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 영상
  • 연구결과물
  • E-카다로그
  • 발전기금
  • HOME
  • 미래전략연구
  • 연구결과물
  • 청년에세이
  • 인쇄
  • 글자크기
  • 확대
  • 초기화
  • 축소

청년에세이, 미래전략연구를 통한 다양한 연구결과물

연구결과물

연구도서
[2018 청년 에세이 우수상 05]‘간극 속 상생의 길을 찾다'
  • 저자
  • 이종민(단국대)
  • 발행일
  • 2018-09-01
요 약
“조선은 노인의 천국이다.”
“나는 노년을 위해 조선 땅에서 다시 태어나고 싶다.”
“세계에서 관습적인 노인 복지가 가장 잘 되어 있는 나라는 바로 조선이다.”
약 110여 년 전 지금의 대한민국 한반도 땅을 밟은 알렌 선교사, 샌즈 공사 그리고 헐버트 선교사는 당시 기성세대를 향한 조선 사회의 공경의 모습을 바라보며 이와 같은 칭송의 말을 남겼다. 그로부터 약 100여년 뒤 1990년대 대한민국은 전례 없는 폭발적인 경제 성장을 이룩하였고, 약 30여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당시와는 정 반대의 상황을 맞이했다.
그렇다면 어떤 연유에서 공경 받아오던 기성세대, 그리고 쉼 없이 발전해오던 신세대에 브레이크가 세워지고 이 두 세대 사이에 커다란 간극이 발생하게 된 것일까?

top

목 차

서론

본론. 세대간 갈등 원인

      1. 가치관의 차이’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2. 왜곡된 인식’이라는 측면에서 찾아볼 수 있다.

      3. 계층 간의 소통의 부재를 꼽을 수 있다.

결론

top

내 용
[2018 청년 에세이 우수상 05]‘간극 속 상생의 길을 찾다'
이종민(단국대)

 

“조선은 노인의 천국이다.

“나는 노년을 위해 조선 땅에서 다시 태어나고 싶다.

“세계에서 관습적인 노인 복지가 가장 잘 되어 있는 나라는 바로 조선이다.

 

110여 년 전 지금의 대한민국 한반도 땅을 밟은 알렌 선교사, 샌즈 공사 그리고 헐버트 선교사는 당시 기성세대를 향한 조선 사회의 공경의 모습을 바라보며 이와 같은 칭송의 말을 남겼다. 그로부터 약 100여년 뒤 1990년대 대한민국은 전례 없는 폭발적인 경제 성장을 이룩하였고, ‘한강의 기적’, ‘아시아의 네 마리의 용’과 같은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세계가 주목하는 경제 성장의 시기를 맞이하였다. 덕분에 젊은 세대는 학업을 마친 이후 곧장 사회에서 경제적 기반을 쌓아 나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조선시대로부터 110, 또 한강의 기적을 이룩한 지 약 30여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당시와는 정 반대의 상황을 맞이하며 기존의 기성세대는 물론, 한창 사회에서 경제적 기반을 마련해 나아가야하는 젊은 청년 세대들까지 큰 시름을 안겨주고 있다.

또한 이러한 상황에서 기성세대와 신세대 사이에서는 서로가 가지고 있는 가치관의 차이로 인해 그 사이의 간극은 시간이 지날수록 계속해서 커지고 있는 상황이며 이러한 간극은 사회. 경제, 문화적 갈등을 조장하며 세대 간의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계속해서 진행된다면 한 국가에서 세대 간의 갈등으로 인해 사회, 경제, 문화 모든 분야가 전복되어 버리는 극한의 상황을 맞이할지도 모른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으며 앞으로의 안정된 체제와 균형 잡힌 발전을 위해서라도 현재 진행되고 있는 기성세대와 신세대 간의 갈등은 반드시 아물어야 하는 상처이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 세대 간의 갈등이 일어나는 원인을 명확히 파악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해결방안이 동시에 수반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떤 연유에서 공경 받아오던 기성세대, 그리고 쉼 없이 발전해오던 신세대에 브레이크가 세워지고 이 두 세대 사이에 커다란 간극이 발생하게 된 것일까?

 

첫 번째 이유는 ‘가치관의 차이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먼저 두 세대를 구분하는 구분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현재 우리가 말하는 기성세대는 베이비붐 세대라 일컬어지는 5060세대를 의미하며 그와 대립하고 있는 신세대의 경우에는 현재 한창 경제적 기반을 잡아가고 있는 에코 세대라 일컬어지는 2030세대를 의미하고 있다.

