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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보고서, 미래전략연구를 통한 다양한 연구결과물

연구결과물

연구도서
[2018 청년 에세이 대상] 젠더 갈등의 정점에 있는 이 시대, 남녀의 대화는 가능할까?
  • 저자
  • 백승연, 이수현(서울여자대학교)
  • 발행일
  • 2018-12-12
요 약

늘 궁금했다. 이 시대의 남성과 여성, 여성과 남성이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을까? 그리고 남성들은 왜 이토록 페미니즘에 거부감을 가지게 됐나. 그렇다면과연 이 사회의 끝은 분리일까? 

남녀 갈등이 다양한 방식과 형태로 드러나고 있는 현재, 남녀의커뮤니케이션은 어렵게만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갈등 완화의 실마리를 찾아봤다. 본 에세이는 미디어를 통해, 사회를 통해, 그리고 사람을 통해 바라본 치열한 고민의 흔적들이다. 현 사회 내에서미디어가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큼을 고려하여 갈등 상황 분석과 해결책 도출 과정에서 미디어 콘텐츠를 활용하였다. 남녀 갈등에 대한 현 상황을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되짚어보고, 20대남성들을 심층 인터뷰하는 방식의 질적 연구를 통해 해결방안 도출에 활용하고자 했다. 더불어 젠더 갈등을해소할 수 있는 방안으로 미디어 콘텐츠가 사회 내에서 상당한 역할을 할 수 있음을 함께 포함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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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차

1. 들어가는 글

2. 남성들의반격 ‘백래시

(1) “페미니즘은 너무 과격해”

(2) 멀어져만 가는 여성과 남성

(3) 그냥 따로 살자고?

3. ‘그들’은 왜 공감하지 못했을까

(1) ‘페미니즘 콘텐츠’의 등장

(2) <까칠남녀>와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 에 주목하다

(4) “나는 맞고 너는 틀리다”

(5) “숲은 문제없어, 나무 하나가 썩은 거지”

4. 마치며… 우리 모두는 어디에선가 ‘을’이다

(1) 남성들이 공감할 수 있는 페미니즘 콘텐츠가 필요한 때

(2) ‘날 때부터 페미니스트’는 없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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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용
[2018 청년 에세이 대상] 젠더 갈등의 정점에 있는 이 시대, 남녀의 대화는 가능할까?
백승연, 이수현(서울여자대학교)

1. 들어가는 글


 늘 궁금했다. 이 시대의 남성과 여성, 여성과 남성이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을까? 그리고 남성들은 왜 이토록 페미니즘에 거부감을 가지게 됐나. 그렇다면 과연 이 사회의 끝은 분리일까? 


 남녀 갈등이 다양한 방식과 형태로 드러나고 있는 현재, 남녀의 커뮤니케이션은 어렵게만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갈등 완화의 실마리를 찾아봤다. 본 에세이는 미디어를 통해, 사회를 통해, 그리고 사람을 통해 바라본 치열한 고민의 흔적들이다. 현 사회 내에서 미디어가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큼을 고려하여 갈등 상황 분석과 해결책 도출 과정에서 미디어 콘텐츠를 활용하였다. 남녀 갈등에 대한 현 상황을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되짚어보고, 20대 남성들을 심층 인터뷰하는 방식의 질적 연구를 통해 해결방안 도출에 활용하고자 했다. 더불어 젠더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으로 미디어 콘텐츠가 사회 내에서 상당한 역할을 할 수 있음을 함께 포함시켰다. 



2. 남성들의 반격 ‘백래시’


 (1) “페미니즘은 너무 과격해” 


 혜화역 시위(몰카 범죄 규탄 시위), 상의 탈의 시위(여성 몸 성적 대상화 반대 시위) 등 여성만 참여가 가능한 집회들이 줄지어 일어나고 있는 요즘, ㅇ씨(23)는 심기가 불편하다. 왜 여성들이 ‘그렇게까지 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마침 일본여행에서 겪었던 일도 떠오른다. 실수로 지하철 여성 전용 칸에 타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도 모른 채 허겁지겁 옆 칸으로 옮겨갔던, 웃지 못 할 기억이다. 그는 “남성이라는 이유로 이미 범죄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 “페미니즘의 가치에 공감하고 성평등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최근 페미니스트들의 행보를 보면 있던 정도 떨어진다.”며 안타까워했다. 자신이 그나마 나은 편이라며 친구들 사이에서 페미니즘 얘기를 하면 ‘왕따’당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2) 멀어져만 가는 여성과 남성 


