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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에세이, 미래전략연구를 통한 다양한 연구결과물

연구결과물

연구도서
[2018 청년 에세이 우수상 01]우리는 충분히 슬퍼하고 있습니까
  • 저자
  • 신현솔(연세대)
  • 발행일
  • 2018-12-30
요 약

개인에게 종속된 고통과 슬픔은 끝없는 분노와 고통의 연쇄를 만들어낸다. 연쇄작용 속에서 갈등은 점점 더 심화된다. 단순히 보상을 받거나, 처벌하는 것은 피해와 갈등이 해소되기 위한 충분조건이 될 수 없다. “당신은 충분히 할 만큼 했다”는 피해에 대한 입막음으로 혹은 집단적인 트라우마를 개인의 것으로 한정짓는 또 다른 폭력이다. 고통의 연쇄고리를 끊기 위한 조건은, 사회적 약자의 피해가 사회 전체의 몫이 되는 과정, 즉 추모와 애도의 과정이 필요하다.  

 우리는 충분히 슬퍼할 때, 추모와 애도의 기회를 가질 때, 그리고 트라우마를 함께 다뤄나가겠다고 약속 할 때, 비로소 공동체의 갈등이 해소될 수 있다. 더 이상 구조 속에 함몰된 개인이 아니다. 갈등을 넘어 연대와 공감의 공동체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공동체 안에서 갈등은 발생할 수밖에 없다. 갈등 없는 사회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공동체 내의 소외와 배제를 돌아보고, 갈등을 다뤄낼 수 있는 역량을 갖춰야 한다.

따라서 추모의 애도의 공간이 마련되고, 공감과 연대를 통해 구조의 변화를 꾀할 때, 사회는 갈등을 다뤄낼 수 있는 역량을 갖게 되면서 이전보다 더욱 발전할 수 있음을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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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차

I. 서론: a와 b 이야기

II. 본론

1) 갈등의 공동체 - 회피하거나 저항하거나

2) 한국의 집단트라우마

3) 구조에서 벗어나기: 추모와 애도

III. 결론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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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용
[2018 청년 에세이 우수상 01]우리는 충분히 슬퍼하고 있습니까
신현솔(연세대)

서론: a와 b 이야기


A 이야기: A는 사건의 피해자이다. 그는 이 사건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 분노와 고통은 가해자에 대한 처벌욕구로 이어진다. 몇몇이 처벌되고 사건이 해결되었다고 하지만, A는 자신이 입은 피해는 회복되지 않았음을 느낀다. 사건 이후 그의 피해는 사회에서 인정되지 않는다.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대한 신뢰를 잃고, 더 이상 국가와 사회가 안전하지 않다고 느낀다. 그의 일상은 무너진다. 그는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더 이상 사회와 연결되어 있지 않다고 느낀다. 갈 곳 잃은 분노는 결국 또 다른 폭력을 만들어낸다. 고통과 슬픔, 그리고 분노는 또 다른 폭력의 연쇄가 계속된다.


B 이야기: B는 사건의 피해자이다. 그는 이 사건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 그의 고통과 슬픔이 사회적으로 인정된다. 사회는 그 사건을 추모하고 애도한다. 그는 충분히 슬퍼할 기회를 얻는다. 그 사건은 기억해야할 공유된 집단기억이 된다. 사건에 대한 애도는 공감과 연대의 계기가 된다. 슬픔을 공유한 집단은 더 안전한 사회를 만들고자 한다. 공감을 통한 연대와 움직임은 사회를 바꿀 수 있는 힘이 된다.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이 세워지고 사회는 발전한다.



이들이 받은 피해와 고통은 상황과 맥락에 따라 결코 한 가지로 환원될 수 없고, 이처럼 몇 개 문장들로 사건 이전과 이후의 과정을 모두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 이야기와 B이야기로부터 몇 가지 지점들을 끌어내볼 수 있다.

