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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에세이, 미래전략연구를 통한 다양한 연구결과물

연구결과물

연구도서
[2016 청년 에세이 우수상] '표류하는 한국사회, 북극성으로서의 인문학'
  • 저자
  • 이로빈, 손주경 (중앙대학교 역사학과)
  • 발행일
  • 2016.07.20
요 약

이 글은 한국사회가 위험사회로 가는 길목에 있음을 보여주는 4개의 갈등의 모습을 분석하고 갈등을 중재하고 하나의 한국인으로 나아가기 위해 한국의 기억의 처소를 만들어볼 것이다. 민족의 탄생부터 국가의 성립까지 역사 속에서 한국은 유독 부침이 많았고 이에 따른 상처가 많은 나라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곳에서 하나의 민족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이제 그것은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으로 이어지고 있다. 기억의 처소들을 둘러보는 것은 이러한 한국인의 정체성을 강화하고 우리가 가진 상처들을 치유하는 과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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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차

1. 들어가며


2. 한국사회 속 갈등의 모습
  1) 성별갈등 : 한남충과 김치녀
  2) 세대갈등 : 노인문제와 청년문제
  3) 계층갈등 : 수저론
  4) 지역갈등 : 완화 속 신지역주의


3. 한국의 기억의 처소
  1) 아리랑
  2) 세종대왕과 한글
  3) 팔만대장경
  4) 경복궁
  5) 3·1절
  6) 4·19혁명
  7) 금 모으기 운동
  8) 2002년 한일월드컵 응원
  9)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10) 김연아


4. 나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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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용
[2016 청년 에세이 우수상] '표류하는 한국사회, 북극성으로서의 인문학'
이로빈, 손주경 (중앙대학교 역사학과)

1. 들어가며
사람이 벌레가 되는 시대이다. 한국사회는 모든 비난의 대상을 충(蟲)이라고 부르며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고 있다. 한국을 방문했던 뮌헨 대학교의 울리히 벡(Ulrich Beck) 교수는 한국 역시 ‘위험사회’의 징후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위험사회는 고도의 산업화와 근대화가 가져온 결과이다. 근대사회 속에서 개인은 물질적 풍요에도 불구하고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을 느끼게 된다. 울리히 벡은 한국사회에서는 그것이 4가지 갈등의 모습으로 발현되었다고 말했다. 성별갈등, 세대갈등, 계층갈등, 지역갈등이 바로 그것이다. 
남성 vs 여성, 기성세대 vs 젊은세대, 부자 vs 서민 그리고 호남 vs 영남으로 이루어진 갈등구도는 서로 중첩되어 한국인이라는 공동체의식보다는 분열된 정체성을 만들고 있다. 이제 우리는 서로를 내 삶의 경쟁자로 더 나아가 위협이 되는 존재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단적으로 SNS에서 발화되는 혐오발언들은 혐오죄라는 새로운 법안이 필요하다는 논의를 일으킬 정도이다. 보다 앞서 산업화와 근대화의 길을 걸었던 선진국은 혐오발언에 대해 형사처벌을 강화하고 있다. 독일은 형법에 “특정 인구 집단을 모욕하거나 악의적으로 비방해 타인의 인간적 존엄성을 침해하는 행위”에 대해 최대 징역 3년을 구형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영국은 피부색, 인종, 국적, 출신국에 대한 혐오발언을 하면 2년 이하의 징역이 부과된다. 미국과 스웨덴 역시 각각 혐오범방지법 그리고 증오언론금지법으로 갈등의 심각성을 느끼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도 마찬가지로 ‘혐오범죄 가중처벌법’과 ‘혐오죄 신설’ 법안이 19대 국회에서 발의되었으나 안타깝게도 국회 임기만료로 자동폐기될 예정이다. 한국사회의 갈등은 선진국들에 비해 결코 가볍지 않다. ‘표류하고 있다’라는 말이 어울릴만큼 한국은 목적을 잃은채 불확실한 미래에 불안함을 느끼고 있다. 불안함이 말로 표현되는 단계에서부터 시작하여 이제 물리적 폭력의 단계로까지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서 위기는 멀지 않았다. 이제 이 위기 상황 속에서 북극성처럼 한국사회가 나아갈 길을 제시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인문학의 위기 속에서도 대중은 인문학이 방향성을 제시해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실제로 과거에서부터 인문학은 모든 위기의 순간에 북극성으로서 기능했다. 중세의 질서가 깨어지던 순간에 베이컨이 그러했고, 신분제가 동요하던 순간에는 시에예스가 그러했다. 프랑스 사학자 피에르 노라(Pierre Nora)는 프랑스의 위기를 말하며 그 대안으로 기억의 처소(Lieu de memoire)를 만들어야한다고 말한다. 프랑스에 닥친 위기는 다문화, 다인종 사회로의 급격한 전환이다. 피에르 노라는 인종, 종교, 종족 어느 것으로도 하나로 묶을 수 없는 프랑스가 공동체의식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역사를 떠올리고, 과거의 순간들을 환기시키는 기억의 처소들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한국사회의 위기는 프랑스가 겪고있는 위기와 다르지 않다. 우리 역시 공동체의식을 잃어버리고 한국인이 아닌 각 개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 글은 한국사회가 위험사회로 가는 길목에 있음을 보여주는 4개의 갈등의 모습을 분석하고 갈등을 중재하고 하나의 한국인으로 나아가기 위해 한국의 기억의 처소를 만들어볼 것이다. 민족의 탄생부터 국가의 성립까지 역사 속에서 한국은 유독 부침이 많았고 이에 따른 상처가 많은 나라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곳에서 하나의 민족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이제 그것은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으로 이어지고 있다. 기억의 처소들을 둘러보는 것은 이러한 한국인의 정체성을 강화하고 우리가 가진 상처들을 치유하는 과정이 될 것이다.




