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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에세이, 미래전략연구를 통한 다양한 연구결과물

연구결과물

연구도서
[2018 청년 에세이 우수상 04]이념의 경계 넘기 – 상호이해(mutual understanding)를 향해
  • 저자
  • 이태운(연세대)
  • 발행일
  • 2018-10-01
요 약
“인간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이다.” 카를 마르크스의 유명한 경구다. 
그는 경제구조가 정치, 문화, 역사 등 사회의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가 만약 한국 사회를 본다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인간의 역사는 이념투쟁의 역사이다.”
이념은 이상적으로 여겨지는 견해다. 따라서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항상 이념 갈등이 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념이라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았던 과거 부족사회에도 이념으로 인한 대립은 존재했다. 당시에는 식량 배분, 부족장 선출, 전쟁 여부 등을 둘러싸고 갈등이 있었을 것이다. 이념 갈등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있을 수밖에 없고 있어야만 하는 필수요소다. 다양한 의견이 사회를 건강하고 풍요롭게 한다. 그러나 이념의 양극화와 갈등이 극심해져 합리적 사고와 의사소통을 저해한다면 이는 해결해야 할 문제가 된다.
한국 사회에서 이념 갈등은 큰 사회적 손실을 초래하는 명백한 ‘문제’다. 이에 그 원인을 파악하고 해결방안을 도출하기 위해 수많은 연구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념 갈등 해소는 요원하기만 하다. 그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기존의 국내 연구는 이념의 사회적 ‘배태성(embeddedness)’을 간과했다. 배태성은 사회학자 마크 그라노베터(Mark Granovetter)의 개념이다. 그는 인간의 경제행위가 가족, 친구, 직장동료, 선후배 등과의 사회적 관계(social relations)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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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차

시작하며

이념의 사회적 배태성(embeddedness)

유유상종(homophily)과 강한 연결(strong tie), 그리고 이념 양극화(bipolarization)

양극화에서 이념 갈등으로

티끌 모아 태산

이념의 경계 넘기 – 상호이해(mutual understanding)를 향해

맺으며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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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용
[2018 청년 에세이 우수상 04]이념의 경계 넘기 – 상호이해(mutual understanding)를 향해
이태운(연세대)

이념의 사회적 배태성(embeddedness)

 

인간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이다.” 카를 마르크스의 유명한 경구다. 그는 경제구조가 정치, 문화, 역사 등 사회의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가 만약 한국 사회를 본다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인간의 역사는 이념투쟁의 역사이다.”

 

          이념은 이상적으로 여겨지는 견해다. 따라서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항상 이념 갈등이 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념이라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았던 과거 부족사회에도 이념으로 인한 대립은 존재했다. 당시에는 식량 배분, 부족장 선출, 전쟁 여부 등을 둘러싸고 갈등이 있었을 것이다. 이념 갈등 자체는문제가 아니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있을 수밖에 없고 있어야만 하는 필수요소다. 다양한 의견이 사회를 건강하고 풍요롭게 한다. 그러나 이념의 양극화와 갈등이 극심해져 합리적 사고와 의사소통을 저해한다면 이는 해결해야 할 문제가 된다.         

          한국에서 현대적 의미의 이념 갈등은 구한말 이후에 시작되었다. 이때부터 서구로부터 여러 이데올로기가 본격적으로 유입되기 시작했다. 자유주의와 개인주의, 사회주의와 전체주의와 같은 용어가 신문과 서적, 대학을 통해 소개되었다. 이후 일제강점기와 전쟁, 군사정권, 민주화를 거치며 이념의 지형도는 더욱 복잡해졌고 양극화되어 갈등이 심화되었다. 한국의 사회갈등지수는 OECD 회원국 가운데 매년 최상위권을 차지하며, 이념 갈등이 그 핵심요인으로 꼽힌다. 정치인과 시민을 막론하고 진보와 보수라는 이름 아래 갈등과 반목이 지속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이념 갈등은 큰 사회적 손실을 초래하는 명백한문제. 이에 그 원인을 파악하고 해결방안을 도출하기 위해 수많은 연구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념 갈등 해소는 요원하기만 하다. 그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기존의 국내 연구는 이념의 사회적배태성(embeddedness)’을 간과했다. 배태성은 사회학자 마크 그라노베터(Mark Granovetter)의 개념이다. 그는 인간의 경제행위가 가족, 친구, 직장동료, 선후배 등과의 사회적 관계(social relations)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보험판매원으로 일하는 지인의 부탁으로 더 좋은 보험상품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추천하는 보험에 가입하는 것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를 두고 경제행위가 사회적 관계에배태되어 있다고 한다.

