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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선물 [2004년 09월 06일]
등록일 : 2014-07-25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1137



▶ 공기 단축을 위해 1978년 추석 연휴를 반납한 포철 직원들이 필자(가운데 무릎 꿇고 있는 사람)와 함께 합동차례를 지내고 있다.


1978년 4월 하순 포철이 제2제철 사업자로 결정될 것이란 보도가 나왔다. 그러나 5월 들어 상황은 급변했다. 현대가 인천제철(현 INI스틸) 인수를 선언하며 '제2제철 쟁탈전'에 다시 불을 붙였다. '정주영이 이기느냐, 박태준이 이기느냐'. 세간에는 이런 통속적 관심이 고개를 들고, 청와대가 현대로 기울었다는 관측이 나왔다. 그러나 유신체제의 종반기인 그해 여름까지 나는 거의 1년 넘게 박정희 대통령과 독대할 기회가 없었다.

중동의 열사에서 저력을 확보한 현대는 '제2제철 민영화'를 주창했다. '민간기업이 제2제철을 맡아 국내 철강업의 경쟁체제를 갖추자. 경쟁해야 가격도 낮아진다'는 논리였다. 얼핏 듣기엔 옳았다. 그러나 포철은 처음부터 수입 철강에 비해 20%~40% 낮은 가격으로 공급해왔다. '좋은 품질의 철강재를 저렴한 가격에 안정적으로 공급해 한국산업의 국제경쟁력 확보에 기여한다'는 경영원칙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다. 세계 철강업계 또한 통합하는 추세였다.

그해 가을 영일만에는 5개월 공기 단축을 위한 '추석 연휴 반납운동'이 벌어졌다. 나는 '불효'를 택했다. 포철 정문에 커다란 합동차례상을 차리게 했다. 추석 아침에 내가 가장 먼저 잔을 올렸다. 건설 현장은 닷새 동안 100% 출근을 기록했다.

추석 연휴의 공기 지연을 막았지만 나는 답답했다. 안 보면 멀어진다는 말이 박 대통령과 나의 관계에도 마찬가지였을까. 청와대가 현대로 기울었다는 소문이 끈질기게 이어졌다. 제2제철 사업자를 결정하는 운명의 10월은 코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나 청와대 비서실은 막혀 있었다. 최각규 상공부 장관을 만나기로 했다. 그가 부산으로 출장 나온 길에 조용히 포항을 들렀다. 그는 현장을 보고, 포철이 제2제철을 맡아야 하는 나의 설명을 들은 뒤에야 확신을 세웠다.

10월 초 청와대에서 열린 월간 경제장관회의에서 제2제철이 도마에 올랐다. 청와대 비서실장과 경제수석실은 현대, 상공부.건설부 장관은 포철을 밀었다. 서로 팽팽히 맞서면서 나온 결론은 '결정 보류'였다. 결국 박 대통령의 판단에 넘긴다는 소리였다.

10월 중순 청와대에서 연락이 왔다. 대통령 면담보다 30분 일찍 오라고 했다. 그 시간에 경제수석실이 나를 설득해보겠다는 계략이었다. 나는 양보 없이 맞섰다. 박 대통령과 운명적인 면담 시간이 왔다.

"이제는 자네 얼굴 보기도 어려워." 대통령은 제2제철소 프로젝트를 탁자에 올리면서 말했다. "자네 의견도 들어야겠어" "하지만 (면담) 시간이 별로 없지 않습니까?" "시간은 걱정 말게."

나는 제2제철 문제를 간추려 보고한 뒤 끝으로 이런 의견을 보탰다.

"현대가 들어오면 '기술자 빼내기'는 뻔합니다. 공격과 방어에 돈이 개입되고 결국 공멸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또한 포철 하나만을 키운다해도 세계 철강업계의 압력을 막아내기가 어렵습니다."

박 대통령이 손에 쥔 연필로 톡톡 탁자를 두들겼다. 숨막히는 순간이 지나가고, 독백 같은 말이 나왔다.

"정주영 회장은 불도저 같이 일하는 분이지. 공헌도 크고…. 그러나 철강은 역시 박태준이야."

그때는 이것이 나와 포철에 대한 박 대통령의 마지막 선물이 될 줄은 몰랐다. 하지만 나에겐 제2제철의 입지 선정이란 또 하나의 고비가 기다리고 있었다.


2004년 09월 06일 [중앙일보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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