이 두 세대 간에는 숫자의 차이가 보여주듯 서로가 살아온 시대에서부터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특히나 현재의 기성세대가 신세대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던 당시의 경우 우리나라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큰 격변기를 거치며 전통적으로 전해오던 유교적 풍습에 익숙한 기성세대이기에 나보다는 가족 중심의 삶을 우선시하고 실천하며 살아온 세대이다.

반면 현재 젊은 세대의 경우에는 대가족이 아닌 소가족 위주의 삶을 영위해왔고, 어린 시절 경제적 성장을 지켜봐 왔지만 막상 그들이 경제의 주체가 되어가는 시점에 주체로서의 삶을 영위하기 어려운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런 전제 속에 신세대는 자연스럽게 가족보다는 개인과 개인의 자유를 위한 삶을 추구하며 살아오게 된 것이다.

이렇듯 서로 구축되어 있는 가치관이 다른 시점에서 각 세대는 서로를 이해하려기보다 기성세대의 경우 젊은 세대는 고생을 해보지 못했다는 핀잔을 주었고, 젊은 세대의 경우 이런 기성세대의 완고한 태도를 보며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꼰대 문화라 생각하며 서로가 이해가 아닌 갈등의 시발점을 당기게 된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왜곡된 인식이라는 측면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내용처럼 현 기성세대의 경우 급격한 경제 성장의 주체로서 그 혜택의 대상자가 될 수 있었고, 은퇴를 앞둔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하지만 경제 침체가 찾아온 상황에서 은퇴를 하고도 복지와 연금, 건강보험의 혜택을 제대로 누릴 수 있는가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며 은퇴를 미룰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마찬가지로 현재 젊은 세대의 경우 경제 침체의 늪에 빠져 학업을 마치고 사회적 기반을 마련해야할 상황에서 경제적 주체로서의 활동에 큰 제약을 받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렇듯 구직 활동도 어려운 상황에서 세금 부담까지 느껴야 하는 상황을 겪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두 상황이 서로 맞물리게 되면서 문제의 논점이 흐려지고 그 본질을 잃게 된 것이다.

현재 두 세대가 겪고 있는 문제의 근원은 세계, 국내 경제의 침체, 즉 저성장에서 가장 큰 원인을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현재 두 세대는 그 문제점에 대한 해결책을 찾으려는 것이 아닌, 문제의 원인을 각 세대에서 찾으려 하고 있다. 기성세대의 경우에는 본인들의 세대처럼 발전을 이룩하지 못하는 젊은 세대의 모습에 답답해하고, 현재 젊은 세대의 경우 경제 침체와 일자리 부족, 세수 부담 증가의 원인을 기존 세대에서 찾으려 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문제의 핵심이 흐려진 상황에서, 현재 문제를 제로섬 게임(zero-sum game)으로 인식하고 서로에 대한 적대감만 늘어가며 갈등이 조장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 세대 간 갈등의 원인으로 계층 간의 소통의 부재를 꼽을 수 있다. 위 선례와 같은 두 상황 속에서 서로 간의 오해를 불식시키고, 개선책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은 두 세대 간에 소통의 기반이 마련되고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이 진행되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상황 속에서 두 세대 모두 서로에 대한 이해가 아닌 본인의 주장만을 관철하며 두 귀와 눈을 모두 닫아버리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서로에 대한 오해는 점점 깊어만 가고, 허심탄회한 대화와 소통의 기회는 점점 줄어가게 되는 것이다.

위 원인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두 세대 간에는 ‘가치관의 차이 인식 및 존중하기(적극적인 여행자의 자세), ‘현재 문제의 본점 명확히 파악하고 해결책 마련하기(여유 있는 적극적 관찰자의 자세), ‘소통의 통로 마련하기(효율적인 소통가의 자세)’와 같은 커다란 맥락에서의 해결책이 수반되어야 한다.

가치관이라는 것은 그 주체가 자라온 환경과 시대적 상황에 따라 크게 좌우된다. 그리고 수많은 시간에 걸쳐 자연스럽게 정착된 가치관을 바꾸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또한 가치관이 구축되고 성장되어온 과정은 각기 다를 뿐만 아니라 시대적, 환경적 요인이 녹아 들어가 있으므로 어느 가치관이 옳고 그름을 가치관에 관하여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상황에서 억지로 가치관을 바꾸려 하는 행위는 더 큰 부작용과 반반을 초래할 수 있으며, 외면적인 모습에서의 바뀌었다는 형태가 띌지라도 그 속은 쉽사리 바뀌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나와 다른 가치관을 인정하고 존중하려 한다면 그 행동이 주는 결과는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의 휴양 문화는 계속해서 변해 왔고, 이로 인해 언론에서 사상 최대의 해외 출국 인파 라는 소식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정도로 해외로 휴양과 여행을 떠나는 출국 비율의 추이 또한 급증세를 맞이하고 있다. 그리고 국내를 떠나 해외로 휴양을 떠나는 이들의 이유를 살펴보면 우리나라와는 또 다른 세상과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다는 이유가 항시 첫 번째로 꼽히고는 한다. 이처럼 여행자들은 다른 국가에 방문해 방문 국가와 국민의 가치관이 다르다고 해서 그들의 가치관을 바꾸려 종용하려는 것이 아닌 그들이 오랜 시간 구축한 또 다른 가치관과 문화를 체험하고자 더 긴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같은 여행을 떠났다 할지라도 그 여행자들을 크게 두 부류로 나눠지고는 한다.

