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 영상
  • 연구결과물
  • E-카다로그
  • 발전기금
  • HOME
  • 박태준의삶
  • 위대한 만남 - 박정희와 박태준
  • 인쇄
  • 글자크기
  • 확대
  • 초기화
  • 축소

게시판 List
(42) 미국 자금줄이 막힌 박태준에게 번뜩 떠오른 기발한 생각 - 2014.12.01 [프리미엄조선 연재]
등록일 : 2019-04-18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164
박태준은 포이에게 심야 결례의 이해부터 구했다. 포이는 기분이 상한 표정은 아니었다. 한국어 바이블에 등장하는 단어를 빌리자면 ‘젊고 가난한’ 한국인 사장을 ‘긍휼히’ 여기는 것 같았다.
“박 사장님, 하고 싶은 말씀이 무엇입니까?”
박태준은 사업과 다른 차원의 설득을 시도했다.
“다른 나라들은 몰라도 미국이 이렇게 나오는 것은 매우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실제로 그의 말은 ‘가시’를 달고 있었다. 아무리 사업세계지만 빈곤한 혈맹국을 상대로 지나치게 장사치 근성을 내세우는 것 아니냐, 이런 것이었다.
“한국은 공산주의의 확산을 막는 최일선 방어벽 역할을 하면서 산업화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오랜 빈곤에서 벗어나려고 온 국민이 발버둥을 치고 있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종합제철소를 갖지 못한다면 한국 산업계의 미래는 어두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특수한 사정을 혈맹국의 입장에서 고려해주시고, 특히 회장님께서 KISA 대표들을 직접 설득해주시기를 희망합니다.”

백전노장의 자본가 포이는 담담하고 냉정했다.
“이것은 사업의 관점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경제적 타당성이 없는 프로젝트에 지원할 수는 없습니다. 당신의 애국심을 존중하고 실망감을 이해합니다. 그러나 IBRD의 한국경제에 대한 최종보고서 내용은 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박정희 대통령이 정열적으로 지도하는 한국을 도와드리고 싶지만 KISA의 미국측 회사로서는 IBRD의 의견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내일 워싱턴에 가서 최선을 다하기 바랍니다.”

포이의 마음은 이미 잠겨 있었다. 자기 마음을 다시 열어줄 수 있는 열쇠는 워싱턴의 두 은행이 갖고 있다고 했지만, 박태준은 백인 노신사의 점잖은 발뺌에 불과하다고 판단했다. 또한 포이의 마음이 굳게 잠겼다는 것은 KISA의 문도 은행들의 문도 잠겼다는 뜻임을 명확히 알아차렸다.
날이 밝았다. 거의 뜬눈으로 밤을 새운 박태준은 최주선에게 말했다.

“워싱턴 일정은 취소야.”
“사장님도 정부 사람들과 같이 가셔야 되는 것 아닙니까?”
“뻔해. 내가 포이에게 IBRD를 설득해달라고 하니 포이는 나한테 IBRD를 설득해서 다시 찾아오라고 하는 식인데, 퇴짜가 뻔해. 퇴짜 맞으러 왜 가? 푹 쉬었다가 짐이나 싸자. 돌아가서 생각하자.”
KISA 대표단과 추가협의를 하는 박태준 사장.
KISA 대표단과 추가협의를 하는 박태준 사장.
그런데 아침에 포이가 박태준의 방에 들렀다. 노신사는 아들 또래밖에 안 되는 가난한 나라의 패기에 찬 젊은 사장을 빈손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사업적으로야 어쩔 수 없더라도 인간적으로는 찔리는 모양이었다.
“워싱턴의 일이 잘되기를 바랍니다.”
노신사가 내민 손을 박태준은 정중히 잡았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저는 워싱턴에 가지 않습니다. 의례적 절차에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습니다. 귀국해서 다른 방도를 찾아보겠습니다.”

노신사는 그래도 가보라고 권유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따뜻한 눈빛으로 아주 엉뚱한 제안을 내놓았다. 하와이 와이키키 해변에 자기네 부사장의 콘도가 있으니 돌아가는 길에 거기 들러서 며칠 휴식하면 어떠하겠느냐는 것. 박태준은 호의를 거절하지 않았다. 지독한 실연에 빠진 젊은이처럼 지칠 대로 지친 몸, 허탈의 웅덩이에 빠진 정신부터 수습해야 했다. 아니, 푹 쉬면서 절망에서 빠져나갈 구원의 동아줄을 찾고 싶었다. ‘절대적 절망은 없다’고 6·25전쟁에서 말짱히 살아남은 직후에 세워둔 그 좌우명에 의지하고 싶었다.

피츠버그에서 시카고로, 시카고에서 다시 하와이로. 항공기 안의 박태준은 천만근 쇳덩어리가 가슴을 짓누르는 듯했다. 압박감과 좌절감의 무게였다. 워싱턴으로 날아간 일행에게는 한 가닥의 미련도 두지 않았다. 포이와 KISA의 완전한 배신, IBRD의 명백한 차관 거부. 서로 맞물린 그 결정이 포스코 앞의 엄연한 장벽이었다. 이를 애써 외면한 채 ‘워싱턴에서 만의 하나라도 성사될지 모른다’고 기대하는 것은, 그가 늘 거부하며 살아온 ‘요행수’에 매달리는 꼴이었다.

