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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에세이, 미래전략연구를 통한 다양한 연구결과물

연구결과물

연구도서
[2018 청년 에세이 우수상 02]타자화, 캠퍼스를 뒤덮다
  • 저자
  • 김경준, 김혜윤(한양대)
  • 발행일
  • 2018-12-01
요 약

기존의 세대 갈등은 기성세대와 신세대 간의 가치관과 의식적 차이에 기반을 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학 내 세대 갈등은 기존의 세대 갈등과는 그 양상이 사뭇 다르다. 대학이라는 동일한 공동체에 소속된, 큰 나이차이가 없는 이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캠퍼스 내 세대 갈등, 즉 선후배 간의 갈등을 만든 것일까?

현재 대학 내에 몸담고 있는 공동체의 일원이 아닌 이상 언어 속에 숨겨져 있는 선후배간 미묘한 갈등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조롱의 기반이 타자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폴 사르트르의 희곡 <닫힌 방>에서는 “타인은 나의 지옥이다.”라고 하는 대사가 나온다. 타인에게서 찾는 단점은 사실 자신이 가진 단점의 투영일 뿐이다. ‘타인’을 생성해내는 순간 스스로의 인식적 편협함이 드러나게 된다. 타자화 현상은 타자가 사라져야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타자를 만들어 낸 ‘나’의 잘못된 인식을 바꾸어야 종결될 수 있는 문제이다.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타자’에서 ‘우리’로 돌아가야 한다. 타자화는 사회적 현상이지만 동시에 개인 혹은 집단의 필요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현상이다. 이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타자화를 중단하고, 공동체 의식의 회복에 힘을 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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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차

캠퍼스 내 세대 갈등


원인은 바로 타자화(他者化)


변화하는 대학의 위상


수직적인 대학 문화


대학 위상의 회복


위계질서의 해체 


타자에서 우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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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용
[2018 청년 에세이 우수상 02]타자화, 캠퍼스를 뒤덮다
김경준, 김혜윤(한양대)

캠퍼스 내 세대 갈등

 

‘세대 갈등’이라 하면 무엇이 생각나는가. 흔히 기성세대와 신세대 간의 갈등을 떠올릴 것이다. 그렇기에 대학 내 세대갈등이라는 표현이 낯설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실제로 존재한다. 바로 대학 안 선후배 간의 갈등이다. 

몇 해 전부터 대학을 오래 다닌 고학번들을 ‘화석’, ‘공룡’, ‘암모나이트’ 등 고대 생물에 빗대 희화화 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다음은 실제 기사의 헤드라인이다. “취업준비에 졸업 못했더니 후배들이 ‘화석 선배’ 라네요”, “08학번 대학생, ‘화석 선배’는 서럽다”, “취업난 속 캠퍼스 화석된 나...졸업이 두렵다”. 이를 통해 대학생들이 고학번인 선배들을 고대생물화(化)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과장된 표현에는 선배를 향한 후배들의 심리적 거리감이 여실히 드러난다.

대학 내 세대 갈등 문제에는 소위 ‘꼰대 문화’도 한 몫을 한다. 대학생 1000여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57.6%의 응답자가 선배의 갑질을 경험했다고 한다. 동시에 이런 대학 군기 문화에 대해 79.6%의 응답자들이 ‘어떤 이유에서든 사라져야 마땅하다’고 답했다. 대다수의 학생들이 대학 군기 문화를 경험했을 뿐 아니라 그런 문화를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기존의 세대 갈등은 기성세대와 신세대 간의 가치관과 의식적 차이에 기반을 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학 내 세대 갈등은 기존의 세대 갈등과는 그 양상이 사뭇 다르다. 대학이라는 동일한 공동체에 소속된, 큰 나이차이가 없는 이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캠퍼스 내 세대 갈등, 즉 선후배 간의 갈등을 만든 것일까?


원인은 바로 타자화(他者化)


대학 선후배 사이에 발생하는 갈등의 근본적인 원인은 서로를 ‘타자화(他者化)’한다는 것이다. 타자화는 탈식민주의에 대한 성찰에서 탄생하게 된 개념이다. 식민지배자들은 자신들의 권위와 통치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열등한 타자’를 필요로 했다. 동일자의 반대개념인 ‘타자(the other)'는 자신들과 다른 속성을 지닌 부류, 계층 및 인종을 일컫는다. 결국, 백인들은 자신들의 인종적·문화적·도덕적·지적·기술적 우월성을 확인하고 싶은 욕망 때문에 자신들과 다른 타자(유색인)를 만들어 냈다. 미국의 유명한 문학평론가이자 문명비판론자인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W. Said)는 자신의 저서 <오리엔탈리즘>에서 타자화가 편협한 개념일뿐더러 인식론적 폭력이라고 규정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선배와 후배가 서로를 타자화하는 방식이 상이하다는 점이다. 후배는 대학에 오래 남아 있는 선배를 패배자, 즉 ‘열등한 타자’로서 인식한다. 자신은 이러한 선배와는 다르게 우월한 위치에 서고 싶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그들과 거리를 두려고 한다. ‘나는 저 사람과 다르다’ 라고 하며 구분을 지음으로써 심리적 안정을 얻는다. 그렇기에 고학번 선배라는 존재를 자신에게서 최대한 밀어내려고 한다. 선배는 자신들의 판단 기준을 정상적인 것, 즉 우월한 것으로 믿으며 후배들을 판단한다. 유교문화를 바탕으로 한 대한민국의 나이주의는 상대적으로 연장자에게 보다 더 큰 권력을 안겨준다. 자연히 판단의 주체도 기준도 연장자로부터 나오며, 그에 벗어나는 이들은 ‘열등한 타자’가 된다. 나이주의는 자연스럽게 캠퍼스 내에도 자리를 잡게 되고, 비교적 나이가 많은 선배들이 이 혜택을 얻게 된다. 선배는 자신의 우월성을 드러내기 위해 ‘후배라면 예의 바르게 인사를 해야 된다.’, ‘호칭은 무조건 ‘선배님’으로 통일하여 사용해야 한다.’ 등 후배들의 행동을 제약하는 규정들을 만들어낸다. 자의적으로 만들어낸 이러한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후배는 ‘열등한 타자’로 낙인찍는다. 후배들의 타자화가 선배들에게 최대한 거리를 두려고 하는 ‘밀어내기’의 방식이라면, 선배들의 타자화는 후배들을 자신의 틀에 맞게 개조하려고 자신의 쪽으로 끌어오는 ‘당기기’의 타자화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밀고 당기기의 팽팽한 타자화는 깊은 갈등의 골을 만들어 냈다. 서로를 타자로서 바라보고 거리를 두니 협력을 기대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대학 구성원인 이들의 와해는 나아가 건설적인 대학의 발전을 기대키 어렵게 한다. 선후배 갈등의 파급력은 대학 내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는 사회 전반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이미 우리 사회는 성별과 종교, 그리고 정치적 성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기준에 의한 타자화로 넘쳐난다. 대학생들마저 나와는 다른 대상을 혐오하는 타자화를 내면화 한 채 사회에 진입한다면, 우리 사회는 갈등과 반목을 일삼으며 분열될 수 있다.

선배들의 타자화는 자신의 사고방식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소위 ‘꼰대 문화’를 기반으로 한다. 이는 요즘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갑질 문화’와도 연결이 된다. 학교에서 자신이 가진 권위를 바탕으로 후배를 억누르는 것이 용인된다면, 자연스럽게 사회에서도 부당한 권력을 행사하는 것에 익숙해질 수 있다. 자신보다 낮은 위치에 있다고 판단되는 타자에게 육체적, 정신적, 언어적 폭력을 휘두르는 것에 둔감해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갑질은 수많은 피해자들을 양산하기 때문에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만들기 위해 청산돼야 할 적폐나 다름없다. 그렇기에 성인 시기 사회생활의 시발점이 되는 대학에서부터 선, 후배 사이의 갑질 문화는 정리 되어야 한다. 상호 간의 타자화라는 문제 인식과 원인 파악, 나아가 해결 방안에 대한 논의가 시급한 까닭이다.


