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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프로젝트 [2004년 11월 22일]
등록일 : 2014-07-28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1094




▶ 포스코가 기업이익의 사회 환원을 위해 광양제철소 앞에 만든 자동화 유리온실.


1991년 여름이었나. 포스코가 순항하면서 나는 기업이윤의 사회 환원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네덜란드에 다녀온 뒤 광양제철소에 특별한 주문을 했다. "내년 봄까지 자동화 유리온실을 세워 농업 시범단지를 만들어 보자." 홍대원을 비롯한 포스코 녹화부 직원들이 급히 네덜란드로 날아갔다. 이 프로젝트의 골자는 이랬다. 먼저 네덜란드에서 자동화 유리온실 설비와 재배할 농작물 씨앗을 들여와 포항산업과학연구원(RIST)에서 3년 정도 시험재배를 한다. 그 다음에는 국산화에 성공한 설비와 품종을 전남 3개 지자체에 무상으로 제공, 새로운 농업 기반을 만들어 준다는 것이었다. 광양만의 부두설비도 많이 좋아졌으니 길게 보면 농산물 수출까지 노려볼 만했다.

이듬해 봄 광양제철소 앞 회사 땅에 한국 최초의 자동화 유리온실이 탄생했다. 당시 돈으로 24억원을 들였다. 처음 재배한 것은 토마토와 카네이션. RIST 연구원들이 정성껏 가꾼 덕분에 알찬 첫 수확을 거뒀다. 토마토는 서울 가락동 농산물시장에서 큰 인기였고, 카네이션도 "포스코가 쩨쩨하게 꽃시장까지 넘본다"는 화훼농가의 시샘을 받을 정도였다.

이 무렵 영일만에도 미래 프로젝트가 윤곽을 드러냈다. 서울대 환경계획연구소에 용역을 맡긴 '21세기를 위한 영일만 광역개발 기본구상'이 1년 만에 나온 것이다. 이 구상의 핵심은 일본의 기타큐슈와 니가타,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 북한의 나진.선봉지구, 그리고 포항을 연결하는 환(環)동해권 경제권역을 만드는 것이었다. 여기에서 포항이 중심이 되려면 영일만 항만 개발과 해상공항 건설, 포항공대와 RIST를 중심으로 하는 포항테크노파크 등을 추진해야 했다. 지금도 나는 마하 3급 항공기들이 이.착륙하려면 바다를 끼어야 하고, 그 중에도 영일만이 해상공항의 최적지라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

93년 3월 포스코 선장이던 내가 정치 격랑에 휘말려 일본으로 건너갔다. 사람이 바뀌면 모든 걸 바꾸어야 하는가. 새로 부임한 경영자는 내가 오랫동안 다듬어 온 기업이익의 사회 환원이라는 기본 방향조차 몽땅 백지화한 모양이었다.

자동화 유리온실의 경우 시험재배 기간이 끝나기도 전인 94년 8월 농업진흥공사로 넘어갔다고 한다. "철강회사가 뭐 이런 걸 하나"라는 새 경영자의 질책 때문이었다. 하지만 농업진흥공사도 이 사업을 제대로 추진하지 못했다. 그래서 내가 국정 일선에 복귀한 99년 12월 자동화 유리온실을 다시 포스코에 넘겨 RIST가 관리하는 쪽으로 교통정리를 했다.

3600여평 규모의 이 유리온실에선 현재 토마토와 파프리카를 기르고 있다. 온실의 젊은 관리자는 "파프리카는 전량 일본으로 수출한다"면서 "이 곳을 본받아 전국 200군데쯤에 자동화 유리온실이 퍼졌다"고 자랑했다. 그의 말에는 자부심이 배어있었지만, 나의 솔직한 심정은 '10년이 넘었는데 겨우 200군데냐'라는 서글픔이었다.

영일만 프로젝트도 지금은 최초 구상의 한 귀퉁이만 남아 있다. 영일만 신항만 공사는 당초보다 훨씬 축소된 규모로 진행되고 있다. 구미~포항 간 고속도로 역시 마찬가지다. 이 도로는 98년 봄 대통령에 취임한 김대중씨가 처음 지방나들이를 갔을 때 나와 함께 착공 테이프를 끊었었다. 그런데 예산 확보가 안돼 이제서야 기공식이 열릴 모양이다. 지금이라도 서둘러야 부산의 컨테이너 체증을 포항이 조금이나마 덜어줄 수 있을 텐데…. 이래저래 유리온실이나 영일만 구상은 나에겐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2004년 11월 22일 [중앙일보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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