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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화두 [2004년 12월 08일]
등록일 : 2014-07-28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1587



▶ 1987년 5월 영국 금속학회 애터튼 회장에게 철강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베세머 금상을 받는 필자.


이제 내 이야기를 마무리할 때가 됐다. 식민지 통치와 광복, 분단과 전쟁, 폐허와 빈곤, 경제개발과 민주화로 이어진 옛일을 더듬다 보니 어느새 종착역이다. 돌아보면 그 험한 길을 어떻게 걸어왔을까 아찔하기도 하고, 나름대로 손가락질 받을 삶은 아니었다는 안도감도 느낀다.

내 평생 가장 값진 보람은 1987년 5월 '베세머 금상'을 받은 것이다. 이듬해 5월에는 철강왕 카네기가 세운 미국 카네기멜런대에서 명예 공학박사를 받았다.

영국인 베세머는 '전로(轉爐)제강법'을 개발해 '무쇠의 시대'를 지나 '강철의 시대'를 활짝 열어젖힌 인물이다. 이 제강법을 적기에 미국으로 들여온 사람이 바로 앤드루 카네기다. 그도 철강업계의 노벨상이라는 베세머 상을 은퇴한 뒤인 1904년에야 받고 감격했다고 한다.

쇳물에 손을 담글 때 나는 카네기와 같은 인물이 되고 싶었다. 포스코를 당대 최고의 제철소로 키우고 싶었다. 베세머 금상과 카네기멜런대의 학위는 이 오랜 꿈이 실현됐다는 증표라 할 수 있다. 삼성그룹 이병철 회장도 "장하네, 이 사람아. 일본 철강인도 못 받은 상을, 현역 기업인으론 세계 처음으로 받다니…"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었다.

나의 영광은 응당 포스코에 함께 인생을 바친 동료들에게 돌아가야 한다. 현장에서 인격조차 벗어던진 나의 호된 조련을 감내했던 그들이다. 광양만 호안공사 때 "잠수복 가져와. 내가 들어가지"라는 말 한마디에 화들짝 놀라 스스로 차가운 겨울 바닷속으로 뛰어든 사람들이다. 이런 친구들 덕분에 광양만 호안 석축은 숱한 태풍에도 돌조각 하나 떨어지지 않고 말짱하다. 포스코 신화는 바로 이들 손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지난 40여년 간 우리 세대는 세계 11위 경제대국을 일궈냈다. 미흡한 구석도 있지만 민주주의 역시 상당히 진전했다. 이 두 가지만 해도 우리나라 5000년 역사에 처음있는 일이다.

물론 과오도 적지 않다. 남북은 여전히 분단돼 있고, 국내 정치 행태는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한 상태다. 그러나 우리 세대가 다져놓은 기반 위에서 지혜롭게 대처한다면 남은 과제를 해결 못할 이유도 없다.

분단 극복의 방법은 이미 결정돼 있다. 평화통일 말고는 길이 없다. 한국전쟁을 겪은 우리 세대가 후세에 전할 가장 큰 교훈은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지혜가 있다. 무력을 쓰지 않아야 평화가 유지되지만, 유감스럽게도 평화의 상당 부분은 무력에 의존한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인류역사의 법칙이다.

마지막으로 나의 빛바랜 네 가지 좌우명을 소개한다. "무엇이든 세계 최고가 되자" "절대적 절망은 없다" "짧은 인생을 영원 조국에" "10년 후의 자기 모습을 설계하라"-. 나는 이 네 가지 화두를 잡고 식민지와 전쟁, 포스코 건설, 정치판을 헤쳐왔다.

요즘 경제가 어렵다고 아우성이다. 정치적.사회적 분열까지 겹쳤다. 그러나 원인이 보이면 해법도 보인다. 국민과 기업.정부가 힘을 합치면 이까짓 난관은 능히 극복할 수 있다. 서로 힘을 합치면 분위기가 바뀌고, 자신감을 회복하면 미래는 보장된다. 절대적 절망은 없다. 깜깜한 어둠을 헤쳐온 우리나라다. 맨주먹으로 오늘을 건설한 우리 국민이 아닌가. 역사는 굴러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나가는 자의 몫이란 사실을 기억하자.


2004년 12월 08일  [중앙일보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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