          이처럼 배태성은 원래 경제행위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된 개념이다. 하지만 정치적 이념도 사회적 관계에 배태되어 있다. 개인의 이념이 형성, 수정, 때로 폐기되는 과정은 사회적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 이념은 혼자 책상에 앉아 독서나 연구, 인터넷 검색을 하여 얻는 것이 아니다. 이념은 사회적 관계 속에서 빚어진다. 인간은 집단과 조직에 속해 타인과 교류하며 이상적인 사회에 대한 신념을 만들어 나간다. 그러므로 사회적 관계가 이념 갈등에 미치는 영향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6년 전에야 비로소 이에 관한 이론적 논의가 시작됐고, 실증 연구는 아직 미비하다.

         둘째, 지금까지의 연구는 이념 갈등의 해결 주체로서 개인의 역할과 잠재성에 주목하지 않았다. 정치구조와 제도, 정당과 언론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논의가 대부분이었다. 이념 갈등에 이 같은 개인 외부의 거시적 요소가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이념을 담지하고 타인과 갈등하는 것은 각 개인이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행동해야 할 주체도 결국 개인이다. 또한,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념은 사회적 관계에 배태되어 있다. 사회적 관계는 개인이 모여 형성하고 유지한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이념 갈등 해소에 있어 개인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진다. 사회적 변화는 구성원 개인이 변해야 비로소 가능하다.

          이 글은 우선 사회적 관계 속 유유상종(homophily) 효과를 중심으로 이념 양극화가 계속되는 원인을 살펴볼 것이다. 이어서 양극화가 사회적 갈등으로 이어지는 메커니즘을 간략하게 논한 뒤, 이념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개인적 차원의 실천 방안을 제시할 것이다.

 

유유상종(homophily)과 강한 연결(strong tie), 그리고 이념 양극화(bipolarization)

          유유상종은 자신과 유사한 특성을 공유하는 대상과의 상호작용을 선호하는 경향을 의미한다. 쉽게 말해끼리끼리 논다는 것이다. 유유상종은 나이, 민족, 종교 등 다양한 차원에서 발생하지만 여기서는 이념적 차원만 다루기로 한다. 유유상종이 일어나는 근본 원인 중 하나는 동질성(homogeneity)이 주는 심리적 편안함이다. 자신과 생각이 비슷한 사람과 어울리면 마찰의 가능성이 적고 편안함을 느낀다. 상대를 이해하고 공감하기도 비교적 쉽다. 반면에 이질성(heterogeneity)은 불편함을 야기한다. 생각이 다르기에 이해와 공감이 어렵고 다툴 일이 많다.

          이념은 이상적인 사회의 모습을 담고 있다. 점심 메뉴를 두고도 싸우는 일이 흔한데, 바람직한 세상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의견이 일치하기는 힘들다. 더군다나 이념에는 개인사, 가치관, 계층, 직업 등 수많은 요인이 영향을 준다. 따라서 동질성의 편안함과 이질성의 불편함 간의 차이는 이념의 영역에서 그 어떤 영역보다도 크다. 이에 비슷한 이념을 가진 사람끼리 어울리게 된다. 정치적, 이념적 유유상종은 이렇게 생겨나고 지속된다.

