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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만에게 [2004년 11월 29일]
등록일 : 2014-07-28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1644



▶ 필자가 포스코 종합준공식을 마치고 박근영(左)와 지만군(왼쪽에서 셋째)이 지켜보는 가운데 박정희 대통령 묘소 앞에서 최종보고를 올리고 있다.


1992년 10월 2일. 포스코의 건설 대역사가 장장 25년 만에 대미를 장식한 날이다. 광양제철소 운동장에서 종합준공식이 열렸다. 눈이 부시도록 푸른 가을 하늘이었다.

이날 행사에 노태우 대통령도 참석했다. 현직 대통령으로서 9월 중순에 민자당을 전격적으로 탈당한 그는 중국과 유엔을 방문했다. 그러나 나는 두 번 다 공항에 나가지 않았다. 민자당도 떠나고 정치를 그만두겠다고 결심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노 대통령과 마음 속으로 거리감을 두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역사적인 날만은 웃는 얼굴로 보내려 했다.

노 대통령이 축사를 했다. 세계 철강 역사상 빛나는 금자탑을 세웠다고 포스코와 나를 치켜세웠다. 하지만 나는 단상에 앉아 허공을 바라보았다. 25년의 시간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유명을 달리한 동지들의 얼굴이 하나둘씩 연(鳶)처럼 저 멀리 어른거렸다. 그 좋은 날에 하마터면 나는 눈물을 흘릴 뻔했다.

종합준공식이 끝난 뒤 나는 곧바로 광양을 떠나 서울로 올라왔다. 마음 속으로 정해놓은 행사가 따로 있었다.

이튿날 나는 아내와 비서실장인 최재욱 의원을 데리고 국립묘지로 갔다. 박지만군과 근영씨가 동행했다. 검은 양복을 입고 박정희 대통령의 무덤 앞에 선 나는 가슴에 품어온 두루마리를 펼쳤다. 고인에게 올리는 마지막 보고였다.

"…저에게 내린 필생의 소임을 이제야 마쳤습니다. 조국 근대화의 제단에 저를 불러주신 그 절대적인 신뢰와 격려를 떠올리면서 다만 머리숙여 감사드릴 따름입니다…."

두루마리를 읽어나가면서 나는 기어이 울음을 터뜨리고야 말았다.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나는 종합제철소 건설이라는 박 대통령과의 약속을 지켜냈다. 아주 작게는 사나이와 사나이로서 약속이었고, 크게는 가난한 조국을 한번 허리 펴고 살게 만들어 보자는 다짐이었다.

하지만 묘소 앞에서 말끔한 기분은 들지 않았다. 옆에 선 지만군 때문이었다. 현대사의 질곡 속에서 어머니와 아버지를 비극적으로 여읜 그. 역사의 무게에 눌려 휘청거리며 살아오다 노총각이 돼 버린 박지만군이었다.

5.16 거사 직후에 박 대통령이 한 말이 귓전에서 떠나지 않았다.

"자네를 거사 명단에서 뺀 이유가 따로 있네. 만약 혁명이 실패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경우 나는 내 가족을 자네에게 부탁할 생각이었네."

고인의 그 말씀은 결국 나에겐 유언이 되었다. 그래서 박 대통령 서거 이후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지만군을 지켜보는 것이 내 소원의 하나가 되었다.

이래저래 마음을 써보았지만 잘 되지 않았다. 인생 대사는 역시 인연이 닿아야 하나보다. 97년 포항 보궐선거 때 지만 군은 나를 돕겠다며 포항까지 왔다. 그때도 총각이었다. 나는 가슴이 아팠다.

그런데 얼마 전 지만군이 불쑥 참하고 똑똑한 아가씨를 데리고 우리 집을 찾아왔다. 아! 드디어 결혼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감격에 겨워 그의 손을 부여잡고 한참 동안 말을 잊었다. 간신히 마음을 진정한 나에게 신부가 될 처녀는 고맙게도 이런 말까지 해주었다. "이렇게 좋은 분을 여태 총각으로 놔둔 여성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요즘 아내는 혼수 하러 다닌다고 바쁜 몸이 되었다. 나 역시 말년에 날아든 이 흐뭇한 소식에 한결 가벼운 마음이다.

"지만아. 부디 행복하게 살아다오. …그래야 나도 저승 가서 박 대통령과 웃는 얼굴로 막걸리잔을 돌릴 수 있지."


2004년 11월 29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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