 대체 페미니즘이 뭐기에 여자건, 남자건 이렇게 ‘난리’인 걸까? 페미니즘의 사전적 정의를 살펴보면 ‘여성의 권리 및 기회의 평등을 핵심으로 하는 여러 형태의 사회적‧정치적 운동과 이론들을 아우르는 용어’ 혹은 ‘여성주의를 기반으로 여성들이 주체가 되어 성평등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 벌이는 조직적이고 지속적인 실천 활동’이다.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저자 벨 훅스는 ‘페미니즘 운동을 남성혐오운동이 아닌, 성차별주의와 그에 근거한 착취와 억압을 끝내기 위한 운동’이라 강조한다. 종합해보면 페미니즘은 세상에 반드시 필요한 움직임인 셈이다. 


 문제는 앞서 살펴본 남성들의 반응처럼, 페미니즘에 반감을 가지고 배척하는 사람들이 날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간 여성들이 겪어온 언어적 혐오와 차별을 똑같이 당하게 하는 이른바 ‘미러링’을 시작한 ‘메갈리아’의 등장이 그 발단이었다. 이후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여성혐오 범죄)를 계기로 여성들은 더욱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여성 커뮤니티 내 활발한 교류나 시위 등을 통해 분노와 의견을 표출하는 방법 등을 통해서다. 


 사회적으로는 여성할당제, 임산부 배려석, 여성전용주차장 등 오직 여성만이 적용 대상이 되는 제도 및 전용 시설들이 속속 등장했다. 남성들 눈에 여성이 ‘그렇게까지’ 목소리를 내야만 하는 약자 혹은 피해자로 비춰질 리가 없는 맥락이 만들어진 것이다. 


 결국 페미니즘은 남성들에게 ‘여성우월주의’ 혹은 ‘여성이기주의’로 비춰지기 시작했다. 사회‧정치적 변화에 대해 나타나는 반발 심리 및 행동을 이르는, 이른바 ‘백래시’가 시작된 것이다. 서지현 검사를 시작으로 각계각층의 여성 들이 성폭행 및 성추행을 폭로하는 ‘미투(#MeToo‧나도 고발한다)’운동이 현재도 진행 중이지만, 일부 남성들은 사회적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는 듯한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그때는 침묵하다가 왜 이제 말해서 한 사람 인생 망치냐’는 식의 발언이 그 예다. 또한 다음과 같이 생각하는 남성들도 있다. ‘페미니스트 및 여러 여성들의 추악한 행동으로 많은 남성과 국민들이 고통 받고 있’으며, ‘페미니즘은 인권과는 거리가 멀고 몇몇 여성들의 이기적인 행동을 합리화하기 위한 도구로 전락한지 오래’라고. 


 청와대 국민청원 사이트에는 ‘담뱃값만 인상하지 말고 생리대 값도 올리라’는 청원, ‘무분별한 페미니즘을 막아달라’는 청원, ‘여성의 입대 의무화에 대한 청원’ 등 페미니즘에 대한 배척과 남녀의 대립 구도를 확인할 수 있는 청원이 15개 중 2개꼴로 등록돼 있다. 잘못된 정보를 가지고 성범죄 피해자를 옹호했다는 이유로 연예인 수지에게 사형 선고를 내려달라는 청원도 올라왔다. 


 서강대학교에서는 지난 5월 10일(목) 섹스칼럼니스트로 알려진 은하선 작가의 <섹스, 많이 해봤어?> 강연이 취소되기도 했다. 앞서 서강대 학생들은 페이스북 등 교내 커뮤니티에서 은 작가가 남성 혐오적 발언을 해온 문제의 소지가 있는 인물이라거나, 은 작가를 포함한 강연회 연사들이 여러 인권 중에서도 여성인권 옹호에 치우쳤다는 등의 비판을 제기했다. 논란이 일자 서강대 총학생회는 “성별, 젠더, 섹슈얼리티와 관계없이 누구나 자신의 몸에 대해 탐구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은하선 씨를 섭외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후 캠퍼스에 총학 탄핵 연서가 나붙고 수백 명이 서명에 참여하는 등 문제가 커지면서 결국 강연이 취소된 것이다. 이에 여성학자 정희진 씨는 은 작가와 연대하겠다는 차원에서 <미투를 다시 생각한다- 범죄 신고가 혁명인 사회> 강의를 스스로 보이콧했다. 은 작가는 해당 사건을 두고 “페미니즘의 부재를 느꼈다”며 안타까워했다.


 (3) 그냥 따로 살자고? 


