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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강왕 로데릭 [2004년 11월 08일]
등록일 : 2014-07-25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831



▶ 필자(연단에 선 사람)가 포스코와 USS의 기술협약체결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1984년 봄 스웨덴 스톡홀롬에서 세계철강협회(IISI) 임시이사회가 열렸다. 나는 은밀히 미국 유에스스틸(USS)의 로데릭 회장에게 포스코 방문을 제안했다.

로데릭은 19세기 후반 카네기 시대부터 세계 철강업계의 중심이던 피츠버그 출신의 전형적인 철강인이었다. 경력도 녹록지 않았다. 1956년 32세에 통계이사 보좌역으로 USS에 입사해 19년 만에 사장, 23년 만에 회장이 된 인물이었다. 당연히 세계 철강업계에서 발언권도 셌다. 그런 로데릭이 의외로 포스코의 초청을 선뜻 수락했다.

내가 로데릭을 초청한 것은 미국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미국경제는 경쟁력 상실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제조업 공동화는 심각한 사회문제로 번졌다. 갑자기 보호무역론자들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면서 미 의회와 제조업계가 수입규제 강화를 요구했다. 철강분야에서도 툭하면 '덤핑카드'를 들이대기 시작했다.

일본 철강업계 역시 미국시장 변화에 긴장했다. 그들은 경쟁적으로 미국 진출을 시도했다. 가와사키제철은 캘리포니아스틸, 일본강관은 내셔널스틸에 지분 참여를 했다. 신일본제철.고베제철.스미토모 등도 미국 합작사를 찾아 나섰다. 이왕이면 나는 철강업계 대부이자 미국의 자존심인 USS와 합작하고 싶었다. 포스코가 세계 최고를 목표로 한 만큼 파트너 역시 최고 업체를 잡겠다는 배짱도 깔려 있었다.

그러나 미국 철강의 지존(至尊)인 로데릭은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와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혹시 미국 보호무역주의 흐름을 읽으면서 시간 벌기에 나선 것은 아닐까…'. 기다리고 기다리다 '한번쯤 표나지 않게 내가 먼저 움직여야겠다' 고 마음을 굳혔다.

84년 가을 나는 태평양을 건너갔다. 자존심 때문에 곧바로 로데릭과 부딪치기는 싫었다. 미리 그의 마음을 움직일 사람부터 만나기로 했다. 그 사람이 바로 호건 신부였다. 로데릭과 USS 입사동기이자 절친한 친구이며, 경제학 교수 출신의 성직자이기도 한 독특한 경력의 미국인이었다. 그는 83년부터 포스코 해외자문역도 맡고 있었다. 나는 호건 신부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피츠버그시에 있는 USS의 냉연강판 공장 지분 50%를 포스코가 인수하려고 합니다." 선뜻 메신저 역할을 자처한 호건이 곧 로데릭을 만났다.

그는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포스코가 승승장구하고 있어. 내가 봐도 만만치 않은 회사야. 지금 자네가 포스코와 손잡지 않으면 박 회장이 다른 회사와 합작할 가능성이 농후해."

과연 내 짐작대로 곧 약효가 나타났다. 로데릭 회장은 그해 11월 수석부사장과 고문 변호사까지 데리고 김포공항에 내렸다. 미국 철강의 지존답게 전용기를 타고 왔다. 나는 철강왕의 위상에 걸맞은 스케줄을 미리 잡아두었다. 경제부총리와 상공부 장관은 물론 전두환 당시 대통령과 청와대 면담도 주선했다. 하지만 그는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았다. 현장에서 쇳가루를 마시며 자란 철강인답게 로데릭은 영일만과 광양만을 샅샅이 훑어본 뒤에야 입을 열었다.

"포항제철의 장기적인 경영비전, 강력하고 치밀한 추진력, 사원의 근면한 근무자세와 높은 사기, 깨끗한 공장관리에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로데릭의 이 선언 직후 두 회사는 기술협력을 시작했다. 그런 뒤 양사는 포스코 제품의 미국시장 판매, USS사를 통한 원료 구매 등 상호협력을 위한 양해각서까지 교환했다.


2004년 11월 08일 [중앙일보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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