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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의 기억 [2004년 12월 07일]
등록일 : 2014-07-28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1371



▶ 한국전쟁 때 최전선에서 망원경으로 전황을 살피며 부대를 지휘하고 있는 필자.(뒷줄 왼쪽)


우리 또래의 노인들은 북한을 보는 시선이 착잡할 수밖에 없다. 한국전쟁에다 저마다 가슴아픈 사연이 있기 때문이다. 함부로 털어놓지 못하는 비밀이 내게도 있다. 나는 북한 뉴스가 나오면 외삼촌과 원산부터 떠올린다.

우리 집안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은 외삼촌이었다. 1945년 3월 초 와세다(早稻田)대에 합격한 뒤 처음 뵈었던 분이다. "장한 우리 조카 축하하려고 목숨 걸고 현해탄을 건너왔어." 빈말이 아니었다. 당시 미군 기뢰(機雷)에 관부연락선이 침몰하는 참극이 빚어졌고, 미군 비행기가 도쿄(東京)를 무차별 폭격하고 있었다.

울산에서 고등학교를 나온 외삼촌은 눈빛과 말씨가 가지런했다. "일본이 곧 항복할거야. 일본에 미군이 진주하고 만주에 러시아 군대가 들어오면 조선은 복잡해질 테지…." 난생 처음 듣는 정치 이야기였다. 그가 사회주의 사상을 품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헤어진 외삼촌은 광복 후 잠깐 얼굴을 봤지만 곧 연락이 끊겼다. 월북한 것이다.

한국전쟁 때 우리 부대는 포항까지 밀려났다가 곧바로 북상해 원산을 접수했다. 그러나 밀려드는 중공군 때문에 발길을 돌렸다. 조금 더 올라가면 37년 일본 미쓰비시(三菱)가 세운 청진제철소(현 김책제철소)까지 손에 넣을 수 있었는데…. 나는 원산만과 명사십리, 그 아름다운 풍경을 잊지 못한다.

원산에서는 착잡한 광경도 목격했다. 아직도 뒷맛이 씁쓰레하다. 당시 미군 장교들이 승리 자축연을 했다. 원산 일대의 노동당 간부나 인민군 장교의 젊은 처자들이 동원돼 댄스 파티가 벌어졌다. 다행히 미군 장교들이 신사답게 굴어서 망정이지…. 이야기를 들어보니 소련군이 점령했을 때 소련군 장교들과 어울리면서 댄스를 배운 여성들이라고 했다. 나라 힘이 없으니 연약한 여성들이 소련군 장교들과, 다음에는 미군 장교들과 춤을 춰야 하는 현실이 서글펐다.

1.4 후퇴 뒤 잠시 고향집에 다녀올 기회가 있었다. 고향 갯마을은 무사했다. 그러나 어머니 얼굴이 어두웠다. 외삼촌이 처자를 남겨둔 채 월북했기 때문이다. 그 후 어머니는 좀처럼 동생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반공이 국시(國是)인 데다 연좌제가 판치는 세상에 맏아들인 내가 군 장교였기 때문이다. 혼자서 얼마나 속이 썩었을까.

외삼촌은 북한에서 철도청 고위관리까지 올랐다가 작고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념의 폭풍에 아버지를 잃은 조카들은 다행히 꿋꿋하고 바르게 컸다. 이젠 약사도 되고 교사도 되었다. 그 깊고 아팠던 이념의 상처도 세월이 지나면 아물게 되나 보다.

반평생 쇳물을 다루다 보니 북한 제철소도 걱정이다. 70년까지 북한은 남한보다 철강 생산량이 월등히 많았지만 요즘에는 김책제철소마저 제대로 가동되지 않는 모양이다. 전력과 원료 부족 탓일 게다. 아무리 개명천지라 해도 쇠와 전기가 없으면 원시 생활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 딱한 삶을 꾸려가는 북녘 동포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그런 탓인지 요즘 북한 뉴스를 접한 저녁에는 묘하게도 원산 해변이 떠오르는 꿈을 자주 꾼다. 영일만을 닮은 그곳 어디쯤에 근사한 제철소를 세우면 딱 좋을 텐데…. 그동안 기적적인 산업화와 민주화를 경험한 노인으로서 마지막 소원이 있다면 역시 평화통일을 보는 것이다. 기력이 닿고 북한에 도움이 된다면 그동안 쌓은 산업화 경험과 제철 노하우를 충분히 전수해 주고 싶다.


2004년 12월 07일 [중앙일보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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