 사회적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여성과 남성은 서로에게 ‘적’이 돼버렸다. 페미니즘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지 못하고 있으며, 그 시각도 다르다. 인식이 다르다 보니 논의와 토론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결국 남녀의 단절이 이루어지고, 분리까지 주장하는 상황인 것이다. ‘펜스룰(여자를 멀리 하자는 것)’ 현상 혹은 ‘믿거(믿고 거르는) 한남(한국남자)’, ‘꼴페미(꼴통 페미니스트)’와 같은 말이 유행하는 것, 비혼‧비출산을 주장하는 여성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여성도 답답하다. 당장 말이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남녀가 평생 대화를 단절한 채 살아갈 수는 없다. 특히 페미니즘과 관련해서라면 더더욱. 결국 이들은 모두 살아가면서 반드시 커뮤니케이션해야 할 사람들이다. 


 ‘그런 불편한 대화 안 해도 일상생활에는 문제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안일해도 된다면, 이 세상은 참 살기 좋은 곳일 것이다. 성 평등한 사회로 가기 위해서 변해야 할 주체에는 여성뿐 아니라 남성도 포함된다. 함께 대화하고 행동해야 한다. 그래야 ‘진짜’ 살기 좋은 세상이 된다. 상호간의 공감과 참여 없이 어떻게 페미니즘의 궁극적 목적을 달성할 수 있겠는가. 한 쪽만 목소리를 내는 운동은 공허할 수밖에 없다. 문제에 대한 논의가 없으면 변화도 없다. 



3. ‘그들’은 왜 공감하지 못했을까


 (1) ‘페미니즘 콘텐츠’의 등장


 공방이 거센 사회 분위기를 반영하듯 페미니즘 콘텐츠들이 등장했다. 하지만 이런 콘텐츠들이 백래시를 시작한 남성들에게 받아들여질 만 했는지에 대해서는 한 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미디어는 삶 속 한 부분을 차지하고 사람들의 생각을 움직일 정도로 영향력이 크다. 그렇기에 책과 영화는 물론이고 웹툰, 페이지, 방송 프로그램에 이르기까지 미디어가 페미니즘을 다루는 폭이 이전에 비해 확장된 것은 환영해 마땅하다. 페미니즘 콘텐츠가 다루는 내용은 천차만별이다. 여성이 일상적으로 당면하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토크쇼, 여성의 실제 삶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관찰 예능, 드러내기 꺼려했던 여성의 성에 대한 이야기까지. 관련 기사와 콘텐츠들은 빠르게 확산됐고, 사람들은 이에 대해 각양각색의 반응을 보였다. 공감이 된다며 옹호하는 목소리도 많았지만, 이는 곧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들의 거센 비난에 상처 나기 일쑤였다. 핵심은 이 비난에 남성들의 목소리가 상당수 포함됐다는 것이다. 실제로 여러 페미니즘 콘텐츠에 대한 수용자 반응을 살펴봤을 때 많은 남성들은 소셜 미디어(SNS)나 시청자 게시판과 포털 사이트의 댓글을 통해 ‘과장하지 마라’ 며 불편한 기색을 가감 없이 표출하고 있었다. 여태껏 봐 왔던 ‘보기 편한’ 콘텐츠들과 달리 어딘가 ‘불편한’ 내용들이 포함돼서일까. 잠잠했던 미디어에 페미니즘의 물결이 일으킨 파동은 생각보다 거셌다. 


 (2) <까칠남녀>와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 에 주목하다 


 ‘페미니즘 콘텐츠’가 유독 수난을 겪는 이유는 무엇일까. 페미니즘 콘텐츠들은 수면 아래에 갇혀 있던 여성의 목소리를 끌어올렸다는 점에서 사회적으로 유의미하다. 그러나 텍스트 자체가 아무리 좋아도 수용자들이 그 안에 담긴 의미를 읽어내지 못한다면 갈등과 아쉬움만이 남을 수밖에 없다. 수용자들에게 생산자의 기획의도가 잘 전달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이는 매우 어려운 작업이다. 페미니즘에 대한 남녀의 인식 차이가 좁혀지지 않은 상황에서는 그 어떤 페미니즘 콘텐츠에도 남성의 반감이 거셀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과연 남성들도 공감할 수 있는 페미니즘 콘텐츠가 존재할 수는 있는 것일까. 