변화하는 대학의 위상


대학 내 타자화를 만들고 부추긴 원인을 몇 가지로 분석할 수 있다. 첫 번째 원인은 변화한 대학의 위상이 만들어낸 구조에서 찾을 수 있다. 과거의 대학은 학문의 전당이자 동시에 엘리트 교육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대학 위상은 어떠한가. 통계청이 발표한 ‘2017 청소년 통계’에 따르면, 2016년 13~24세 청소년의 51.1%는 좋은 직업을 갖기 위해 대학에 진학할 것이라고 답했다. 이제 대학은 더 이상 학문의 전당이 아닌 취업의 관문처럼 여겨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무엇보다 경제성장을 최우선으로 삼은 국가 정책의 결과이다. 대학의 수가 크게 증가한 시점은 박정희 정부가 경제개발과 조국 근대화의 기치를 내걸고 산업화에 착수하기 시작한 1960년대부터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이십여 년 간 대한민국은 폭발적인 경제성장을 이룩해냈다. 경제성장의 기류에 힘입어 기업들 또한 하루가 다르게 성장해갔고, 고학력의 신입사원들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대학 졸업자의 공급이 사회의 수요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에 당시 대학 졸업자는 쉽게 기업에 취업할 수 있었다. 변화하는 사회의 요구에 따라 대학은 학생 모집 정원을 증원했고, 고등학생들의 대학 진학률은 높아져갔다. 통계청에 따르면 1980년의 대학 진학률은 23.7%에 불과했다. 하지만 1985년에 36.4%로 소폭 상승했고 10년 후인 1995년에는 전체 고등학생의 50%를 넘기게 되었다. 치솟는 대학 진학률은 2007년 82.8%를 기록하면서 정점을 찍었다. 이렇듯 점차 대학 진학률이 늘어가면서, 대학은 소수의 엘리트 교육기관에서 다수의 보편 교육기관으로 변모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대학 진학률의 가파른 증가세와는 반대로, 대한민국의 경제 성장은 1980년대를 기점으로 둔화되었다. 더 이상 기업은 나날이 늘어가는 대학 졸업자를 수용할 능력이 없다. 졸업 후 잉여 인력이 늘어가기 시작했고 2018년 현재, 역대 최악의 청년 실업률을 기록하기에 이르렀다. 통계청이 발표한 ‘4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청년(15~29세)의 실업률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0.3% 포인트가 증가해 11.2%를 기록했다고 한다. 이는 통계 작성을 시작한 1999년 6월 이후 역대 최고 수치이다. 동시에 모든 연령 계층 중에서도 가장 높은 비율이다. 

취업을 위해 대학에 진학한 이들에게 대학은 더 이상 학문의 장이 아니다. 취업이라는 목표 하에 잠시 혹은 필수적으로 거쳐 가야 하는 곳이자 치열하게 싸워야 하는 경쟁의 장일뿐이다. 그 결과 현대의 대학은 공동체적 연대의식을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다. 이런 구조는 타자화를 더더욱 부추긴다. 졸업할 시기가 지났음에도 대학에 남아있는 고학번들이 그 타겟이 되었다. 대학에서 직장으로 자리를 옮기지 못한 이들은 ‘이상적 지향’에서 도태된 이들로 여겨지게 되었다. 그들의 실제 목표가 취업이든 아니든, 후배들에게 그들은 경쟁에서 밀려난 패배자인 동시에 자신들을 위협하는 잠재적 경쟁자인 것이다. ‘화석’이라는 과장된 조롱과 배척은 이런 배경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 


수직적인 대학 문화


선후배 간의 수직적인 조직문화도 타자화의 불씨를 지핀 또 다른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그렇다면, 대학 안에 수직적인 문화가 어떻게 자리 잡게 된 것일까? 직접적인 원인은 제대한 복학생이 자신이 몸소 경험하고 체득했던 ‘군대문화’를 대학에 그대로 이식했다는 것이다.

“엠티를 갔는데 복학생 선배들이 우리 과가 단합이 되어야 한다면서 겁을 줬어요. 발 같은 거 맞추라고 하고 안 맞추면 뒤에서 욕하고 벌주고 그랬어요. 각 지점에서 빨간 모자를 쓰고 군복을 착용한 채 교관처럼 서 있어서 딴 짓을 할 수가 없었어요.”(경기지역 남녀공학 대학교에 재학 중인 B양의 사례) 

우리는 이런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군대문화가 대학에 어떻게 직접적으로 침투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군 유경험자들은 군대에서 착용했음직한 빨간 모자와 심지어는 군복을 입고 학생들의 단체수련에 참여한다. 대학생들의 MT(Membership Training)가 영문 그대로 구성원들의 집단 훈련임을 드러내는 것은 물론, 선배들이 일방적으로 후배들을 훈련시키고 있음을 보여준다. 복학생들은 그들이 군대에서 받았던 훈련을 대학에서 재현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제대한 선배들이 권력을 행사할 수 있었을까? 이는 예비역들에 대한 ‘어른스럽다’ 또는 ‘믿음직스럽다’라고 하는 사회적 인식에서 비롯됐다. 이러한 통념 때문에 복학생들은 학과 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이에 반해 대학 1~2학년 남학생들은 군 입대라고 하는 현실을 핑계로 학과 공부에 집중하기보다 술자리와 같이 동기들과의 인간관계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러한 모습은 ‘예비역’에게 주어지는 이미지와 대조를 이루면서 “군대를 다녀와야 철이 든다.”라는 담론에 더욱 설득력을 부여하는 역할을 한다. 이렇게 예비역 선배들은 자연스럽게 학교 내에서 권력을 잡게 되고, 군대 문화는 재생산 된다.

이러한 수직적인 군대문화는 공식적인 영역에서 후배들을 통제하는 도구로 사용된다. 특히 학교 축제 같은 행사에는 천막을 세우고 책상을 옮기는 등 노동력이 필요한 일들이 많다. 그 때문에 스스로 힘이 우월하다고 여기는 남학생들이 운영진의 역할을 맡아서 행사를 주최하게 된다. 이 때 복학생들은 효율적인 운영이라고 하는 미명하에 자신들이 익혔던 군대 문화를 활용하며 후배들을 통제한다. 

실제적인 사례를 통해 살펴보자. 충남 지역 K대학의 한 학과 신입생들은 2017년 4월에 열린 체육대회를 위해 군대에서나 할 법한 불침번을 서야만 했다. 대회 연습용 운동장을 차지하려면 누군가 밤새 자리를 지켜야만 했기 때문에 힘이 없는 신입생들이 집단을 위해서 희생을 강요당한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2016년에는 같은 학과 홍보행사에서 저학년들끼리 짝을 지어 대학가 주변 상권에서 60~70만원 상당의 후원금을 받아온 적도 있다. 이 기상천외한 행동들은 모두 선배들이 강압적으로 후배들에게 시킨 일들이었다. 

이러한 수직적 질서는 ‘일방적 권위’를 낳는다. 이는 개인 존중의 영역까지 침범하여서 어느 누군가에게는 불편을 감수하도록 압박한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위계질서는 대학 내에서 다양한 양상의 폭력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구체적 예시로 살펴보자. 첫 번째로는 ‘물리적 폭력’을 들 수 있다. 실제로 대학생활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대학에서 선배에 의한 신체적 폭력을 당하거나 목격한 적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남학생의 21.9%, 여학생의 10.2%가 그렇다는 응답을 했다. 두 번째 형태는 음주 강요이다. 대학생의 67.5%는 강제로 술을 먹어본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세 번째는 언어폭력이다. ‘대학에서 선배에게 욕설 등 언어적 폭력을 당하거나 목격한 적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남학생의 경우 43.6%, 여학생 30%가 그렇다고 응답했다. 

