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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구경 [2004년 11월 04일]
등록일 : 2014-07-25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859



▶ 미국 연수단이 펜타곤을 방문한 뒤 미군 장교(한가운데)와 함께 포즈를 취했다.


"미국 가서 미제 화장품 한 통쯤은 사올 거라고 기대했지요. 그런데 뭘 사오셨는지 아세요? 모형배였어요."

금혼식이 두 달도 안 남은 늙은 아내가 요즘도 옛날 일을 들먹이며 불쑥 이런 핀잔을 줄 때가 있다. 문제의 미제 배는 '철'로 만든 호화 여객선 모형이었다. "그때부터 철로 만든 배를 고르는 법을 알았으니 나중에 제철공장도 만들었던 거지." 나는 그렇게 얼버무린다.

우리 노부부의 이런 대화에는 나의 첫 미국 구경에 대한 추억이 담겨 있다. 나는 대령이었을 때 두 번 미국연수를 다녀왔다. 처음엔 육군본부 인사처리과장으로 있던 1959년 봄에 한 달간, 다음엔 부산군수기지사령부 인사참모직을 떠날 무렵이었던 60년 가을이었다.

첫번째는 온통 '놀람'의 기억으로 남았다. 일본에서 미드웨이까지 10시간, 미드웨이에서 하와이까지 10시간, 하와이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10시간. 파김치가 돼 미군 프로펠러 비행기에서 내려 샤워하고 돌아서기 바쁘게 겨울 정복(正服)으로 갈아입고 나오라고 했다. 댄스파티를 열어준다는 것이었다. 못 말릴 미국이었다.

다음날 3박4일간의 기차여행이 시작됐다. 최고급 침대열차로 시카고로 이동했다. 로키산맥과 끝없는 대평원의 밀밭, 사통팔달로 활주로처럼 뻗어나간 고속도로…. 나는 기죽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써야 했다. 미시간호에 갔을 때 우리 일행은 "이게 바다지 호수냐"라며 눈을 끔벅거렸다. 다시 프로펠러 비행기로 일곱시간 날아가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보병학교를 거쳐 워싱턴DC로 갔다.

펜타곤 지하의 브리핑룸은 잊혀지지 않는다. 엘리베이터에 실려 급속히 하강하는데 층수 표시가 없었다. 커다란 세계지도 곳곳엔 미군 주둔 표시가 있었다. 관계자가 그 규모를 설명해주고 질문이 있으면 하라고 했다. 모두 충격을 받은 듯 입을 닫았다. 연수단장이던 내가 체면치레라도 해야 했다. "왜 세계전도에 소련군의 주둔지와 규모는 나와 있지 않느냐?" 약발이 있는 질문이었던 모양이다. 브리핑하던 미군 장교의 안색이 변했다. "그건 비밀이다. 공개하려면 정보참모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며 말을 끊었다.

두번째 방미 때 받았던 미 육군부관학교 연수에선 무엇보다 최신 공정관리기법이 인상적이었다. 나는 이때 배운 기법을 포철 초창기에 짭짤하게 써먹었다. 제철소의 복잡한 공정과 인력.물류를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토대가 된 것이다.

젊은 날의 미국 구경은 내게 '우리는 언제 이렇게 될까'하는 낙담과 '어떻게라도 한번 해봐야지'하는 오기를 남겼다. 그런 내 눈에 아내에게 줄 미제 화장품 따위가 들어올 리 없었다. 그나마 아내를 위해 금속 모형배를 기념품이랍시고 챙기게 된 것도 뜻밖의 '공돈'이 생긴 덕분이었다. 연수를 마친 우리 일행은 라스베이거스를 둘러보았다. 그 사막 위의 노름도시에서 빙고도 했다. 어쩌다 그런 일에 잠깐 덤비면 곧잘 행운이 따라붙는 내가 그때도 동전을 왕창 먹었던 것이다.

30대 초반에 처음 본 그 어마어마한 미국. 마흔이 넘어 포스코를 키우는 동안에도 수없이 들락거렸지만 미국은 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 그러다 내가 50세 때 드디어 미국과 맞상대할 기회가 왔다. 상대방은 세계 철강업계의 지존(至尊)으로 군림해온 유에스스틸(USS)이었다. 포스코는 장기 파업으로 곤경에 처한 USS와의 협상에서 당당하게 우위에 섰고, USS는 포스코의 냉연강판 합작 제의를 순순히 받아들여야 했다.


2004년 11월 04일 [중앙일보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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