2. 한국사회 속 갈등의 모습

1) 성별갈등 : 한남충과 김치녀
지난 5월 발생한 강남역 살인사건은 한국사회의 성별갈등이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르렀는지를 보여주었다. ‘평소 여성에게 무시를 당했다’라는 용의자의 발언으로 인해 대다수의 여성들은 이것이 단순히 묻지마 살인이 아닌 여성혐오를 보여주는 사건으로 인식하고 생존의 위기감을 느꼈다. 이에 반해 남성들은 개인의 정신병을 전체 남성으로 일반화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문제는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차가 남성과 여성의 대립구도로 나타나면서 서로를 비방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는 점이다. 
한국사회는 현대로의 이행기에 선진국에 비하여 굉장히 짧은 3세대정도의 기간동안 급속도의 산업화와 발전을 이룩했다. 집약적인 발전은 물질적 풍요를 보다 빠르게 가져왔지만 그에 따라 평행선과 같이 발전해야했던 사고의 성숙의 지체를 가져왔다. 정신의 발전이 물질의 발전을 따라가지 못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경제력을 얻기 시작한 여성들의 권리는 기존의 전통적인 남성중심의 가부장적인 사고와 대립구도를 이루게 되었다. 사회에서 남성과 여성의 권리는 동등한 것이라 합의가 되었지만 이것이 현실로 다가오자 남성들은 위기의식을 느끼게 되었다. 본능적이고 감정적인 영역에서 여전히 남성이 여성보다 우위에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여성들은 자신들의 인격, 권리에 대해서 소리를 내고 사회속의 지위를 인정받기 위해 정면으로 맞서기 시작했다. 이 지점에서 충돌하면서 만들어진 단어들이 “한남충”과 “김치녀”이다. 강남역 살인사건의 공론장은 이런 단어들의 경쟁지였다.