우선, A와 B는 모두 같은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사건이 발생하였다.’ 그리고 ‘피해를 입었다.’ 그리고, 이 사건과 피해의 원인으로 가해자가 지목되지만, 이 가해자를 처벌한다고 해서 이들의 피해가 회복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직접적으로 특정 인물들을 처벌하고, 벌을 줄 지라도, 그들의 일상과 관계는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고 느끼며, 사회와 공동체에 대한 신뢰를 잃고 스스로를 고립시킨다. 이것은 그들의 사건과 피해의 원인이 개개인 몇 사람에게 종속되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즉, 그들이 겪고 있는 고통의 뿌리를 찾아나갈 때 그 원인이 근본적인 것에 있을 깨닫는다. 구조 속에서 생산된 사람들의 행위, 제도, 관습이 사건사고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 그 구조의 부작용은 권력의 차이에 의해 약자들에게 편향된다. 사건은 권력 구조 상 하위에 위치한 사람들에게 더 자주, 더 많이, 더 크게 발생하며, 이들의 피해는 사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이런 사건, 그리고 그 이후에 공동체의 갈등은 심화된다. 고통과 피해로 일상과 관계가 무너지는 극한의 상황에서 우리는 권력의 존재를 실감하고, 개인의 힘으로는 그 무엇도 해결하지 못한다는 무력감과, 당신의 피해와 고통에 대한 무감각이 동시에 발생하면서 공동체의 갈등은 격화된다.

이것이 A의 스토리텔링이다. A는 피해가 받아들여지지 않은 공동체에 대해 신뢰를 잃고,  또 다시 같은 일이 벌어질 수밖에 없음을 깨닫게 된다. A는 폭력으로부터 야기한 분노와 고통, 우울과 사회적 고립, 그리고 분노가 반복되는 고통의 연쇄에 갇힌다. 사회가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고 느낄 때, 나의 일상이 본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생각될 때, A는 관계를 끊고 스스로를 고립시킨다. 그의 갈등과 피해, 고통과 분노는 A만의 것으로, A의 세계 속에서 끊임없이 반복된다. 즉, 사건의 피해와, 고통, 갈등은 A에게만 종속된다. 사건의 원인이 권력 차이로 인한 구조에 있음에도, 그 구조로 인해 발생한 거대한 고통은 개인의 짐이 되 고 있다. 그 구조를 지칭하는 말은 여러 가지가 있다. 구조는 자본, 국가, 국가폭력, 신자유주의, 경쟁, 이기주의 등으로 변주된다. 그렇다면, A는 자신의 약자성을 끊임없이 실감하면서 이어지는 고통과 피해의 연쇄 속에 놓인다. A는 그저 견딜 수밖에 없는가? 사건이 발생했을 때, 혹은 공동체 내에서 권력 상의 갈등이 발생하여 피해를 입었을 때, 구조의 힘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그 순간, 우리는 그 구조의 힘을 깨고 나올 수 있을까.

첫 번째 상황에서, A는 고립되고 무력감을 느끼지만, 고통이 사회적으로 인정되지 않았기에 그의 고통은 개인에게로 종속된다. 그는 충분히 슬퍼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반면, B에서는 추모와 애도의 시간과 공간이 마련되고 있다. 이것은 다양한 의미를 갖는다. 추모를 상징하는 의례나 행사는 피해자에게 충분히 슬퍼할 기회를 주는 동시에 피해자의 고통을 모두가 함께 짊어지겠다는 약속이다. 공동체 안에 파괴된 질서를, 사건으로부터 만들어진 다층적인 트라우마를 함께 다루어나가겠다는 신호탄이 될 수 있다. 추모의 공간에서 만들어진 공감과 연대를 기반으로 트라우마를 인지하고, 사실관계를 온전히 파악하는 노력이 시작된다는 의미이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상황의 시작은 같지만 결과는 달라진다. 그 시작은 추모와 애도, 즉 충분히 슬퍼함에 있다.

