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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폭파해!" [2004년 11월 01일]
등록일 : 2014-07-25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1972



▶ 부실 공사로 드러난 포철 발전 송풍설비가 필자의 지시로 폭파되고 있다.


산업화 초기의 국가적 역량은 건설분야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인프라.공장.주택.빌딩 건설이 자연스럽게 국가 변화를 주도한다. 그러므로 우리 세대에서 부실 공사는 국가의 기초를 위협하는 범죄 행위와 같았다.

1977년 한여름이었다. 당시 포철은 '한 손으로 조업하고 한 손으로 건설하는' 시기였다. 3기 건설공사 기간 단축은 물론 4기 건설을 위한 준비도 해야 했다. 정신없이 바빴던 이 무렵에 집사람은 한 여성지와의 인터뷰에서 "바깥 양반의 종교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분의 종교는 쇠(鐵)"라고 했을 정도다.

건설 현장의 직원들은 내가 나타나면 '주(主)감독 출현'이라며 바짝 긴장했다. 나는 정신 상태가 해이해지기 쉬운 여름철인 데다 제철소 건설이 7년째로 접어들었기 때문에 적당히 때우려는 타성을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그날은 아침부터 땡볕이 내리쬐었다. 점심식사를 마친 뒤였으니까 아마 오후 2시쯤 됐을 것이다.

나는 발전 송풍설비공사 현장 앞에 차를 세웠다. 기초 콘크리트 구조물 공사가 80%쯤 진행돼 높이 80m의 굴뚝이 올라가 있었다. 먼저 전기실 앞쪽을 꼼꼼히 살펴보니 볼트 조임 상태부터 엉망이었다. "저게 뭐야?" "볼트가 잘 안 맞아서 가(假)볼트를 채워둔 겁니다." 입사 3년 된 직원이 엉겁결에 솔직히 대답했다.

현장 소장도 불러 같이 공사장을 한 바퀴 돌았다. 그런데 거푸집을 뜯어낸 콘크리트가 매끄럽지 않았다. "왜 저렇게 울퉁불퉁해? 이런 정신으로 쇳물이 제대로 나올 것 같아?"

일본인 감독도 불러내 호통을 쳤다. "너희는 여기서 소풍하는 거야, 잠자는 거야!"

내가 부실 공사 해결책을 따졌더니 문제된 부분을 재시공하겠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그러면 콘크리트 양생 시기가 안 맞지 않느냐"는 나의 반문에 모두 우물쭈물했다. 나는 적당히 넘어가려는 그런 태도가 마음에 안 들었다.

"당장 폭파해!" "…."

"왜 대답이 없어?" "무슨 말씀인지…." '설마'했던 그들에게 나는 폭파방법까지 일러줬다.

"드릴로 군데군데 구멍 뚫고 다이너마이트 넣어. 그 위에 젖은 가마니 덮어. 그리고 폭파야! 부실 공사는 폭파야!"

다음날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폭파식이 열렸다. 입사 3년차인 현장 직원은 폭약을 구하랴, 경찰서에 신고하랴, 폭약 장전하랴 정신없이 뛰어다녔다.

"쾅!" 굉음이 터졌다. 파편이 하늘을 메웠다. 많은 예산과 시간과 노력이 한꺼번에 쓰레기로 날아간 것이다. 나는 폭파 현장에서 포철 직원과 하청업체들의 해이해진 정신도 함께 날아가버리길 기원했다.

다행히 영일만 사내들의 머리에는 '부실 공사는 안 된다'는 각성이 깊숙이 박히기 시작했다. 부실 공사는 우리 모두를 망치는 암(癌)적 존재라는 비장한 각오가 한여름 현장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한때 삼성전자가 불량 휴대전화 화형식을 한 뒤 세계 일류 휴대전화 제조업체로 거듭났다고 하는데, 아마 그 원조는 포철이었을 것이다.

당시 부실 공사 현장의 사원은 장기만이었다. 폭파식 직후 사표를 내기에 나는 "실패를 거울 삼아 더 분발하라"며 돌려보냈다. 그 젊은이도 어느덧 회갑을 바라볼 나이다. 그가 언젠가 이런 추억담을 써놓은 걸 보았다. "요즘도 '부실 공사 폭파'라는 소리만 들으면 얼굴부터 빨개진다. 그때 그 일은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사건이었고, 오늘까지 나를 건설기술자로 남아 있게 한 원동력이었다."


2004년 11월 01일 [중앙일보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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