2) 세대갈등 : 노인문제와 청년문제
보통 30년을 기준으로 나누는 세대(generation)는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구분법이다. 미국을 예로들면 그들은 ‘old people’과 ‘young people’을 구분하지만 기준이 명확하지 않으며 generation이라는 표현은 쓰지 않는다. 종종 영미권 국가들의 친구들과 토론을 하다보면 우리가 쓰는 generation이라는 표현을 어색해하는 경우가 있다. 왜 굳이 세대를 나누어야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세대갈등은 본질적으로 살아왔던 환경에 기반한 서로 다른 가치관의 형성에 근원을 두고 있다. 특히 빠른 성장을 이룩했던 한국사회에서 삶의 모습은 세대를 기준으로 다르게 펼쳐졌으며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기성세대의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을 젊은 세대가 다시 또 이해하지 못하며 이념과 가치관의 충돌을 가져왔다. 문제는 서로 이해하려하지 않는 태도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상황에도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소위 “노인문제”로 말해지는 노후 연금의 문제들은 젊은 세대가 자신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충분히 공감하고 하나의 경제문제로 인식할 수 있다. “청년문제”로 늘 꼽히는 실업문제와 교육복지에 대한 논의는 청년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기성세대도 청년이던 시절에 고민하고 겪었던 어려움이다. 그럼에도 경제문제를 굳이 “노인”의 문제와 “청년”의 문제로 나눔으로서 상호간의 이해를 막고 있다.
불통이 가져온 결과는 불신으로 이어졌다. 이제 기성세대는 자신들이 이룩한 근대화의 업적을 무시하고 자신들의 공로마저 인정하지 않는 청년세대를 파렴치한 세대로 이름붙이고 있다. 젋은 세대는 자신들이 부양해야하는 기성세대를 짐과 같이 여기며 삶의 방해물 쯤으로 여기고 있다. 세대차이가 세대갈등이 되어버린 것이다.


3) 계층갈등 : 수저론
근래 한국사회를 휩쓸고 있는 수저론은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로 사람을 나눈다. 흥미로운 점은 각 수저에 해당하는 계층은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의 재산과 능력이 있어야하는지까지 명시되어 있다는 점이다. 포스텍과 박태준 미래전략연구소에서 일반시민과 포스텍 재학생을 대상으로 하여 공동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도 수저론과 궤를 같이하는 결과가 보인다. 일반시민의 26.8% 그리고 포스텍 재학생 30.3%가 소득불균형과 양극화를 행복한 한국사회를 위한 선결과제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경제력은 행복의 기본적인 수준을 만족시키는 중요한 요소이다. 그럼에도 신분을 나누듯이 경제를 기준으로 계층을 나누고, 가장 우선하는 과제로 소득불균형이 꼽히고 있다는 것은 계층갈등이 어느 정도 심각한 수준인지 보여주고 있다.

자본주의 국가는 소득불균형을 피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계층갈등은 자본주의의 탄생과 함께 지속되어온 문제이다. 한국사회에서는 집약적인 발전으로 인해 그 양상이 더 극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빠른 성장과 이후에 뒤따라 온 몇차례의 경제적 위기 속에서 중산층이 몰락하면서 계층간의 사다리가 사라졌다. 이제 계층간의 이동이 어려워진 수준을 넘어서서 불가능하다는 영역까지 넘어간 것이다. 여기에 한국 특유의 교육열이 더해져 교육에서의 격차까지 만들어지면서 ‘계층간의 단절’을 야기했다. 
경제적 단절은 소위 진보정당을 서민정당으로 보수정당을 부자정당으로 지칭하며 정치적 단절로 이어졌다. 우리는 하나의 정책을 두고도 서민과 부자 중 어느 쪽의 이익에 가까운지를 논하고 있으며 사회적 안정장치보다는 다른 계층의 희생을 통해서 나의 안전을 도모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4) 지역갈등 : 완화 속 신지역주의
산업화 시기에 성장의 불균형 속에서 태동했던 지역갈등은 점차 완화가 되고 있는 추세이다. 이번 20대 총선에서는 흔히 호남정당으로 불리는 더불어민주당이 부산과 강남에서 의석을 확보하기도 하는 등의 이변이 연출되었다. 호남 지역에서도 새누리당이 당선되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는 국민의당의 약진과 더불어 지역갈등의 소멸을 예고하는 것으로 보였다. 이러한 변화에 대하여 지역갈등이 태동하던 시기에서 시간이 지난 청년들의 영향이 컸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이제 더 이상 지역주의가 문제가 아니라 내 삶의 안정이 더 중요해졌고 지역보다는 개인으로 정당을 파난하고 투표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지리산과 소백산을 기준으로 하여 투표의 양상을 구분할 수 있다. 지역주의의 소멸이라고 말하기에는 이르다는 것이다. 특히 신지역주의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일간베스트 저장소와 같은 특정 집단에서는 여전히 지역에 대한 적대감을 드러내고 있다. 일간베스트 저장소를 예를 들면 국가와 영남지역 그리고 자신들을 일체화시켜 성공의 사례로 보고 있다. 이들은 과거와 같은 호남에 대한 악감정이 아니라 그들 나름대로의 이성의 영역에서 호남을 비난한다. 소위 무임승차론이라고 불리는 것으로 호남지역이 영남을 중심으로한 발전에 “무임승차”하여 이익을 취하고 있다는 논리이다.