 도대체 두 콘텐츠가 남성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졌기에 그토록 부정적으로 여기는지 이유를 찾아보았다. 남성 시청자들의 격렬한 반응이 특히 두드러졌던 방송 프로그램인 <까칠남녀>(EBS)와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MBC)를 분석 대상으로 선정했다. 실제로 이 프로그램들은 연출과 내용 측면에서 현재 페미니즘에 대한 남성의 인식을 고려하지 못한 접근법을 사용했다는 한계가 있다. 이들 프로그램에 남성이 반감을 가지는 요소를 분석하고, 앞에서 진행한 남성 인터뷰 결과와 연결해 공통점을 찾아볼 것이다. 남성들은 이 프로그램들을 왜 그렇게 싫어할까. 원인을 알면 개선책도 알 수 있을 것이라는 일념으로 남성들이 가진 페미니즘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이들 콘텐츠가 어떻게 강화시키고 있는지를 들여다봤다.



* 프로그램 소개


<까칠남녀>, 까칠한 남녀가 만나 토론을 펼치다


<까칠남녀>(EBS)는 ‘일상 속에서 무심코 지나쳤던 성(性)에 대한 고정관념과 성 역할에 대한 갈등을 유쾌하고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는 기획의도로 제작됐다. 남녀 전문가들이 출연해 다양한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2017년 3월 27일 ▲공주도 털이 있다 를 첫 방송으로, ▲오빠 한 번 믿어봐, 피임전쟁 ▲김치녀라 부르지 마라 ▲벌레가 된 엄마 '맘충' ▲나는 오늘 쩍벌녀가 됐다 ▲부장님, 그건 성희롱입니다 ▲모르는 형님 - 성소수자 특집 등 총 43회에 걸쳐 다양한 주제를 다뤘다. 성소수자 특집 이후로 논란을 빚고 1년도 안 돼 폐지됐다.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 이상한 나라에서 살고 있는 며느리들의 이야기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MBC)는 ‘결혼 이후 여성에게 보다 많은 책 임과 희생을 요구하는 이 사회의 불합리한 관행을 꼬집어낸 신개념 관찰 프로그램’이라는 기획의도로 제작됐다. 고부 관 계와 부부를 담은 관찰예능 형식이 실험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남성 진행자 두 명과 세 명의 며느리(김단빈, 민지영, 박 세미)가 출연해 관찰 카메라로 촬영된 영상을 보고 이야기를 나눈다.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4월 12일 첫 방송을 시작으로 총 3부작을 방영했다. 현재는 6월 27일 정규 프로그램 편성 을 앞두고 있으며, 이에 대한 찬반 대립이 뜨거운 상황이다.


 (3) 자극적 전개에 자극받는 男 시청자


 두 프로그램은 모두 상황 속에서 벌어지는 갈등 관계를 자극적으로 그리고 있다. 이러한 연출의 가장 큰 문제점은 자극적인 상황 자체에 대한 비난으로만 그치고 정작 본질적인 문제에 대한 공감까지 이어질 수는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남녀 간 대립을 다룬 <까칠남녀>의 ‘혐오전쟁: 반격의 서막’ 편은 남성들이 가장 크게 불쾌감을 표현한 회차다. 남성들의 많은 행동들을 혐오라 일컫고 비판하는 여성 패널, 그리고 이에 반박하는 남성 패널의 토론 상황을 ‘공격적인 큰 눈(여성) VS 전략적인 실눈(남성)’으로 표현하는 등 대립적 구도로 그리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해당 회차의 유튜브 댓글창은 “남자, 여자 전체로 몰고 가지 말고 그 놈, 그 년, 그 인간한테 따져라”, “진짜 이해가 안 간다. 범죄에 왜 프레임이 붙냐”, “그동안 노골적으로 여자가 무조건적 피해자라는 틀에서 기획 및 제작됐고, 사회자는 티 나게 여자 편을 들며, 패널도 여자에게 유리하게 구성됐다. 토론하자면서 남자가 무슨 주장을 하던 범죄자 혹은 여혐종자 취급하는 분위기는 분명 문제가 있다” 등 프로그램을 비판하는 내용들로 가득했다. 이유진 스포츠경향 기자는 “‘젠더 감수성’을 높이자는 프로그램의 취지에는 실패한 느낌이다. 자의든 타의든 프로그램으로 인해 젠더들 간의 분란이 더 조장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민지 <까칠남녀> PD조차도 "아무리 좋은 말도 너무 어렵거나 격렬한 감정을 갖고 전달하면 오히려 반감을 살 수 있다"고 한계를 인식했한 바 있다.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에서도 유사한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다. 2회 내용 중 김단빈과 시어머니의 갈등 장면이 나오는데, 여기서는 ‘소리 지르고’, ‘펑펑 울고’, ‘싸우는’ 장면에 많은 시간을 할애해 보여준다. 어쩌면 이는 실제로 자주 일어나는 현실 속 상황을 드러내기 위한 일종의 ‘충격 요법’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는 단지 상황에 대한 비난으로만 그치고 만다. “저 집안이 유독 극단적인 거다. 저렇게 많이 싸우는 시어머니랑 며느리가 어디 있냐”, “우리 집은 안 그렇다”와 같은 남성의 반응이 나오는 이유다. 고부 갈등 사이에서 이도 저도 아닌 입장을 보이거나 시어머니 입장에서 말하는 남편의 태도, 그리고 시댁에 대한 비판만이 난무하는 것이다. 남성들은 프로그램에서 다루는 상황들이 과장됐다고 말한다.


