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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에세이, 미래전략연구를 통한 다양한 연구결과물

연구결과물

연구도서
[2016 청년 에세이 우수상] '편법의 또 다른 이름 인정'
  • 저자
  • 김세희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법학과)
  • 발행일
  • 2016.07.20
요 약

모든 것에 원리 원칙을 강요하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적어도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나의 편법으로 불편을 겪는 사람이 줄어들 것이다. 나쁜 것(나는 편하고 남은 불편한 것일 수 있다)은 금방 전파된다.

내가 어떻게 행동하고 내가 어떻게 변화되어 가는가? 가 우리 사회가 아름답게 발전하고 변화되어가는지의 척도 인 것이다.
원리와 원칙을 준수하고 그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많아지면 우리가 신문지상에서 보는 편법, 불법 기사거리들이 점점 줄어들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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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차

서론

1. 들어가기

2. 용어의 정리: 합법, 불법, 편법


본론

1. 뼈 속 깊은 곳까지 박힌 편법의 모습

2. 편법을 바라보는 우리의 자세

3. 인간 세상, 사는 게 다 그렇지 뭐!-편법을 위한 가장 흔하면서 고질적인 변명

4. 높으신 분들만 편법을 저지르는가?

5. 편법을 해결하기 위한 우리의 노력

  1) 일선 담당자들이 의지:원리, 원칙 준수에 대한

  2) 부탁을 자제해야 한다.

  3)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는 부탁의 연결고리

  4) 내가 먼저라는 생각은 실천함에 있어 내가 먼저가 되어야 한다.


결론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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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용
[2016 청년 에세이 우수상] '편법의 또 다른 이름 인정'
김세희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법학과)

<서론>

1. 들어가기

오늘 막내 아이의 장난감을 반납하러 장난감 도서관으로 향했다. 한번에 2개의 장난감을 빌릴 수 있고, 반납할 때는 모든 구성품과 더불어 장난감이 고장 나거나 작동이 안 되면 다시 대여를 할 때 불이익을 받는다. 아이들이 사용하는 것이라 잦은 고장이 날 수도 있고 자잘한 것들이 많아서 반납할 때 한 두 가지 구성품이 빠지는 경우도 있다.

오늘은 작은 막대 하나를 빠뜨리고 반납을 했다. 직원이 구성품이 빠졌으니 2개를 빌릴 수 없고 1개만 빌릴 수 있다고 했다. 예전 같았으면 어찌 사정을 해서 2개를 빌려가려고 했을 텐데, 나는 우는 아이를 달래며 1개를 빌리고 엄마의 잘못을 아이에게 설명했다.

그 즈음 다른 가족들도 장난감을 빌렸고, 그 과정에서 장난감의 파손, 연체, 구성품 미비 등으로 대여의 불이익을 설명하는 직원은 난감해 했다. 대다수가 사정을 하며 봐달라고 했다. 왁자지껄 자그마한 장난감 도서관이 이내 시끌벅적 시장통이 되었다.

난감한 상황은 직원이 부모들의 말을 들어주는 것으로 종료됐다.

장난감을 원하는 아이들이 보채는 것을 무마하기 위해서 직원도 가족들도 그렇게 넘어갈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직원이 앞으로 일을 함에 있어서 원리 원칙대로 일을 할 수 없게 만들었고 그로 인한 분쟁을 야기하고 스스로 자책을 하게 하는 원인을 제공한 당사자가 아닌가를 고민해야 한다.

이 에세이를 쓰는 나의 고민은 이렇게 작은 것에서 출발했다.

 

마흔 두 살, 또 다른 도전인 법학과 3학년에 편입하면서 어린 시절부터 법을 통한 사회

정의의 구현과 약자의 보호를 위한 나의 첫걸음은 그렇게 시작되었으나, 정작 나 자신부터 이런 작은 일에서 조차 원리 원칙을 지키지 않거나, 혹은 그 조차도 인식하지 못했다.

법학과에 편입하고 법학도의 마인드를 가지면서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많은 것들을 스스로도 지키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깨닫기만 하면 또 무엇을 하는가?

어떻게 실천을 하는가? 그 과정에서 나 자신과의 타협의 고비도 넘어야 했다.