포이가 주선한 콘도는 힐튼하와이빌리지 호텔과 가까운 와이키키의 중심지였다. 백사장과 쪽빛 바다와 하얀 파도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었다. 그 호텔은 미국 대중 드라마 「하와이 눈동자」의 중심무대로, 하와이 태생의 유명가수 돈 호가 노래를 불러 더 유명해진 곳이었다.
하와이 와이키키 해변.
하와이 와이키키 해변.
박태준은 뜨거운 햇볕이 쏟아지는 와이키키 해변으로 나갔다. 비키니를 입은 나신의 여성들이 백사장을 차지하고 있었다. 백인은 거의 대부분 본토에서 온 휴양객이고, 동양인은 일본인과 중국인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십여 년 전 육군 대령 신분으로 미국 연수를 가는 길에 잠시 이곳에 들렀던 추억을 떠올려보았으나 조금도 즐겁지 않았다. 그때와 지금, 그새 강산이 한 번 변하는 세월이 가로놓여 있건만 변함없는 것은 가난한 나라의 국민이란 신세였다. 변한 것이 있다면, 그때는 ‘돈 없는 장교’였는데 지금은 ‘자금 없는 사장’이라는 점이었다. 또한 그때는 국가적 빈곤을 극복하겠다는 의지가 지도력에서 빈약했으나 지금은 그것이 국가적 목표로 확고히 세워져 있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포철 건설의 밑천 1억 달러가 없었다. 그놈의 차관 1억 달러가 없어서 지도력에 큼직한 구멍이 뚫려 있었다.

‘제철에 인생을 건다고 했는데, 그놈의 1억 달러를 못 구해서 이렇게 나가떨어져야 한단 말인가?’
박태준은 하늘을 쏘아보았다. 강렬한 햇빛이 사정없이 동공을 찔렀다. 얼마 동안이나 하늘을 원망하고 있었을까. 내가 일본에 들어가서 돈을 구해볼까, 이런 생각마저 스쳐갔다. 하지만 그것은 부질없는 소원 같은 것이었다. 일본 철강사들과 KISA 일반기술계획 등에 대한 용역체결을 하고 빈번하게 접촉하며 친분을 쌓았고 야스오카 선생과 방법론을 의논해볼 수도 있긴 있겠으나, 작년 여름에 우리 장관들이 도쿄에 가서 ‘일본정부의 한국 종합제철에 대한 협력 거부 의사’를 확인한 후로는 박태준도 박정희와 마찬가지로 일본에서 차관을 구해보겠다는 희망을 완전히 접고 있었다. 게다가 KISA가 엄연히 실존하고 있고 한국이 대일청구권자금에다 상업차관까지 받아냈으니 일본의 외환보유고 수준으로 보든 우리의 자존심으로 보든 일본에 가서 새로 1억 달러나 빌려올 생각은 터무니없고 염치없는 수작 같았다.
1969년 포철 공장부지 모습.
1969년 포철 공장부지 모습.
‘일본에서 차관은 무슨 차관….’
박태준은 새삼 일본 차관을 한쪽으로 밀어내며 아쉬워했다. 처음부터 일본하고 했으면 좋았을 텐데. 한 조각의 후회 같은 감상도 스쳐갔다. 그렇게 절박한 한 순간이었다. ‘일본 차관’이란 단어가 사라진 자리에 전광석화처럼 ‘대일청구권자금’이란 단어가 번쩍 스쳐갔다. 별안간 그는 전율했다.
“바로 그거다!”

박태준은 벌떡 일어섰다. 춤이라도 추고 싶었다.
대일청구권자금 일부를 전용하자는 박태준의 하와이 아이디어는 확인하나마나 현실성을 담보하고 있었다. 3억 달러의 무상자금만 해도 1966년부터 10년간 지급하니 아직은 남았을 터, 대외경제협력기금(유상자금) 2억 달러에도 아직은 여분이 있을 터. 더구나 대외경제협력기금은 조건이 좋았다. 미국수출입은행의 차관이 거치기간 2년을 포함해 상환기간 10년에 확정금리만 연 6.29%였지만, 그것은 거치기간 7년을 포함해 상환기간 20년에 확정금리가 연 3.5%에 불과했다.

그러나 대일청구권자금을 포항종합제철 건설비로 전용하려면 최소한의 전제조건부터 갖춰야 했다. 박태준은 두 가지를 판단했다. 하나는, 기술지원 등 일본철강연맹의 협력을 받아내는 것. 이것은 충분히 해낼 자신이 있었다. 또 하나는, 양국 정부가 농림수산업 발전을 위해 사용한다고 합의해둔 그 자금의 용처를 바꾸는 것. 이 문제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를 거머쥔 박정희 대통령은 종합제철에 대한 집념과 의지가 워낙 강렬하지 않는가?
1969년 포철 항만 건설 모습.
1969년 포철 항만 건설 모습.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첨부파일 첨부파일 :
No File!
게시판 List
이전글 (43) 박정희가 대일청구권 자금의 포철 전용 구상을 비밀에 붙인 이유 - 2014.12.03 [프리미엄조선 연재]
다음글 (41) 일본 정부 "포철 건설 말고 일본 제품 사가라" - 2014.11.28 [프리미엄조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