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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제철 쟁탈전 [2004년 09월 01일]
등록일 : 2014-07-25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715



▶ 1974년 포철의 임원회의 모습. 사보 파동 이후 필자는 공보과장을 임원 회의에 꼬박꼬박 참석시켰다.


"공보과장한테 이달치 사보를 임원 숫자만큼 들고 지금 당장 오라고 해!"

1974년 12월 초, 나는 임원회의를 시작하자마자 버럭 고함을 질렀다. 삽시간에 회의실은 꽁꽁 얼어붙었다. 지금은 폐간된 포철 사보인 '쇳물' 11월.12월 합본호가 사원들에게 배포되기 직전이었다. 이때 포철은 1기 103만t을 완성한 뒤 2기 건설에 매진하고 있었다. 그러나 포철의 미래를 좌우할 큰 위기가 슬그머니 다가왔다.

"한 권씩 돌려!" 임원들 앞에 사보 한 권씩이 놓여졌다. 내 목소리는 더 매서워졌다.

"<올해의 어글리 10대 뉴스>를 펴!" "읽어!"

공보과장 이대공은 마치 성난 담임 교사 앞의 학생처럼 또박또박 기사를 읽어내려갔다.

"… 직원 부인들도 목욕을 잘 시키라는 사장님의 지시가 내려왔다. 드디어 가정생활에까지 간섭이 시작됐다는 '비관형'에다, 우리 마누라 몸에 때 있는 걸 사장님이 언제 보셨느냐는 '의처증형(?)'까지 …"

"그만! 거기, 의처증형 뒤에 물음표는 왜 달았어?"

"코믹하게 읽어달라는 뜻입니다." "뭐, 코믹? 야 임마, 너는 사장의 공장관리 원칙 제1호가 코믹하게 보여? 우리 사보도 신문 흉내내나? 요즘 우리 내부에 회사를 부당하게 비판하고, 회사를 망치려고 하는 세력이 있어!"

나는 고함을 질렀다. 이대공이 신상 발언을 요청했다. 발언 요지는 세가지였다. 사보를 재미있게 읽도록 신문의 '올해 10대 뉴스'를 흉내냈다, 자신이 직접 설문을 만들고 글을 썼다, 그런데 '대역 죄인'으로 취급하니 억울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사보 배포 금지령을 내렸다. '재미있게 읽히도록 놔둘까…', 이런 망설임도 있었지만 사장의 중요한 경영 원칙이 희화화(戱畵化)되어선 안 되겠다고 판단했다. 이 필화 사건은 이튿날 아침 공보과장을 불러 나의 '목욕론'을 30분 넘게 들려주고, 과장급이지만 앞으로 모든 임원 회의에 참석하도록 그를 발탁하는 것으로 마무리지었다. 나중에 이대공은 포스코 홍보업무를 총괄하는 부사장까지 올랐으니 숨어있던 인재 하나를 뽑아올린 '생산적 필화'였다.

남들은 웃을지 모르지만 '목욕론'은 나의 중요한 경영 원칙인 만큼 나중에 자세하게 다루기로 하겠다. 다만 그날 아침에 내가 그토록 화를 냈던 이유는 따로 있었다. 내가 '회사를 망치려고 하는 세력'이라는 표현까지 쓴 것은 나름대로 위기 의식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누가 제2제철을 맡느냐를 놓고 보이지 않는 힘겨루기가 시작된 것이다.

정부는 73년 11월 포철 산하의 '제2제철 설립추진위원회'를 사기업 형태로 바꾸더니, 태완선 전 부총리를 사장으로 내려보냈다. 급기야 74년 9월 하순 '한국종합제철주식회사'가 탄생했다.

자본금 4억달러로 출발한 한국제철은 초기 4년 동안 28억달러를 투자해 연산 500만t 규모의 제철소를 만들고, 나중에는 1000만t 규모로 키운다는 계획이었다. 더구나 미국 US스틸과 합작하고 그 신인도를 이용해 국제금융시장에서 19억달러를 조달하겠다는 것이었다.


04년 09월 01일 [중앙일보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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