이렇게 우리 사회의 현실을 내 자신의 삶 속에서 일어나는 현상들과 대입해 보면서 우리사회가 행복한 사회로 가기 위한 그 출발점과 중심이 편법을 행하지 않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2. 용어의 정리: 합법, 불법, 편법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편법의 정의는 무엇인가? 더불어 합법과, 불법에 대한 용어의 정의도 같이 알아보자.

다음(daum)사전에서 편법은 “간편하고 쉬운 방법” 이라고 정의했다. 합법은 “어떤 일이 법령이나 규정에 맞음“ 이라고 정의 되어 있다. 불법은 법에 위반됨이라고 정의 되어 있다. 위 필자의 경험에서 장난감 도서관이라는 작은 명제를 가지고 본다면 필자가 예전에 구성품을 다 완비하지 않고 반납을 했어도 원래의 대여 개수인 2개를 빌려달라고 비교적 떳떳하게 말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필자는 우선 2개를 빌려가고, 그 다음날에 미 반납된 구성품 1개를 즉시 가져다 준다고 스스로 자부를 했기 때문에 나 자신은 최선을 다했고 직원들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면, 필자는 같이 데려간 아이를 매개체로 하여 아이가 울거나 때를 쓰는 모습을 통해 인정을 유발하여 편법적 행위를 하면서도 스스로 의식하지 못했고, 그 직원이 이런 나의 처지를 이해하고 정히 2개를 대여해 주는 것은 지극히 인정이 있는 것이라고 여겼다.

 

물론 그 근원에는 나의 즉시 반납에 대한 신용도도 일조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해당 직원과 장난감 도서관의 입장에서 보면 내가 1개의 장난감에 대한 완벽한 구성품을 반납하지 않음으로 1개의 장난감을 타인에게 대여할 수 없음은 물론이고, 해당 직원은 그 구성품이 반납될 때까지 전화나 문자를 해야 하는 인력의 낭비를 초래 했으며, 나와 유사한 경우가 발생할 경우 해당 직원은 원리 원칙을 준수할 수 없거나 스스로 그것으로 갈등 하게 하는 상황을 만들었다.

만약 내가 처음부터 편법(여기서 불법의 경우에도 해당됨)을 하지 않거나 혹은, 직원이 다음날 미 반납된 구성품을 반납하는 조건으로 2개를 가져가라는 호의를 베푼다고 해도 그것을 정중히 거절하고 원리 원칙을 지켰더라면, 해당 직원도 앞으로 일을 처리함에 있어 스스로 원리와 원칙을 세우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본론>

1. 뼈 속 깊은 곳까지 박힌 편법의 모습

필자는 때로는 나 자신에게는 관대하고 타인에게는 그렇지 못 한 경우가 많았던 것에 대한 반성을 많이 한다. 일례로, 지난 2013년과 2014년 울산의 신문사에서 시민 기자를 한 적이 있다. 시민의 입장에서 실생활과 밀접한 기사를 작성하면서 시민의식을 고발하는 기사를 많이 썼다. 그리고 국가정책이 잘못되어 국민이 불편을 겪는 것도 주요 기사거리였다. 당시 내가 썼던 기사들 중에서 주차 관련한 기사들도 일 몫 했다.

내가 사는 동네는 최근 신설된 신흥도시로 주차난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우리나라 발전을 이루는 많은 도시들이 겪는 문제이지만, 특히 우리 마을은 상가가 즐비한 곳은 모두 일방 통행로로 변해 만약 운전이 미숙한 사람이 그곳에 진입하면 후진을 하지 못해서 전후 차량들에게 민폐를 끼치기 일쑤다. 그래서 그에 관련한 기사를 작성하기 위해 일방통행 유발한 주차자들과, 인근 주변 상가를 대상으로 인터뷰를 했다.