          사회적 관계 속에는 친밀하고 자주 만나는 사람도 있지만 기본 신상만 알고 지내는 사람도 있다. 사회 연결망 이론(Social Network Theory)에서는 전자를 강한 연결(strong tie), 후자를 약한 연결(weak tie)이라 부른다. 유유상종과 강한 연결은 상호보완적이다. 우선, 유유상종은 강한 연결을 낳는다. 동질적인 이들끼리 어울리면 편안함을 느끼고 더 자주 만나 친밀도가 증가하기 때문이다. 시민단체 회원들이 끈끈한 유대를 나누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처음에는 이념이 닮아 함께 활동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정서적 유대가 형성되는 것이다. 거꾸로, 친밀하고 접촉이 빈번한 이들은 유사해진다.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으면 같은 경험을 하기 마련이며 대화와 상호이해의 가능성이 커진다. 가족끼리 비슷한 정치성향을 공유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실제로 친밀한 관계, 즉 강한 연결에서는 이념적 유유상종 정도가 높다. <그림 1>은 친밀도와 정치에 관한 토론, 정치적 의견 차이 사이의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그림 1>에 따르면 지인, 친구, 친한 친구, 가족 순으로 관계가 친밀할수록 정치적 쟁점에 관해 대화 자체는 많이 하지만 의견 차이는 감소한다. 강한 연결일수록 이념적 동질성이 증가하는 것이다.

          사회 전반에 유유상종 경향이 짙어지면 이념 양극화(bipolarization)가 가속화된다. 그 이유는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동질적인 이들끼리 교류하면 정보를 편향적으로 습득한다. 자신들의 이념에 부합하지 않는 정보는 사실이 아니거나 옳지 않은 것으로 여겨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이를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이라 한다. 확증 편향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동질적 네트워크에서는 편향에 제동을 걸어줄 사람이 없어 그 정도가 심해진다.

          둘째, 극단적인 의견과 행동이 수용될 가능성이 높다. 다양한 견해를 가진 사람이 공존하면 극단주의자는 주류가 되기 어렵다. 반대파나 중도파에 의해 저지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질적 네트워크에서는 적어도 기본적인 이념과 사고방식, 방향성이 공유된다. 그러므로 극단주의자가 구성원의 동의를 구하기 쉽다.

          셋째, 유유상종에 동반되는 강한 연결 특유의 유대감과 친밀감이 네트워크를 결속한다. , 이념적 동질성에 정서적 동질성이 더해져 극단화 경향이 강화된다. 감정을 공유하는 집단은 이념으로만 뭉친 집단보다 단단하고 폐쇄적이다.

          넷째, 극단화에 거부감을 느끼는 이들이 네트워크를 떠나 동질성과 극단성이 더욱 증가한다. 그들의 이탈이 일종의 피드백(feedback) 작용을 하는 것이다.

          이처럼 유유상종은 동질적 네트워크의 극단화를 일으키고 양극화를 심화한다. <그림 2>는 유유상종으로 인한 양극화를 간단한 그래프로 보여준다.

 

양극화에서 이념 갈등으로

          양극화가 반드시 갈등으로 이어지진 않는다. 양극화는 이념 갈등의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이념 갈등이 발생하려면 양극화 외에 세 가지 조건이 더 갖추어져야 한다. 첫째, 의사 표현과 행동의 자유다. 자유 없이는 이념 갈등도 존재할 수 없다. 이념 갈등은 이념에 따른 목표와 이해관계가 달라 생겨난다. 따라서 이념 갈등이 나타나려면 최소한 자신의 이념에 근거해 의견을 제시하고 행동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 있어야 한다. 만약 한 절대왕정 국가에서 신하 간, 백성 간의 이념은 극명히 갈리지만 왕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의견 표명을 하지 못한다면, 양극화는 존재하나 이념 갈등은 없다고 보아야 한다.

          둘째, 한정된 자원이다. 이념은 법과 정책을 통해 실현된다. 이 과정에 자원이 투입된다. 예산, 인력, 시간 등 모든 것이 자원이다. 자원이 무한하다면 이념 갈등은 일어나지 않는다. 각 집단이 이념에 따라 사용하고 싶은 곳에 사용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자원은 한정되어 있다. 한 집단이 소비한 자원만큼 다른 집단이 소비할 수 있는 자원은 감소한다. 그러므로 이념집단은 한정된 자원을 원하는 곳에 투입하기 위해 경쟁하고 갈등한다.