한 부류는 여행지 속에서도 국내를 찾는 여행자이고, 또 다른 한 부류는 현지인의 삶을 찾는 여행자이다. 전자의 경우에는 몸은 해외로 떠나 있지만 여행지를 느끼는 것이 아닌 여행지 속에 한국의 삶을 옮겨 놓는 여행자이다. 이 경우에는 타국에 적응하기 위한 큰 에너지가 필요하지도 않고, 적응에 필요한 시간도 길지 않다. 하지만 긴 시간과 비용을 들여 해외로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해외를 느끼는 것이 아닌 그저 장소를 이동해 국내 그대로의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을 뿐이다. 또한 이 때문에 해외에 나옴으로써 누릴 수 있는 시야 확장의 기회는 잃게 되는 것이다. 몸은 편할지라도 앞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는 잃고 현재의 상황에 정체되어 있게 되는 것이다.

반면 후자의 경우에는 전자의 상황과는 정 반대의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생소한 언어, 사람, 그리고 음식과 문화까지. 모든 것이 낯설기에 몸은 힘들고, 음식이 맞지 않아 탈이 나기도 한다. 또한 의사소통이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기에 좌절감을 느끼고 문화의 차이로 인해 오해가 일어나기도 하며, 본인의 고국을 그리워하며 향수병에 빠지기도 한다. 이처럼 낯선 땅, 나와는 다른 문화와 가치관을 가진 국가에서 우리는 적응에 긴 시간과 큰 에너지를 쏟아 부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적응기를 거치고 나면 우리는 새로운 언어를 배울 수 있고,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 있으며 더 넓은 시야를 구축할 수 있게 된다. 두 여행자의 모습에 현재 우리의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를 비추어 본다면 전자의 모습을 닮아 있다고 볼 수 있다.

기성세대의 경우 지난 3·40여 년간 사회, 정치, 경제적으로 큰 풍파를 겪는 도중에도 우리나라 경제 성장 발전에 큰 기여를 하며 현재의 대한민국을 구축하게 되었다. 덕분에 그들에게 젊음이란 도전이자 큰 기회의 시간인 동시에 가족을 위한 경제적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던 희생의 시간으로 인식 될 수 있었다. 이런 그들의 시선으로 바라 볼 때, 취업/구직난에 허덕이며 방황하고 있는 청년들은 경제적 안락함 속에서 안주하며 도전정신을 잃고 방황하며 젊음을 낭비하고 있는 모습으로 비춰지고 있는 나약한 이기주의자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이에 반해 현재의 젊은 세대들은 경제적 안정이 이루어질 당시, 급격히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현대 디지털 문물과 친화된 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다. 덕분에 그들은 기존 기성세대들이 누려보지 못한 넓은 세대, 더 넓은 견문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고 기성세대의 의견만이 아닌 스스로의 생각과 의견을 구축 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소가족 위주의 생활을 영위하며 가족 중에서도 내가 중심이 되는 생활을 누려왔기에 앞으로의 삶에서도 가족보다는 나를 위한 삶이 더 비중 있게 다뤄지게 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물질적, 지식적 풍요 속에서도 점점 심해져 가는 교육 경쟁 증가, 또 수차례 찾아오는 세계적인 경제 위기와 저성장의 늪. 이 속에서 그들이 사회 경제적 주최가 되기 위해 발돋움할 때 그 길은 이미 꽁꽁 얼어있는 상태 속에서 한정된 자리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이렇듯 사회로 나아가는 길목이 얼어붙은 상태 속에서 계속된 도전 만을 강조하고 기존의 방식만을 고집하는 기성세대를 바라보며 젊은 세대를 기성세대를 꼰대 문화라 칭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3-40여 년 전의 실정에 비춰 보았을 때, 또 현재의 상황에 비춰보았을 때 두 세대가 주장하고 있는 가치관 모두 절대적으로 옳고 또 반대로 절대적으로 틀리다 고 할 수도 없다.

