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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마패 [2004년 10월 20일]
등록일 : 2014-07-25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1617



▶ 포철 1기 설비 구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청와대 독대 자리에서 필자에게 써준 '종이 마패'


포철을 둘러싸고 박정희 대통령과 나 사이에 의견이 엇갈렸던 사안이 하나 있었고, 박 대통령이 나서 내 고민을 말끔하게 해결해준 비밀도 하나 있다.

의견이 엇갈린 것은 전에도 언급한 적이 있는 회사 설립 형태였다. 박 대통령과 나는 이 문제로 1968년 봄에 세 번이나 토론했다. 박 대통령이 "포철을 국영기업으로 해야 손실이 나도 정부가 보전해줄 수 있다"고 했을 때 나는 두 가지 주장을 폈다. 나는 "정부의 손실 보전 때문에 국영기업 경영진의 정신 자세가 안일해진다"고 주장했다. 당시 한전.석탄공사 등 국영기업들은 줄줄이 적자를 내고 있었다. 또 "포철은 내수뿐 아니라 멀리 내다보고 일본과 미국에 수출도 해야 합니다. 나중에 철강을 수출할 경우 외국의 무역 규제가 까다로워 국영기업은 여러 가지 제재를 받게 되니 그때를 대비해야 합니다"라고 건의했다. 결국 내 의견을 박 대통령이 받아들여 포철은 '정부가 지배주주인 상법상 회사'로 출발할 수 있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포스코의 해외 진출에 가로놓일 뻔한 큰 걸림돌을 미리 제거해둔 셈이 되었다.

박 대통령이 말끔하게 해결해준 사안은 복잡하게 얽힌 제철소 부품 구매였다. 포철 1기 건설을 위한 설비 구매 업무는 70년 1월 막이 올랐다. 그보다 한 달 전 대일 청구권자금을 포철 건설에 사용해도 좋다는 한.일 양국 정부 간 합의각서가 조인된 덕분이었다. 그런데 설비 구매계약은 첫걸음부터 휘청거렸다. 설비 선정과 대금 지급을 둘러싸고 자주 혼선을 빚었다. 청구권자금은 정부 간 협상이어서 포철이 직접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또 상업차관은 계약 당사자와 합의를 거쳐 정부 승인을 받아야 했다. 한마디로 포철이 사용할 설비와 부품을 포철 스스로 고를 권한이 포철에게 없었다는 뜻이다.

당시 도쿄(東京)에는 정부기관인 '주일구매소'가 있었다. 그들이 제철소 설비 결정 권한을 차지하려고 덤볐다. 우리가 이리 저리 따져보고 싼값에 최고 품질의 설비를 골라놓으면, 그들은 우리가 이류로 제쳐놓은 제품을 더 비싼 가격에 계약하자고 우기기 일쑤였다.

마침 2월 초 제철소 업무 진척상황을 보고하라는 청와대의 호출을 받았다. 박 대통령은 나의 브리핑을 잠시 멈추게 하더니 비서실장과 경제수석에게 자리를 비켜달라고 했다.

"보고는 무슨 보고. 그래, 순조롭게 돼 가나?" 나는 설비 구매의 애로사항과 개선방안을 보고했다. "지금 건의한 내용을 여기다 간략히 적어봐." 대통령이 메모지를 밀어줬다. 나는 경제장관회의 때 참고하시라고 만년필을 들어 '전문-목표-실천방법' 순으로 자세하게 메모했다. 메모의 핵심은 "포철이 일본기술협력단과 협의하여 공급업체를 결정한다"는 것이었다.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간편 계약(수의계약)을 하더라도 정부가 이를 보증해준다"는 조항도 넣었다.

나의 메모를 찬찬히 살펴본 박 대통령이 놀라운 결정을 내렸다. 메모지 왼쪽 위 모서리에 친필서명을 하지 않는가. "이제 어려울 때마다 번거롭게 나를 찾아올 필요가 없네. 앞으로 이걸 보여 주면서 소신대로 밀고 나가게." 무한한 신뢰의 표시였다. 그만큼 나와 포철의 책임감도 커졌다. 이날 이후 포철은 설비 구매의 주체로 나설 수 있었다. 그 메모지를 포스코 사람들은 '종이 마패'라고 부르는데 나는 그것을 실제로 내보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항상 양복 안쪽 주머니에 넣어 다니던 이 메모지를, 나는 박 대통령 서거 직후 포스코의 역사적 자료이니 잘 보관해 달라며 처음 공개했다.


2004년 10월 20일 [중앙일보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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