주차자들은 상가 주차장이 부족하니 이렇게 주차를 할 수 밖에 없다고 하고, 상가들은 장사를 해야 하니 손님들에게 차를 빼라고 할 수가 없다고 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주차를 할 수 있는 넓은 지하주차장이 있음에도 바로 코 앞 가게에서 볼일을 보려는 사람들과 그런 사람들이 영업에 중요하니 뭐라 할 수 없다는 상가 세입자들의 입장을 싣는 기사를 쓰면서, 서로의 이익과 불편이 대립하고 있으면, 해결책은 정책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답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럼에도 기사 말미에는 우리의 시민의식이 아쉽다는 기사를 썼다. 그러한 필자가 아무리 애를 써도 지켜지지 않는 것이, 상가 주변에 자녀의 학원이 있어서 마중을 나갈 때면 내내 양심의 소리가 내면에 울렸다.

그리고 최대한 가까우면서 최대한 민폐를 끼치지 않는 장소를 찾지만, 대다수의 경우에는 민폐를 끼치기 일보 직전에 능수능란한 운전 솜씨로 양심의 가책을 덜었다.

최근에는 아예 상가에 진입을 하지 않고 자녀를 조금 더 먼 곳으로 오라고 했다.

그 또한 스스로 법학도의 마음으로 생활에서 실천을 하고자 하는 깊은 자각과 더불어 나보다 운전을 못하는 사람들의 운전 실력에 넉다운을 당하고 나서야 깨달은 바이다.

 

 

2. 편법을 바라보는 우리의 자세

여기서 우리가 편법을 어떻게 바라보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편법을 편법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이러하다. 법이라는 큰 테두리를 범죄나 범법 등과 연관 지어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는 범죄자가 극악 무도한 범죄를 저지르거나 보이스피싱, 편법대출, 편법증여 등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면 그런 것들에 대해서 법을 지키는 않는 나쁜 사람들 이라는 잣대를 댄다.

일례로, 공공도서관 중 어린이들이 이용하는 실내도서관은 대다수가 신발을 벗어 신발장에 넣어야 한다. 사람들의 드나듦이 많은 도서관 입구에 신발을 벗어 놓으면, 문에 신발이 걸리고 입구 이용이 불편하고 미관상도 좋지 않다. 더 나아가 신발이 걸리면 경미한 사고나 문에 손가락 끼임 등도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입구에 버젓이 씌어 있는 “신발장에 신발을 넣으세요“를 지키는 사람은 절반 정도의 비율이다.

자신의 신발이 남의 발에 밟히고 나뒹굴어져도 신경을 쓰지 않는다. 이런 공적인 공간에서 당연히 지킬 예의가 합법적 범주이고, 이를 어기고 내가 편하기 위해서 행하는 행위가 편법이다. 이렇게 신발을 아무렇게나 벗어놓은 사람들이 많으니 다음 사람들도 그렇게 아무렇게나 벗어 놓으니 결국 편법이 합법처럼 되어 버린다. 그러다가 신발을 분실하거나 신발이 문에 끼이거나 그로 인해 아이가 다치거나 하면 도서관 직원과 시시비비가 생긴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것이 나 하나가 신발을 신발장에 넣지 않음으로 인해 발생하는 일이라기 보다는 도서관 직원이 관리를 잘하지 않음으로 인해 발생했다고 한다. 우리 사회 어느 곳에서도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3. 인간 세상, 사는 게 다 그렇지 뭐!-편법을 위한 가장 흔하면서 고질적인 변명

이용자 : “이번만 한번 봐 주세요”

직원 : “안됩니다. 죄송합니다. 이번에 연체 되셔서 빌릴 수가 없어요”

이용자 : “한번만 봐주세요. 애들이 졸라대요. 뭘 그렇게 원칙대로만 하세요.

인정 좀 봐주세요“

위 경우를 보면서 우리에게서 편법의 또 다른 이름은 인정(人情)이다. 더 나아가 인정을 베풀어야만 인간적인 사람이 되는 것으로 인식된다.