          셋째, 타협 부족이다. 각 집단의 이념이 명확하고 자원이 한정되어 있어도 타협이 이루어지면 이념 차이는 갈등으로까지 확대되지 않는다. 대화와 협의로 서로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중간지점을 구축한다. 반면에 타협이 부족하면 갈등이 쉽게 불거진다. 더군다나 중간지점은 중도층의 영역이다. 중도층은 이념의 가교다. 진보와 보수를 이어주고 타협의 장을 연다. 그러나 <그림 2>에서 볼 수 있듯이 양극화는 중도층을 약화하고 타협의 가능성 줄인다. 타협되지 못한 차이는 이념 갈등이 된다.

 

티끌 모아 태산

          위에서 밝힌 것처럼 이념 갈등 자체는 문제라 할 수 없다. 누구에게나 표현의 자유, 행동의 자유가 있다면 이념 갈등은 당연히 일어날 수밖에 없다. , 이념 갈등이 있다는 사실은 오히려 사회가 자유민주주의에 기반하고 있음을 보이는 방증이다. “내가 사는 곳에는 이념 갈등이 없다.”라고 말하는 이가 있다면, 그 사람은 상상 속의 유토피아나 북한과 같은 독재 사회에 살고 있을 것이다. 어느 정도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고 가용 자원과 타협 가능성에 한계가 있는 대부분의 현실 사회에서 이념 갈등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이념 갈등은 해결이 절실한 사회적 문제다. 끝없는 시기와 대립이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야기하여 사회 안정과 발전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사회 문제는 거대하다. 한 사회의 역사, 문화, 정치, 경제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한다. 그래서 이념 갈등 해소에 관해서 항상정치구조 변화”, “공정한 언론”, “성숙한 정치문화 창조”, “균형 잡힌 역사 정립과 같은 거시적 담론이 수없이 오간다. 필자는 이러한 방법을비투비(Big to Big)’라고 부른다. 큰 문제는 큰 도구로 해결한다는 뜻이다. 비투비 방식은 물론 중요하다. 이념 갈등은 그 원인과 양상이 복잡하고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도 크기 때문에 그에 걸맞은 거시적인 해결책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비투비 접근은 그런 만큼 추상적이고 공허하다. 예컨대, 정당이 이념 갈등을 증폭시킨다는 문제의식하에 정당구조 개선이 해결 방안으로 줄기차게 제시되어 왔다. 하지만 한국의 정당구조는 지금까지 큰 변화가 없으며 정당 간, 그리고 유권자 간 이념 갈등은 지속되고 있다. 사회 문제는 워낙 다루기 까다롭기 때문에 해결이 어렵긴 하나, 지금까지의 비투비 방식이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지 못했다는 점은 틀림없다.

          필자는티투비(Tiny to Big)’ 방식을 제안한다. 이는 이념 갈등을 개인의 작은 행동 변화로부터 시작해 해결하려는 전략이다. 이념 갈등 해소에 있어 개인의 힘은 무시되어 왔다. 사회 문제라는 골리앗 앞에서 개인은 다윗, 아니 다윗의 손톱보다도 작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념 갈등을 재생산하는 것은 각 개인이다. 개인은 사회적 관계 속에서 이념을 형성하고 그 이념에 따라 타인과 갈등한다. 때로 비방과 모욕도 일삼는다. 개인 간 무수한 관계와 대립이 모여 전체 한국 사회의 이념 갈등이 된다.

          갈등의 주체는 개인이다. 따라서 해결의 주체도 개인이 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개인은 나약해 보이지만 역사 속의 거대한 변화도 개인의 행동이 모여 이루어졌다. 예를 들어, 한강의 기적은 박정희 정권의 효율적인 경제 정책 덕분이기도 하지만 그 뒤에는 수많은 한국인 개인의 노력이 있기에 가능했다. ‘잘 먹고 잘사는나라를 만들기 위한 한 사람 한 사람의 헌신이 모여 믿을 수 없는 경제 성장을 일궈냈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말이 있듯이 개인의 작은 움직임이 큰 사회 변화를 만든다.