두 세대가 겪어온 세대는 확연히 다르고, 또 두 세대 사이의 시간 속에서 우리가 겪어온 변화의 물결은 그 어느 때보다 강하고 거셌다. 그렇기에 우리는 서로의 가치관에서 옳고 그름을 따질 것이 아닌 그 가치관을 바라보는 우리의 태도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현재 두 세대 모두 각기 다른 세계를 바라보면서 본인이 가진 관점에 그 기준을 맞추려 하다 보니 불편하고 어색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현재의 관점만을 고수하고 관철한다면 현재는 그것이 편하고 좋을지 모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결과물 없이 미래에는 도태를 맞이하게 될지도 모른다. 반면 적극적인 여행자의 자세를 갖는다면 우리는 그 적응의 과정 속에서 많이 혼란스럽고 괴로울지 모르지만 그 결말은 갈등의 화해와 새로운 성장의 원동력이라는 큰 결과물을 안겨줄 수 있을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수많은 시간 동안 구축되어 온 가치관의 변화를 이룩하기 란 굉장히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이것이 불가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시간이 흐르며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바뀌며 가치관 또한 서서히 바뀌어 가고 있다. 이슬람 문화가 뿌리 깊게 박혀 있는 중동 국가들에서 여성에 관한 엄격한 규제의 기준은 수십 년간 수많은 논란을 자아내며 세계의 관심과 함께 변화의 목소리 또한 높아져 왔었다. 허나 철옹성 같은 이슬람 문화는 전통을 근거로 내세우며 결코 과거의 관습을 바꿀 모습을 보여 오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가장 강경한 이슬람 문화를 고수하며 여성을 억압해왔던 국가 중 하나인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얼마 전 여성의 운전을 허가했고, 또 몇몇 이슬람 국가에서 여성들이 이슬람 전통 의상 이자 외출 시 필수로 여겨졌던 히잡(hijab)없이도 야외활동을 할 수 있도록 허가하는 등 변화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물론 아직도 많은 국가에서 전통적인 이슬람 규율을 강조하며 여성들의 권리를 억압하고 이 가운데 충돌이 일어나고 있지만 변하지 않을 것만 같던 이슬람 문화권에서 이러한 변화의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 더 큰 변화의 가능성을 찾아볼 수 있음을 물론,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가치관 또한 조금씩 변화해가고 서로간의 합의점을 찾을 수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가 되고 있다. 이처럼 우리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 간의 가치관의 차이로 인한 갈등 또한 무엇이 옳고 그름을 따지는 흑백논리가 아닌 서로의 배경을 이해하고 그 안에서 구축된 가치관을 인정하고 존중할 줄 아는 적극적인 여행자로서의 자세가 요구된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적극적인 여행자의 자세로 각 세대가 서로의 가치관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면 우리가 여행 중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며 이전에 갖지 못했던 관점을 가질 수 있듯이 각 세대 또한 그 동안 자신이 가진 렌즈만으로 바라보았던 편협한 관점에서 벗어나 새로운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될 것이다.

적극적인 여행자의 자세를 갖기 전, 두 세대에게 먼저 선행되어야 할 전제 조건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바로 ‘여유 있는 적극적 관찰자의 자세. 여행을 떠날 때 우리는 계획을 세우고 목적지를 정해놓고 여행을 떠난다. 아무리 탄탄한 여행 계획을 세우고 갔을 지라도 막상 새로운 세상에 당도했을 때 우리는 낯선 환경이 주는 분위기에 압도되어 우왕좌왕하고는 한다. 또한 익숙지 않은 길에 잘못된 방향을 잡고 목적지가 아닌 다른 길로 빠져버려 길을 잃고 헤매다 목적지로 가는 결심을 포기해 버리는 경우도 많다. 이처럼 새로운 문제에서 방향을 잘못 잡게 되면 우리는 문제 해결이 아닌 계속해서 새로운 문제를 만들어내며 갈팡질팡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리고 현재 세대 간의 갈등 속에서도 우리는 문제의 본질이 아닌 엇갈린 시선으로 문제를 바라보며 문제 해결의 본질을 놓치고 있다. 앞서 언급된 내용처럼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는 서로를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 단적인 예로 기성세대의 경우에는 지금까지 경제 성장과 발전에 이바지 해놓고 막상 은퇴할 시기가 왔지만 불안정한 경제 상황으로 인해 은퇴 이후의 노년기 동안 연금, 건강보험과 같은 복지혜택을 제대로 누릴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그리고 일각에서는 이 같은 상황을 맞이하게 된 이유가 본인의 세대와는 다르게 나태하고 게으른 젊은 세대로 인해 경제 성장의 동력이 꺼져버렸다고 생각하는 시각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젊은 세대에서는 현재 일자리 부족 사태의 원인을 기성세대의 장기 집권에서 찾고 있다. 기존에 경제를 이끌어 나가던 기성세대에서 은퇴 시기가 찾아왔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자리를 고수하고 있는 바람에 젊은 세대에게 돌아올 기회가 줄어가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렇게 일자리 구하기는 힘든 상황에서 세수 부담은 늘어만 가고 고령화 되는 사회에 맞춰 노인 무임승차, 노인 돌봄이 서비스와 같은 노인 복지에 대한 공약과 정책수립이 이어져 가는 상황에서 기존 기성세대들에 대해 배려 없는 이기주의적인 꼰대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일어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잠시 흥분을 가라앉히고, 두 세대 간의 주장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위 두 세대가 갖고 있는 문제의식은 모두 같은 곳에서 출발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두 시선의 근원은 바로 우리의 가장 큰 과제인 ‘저성장 경제 구조’, 기성세대의 은퇴가 늦어지는 것도, 또 사회 진출을 앞둔 청년의 일자리의 기회가 줄어드는 것도 계속해서 이어지는 저성장 경제 구조 때문이다.

