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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고어 [2004년 11월 10일]
등록일 : 2014-07-28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961



▶ 포스코 전용 부두에 쌓여 있는 수입 유연탄. 고어가문의 '강점결탄'은 질 좋기로 이름 높다.


대공황 시절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은 테네시강에 16개 댐을 건설했다. 뉴딜 정책의 고향인 테네시주에 가면 나는 포근한 느낌을 갖는다. 친구인 고어가 있기 때문이다.

그의 아들이 바로 클린턴 대통령 시절 부통령을 지낸 앨 고어다. 내가 아버지 고어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테네시주 상원의원(민주당)이었다. 웨스트버지니아에 '강점결탄' 탄광을 소유한 재력가이기도 했다.

강점결탄은 화력이 강하면서도 쉽게 부서지지 않는 유연탄이다. 좋은 철강을 만드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연료다. 포스코(포철)가 어찌 군침을 흘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특히 고어 탄광에서 나오는 유연탄은 세계 최상급이었다.

1970년대 중반이었나. 포스코 원료구매팀이 고어 상원의원의 탄광회사와 접촉했다. 처음엔 모욕적인 대접을 받았다. "한국의 포스코는 정상적인 거래가 가능한 기업이냐?"는 반문이 돌아왔다. 속이 상한 우리 직원은 눈을 똑바로 뜨며 "걱정마라. 알아 봐라. 우리 회사가 세계 철강업계에서 어떤 평가를 받는지…"라고 맞받아쳤다는 것이다.

이런 전초전을 거쳐 나는 탄광 대표인 아버지 고어와 만나게 되었다. 그 역시 한국을 삐딱하게 보고 있었다. 그러나 한번 거래를 튼 뒤부터 포스코와 고어 탄광은 깊은 신뢰를 쌓았다. 그는 화통했고 무엇보다 나와 배짱이 맞았다. 어느 새 우리는 아주 가까운 친구가 되어 있었다.

79년 대학 4학년이었던 나의 맏딸(진아)이 여름방학 때 캠프 지도교사로 초등학생들을 이끌고 테네시주에 간 적이 있다. 딸의 교과과정에 포함된 행사였다. 이 소식을 들은 고어 의원이 자가용 비행기를 보내 친구의 딸을 자신의 저택으로 모셔갔다. 그때 변호사이기도 한 그의 부인이 "미국에 또 한 명의 엄마가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라"는 말로 한국 여대생을 감동시켰다.

몇 년 뒤에는 내가 그의 지원 유세에 나서기도 했다. "고어 후보와 나, 테네시주와 우리 가족은 특별한 인연이 있습니다."

실제로 내 맏딸은 테네시주의 여름캠프에서 당시 유학생이던 지금의 남편(윤영각)과 사귀게 됐다. 나는 여기에 하나를 더 보탰다.

"고어 후보가 GM의 소형 자동차공장을 고향에 유치하겠다는데, 그렇다면 포스코는 여기에 자동차 강판공장을 세우겠습니다."

유세장에 환호성과 박수가 터졌다. 내가 이런 마음을 먹은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자동차공장 유치 공약이 취소되면서 나도 강판공장 건설 약속을 거둬들였다. 그렇지 않았다면 86년 샌프란시스코 근교에 진출한 포스코 냉연강판공장의 위치는 테네시주로 바뀌었을 것이다.

고어 역시 포스코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포스코의 철강제품이 미국에서 덤핑 판정을 받을 때마다 그는 보이지 않게 움직였다. 그의 영향력 덕분에 포스코는 미국 시장에서 숱한 고비를 헤쳐나갈 수 있었다.

우리 가족이 고어의 저택에 초대받은 것은 93년 1월 하순이었다. 거대한 목장의 들머리엔 아버지의 집이 있고, 그 끄트머리에 아들의 집이 있었다. 그날 두 가족이 모여 '부통령 고어'를 축하하는 파티를 연 것이다. 나는 와인 잔을 들고 "머지않아 이 자리에서 대통령 당선 파티를 열게 되기를 기원한다"고 축하인사를 한 뒤 건배를 제의했다.

나의 예언대로 아들 고어는 8년 뒤 대통령에 출마했다. 그러나 플로리다주 개표 시비가 보여주듯 초접전 끝에 부시 후보에게 석패했다. 그 바람에 '내 조카, 미국 대통령'이란 나의 꿈도 접어야 했다.


2004년 11월 10일 [중앙일보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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