이 경우는 금품이나 특별한 이득이 관련하지 않는 것을 인정(인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일체의 금품이나 이득이 수반되는 경우의 편법은, 불법의 온상이고 사회의 악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위의 경우처럼 부탁을 들어주는 사람이 원리와 원칙에 근거할 경우 인정이 없고 고지식한 사람이 되어 버리는 것 또한 우리의 현실이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원리는 지키는 것이 정당하고 합법적인 것인데, 그것을 지키면 딱딱하고 고지식한 사람이며, 또한 책무를 다해 지키는 사람은 인정이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좀 다른 일례로, 자신의 지위도 아닌 남편의 지위를 이용하여 편법과 불법을 행하는 한 일화가 있는데, 글쓴이의 친구 남편이 일선 형사인데, 그 부인은 음주운전을 밥 먹듯이 하면서, 음주검문에 걸릴 때면 자신의 남편을 들먹이며, 단속을 모면해 간다면서 사석에서 자랑을 했다는 것이다. 마침 당시 인기 드라마의 주인공 캐릭터가 형사였고, 정의를 위해 자신의 목숨도 아끼지 않던 그 형사는 더욱 높이 평가되었다.

언제부터인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는 위와 같은 종류의 이야기를 유머나 위트라고 부르고 그것을 말하는 사람은 자신이 뭔가 대단한 사람인양 으쓱해 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시기를 추정할 수 없는 유머거리의 소재 대다수가 사회 약자를 조롱하고 비하하는 것이 아니면, 편법이나 불법을 행하면서 의기양양해 하는 것이 많은 것으로 보면서 나는 웃을 수가 없었다.

가볍고 듣고 넘길 수 있는 것을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도 일정부분 고쳐야 할 필요성이 있지만, 전혀 아무렇지 않은 우리의 태도도 생각의 여지가 있다.

쉽게 넘기고 도덕적, 정신적 피로감에서 벗어나는 것이 내 정신건강을 위해서 좋겠지만, 그럼에도 세상의 관심거리에 있는 부도덕한 일들의 근본은 우리가 살면서 행하는 작은 것들이 만연되어 일어나는 결과물이라는 것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에서 서로 인정 있게 사는 것은 좋은 현상이다. 그러나, 그것이 개인과 개인이 아닌 개인과 단체, 단체와 단체, 나아가 국가와 국가 등이 위와 같은 경우 라면 인정이라는 단어가 현실과는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

우리나라가 발전을 이루기 전에는 농경사회 혹은 마을 단위의 구성으로 이웃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를 알 정도 였지만, 현재는 산업화, 대도시화로 가까운 친척조차도 1년에 한 두 번도 보기 어려운 현실에서 인정이라는 단어가 세상 사는 가장 큰 가치 기준의 될 수 있는가?

, 세상은 급변하고 원리와 원칙을 준수해야 우리 사회가 바로 서는데, 우리의 정서는 아직도 농경사회의 공동체 정서를 지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항상 나쁘지는 않다. 때로는 그런 공동체 정서가 사회를 훈훈하게 만드는 좋은 예도 많지만, 나의 편의를 위한 편법과 불법을 행하는 도구로 “인정”을 요구하는 사회가 되었고, 구성원 각자가 그 역할을 아니러니하게도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반문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모든 것에 정확하게 법과 정의의 잣대를 대면 세상 사는 것이 너무 각박하지 않느냐고? 이 말의 일정부분은 동감한다.

그럼에도, 우리가 그런 편법에 익숙해진 삶의 태도와 가치관을 영유하면서 인정에 대한 동정론을 부추기는 사이에 세상에 많은 편법과 불법이 판을 치고 그것이 우리 삶을 더욱 피폐하게 만들고 있다. 그 예로, 정치인들은 자신의 직위를 이용하여 각종 편법과 불법을 눈감아주고 있으며, 그런 대가로 우리 국민은 불법이나 날림 공사의 희생양이 되고 그것을 감당하기 위해 어마어마한 사회적 비용을 치르고 있다.

최근에 일어난 “죽음의 가습기 사건, 세월호 사건” 등은 원리 원칙을 준수해야 할 일선의 담당자들과 사회 지도층들의 비리와 편법으로 수많은 생명이 빛을 잃었고, 가족들도 삶의 빛을 잃었다. 물론, 그들은 편법과 불법을 용인한 대가로 돈과 권력을 얻었지만, 그렇게 되기까지의 과정들은 서로의 유대관계를 돈독하게 하는 인정의 문화가 자리했을 것이다. 일면식도 없는 이해관계자에게 금품을 들이대어 일이 성사된 것이라기 보다는 서로 만나고 교류를 통해서 그러한 관계를 형성했을 것이다.