1923년 일제강점기 시기, 일본 관동 지역 대지진이 났을 당시 일제의 군부는 대지진의 원인을 자연현상이 아닌 조선인의 폭동과 음모라는 유언비어를 퍼뜨리며 문제의 본질을 흐렸다. 이러한 낭설로 인해 선동 당한 이들은 애꿎은 조선인, 중국인은 물론 일본인까지 살해하는 역사에 커다란 오점을 남기는 나쁜 결과를 초래했다. 마찬가지로 정치적인 문제가 붉어졌을 때, 연예계와 스포츠 문제와 같은 자극적인 기사로 문제의 본질을 옮겨가려는 움직임 또한 계속해서 역사가 보여주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을 보았을 때, 우리가 집중해 해결해야 할 상황은 문제의 본질을 흐려 문제 해결책을 위한 주요점을 놓쳐버리는 것이 아닌, 여유 있는 방관자가 되어 문제의 본질부터 확인하며 건설적인 해결책을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문제의 본질을 놓친 언쟁은 서로간의 에너지를 낭비하는 헐뜯기에 불과하며, 이후에 커다란 오점을 남기거나 선동자에게만 이익을 안겨주는 비생산적인 행동으로 끝나 버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 두 세대는 서로를 비방하며 실속 없는 언쟁을 벌이기보다 현재의 갈등을 조장하게 만든 근본적인 문제 ‘저성장 경제 구조’를 파악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실질적인 문제 해결방안을 마련해가야 한다. 현재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로 인해 대학 졸업 청년의 취업률이 90퍼센트 이상을 기록하며 우리 청년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일본의 경우에도 그 내막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성장을 통한 양질의 일자리보다도 은퇴 세대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한 일자리가 대부분인 상황이다. 이 때문에 높은 취업률에도 불구하고 이직률과 아예 구직을 포기하는 비율 또한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이 계속된다면 현재 다시 활기를 띠고 있는 일본의 경제 또한 언제 다시금 침체의 늪으로 빠지게 될지 모른다. 이처럼 우리 또한 기존의 경제 구조에서 은퇴 세대를 미뤄내고 그 자리를 청년으로 메우는 1차원적인 고용이 아닌 새로운 성장의 동력을 찾아 일자리를 구축해 청년 인재들을 고용해가는 방안을 마련해 나가야 한다. 역사적으로도 인류는 계속된 산업혁명 정보혁명을 거치며 발전을 이뤄왔고, 우리나라 또한 기초 제조업에서부터 시작하여 21세기 초부터 최첨단 산업으로 일컬어진 반도체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불확실하지만 미래를 향한 투자를 이어감으로서 현재는 OECD 지원 대상국에서 OECD 회원 국가로 발돋움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또한 현재 기업의 고용률은 사상 최저치를 나타내고 있지만 경제 성장기의 호황을 바탕으로 쌓아진 이익 잉여금은 사상 최고치를 나타내고 있다. 다만 기업의 입장에서도 계속해서 변화하는 규제와 정책 속에서 불확실에 투자하는 것은 이전 아무런 기반 없이 성장하던 때와는 또 다른 상황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현재 전 세계는 4차 산업 혁명이라는 또 다른 변화의 물결을 맞이하며 발전해 나가고 있고, 우리 또한 그 물결 속에 우선적으로 탑승해야 앞으로도 계속해서 성장의 동력을 마련해나갈 수 있다. 또 이를 위해서는 정부의 규제 완화와 정책적 지원이 수반되어야 하는데, 이 규제와 정책의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바로 국민의 목소리이다. 지금처럼 세대 간의 갈등으로 인해 사회적 혼란과 갈등이 지속된다면 앞으로도 일관된 정책과 규제를 마련하는 것은 불가능 할 것이다. 그리고 이처럼 우리가 흐려진 논점으로 무의미한 논쟁을 계속하고 있을 때, 다른 국가들은 우리와의 격차를 벌려가고 있을 것이다. 이는 현재 문제의 논점을 찾지 못하고 세대 간의 갈등만 키워가는 상황에서 우리는 미래에 더 많은 것을 잃고 또다시 저성장의 늪에서 서로 만을 탓하며 갈등의 간극을 키워가는 악순환의 굴레를 계속해서 이어가게 될 것이다. 고로 지금 두 세대에게 필요한 것은 비생산적인 언쟁을 멈추고 문제의 본질을 파악할 줄 아는 여유를 갖는 것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 그 누구의 탓도 아닌 두 세대 모두 변해 가는 피해자일 뿐이다. 하지만 계속된 무의미한 갈등을 이어가며 영원한 피해자로 남아갈 것인지, 그것이 아니라 잠시간의 여유를 갖고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여 기성세대가 가진 경험과 젊은 세대가 가진 신선함을 바탕으로 함께 문제점을 해결해가는 적극적인 관찰자가 될 것인지는 두 세대가 선택할 수 있는 능동적인 문제일 것이다.