충분히 슬퍼한다는 것은 고통을 연장시킴이 아니다. “이제 그만 할 때가 되지 않았느냐”는 외면과 무관심, 비난의 말들은 이 단계의 의미를 오도한 까닭이다. 사건이 발생했을 때, 그리고 그것의 원인이 구조에 존재하고 있을 때, 겉으로 드러나는 가해자를 처벌하고 수습하는 것은 고통을 입은 사람들의 욕구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대개 구조 안에서 개인이 주체가 될 수 없는 사건이 발생했을 때, 그 고통과 피해의 트라우마는 사회 전체의 트라우마로 퍼져 고통이 전이되고 이어지는 고통의 연쇄작용이 발생한다. 연쇄작용 속애서 갈등은 점점 더 심화된다. 단순히 보상을 받거나, 처벌하는 것은 피해와 갈등이 해소되기 위한 충분조건이 될 수 없다. “당신은 충분히 할 만큼 했다”는 피해에 대한 입막음으로 혹은 집단적인 트라우마를 개인의 것으로 한정짓는 또 다른 폭력이다. 고통의 연쇄고리를 끊기 위한 조건은, 사회적 약자의 피해가 사회 전체의 몫이 되는 과정, 즉 추모와 애도의 과정이 필요하다.  

 우리는 충분히 슬퍼할 때, 추모와 애도의 기회를 가질 때, 그리고 트라우마를 함께 다뤄나가겠다고 약속 할 때, 비로소 공동체의 갈등이 해소될 수 있다. 더 이상 구조 속에 함몰된 개인이 아니다. 갈등을 넘어 연대와 공감의 공동체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Ⅱ. 본론

1) 갈등의 공동체 - 회피하거나 저항하거나

개인은 내가 통제하고 있다는 일상생활에서조차 언제나 구조와 마주하고 있다. 알튀세르는 이데올로기가 개인을 주체로서 호명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데올로기에 의해 좌우되는 개인들은, 이데올로기의 호명에 의해 주체가 된다.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사실들은 이데올로기에 의해 구성됨에도 불구하고 개인은 여전히 모든 것을 주체로서 경험하고 선택하고 있다고 믿는다. 이데올로기는 개인을 여전히 예속하고, 개인은 이데올로기의 호명에 여전히 뒤돌아본다. 내가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은, 그리고 의식적인 행위들은 이데올로기에 의해 주체화된 존재들이 스스로가 자유로운 세계의 구성원이라고 생각하고 인식한 결과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이데올로기의 호명을 받고 있으며 나의 선택과 행위, 관계와 인식들은 구조 안에 위치하고 있다. 이데올로기는 옳고 그름, 정의, 역사인식 등을 만들어내고, 이를 통해 인간의 선택과 행위를 호명하는데, 이로 인해 옳지 않은 것, 어울리지 않는 것, 이방인, 사회적 약자 등 “옳지 않은 것”들은 자연스럽게 배제된다. 즉, 이데올로기는 필연적으로 갈등을 만들어내고, 나의 가치관, 혹은 주체적이라고 여겨지는 선택에 의해 배제와 소외가 발생한다. 

일상 생활 속에서 소외와 배제가 발생한다. 하지만, 이 글의 주된 관심사는 개인에 대한 소외와 배제의 현상이 극대화되는 순간이다. 사건 혹은 사고, 참사라고도 불리며, 혹은 재난, 국가폭력, 학살, 전쟁으로 변주되기도 한다. 관계와 신뢰의 상실로 공동체의 갈등이 극대화되고 피해와 고통으로 인해 일상적인 삶이 무너지는 순간, 분노와 트라우마가 지속되어 그 이후의 삶에 영향을 주는 사건. 이 사건을 경험하고 있는 개인은 사건의 해결을 위해 가해자를 찾지만, 그 사건을 초래하고 발생시킨 원인과 조건이 개인을 넘어 사회와 구조에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온전히 해결할 수 없고, 자신의 피해가 회복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개인은 갈등에 종속된 인간으로, 구조의 객체로 존재할 뿐, 주체로 존재할 수 없다. 공동체의 갈등에 마주한 개인은 철저하게 무력하다.

어떤 사건이 발생했을 때, 개인의 행위 전략은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사회에 순응하거나, 저항하거나 혹은 회피한다. 저항하고자 하는 인간은 갈등을 만들어내는 사회 구조에 집중한다. 사건의 진실과 원인을 규명하고, 사건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도록 사회구조를 바꾸고자 하는 사회운동의 참여자로 부상한다. 일반 시민들이 이들의 목소리와 욕구에 적극적으로 귀 기울일 수 있는 문화가 구축되어 있는 사회에서 저항의 기제가 더욱 적극적으로 나타난다. 한편, 사회 구조에 대한 변혁이 불가능하고, 피해에 대한 목소리가 외면 받고 더 나아가 억압받을 때, 사건을 마주한 인간은 순응하거나, 그 사건을 망각하는 등의 방식으로 회피한다. 사회의 문화와 환경에 따라 개인이 선택하는 전략은 사뭇 달라질 수 있다.

