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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의 지휘봉 [2004년 10월 25일]
등록일 : 2014-07-25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1118



▶ 박정희 대통령(中)과 감학렬 부총리(右), 필자가 포철 착공식에서 발파 스위치를 누르고 있다.


포철이 들어선 영일만 백사장은 한국에서 가장 보드라운 모래밭이었다. 바람이 조금만 세게 불어도 10m 앞을 내다보기 어려웠다. 1969년 3월 엄청난 해일이 영일만을 덮쳤다. 건설공사 현장에 준설선을 묶어둔 쇠줄이 끊겼다. 준설선 '울산만호'는 바람개비처럼 허우적거렸다. 이때 건설회사의 한 직원이 "선원들을 구해야 한다"며 전마선을 타고 나가 바다로 뛰어들었다. 긴급 출동한 근처 해병대 UDT 요원들이 다행히 준설선의 전복을 막아주었지만 그보다 한발 앞서 바다로 나간 건설회사 직원은 끝내 숨졌다. 포철 건설현장은 이처럼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70년 4월 1일 오후 3시 영일만 모래벌판에는 엄청난 폭발음과 더불어 오색찬란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꼬박 10년을 표류한 끝에 드디어 가슴 벅찬 포철 착공식이 열렸다. 박정희 대통령, 김학렬 부총리, 그리고 나. 세 사람이 버튼을 눌렀다. 박 대통령은 이날 "공업국가 건설에 선행돼야 할 가장 중요한 기간산업이 철강"이라고 선언했다.

그때부터 본격적인 전투에 들어갔다. 당시 포철 이사회는 작전회의나 다름없었다. 각자에게 역할 분담 지시가 떨어지면 그때부터 '돌격 앞으로'였다. 목표는 온힘을 다해야 간신히 도달할 수 있는 고지(高地)에 세워져 있었다.

착공식 날부터 나는 전혀 다른 두 얼굴로 살아가야 했다. 설비나 원료를 구매하기 위해 해외 출장을 나갈 땐 믿음직한 국제신사로서 손색이 없어야 했다. 그러나 영일만 현장에서는 모든 곳을 샅샅이 살피고 다니는 '일선 소대장'이었다.

72년 5월 어느 날 나는 내 인격이 의심스러울 정도로 불같이 화를 낸 적이 있다. 수백t짜리 설비가 천장에 매달려 움직여야 하는 제강공장은 기초공사가 제일 중요했다. 강철 파일을 땅속으로 두들겨 박는 작업부터 제대로 이뤄져야 후환을 막을 수 있었다.

그런데 제강공장 건설현장에서 묘한 광경이 내 눈에 띄었다. 박아둔 파일 안으로 콘크리트를 쏟아붓는 작업을 하는데 파일이 비스듬히 기울어지는 게 아닌가. 그건 파일을 규정대로 박지 않았다는 증거였다.

즉시 공사를 멈추게 하고 불도저를 불렀다. "밀어봐!" 불도저가 건드리기 바쁘게 파일들이 맥없이 쓰러졌다. 미칠 일이었다.

"야 임마, 조상들의 핏값인데 이따위로 부실공사를 해? 부실공사는 곧 적대행위야! 쇳물이 잘못 쏟아지면 바로 우리 동료가 죽거나 다쳐! "

내 지휘봉이 사정없이 현장소장의 안전모를 내리쳤다. 그가 꿇어앉았다. "여기, 일본 회사 책임자도 나와!" 최종 책임을 맡은 일본 설비공급업체의 현장 감독이 앞으로 나왔다. 나는 사정없이 일본말로 퍼부었다. "이 나쁜 놈아! 너희 나라 공사도 이런 식으로 감독하나!" 내 지휘봉은 일본인 감독의 안전모에도 매섭게 떨어졌다. 그가 꿇어앉아 용서를 빌었다. 그렇게 해서 부실 파일들은 모조리 뽑아내고, 잘못 타설된 콘크리트도 걷어냈다.

70년대 전반기 우리나라 건설회사 수준을 떠올려 보라. 현장을 둘러보는 내 눈에 불꽃이 튀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지휘봉을 휘둘러봐야 육체적인 아픔까지는 줄 수 없었을 것이다. 공중에서 쇳조각이 떨어져도 아무 일 없도록 보호해주는 안전모 위에다 두들겼으니 말이다. 그래도 "퍽!" 하는 소리는 해이해진 정신을 일깨우는 주사와도 같았을 것이다. 그 덕분인지


2004년 10월 25일 [중앙일보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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