대학 내 수직적인 조직문화는 상대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수용하지 못하게 한다. 상대의 모습을 그대로 보기보단 학번과 나이라는 기준을 먼저 보게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수직적 질서를 내면화한 선배는 후배의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를 재단한다. 후배를 자신과는 다른 타자로 두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후배들의 입장에서 부당하게 느껴질 이런 관행들이 선배를 향한 후배들의 타자화를 진행케 하는 것이다. 결국 불공평하고 불합리한 수직적인 조직문화는 캠퍼스의 건설적 방향으로의 발전에 어떠한 도움도 주지 못한다.


대한민국 근대 경제 발전에 따른 대학의 위상 변화, 그리고 뿌리 깊게 자리한 수직적인 대학 문화가 선배와 후배 간의 타자화를 공고히 하는 원인이다. 이러한 부정적인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앞서 서로의 거리를 두는 타자화가 문제의 원인이라 지적한 만큼, 궁극적으로 공동체 의식 혹은 연대 의식의 회복을 목표로 해야 할 것이다. 


대학 위상의 회복


첫 번째 해결방안으로 대학의 위상 회복을 들 수 있다. 대학이 단순히 취업을 위해서 거쳐 가는 수단이 아니라, 학문의 장으로서 제 기능을 발휘해야 한다. 대부분의 대학이 내세운 설립 취지이자 목표는 학문에의 정진과 연구이다. 서울대학교의 경우, ‘행복한 배움의 터전’, ‘새로운 학문적 가치 창조의 요람’, ‘실천적 지성의 전당'의 표어를, 한양대학교는 ‘지식과 지혜가 융합된 교육'이라는 표어를 내세우고 있다. 그 외에도 ‘민주교육의 근본이념을 바탕으로 학술이론과 그 응용방법을 교수 연구하는 동시에 국가와 인류사회 발전에 필요한 인재육성'(고려대학교), ‘…연세인은 겨레와 인류의 문화유산을 이어받고 창의력과 비판력을 길러 학문의 발전을 이끌어간다…'(연세대학교)와 같이 대학이 내세운 건학정신이나 이념 등에서 공통적으로 수학(修學)에의 의지를 찾을 수 있다. 하지만 현재 대학의 구조는 산업화와 함께 발맞춰 온 결과이기 때문에 대학이 오직 학문만 추구하는 것은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 현재 사회 흐름을 반영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대학 자체적인 노력도 필요하겠지만, 정부 차원의 정책적인 지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 중에서도 교육부 주도로 이루어지는 현행 대학평가의 지표를 수정해야 한다.

 대학재정지원사업은 전체 대학을 대상으로 지원하는 일반지원사업 방식이었다. 그러나 2004년을 기점으로 교육부의 평가를 통해 일부대학을 선별 지원하는 특수목적지원사업으로 전환됐다. 해당 대학에 재정적인 지원을 할 것인가를 판단하는 지표들 중 상당부분이 성과 위주이다. 12개의 재정 지원 사업의 정량 지표를 분석해 보면 교원 확보율(11개), 취업률(10개), 학생 충원률(8개) 순이었다. 

 사실 대학은 정부에서 받는 재정지원을 유지하고 싶기 때문에 이 지표에서 좋은 점수를 받으려고 노력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취업률이 대학의 등급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기에 대학은 취업률을 높이기 위한 정책에 더 힘을 쏟게 된다. 교육부의 ‘사회수요 맞춤형 인재양성 사업’이라는 큰 틀 아래 시행된 프라임 사업(산업연계 교육활성화 선도대학 사업)은, 사실 상 대학 졸업 후 취업만을 고려한 사업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에 편성된 막대한 지원금 때문에 대부분 대학은 이를 받아들여 학업 계획 등을 수정했고, 대학의 취업 지상주의 경향은 보다 심해졌다. 취업률이 낮은 기초학문은 다른 과로 통합하거나 폐지하고, 반대로 취업에 유리한 실용적인 학과는 강화하는 것이 그 사례다. 실제로 수도권의 E여대는 2016년 3월부터 체육과학부, 식품영양학과 그리고 융합보건학과 등 3개의 학과를 융복합해 ‘건강웰니스 뷰티트랙’학과를 신설했고, K대학은 국어국문학과와 전자전파공학과를 융합하여 웹툰창작학과를 신설할 수도 있다고 언급해 교내외로 뭇매를 맞기도 했다. 

정부가 취업률과 같은 성과 위주의 대학 재정지원 평가지표를 고수한다면 대학은 학문의 전당이 아닌 예비산업기지로 전락해 버리고 말 것이다. 교육의 수요를 산업화 이후 변화된 사회의 모습에 일방적으로 맞출 것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된다면 대학은 직접교육을 위한 장으로 그 의미가 퇴색되어 버리고 말 것이다. 그렇기에 정부는 성과를 강요하는 가시적인 지표보다 질적 발전을 추구할 수 있는 지표들을 개발해야 할 것이다. 학생들이 대학에서 취업을 위해 전력투구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학문을 배우고 자유롭게 진로를 결정할 수 있도록 보호해야 한다.

스위스 같은 경우, 대학진학을 목표로 하는 ‘Gymnasium'과 실무위주 직업훈련을 실시하는 직업학교 ‘Berufsschule'로 고교과정이 나뉜다. 학업성적이 뛰어난 소수의 학생만이 ‘Gymnasium'으로 진학하고 70% 이상의 학생들이 ‘Berufsschule'로 진학한다. 동시에 직업교육과 대학교육의 호환성이 좋다. 이는 학생들의 선택을 존중함과 동시에 현실적 여건을 고려하고 있는 제도임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특히, 직업교육 같은 경우 산업체의 적극적 참여를 바탕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정부나 학생의 부담이 덜어지는 한편 보다 실용적인 교육을 보장한다. 스스로의 선택을 존중함과 동시에 나아가 국가의 지속적 발전을 위한 인재 육성에 있어 본받을 만한 시스템이다. 취업률이라는 단순 지표에 학교도 학생도 나아가 정부까지 이중삼중으로 부담을 갖는 대한민국과는 사뭇 다른 양상을 보인다.

학생들이 받는 압박과 부담을 덜기 위해선 정부의 적극적 조치가 필요하다. 물론 취업이라는 목표는 학생들의 자의적 요구일 수도 있다. 이들은 산업화와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구조 내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속되는 취업난 속에서 학생들은 불안에 떨 수밖에 없다. 정부가 직접적으로 나서야 하는 이유이다. 취업에 대한 구조개선이 이루어진다면 구조 속 개인의 인식도 달라질 수 있다. 제 시간 내에 졸업하지 못하고 대학에 남아 있는 선배들을 취업 경쟁에서 패배한 열등한 자로 인식하는 타자화를 행하지도 않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대학 내 구성원들을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단순히 취업에 있어서 잠재적 경쟁자로 의식하며 경계하는 태도도 약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위계질서의 해체 


두 번째 방안으로는 ‘대학 내 수직적인 문화 해체’를 들 수 있다. 학번이 높든 나이가 많든 그것은 권위를 정당화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가 없다. 이러한 해체 작업을 통해 우리는 선배와 후배 상호 간에 이루어지는 타자화를 멈출 수 있다. 위아래가 명확하게 구별되는 수직적인 질서 안에서는 선배에게 권위가 주어졌다. 선배는 후배를 열등한 ‘타자’로 인식하며 “나 때는 이랬는데 너는 왜 그래?”라며 훈수를 두었다. 그리고 후배들은 권위에 억눌려지는 것이 싫어서 선배들을 자신과는 먼 ‘타자’로 인식하고 거리를 두었다. 그런데, 타자화를 가능케 했던 수직적 질서가 사라지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서로를 혐오하는 현상도 사라지게 된다. 우리는 수직적 질서에서 탈피하여 서로 존중하고 협력하는 구조로 나아가야 한다. 이것의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자. 