회피와 순응은 피해를 온전히 바라보지 못하고 숨기고 망각하는 행위 유형이다. 공동체의 갈등은 작위적인 억압과 폭력에 의해 감춰지고, 피해자의 고통과 트라우마는 온전히 개인이 감당해야할 것이 된다. 원인에 대한 진실규명이 이뤄지지 못하고, 구조적 변화를 이뤄내지 못했기 때문에 고통은 여전히 유효하다. 달라지지 않은 구조 속에서는 같은 조건, 같은 상황에서 똑같은 사건이 다시 일어 날 뿐이다. 재발에 대한 불안은 피해와 고통을 극대화시킨다.


2) 한국의 집단트라우마

트라우마(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란 죽음, 심각한 질병, 실제적이고 위협적인 사건을 경험하거나 목격했을 때 인간이 겪는 심리적 외상을 말한다.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사람은 큰 정신적 충격을 겪었을 때, 뇌가 과각성 되어서 쉽게 불안과 우울, 고통에 노출되는 상태가 된다. 과각성 상태의 뇌는 비슷하거나 더 낮은 강도의 충격에도 쉽게 불안해지며, 트라우마 때문에 일상생활이 힘들어지기도 한다. 정신분석학, 심리학, 병리학 등에서 말하는 트라우마 혹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개인을 분석의 단위로 두고 있지만, 이는 트라우마가 사회적 맥락 속에서 발생하고 있다는 것을 다소 간과하고 있다. 개인을 넘어선 트라우마가 발생하기도 한다. 만일, 어떤 사건이 발생했을 때 사회 전체가 그 사건을 목격하고, 그 피해와 고통에 관련된 사회적 지표가 생산되며 공동체의 갈등을 만들어내는 등 사회 총체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면, 그 사건을 공유한 모든 사회구성원들은 같은 사건을 공유하게 되며 이는 집단트라우마가 된다. 집단 트라우마는 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무의식 속에 다양한 형태로 각인되어 있다.

우리 근현대사는 뼈아픈 상처로 이루어져 있고, 과거에서 지금까지 그 사건을 경험하고 공유해온 피해자, 희생자들이 존재한다. 구한 말 이후부터 식민지지배, 전쟁, 분단, 독재와 민주화의 과정을 겪는 동안 피해와 고통도 함께 대물림되고 있다. 일본군 성노예, 분단과 한국전쟁과 피난, 민간인 학살의 제주 4.3과 독재와 민주 항쟁 때의 국가폭력, 고문 피해자, 폭력, 협박, IMF 경제위기와 실업 등등, 역사적 사건과 맞물려 다양한 층위의 트라우마를 경험했다. 뿐만 아니라 경제발전 이후 수많은 인명피해를 동반한 사건 사고들이 즐비했는데, 삼풍백화점 붕괴, 대구지하철 지하철 사고, 성수대교 붕괴 등의 사건 사고를 겪은 시민들은 안전과 사회 신뢰에 대한 집단 트라우마를 겪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특히 2014년도에 일어난 세월호 참사는 단순한 비유나 관용어를 넘어 다양한 징후와 증상을 통해 표출되고 있는 총체적인 재난으로 세월호 참사에 대한 기억과 경험은 엄연한 사회적 사실이다.. 세월호 사건 이후에 일어난 강남역 살인사건, 그리고 구의역 지하철 사건에서도 사회적 고통이 발생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지난 역사는 각종 사건 사고들의 연속이었고, 시민들은 관련 집단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

세월호 참사에서는 탑승인원 총 476명 중 295명이 사망하였다. 이 중 안산 단원고 학생은 탑승자 325명 중 250명, 교사는 탑승자 14명 중 11명이 사망 실종되었다. 세월호 참사의 유가족의 고통, 점점 침몰되는 배를 미디어를 통해 직접 목격한 국민과 국민들을 구조하지 못한 국가의 존재, 살아남았다는 죄책감과 부채감, 이런 일련의 모습들은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집단적 트라우마가 되고 있으며, 그 이후에도 유가족 보상과 관련된 문제 등으로 또 다른 고통이 발생하고 있다. 

