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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회장의 선물 2004년 09월 09일]
등록일 : 2014-07-25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2248



▶ 포스코를 방문한 삼성 이병철 회장(左)에게 필자가 경영 현황을 설명하고 있다. 이회장은 학교 선배이자 인생 선배였다.


포스코는 기나긴 역경을 헤치고 제 2제철소를 광양만에 짓게 되었다. '포항에서 쌓은 기술, 광양에서 꽃피우자'는 구호를 내걸고 새로운 각오를 다졌다. 그러나 일본 철강업계가 매섭게 경계하고 나섰다. 우리가 광양제철을 따낸 뒤 불과 닷새 만인 1981년 11월 6일, 요미우리신문이 '부메랑 현상'을 경고하고 나섰다. "일본의 기술협력으로 힘을 얻은 한국 철강업계가 이젠 오히려 일본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는 기사에서 일본의 편치 않은 속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가장 극적인 표현은 신일본제철 사이토 사장이 82년 세계철강협회에서 '철(鐵)'자를 풀이한 것이었다. 그는 "鐵은 '金.哉.王'의 합자로 '돈벌이의 왕이 되는 쇠붙이'라는 뜻인데, 이걸 일본식 약자로 고치면 '金.失'로서 '돈을 잃는다'는 의미가 됩니다"라고 말했다.

사이토 사장과 나는 일본의 대한(對韓) 기술 이전 문제로 날카로운 언쟁도 벌였다. 그즈음 열렸던 한.일 경제인협회 서울 회의에서 그는 "한국이 낮은 임금 조건에서 무조건 기술 이전을 요구하면 결국 일본이 지게 되니 곤란하다"고 말했다. 협회의 한국 측 회장이었던 나는 "일본은 미.일 경제관계부터 돌아보라. 일본은 미국의 자본과 기술력으로 산업화에 성공해 결국 미국을 최대 시장으로 만들었다. 만약 미국이 일본의 성장을 두려워하고 방해했으면 어떻게 되었겠나"라고 반박했다.

이런 어려움을 겪던 80년대 초의 어느 여름날이었다. 삼성 이병철 회장이 전화를 걸어왔다. "자네, 어디 계시나?" 유난히 나를 아껴주던 이 선배가 서울에 있는 나를 일본 가루이자와로 오라고 했다.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이튿날 날아갔다. 가루이자와는 해발 1800m 고지에 있는 일본의 대표적 여름철 휴양지로 골프 명소로도 유명했다. '포철의 은인'인 이나야마 회장이 이 회장과 함께 있었다. 이 회장이 저녁자리를 만들었다. 한국 정세에 대한 의견이 오갔다.

"박 회장은 조금 더 앉아 있어." 비로소 이 선배가 후배에게 속에 있는 말을 꺼냈다.

"내가 이나야마 회장에게 이런 말을 했어. '국가경제를 발전시키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잘 되는 분야를 확대 재생산하는 것인데, 한국에선 박 회장의 포스코가 가장 잘 되고 있다'고-. 그랬더니 그분은 '경제원리든 뭐든 다 떠나서 일은 일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때 해야 한다. 사람은 영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사이토 사장이 협조하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곧 협조하게 만들겠다'고 했네. 내가 이 선물 주려고 불렀어. 내일 공 치러 나가면 다른 말은 말고 감사하다는 말씀만 드리게."

이튿날 나는 필드에서 인생의 황혼기에 든 두 선배를 모셨다. 노래 한자락 하라고 하면 서슴없이 하고, 잘 안 된다는 구절은 따라 부르게도 하고, 스윙 자세도 봐 드리고, 마냥 즐거운 하루였다.

얼마 안 지나 두 선배가 마련한 선물이 날아들었다. 일본 철강업계가 장시간 회의 끝에 '광양제철소에 간접방식으로 기술협력을 한다'고 결정했다는 소식이었다. 이나야마 회장은 장경환 포스코 도쿄사무소장을 통해 회의 발언내용이 담긴 녹음테이프까지 보내왔다.


2004년 09월 09일 [중앙일보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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