첫 번째, 위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대학의 수직적인 조직문화가 군대문화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감안했을 때, 구체적인 교육과정을 통해 군 경험에 대한 성찰과 반성이 가능하도록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특히, 복학한 학생들이 군대에서 자신이 경험했던 폭력적인 관계를 비판적으로 소화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군대에서 경험했던 불합리하고 불평등한 관계를 제대 후에 사회에 나와서까지 유지하지 않도록 교육해야 하는 것이다. 군 생활을 하면서 내면적인 상처나 트라우마가 생겼다면 이를 치유할 수 있는 장치도 마련해야 한다. 대학은 이를 위해 상담 프로그램 등을 제공할 수 있겠다. 대학은 개인에게 상담 서비스 등을 제공하여 마음속에 있는 상처들이 치유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물론 이 과정 속에서 국방의 의무를 마치고 돌아온 복학생들을 일방적인 치료의 대상으로 취급하면서 그들의 자존감에 상처를 입히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리고 이 일련의 과정들이 국방부와 대학의 공식 협조 하에 진행된다면 공식성이 부여되면서 많은 군 유경험자들이 혜택을 받고 여러 대학들이 참여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두 번째, 신입생들을 위한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 수직적인 조직 문화는 신입생 환영회와 같은 모임에서 형성되며 발전, 계승되기도 한다. 선배들이 주도적으로 폭력적인 악습들 이를테면 얼차려, 사발식 등을 공공연히 행하기 때문이다. 대학은 이러한 바람직하지 못한 관행들을 근절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이제 갓 대학에 입학한 신입생들은 나이나 학번을 기준으로 한 수직적 질서 내에서는 최하층에 속한다. 그러므로 선배들은 자신의 위치를 활용하여 자연스럽게 권력을 행사한다. 개인의 의사를 무시한 채, 술잔을 거부하지 못하도록 압력을 행사하는 것처럼 말이다. 신입생 환영회 때 강압적인 문화를 경험한 신입생들은 이것이 잘못된 것인지 모르고 당연한 전통으로 여기며 자신도 그릇된 방식으로 후배를 대할 가능성이 높다. 폭력적이고 수직적인 대학 문화가 손쉽게 대물림 되는 것이다.

 선, 후배 간 수직적 질서 내에서의 폭력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술 일변도의 신입생 환영회 문화를 바꾸어야 한다. 이는 학생들의 기획력과 아이디어로서 구체적으로 실현될 수 있다. 동양대학교 철도운전제어학과의 사례가 좋은 모범이 된다. 이 학과는 2년째 신입생 환영회를 봉사활동으로 대체했다. 학생회에서 신입생 환영회를 지역사회 봉사활동과 연계한 의미 있는 행사로 진행하고 싶다는 뜻을 풍기읍사무소에 전하면서 이들의 새로운 전통이 시작되었다. 이러한 활동에 대한 신입생들의 반응도 호의적이다. 18학번 김모군은 “교수님, 선배들과 함께 봉사활동을 하는 것으로 대학생활을 시작하는 것이 좋았습니다. 어르신들을 보며 봉사와 나눔의 참의미를 느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라고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이렇게 의미 있는 활동들로 신입생 환영회를 만들어 간다면 구성원들이 행사에 참여하며 보람을 느끼기 때문에 자신이 속한 집단에 대해 소속감을 느낄 수 있게 된다. 이를 통해, 대학 내에서 서로에 대해 적대적인 시선을 보내는 타자화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타자에서 우리로


누군가는 ‘화석’이니 ‘고인돌’이니 하는 단어들을 단순한 조롱이나 미성숙한 의식 때문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현재 대학 내에 몸담고 있는 공동체의 일원이 아닌 이상 언어 속에 숨겨져 있는 선후배간 미묘한 갈등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조롱의 기반이 타자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사실 타자화는 비단 대학 내의 문제만은 아니다. 현재 우리 사회가 직면한 가시적인 큰 갈등들은 타자화가 씨앗이 되어 생겨난 문제들이다. 최근, 제주도에 입국한 예멘 난민 500여 명에 대해서 혐오의 시선을 보내는 것도 이방인들에 대해서 배타적인 시선을 보내는 타자화 문제이다. “무슬림은 여성을 깔보는 문화를 가졌기 때문에 예멘 난민들은 한국 여성들을 강간할 것이다.” “무슬림들은 모두 테러리스트이기 때문에 한국에 정착하면 과격한 폭동을 일으킬 것이다.” 이것 외에도 무슬림에 대한 여러 선입견들은 난민들에 대한 적대감을 더욱 증폭시켰다. 이러한 타자화는 대한민국이 다름을 존중하는 다문화 사회로 발전하지 못하게 한다.

이렇게 타자화가 여러 사회적 문제들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감안했을 때, 우리는 대학 내 타자화에 대한 심각성을 인지하고 나아가 해결을 위한 논의를 진행해야 한다. 대학생들은 사회로의 진입을 앞두고 있고, 멀지 않은 미래에 사회를 이끌어갈 주역이 될 것이다. 그런 이들이 대학에서부터 타자화를 내면화한 채 사회로 진출한다면 기존의 사회 안에 산재하고 있는 갈등은 물론이거니와, 새로운 갈등에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없을 것이다.

 장 폴 사르트르의 희곡 <닫힌 방>에서는 “타인은 나의 지옥이다.”라고 하는 대사가 나온다. 타인에게서 찾는 단점은 사실 자신이 가진 단점의 투영일 뿐이다. ‘타인’을 생성해내는 순간 스스로의 인식적 편협함이 드러나게 된다. 타자화 현상은 타자가 사라져야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타자를 만들어 낸 ‘나’의 잘못된 인식을 바꾸어야 종결될 수 있는 문제이다. 학교에 오래 남아 있는 선배를 자신과는 다른 ‘타자’로서 인식하고 혐오의 시선을 보내는 것은 내가 취업 지상주의라고 하는 타성에 젖어있던 탓이고, 선배가 후배를 ‘예의 없다’고 판단해 버리는 것은 내가 후배를 동등한 인격체가 아니라 ‘타자’로 인식한 탓이다. 타자는 실재하지 않는다. 개인의 사고관이 ‘타자’를 만들어낸 것이다. 눈앞의 ‘타자’를 자신의 편협함이 만들어낸 결과임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이로 인한 갈등은 종결되지 않을 것이다.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타자’에서 ‘우리’로 돌아가야 한다. 타자화는 사회적 현상이지만 동시에 개인 혹은 집단의 필요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현상이다. 이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타자화를 중단하고, 공동체 의식의 회복에 힘을 써야 한다. 타자화가 만들어낸 상호 배타적인 관계를 청산하고 상호 협조적인 관계로 돌아갈 때 비로소 캠퍼스는 갈등과 분열로 얼룩진 ‘지옥’이 아니라 서로의 다름을 존중해주고 이해해주는 ‘천국’이 될 것이다. 



참고문헌

1) 대학에 입학한지 일정한 기간이 지난 대학생들을 가리키는 표현. 高학번이 아니라 古학번이다. 반대말은 새내기. 학년이 아닌 학번이 기준이 된다.

