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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모의 계절 [2004년 09월 02일]
등록일 : 2014-07-25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2021



▶ 1974년 가을 포항제철에 내려온 박정희 대통령(右)이 현황 보고를 받고 있다.


'한국제철'을 보며 나는 몹시 속이 상했다. 이제 겨우 제철 전문가를 육성하기 시작한 마당에 두 집 살림을 하면 모두 부실해질 것은 뻔한 이치였다. 그런데 어느 날 해외 출장을 다녀오니, 한국제철 사무실이 포철 본사로 들어와 있었다. 우리 임원들도 수시로 들락거렸다. 상대는 한국제철에 'US스틸'에다 '전직 부총리'까지…. 내 신경은 곤두섰다.

태완선 전 부총리가 '한국제철'을 창립하던 1974년 가을, 나는 개인적으로 곤욕을 치렀다. 서울 북아현동 우리집이 가택수색을 당한 것이었다. 그날 아침 고2 맏딸이 등교 준비를 하고 있었고, 집사람은 마침 포항에 내려와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기관원들이 덮쳤으니 여고생 딸이 얼마나 놀랐겠는가.

내가 전화로 들으니, 그들은 우리집 금고에 무슨 딱지를 붙여놓고 열쇠를 가져오라고 했다고 한다. 손대면 표나게 해둔 거였다. 열쇠는 집사람의 핸드백에 있었다. 부랴부랴 아내가 올라가고, 기관원들이 다시 집으로 왔다. 그들은 비싼 밀수품과 돈뭉치를 기대했다. 그러나 금고 안은 초라했다. 집문서와 해외 출장에서 남은 외화 몇 푼이 전부였다. 그들은 "미안하다. 우리도 어쩔 수 없었다"는 말을 남기고 돌아갔다.

여기엔 국제 브로커와 얽힌 권력투쟁 음모가 개입돼 있었다. 이스라엘과 오스트리아 국적을 가졌고 일본어에도 능통한 유대인 E. 이승만 정권 때부터 한국에도 손을 뻗쳐 각종 이권에 개입해온 E가 73년 12월 포철의 설비 구매에 손대려 했다. 오스트리아의 푀스트, 스위스의 콩캐스트, 독일의 만네스만 데그마 등이 경합하고 있었는데, E는 콩캐스트를 밀었다. 그러나 포철은 공개입찰을 택했고, 가격과 품질에서 경쟁자를 앞지른 푀스트로 낙찰됐다.

그러나 가만히 있을 E가 아니었다. 그의 배후엔 스위스 대사를 지낸 여당의 K의원이 있고, K의 뒤엔 총리를 지낸 더 막강한 J가 있었다. 중앙정보부와 감사원으로 '박태준과 푀스트가 뒷거래를 했다'는 진정서가 들어갔다. 그것이 청와대를 거쳐 가택수색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때 여권에는 '포스트 박정희'를 꿈꾸는 3인이 있었다. L, K, 그리고 J. 이들 중 자금력에서 J가 가장 뒤져 있었는데, E와 K의원은 포철에서 박태준을 빼내고 자기네 사람을 넣어야 J를 위한 정치자금을 만들 수 있다고 계산한 모양이었다.

한국제철에다 가택수색까지. 나는 박 대통령의 나에 대한 신임을 의심했다. 방법은 사표였다. 이런 와중에 대구에 내려왔던 대통령이 포항에서 쉬어 간다는 연락이 왔다. 나는 영빈관인 '백록대'로 모셨다. 대통령이 이층 숙소에서 휴식을 취하는 사이, 나는 아래층에서 경호실장 박종규에게 마구 퍼부었다. "사람을 모래벌판에 처박아 놓고 독약 먹일 음모나 꾸며?" "대체 무슨 말이오?" 그가 의아해 했다. 모르는 눈치였다. 그 옆의 김정렴 비서실장은 가만히 있었다.

대통령이 나를 따로 불렀다. 나는 비장한 각오로 사표부터 내밀었다. "저와 부하들의 뒷조사에다 가택수색까지 당했으니 이제 포철을 떠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박 대통령이 깜짝 놀라 비서실장을 불렀다. "진정서의 내용이…" 비서실장이 우물쭈물했다. 대통령이 굉장히 화난 얼굴로 호통을 쳤다. 덫에서 완전히 빠져나오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제2제철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한국제철에다 이제는 '현대'와 '정주영'이란 강력한 복병까지 가세했다.


2004년 09월 02일 [중앙일보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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