 이러한 반응은 남성이 페미니즘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이유에 대한 인터뷰와 연결해 볼 때 ‘과격한 페미니즘에 대한 분노’와 맥락이 같다. ‘페미니즘은 역시 저렇게 과격하구나’하고 여기며 그 원인에 대해 생각하기보다는 단순히 방송 내용에 대한 분노에만 그치는 것이다. 이봉우 민주언론시민연합 활동가는 “갈등의 바람직한 해결을 위한 ‘논의’ 대신 무의미한 남녀 간 말다툼을 보여주며 갈등을 ‘시연’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한계를 지적한바 있다. 자극적으로 드러낸 눈앞의 장면에 대한 단순 분노로만 그치면 안 된다. 분노의 화살이 개인을 겨냥하게 하는 방법으로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4) “나는 맞고 너는 틀리다”


 두 프로그램은 기획 의도에서도 드러나듯 대화와 공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지만 프로그램 내용을 들여다보면 일방적 커뮤니케이션에만 그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까칠남녀>에서는 패널 남녀가 대화를 나눈다기보다 서로에게 ‘너의 의견은 틀렸어’ 식의 판단자로 존재하고 있다. 더 심각한 것은 일방적인 대화 중단이다. 토론 진행 중 깊이 논의해봄직한 여러 쟁점이 나왔음에도, 방송 끝 부분에서 사회자는 “자, 이제 자기 생각을 한 문장으로 정리해봅시다”라며 마무리를 요구한다. 급하게 내린 남녀 패널들의 결론의 방향은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 쟁점은 있으나 결론이 없는 셈이다. 해당 회차에서 다뤄진 주제에 대한 토론이 이루어진 것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토론 이후에도 그 어떤 변화도 없이 각자의 주장에만 머물러 있는 모습이 자주 관찰된다. 이를 보는 시청자들 또한 혼란이 가중된다는 반응을 보인다.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에서도 마찬가지다. 문제 상황과 관련된 부부 간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는 모습은 방송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관찰카메라 영상을 며느리들은 스튜디오에서, 남편들은 각각 분리된 별도의 공간에서 시청한다. 이처럼 상황 내부의 입장에서 토로하는 실질적인 고충과 이를 상황 외부에서 관찰하고 평가하는 소감은 같을 수 없다. 소통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는 모습이다.


 인터뷰 결과와의 연관성은 여기서도 드러난다. ‘여자는 무조건 피해자, 남자는 가해자’ 라고 생각하는 이분법적구도에 대한 불만적 태도와 연결되는 것이다. 프로그램에서 보여주는 상황에 대한 맥락을 배제하고, 감정 소모적인 논쟁에 대한 비판에 지나치게 치중하는 모습이다. 우리 사회 속에 녹아있는 성차별 지점을 꼬집고 젠더 감수성을 일깨운다는 의도와는 달리, 사실 무슨 이야기를 나누든 결론은 이미 정해져 있는 모양새다. ‘남자는 무조건 잘못했으니 여자 말을 들어야 한다’는 식이다. ‘남성은 여성이 느끼는 기분을 절대알 수 없다’, ‘제대로 알고나 말하라’, ‘남편들은 뭘 몰라요’와 같은 대사들이 이를 뒷받침한다. 두 프로그램 모두에서 드러나는 몰아가기식 편집 또한 자극적이다. 상황을 묘사하는 자막과 효과음, 각종 그림이 갈등을 극대화한다. ‘쯧쯧’, ‘(아내는 요리하는데) 그저 손을 씻으러 온 남편’ 등의 편집에 따라오는 여성들의 비난과 욕설은 남성을 향한다. 김교석 대중문화평론가는 이러한 부분에 대해 “모든 남자들을 계몽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이미 정해진 도식에 따라 전개되는 데다, 그 태도가 다소 공격적이다 보니 페미니즘 콘텐츠로서의 새로움도, TV 콘텐츠로서의 호감과 관심을 얻는 데도 고전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5) “숲은 문제없어, 나무 하나가 썩은 거지”