 

이념의 경계 넘기상호이해(mutual understanding)를 향해

          이념 갈등은 네 가지 요소, 즉 이념 양극화, 일정 수준의 자유, 한정된 자원, 그리고 타협의 부족에서 기인한다. 필자는 티투비 전략으로 진보와 보수 간의 상호이해(mutual understanding)를 촉진하고자 한다. 상호이해가 이념 갈등을 완벽히 해결할 수는 없다. 서로의 견해를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위의 네 가지 요소에 변화가 없다면 이념 갈등은 지속될 것이다. 그러나 상호이해는 양극화 완화와 타협의 기반이다. 서로의 이념을 납득조차 하지 못한다면 양극화는 지속되고 타협은 힘들어진다. 상호이해는 이념 갈등 해소로 향하는 첫걸음이다.

          이에 이념 간 상호이해 실현을 위한 개인 실천 방안 세 가지를 제안한다. 첫째, 약한 연결을 활용하라. 평소 함께 보내는 시간이 적고 친밀도가 높지 않은 사람과 세상사에 관해 이야기하라. 예컨대 옛 직장 선배, 취미 모임 회원, 동창회에서 오랜만에 만난 대학 동기가 해당한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무엇이든 괜찮다. 강한 연결은 유유상종인 경향이 있기 때문에 그 속에서 자신과 다른 이념을 접하기 어렵다. 네트워크 내에서 생각, 가치관, 정보가 중첩된다. 하지만 약한 연결은 전혀 다른 이념을 지닌 사람들의 견해를 접할 수 있도록 한다. 이를 그래프로 나타내면 <그림 3>과 같다. A가 속한 4명의 강한 연결 네트워크와 B가 속한 3명의 강한 연결 네트워크는 각각 비슷한 이념을 공유한다. 그러나 A B와의 약한 연결을 통해 동질적 네트워크를 벗어나 이질적 이념을 접한다.

          그런데 과연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과 이야기한다고 효과가 있을까? 오히려 거부감만 느껴소 귀에 경 읽기가 되는 것 아닌가? 하지만 실제로 상대를 더 잘 이해하게 된다. 정치학자 머츠(Mutz 2006)는 이질적 이념에의 노출이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연구했다. 그녀는 실험을 진행했는데, 그 결과 노출 정도가 증가할수록 반대 이념의 근거를 훨씬 더 많이 제시할 수 있게 된다는 점을 발견했다. 즉 상대의 이념이 어떤 논리와 증거에 기반하는지 알게 된 것이다. 물론 상호이해가 공감이나 동의로 직결되진 않는다. 그러나 적어도 합리적 사고와 의사소통을 가능케 해 양극화 완화와 타협에 기여할 수 있다.

         둘째, 이념의 불완전성을 인정하라. 이념은 프레임(frame)이다. 인간은 프레임을 통해 세상을 관찰하고 이해한다. 프레임에는 인과관계, 옳고 그름 등에 대한 판단이 내재되어 있다. 그러므로 프레임은 신속한 사고와 의사결정을 돕는다. 프레임 덕분에 녹색 신호에 길을 건너야 안전하다는 것, 범죄는 나쁜 것이라는 판단을 매 순간 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프레임은 생각의 범위를 제한한다. 천동설이라는 프레임에 매몰되어 있던 과거 과학계에게는 모든 관측 자료가 이를 지지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지 않은 자료는 관측 오류나 이상값으로 취급되었다. 오히려 그 자료가 프레임이 틀렸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었음에도 말이다. 프레임에 부합하지 않는 사실은 무시됐다.

          이념도 마찬가지다. 한 이념에만 근거해 사회를 바라보면 오류를 범하기 쉽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하에서 전쟁은 자본가의 욕망에 의해 촉발된다고 보았다. 자원을 확보하고 시장을 개척해 부를 증식하려고 전쟁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전쟁이 일어나면 노동자가 단결하여 반대할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각국의 노동자는 오히려 전쟁을 지지했다. 마르크스는 계급 프레임에 갇혀 민족과 애국심 등 계급 외적인 요소에 주목하지 못한 것이다.

