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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연 기술 [2004년 11월 17일]
등록일 : 2014-07-28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832



▶ 독자 기술로 설계한 포스코 제2 냉연공장, 기술 보안을 위해 내부를 공개하지 않는다.


1982년 5월 신일본제철이 포스코의 제안을 차갑게 뿌리친 일이 있다.

포스코 기술진은 그해 1월부터 넉 달에 걸쳐 광양제철 1기 '기본기술계획서(GEP)' 초안을 만들었다. 빌딩의 설계도면처럼 GEP는 제철소 밑그림이다. 그만큼 중요하고 기술이 뒷받침돼야 가능한 일이다. 영일만에서 10년간 실력을 쌓아온 우리 기술진이 드디어 혼자 힘으로 GEP를 만든 것이다.

첫 작품이니 더 철저한 검증이 필요했다. 그래서 신일철에 이를 검토해달라는 용역을 의뢰한 것인데, 냉큼 퇴짜를 놓은 것이다.

일단 '신세진 쪽'에 먼저 등돌리는 결례는 피했으나, 신일철이라는 큰 언덕 하나가 사라진 셈이었다. 포스코는 결국 다음해 1월 독일 티텐사에 270만 마르크를 주고 광양 1기 GEP 초안 검토용역을 맡겼다.

신일철이 이처럼 경계하기 시작했으니 이젠 포스코도 독자적인 길을 모색해야 했다. 그 무렵 포항에는 제2냉연공장이 시급했다. 국내 자동차시장이 팽창하면서 냉연강판 수요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술과 경험이 부족한 78년에 세운 포항 제1냉연공장마저 속을 썩이고 있었다. 이 공장은 공정이 분리돼 있어 크레인으로 중간제품을 옮겨야 했다. 당연히 낭비와 품질저하를 초래했다. 나는 제1.제2냉연공장을 한꺼번에 세계 최고로 끌어올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

83년 어느 날, 설비계획부장 심장섭을 불러 특명을 내렸다. "반드시 일본을 능가하는 냉연공장을 지어야 한다."

입사한 지 13년 된 심장섭은 철강설비 전문가였다. 내가 그를 점찍은 까닭은 82년 포스코 도쿄(東京)지점장 시절에 히로하다제철소를 견학했기 때문이다. 신일철 산하의 히로하다제철소는 그 시절에 최신예 냉연공장이었다.

심장섭은 고민했다. 히로하다제철소는 단단히 빗장을 걸어잠근 뒤였다. GEP 검토용역도 뿌리쳤는데 신기술 협조는 씨알도 먹히지 않을 터였다. 심장섭은 절친한 친구에게 이렇게 부탁했다고 한다. "나도 돌아가면 공장 구경은 했다고 보고해야 할 것 아닌가. 문틈으로 머리만 넣게 해달라." 눈대중으로나마 살피겠다는 생각이었다.

사정사정한 끝에 간신히 허락이 떨어졌다. 심장섭은 처음엔 약속대로 머리만 넣었다. 그러다 마음이 급했는지 기어이 엉덩이까지 안으로 넣고 말았다고 한다. 신일철 직원이 뒤늦게 밀어냈지만 이미 그의 눈에는 공장 내부 구조(레이아웃)가 사진처럼 찍혀 있었다. 귀국해서 풀어놓는 것을 보니 그 사진은 놀랍게도 동(動)영상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런 노력 끝에 포항 제2냉연공장은 세계 최고품질의 자동차용 도금강판까지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광양제철소의 경우 1기부터 4기까지 제선.제강.압연의 설비사양이 모두 똑같다. 공장의 레이아웃은 일직선이고, 모든 공정이 연속적이다. 이런 곳은 세계 어느 제철소에도 없다. 이런 시스템은, 가령 용광로가 4기라도 하나만 잘 설계하면 나머지 셋은 저절로 해결되는 게 장점이다. 기술훈련도 편하고, 한쪽이 말썽을 부려도 처방과 대처가 쉽다.

그런데 혼자 뚝딱뚝딱 냉연공장을 짓고 있는 게 신일철도 궁금한 모양이었다. 한번은 그쪽에서 공장을 보여달라는 요청을 해왔는데, 이번에는 포스코가 정중하게 거절했다.

내가 신일철 관계자들에게 광양제철 내부를 공개하도록 허락한 것은 대역사가 끝난 직후였다. 우리는 '머리'만 넣어주는 게 아니고 친절하게 안내까지 붙여 주었다. 그날 저녁 신일철 직원들의 눈이 모두 휘둥그레졌더라는 보고가 광양에서 올라왔다.


2004년 11월 17일 [중앙일보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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