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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철 회장의 배려 [2004년 09월 13일]
등록일 : 2014-07-25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4679



▶ 이병철 삼성 회장(中)이 1977년 필자(右)의 안내로  포항제철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영일만의 기적이라는데, 나한테도 한번 보여줘."

이렇게 한마디 던진 삼성그룹 이병철 회장이 포철을 방문한 때는 1977년 6월이었다. 포철 현황에 대한 브리핑을 듣고 난 뒤 이 회장은 두 개의 질문을 했다.

"박 사장, 경영에 대한 이런 걸 다 어디서 배웠나?" "재무구조가 어떻게 되나?"

짧았지만 정곡을 찌르는 질문이었다. 포철의 재무구조, 예나 지금이나 이건 세계 어떤 기업보다 튼튼하다. 또 그때는 포철의 수익금으로 차관을 앞당겨 갚아나가고 있었고, 포항 2기에 소요된 내자의 70% 수준을 포철 수익금으로 충당했다. 황경노가 재무구조에 관한 설명을 마치자 이 회장은 나를 쳐다보며 빙그레 웃었다.

"이런 공기업은 처음 봤어. 이 회사는 박 사장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하고 경영하게."

이 회장은 제1고로 주상도 둘러봤다. "제철소 안방이 이 정도라면 다른 데는 안 봐도 되겠다." 이런 칭찬을 남기고는 포철이 공장의 말뚝을 박기도 전에 세웠던 연수원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실제로 그 뒤에 삼성 사람들이 포철 연수원에 견학을 다녀가기도 했다.

"박 사장, 정말 고생 많았다. 내가 선물 주고 싶은데, 뭘 주면 좋겠나?"

"장학금이나 보태 주십시오."

이 회장은 나의 손을 잡고 환히 웃었다. 박 대통령과 이 회장은 울산의 '한국비료 공장사건'으로 관계가 안 좋았다. 하지만 나는 늘 이 회장을 우리 재계의 가장 존경하는 선배로 모셨고, 이 회장도 나를 무척이나 아꼈다.

83년과 84년의 그 언저리에 이 회장은 나를 삼성 임원회의에 부르기도 했다. 그날 이 회장은 나에게 어마어마한 선물을 제시했다.

"박 사장, 나라 일은 그만 하면 많이 했어. 삼성중공업이 계속 적자덩어리야. 매년 300억원씩 5년간 도와줄 테니 자네가 그걸 아예 가져가게."

눈시울이 찡해졌다. 선물의 크기가 아니라 거기에 담긴 노선배의 마음이 나를 감동시켰다. 중공업 쪽은 내가 적임자로 보였을 테고, 내가 나이 먹어 포철에서 깨끗하게 물러나면 그 다음에는 어떡할텐가 하는 걱정도 담겼을 것이고, 만성 적자는 삼성의 자존심에도 안 맞았을 것이다.

"마음 만으로도 너무 감사합니다. 하지만 이제 광양을 시작했습니다. 광양까지 완수하는 것이 국가에 대한 도리가 아니겠습니까?"

"참 아름다운 대답이다. 그래, 자네답다. 자네가 고맙다."

그러던 이병철 회장은 87년 11월, 아직은 아까운 나이에 눈을 감으셨다. 그러나 삼성그룹은 '사업보국(事業報國)'이란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한국경제의 기둥이자 대들보가 되고 있다.

임종이 가까웠던 이 회장이 나에게 준 마지막 선물은 회갑연을 앞두고 발간한 나의 회갑 기념문집에 남기신 글이다. 인생의 막바지에서 구술한 글에서 이 회장은 '박 사장은 살아있는 경영 교재'라는 과분한 덕담과 함께 나의 '목욕론'에 대한 칭찬도 빼놓지 않았다.

<특히 목욕에 관해서 박태준 회장은 나름대로 지론을 가지고 있다. '몸가짐이 단정해지면 저절로 자기 주변을 가지런히 정돈하게 마련이다. 이것은 공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작업자가 단정하면 공장이 청결해지고, 공장이 청결하면 제품이 완전무결해진다.' 과연 탁견이라고 생각한다.>

내 인생의 스승이었던 이병철 회장. 삼가 옷깃을 여미고 고인의 명복을 빈다.


2004년 09월 13일 [중앙일보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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