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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피는 팔도강산 [2004년 11월 02일]
등록일 : 2014-07-25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1011



▶ '꽃피는 팔도강산'제작팀이 포철 건물을 배경으로 드라마 촬영을 하고 있다.


10여년 전부터 '포스코 신문'이 발행되고 있지만, 포스코 최초의 사보는 1971년 4월 창간된 잡지 형태의 '쇳물'이었다. 편집자가 창간호에 나와 고준식 부사장의 기념휘호를 넣겠다며 써달라고 청탁해왔다. 그러나 전투 현장의 지휘관이나 다름없는 처지였으니 '먹 갈고 붓 잡을' 여유가 있을 리 없었다. 만년필이면 족했다. 내가 쓴 기념휘호는 '무엇이든지 첫째가 됩시다'였다. 나는 포철맨들이 스스로 '세계 최고'를 고집하기를 바랐다.

포철은 1기 고로 완공 직후 한때 국민의 시선을 받았다. 그러나 여전히 '세계 최고'는커녕 포철이 어떤 회사인지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었다. 74년 봄 '쇳물'엔 오랜만에 고향을 찾아 초등학교 동창생을 만났다는 한 사원의 수필이 실렸다. "요즘 뭐하느냐"고 묻는 동창생에게 포항제철에 다닌다고 했더니 "아, 대장간 같은 곳"이라고 했다나. 연산 103만t의 쇳물이 나오고 있을 때였으니 그 글을 읽는 나도 억울한 느낌이 들었다.

이런 시절에 포철 이미지를 하루아침에 바꿔놓는 일대 사건이 발생했다. 74년 여름 KBS-TV 드라마 '꽃피는 팔도강산'이 한창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그 드라마에서 포철을 주무대로 하는 경북 포항편을 두어달 동안 방영하게 된 것이었다. 배우 문오장씨가 포철 간부사원 역을 맡았고, 윤소정씨가 그의 부인이자 김희갑씨의 딸 역으로 출연했다. 나는 바빠서 자주 보지 못했지만, 회사 직원 및 그 가족들은 큰 기대감을 갖고 열심히 시청했다.

그런데 첫회가 방영되자마자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우선 문오장씨의 콧수염부터 타박 대상이 됐다. 직원들은 "포철 간부 가운데 그런 멋이나 부리는 한심한 작자가 어디 있느냐"며 핏대를 세웠다. 내가 생각해도 옳은 비판이었다.

간부 부인으로 나온 여배우가 사치스러운 옷차림으로 고액권 지폐를 마구 뿌리며 쇼핑하는 모습도 원성의 대상이 됐다. "남편은 뼈빠지게 고생하는데 지방생활에 권태를 느껴 쇼핑이나 하고 돌아다니는 부인들이 어디 있느냐? 우리를 모독하는 행위다." 포철 부인회에서도 들고 일어났다.

그 항의를 몽땅 받은 아내가 내게 따지기 시작했다. 아내도 부인들의 분노에 동조하는 눈치였다.

"작년부터 부인회를 만들어 여가 선용.봉사활동 등 좋은 일만 하고 있는데…. 손목시계 말고는 다른 액세서리는 착용하지도 않는 수수한 부인들인데, 왜곡이 너무 심하잖아요?"

그런 소동을 거친 뒤부터 드라마 제작진은 포철 가족들의 실생활을 좀더 자세히 살펴봤다. 시청률을 의식한 파격적인 장면도 많이 줄어들었다. 이처럼 등장 인물들의 언행이 한결 현실에 접근하자 모두가 '얌전한 열렬 시청자'로 돌아섰다.

출연진과 제작진은 더러 포철 영빈관에서 묵으며 피로를 풀었다. 그들은 녹음이 우거진 포철 주택단지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출연진 중에서는 특히 고로 바로 앞에서 일하는 직원 역을 맡은 배우가 큰 고생을 했다. 지금은 다 사라진 풍경이지만 그때는 쇳물 도랑에 덮개가 없었다. 때문에 직원들은 엄청난 열기 속에서 일해야만 했다. 그 배우 역시 비오듯 쏟아지는 땀을 식히느라 녹화 도중 수시로 공장 밖으로 나가 쉬었다고 한다. 하지만 요즘은 고로공장에 카나리아도 키우고 열대어도 기를 만큼 기술이 발달했다.

'꽃피는 팔도강산' 덕분에 포철은 많은 국민에게 확실한 이미지를 심어줬다. 이제 포철이 국민 성원에 보답해야 할 차례였다.  
 
 2004년 11월 02일 [중앙일보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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