지역갈등은 젊은세대를 중심으로 하여 많이 희석되고 있지만 그 속에서 새로운 방식으로도 싹트고 있다. 이 문제는 해결된 것이 아니라 위기 속에서 갈등 상황이 발생하면 언제고 다시 나타나 한국사회의 공동체의식을 무너뜨릴 것이라는 점에서 여전히 주목해야할 부분이다.



3. 한국의 기억의 처소
피에르 노라가 말하는 기억은 언제나 삶의 영역에 있는 것이다. 역사와 달리 기억은 살아있는 자들이 만들어내는 것이며 변화하고 진화한다. 이 기억은 의식하지 못한 채 왜곡되기도 하며, 활용되거나 조작되기 쉽고, 또 오랫동안 잠자고 있다가 갑자기 깨어나기도 한다. 기억의 처소는 그런 기억들이 모여드는 곳이라는 점에서 장소를 벗어나기도 한다. 정리하면 기억의 처소는 기억이 깃들 수 있는 모든 매체를 말한다. 국기, 국가, 법전, 전투, 인물, 건축물, 축제, 행위와 같이 어떤 기억을 환기시키는 매체라면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피에르 노라의 이론을 한국사회에 적용하여 한국인이라는 공동체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기억의 처소들을 10가지 뽑아보았다.


1) 아리랑
아리랑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민요이며 나아가 통일 한국의 국가로 논의되기도 하는 노래이다. 아리랑의 특징은 지역마다 다르게 나타난다는 점이다. 각 지역에서 음율과 가사가 각기 다르게 발달해왔음에도 ‘아리랑’이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아리랑은 각 지역의 개성을 담고 있으면서 동시에 하나로 묶이는 가치를 담고 있는 것이다. 통상적으로 한민족의 얼과 한을 담았다고 평가받는 아리랑은 국가 행사에서 한민족을 상징하는 노래로, 스포츠 경기의 응원현장에서 응원가로 또는 올림픽에서 남북단일팀의 국가로 등장했다. 
아리랑이 불러일으키는 기억은 얼과 한을 가진 한민족이라는 공동체다. 이 공동체에는 북한과 해외동포들도 속하기에 더 없이 소중한 기억의 처소라고 할 수 있다.

 정부 역시 이 점을 인식하고 2011년 아리랑을 국가 문화재로 지정했고 이듬해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2) 세종대왕과 한글
한국어를 표기하는 한글의 창제는 우리의 말을 우리의 글자로 표현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기억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한글을 전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글자로 믿어왔고 표음문자로서의 장점을 어느 나라의 글자보다 가장 발전된 형태로 갖고 있다고 믿었다. 실제로 뉴질랜드 언어문학연구소의 스티븐 로저 피셔(Steven Roger Fischer)는 그의 저서 『언어의 역사』에서 한글의 문자 체계는 세계 유일의 것이며 다른 모든 문자로부터 독립적이고, 완전하다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한글의 우수성에 대한 한국인의 믿음과 논란은 한글에 담긴 한국인의 자랑스러운 기억에 근거한다. 어린 시절 읽는 첫 번째 위인전은 의례껏 세종대왕이었고 지금도 광화문 광장 한복판에는 거대한 세종대왕의 동상이 조성되어있다. 한글을 읽고 쓴다는 행위는 자랑스러운 우리의 기억을 환기시킴과 동시에 같은 언어를 쓰는 모든 이들에게 동질감에서 비롯된 호감의 기억을 심는다.


