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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부실공사를 폭파한 박태준이 ‘가난뱅이국가’ 딱지도 떼버리다 - 2015.03.09 [프리미엄조선 연재]
등록일 : 2019-04-25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172
‘발전주의 국가’가 주도하여 압축성장하는 한국경제에 아주 좋은 보약이 되었던 1970년대 중후반의 ‘중동 특수’. 빈곤을 떨쳐내고 일어서려는 한국인에게 고맙게도 달러를 보태주는 그것이 1977년 여름의 영일만 건설현장에는 장애물과 다르지 않았다. 건설 숙련공들이 대거 아라비아 사막으로 떠나버려서 숙련공 부족에 비례하여 공기가 지연되고 공사품질이 저하되는 것이었다.

1977년 8월 1일. 아침부터 불볕이었다. 박태준은 발전송풍설비 공사현장 앞에 차를 세웠다. 콘크리트 구조물이 80%쯤 진척되어 높이 70미터의 굴뚝도 올라가 있었다. 그는 찬찬히 기초공사 상태를 살펴보다 지휘봉으로 한 지점을 가리켰다.
“저긴 왜 저렇게 울룩불룩 나와 있어?”
포스코 감독의 낯빛이 낮달처럼 질렸다.
“입사한 지 몇 년 됐나?”
“3년 조금 지났습니다.”
“나는 10년 됐어. 저대로는 안 돼. 방법이 뭔가?”
“문제 부분을 뜯어내고 다시 하겠습니다.”
감독이 조심스레 답했다. 사장의 지휘봉이 움직였다. 턱, 안전모에서 소리가 났다. 퍽, 어깨에서 소리가 났다.
“너 인마, 정신이 있는 놈이야, 없는 놈이야? 그러면 콘크리트 양성시기가 안 맞잖아?”
“예, 그건 그렇습니다.”
박태준은 일본인 감독관도 앞으로 불렀다.
“너희는 뭐 했어!”
짧은 정적이 흘렀다. 별안간 육중한 철근 같은 명령이 떨어졌다.
“당장 폭파해!”
“무슨 말씀이신지……?”
박태준은 친절하게 폭파 준비까지 일러줬다.
“먼저 드릴을 가져와서 군데군데 구멍을 뚫고 다이너마이트를 넣어. 다이너마이트는 대한중석에 연락하면 금세 오게 돼 있어. 다이너마이트가 오면 구멍에 넣고, 물 젖은 가마니를 덮어. 그러고는 바로 폭파야.”

현장 책임자들에겐 바쁜 하룻밤이 지나갔다. 석산 현장으로 달려가서 폭약을 구해오랴, 포항경찰서에 뛰어가서 폭파 허가를 받으랴, 폭약을 장전하랴, 폭파기사를 대기시키랴….

이튿날이었다. 그림자가 짧은 한낮에 ‘이상한 기념식’이 마련되었다. 포항제철 안에 있는 모든 건설 현장의 책임자와 간부, 외국인 감독, 그리고 포스코 임직원이 한자리에 모였다. 모두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숨소리도 들리지 않는 듯했다. 땡볕만 뜨거웠다.

‘나의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고 했다는 나폴레옹의 말을 떠올린 박태준은 문득 하나의 문장을 완성해 보았다. ‘포철의 사전에 부실공사는 없다.’ 하지만 정말 그걸 실현하려면 그런 거창한 말까지 동원할 필요는 없다고, 그는 생각했다. 80%나 진척된 공사를 다이너마이트로 완전히 날려버리는 ‘거창한 폭파식’이야말로 어떤 호소나 명령보다 훨씬 더 강력하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그는 확신했다.
80%나 진척됐지만 부실한 면을 발견하고 다시 짓기 위해 송풍발전소 공사현장을 폭파하는 모습.
80%나 진척됐지만 부실한 면을 발견하고 다시 짓기 위해 송풍발전소 공사현장을 폭파하는 모습.
“꽝! 꽝! 꽝!”

굉음이 터졌다. 예산과 시간과 노력이 한순간에 파편으로 부서진 찰나, 모여든 사람들은 놀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굳게 입을 다물었다. 허망하게 사라진 것들과는 견줄 수 없는 무형의 자산이 그들의 머리와 가슴에 오롯이 남아야 했다. 그것이야말로 하나의 문장이면 너무 충분했다.

‘포철의 사전에 부실공사는 없다.’

영일만 바다 빛깔에 가을이 묻어나는 9월 7일, 박정희가 포철 3기 건설 현장을 찾아왔다. 박태준의 첫눈에 어딘가 모르게 지쳐 보이던 대통령의 얼굴이 포철의 활기찬 현장을 둘러보는 동안에 밝아진 것 같았다.
“한 방 쾅 날렸다고?”
“대포 한 방보다 약한 거였는데, 청와대까지 들렸습니까?”
두 사람은 풀썩풀썩 웃었다.
“내년 12월에 550만 톤 끝내면 1000만 톤까지는 훨씬 가깝고 쉬워집니다.”
“포철은 든든하게 잘 가고 있는데 국가재건, 경제개발이 우리가 혁명 때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는 오래 걸려. 시간은 빨리 가고.”
박정희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그럴 수밖에 없지 않나, 하고 스스로 헤아리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포철 2고로에 화입하는 박정희 대통령과 박태준 사장
포철 2고로에 화입하는 박정희 대통령과 박태준 사장
1977년 여름에 누구도 상상 못할 폭파식을 거행하여 현장 풍토를 일대 쇄신한 박태준은 그해 가을에 한국기업 최초로 ‘정부보증 없는 차관도입’에 도전한다. 국회가 삭감시킨 포항제철 4기 공사 착수금 예산 1억 달러. 이 돈을 그는 미국 시티은행의 홍콩 계열은행인 APCO에 가서 ‘포스코 자력’으로 차입하기로 결심했다. 국제금융기관이 신인도 낮은 개발도상국 기업과 차관 협상을 벌일 때마다 요구하는 정부보증, 이번 기회에 그는 그 가난뱅이 딱지 같은 것을 찢어버리고 싶었다.

‘포철 예산 반대’를 통해 새로운 기회를 제공해준 국회에 대해 오히려 고맙게 생각하며 APCO에 들어서는 박태준에게 가장 듬직한 무기는 포스코의 조업실적과 경영실적이었다. 그것들이 통하지 않으면 일은 그르칠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포스코의 서류들을 자세히 살핀 은행원이 환한 미소를 지었다. 추가 서류도 추가 설명도 요구하지 않았다. 존경의 눈빛으로 박태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포스코의 신인도에는 정부보증이 별도로 필요하지 않습니다.”
차관도입의 정부보증, 한국에서는 포스코가 처음 그 굴레를 벗어던진 기업이 되었다. ‘가난뱅이 나라’라는 딱지를 떼버린 박태준은 가슴 저 밑바닥에 고여 있던 설움 비슷한 그 무엇이 증발하는 것 같은 기분도 덤으로 맛보았다.
미국 시티은행과 정부 보증 없는 1억 달러 차관제공 체결
미국 시티은행과 정부 보증 없는 1억 달러 차관제공 체결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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