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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속 감사팀 [2004년 11월 21일]
등록일 : 2014-07-28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841



▶ 1983년 축조 공사 당시 석양에 비친 광양만 호안의 아름다운 모습.


일만의 포항제철소는 황량한 모래밭 위에 세웠고, 광양만의 광양제철소는 바다를 메운 인공부지 위에 세웠다. 그래서 광양제철은 바다를 매립한 뒤 연약지반을 개량해야 했다.

바다 복판을 가로질러 장장 13.6㎞에 걸쳐 이뤄지는 호안(둑) 축조 공사. 이는 매립 부지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관건이었다. 공사가 잘못되면 밀물이나 홍수에 둑이 무너질 수 있고, 구멍이라도 생기면 어느 순간에 뻥 뚫려 바닷물이 안으로 밀려들 수 있었다.

그래서 호안 축조는 설계부터 치밀하게 했다. 본체와 파도를 막아줄 외벽, 미세한 구멍이나 토사 유출을 방지하는 방사필터 등으로 구분해 구조를 달리 했다. 부분마다 쓰는 석재도 달랐다. 외벽에는 튼튼한 바위, 방사필터에는 고운 자갈이 필요했다. 석재는 매립할 바다에 있는 섬들을 폭파해 조달했다. 이런 방식은 공사를 쉽게 하지만, 불량 석재가 섞여들 위험도 있었다. 나는 이게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1983년 여름 나는 감사팀 한종웅에게 호안 축조공사를 살펴보라고 지시했다.

포항에 있던 한종웅이 광양에 와 보니 호안은 이미 길게 뻗어 있었다. 만조 때 호안은 바다 위의 외길처럼 신비스러운 풍경을 연출했다.

1주일 뒤 열린 임원회의에 나도 참석했다. 한종웅이 감사 결과를 보고했다. 곳곳에 불량 석재가 적지 않더라는 요지였다.

"시공 상태를 모두 확인했어?" 내 질문에 한종웅이 어리둥절해 했다. "바다 속 시공 상태도 점검했느냐 말이야?" "바다 속까지는…." 나는 혀를 끌끌 찼다. "둑이 무너지면 물 속에서부터 터지지 물 밖에서 터지나!"

그들은 다시 광양만으로 내려가야 했다. 이번엔 아예 스쿠버 장비를 갖추고 훈련까지 받았다. 파도가 소용돌이치는 광양만 바다 밑은 이들 돌팔이 잠수부들에겐 위험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다른 방도가 없었다.

감사팀원들은 물 밖과 물속의 돌을 하나하나 점검해 나갔다. 규격미달에는 △, 불량석재에는 × , 짜임새가 불량한 것은 ○. 하얀 페인트로 눈에 띄게 표시해 놓았다. 이를 본 건설회사의 감독이나 직원들은 "지독한 놈들"이라고 투덜거렸다. 하지만 부실 석재를 슬쩍 물 밑에 집어넣은 당사자는 그들이 아닌가.

8월 초 종합감사보고 결과가 올라왔다. 나는 그 자리에서 한종웅을 다시 광양으로 돌려보냈다.

"100m 밖에서도 잘 보이도록 대문짝만 한 간판을 세워." 곧 35리 호안에는 '공사 불량 재시공지구'라는 시뻘건 입간판이 곳곳에 들어섰다. 부실공사는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는 이정표였다. 그때부터 호안 공사의 질은 몰라보게 달라졌다. 그해 연말 감사원 감사에서도 최고의 평가를 받았다.

둑이 완성됐으니 이제 내부를 매립하고 연약지반을 개량할 차례였다. 문제는 기술이었다. 광양만 지반조사를 맡았던 일본 해양컨설턴트와 계약했다. 공사가 시작되기 열 달 전 포스코 직원들을 일본으로 연수를 보냈다. 직접 배워 기술 국산화를 앞당기라고 지시했다.

광양만에 모래말뚝공법이라는 신기술이 첫선을 보인 것은 84년 1월이었다. 매립부지 위에는 모래말뚝을 설치하는 기술자들이 빽빽이 들어찼다. 공사 시작 넉 달 뒤부터 포스코 직원들의 기술이 일본 현장감독들의 기술을 능가했다. 불과 2년 뒤에는 포스코의 연약지반 개량 기법이 세계 수준에 이르렀다. 86년부터 이 기술은 포스코의 '대외판매 가능 기술' 리스트에 올랐다.


2004년 11월 21일 [중앙일보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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