2)  http://www.fnnews.com/news/201805211709307607

3) http://www.fnnews.com/news/201805211044117959

4) https://www.dispatch.co.kr/1374939

5) http://news.joins.com/article/22422805

6)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04/17/0200000000AKR20170417150100002.HTML

7) http://magazine.kcue.or.kr/last/popup.html?no=2770

8)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05/18/0200000000AKR20170518048400797.HTML

9) 권인숙, 나윤경, 문현아 "한국과 대만의 대학문화 비교: 위계와 성차별, 폭력의 군대적 징후를 중심으로." 여성학논집 제27집 제1호(2010):145~183

10) http://www.iusm.co.kr/news/articleView.html?idxno=739509

11) 나윤경, 권인숙 "신자유주의적 주체, 한국 대학생들의 선후배 관계에 대한 비판과 성찰." 평생교육학연구 제16권 제2호 (2010):117~144

12) http://khei-khei.tistory.com/2201

13)이사운, 강인훈 "선진국 도제식 직업교육 현장 탐방을 통한 직업교육 발전 방안 모색" 직업교육 선진국 해외탐방 연수보고서 (2016): 7~14

14) 대학가에서 새내기를 맞이할 때 행하는 음주 형태. 새내기가 학생 사회의 일원이 되는 통과의례의 의미가 있기에 식(式)이라는 접미사가 붙여졌다. 냉면 사발과 같은 큰 그릇에 술을 가득 붓고 한 번에 마시는 것이 그 방식으로, 일반적으로 막걸리를 쓰나 여건에 따라서는 소주와 같은 다른 술로 대신하기도 한다.

15) http://www.newsis.com/view/?id=NISX20180319_0000256388&cID=10810&pID=10800

16)http://www.nocutnews.co.kr/news/4992061 


 

‘세대 갈등’이라 하면 무엇이 생각나는가. 흔히 기성세대와 신세대 간의 갈등을 떠올릴 것이다. 그렇기에 대학 내 세대갈등이라는 표현이 낯설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실제로 존재한다. 바로 대학 안 선후배 간의 갈등이다. 

몇 해 전부터 대학을 오래 다닌 고학번들을 ‘화석’, ‘공룡’, ‘암모나이트’ 등 고대 생물에 빗대 희화화 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다음은 실제 기사의 헤드라인이다. “취업준비에 졸업 못했더니 후배들이 ‘화석 선배’ 라네요”, “08학번 대학생, ‘화석 선배’는 서럽다”, “취업난 속 캠퍼스 화석된 나...졸업이 두렵다”. 이를 통해 대학생들이 고학번인 선배들을 고대생물화(化)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과장된 표현에는 선배를 향한 후배들의 심리적 거리감이 여실히 드러난다.

대학 내 세대 갈등 문제에는 소위 ‘꼰대 문화’도 한 몫을 한다. 대학생 1000여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57.6%의 응답자가 선배의 갑질을 경험했다고 한다. 동시에 이런 대학 군기 문화에 대해 79.6%의 응답자들이 ‘어떤 이유에서든 사라져야 마땅하다’고 답했다. 대다수의 학생들이 대학 군기 문화를 경험했을 뿐 아니라 그런 문화를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기존의 세대 갈등은 기성세대와 신세대 간의 가치관과 의식적 차이에 기반을 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학 내 세대 갈등은 기존의 세대 갈등과는 그 양상이 사뭇 다르다. 대학이라는 동일한 공동체에 소속된, 큰 나이차이가 없는 이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캠퍼스 내 세대 갈등, 즉 선후배 간의 갈등을 만든 것일까?


원인은 바로 타자화(他者化)


대학 선후배 사이에 발생하는 갈등의 근본적인 원인은 서로를 ‘타자화(他者化)’한다는 것이다. 타자화는 탈식민주의에 대한 성찰에서 탄생하게 된 개념이다. 식민지배자들은 자신들의 권위와 통치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열등한 타자’를 필요로 했다. 동일자의 반대개념인 ‘타자(the other)'는 자신들과 다른 속성을 지닌 부류, 계층 및 인종을 일컫는다. 결국, 백인들은 자신들의 인종적·문화적·도덕적·지적·기술적 우월성을 확인하고 싶은 욕망 때문에 자신들과 다른 타자(유색인)를 만들어 냈다. 미국의 유명한 문학평론가이자 문명비판론자인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W. Said)는 자신의 저서 <오리엔탈리즘>에서 타자화가 편협한 개념일뿐더러 인식론적 폭력이라고 규정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선배와 후배가 서로를 타자화하는 방식이 상이하다는 점이다. 후배는 대학에 오래 남아 있는 선배를 패배자, 즉 ‘열등한 타자’로서 인식한다. 자신은 이러한 선배와는 다르게 우월한 위치에 서고 싶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그들과 거리를 두려고 한다. ‘나는 저 사람과 다르다’ 라고 하며 구분을 지음으로써 심리적 안정을 얻는다. 그렇기에 고학번 선배라는 존재를 자신에게서 최대한 밀어내려고 한다. 선배는 자신들의 판단 기준을 정상적인 것, 즉 우월한 것으로 믿으며 후배들을 판단한다. 유교문화를 바탕으로 한 대한민국의 나이주의는 상대적으로 연장자에게 보다 더 큰 권력을 안겨준다. 자연히 판단의 주체도 기준도 연장자로부터 나오며, 그에 벗어나는 이들은 ‘열등한 타자’가 된다. 나이주의는 자연스럽게 캠퍼스 내에도 자리를 잡게 되고, 비교적 나이가 많은 선배들이 이 혜택을 얻게 된다. 선배는 자신의 우월성을 드러내기 위해 ‘후배라면 예의 바르게 인사를 해야 된다.’, ‘호칭은 무조건 ‘선배님’으로 통일하여 사용해야 한다.’ 등 후배들의 행동을 제약하는 규정들을 만들어낸다. 자의적으로 만들어낸 이러한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후배는 ‘열등한 타자’로 낙인찍는다. 후배들의 타자화가 선배들에게 최대한 거리를 두려고 하는 ‘밀어내기’의 방식이라면, 선배들의 타자화는 후배들을 자신의 틀에 맞게 개조하려고 자신의 쪽으로 끌어오는 ‘당기기’의 타자화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밀고 당기기의 팽팽한 타자화는 깊은 갈등의 골을 만들어 냈다. 서로를 타자로서 바라보고 거리를 두니 협력을 기대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대학 구성원인 이들의 와해는 나아가 건설적인 대학의 발전을 기대키 어렵게 한다. 선후배 갈등의 파급력은 대학 내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는 사회 전반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이미 우리 사회는 성별과 종교, 그리고 정치적 성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기준에 의한 타자화로 넘쳐난다. 대학생들마저 나와는 다른 대상을 혐오하는 타자화를 내면화 한 채 사회에 진입한다면, 우리 사회는 갈등과 반목을 일삼으며 분열될 수 있다.

선배들의 타자화는 자신의 사고방식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소위 ‘꼰대 문화’를 기반으로 한다. 이는 요즘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갑질 문화’와도 연결이 된다. 학교에서 자신이 가진 권위를 바탕으로 후배를 억누르는 것이 용인된다면, 자연스럽게 사회에서도 부당한 권력을 행사하는 것에 익숙해질 수 있다. 자신보다 낮은 위치에 있다고 판단되는 타자에게 육체적, 정신적, 언어적 폭력을 휘두르는 것에 둔감해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갑질은 수많은 피해자들을 양산하기 때문에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만들기 위해 청산돼야 할 적폐나 다름없다. 그렇기에 성인 시기 사회생활의 시발점이 되는 대학에서부터 선, 후배 사이의 갑질 문화는 정리 되어야 한다. 상호 간의 타자화라는 문제 인식과 원인 파악, 나아가 해결 방안에 대한 논의가 시급한 까닭이다.


