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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경협 중단 [2004년 09월 16일]
등록일 : 2014-07-25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649



▶ 김대중 납치 사건으로 한.일 경제협력이 중단되자 포철은 유럽에서 돌파구를 찾았다. 필자(테이블 오른쪽)가 74년 5월 오스트리아 업체와 포철 2기 설비 계약을 하는 모습.


창업기 포철에는 큰 외풍(外風)이 두 차례 있었다. 자칫 싹도 틔우지 못한 채 사업이 시들어 버릴 위기였다.

냉전체제 때인 1970년 5월, 중국 총리 저우언라이(周恩來)가 4원칙을 선언했다. "한국.대만과 경제협력 관계를 맺고 있는 외국 기업과는 경제 거래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중국에 공을 들여온 일본 기업들에 비상이 걸렸다. 나는 즉시 도쿄(東京)로 날아갔다. 신일본제철 이나야마 사장은 나의 태산 같은 걱정을 묵묵히 들어줬다. 그러곤 "포철에 대한 기술 원조는 상품거래가 아닌 만큼 예외"라는 단서를 달아 "4원칙을 인정한다"고 중국에 통보했다. 그러나 중국은 강경했다. 신일철에 "4원칙의 수락여부를 명백히 밝히라"고 요구했다. 신일철이 굴복하면 포철은 착공(70년 4월 1일)하자마자 휴업에 들어갈 처지였다.

이나야마는 우리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는 기자회견을 열어 "중국 측의 요구에는 응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 창업기 포철의 최대 은인은 누가 뭐래도 이나야마 사장이다. 나는 요즘도 도쿄에 들르면 반드시 고인의 묘소를 참배한다.

첫 쇳물을 쏟아낸 뒤 불과 두달 만에 또 한번 엄청난 해일이 포철을 덮쳤다. 73년 8월 8일 발생한 '김대중 납치사건'의 후폭풍이었다. 이후락의 중앙정보부가 저지른 이 사건과 포철은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분노의 표시로 대한(對韓) 경제협력을 전면 중단했다. 당시 포철은 2기 건설을 앞둔 중대한 시기였다. 설비구매 계약부터 힘들었다.

이 사건으로 무기 연기됐던 한.일 각료회의가 그해 12월 도쿄에서 겨우 열렸다. 결과를 초조하게 기다리던 나는 저녁 늦게 도쿄 제국호텔에 묵고 있던 태완선 부총리의 방을 노크했다. "다 막혔습니다. 김대중 납치사건에 대해 일본은 여전히 완강합니다." "포철도 포함됩니까?" "예외가 없답니다."

엄청난 위기를 직감한 나는 머뭇거릴 수 없었다. 돌파구를 찾아야 했다. 노중열 부장에게 독일로 가는 항공편을 잡으라고 했다. 루프트한자 항공에 딱 두 자리가 있었다. 성탄절과 연말 휴가철에 우리는 무작정 독일로 날아갔다. 어둑한 새벽 함부르크에 내려 택시를 탔다. 무조건 최고급 호텔로 가자고 했다. 애틀랜틱호텔의 프런트에서 졸고 있던 백인 종업원이 "예약 안 했으면 방이 없다"고 했다. "호텔 앞에 다른 나라 국기가 안 보이던데, 그러면 로열스위트룸은 비었을 거 아닌가?" 그 백인이 눈을 둥그렇게 떴다. 두 동양 놈이 건방을 떤다는 표정이었다.

나는 보란 듯이 로열스위트룸을 잡고 철강설비업자들을 불렀다. 유럽 각지에서 대표들이 승용차로, 비행기로, 열차로 달려왔다. 사업에는 성탄절도 문제가 아닌 모양이었다. "포철은 2기 공사부터 유럽 업체에도 기회를 주겠소. 1월 5일 견적 서류를 준비해 포항으로 모이시오."

석유파동 와중에 절전운동이 한창이었지만, 나는 포항 '영일대' 주변에 불을 환하게 밝히도록 했다. 근처에 묵고 있는 일본 기술자들을 자극하려는 계략이었다. 이틀 만에 주한 일본대사의 전화가 왔다. 늦었지만 일본 업체에도 기회를 줄 수 있느냐고 사정하기에 "기회는 균등하다"고 답했다. 곧바로 일본 업체들이 몰려왔다. 나는 노중열에게 통쾌하게 일렀다. "이제 싸고 좋은 쪽으로 골라잡는 일만 남았네."

이리하여 포철 2기 건설은 유럽.미국.일본이 고루 참여해 '최저 비용에 최고 품질'이란 기대치 않았던 소득을 올렸다.


2004년 09월 16일 [중앙일보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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