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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과의 협력 [2004년 12월 06일]
등록일 : 2014-07-28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1040



▶ 지난 11월 베트남을 다시 방문한 필자(右)가 보반키엣 전 총리와 반갑게 손을 잡고 있다.


1990년대 초, 베트남은 내가 남달리 애정을 기울인 곳 중의 하나였다. 알다시피 한국과 베트남은 아픈 사연으로 얽혀 있다. 우리는 1965년부터 베트남에 파병한 대가로 한 밑천을 잡았다. 국토의 대동맥인 경부고속도로는 베트남에서 희생된 우리 장병의 피로 세워졌다.

포항제철소 근처에는 해병사단이 있고, 바로 옆에는 형산강이 흐른다. 베트남 파병을 앞둔 해병대 장병들은 한 달에 한 번씩 형산강 상공에서 낙하 훈련을 받았다. 나는 그 장면을 볼 때마다 새로운 각오를 다졌다. 조상들의 피로 세우는 포스코를 왜 기필코 성공시켜야 하는지 일깨워 주는 각성제나 마찬가지였다. 열대 정글에서 고생할 장병들을 생각하면 영일만 모랫바람 쯤이야 어찌 이겨내지 못하겠는가.

나는 92년 베트남을 처음 방문했다. 하노이의 호치민 묘소부터 찾았다. 평생 부패하지 않고 청렴한 혁명가의 길을 걸어온 노인이 그곳에 누워 있었다. 이념은 달랐지만 대단한 인물이었다. 그의 시신을 알현하기 위해 베트남 사람들은 매일 수백m나 줄을 섰다. 가난하지만 훌륭한 정신적 지도자를 가진 나라, 제대로 된 지도자를 마음으로부터 존경할 줄 아는 국민이었다. 한때 총부리를 겨눈 한국까지 너그럽게 이해하고 품에 안을 줄 아는 베트남인이었다.

포스코는 그해 4월 베트남과 합작해 '포스비나'를 세우고, 연간 3만t 규모의 아연도금강판 공장을 짓기로 했다. 그해 11월에는 하노이에서 도무오이 공산당 서기장을 만났다. 1시간 뒤에 보반 키엣 총리와 만날 예정이었는데, 그는 "총리에게 얘기해 두었으니 내일 만나라"며 내 소매를 잡았다. 우리 대화는 3시간 넘게 이어졌다.

도무오이의 질문에는 인민을 잘 살게 해보려는 순수한 의지가 묻어났다. 감명을 받은 나도 베트남 경제개발 순서에 대해 진지하게 조언했다. "전쟁 때 파놓은 땅굴을 상.하수관과 통신 네트워크로 이용해야 한다"는 아이디어까지 제공했다. 솔직히 베트남 전쟁 당시 우리나라가 진 빚을 조금이나마 갚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 만남을 계기로 포스코는 강원산업.부산파이프를 이끌고 베트남철강공사와 손잡았다. 현지에 연산 20만t 규모의 작은 전기로 공장(미니밀)과 3만t짜리 강관공장을 세웠다. 내친 김에 하노이와 호치민(옛 사이공) 중심지에 땅까지 봐두고 왔다. 하노이에 봐둔 그 자리에는 김우중 회장이 대우하노이호텔을 지었고, 호치민 중심지엔 포스코건설이 대형 빌딩을 지어 베트남 최대 백화점을 유치했다.

그러나 93년 봄 내가 포스코에서 쫓겨나면서 베트남 프로젝트는 뚝 끊어져 버렸다. 나는 회한을 품고 올해 11월에야 다시 베트남을 찾았다. 너무 늙어 거동이 어려운 도무오이 전 서기장은 "진정 그리웠다"는 인사말을 전해왔다. 82세 노인이 된 보반 키엣 전 총리는 "왜 인제 왔느냐"며 좀처럼 포옹을 풀지 않았다.

요즘 베트남은 매년 7% 이상 착실히 성장하고 있다. 농업.경공업.관광 만으로 이만큼의 성장을 일구어 냈다. 올해 베트남의 철강 소비는 500만t을 넘어섰다. 제철소가 필요한 시점이다. 나는 47세의 호앙 트렁 하이 공업부 장관에게 "이제 제철소를 세우라. 조선.자동차 같은 연관산업이 일어서야 중진국을 넘볼 수 있다"고 충고했다.

한국이야말로 베트남 경제성장에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본다. 그것이 역사의 부채도 갚고 우리의 도덕성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길일 것이다.


2004년 12월 06일 [중앙일보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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