변화하는 대학의 위상


대학 내 타자화를 만들고 부추긴 원인을 몇 가지로 분석할 수 있다. 첫 번째 원인은 변화한 대학의 위상이 만들어낸 구조에서 찾을 수 있다. 과거의 대학은 학문의 전당이자 동시에 엘리트 교육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대학 위상은 어떠한가. 통계청이 발표한 ‘2017 청소년 통계’에 따르면, 2016년 13~24세 청소년의 51.1%는 좋은 직업을 갖기 위해 대학에 진학할 것이라고 답했다. 이제 대학은 더 이상 학문의 전당이 아닌 취업의 관문처럼 여겨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무엇보다 경제성장을 최우선으로 삼은 국가 정책의 결과이다. 대학의 수가 크게 증가한 시점은 박정희 정부가 경제개발과 조국 근대화의 기치를 내걸고 산업화에 착수하기 시작한 1960년대부터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이십여 년 간 대한민국은 폭발적인 경제성장을 이룩해냈다. 경제성장의 기류에 힘입어 기업들 또한 하루가 다르게 성장해갔고, 고학력의 신입사원들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대학 졸업자의 공급이 사회의 수요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에 당시 대학 졸업자는 쉽게 기업에 취업할 수 있었다. 변화하는 사회의 요구에 따라 대학은 학생 모집 정원을 증원했고, 고등학생들의 대학 진학률은 높아져갔다. 통계청에 따르면 1980년의 대학 진학률은 23.7%에 불과했다. 하지만 1985년에 36.4%로 소폭 상승했고 10년 후인 1995년에는 전체 고등학생의 50%를 넘기게 되었다. 치솟는 대학 진학률은 2007년 82.8%를 기록하면서 정점을 찍었다. 이렇듯 점차 대학 진학률이 늘어가면서, 대학은 소수의 엘리트 교육기관에서 다수의 보편 교육기관으로 변모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대학 진학률의 가파른 증가세와는 반대로, 대한민국의 경제 성장은 1980년대를 기점으로 둔화되었다. 더 이상 기업은 나날이 늘어가는 대학 졸업자를 수용할 능력이 없다. 졸업 후 잉여 인력이 늘어가기 시작했고 2018년 현재, 역대 최악의 청년 실업률을 기록하기에 이르렀다. 통계청이 발표한 ‘4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청년(15~29세)의 실업률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0.3% 포인트가 증가해 11.2%를 기록했다고 한다. 이는 통계 작성을 시작한 1999년 6월 이후 역대 최고 수치이다. 동시에 모든 연령 계층 중에서도 가장 높은 비율이다. 

취업을 위해 대학에 진학한 이들에게 대학은 더 이상 학문의 장이 아니다. 취업이라는 목표 하에 잠시 혹은 필수적으로 거쳐 가야 하는 곳이자 치열하게 싸워야 하는 경쟁의 장일뿐이다. 그 결과 현대의 대학은 공동체적 연대의식을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다. 이런 구조는 타자화를 더더욱 부추긴다. 졸업할 시기가 지났음에도 대학에 남아있는 고학번들이 그 타겟이 되었다. 대학에서 직장으로 자리를 옮기지 못한 이들은 ‘이상적 지향’에서 도태된 이들로 여겨지게 되었다. 그들의 실제 목표가 취업이든 아니든, 후배들에게 그들은 경쟁에서 밀려난 패배자인 동시에 자신들을 위협하는 잠재적 경쟁자인 것이다. ‘화석’이라는 과장된 조롱과 배척은 이런 배경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 


수직적인 대학 문화


선후배 간의 수직적인 조직문화도 타자화의 불씨를 지핀 또 다른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그렇다면, 대학 안에 수직적인 문화가 어떻게 자리 잡게 된 것일까? 직접적인 원인은 제대한 복학생이 자신이 몸소 경험하고 체득했던 ‘군대문화’를 대학에 그대로 이식했다는 것이다.

“엠티를 갔는데 복학생 선배들이 우리 과가 단합이 되어야 한다면서 겁을 줬어요. 발 같은 거 맞추라고 하고 안 맞추면 뒤에서 욕하고 벌주고 그랬어요. 각 지점에서 빨간 모자를 쓰고 군복을 착용한 채 교관처럼 서 있어서 딴 짓을 할 수가 없었어요.”(경기지역 남녀공학 대학교에 재학 중인 B양의 사례) 

우리는 이런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군대문화가 대학에 어떻게 직접적으로 침투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군 유경험자들은 군대에서 착용했음직한 빨간 모자와 심지어는 군복을 입고 학생들의 단체수련에 참여한다. 대학생들의 MT(Membership Training)가 영문 그대로 구성원들의 집단 훈련임을 드러내는 것은 물론, 선배들이 일방적으로 후배들을 훈련시키고 있음을 보여준다. 복학생들은 그들이 군대에서 받았던 훈련을 대학에서 재현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제대한 선배들이 권력을 행사할 수 있었을까? 이는 예비역들에 대한 ‘어른스럽다’ 또는 ‘믿음직스럽다’라고 하는 사회적 인식에서 비롯됐다. 이러한 통념 때문에 복학생들은 학과 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이에 반해 대학 1~2학년 남학생들은 군 입대라고 하는 현실을 핑계로 학과 공부에 집중하기보다 술자리와 같이 동기들과의 인간관계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러한 모습은 ‘예비역’에게 주어지는 이미지와 대조를 이루면서 “군대를 다녀와야 철이 든다.”라는 담론에 더욱 설득력을 부여하는 역할을 한다. 이렇게 예비역 선배들은 자연스럽게 학교 내에서 권력을 잡게 되고, 군대 문화는 재생산 된다.

이러한 수직적인 군대문화는 공식적인 영역에서 후배들을 통제하는 도구로 사용된다. 특히 학교 축제 같은 행사에는 천막을 세우고 책상을 옮기는 등 노동력이 필요한 일들이 많다. 그 때문에 스스로 힘이 우월하다고 여기는 남학생들이 운영진의 역할을 맡아서 행사를 주최하게 된다. 이 때 복학생들은 효율적인 운영이라고 하는 미명하에 자신들이 익혔던 군대 문화를 활용하며 후배들을 통제한다. 

실제적인 사례를 통해 살펴보자. 충남 지역 K대학의 한 학과 신입생들은 2017년 4월에 열린 체육대회를 위해 군대에서나 할 법한 불침번을 서야만 했다. 대회 연습용 운동장을 차지하려면 누군가 밤새 자리를 지켜야만 했기 때문에 힘이 없는 신입생들이 집단을 위해서 희생을 강요당한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2016년에는 같은 학과 홍보행사에서 저학년들끼리 짝을 지어 대학가 주변 상권에서 60~70만원 상당의 후원금을 받아온 적도 있다. 이 기상천외한 행동들은 모두 선배들이 강압적으로 후배들에게 시킨 일들이었다. 

이러한 수직적 질서는 ‘일방적 권위’를 낳는다. 이는 개인 존중의 영역까지 침범하여서 어느 누군가에게는 불편을 감수하도록 압박한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위계질서는 대학 내에서 다양한 양상의 폭력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구체적 예시로 살펴보자. 첫 번째로는 ‘물리적 폭력’을 들 수 있다. 실제로 대학생활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대학에서 선배에 의한 신체적 폭력을 당하거나 목격한 적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남학생의 21.9%, 여학생의 10.2%가 그렇다는 응답을 했다. 두 번째 형태는 음주 강요이다. 대학생의 67.5%는 강제로 술을 먹어본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세 번째는 언어폭력이다. ‘대학에서 선배에게 욕설 등 언어적 폭력을 당하거나 목격한 적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남학생의 경우 43.6%, 여학생 30%가 그렇다고 응답했다. 

대학 내 수직적인 조직문화는 상대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수용하지 못하게 한다. 상대의 모습을 그대로 보기보단 학번과 나이라는 기준을 먼저 보게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수직적 질서를 내면화한 선배는 후배의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를 재단한다. 후배를 자신과는 다른 타자로 두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후배들의 입장에서 부당하게 느껴질 이런 관행들이 선배를 향한 후배들의 타자화를 진행케 하는 것이다. 결국 불공평하고 불합리한 수직적인 조직문화는 캠퍼스의 건설적 방향으로의 발전에 어떠한 도움도 주지 못한다.


대한민국 근대 경제 발전에 따른 대학의 위상 변화, 그리고 뿌리 깊게 자리한 수직적인 대학 문화가 선배와 후배 간의 타자화를 공고히 하는 원인이다. 이러한 부정적인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앞서 서로의 거리를 두는 타자화가 문제의 원인이라 지적한 만큼, 궁극적으로 공동체 의식 혹은 연대 의식의 회복을 목표로 해야 할 것이다. 