3) 팔만대장경
몽고군의 침략에 절대자의 힘을 통해 이겨내고자 만들어졌던 팔만대장경은 재조대장경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팔만대장경에는 두 가지의 기억이 함께하고 있다. 첫 번째는 외부의 침략에 항쟁으로 맞섰던 기억이다. 반도라는 지리적 위치로 인하여 대륙과 섬이 번갈아 팽창할 때마다 외침을 당했던 것이 한반도였다. 몽고군의 침입 역시 군사력이나 국력의 차이로 인해 무너질 수 밖에 없는 것이었지만 팔만대장경을 통해 극복하고 나아가 삼별초와 같이 실제로 항쟁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민족의 혼을 보여주었다. 
두 번째는 민족의 정신적 통일을 이룩했던 기억이다. 후삼국을 통일했을 때의 고려는 서로 말도 통하지 않고, 문화도 다른 삼국을 억지로 봉합해놓은 것에 그치지 않았다. 고려의 문화통치는 하나의 국가와 민족, 공동체라는 의식이 없던 백성들을 하나의 민족이라는 정체성을 갖게 만들기 위해서 이루어졌다. 팔만대장경은 외부의 침입에 불교라는 종교를 이용하여 하나의 민족이라는 정체성을 만들 수 있었던 통일의 기억이다.


4) 경복궁
경복궁은 조선의 개국부터 현재까지의 모든 기억들의 처소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광화문 일원은 육조거리부터 지금의 시민을 위한 광장까지 수많은 기억들을 환기시킨다. 조선시대의 경복궁은 임금이 사는 곳으로 백성들이 우러러보는 곳이었다. 화려했던 경복궁이 무너지던 일제강점기에 한국인들은 궁이 해체되고 기녀가 춤을 추는 오락의 공간으로 변화하는 것을 목격한다. 박람회를 개최함으로써 근대화의 상징이 되어버린 공간을 통해 서울에 살던 한국인들은 시대의 변화를 느꼈다. 광복 이후의 경복궁은 제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의 연속이며 동시에 한국을 대표하는 공간으로 다시 자리매김하고 있다. 경복궁의 역사 속에서 한국인의 역사를 볼 수 있는 것이다.
현재 경복궁에서 개최되고 있는 ‘궁중문화축전’과 같은 행사들은 우리의 전통을 교육하고 보여주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경복궁 안에서는 한복을 차려입고 돌아다니며 옛 모습을 재현한 수문장 교대의식을 보고 어울리면서 한국인으로서의 뿌리를 찾게 되는 것이다. 경복궁이 가져오는 현대의 기억은 과거부터의 연속성이라고 할 수 있다.


5) 3·1절
3·1절은 8·15 광복절보다 한국의 독립에 대한 기억이 선명한 날이다. 광복절이 외부에 의해서 갑자기 찾아왔다면 3·1 운동은 한국인이 독립을 얻고자 했던 열망이 담겨있다. 33인의 지식인에서 출발했던 3·1운동이 거국적인 운동으로 만든 것은 학생들이었다.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학생들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며 처음에는 서울에서 그리고 점차 도시로 나아가 농촌으로 확대된 운동은 훗날에는 세계에까지 영향을 주었다. 
매해 3·1절은 한국이라는 근대국가가 성립되는 과정과 더불어 거국적인 운동을 이끌었던 대중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있다. 더불어 이 운동안에서는 학생, 농민, 지식인과 같은 계급을 불문하고 유관순으로 대표되는 여성들의 참여까지 말 그대로 민족이 모두 하나가 되어 독립을 요구했던 기억이 담겼다. 이 점에서 5대 국경일 중에서 모두 하나되어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기억은 3·1절뿐이다.