위 모든 해결 방안이 실천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두 세대 사이에 원활한 소통이라는 전제가 기반 되어야 한다. 우리가 국내를 벗어나 다른 나라를 방문했을 때에도 낯선 곳에서 문화와 가치관의 차이로 만나기 이전에 가장 우선적으로 부딪히는 문제가 바로 소통의 문제이다. 전혀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곳에서 우리는 길을 잃었어도 물어볼 수 없고, 먹고 싶은 것이 없어도 정확히 의사표현을 하지 못해 염두에 두었던 음식과는 전혀 다른 음식을 먹어야 하는 경험을 겪기도 한다. 그리고 다와는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을 보며 어울리지 못하고 겉도는 사이에 외로움과 고독함은 커져만 간다. 새로운 이들과의 관계에서 실패를 얻게 되면 자연스럽게 실패에 대한 공포감이 쌓이게 되고 결국에는 내가 속해 있던 그룹으로 다시금 회기 하여 그 위치를 더욱 고수하게 되는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이 때문에 고국을 떠나 이민을 갔던 이들 중에서도 소통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새로운 사회에서의 적응을 실패하고 역이민을 오는 경우도 많다. 이처럼 소통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으면 두 주체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리고 현재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 사이에도 소통의 부재로 인해 그 보이지 않는 벽의 높이가 점점 높아져 가고 있는 것이다. 이론적으로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는 같은 언어를 사용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들은 전혀 다른 언어를 사용하며 서로간의 차이만을 확인하며 간극을 키워왔다. 또한 그 세대 간의 차이는 분단의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서로에 대한 오해가 깊어지고 결국 차이가 아닌 틀림으로 인식되어 서로에 대한 혐오의 말까지 쏟아내는 비방하는 단계에까지 접어들게 된 것이다. 하지만 분단의 시간이 길었다고 해서 그것이 영원한 분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그 분단의 시간이 길어져 소통의 부재가 아닌 소통의 단절로 이어진다면 앞서 언급 되어진 해결책은 아무것도 실현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악순환의 굴레는 계속해서 이어지게 될 것이며 이 피해는 고스란히 두 세대에게, 또 앞으로 젊은 세대가 기성세대가 되었을 때에도 지속되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두 세대 모두 피해자가 아닌 새로운 성장의 선두주자가 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효율적인 소통가의 자세를 갖춰야 하는 것이다.