대학 위상의 회복


첫 번째 해결방안으로 대학의 위상 회복을 들 수 있다. 대학이 단순히 취업을 위해서 거쳐 가는 수단이 아니라, 학문의 장으로서 제 기능을 발휘해야 한다. 대부분의 대학이 내세운 설립 취지이자 목표는 학문에의 정진과 연구이다. 서울대학교의 경우, ‘행복한 배움의 터전’, ‘새로운 학문적 가치 창조의 요람’, ‘실천적 지성의 전당'의 표어를, 한양대학교는 ‘지식과 지혜가 융합된 교육'이라는 표어를 내세우고 있다. 그 외에도 ‘민주교육의 근본이념을 바탕으로 학술이론과 그 응용방법을 교수 연구하는 동시에 국가와 인류사회 발전에 필요한 인재육성'(고려대학교), ‘…연세인은 겨레와 인류의 문화유산을 이어받고 창의력과 비판력을 길러 학문의 발전을 이끌어간다…'(연세대학교)와 같이 대학이 내세운 건학정신이나 이념 등에서 공통적으로 수학(修學)에의 의지를 찾을 수 있다. 하지만 현재 대학의 구조는 산업화와 함께 발맞춰 온 결과이기 때문에 대학이 오직 학문만 추구하는 것은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 현재 사회 흐름을 반영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대학 자체적인 노력도 필요하겠지만, 정부 차원의 정책적인 지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 중에서도 교육부 주도로 이루어지는 현행 대학평가의 지표를 수정해야 한다.

 대학재정지원사업은 전체 대학을 대상으로 지원하는 일반지원사업 방식이었다. 그러나 2004년을 기점으로 교육부의 평가를 통해 일부대학을 선별 지원하는 특수목적지원사업으로 전환됐다. 해당 대학에 재정적인 지원을 할 것인가를 판단하는 지표들 중 상당부분이 성과 위주이다. 12개의 재정 지원 사업의 정량 지표를 분석해 보면 교원 확보율(11개), 취업률(10개), 학생 충원률(8개) 순이었다. 

 사실 대학은 정부에서 받는 재정지원을 유지하고 싶기 때문에 이 지표에서 좋은 점수를 받으려고 노력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취업률이 대학의 등급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기에 대학은 취업률을 높이기 위한 정책에 더 힘을 쏟게 된다. 교육부의 ‘사회수요 맞춤형 인재양성 사업’이라는 큰 틀 아래 시행된 프라임 사업(산업연계 교육활성화 선도대학 사업)은, 사실 상 대학 졸업 후 취업만을 고려한 사업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에 편성된 막대한 지원금 때문에 대부분 대학은 이를 받아들여 학업 계획 등을 수정했고, 대학의 취업 지상주의 경향은 보다 심해졌다. 취업률이 낮은 기초학문은 다른 과로 통합하거나 폐지하고, 반대로 취업에 유리한 실용적인 학과는 강화하는 것이 그 사례다. 실제로 수도권의 E여대는 2016년 3월부터 체육과학부, 식품영양학과 그리고 융합보건학과 등 3개의 학과를 융복합해 ‘건강웰니스 뷰티트랙’학과를 신설했고, K대학은 국어국문학과와 전자전파공학과를 융합하여 웹툰창작학과를 신설할 수도 있다고 언급해 교내외로 뭇매를 맞기도 했다. 

정부가 취업률과 같은 성과 위주의 대학 재정지원 평가지표를 고수한다면 대학은 학문의 전당이 아닌 예비산업기지로 전락해 버리고 말 것이다. 교육의 수요를 산업화 이후 변화된 사회의 모습에 일방적으로 맞출 것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된다면 대학은 직접교육을 위한 장으로 그 의미가 퇴색되어 버리고 말 것이다. 그렇기에 정부는 성과를 강요하는 가시적인 지표보다 질적 발전을 추구할 수 있는 지표들을 개발해야 할 것이다. 학생들이 대학에서 취업을 위해 전력투구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학문을 배우고 자유롭게 진로를 결정할 수 있도록 보호해야 한다.

스위스 같은 경우, 대학진학을 목표로 하는 ‘Gymnasium'과 실무위주 직업훈련을 실시하는 직업학교 ‘Berufsschule'로 고교과정이 나뉜다. 학업성적이 뛰어난 소수의 학생만이 ‘Gymnasium'으로 진학하고 70% 이상의 학생들이 ‘Berufsschule'로 진학한다. 동시에 직업교육과 대학교육의 호환성이 좋다. 이는 학생들의 선택을 존중함과 동시에 현실적 여건을 고려하고 있는 제도임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특히, 직업교육 같은 경우 산업체의 적극적 참여를 바탕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정부나 학생의 부담이 덜어지는 한편 보다 실용적인 교육을 보장한다. 스스로의 선택을 존중함과 동시에 나아가 국가의 지속적 발전을 위한 인재 육성에 있어 본받을 만한 시스템이다. 취업률이라는 단순 지표에 학교도 학생도 나아가 정부까지 이중삼중으로 부담을 갖는 대한민국과는 사뭇 다른 양상을 보인다.

학생들이 받는 압박과 부담을 덜기 위해선 정부의 적극적 조치가 필요하다. 물론 취업이라는 목표는 학생들의 자의적 요구일 수도 있다. 이들은 산업화와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구조 내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속되는 취업난 속에서 학생들은 불안에 떨 수밖에 없다. 정부가 직접적으로 나서야 하는 이유이다. 취업에 대한 구조개선이 이루어진다면 구조 속 개인의 인식도 달라질 수 있다. 제 시간 내에 졸업하지 못하고 대학에 남아 있는 선배들을 취업 경쟁에서 패배한 열등한 자로 인식하는 타자화를 행하지도 않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대학 내 구성원들을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단순히 취업에 있어서 잠재적 경쟁자로 의식하며 경계하는 태도도 약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위계질서의 해체 


두 번째 방안으로는 ‘대학 내 수직적인 문화 해체’를 들 수 있다. 학번이 높든 나이가 많든 그것은 권위를 정당화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가 없다. 이러한 해체 작업을 통해 우리는 선배와 후배 상호 간에 이루어지는 타자화를 멈출 수 있다. 위아래가 명확하게 구별되는 수직적인 질서 안에서는 선배에게 권위가 주어졌다. 선배는 후배를 열등한 ‘타자’로 인식하며 “나 때는 이랬는데 너는 왜 그래?”라며 훈수를 두었다. 그리고 후배들은 권위에 억눌려지는 것이 싫어서 선배들을 자신과는 먼 ‘타자’로 인식하고 거리를 두었다. 그런데, 타자화를 가능케 했던 수직적 질서가 사라지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서로를 혐오하는 현상도 사라지게 된다. 우리는 수직적 질서에서 탈피하여 서로 존중하고 협력하는 구조로 나아가야 한다. 이것의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자. 

