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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철 회장과의 인연 [2004년 09월 12일]
등록일 : 2014-07-25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1299



▶ 골프를 치고 있는 고(故) 이병철 회장. 이회장은 안양골프장에서 필자와 장기영 전 부총리의 화해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1977년 4월 초순이었나. 식목일 며칠 뒤였다. 포항에서 삼성그룹 이병철 회장의 전화를 받았다. "박 사장, 내일 뭐 특별한 약속 있나?" "아닙니다. 어쩐 일이십니까?"

한.일합병이 닥친 비운의 1910년에 태어난 이 회장은 나에게 인생 선배(17세 연상), 와세다대 선배, 경제계 선배였다. 대학은 똑같이 중퇴였다. 선배는 건강 문제로, 후배는 해방의 감격으로 도쿄를 떠났기 때문이다.

이튿날 아침 나는 약속시간에 맞춰 안양의 골프장으로 나갔다. 그곳에는 뜻밖에도 한국일보 사장인 장기영 전 부총리가 이 회장과 나란히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장 전 부총리와 나는 포철 문제로 한바탕 크게 다툰 적이 있다. 더구나 그는 포철 문제로 부총리에서 경질되기까지 했었다.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내가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1967년 개천절에 헤어졌으니 거의 10년 만이었다. "아주 잘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있습니다." "염려해주시는 덕분입니다."

이 회장이 나섰다. "자, 나가세. 한 바퀴 돌면서 옛날 얘기나 해 봅시다."

골프장을 한 바퀴 도는 동안 장 전 부총리와 나는 유쾌한 웃음을 주고받았다. 낮술까지 기분 좋게 나누며 서로 장도를 축원하고 격려했다.

그런 뒤 불과 며칠이나 지났을까. 호주 출장을 가는 길에 싱가포르에 들렀다가 현지 한국 특파원들과 식사를 하게 되었다. 한국일보 기자가 급한 연락을 받고 나가더니 장 전 부총리가 별세했다고 알려줬다. 나는 다시 한번 이병철 회장께 고마움을 느꼈다. 만약 안양의 화해 자리가 없었다면 장 전 부총리는 나와 감정을 풀지 못한 채 생을 달리하지 않았을까? 이 생각을 하면 지금도 아찔하다.

61년 6월 어느 날, 5.16 군사정권 최고회의 부의장 비서실. 최고권력자의 비서실장인 나는 군복 차림으로 이병철 회장과 처음 만났다. 유명한 사업가라는 소문과 달리 온화한 학자풍의 인상이었다. 그때 군사정권은 서슬 퍼런 기세로 '사회악' 일소에 나서고 있었다. 불똥은 기업에도 튀어 이 회장은 이른바 '부정축재' 혐의로 곤욕을 치러야 했다. 나는 이 회장을 정중히 맞이했다. 그 후 경제계에서 가끔 뵐 때면, 이 선배는 "박 사장의 첫 인상이 무척 좋았다"고 말씀하시곤 했다.

그런 첫 인상을 받은 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61년 6월에 내 사무실에 들른 사람들은 한결같이 주눅든 표정이었지만, 이 선배는 당당하게 자기의 소신을 밝혔다. 그날 이 회장은 최고권력자인 박정희 부의장의 마음까지 움직였다.

"혁명은 빈곤을 추방하고 경제를 일으키고자 하는 것이니, 무엇보다 경제 성장의 추진력인 기업인의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해줘야 합니다. 국민의 일시적 환심을 사기 위해 기업인을 죄인 취급하는 풍토에선 경제발전이 불가능합니다."

겨우 서른네살이었던 나는 그 당당함과 의연함에 감명받았다. 그후 나는 좀처럼 휘어질 줄 모르는 성품 때문에 오해를 사고 모함을 당할 때도 있었다. 그러면 이 회장은 속상해 하는 후배를 이렇게 위로했다.

"일하지 않는 사람들이 뒤에서 손가락질이나 하고 쓸데없는 일을 꾸미는 법이오."


2004년 09월 12일 [중앙일보 연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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