그래서 공직이나 공적인 일을 하는 사람이 인정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

심지어, 작은 마을의 주민복지센터에 근무를 하는 공무원도 주민들의 딱한 사정을 일일이 들어주고 업무를 수행하지 않는다. 사정이야 딱하지만, 원리와 원칙은 이러하고 만약 정말 어려운 경우라면 윗선과 상의하여 대가성이 없이 순수하게 일을 처리해야 한다.

인정은 지극히 개인과 개인의 관계에서 부탁을 받는 개인이 그것을 완전히 용인하고 끝까지 참을 수 있을 때 베풀어야 하고, 부탁하는 사람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모든 일을 다 한 후에 부탁을 하는 사람에게 신의를 지킬 수 있는 만큼만 부탁을 해야 한다.

너무 쉽게 부탁하고 너무 쉽게 들어주고, 그것이 지켜지지 않을 때는 우리는 분노하고 관계를 청산한다.

 

4. 높으신 분들만 편법을 저지르는가?

위의 예에서도 봤지만, 사회 지도층이나 권력층이 저지르는 편법은 하루 종일 매체를 통해서 많이 접할 수 있다. 그리고, 기득권이 되면 자신의 것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도구를 활용하여 지키려고 하는 것은 기득권의 본성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 또한 만연화 되어 도덕적으로 불감하고, 갈수록 발전하고 교묘해진다.

이쯤되면 편법이 널리 퍼져서, “인정받지 못하는 합법”으로 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가 이렇게나 뿌리 깊은 편법과 불법의 온상인가?에 대해서는 필자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것은 나 한사람이 스스로 편법에 대한 인식의 부재와 설령 알더라도 편리하고 간단한 방법으로 빨리 해결하고 싶은 달콤한 유혹을 져 버릴 수가 없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는 천천히 제대로 하는 것은 남들보다 뒤쳐진다는 것을 뼈 속 깊이 인식하고 있기에, 그저 눈앞에 닥친 것을 빨리 해결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인 편법을 쉽게 택하는 것이다.

 

5. 편법을 해결하기 위한 우리의 노력

그렇다면, 이런 인식조차도 못하는 몸속, 혹은 뼈 속까지 박힌 편법을 해결할 방법은 없는가?

1) 일선 담당자들이 의지:원리, 원칙 준수에 대한

만약, 내가 어떤 자리에 앉아 있더라도 나는 내가 공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내가 사적인 사람이고 사적인 인간관계를 더욱 중요시하고 그것이 내 정서에 맞다면, 나는 그런 일을 해야 하고, 공적인 일을 처리할 사람이라면 보다 원리와 원칙을 소중히 여기고 준수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부탁이 들어오면, 단호하지만, 이해시키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죄송하지만, 그것은 어렵겠습니다. 저희 업무지침 몇조 몇항에 지침이 있어요.

2) 부탁을 자제해야 한다.

살면서 부탁하지 않고 사는 것은 참 힘들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하면, 누군가가 내게 부탁을 할 경우, 그것을 거절하기가 얼마나 힘들었는지에 대해서 생각해보라.

아주 작은 부탁이지만, 나는 그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나의 하루, 혹은 며칠의 에너지를 쏟아야 했으며, 그마저도 잘 되면 본전인 것이다.

그래서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보고, 정말 안 될 때 부탁을 한다는 원칙을 세워야 한다. 주위에는 자신이 할 일을 그냥 남에게 부탁하는 것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무슨 일이 생기면, 자신이 할 생각은 아예 하지 않고, 바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부탁을 한다. 그 모습을 잘 보라!

어떤 사회 지도층이 무슨 편법이나 불법을 행할 때, 꼭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고 있지 않은지...

 

3)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는 부탁의 연결고리

참으로 신기하게도 인간관계는 내가 90퍼센트 베풀었다고 생각하면, 상대는 50퍼센트 정도 받았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그래서 상대가 자기 받은 50퍼센트의 70퍼센트 정도를 내게 주고 갚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항상 덜 받았다고 하고, 상대는 그만큼 했으면 됐지. 라고 한다.