사건이 발생했을 때, 공동체의 갈등은 극대화된다. 갈등이 존재하고, 가해자와 피해자들이 있지만, 사실상 그 원인은 갈등하는 사람들 밖에 존재한다. 즉, 그 피해와 고통의 원인과 조건이 한 개인을 넘어서는 구조와 사회 속에서 존재하고 있음이 부각된다. 그 고통과 피해는 개인 뿐 아니라 그 사건을 경험한 모두에게 남아있으며 고통은 계속된다.

과거 경험을 다뤄내는 데에 있어, 트라우마를 해결하는 전략에는 기억의 해법과 망각의 해법이 있다. 기억의 해법은 그 사건을 촉발시킨 원인과 결과, 피해와 고통을 철저히 기억하는 전략이며, 이에 비해 망각의 해법은 단지 지난 과거이기 때문에 덮고 잊어버리고 미래에 집중하는 것이다. 과거의 경험 통해 발전하고 더 나아가기 위한 전략은 기억의 해법이다. 

사건이 발생 했을 때, 구조의 영향에서 벗어나 개인이 주체가 되기 위해서, 그리고 기억의 해법으로서 과거의 경험을 다뤄내기 위해서 위한 조건은 바로, 우리가 충분히 슬퍼하고 있는가 즉, 애도와 추모의 과정에 있다.


3) 구조에서 벗어나기: 추모와 애도

한국은 지난 식민지 지배, 전쟁, 분단, 독재, 그리고 경제성장을 겪으면서 일어났던 사건과 관련한 트라우마를 다뤄내는 방법에 익숙하지 않다. 분단과 한국전쟁, 냉전의 이데올로기는 여전히 한국사회를 지배하고 있는데, 이것이 흔히 사건 피해자들에게 가해지는 억압의 기제가 된다. 피해자가 진실규명과 명예회복을 외칠 때, 이들에게 가해졌던 이데올로기적 낙인으로 이들의 목소리는 외면되곤 했다. 한국은 독재정권과 경제발전의 흐름 속에서 일상적으로 폭력과 억압으로 사건을 다뤄왔고, 고통과 피해에 대한 무감각, 무시는 당연시되었다. 국가적으로, 오히려 제도와 법들을 통해 시민들에게 사회 구조의 각종 부작용은 쉽게 억누를 수 있다고 믿게 만들었다. 집단 트라우마를 사회적으로 다뤄내기는커녕, 이데올로기적 억누름을 통해 충분히 슬퍼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추모와 애도는 사건의 피해자가 충분히 슬퍼하기 위한 문화적, 환경적 기반을 닦아 놓는 일을 말한다. 추모와 애도를 위한 공간이 마련된다는 것은 피해의 경험이 울려 퍼질 수 있도록 하며, 공감을 위한 시민 참여적 공간이 마련되고, 이를 통해 집단적 고통을 겪은 모두가 함께 연대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 수 있다. 지금까지 트라우마를 다루고 해결하는데 있어 개인 차원의 증상 중심적인 접근을 취했다면 이제, 사회적 역사적 고통과 외상에 대한 논의는 구조가 만들어낸 근본적인 원인에 접근해가야 한다는 것이다.

추모와 애도의 의미로써 의례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의례는 참여자들의 에너지를 전환시키는 집단행위이다. 의례는 분노와 슬픔, 불평등 등의 사회의 부정적인 에너지를 극도로 표출시켜서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문화적 관습으로 각 문화마다 다양한 양식으로 존재한다. 추모와 애도의 의례 또한 이와 마찬가지이다. 개인에게 종속된 고통을, 그리고 사건을 목격한 집단의 고통을 밖으로 표출하고, 내보일 수 있다. 의례를 통해 표출되는 것은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라는 메시지이다. 나는 살아남았을 뿐, 누구나 희생자가 될 수 있음을, 이대로라면 같은 사건이 발생할 수밖에 없음을 말할 수 있다. 추모의 공간은 사건에 부과된 구조의 영향을 인식하고, 원인을 없애고자 하는 집단적 욕구가 표출되는 공간이기도 하다.

