행(先行)하는 판례가 이후의 판결을 구속한다는 것은 법원이 스스로의 결정, 즉 판결에 지속적인 책임을 진다는 것이다. 
지금 심리를 진행하고 있는 사안에 대해, 이전에 유사하거나 같은 사안에 대한 판결이 존재할 경우 그 선행판례(先行判例)와 상충되는 판결을 한다면 법원 스스로가 예측가능성을 와해시키는 일이다.
배심원제는 시민이 판결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이다. 이는 시민이 법관의 독단을 막고 견제하는 수단이기도 하며 법의 집행과 적용이 일반의지의 영역 안에서 이루어지는지를 감독하고 시행하는 제도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 선례구속의 원칙이 명시적으로 법제화되지는 않았지만 선례가 후행(後行) 판례에 강한 설득력을 제공한다. 하지만 이것의 법원성은 없기 때문에 구속성 또한 없다.
 영미법계에서는 판례가 그 법원성 덕분에 입법기관을 견제하는 수단이기도 하고 입법기관이 제대로 민의(民意), 즉 일반의지를 대변하지 못한 경우의 우회로로서 작용한다. 반면 우리나라의 선례구속의 원칙 적용 사례는 미비하다. 이미 우리 법학계와 법조계에서도 이 점을 인지하여 개선방안을 연구 중에 있다.
우리나라에서 배심원제는 2008년부터 “국민참여재판”이라는 이름으로 시행하고 있으며, 형사사건 중 합의부 관할의 사건에 적용된다. 문제는 이것이 피고인의 선택사항이라는 점이다. 피고인이 국민참여재판을 원하면 신청할 수 있다. 미국의 경우 ‘모든 형사재판은 배심원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고 헌법에 명시되어있다.  
이 말인즉슨 피고인 자신이 배심원 재판을 피해야 할 합당한 이유를 제시해서 판사가 이를 인정하거나 혹은 판사가 자신이 맡은 사안이 배심원 재판과 맞지 않다고 판단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배심원 재판을 피할 수 없다는 뜻이다. 
우리나라 법원 또한 이와 같이 배심원 재판을 원칙으로 정함으로써 시민의 재판참여와 이를 통한 일반의지의 확인과 구현을 마땅히 허용해야 한다.



3. 불신사회의 종말
신뢰, 이것은 ‘믿음으로써 소득이 돌아오기를 기대하는 행위’이며, 기대는 곧 ‘예측가능성’이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믿는 것에 대한 결과를 예측한다.

이를 통해 타인과 연대하고 그 속에서 신뢰의 성질이 발휘되는데, 신뢰는 개인들이 서로 유대감을 가지고 결속력 있게 하며 이를 통해 불안감에서 벗어나 안정될 수 있게 한다. 따라서 사람들에게는 예측 가능한 사회가 필요하다. 즉 사회적 자본, 그 중 신뢰의 수준이 개선되어야만 사람들은 안정된 사회에서 살 수가 있다. 신뢰는 사람들을 불안으로부터 벗어나 만족스러운 삶을 살 수 있게 하며 이러한 구성원들로 이루어진 사회는 행복한 사회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신뢰가 부족하다. 공약을 못 지키는 국회의원, 국내 상품의 유통구조에 대한 신뢰의 결여 등 여러 형태로 불신이 발생한다. 그 중에서도 특히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중대하다.
사법부는 시민에게 시민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보호할 최후의 보루로서, 가장 견고한 신뢰가 요구된다. 그런데 사법부가 법을 해석하고 집행하는데 일관성 없는 해석과 결과를 내놓는다면 시민에게 법적 안정성을 제공하지 못할 것이다. 이에 시민은 예측할 수 없는 사법부를 신뢰하지 못하게 된다. 법이 일관되고 안정적으로 보호해줄 수 없다면, 그보호의 기능을 상실할 것이다.
불안한 사람들과 불안한 사회는 결코 행복으로 이어질 수 없다. 따라서 시민의 권리를 보장해주는 최후 수단인 사법제도의 개선은 필수적이다. 우선 사법제도의 개선을 위해서는 ‘선례구속의 원칙’의 엄격한 적용과 ‘배심원제’의 적극적인 활용이 필요하다. 
선행하는 판례가 후행의 판례에 가지는 구속력을 강화해 사안의 결과에 대한 시민들의 예측가능성을 보호해야만 한다. 또한 현재 행해지는 배심원제(국민참여재판)의 활용 범위를 넓혀 법관의 독단적인 법 해석을 견제하며, 시민의 일반의지가 보다 더 반영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우리 사회에는 ‘정명(正名)’이 확립되어야 한다. 법이 법답게, 법관이 법관답게, 법원이 법원답게 그 본분과 역할을 충실히 할 때 비로소 신뢰받을 수 있을 것이다.

논어를 보면 이런 일화가 있다. 제(齊)나라의 임금인 경공(景公)이 공자에게 어떻게 이상적인 정치를 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공자의 대답은 간결했다.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다우며, 부모는 부모답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君君臣臣父父子子).”  공자는 왜 이렇게 하나마나한 말을 한 걸까? 공자의 대답이 ‘하나마나 한 말’이라면 그만큼 너무도 당연하다는 것이다. 그렇다.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이미 정해진 일을 다 하지 않기에 불신이 일어나는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은 어떠한가? 길은 정해졌다. 신뢰회복, 그것은 행복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첫 도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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