 페미니즘을 내건 콘텐츠라면,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에 대한 고발을 얼마나 성실하게 수행하고 있는지도 중요하게 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두 프로그램 다 문제의 본질이 사실은 오랜 시간 체계적으로 작동해 온 구조적인 문제라는 점을 시청자들에게 잘 전달하지 못했다. <까칠남녀>는 그래도 ‘불편함을 못 느꼈다면 권력자의 위치에 있었던 것’, ‘기울어진 운동장인 남녀 성별 불균형 사회에서는 절대 동일선상으로 볼 수 없는 문제’, ‘직업 특성을 노려 꽃뱀 프레임을 만드는 것이 문제’와 같은 지적을 하는 등 구조적인 측면을 짚으려는 시도는 했다. 그러나 앞서 살펴봤듯 논의가 중도에 급작스럽게 단절된다는 점에서 한계를 보인다. “남자, 여자 전체로 몰고 가지 말고 그 놈, 그 년, 그 인간한테 따져라”와 같이 상황 속에서 발생하는 문제가 단지 개인이 이상하기 때문이라는 식의 거친 반응을 보이는 남성들도 꽤 발견할 수 있었다.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에서 이러한 문제는 더욱 극단적으로 표출된다. ‘전지적 며느리 시점’으로 보여주는 관찰 카메라와 스튜디오 토크가 빚어내는 고발의 역할이 분명히 있음에도, 여러 댓글과 커뮤니티 반응 등을 통해 본 남성 시청자의 반응은 여성 시청자와는 다르다. 이러한 ‘그대로 관찰’ 방식이 역효과로 작용한 것이다. 시청자들의 분노가 향한 곳은 사회가 아닌 개인이었다. 안전을 위해 의사의 권유대로 제왕절개를 해야만 하는 아내 박세미와 뱃속 아이의 IQ를 걱정해 자연분만을 강요하는 시아버지 사이에서 ‘둘의 의견을 절충하자’, ‘그럼 아빠 말대로 할까?’ 식의 방관적, 중립적 태도를 보인 남편 김재욱에게는 비난이 폭주했다. 이처럼 프로그램은 가족 내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자극적으로 보여주기만 할 뿐, 왜 문제인지는 ‘대놓고’ 말해주지 않는다. 근본적인 솔루션을 제공하지 못한 것이다. 고부 갈등의 직접적 원인인 성차별, 그리고 한국의 기형적인 결혼문화에 대한 비판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저 방송에 보여진 남편의 태도와 시댁에 대한 비판만이 난무할 뿐이었다.


 이 지점은 앞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드러난 남성들의 답변 내용과 가장 일치한다. 우선 ‘여자는 무조건 피해자, 남자는 가해자’라고 생각하는 이분법적 구도에 대한 불만은 이 부분에도 해당된다. ‘나는 아니야, 저 남자가 문제지’라고 하는 반응이 대표적이다. 인터뷰 수행 중 남성에게 미투(#MeToo·‘나도 고발한다’)운동에서 파생된 ‘펜스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물었더니 “내가 의심받을 수도 있는 상황을 조심하고 피하겠다는데, 뭐가 문제냐”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근원을 보지 못하고 일부 개인의 문제에만 치중하는 모습이다. 실제로 “유독 극단적인 집안만 보여준다. 실제로 저런 집안이 어딨냐”라는 반응도 발견할 수 있었다.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는 사회에 문제의식을 던지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이 프로그램 역시 현상의 미시적 분석에만 치중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문제에 대한 직접적인 솔루션이 즉각 제공되지 않아 불똥은 엉뚱한 곳으로 튀었다. 특히나 남성이 주가 되어 여성출연자들을 향해 가해진 비난은 고스란히 며느리 개인과 그의 가족이 감당해야 할 문제가 됐다. 사회 구조를 향해야 할 비난이 개인을 향하며 이들이 고통 받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진정 ‘며느리를 위한 방송’이라고 할 수 없다. 이러한 남성의 반응은 ‘며느리’라는 이름으로 억압받고 있는 여성들의 삶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편협한 사고이며, 가정 내에서 비정상적으로 작동돼 온 젠더 권력 관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거시적으로 보지 못하고 미시적 시각에 갇힌 탓이다.