먼저 효율적인 소통가의 자세를 갖추기 위해서는 두 세대에게 서로 다른 과제가 주어진다. 앞서 언급된 내용처럼 소통의 실패는 공포를 낳고, 그 공포는 부재와 단절의 씨앗이 된다. 모든 인간이 거절의 공포를 두려워한다. 하지만 두 세대 중 그 공포를 더욱 두려워하는 것은 기성세대이다. 그들은 지난 3-40년의 세월 동안 많은 것을 이루어 왔고, 또 현재의 대한민국 발전에 이바지해왔다. 그리고 그들이 이러한 사실에서 느끼는 자부심은 엄청나다. 이렇듯 이뤄놓은 것이 많은 기성세대들에게 또 다시 낯선 도전을 시작하고 거절의 공포를 느끼는 것은 앞서 이전의 기업들이 과거와는 달리 현재에는 미래의 불확실성을 마주하지 못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로 볼 수 있다. 또한 그들은 이미 젊은 세대와의 소통을 시도했다가 실패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 단적인 예로 가정에서의 소통의 부재를 꼽을 수 있다. 10대 초반까지만 해도 집안의 어른들은 자녀와의 소통에 별다른 어려움을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자녀들이 사춘기를 겪으면서 부모와의 소통을 멀리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부모는 자녀와의 소통에 어려움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기성세대는 이미 가정에서 젊은 세대와의 소통의 실패를 겪었을 확률이 높다. 그렇기에 그들에게 먼저 다가설 수 있는 더욱 유리한 위치에 놓인 이들은 기동성을 갖춘 젊은 세대일 것이다. 또한 젊은 세대가 갖추고 있는 소통의 창구는 기존의 세대보다 그 범위가 넓다. 따라서 다양한 방식으로 기성세대와의 소통의 손짓을 내보이는 용기가 젊은 세대에게 요구된다. 그렇다 해서 기성세대는 단지 손 놓고 젊은 세대의 변화를 기다리는 것이 아닌 행동으로서 소통 실천의 자세를 보여줘야 한다. 자녀가 자연스럽게 부모의 발자취를 따라가듯, 젊은 세대 또한 기성세대의 발자취를 근간으로 새로운 발자취를 이어나가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기성세대는 열 마디의 말로 젊은 세대를 훈육할 것이 아니라 한 번의 참된 행동으로 그들이 진심 어린 존경의 마음을 갖고 자연스럽게 소통의 창구를 마련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을 마련해주어야 한다. 그것만이 말뿐인 꼰대라는 오명에서 벗어나 진심으로 젊은 세대의 미래를 걱정하고 함께 성장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는 참된 모습의 선배로서 비춰질 수 있을 것이다.

이 외에도 두 세대 모두에게 필요한 자세가 있는데, 바로 비판 받아들이기의 자세이다. 인간이 공포에 취약하듯이 비판이라는 종류의 공포에도 취약할 수밖에 없다. 가정 속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 간에 소통의 부재가 일어나는 대표적인 사례를 살펴보면 이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부모의 충고는 자녀에게 잔소리가 되고 자녀는 이를 피해 방문을 걸어 잠그며 소통의 부재가 시작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두 세대는 모두 비판을 받아들이는데 익숙하지 않다. 기성세대 또한 지금의 젊은 세대와 같은 시절을 거쳐 왔을 것이며, 현재 또한 사회적 위치 덕분에 정면에서의 비판을 피할 수 있는 것이지, 그들 또한 비판을 두려워하며 비판 받지 않았다 해서 결코 그들이 절대적으로 옳은 행동을 해왔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의 성장을 위해서도 비판은 필수적으로 수반되어야 하는 요소이다. 한 번에 옳은 의견을 내는 일이란 절대 극소수이며, 그런 의견이 있다 할지라도 비판을 통해 더욱 성숙하고 건설적인 의견을 만들어낼 수 있다. 다만 그 비판이 서로를 비방하는 흑색선전을 위한 비판이 아닌 건설적인 비판이라는 전제가 수반 되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두 세대 간에 눈높이를 맞추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현재 두 세대 간에 서로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같은 공간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지만 두 세대가 살아온 삶의 자취는 완전히 다를 수밖에 없다. 우리가 여행을 떠나 타국의 낯선 문화와 음식, 전통방식을 이상하게 보는 것이 아닌 그들의 시선에서 바라보면 그들의 지혜와 역사를 자연스럽게 만나 볼 수 있다. 이처럼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 또한 나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상대의 다른 점을 비방하고 첨예한 대립의 날을 세우는 것이 아닌 한 발 물러서서 내가 아닌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바라보며 이해하려는 배려의 자세를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두 세대는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서로의 차이를 알아 감으로서 그로 인해 생겨왔던 오해의 간극과 눈높이의 차이를 줄여 서로가 지닌 지혜와 경험을 공유하며 함께 성장해 나가는 시작의 물꼬를 틀 수 있게 될 것이다.