          사회는 복잡하다. 한 가지 사회 현상에도 셀 수 없이 많은 변수가 영향을 미친다. 변수의 정체를 알지 못할 때가 많고 설령 안다고 해도 측정을 못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사회과학 연구에서 특정 변수로 현상의 30% 정도만 설명해도 대단한 발견으로 여겨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기에 한 이념으로 이상적인 사회의 모습을 제시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어떤 이념도 사회를 완벽히 설명하고 문제에 대한 만병통치약을 처방할 수 없다. 따라서 자신의 이념이 완벽하지 않다는 점을 받아들이고 반대되는 이념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기존 이념의 맹점을 다른 이념이 보완할 수 있다.

          셋째, 양보다는 질이다. 자신과 다른 이념을 접하고자 무조건 많은 사람과 만나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네트워크 크기가 커져도 네트워크의 이질성에는 유의미한 변화가 없다. <그림 4>는 정치에 관해 대화를 나누는 사람의 수에 따라 이념적 이질성의 정도가 변하는 양상을 보여준다. 네트워크 크기가 1에서 4로 늘어나도 이질성(=반대 의견의 대화 상대 수/전체 대화 상대 수)은 약 19%에서 21%로 아주 미세한 차이만 보이며, 동질성(=비슷한 의견의 대화 상대 수/전체 대화 상대 수) 또한 61%에서 60%로 거의 변화가 없다. 네트워크 크기 변화에도 불구하고 유유상종 경향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자신과의 이념적 이질성이 높은 상대를 전략적으로 선택해야 한다. 자신이 보수라면 진보단체의 활동가와 이야기해보라. 신선하고 놀라운 경험일 것이다. 평소에는 납득하기 어려웠던 그들의 주장에도 나름의 합리적 근거가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더불어 자신의 이념을 되돌아보고 논리를 강화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물론 이념을 기준으로 대화 상대를 고르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다. 차선책으로는 반대 이념 성향의 언론을 접하는 방법도 있다. 한국 언론은 이념적 다양성이 잘 갖추어져 있다. 그만큼 언론사 간의 이념 갈등도 극심한 편이지만 이념의 스펙트럼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하고자 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조건이다.

 

맺으며

          나는 아직까진 너무도 미비하기에. 그러나 미비한 만큼 창대하다는 것을 믿지 언제나. 지금은 먼 미래지만 오늘이 되겠지 언젠가.” Mnet의 래퍼 발굴 프로그램쇼미더머니(Show Me The Money) 5’에서 우승한 가수 비와이(BewhY)의 노래 가사 중 일부다. 이념 갈등이라는 높은 벽 앞에서 개인은 언제나 작고 미비해 보였다. 이 커다란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개인의 능력 밖에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제 개인이 나설 때다. 제도와 정책을 통한 비투비 방식은 이념 갈등을 해결하지 못했다. 티투비가 절실한 시점이다. 개인의 태도와 행동을 바꿔 상호이해를 토대로 사회적 변화를 이끌어 내야 한다. 쉽지 않은 길일 것이다. 하지만미비한 만큼 창대해지리라 믿는다.’ 진보와 보수 간의 건전하고 합리적인 의사소통이 자리 잡은 한국 사회, ‘지금은 먼 미래지만 언젠가 오늘이 되기를기대한다.


참고문헌

송현주. 2011. “사회 연결망을 통한 정치 커뮤니케이션 연구의 필요성과 전망.” 『커뮤니케이션 이론』 7(2): 75-104.

최명군ㆍ신동희ㆍ강성현. 2013.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서 나타나는 성격을 통한 유유상종.” 『방송통신연구』 84: 64-84.

캐스 선스타인. 2011. 『우리는 왜 극단에 끌리는가』. 이정인 옮김. 프리뷰.

Granovetter, Mark. 1985. “Economic Action and Social Structure: The problem of Embeddedness.” American Journal of Sociology 91: 481-510.

Granovetter, Mark. 1983. “The Strength of Weak Ties: A Network Theory Revisited.” Sociological Theory 1: 201-233.

Mutz, Diana C. 2006. Hearing the Other Side: Deliberative versus Participatory Democracy. New York, NY: Cambridge University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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