6) 4·19혁명
한국이 이룩한 성과는 경제적 발전과 민주화 모두였다. 이차대전이 끝나고 냉전의 구도가 형성되는 와중에 제3세계는 각기 독립을 쟁취하고 발전의 길을 걸어갔다. 이중 수없이 많은 국가들이 독재가 지속되며 민주화의 길이 지금까지도 힘들어보이는 것에 반해 한국에서는 경제적 성과에서도 민주화에서도 빠른 발전을 이룩했다. 4·19혁명은 민주화의 열망이 터져나온 첫 사건으로서 의미가 있다. 지금도 다른 민주화와 관련된 사건들의 평가가 엇갈리는 가운데에서도 4·19혁명만큼은 이견하나 없이 모두 혁명과 같았다고 인정하고 있다. 
4·19혁명은 처음에 대학생과 고등학생들 중심의 학생운동으로서 시작했다. 그러나 곧이어 시민들까지 합세했다. 여기에는 학생들의 시위를 진압하는 정부의 태도에 대한 도덕적 공분이 큰 촉발제가 되었다. 이 시기 한국사회는 민주화라는 단일한 목표와 다른 계층, 다른 직업, 그리고 다른 도시의 사람들이 받는 부당함에 대해서 공분할 수 있었다. 이러한 인식은 개인주의로 흘러가서 사회의 문제에 대해서 안일해지는 현대 사회의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고 할 수 있다. 4·19혁명에 담긴 기억은 공분과 민주화의 기억이다.


7) 금 모으기 운동
1988년 IMF 외환 위기 속에서 벌어진 금 모으기 운동은 한국인이 공익을 위해 뭉친 의미있는 기억이다. 외환 위기는 엄청난 실업률과 함께 가정경제를 악화시켰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국가를 위해서 재산인 금을 자발적으로 모았다. 금 모으기 운동은 일제강점기의 국채보상운동과 함께 공동체 의식이 발현된 대표적인 사례이다. 국채보상운동이 결국은 실패로 돌아갔음에도 금 모으기 운동은 성공적이었다는 점까지 고려한다면 더욱 도드라지는 기억의 처소이다. 
당시 한국인들은 장롱 속에 보관하고 있었던 의미가 담긴 금목걸이, 금반지 등을 모아서 기부했다. 단순히 현금을 내는 돈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기억들이 모였다는 점 역시 주목해야할 부분이다. 전국적으로 6백51만 여명이 참여했으며 약 227톤의 금이 모였다. 이는 평균을 내면 4가구당 1가구가 참여한 것이다. 그만큼 범국민적인 운동이었던 것이다. 현대사회는 사회의 문제에 참여하기 보다는 개인의 이익에 대해 집중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기억의 처소는 공동체 의식을 가졌던 기억을 환기시킨다.


8) 2002년 한일월드컵 응원
2002년 한일월드컵은 달라진 한국의 위상을 온국민이 직접 체감할 수 있는 기억이었다. 88 올림픽이 있었지만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는 국민 스프츠인 축구였다는 점 그리고 4강 진출이라는 역사적인 성과로 인하여 더욱 의미가 더해졌다. 그중에서도 더 의미가 있는 것은 응원문화였다. 지금까지도 공연문화에서의 열렬한 환호가 한국인의 특성으로 꼽힐 만큼 대규모 시민이 모여 다 같이 노래를 부르며 즐긴 행위는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한일월드컵 응원가는 지금도 한국인들을 하나로 묶는 주요 응원가가 되었고, 국기와 국가가 국민들의 삶 속에 깊이 침투한 일이기도 했다. 더 나아가서는 한국의 특징적인 문화로 자리잡은 공연문화로 발전함으로써 한국에 들어온 이방인들이 한국인으로 자리잡게 만드는 문화적인 창구가 되었다. 2002년 한일월드컵 응원이 불러일으키는 것은 현대사회 속에서 하나가 되었던 기억과 축제의 기억 나아가 국가에 대한 자부심이라고 할 수 있다.


9)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로 시작하느나 서시는 한국인에게 무엇보다 친숙한 시라고 할 수 있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윤동주의 유교시집이자 출간된 유일한 시집이기도 하다. 윤동주의 시는 한국인에게 특별한 의식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는 항일무장투쟁과 같이 적극적인 행동을 하지 않았음에도 한국인에게 저항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았다. 윤동주가 보여준 저항은 주어진 상황에서 사유하고 자신의 행동반경에서 행위하고 자신이 하지 못한 일에 대해서 반성하는 모습이다. 
현대는 더 이상 무장투쟁이나 역사의식과 같은 무거운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다. 오히려 윤동주가 말하는 부끄럼과 같은 가치야말로 개인주의가 이기주의로 변질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윤동주가 도리여 현대에서 주목받는 이유이다. 최근 한국인이 사랑하는 감독으로 꼽히는 이준익 감동이 ‘동주’를 제작했을 때도 시집의 판매부수와 영화의 관객수는 한국인들이 윤동주를 사랑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굴곡이 많았던 지난 역사와 나아가 현대의 삶에서도 의미를 주는 기억의 처소라고 할 수 있다.



