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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보국 [2004년 10월 03일]
등록일 : 2014-07-25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935




▶ 지난해 1월 포항 지역 초등학생들이 아빠들이 일하는 포스코 공장을 견학하고 있다.


내가 만져본 최대의 공돈은 1970년 가을에 저절로 굴러온 보험회사 리베이트 6000만원이었다. 포항1기 건설 때 들여온 고가 설비들은 규정상 팔고 사는 양측이 의무적으로 보험에 들어야 했는데, 그게 뜻밖에도 리베이트라는 떡고물로 돌아온 것이었다.

임원들과 상의한 뒤 박정희 대통령에게 통치자금으로 드리는 게 마땅하다고 판단했다. 공화당 재정담당 책임자가 정치자금 모으느라 포철에도 계속 압력을 가하는 상황에서 부담없는 공돈이 생겼으니 체면치레도 될 것 같았다.

"나라를 위해 쓰시라고 기부금 좀 가져왔습니다."

6000만원짜리 수표를 박 대통령 앞에 내밀었다.

"포철은 절대 정치자금 안 낸다고 말하던 사람이 갑자기 왜 이래?"

의아하게 쳐다보는 박 대통령에게 나는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러자 박 대통령은 미소를 머금고 탁자 위의 봉투를 내 쪽으로 밀었다.

"임자는 앞으로 할 일이 태산이야. 가져가서 필요한 데 쓰도록 해."

고마운 배려였다. 하지만 돌려받을 수는 없었다. 내가 쓰기엔 너무 큰돈이라고 사양했다.


2004년 10월 03일 [중앙일보 연재]

"임자 스케일이 그렇게 작아? 내 선물이라고 생각해." 거듭된 말씀에 내가 우물쭈물하자 박 대통령이 정색을 했다.

"여보게, 그러면 다른 국영기업체 사장들도 이런 리베이트를 받아왔다는 거 아닌가?"

봉투를 거둬들이면서 나는 곤혹스러웠다. 괜히 다른 사람들의 잘못을 고자질이나 한 꼴이 되고 말았다.

청와대를 나서면서 '장학재단 설립'이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포항으로 돌아온 즉시 임원회의를 소집했다. 공돈 6000만원을 종자돈 삼아 '재단법인 제철장학회'를 설립한 것이다. 이를 모태로 71년 포항주택단지 안에 유치원을 세우는 것을 시작으로 초.중.고교와 포항공대를 차례차례 설립했다.

그러나 포철이 장학재단을 세울 무렵 한전.석탄공사 등 몇몇 국영기업체 사장들이 박 대통령에게 혼쭐이 났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더욱 경악할 일은 "박 아무개의 고자질 때문"이라는 말까지 나돈 것이다. 귀를 막고 싶었다. 미안하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했다. 해명하러 다닐 수도 없는 터에 누군가가 "어디 6000만원뿐이었겠나"라는 소문을 냈다. 이런 의구심은 나와 임원들에 대한 뒷조사로 이어졌다. 곤욕은 겪었지만 다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우린 그런 뒷구멍에 한눈 판 사람들이 아니었다.

문교부와 일을 해보니 제철장학재단만으로 학교를 설립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새로 학교법인도 세웠다. 포철의 성장 속도는 사원 자녀들의 성장 속도와 거의 일치했다. 회사 수익금으로 각급 학교를 차례차례 세워 나갔다. 광양엔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한꺼번에 세웠다.

현재는 장학재단, 학교법인, 포항공대법인을 분리해 두었다. 학교법인만 해도 포항과 광양에 유치원 넷, 초등학교 다섯, 중학교 둘, 고등학교 셋 등 총 14개교를 운영한다. 기본 방향은 최고 수준의 교육이며, 다른 사학들과는 달리 현재까지 순수한 포스코의 출연으로 설립, 운영해 왔다. 나는 우리 사학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겠다는 의욕으로 포스코의 학교들에 '교육보국(敎育報國)'을 건학이념으로 내걸었다.

포스코는 '제철보국', 포스코의 학교들은 '교육보국'-. 포스코는 광양제철소 건설 직후부터 포항공대 설립에 착수해 제철보국으로 쌓은 실력을 바탕으로 교육보국을 실천한다는 거대한 프로젝트에 시동을 걸었다.


2004년 10월 03일 [중앙일보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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