이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누군가 베풀면, 받기를 바라는 것이 인간의 마음이고, 그 질량은 준 사람과 받은 사람이 서로 다르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 내가 누군가에게 부탁을 했으면, 상대도 잊지 않고 내게 부탁을 할 것이며, 그 정도는 내가 부탁한 것보다 훨씬 많은 양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품앗이와는 다른 개념이다. 공동의 이익과 사회를 발전적으로 만드는 일이 아닌 것들에 부탁이라는 이름의 편법과 불법을 행하는 동반자가 되지 말라는 것이다.

 

4) 내가 먼저라는 생각은 실천함에 있어 내가 먼저가 되어야 한다.

필자는 성격이 급한 편이다. 천성도 그러하지만, 살면서 뒤쳐진다는 생각에서 급하게만 살아왔다. 그러다가, 빨리 급하게 행한 것들을 살펴보니, 실수투성이에 편법투성이인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빨리 행한 것이 나를 발전시켰다기 보다는 나를 더욱 성급한 사람으로 만드는데 일조를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무엇을 해도 먼저 해야 하고, 남들보다 빨리 알아야 했는데, 세월이 지나서 보니 그래서 중도 포기한 것도 많고, 깊이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남보다 앞선 것 같으나 실상은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결국, 뒤처지지 않기 위한 “내가 먼저”가 아닌, 올바른 사회, 정의로운 사회를 위한 실천을 내가 먼저 해야 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무언가 잘못된 것을 말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했다.

“저기, 죄송합니다만, 이것은 ......으로 잘못된 것 같습니다.

나의 이런 노력으로 잘못된 것들이 처음부터 개선되고 바뀌어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내가 선두로 말을 하여 다른 사람들의 동참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누군가의 부탁을 들어줄 위치나 자리에 있지 않아, 곤란한 부탁을 받지는 않는다. 그리고 나 또한 어떤 일이 발생하면 그것을 해결하기 누군가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 부탁을 하기 보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검색도 하고 찾아본다.

예전 직장생활의 경험으로 부탁을 들어줘야 하는 사람의 고된 입장을 잘 알기 때문이다.

 

 

<결론>

마무리

이 에세이를 쓰면서 타인과 사회에 대한 방향이 나 자신에 대한 반성으로 바뀌었다.

우리가 사회의 어떤 부조리한 현상에 대한 시각을 타인, 사회의 잘못으로 탓하는 경우가 많다. 일정부분 맞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어떠한가를 되짚어 봐야 한다.

근본적으로 내가 어떻게 행동하고 내가 어떻게 변화되어 가는가? 가 우리 사회가 아름답게 발전하고 변화되어가는지의 척도 인 것이다.

타인의 편법과 불법에 대한 냉철한 판단은 필요하지만, 그것을 밑거름 삼아서 나는 그렇게 행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자각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작은 것에서부터 내가 직접 실천을 함으로써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아무리 작은 편법이라도 누군가에게는 불편을 주고 언젠가는 나도 그것으로 불편을 겪을 것이라는 것을 예상해야 한다.

자원이 부족하고 좁은 나라에서 모든 것에 원리 원칙을 강요하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적어도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나의 편법으로 불편을 겪는 사람이 줄어들 것이다. 나쁜 것(나는 편하고 남은 불편한 것일 수 있다)은 금방 전파된다.

주차하면 절대 안 되는 곳에 1대가 주차를 하면, 그 뒤에 줄줄이 다른 차들이 주차를 하고 입구마저 막히는 경우도 있다. 이 때 누군가가 그곳에 주차를 하지 않고 먼 길을 돌아왔더니, 버젓이 다른 차가 내가 찜한 자리에 주차를 했다 해도, 나는 절대 억울해 할 필요가 없다. 나는 나의 편의를 위해 타인의 불편을 조장하지 않았기에 그런 스스로에게 박수를 쳐야 한다.

원리와 원칙을 준수하고 그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많아지면 우리가 신문지상에서 보는 편법, 불법 기사거리들이 점점 줄어들 것이다. 우리 자녀 세대에게 물려줄 소중하고 아름다운 가치가 형성되고 아름다운 대한민국이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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