10) 김연아
김연아는 한국인들이 한국이라는 국가와 동일시하고 있는 인물이다. 김연아가 보여준 삶의 모습이 한국의 역사 그리고 나아가길 바라는 모습과 닮았기 때문이다. 김연아는 인프라가 부족한 종목에서 열악한 조건을 이겨내고 성과를 이룩했다. 세계적인 피겨스케이터로 성장하는 과정에서도 부상과 편파판정 등 여러 차례의 위기를 이겨내야 했다. 그녀가 2010년 벤쿠버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을 때 한국인은 같이 응원하고 같이 울었다. 
김연아는 은퇴 이후 한국 피겨계를 이끄는 인물로 자리잡았다. 한국인들은 그녀가 보여주는 약자에 대한 배려와 더불어 개인의 위상과 국가의 위상을 높여주었다는 점에서 더욱 애정을 갖고 바라보고 있다. 한국인들이 바라보는 그녀는 한국사회의 성과이자 그 자체이며 미래에 대한 가능성이기까지 하다는 점에서 중요한 기억의 처소이다.


4. 나가며
기억의 처소를 만드는 일은 의미없는 일처럼 보이기도 한다. 단순히 기억의 처소들을 만든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가 의문이 드는 것이다. 이 배경에는 인문학이 지금껏 대중과 유리되어 홀로 학문의 탑에 있었기에 쌓인 불신도 한 몫했을 것이다. 그러나 기억의 처소는 때로는 국가간의 경직된 외교 관계를 풀어주기도 한다. 
프랑스의 기억의 처소를 만드는 일에 감명을 받아 독일과 폴란드는 합동 기억의 처소들을 만들었다. 이전까지 폴란드와 독일은 서로를 피해자와 가해자로 몰아세우며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그러나 학자들에 의해서 추진된 공동의 기억의 처소에서 그들은 서로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 독일은 오더나이세 강 건너편에서 나치 시기의 독일 영토였던 지역들을 폴란드의 영토로 인정하고 나아가 그 영토에서 되돌아오던 사람들을 강간하고 유린했던 폴란드인들에 대한 기억을 잊기로 하였다. 독일인들이 입은 피해는 독일의 나치에 대한 변명이 될 수 있었지만 그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치의 범죄가 있었기에 그리고 폴란드로 침공하던 그 날이 있었기에 발생한 일이라는 반성의 도구로 사용한 것이다. 폴란드는 이에 대하여 나치에 협조했던 푸른 제복을 입은 폴란드인들을 떠올린다. 폴란드인들은 나치에 협력해서 유대인을을 게토로 몰아넣고 감시했다.


그들 스스로 소련과 나치 독일제국과의 협약으로 희생당한 희생자로서의 기억만 강조한 것이 아니라 그들 또한 가해자였음을 자각한 것이다.
서로가 한걸음 다가간 기억의 처소를 만드는 일은 독일과 폴란드 사이에 국경 분쟁을 종식시키고, 공동 역사교과서를 편찬하는 일까지 이어졌다. 이제 독일과 폴란드의 아름다운 관계는 한일 관계가 나아갈 방향으로 국내 학자들에게 소개되기도 한다. 기억의 처소는 이처럼 사유의 영역에 들어가 태도와 관점 나아가 감정을 바꾼다. 그렇기에 눈에 보이지 않는 기억의 처소들을 만드는 일이 한국사회의 갈등을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한국사회는 지금껏 외부의 침략에 의해 고난의 역사라 볼 수 있는 길을 걸어왔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다시 서로간의 갈등의 골로 인하여 상처가 나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는 서로의 상처를 내는 것이 상대방이 아님에도 상대방을 가해자로 지목하며 또 다시 상처를 만들고 있다. 이제 개인이 아니라 사회로, 공동체로, 한국으로서의 우리를 다시 생각해보아야할 시점이다. 이는 표류하는 한국사회에서 인문학이 북극성이 되어야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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