4. 마치며… 우리 모두는 어디에선가 ‘을’이다


 (1) 남성들이 공감할 수 있는 페미니즘 콘텐츠가 필요한 때


 위 같은 상황, 참 답답하다. 그러나 이 같은 현상과 반응이 단지 방송 프로그램에만 머물지 않고 현재 일상 속에서도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라는 것이 갈등을 더욱 심화시킨다. 거두절미하고, 지금 이 시대엔 ‘남성들이 공감할 수 있는 페미니즘 콘텐츠’도 필요하다. 새로운 시도를 접목한 콘텐츠를 통해 바라는 남성 변화의 정도는 ‘인식의 변화’다.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게 된 젠더권력이 어떤 부분에서 옳지 않게 작동할 수 있는지를 의심해보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미디어가 기여할 방식은 페미니즘에 대한 인식을 거시적으로 확장하는 일이어야 한다. 포인트는 남성과 여성 간 공감 지점을 발굴하는 것이다.


 페미니즘 콘텐츠의 방향성은 앞의 인터뷰 결과와 기존 콘텐츠 분석 내용을 반영해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그 사람도 물론 이상하지만 이에 영향을 미친 구조는 더 이상하다’는 점을 대놓고 보여주는 거다. 몰카 찍는 남자, 성희롱을 밥 먹듯 하는 부장, 오직 아이의 아이큐 걱정에 위험한 자연분만을 강요하는 아버지가 진짜 나쁘지만, 이건 ‘그 사람이 이상하다’ 선에서 끝날 문제가 아니라 뿌리 깊은 구조의 영향임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전략을 곳곳에 배치하는 것이다. 사실 지금의 미디어가 페미니즘을 다루는 방식은 ‘사이다’이기는 하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시원하고 통쾌한 것에만 그치는 경우가 많다. 최태섭 문화평론가도 “방송이라는 한계 때문이긴 하지만 흥미 위주의 소재를 찾으려는 경향을 보이거나 듣기에는 시원시원하지만 논의의 맥락이나 역사를 배제하고 이뤄지는 ‘사이다’ 비판이 많다”며 “이것이 양성 간 이해를 오히려 방해하거나 왜곡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고 우려했다. 이제는 이를 넘어 바닥에 가라앉은 덩어리들을 끌어올려서 단물과 함께 떠먹여주는 ‘식혜’ 같은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식혜 콘텐츠를 통해 사회학적 상상력을 가질 수 있게 돕는 것이다. (사회학적 상상력이란 거시적인 사회와 그에 속한 개인의 행위로부터 형성되는 관계를 인지해 내는 능력을 말한다. 여기에는 사회 내 개개인의 특성과 역사적 변천 사이의 관계를 인지하는 능력과 더불어 사회 내 인과관계가 해당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파악하는 능력이 모두 포함된다.)


 두 번째는 페미니즘이 먼 얘기가 아니라 알고 보면 자신의 이야기라는 점을 심어주는 것이다. 젠더 권력의 작동 방식처럼 부당한 구조적 권력관계를 쉽게 이해하고 와 닿게 할 수 있도록 여러 예시와 비유를 곳곳에 배치하는 것이다. 백인과 흑인 혹은 서양인과 동양인의 인종 간 권력 관계, 일본과 한국의 식민지 권력 관계, 그리고 서울대와 본인의 학벌 권력 관계가 대표적이다. 서울대 예시에서는 ‘서울대생들이 펜스룰과 같은 장벽을 쳐서 따돌렸으면 좋겠는가?’와 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을 것이다. 민가영 교수(서울여대)는“한국 남성들도 어떤 지점에서는 명백한 ‘을’의 위치에 놓이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페미니즘을 외면할 수 없다”면서 “자신의 소수자성을 성찰할 때 다른 을과 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남성들의 경험인 ‘맨박스’를 건드리는 방법도 있다. 맨박스가 남성들의 방어 기제로만 기능하게 될 수 있기 때문에 회의적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페미니즘이 남성의 해방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공감 포인트를 발견하는 것이 현재 상황에서는 효과적인 장치가 될 수 있다. ‘차이가 차별이 되지 않는 사회를 지향하는 페미니즘’이 곧 남성을 위한 운동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말이다. ‘남성다움’의 신화에 옥죄여 왔던 남성들의 해방 기제로 기능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남자라는 이유로 가부장제 사회에서 온전히 짊어져야 했던 책임감을 내려놓고, 자신의 성격을 애써 부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등을 말할 수 있다. 해당 부분들을 콘텐츠가 잘 꼬집는다면 남성 또한 페미니즘이 자신과 별개의 문제가 아님을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앞서 등장했던 ㅇ씨(23) 또한 “그런(맨박스) 내용이 페미니즘의 가치 중 하나가 되는 건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위 방법론들의 효과에 대해서 당장은 단언할 수 없다. 다만 희망은 보였다. 앞서 등장한 ㅎ씨(23)는 “한 번 더 생각해봐야겠다”고 했다. 그는 페미니즘에 대한 사유조차 꺼려했던 사람이다. 또 다른 남성 ㅅ씨(23)는 “기존 페미니즘 콘텐츠를 무조건 옹호하던 것에서 벗어나서 일단 문제의식을 느끼고 접근한 것 자체가 남성도 수용할 준비를 할 수 있게 해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 또한 ‘성 평등엔 동의하지만 한국의 페미니즘이 한 가지 길만 강요하고 가르치려드는 게 싫다’고 했던 사람이다.


