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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좌대 [04년 10월 07일]
등록일 : 2014-07-25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1326



▶ 포항공대 도서관 앞 광장의 빈 좌대를 둘러싸고 포즈를 취한 포항공대생들.



정처없이 외국을 떠돌던 시절, 나는 포항공대로 인해 두번의 충격을 받았다.

하나는 1994년 4월 말 날아온 김호길 총장의 부음이었다. 비통했지만 고인이 생전에 즐겨 얘기하던 "자연의 법칙은 신도 바꿀 수 없다"는 말을 위로삼아 마음을 다스릴 수밖에 없었다.

그해 12월 방사광가속기 준공식에 참석하지 못한 일도 서운했지만 그건 그런대로 참을 만했다. 고인과 나의 신념에 따라 결국 한국 과학의 총아라는 옥동자를 낳았으니 그것만으로도 얼마든지 기뻐할 수 있었다.

그런데 95년 1월 느닷없이 두번째 충격이 날아들었다. 추운 겨울바람을 뚫고 일본 미쓰비시상사의 임원 두 사람이 도쿄의 13평짜리 내 아파트로 찾아왔다. "포스코 김만제 회장이 구조조정 차원에서 거양해운을 매각하겠다고 합니다. 저희는 법적 대응을 강구할 계획입니다만 먼저 박 회장님의 의견을 구하고 싶습니다."

나는 아찔했다. 거양해운이 어떤 회사인가. 광양 4기의 설비 구매를 마친 90년 초 무렵이었다. 미쓰비시가 나 개인에게 주겠다며 엄청난 선물을 들고 왔다. 자기네 그룹 전체 이사회에서 '지난 20년 동안 미쓰비시가 가장 많은 설비를 포스코에 팔았는데, 아무리 거절했다손 치더라도 박 아무개에게 인사 한번 안 차린 것은 도리가 아니다'라는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다. 그 회의에서 '미쓰비시은행이 장기 저리로 대출해 화물선을 만들고, 화물 알선까지 책임지는 해운회사를 세워 박 아무개에게 주자'고 의견을 모았다고 했다. 내겐 손 안 대고 '돈과 화물선'이 생길 일이었다. 고마웠다. 하지만 나 개인이 받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내가 다시 '지배주주는 포항공대 재단으로 하자'고 제안했다. 포항공대의 안정적인 발전기금을 확보하기 위한 아이디어였다.

이렇게 기분 좋은 합의로 거양해운이 탄생했고, 포스코도 자금을 출연했다. 내가 포스코에서 사라져도 누구도 장난치지 못하도록 "차관의 95%를 상환할 때까지는 제3자에게 양도할 수 없다"는 단서까지 달아뒀다. 미쓰비시은행의 약속대로 차관이 도착해 화물선이 건조됐다. 95년 당시 거양해운은 현대.대우.삼성중공업에서 만든 15만~20만t급 화물선 10척을 보유했고, 차관 상환은 20% 수준이었다.

나는 미쓰비시 사람들 보기가 부끄럽고 미안했다. 미쓰비시와 한국 사이가 껄끄러워질 것을 염려해 법적 대응만은 만류했다. 결국 미쓰비시는 포스코 회장의 차관상환 보증각서까지 받고 매각에 동의해 줬다. 포항공대가 53.3%, 포스코가 46.7%의 지분을 가진 거양해운은 95년 3월 공개입찰을 거쳐 한진그룹으로 넘어갔다. 포항공대의 듬직한 안정적 재원이 사라진 날이었다.

현재 포항공대는 원로교수 박찬모 총장을 중심으로 노.장.청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 연륜이 쌓여가는 것이다. 오늘도 '무은재 도서관'(무은재는 고 김호길 총장의 호) 앞 작은 광장엔 여섯 개의 좌대가 있다. 넷은 이미 임자가 있다.

아인슈타인.에디슨.뉴턴.맥스웰의 흉상이다. 빈 좌대는 둘. '미래의 한국 과학자'를 모시려고 비워뒀다. 포항공대에 몸담은 한국 과학자들 중 노벨상을 받거나 그에 필적할 만한 업적을 이룩하면 그가 좌대의 주인이 될 것이다. 그 자리의 주인이 어서 나타나는 게 늙은 내게 남은 몇 가지 소망 가운데 하나다. 


2004년 10월 07일 [중앙일보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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