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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2) 박정희, 김대중 납치 사건 일으킨 이후락에게 재떨이 던지다 - 2015.05.06 [프리미엄조선 연재]
등록일 : 2019-04-29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232
(상편에서 계속) 전면적인 중단, 일본정부의 대한(對韓) 경협중단은 말 그대로 전면적인 것이었다. 설비구매나 기술협력에서 일본철강업계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박태준의 포스코도 예외로 두지 않는다고 못을 박았다. 한국정부가 사건 발발 86일 만에 중앙정보부 관련자들을 면직 처분하겠다는 공개 발표를 하고 김종필 국무총리가 방일하는 등 우여곡절을 거쳐 그해 12월 22일 중단되었던 한일각료회의가 간신히 재개되었다. 그러나 일본정부는 봉쇄해둔 경협의 길을 풀지 않았다. 이번에도 포스코를 예외로 인정하지 않았다. 도쿄에 머물며 태완선 부총리 등에게 회의 결과를 확인한 박태준은 문득 자신의 무릎을 쳤다.

‘정치인이 아닌 내가 왜 정치적 방법에 매달리고 있는가? 사업의 난관은 사업가의 방식으로 돌파해야 옳지 않은가!’

그것은 일종의 대오각성이었다. 박태준은 즉시 독일 가는 루프트한자 항공기에 좌석을 구하게 하고 외국계약부장과 함께 짐을 꾸렸다. 그는 포철 1기 건설에서 대성공을 거두었으니 유럽 철강설비업체들로부터 환영 받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것은 적중이었다. 크리스마스 휴가, 새해 휴가를 반납한 철강설비업체 중역들이 박태준이 기다리는 함부르크 고급호텔의 로얄스위트룸으로 속속 모여들었다. 그리고 그들은 1974년 벽두에 영일만 포스코의 영빈관 ‘영일대’로 날아왔다.

백록대 창밖에는 바람소리가 으르렁거렸다. 박태준은 벌써 5년이나 지난 1974년 1월의 이야기를 이렇게 마무리했다.
“그때도 오일쇼크 여파로 전력을 아끼자는 국가적인 캠페인이 전개될 때였는데, 저는 영일대에 밤마다 불을 환하게 켜라고 했습니다. 일본 기술자들을 자극했던 건데, 그 작전이 효과만점이었습니다. 구라파에서 설비 장사꾼들이 와 있다니까 주한 일본대사가 바로 연락을 해왔던 겁니다. 지금 그 협상에 일본 업체들도 끼워줄 수 있느냐, 이거였습니다. 애를 먹일까 하다가 1기에 적극 협조해준 공로도 있고 해서 동등한 자격을 주겠다, 더 늦지는 말라고 했더니, 단걸음에 달려왔습니다. 그래서 2기는 우리 입맛대로 구라파, 일본, 미국에서 골고루 설비구매계약을 하게 되었고, 그게 설비구매의 선을 다양화하는 계기도 됐습니다. 나는 정치인이 아니라 사업가다, 이 착상을 했던 것이 그런 결과를 낳았던 건데, 성동격서라는 말을 생각하면, 그 착상이 성서격동의 전략으로 구체화되었던 겁니다.”

박태준의 이야기가 무거웠던 분위기를 엔간히 걷어냈다. 박정희도 밝은 기운을 더 받고 싶은지 새로 박태준의 잔을 채워주며 거의 20년이나 흘러간 ‘회도 좋고 술도 좋다’고 했던 저 아득한 부산 시절의 한 토막을 술상 위에 올려놓았다.
“부산에서 기자들하고 한잔 하던 밤에 광주로 가라는 인사명령을 받았잖아?”
“예. 그랬습니다.”
박태준이 미소를 지었다. 그날 밤에 보았던 박정희의 우스꽝스런 안남춤 장면을 언뜻 떠올린 것이었다. 그것을 아는지 박정희도 미소를 지었다. 그의 고향 막걸리는 1월의 긴 밤처럼 넉넉히 남아 있었다.

포스코의 공식 기록에는 ‘박정희의 13번 포철 방문’ 날짜가 열두 번째까지만 나와 있다. 마지막 열세 번째는 보이지 않는다. 백록대에서 박태준과 단둘이서 맨가슴으로 ‘고향’ 막걸리를 대작한 그날이 열세 번째 방문이었다. 이튿날(1979년 2월 1일) 박정희는 포철에 들리지 않고 서울로 올라갔다. 그날 포철은 4기 종합착공식을 가졌다. 예정과 달리 ‘포철 4기 확장공사’ 종합착공 버튼을 누르는 자리에 박정희가 나타나진 않았으나, 박정희와 박태준이 일심으로 창조해 나가는 ‘영일만 신화’를 완성하기 위한 제4막의 무대가 활짝 열린 것이었다.
포항제철 850만 톤 설비 구축 기념식.
포항제철 850만 톤 설비 구축 기념식.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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