 (2) ‘날 때부터 페미니스트’는 없다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페미니스트’인 사람은 없다. 이렇게 말하는 (여성인)필자들도 페미니즘이 주는 배움에 혼란과 충격을 아직도 열심히 겪는 중이다. 가부장제의 주인공은 아니었어도 태어날 때부터 가부장제였던 사회에서 가부장제가 전제된 교과서, 그리고 미디어와 함께 자라온 탓일 것이다. 하지만 페미니즘을 접한 후 ‘프로 불편러’를 자처해 모든 것에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번 기획에서도 “남성들은 어떨까”라는 의문을 갖고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을 출발시켰다.


 몸소 부딪히고 경험하고, 아파도 보고,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과 논쟁도 벌여보고, 결국엔 스스로 혹은 타인에게 공감해보면서 페미니스트가 된다. 남성 페미니스트인 데이비드 커헤인이 페미니스트가 되려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부탁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일 것이다. 자신을 윤리적으로 불완전하고 복합적인 존재로 기꺼이 받아들일 것, 비판에 대해 개방적일 것, 지속적으로 자아 성찰을 할 것.


 이제 미디어 콘텐츠도 걸어온 길을 돌아보고 방향을 틀어 보려는 시도가 필요하다. 지금 이 시대, 불가능해 보이는 ‘한남’과 ‘꼴페미’의 대화가, 남녀의 대화가 가능해지기 위해서는 말이다.


 ‘젠더 갈등’이 공모 주제로 제시될 만큼 남녀의 갈등은 한국사회에서 발생하는 대표적인 대립 상황 중 하나다. 박태준미래전략연구소에서 주관하는 본 공모전을 통해 젠더 갈등에 대한 표면적인 분석에만 머물지 않고, 전공생으로서 시도해볼 수 있는 방식으로 그 해결 방안을 고민했다. 연구소에서 제시한 시기적절한 주제가 필자들을 비롯한 많은 청년들이 생각해볼 수 있는 지점을 마련했다고 본다. 이는 그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데 큰 기여를 할 것이다. 사회 문제의 해결은 개개인의 진지한 고민으로부터 출발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더 나은 한국사회를 위한 길에 청년들이 의미 있는 발자국을 찍어볼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한 박태준미래전략연구소에 감사를 전하며 에세이를 마무리한다.



<참고문헌>


● 청와대 국민청원 http://www1.president.go.kr/petitions/238453

●  EBS 유튜브 채널 https://www.youtube.com/watch?v=4XqQVKPNr3s

●  EBS <까칠남녀> 홈페이지

http://home.ebs.co.kr/gender/board/10/10080848/list?hmpMnuId=101

● [오마이뉴스] 충분히 '까칠'하지 않은 <까칠남녀>, 그래도 난 응원한다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47&aid=0002147620

● [중앙일보] 논쟁적 프로그램, 페미니즘 토크쇼…이 논란이 가치 있는 이유

   http://news.joins.com/article/22157899

● [오마이뉴스] 남자MC 허튼소리,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를 향한 공분

 http://entertain.naver.com/comment/list?oid=047&aid=0002187326

● 벨 훅스,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문학동네(2017)

● 홍명근 블로그입니다 ‘남성 페미니즘은 가능할까?’

   https://blog.naver.com/lolen86/220996910791

● [스포츠경향] ‘까칠남녀’ 논란…시청자가 바라는 EBS의 가치

http://sports.khan.co.kr/entertainment/sk_index.html?art_id=201711221640003&sec_id=540201&pt=nv

● [PD저널] ‘까칠남녀’에 까칠하게 반응하는 이유

http://www.pd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61302

● [아이즈] ‘까칠남녀’ 김민지, 이대경 PD “보는 사람들과 용기를 같이 나눠 가지고 싶다.”

    http://ize.co.kr/articleView.html?no=2017052404157272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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