공동체의 갈등이 해결되고 위한 조건은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 1. 피해자가 겪은 피해가 사회에서 온전히 인정되는 것. 2. 진상규명을 통해 가해자를 처벌하고(책임을 묻고), 문제의 원인을 밝혀내는 것. 3. 원인 제거를 통해 더 이상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것이다. 애도의 과정은 세 가지 조건을 위해 필수적으로 거쳐야하는 절차이다. 첫째, 피해가 사회적으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슬픔을 공감할 수 있는 애도의 공간이 필요하다.(1번 조건) 그리고, 공감과 연대가 생겨날 때 진실을 규명하고, 원인을 밝혀내며(2번 조건), 구조를 바꿔낼 수 있는 힘(3번 조건)이 생겨난다. 개인에게만 종속되었을 때는 무력감과 공동체에 대한 신뢰상실로 연결되지만, 연대를 통한 집단은 사회를 바꿀 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에 사회발전의 계기가 되기도 한다.

최근의 사건들에서, 우리는 주체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 사회가 사건을 다뤄내고 과거의 경험을 기억하는 것에 있어 아직 미숙하지만, 최근 일련의 사건을 통해 집단 트라우마를 다뤄낼 수 있는 역량을 보였기 때문이다.

세월호 사건 이후 현재에 이르러 세월호 참사에 대한 국가적 무능력함, 피해의 고통, 그리고 치유와 회복에 대한 어느 정도의 합의에 이르고 있다.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명예회복과 추모, 그리고 치유와 회복이라는 역사 청산에 대한 기본원칙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안산의 분향소에서 단원고 학생과 희생자들에 대해 추모의 공간이 마련되었으며, 트라우마 센터가 설치되어 집단 트라우마를 다뤄내기 위한 노력들이 진행되고 있다. 더 나아가 광화문 집회의 현장에서는 세월호 참사가 중요한 의제로 등장하고, 이에 대한 진상규명과 구조 변화에 대한 시민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기도 했다. 

구의역 지하철 사고와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등장한 추모와 애도의 공간도 주목할 만하다. 온오프라인을 통해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나도 희생자가 될 수 있다‘는 메시지가 유동적으로 전달되고 있다. 강남역 살인 사건은 사회에 만연한 여성혐오를 구조의 원인으로 잡고, 나 또한 이 사건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공감과 연대가 생겨났다. 누구나 여성혐오의 타겟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와 함께 여성혐오적 사회구조에 대한 변화의 목소리가 생겨난 것이다. 구의역 사망사고의 경우, 나 또한 외주화 된 노동의 피해가 될 수 있으며, 생명보다 자본과 효율을 중요시하는 사회구조에 대한 반성과 비판이 있었다. 이렇게 사건에 대한 추모와 애도의 공간의 탄생과 발전은 대한민국이 앞으로 공동체 갈등을 어떻게 다뤄나갈 것인지, 더 나아가 인간의 안전과 생명을 위협하고, 개인을 객체화 시키는 사회구조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지 보여줄 수 있는 지표가 될 수 있다.


Ⅲ. 결론

이 글의 논지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개인에게 종속된 고통과 슬픔은 끝없는 분노와 고통의 연쇄를 만들어낸다. 사건이 발생했을 때 공동체 갈등은 극대화되며, 개인은 이에 대해 순응, 회피의 전략을 취하면서 구조에 종속된다. 둘째, 사건의 발생은 집단트라우마를 발생시키기도 한다. 한국의 근현대사는 집단 트라우마를 발생시키는 역사적 비극들의 연속이었으며, 그 원인은 사회의 구조 속에 위치하고 있다. 집단트라우마는 갈등을 증폭시키고, 공동체가 존립될 수 없게 한다. 셋째, 추모와 애도의 공간을 통해 우리는 사회적 고통을 다뤄낼 수 있다. 추모와 애도는 충분히 슬퍼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면서 분노의 연쇄를 깨드리게 된다. 의례를 통한 애도의 공간에서 우리는 공감하고, 연대할 수 있다. 연대를 통해 같은 기억을 공유하는 공동체는 사건을 발생시킨 원인과 구조를 바꾸고 발전시킬 수 있는 역량을 만든다. 피해가 온전히 인정되고 추모와 애도를 통해 공감과 연대를 경험한 사회는 공동체에 갈등이 발생했을 때, 갈등을 다뤄낼 수 있는 역량을 갖게 된다.