첫 번째, 위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대학의 수직적인 조직문화가 군대문화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감안했을 때, 구체적인 교육과정을 통해 군 경험에 대한 성찰과 반성이 가능하도록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특히, 복학한 학생들이 군대에서 자신이 경험했던 폭력적인 관계를 비판적으로 소화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군대에서 경험했던 불합리하고 불평등한 관계를 제대 후에 사회에 나와서까지 유지하지 않도록 교육해야 하는 것이다. 군 생활을 하면서 내면적인 상처나 트라우마가 생겼다면 이를 치유할 수 있는 장치도 마련해야 한다. 대학은 이를 위해 상담 프로그램 등을 제공할 수 있겠다. 대학은 개인에게 상담 서비스 등을 제공하여 마음속에 있는 상처들이 치유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물론 이 과정 속에서 국방의 의무를 마치고 돌아온 복학생들을 일방적인 치료의 대상으로 취급하면서 그들의 자존감에 상처를 입히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리고 이 일련의 과정들이 국방부와 대학의 공식 협조 하에 진행된다면 공식성이 부여되면서 많은 군 유경험자들이 혜택을 받고 여러 대학들이 참여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두 번째, 신입생들을 위한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 수직적인 조직 문화는 신입생 환영회와 같은 모임에서 형성되며 발전, 계승되기도 한다. 선배들이 주도적으로 폭력적인 악습들 이를테면 얼차려, 사발식 등을 공공연히 행하기 때문이다. 대학은 이러한 바람직하지 못한 관행들을 근절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이제 갓 대학에 입학한 신입생들은 나이나 학번을 기준으로 한 수직적 질서 내에서는 최하층에 속한다. 그러므로 선배들은 자신의 위치를 활용하여 자연스럽게 권력을 행사한다. 개인의 의사를 무시한 채, 술잔을 거부하지 못하도록 압력을 행사하는 것처럼 말이다. 신입생 환영회 때 강압적인 문화를 경험한 신입생들은 이것이 잘못된 것인지 모르고 당연한 전통으로 여기며 자신도 그릇된 방식으로 후배를 대할 가능성이 높다. 폭력적이고 수직적인 대학 문화가 손쉽게 대물림 되는 것이다.

 선, 후배 간 수직적 질서 내에서의 폭력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술 일변도의 신입생 환영회 문화를 바꾸어야 한다. 이는 학생들의 기획력과 아이디어로서 구체적으로 실현될 수 있다. 동양대학교 철도운전제어학과의 사례가 좋은 모범이 된다. 이 학과는 2년째 신입생 환영회를 봉사활동으로 대체했다. 학생회에서 신입생 환영회를 지역사회 봉사활동과 연계한 의미 있는 행사로 진행하고 싶다는 뜻을 풍기읍사무소에 전하면서 이들의 새로운 전통이 시작되었다. 이러한 활동에 대한 신입생들의 반응도 호의적이다. 18학번 김모군은 “교수님, 선배들과 함께 봉사활동을 하는 것으로 대학생활을 시작하는 것이 좋았습니다. 어르신들을 보며 봉사와 나눔의 참의미를 느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라고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이렇게 의미 있는 활동들로 신입생 환영회를 만들어 간다면 구성원들이 행사에 참여하며 보람을 느끼기 때문에 자신이 속한 집단에 대해 소속감을 느낄 수 있게 된다. 이를 통해, 대학 내에서 서로에 대해 적대적인 시선을 보내는 타자화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타자에서 우리로


누군가는 ‘화석’이니 ‘고인돌’이니 하는 단어들을 단순한 조롱이나 미성숙한 의식 때문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현재 대학 내에 몸담고 있는 공동체의 일원이 아닌 이상 언어 속에 숨겨져 있는 선후배간 미묘한 갈등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조롱의 기반이 타자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사실 타자화는 비단 대학 내의 문제만은 아니다. 현재 우리 사회가 직면한 가시적인 큰 갈등들은 타자화가 씨앗이 되어 생겨난 문제들이다. 최근, 제주도에 입국한 예멘 난민 500여 명에 대해서 혐오의 시선을 보내는 것도 이방인들에 대해서 배타적인 시선을 보내는 타자화 문제이다. “무슬림은 여성을 깔보는 문화를 가졌기 때문에 예멘 난민들은 한국 여성들을 강간할 것이다.” “무슬림들은 모두 테러리스트이기 때문에 한국에 정착하면 과격한 폭동을 일으킬 것이다.” 이것 외에도 무슬림에 대한 여러 선입견들은 난민들에 대한 적대감을 더욱 증폭시켰다. 이러한 타자화는 대한민국이 다름을 존중하는 다문화 사회로 발전하지 못하게 한다.

이렇게 타자화가 여러 사회적 문제들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감안했을 때, 우리는 대학 내 타자화에 대한 심각성을 인지하고 나아가 해결을 위한 논의를 진행해야 한다. 대학생들은 사회로의 진입을 앞두고 있고, 멀지 않은 미래에 사회를 이끌어갈 주역이 될 것이다. 그런 이들이 대학에서부터 타자화를 내면화한 채 사회로 진출한다면 기존의 사회 안에 산재하고 있는 갈등은 물론이거니와, 새로운 갈등에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없을 것이다.

 장 폴 사르트르의 희곡 <닫힌 방>에서는 “타인은 나의 지옥이다.”라고 하는 대사가 나온다. 타인에게서 찾는 단점은 사실 자신이 가진 단점의 투영일 뿐이다. ‘타인’을 생성해내는 순간 스스로의 인식적 편협함이 드러나게 된다. 타자화 현상은 타자가 사라져야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타자를 만들어 낸 ‘나’의 잘못된 인식을 바꾸어야 종결될 수 있는 문제이다. 학교에 오래 남아 있는 선배를 자신과는 다른 ‘타자’로서 인식하고 혐오의 시선을 보내는 것은 내가 취업 지상주의라고 하는 타성에 젖어있던 탓이고, 선배가 후배를 ‘예의 없다’고 판단해 버리는 것은 내가 후배를 동등한 인격체가 아니라 ‘타자’로 인식한 탓이다. 타자는 실재하지 않는다. 개인의 사고관이 ‘타자’를 만들어낸 것이다. 눈앞의 ‘타자’를 자신의 편협함이 만들어낸 결과임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이로 인한 갈등은 종결되지 않을 것이다.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타자’에서 ‘우리’로 돌아가야 한다. 타자화는 사회적 현상이지만 동시에 개인 혹은 집단의 필요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현상이다. 이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타자화를 중단하고, 공동체 의식의 회복에 힘을 써야 한다. 타자화가 만들어낸 상호 배타적인 관계를 청산하고 상호 협조적인 관계로 돌아갈 때 비로소 캠퍼스는 갈등과 분열로 얼룩진 ‘지옥’이 아니라 서로의 다름을 존중해주고 이해해주는 ‘천국’이 될 것이다. 



참고문헌

1) 대학에 입학한지 일정한 기간이 지난 대학생들을 가리키는 표현. 高학번이 아니라 古학번이다. 반대말은 새내기. 학년이 아닌 학번이 기준이 된다.

2)  http://www.fnnews.com/news/201805211709307607

3) http://www.fnnews.com/news/201805211044117959

4) https://www.dispatch.co.kr/1374939

5) http://news.joins.com/article/22422805

6)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04/17/0200000000AKR20170417150100002.HTML

7) http://magazine.kcue.or.kr/last/popup.html?no=2770

8)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05/18/0200000000AKR20170518048400797.HTML

9) 권인숙, 나윤경, 문현아 "한국과 대만의 대학문화 비교: 위계와 성차별, 폭력의 군대적 징후를 중심으로." 여성학논집 제27집 제1호(2010):145~183

10) http://www.iusm.co.kr/news/articleView.html?idxno=739509

11) 나윤경, 권인숙 "신자유주의적 주체, 한국 대학생들의 선후배 관계에 대한 비판과 성찰." 평생교육학연구 제16권 제2호 (2010):117~144

12) http://khei-khei.tistory.com/2201

13)이사운, 강인훈 "선진국 도제식 직업교육 현장 탐방을 통한 직업교육 발전 방안 모색" 직업교육 선진국 해외탐방 연수보고서 (2016): 7~14

14) 대학가에서 새내기를 맞이할 때 행하는 음주 형태. 새내기가 학생 사회의 일원이 되는 통과의례의 의미가 있기에 식(式)이라는 접미사가 붙여졌다. 냉면 사발과 같은 큰 그릇에 술을 가득 붓고 한 번에 마시는 것이 그 방식으로, 일반적으로 막걸리를 쓰나 여건에 따라서는 소주와 같은 다른 술로 대신하기도 한다.

15) http://www.newsis.com/view/?id=NISX20180319_0000256388&cID=10810&pID=10800

16)http://www.nocutnews.co.kr/news/4992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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