 

겉모습이 똑같은 일란성 쌍둥이 사이에서도 갈등은 끊임없이 발생하고, 심지어 우리의 내면에서도 하루에도 수백 차례 갈등이 일어나고는 한다. 이처럼 우리 인간 모두가 외관은 물론 생각까지 똑같은 복제인간이 아닌 이상 갈등은 결코 피할 수 없는 요소이다. 오히려 갈등이 없는 세상은 발전 없이 밋밋하게 흘러갈 것이다. 이와 반대로 갈등을 효율적으로 풀어낼 수만 있다면 우리는 앞으로 더 큰 성장기반을 마련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갈등을 그저 피하려고만 할 것이 아니라 직면하고 그 해결책을 마련해 나가야 한다. 다만 지금까지의 우리는 갈등을 다루는 자세에서 굉장히 미숙한 모습을 보여 왔고, 이로 인해 시간이 갈수록 문제의 해결책을 찾아가는 것이 아닌 본질을 흐려 다른 문제를 일으켜왔다는 것이 안타깝다. 인구가 멸망하지 않는 이상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각기 고유한 특징을 지닌 세대 간의 경계는 나뉠 수밖에 없다. 다만 중요한 것은 그 세대 간에 간극을 키워 비방적인 갈등을 이어가는 것이 아닌 효율적인 갈등의 해결을 통해 상생과 협력 성장을 이어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현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 간의 갈등의 최대 원인은 바로 ‘경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가치관의 차이를 그 문제의 원인으로 지적하며 문제의 논점을 흐리며 해결을 위한 움직임을 둔화해오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환경이 변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바뀔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가치관이다. 불과 1-2세기 전만해도 유교 교리에 밀려 상대적으로 천시 받아오던 의과와 법과 또한 얼마 전까지 모두가 선망하는 최고의 직업으로 꼽혔지만 현재는 또 그 자리에서 서서히 밀려나고 있는 추세이다. 이처럼 가치관의 차이를 지적하며 문제를 바라보는 시선부터 이미 문제 해결을 위한 첫 단계에서 잘못된 첫걸음을 내딛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여유 있는 자세로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는 관찰자가 되어 현재 두 세대 간의 문제의 근원적 원인인 ‘저성장 경제 구조’를 탈피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는 적극적인 관찰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전에 이미 두 세대는 서로에 대한 원색적인 비방을 이어가며 갈등의 골을 키워왔다. 이 때문에 두 세대는 협동을 위한 소통의 시간을 갖는 것마저 어려운 상황이다. 따라서 두 세대 모두가 효율적인 소통가가 되기 위해 각자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소통을 위해서 두 세대 모두 적극적인 여행자가 되어야 한다. 낯선 세계에서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낯선 이를 만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처음에는 그 낯설음에 겁을 먹고 편안한 본래의 자리로 돌아오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을 것이다. 하지만 그 단기의 편안함은 결코 최후의 해결책이 될 수 없으며, 그 회피는 미래에 더 큰 갈등과 악순환을 야기할 뿐이다. 하지만 그 낯설음과 불편함을 이겨내고 여유 있는 자세로서 나와 다름을 바라볼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서로를 이해함과 동시에 현재의 문제를 타계하고 앞으로 함께 성장해나갈 수 있는 근간을 마련할 수 있게 된다. 이처럼 현재 두 세대의 갈등 해결을 위한 문제는 어느 한 세대만의 책임과 문제도 아닌 두 세대가 동시에 풀어나가야 하는 과제이자, 역사가 말해주듯 앞으로의 세대 또한 계속해서 풀어나가야 할 연속적인 문제일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두 세대의 문제는 사회 전체뿐만이 아닌 가정이라는 사회의 가장 작은 개체에서부터 찾아볼 수 있다. 따라서 사회, 기업, 정부 차원에서의 문제 해결을 위한 지원뿐만 아니라 가정에서의 세대 갈등 해결까지 양쪽에서의 문제 해결을 위한 움직임이 동시에 진행된다면, 그 해결 속도에 더욱 박차를 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서로의 원활한 소통을 통해 기성세대의 지혜와 젊은 세대의 기동력이 결합돼 건설적인 의견을 도출해내 이를 기반으로 미래 발전을 위한 성장을 이어나가야 한다. 이렇게 된다면 세대 간 갈등을 조장해왔던 부수적인 문제들 또한 자연스럽게 해결하며 더 이상 두 세대가 서로를 잡아야 사는 제로섬 게임이 아닌 함께 공생하고 성장하는(win-win game) 바람직한 모습으로 발전해 갈 수 있을 것이다.


게시판 List
이전글 [2018 청년 에세이 우수상 04]이념의 경계 넘기 – 상호이해(mutual understanding)를 향해
다음글 [2018 청년 에세이 우수상 06]‘이타주의’와 ‘배타주의’ 가치관 갈등을 넘어 바람직한 합의를 위해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