공동체 안에서 갈등은 발생할 수밖에 없다. 갈등 없는 사회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공동체 내의 소외와 배제를 돌아보고, 갈등을 다뤄낼 수 있는 역량을 갖춰야 한다. 

우리는 사회 속에서 살고 있으며, 구조의 절대적 영향 속에서 선택과 일상이 제한되고, 좌지우지 된다. 그러한 구조를 극대화시키는 것은 일상적이지 않은 특수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이다. 우리는 사건이 발생했을 때, 너무나도 무력해진다. 

추모와 애도는 분노의 연쇄라는 에너지를 밖으로 표출시키고, 같은 경험을 공유하는 공동체 간의 연대를 성립시킨다. 조건들이 충족되었을 때 우리는 사건을 해결하고, 개인을 넘어서는 갈등을 해소할 수 있다. 한국에서도 최근 세월호 참사, 강남역 살인사건과 구의역 지하철 사고 이후에 나타난 추모의 공간에서 고통과 피해를 다뤄나가고, 공동체의 갈등을 해결하며, 사회구조의 변화를 꾀하고자 하는 움직임을 찾아볼 수 있다. 이곳에서는 “나 또한 희생자가 될 수 있다”라는 공감이 추모의 공간 안에서 울려 펴지며, 피해자들의 피해가 온전히 사회에 인정되고 있다. 

트라우마를 마주한 인간은 불안과 상처에 취약하다. 마찬가지로 사건을 겪은 사회 또한 갈등과 슬픔이 만연하면서 각종 갈등과 사고에 취약해진다. 하지만, 추모의 애도의 공간이 마련되고, 공감과 연대를 통해 구조의 변화를 꾀할 때, 사회는 갈등을 다뤄낼 수 있는 역량을 갖게 되면서 이전보다 더욱 발전할 수 있음을 말하고 싶다. 더 나은 사회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물어야한다. 우리는 구조의 막대한 힘에 마주했을 때, 일상생활이 무너지는 갈등의 상황일 때, 그리고 더 이상 나아질 수 없다고 생각될 때, 우리는 충분히 슬퍼하고 있습니까?





참고문헌

이현정, 세월호 참사와 사회적 고통 - 표상, 경험, 개입에 관하여, 보건과 사회과학 제43집, 2016.12, 63-83쪽

김명희, 고통의 의료화 : 세월호 트라우마 담론에 대한 실재론적 검토, 보건과 사회과학 제 38집, 2015.6, 225-245쪽

한국일보, [큐레이션] 강남역과 구의역 포스트잇의 사회학 

http://www.hankookilbo.com/v/fdb21e14e29c4a5fb0c9d3afad6973dc

김명희, 외상의 사회적 구성 -한국전쟁 유가족들의 "가족 트라우마"와 복합적 과거청산, 한국사회사학회논문집 101권0호, 2014, 311-352쪽

오수성, 국가폭력과 트라우마, 광주트라우마센터 국제회의 토론문, 2018

김왕배, ‘트라우마’의 치유과정에 대한 사회학적 탐색과 전망, 보건과 사회과학 37권, 2014.12, 5-24쪽

처음 읽는 프랑스 현대철학 중 <자크 라캉의 소유할 수 없는 편지>, 김서영, 2013

치유의 인문학 중 <기억과 망각의 갈림길에서-꿈이 들려주는 세월호 이야기> 고혜경, 2016

http://h21.hani.co.kr/arti/cover/cover_general/31489.html 한겨례 21 “우리는 생존자가 아니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area/782548.html 한겨례 [사회]면 “아직도 지하철 못 타요”…대구 지하철 참사 유가족의 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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